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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cea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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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얼굴을 가졌다. 필요에 따라 높낮이가 다른 목소리를 내기도 하는, 얼굴 안쪽의 기분을 능숙히 가릴 수도 있는 가식을 포함해 여러 겹의 얼굴을 당신은 가지고 있다. 일터에서 당신을 만나는 사람들은 일터 밖에서의 당신의 얼굴을 알지 못하고, 부모 혹은 연인도 당신의 어깨를 부딪치고 지나가는 사람에게 지어 보이는 당신의 얼굴을 다 알지 못한다. 적재적소의, 여러 개의 얼굴들.
누구나 그렇듯 거의 본능에 가까운 감각으로 보여질 것과 감출 것들을 영리하게 고른다. 선별된 이미지를 크롭하거나 필요에 따라 확대하기도 한다. 간단한 보정은 하되 심하게 가공된 느낌을 주는 필터는 쓰지 않는다. 적절한 텍스트를 곁들인 이미지를 전시하면서 당신은 당신의 얼굴을 완성해간다.(당신이 되어간다) 완벽하게 혼자일 때 얼굴을 벗을 수 있을까. 당신은 스스로 얼굴을 벗을 줄 모른다. 심지어 일기를 쓰는 순간에도 당신은 당신의 얼굴 뒤편을 정확히 바라보지 못하므로.
이제 막 섹스를 하게 된 사이, 계산 없이 밀어를 나누어도 안전하다고 느끼는 사람 앞에서만 비로소 당신은 잠시 얼굴을 벗을 수 있게 되지만 그런 사람은 쉽게 찾아오지 않을뿐더러 타인은 완벽한 구원이 아니므로 호르몬의 은혜가 걷히고 나면 불현듯 벗어놓았던 속옷을 주워 입는 사람처럼 한층 다르고 두터운 겹겹의 얼굴을 한 채로 이별을 고하기도 한다. 더구나 당신은 완전한 혼자가 되는 방법을 자주 까먹는 탓에 손바닥 안에 난 작은 불빛 속으로 얼굴을 밀어 넣는다. 그곳에서의 얼굴은 완벽에 가깝고 부족한 돈이나, 시작도 안 한 설거지, 피부트러블 따위는 없거나 블러 처리 되지만 더 완벽해 보이는 타인들의 얼굴을 관음하고 서로 참조하며 비슷한 얼굴을 만들어 간다.
주차금지용 약수통이 굴러다니는 동네 골목, 편의점 도시락, 성실한 카드 고지서, 배수구의 머리칼, 메신저의 차단목록, 오늘 당신이 지나온 곳, 그러나 기록되거나 자랑할만한 것이 못 되는 풍경이 당신 주변을 배회한다. 당신이 의식하는 당신의 얼굴 안에 그런 풍경은 없다. 오로지 기록되는 사진만이 당신의 오늘을 이루고 훗날의 기억으로 자리 잡는다. 기억하기에도 바쁜 당신을 위해 작년 오늘 당신은 어땠는지 친절한 알람을 받기도 한다. 다른 것은 얼굴 뒤의 심연으로 가라앉는다. 오늘도 완벽한 얼굴을 한 당신은 새로운 바에서 칵테일 한잔을 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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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없는 사진을 전달 받고
사진을 바탕으로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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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조가비
글 | 이소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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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과 등
얼굴과 등
나는 그녀를 바라본다. 사람들 사이에서 늘상 웃는 표정을 화장처럼 하고 있던 그녀의 얼굴, 그러나 지금은 거의 무표정을 한 어쩌면 그녀의 가장 정직한 얼굴을. 살짝 다문 입술에 숨겨진 약간의 냉소, 날카롭진 않지만 어딘지 단단해 보이는 것은 눈빛 때문일까 싶은 홑꺼풀의 눈매. 그녀를 보며 사람의 얼굴이라는 것이 모두 비슷한 자리에 눈썹과 눈, 코, 입을 갖추고 있으면서 모두 다르다는 것이 문득 새삼스럽게 여겨진다. 그녀의 얼굴에서 또한 그녀의 어머니의 얼굴을 본다. 씁쓸히 웃을 때 지어지는 콧볼과 양볼의 주름이라던지 무언가에 골몰할 때 자신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리며 짓는 표정이 닮아있다. 얼마만큼의 유전자가 그녀에게 기능했을까, 아니 그런 표정들은 어쩌면 그녀가 자라며 보아온 그녀의 어머니의 표정의 후천적 답습일지도 모른다. 어머니가 느끼는 환희와 좌절 사이의 세세한 모든 감정들을 그녀는 늘 살피는 버릇이 있었으므로. 어떤 류의 경험과 생각이 ���녀의 뇌를 자극했고 그리하여 어떤 근육이 미세하게 혹은 완벽하게 수축하거나 팽창하거나 떨리며 오늘의 얼굴을 이룩해온 것일까. 그녀의 의도된 표정을 띄지 않은 얼굴은 생경하다. 그녀는 스스로의 뒷모습을 바라본적 있느냐고 초연히 내게 물어왔다.
당신이 당신의 뒷모습을 눈으로 바라보는 일. 그것은 불가능하다.
그녀가 어떤 걸음걸이를 하며 걷는지, 그런 그녀의 뒷모습이 어떻게 생겼는지 나는 영원히 알 수 없다. 그때의 나는 어떤 뒷모습을 하고 있었을까.
사진 | 김혜진
글 | 이소희
이름 없는 사진을 전달 받고, 사진을 바탕으로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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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어베이글
연어베이글
갓 구운 후 배달된 베이글을 낱개로 소분해 냉동실에 얼려두었다. 그중 두 개를 꺼내 레인지에서 짧게 해동을 하고 반으로 가른 후, 버터를 조금 두른 팬에 노릇하게 굽는다. 팬에 올려둔 베이글이 구워지는 동안 냉장고에서 크림치즈와 연어, 케이프(연어 구매 시 함께 ���려온)를 꺼내고 오늘의 사치, 아보카도 몸뚱아리에 칼을 쑤욱 밀어 넣는다. ‘오케이!’ 마트에서 집어 들 때만 해도 딱딱하고 떫어, 이틀 전엔 회생이 불가능한 상태로 3천 몇백원이 생으로 쓰레기통에 직행한 바 있다. 오늘은 딱이네? 너무 떫지도 무르지도 않은 느낌으로 칼이 미끄러져 들어가 딱딱한 씨 부분에서 제때 멈춘다. 두동강난 귀여운 자태의 이 초록열매에서 씨를 제거하고 옷을 벗겨 적당한 두께로 슬라이스한다. 오늘 이 재료들은 인스타그램에 올리기 나무랄 데 없는 컬러플하고 있어 보이는 조합이지만 어쩐지 휴대폰을 집어들기엔 웃기다는 생각이 드는 참이다. 겉이 살짝 크런치하게 구워진 베이글에 크림치즈를 넉넉히 바르고 얼음 물에 담가 두었던 얇게 썬 양파를 올리고, 연어와 케이프, 아보카도, 통후추를 우수수 갈아 반쪽자리 베이글 뚜껑을 덮는다. 식탁 위에 커피를 내려놓고 기다리는 동거인에게 완성된 연어 아보카도 베이글 접시를 만족스러운 얼굴로 내보이며 들고 걸어가며 말한다.
여보, 나는 베이글 하면 떠오르는 시절이 있어.
*
“안녕하세요 아이린이라고 합니다.”
와 무슨 연예인이야? 차에 올라타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일요일 아침이면 아이린의 엄마인 미세스 최 집사님의 SUV가 집 앞에서 기다린다. 플러싱 189 St. 내가 뉴욕에 잠시 살았다고는 하지만 그곳이 맨해튼일리 만무하다. ‘훌러동’이라는 별명이 있을 만큼 한인들이 많이 모여 사는 퀸즈 플러싱.-물론 이곳도 산책을 하다보면 몇 블럭 단위로 부와 빈의 차이를 구경할 수 있다.- 다다(Dada)와 나는 방긋 웃으며 미세스 최의 차에 올라탔다. 아프리카 케냐, 나이지리아에서 선교사로 지내다가 뉴욕 훌러동으로 흘러오신 50대 후반의 다다는 강원도 철원이 고향인 미혼 여성이며 국제 선교활동의 일환인 이곳 뉴욕 셰어하우스에서 함께 지내는 스탭 중 한 명이다. 이곳에서는 평일엔 각자의 일정으로 맡은 바 데스크 업무와 리서치 등을 하고, 주말에는 개인 시간을 보내는 것이 일반적인데, 일요일 아침엔 퀸즈에서 맨해튼까지 최 집사님의 차를 타고 이동할 수 있다. 지하철보다야 빠르고 쾌적하며 모두의 목���지가 타임스퀘어 처치로 같았으므로.
나의 경우 일요일 오전 10시가 되면 그 큰 교회에 모여드는 전 세계 인종들을 구경하는 것-특히 흑인 아주머니들의 볼드하고 화려한 드레스업, 그들의 자유롭고 흥겨운 춤을 보는 것-은 더없이 흥미로운 광경 중 하나였고, 이후엔 맨해튼 구석구석 가보고 싶었던 곳들을 홀로 걸으며 음악을 듣는 최고의 사치가 기다리고 있었기에 일요일 아침 그 차에 올라타는 일이란 흔쾌한 일이었다.
오늘 처음 미세스최의 차에 오른 아이린은 인사만 간단히 건넨 후 조수석에 앉아 말없이 차창을 바라보고 있었다. 새하얗고 단정한 원피스에 독특하고 까만 선글라스.
지난 두세 번의 픽업 차량에서 미세스최는 우울증에 걸린 딸에 대한 고민을 조심스럽게 내비친 바가 있었다. 그녀는 나보다 두 살 많다고했고, 그렇다면 그녀는 스물다섯의 초봄을 막 맞이한 것이었다. 매끈한 머릿결, 모녀의 작은 제스처만 보아도 그들은 그 작은 사회 안에서 상류층에 속했다. 그렇지만 한인사회에서 경제적 성과를 얻은 사람들 중 대부분은 그만큼 남모를 고충을 떠안고 있다고도 했다. 아이린은 왜 오늘 아침 갑자기 교회로 향하는 차에 올랐을까? 그녀의 얼음 같은 태도, 아니 태도라기보다는 어떠한 기운은 차에 오른 나머지 사람들의 뇌와 입에서 되도록 말을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고르게 하는 어떤 능력이 있었다.
“아, 잠시..”
말을 하는 듯 마는 듯, 아이린은 문득 생각난 듯 피크닉백에서 보온병을 꺼냈다. 커피를 좀 드시겠어요? 라고 묻는 물음에서 나는 정제된 것이 주는 아름다움이란 저런 것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녀는 커피컵과 함께 정성스레 싸온 베이 글을 내밀었다. “그라브락스연어베이글 입니다. 아침을 안 드셨을까 해서요. 괜찮으시다면..”
아이린의 깍듯한 구어체 말투. 속을 알 수 없는 최소한의 제스처. 금방 깨질 듯 얇은 얼음볼의 겉면에 특유의 차가운 반짝임이 흐르는 것 같았다. 이십대 초반의 내 눈에 비친, 다른 세계에 사는 비슷한 또래의 여자. 그 미묘한 텐션은 기분 나쁜 것이 아니었다. 자꾸 관찰하게 되는 모종의 흥미로움.
모든 것을 흡수하던 그때의 나에게 연어 베이글은 왜 그렇게 맛이 있었을까. 퀸즈 플러싱과 맨해튼 타임스퀘어의 간격(gap) 만큼이나 그녀는 나와 달랐다.
그즈음. 누군가의 픽업 차량에 올라 브릿지를 건너며 흰 피부의 얼음 여인에게서 어떤 세계를 보았던 그즈음.
지방 소도시의 작은 치킨집은 조류독감의 여파로 불황 중 불황을 거듭하고 있었고, 제 발로 뉴욕으로 떠난 딸에게 어떤 사정도 말할 수 없었다는 ���야기는 한국으로 돌아온지 몇 년이 지난 후에야 부모의 회상하는 듯한 넋두리와 함께 알게 되었다. 이십대 초반 뭉게구름에 기거했던 짧은 그 시절이 지나고, 서울에서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졸업 전시를 준비하던 자취생 신분의 나는 베이글을 사 먹을 때마다 종종 아이린을 떠올리곤 했는데, 이후 서울 어느 카페에서도 그 차 안에서 건네받아 베어물었던 연어 베이글보다 맛있는 곳은 없었다.
아이린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남편과 나누어 먹을 베이글을 최대한 사치스럽게 만들어 내면서 인생에 어떠한 지점에서 딱 한번 마주했던 여인에 대해 떠올리며 그때의 나를, 내 오늘을 비교한다. 그리고 ‘아이린의 베이글’ 맛은 다 잊을 만큼 맛있는 베이글을 베어 물며 조용히 픽, 하고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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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글 | 이소희
이름 없는 사진을 전달 받고, 사진을 바탕으로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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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어있는 집 2
비어있는 집
2. 찾아가지 않는 우편물들
한일월드컵으로 뜨거웠던 해, 학교가 끝나기가 무섭게 집에 가방을 던져 놓고는 여름 교복 차림 그대로 버스를 타고 한미전 응원을 하러 미군부대 앞으로 갔던 기억이 있는 걸 보면 아마 그 집은 중학교 2학년 말부터 고등학교 3학년 초까지 살았던 것이 맞을 것이다. 떨어지는 것은 쉽고 빨랐으며 오르기는 오래고 어려웠다. 그렇게 중력은 아빠의 사업에, 우리 집에 깊이 작용했다. 방과후 네다섯시의 애매한 시간에는 어린이집에 다니는 어린 동생과 나만 덩그러니 있는 집에 이따금 모르는 사람들이 찾아와 아빠의 이름을 부르며 벨을 누르거나 문을 두드리거나 했다. 그럴 때면 엄마가 일러둔대로 우리는 숨을 죽이고 가만히 있었다. 동생은 숨바꼭질이라도 하는 듯 킥킥거렸다. 킥킥대는 동생의 웃음소리가 밖으로 새어 나갈까봐 나는 판토마임을 하듯 무언의 과장된 몸짓으로 동생을 살금살금 안방으로 초대했다. 숨바꼭질 놀이로 초대받은 동생과 함께 이불을 뒤집어 쓰고 있다가 잠시 뒤 기척이 사그라들면 동생에게 우리팀이 이겼다는 말을 해주며 이불 밖으로 나왔다. 말과 달리 내게는 무��으로부터인지는 모르나 진것 같다는 기분이 짙게 남겨지는 날들이었다.
일요일이면 교회차량이 우리 집 앞에까지 데리러 오거나 데려다 주기도 했는데 언니, 오빠, 친구들이 함께 타고 있는 차에서 내려서 손을 흔들고 집으로 들어갈 때면 나는 반지하로 향하는 계단을 내려가지 않고 연립주택의 꼭대기층까지 걸어서 올라갔다가 차가 떠나고 나서야 다시 최종 목적지인 반지하 집으로 내려가곤 했다. 계단을 내려가며 거치는 연립주택 1층 우편함의 칸칸에는 언제나 찾아가지 않는 우편물로 가득했고 집 현관문을 열고 나면 일요일의 빈 집은 피곤함으로 가득해졌다.
사진 | 태재
글 | 이소희
이름 없는 사진을 전달 받고, 사진을 바탕으로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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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어있는 집 1
비어있는 집
1. 두 개의 그림액자
눈을 떠보니 우주처럼 넓고 컴컴한 곳에 내가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옆에 누운 엄마의 숨소리나 온기가 없다는 사실 때문에 나는 잠의 기운에 머무를 새도 없이 급하게 잠에서 현실로 빠져나왔다. 시계의 초침소리가 너무 또렷하게 들려왔다. 울음을 크게 터트린다해도 그것을 듣고 달려올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빠르게 암순응 상태가 되어가는 내 눈에서��� 눈물이 뚝뚝 하고 떨어져 내렸다. 다섯살인 내가 겪는 어둔 밤 캄캄한 빈집의 무게.
사실 그 집은 넓지 않았다. 서른 둘의 여자와 다섯살짜리 아이가 함께 살기 좋은 정도의 작은 원룸형 빌라였을 것이다. 어린 아이의 눈에 담기는 세계란 얼마나 광활한 것일까. 기억 속의 그 집은 너무 넓었다. 손이 닿지 않는 냉동실칸의 아이스크림을 엄마가 꺼내주는 장면. 최소한의 가구들. 종이인형이 담긴 상자. 엄마가 머리를 감겨주던 욕조없는 화장실의 크기는 얼만했던걸까. 엔틱소품상점에서 사다 놓았을 두개의 스틸액자에는 각각 훈데르트바서의 모조 복제본 작품들이 담겨있었다. 나는 작가의 이름을 몰랐지만 세포가 연결되어 있는 것 같은 칸칸의 추상적인 이미지를 보며 상상의 이야기들을 만들어내곤 했다. 혼자 자라는 내가 곧잘 하는 놀이방법이었다. 두 액자 중 하나는 거실 벽에 걸려 있고, 다른 하나는 나무서랍장 위에 놓여있었다. 서랍장 위에는 보얀 아기의 얼굴을 담은 다른 작은 액자들도 함께 놓여져 있었다. 사진 속 아기는 대체로 할머니 혹은 할아버지의 품에서 재롱을 부리고 있었고 아기의 얼굴은 나였다. 그 서랍장 위에 올려두었던 훈데르트바서의 작품은 위 아래가 뒤집힌 채로 액자화 되었다는 것을 나는 회화를 전공하고 나서야 알 수 있었다. 아마도 그것을 샀을 엄마는 훈데르트바서라는 이름을 모를 것이었다.
잠든 아이를 두고 깨지 않기를 바라며 야간 아르바이트를 나가던 엄마의 마음을 다섯살의 나는 읽지 못한다.
사진 | 태재
글 | 이소희
이름 없는 사진을 전달 받고, 사진을 바탕으로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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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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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쑥 뉴욕에서 지내던 작은 방의 풍경이 떠올랐다.
그곳에서의 내 두 번째 방이자 가장 외로웠고 또 사랑했던 공간.
방문을 열고 들어가면 왼편에 이층침대가 있고 오른편엔 붙박이 클로젯이, 그리고 정면으로 오래되고 묵직한 나무 서랍장이 놓여있고 서랍장 바로 옆으로는 바깥으로 향하는 또 하나의 문이 있다. 주말 자유 시간이 주어지면 청소를 다 하고 나서도 그 문을 열어 두는 것을 좋아 했다. 건물 내부와 연결된 방문과 달리, 그 작은 또 하나의 문을 열면 건물의 뒤뜰이 바로 펼쳐지는데 남자들 너댓명이 공놀이를 해도 될 정도로 넓었던 뒤뜰은 초록의 관리된 잔디로 덮여있고 뜰 한켠에는 창고를 겸하여 쓰던 런드리룸도 마련되어 있어, 초록의 잔디를 맨발로 밟으며 건조가 완료된 보송한 빨래 더미들을 잔뜩 안고 방으로 들어가는 순간을 좋아했다.
쉐어 하우스에 함께 살던 사람들 모두가 삼삼오오 메트로를 타고 멘해튼으로 넘어가고 나면, 방문을 활짝 열고 방 전체로 살랑거리며 들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나무 서랍장 위에 놓인 시그널이 간신히 잡히는 오래된 라디오의 주파수 다이얼을 돌려 그나마 가장 선명한 미국 컨트리 음악 채널을 틀어 두고 빨래를 접었다. 또 어떤 날에는 아침으로 나온 빵과 커피를 방으로 들고 와 문지방에 걸터앉아 맨발인 채로 잔디를 쓰다듬으며 햇살로 샤워를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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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엔 늘 그렇듯 한낮의 해가 우리 두사람 얼굴 전체에 내리고 있을 때 잠에서 깬다.
우리는 오랜만에 별다른 외출 없이 종일 집에 있기로 한다. 냉장고에 무가 있으니 무로 시원한 국물을 낸 참치 김치찌개를 끓여야지, 하고 생각해둔지 며칠이 됐다. 침대에서 부스스 일어나자마자, 남편에게 요 앞 슈퍼에 다녀오겠노라 말하고 코트만 걸치고 씻지도 않은 채 바깥으로 나갔다. 춥기만 할 줄 알았는데, 열두시 부근의 햇살은 이맘때의 청결한 공기와 더없이 근사하게 잘 어울린다.
동네 작은 슈퍼는 작정하고 이번에 김장김치를 담구어 팔 모양이다. 원래 있던 진열대 하나가 통으로 날아가고, 그 자리에 배추가 더미를 이루고 있다. 열 개들이 계란, 손두부 한모, 국물용 멸치를 집어 들었다. 다시마도 사려고 했지만 찾아도 없어 물었더니 얼마 전 어떤 아주머니가 다 쓸어 갔다고했다. 누군가 다 집어가도 재고 파악이나 관리 같은 것에 크게 괘념치 않다니. 본인들의 좌표를 어쩌면 너무 잘 알고 있는 것일지도 모를 주인 가족은 김장 속만 열심히 만들고 있었다.
바쁘게 일상을 살아내고 찾아온 주말. 아침 겸 점심을 차려 먹고 커피 까지 내려 마신 후 늘어지는 몸을 일으켜 남편은 설거지를, 나는 집안의 온갖 창문을 다 열어 놓고 청소기를 돌리기 시작한다. 바람이 집 전체를 통과하고 편한 옷을 입고 있는 내 몸과 머리칼을 통과한다. 나는 발가락을 한번 꼼지락거리고 설거지를 하고 있는 남편의 등을 뒤에서 안는다. 세탁기에서 세탁완료 알림 멜로디가 울린다.
그리고 가끔 생각한다.
내 인생에 분명히 존재했으나 이제는 조금 아득해져버린 어떤 장면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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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출구
40년 전엔 고등학교 강당이었다고 하는 관내 식당은 배식구 안쪽의 조리공간과 식사 테이블만 들어내면 당장에라도 다시 강당으로 사용해도 될 정도로 배식의 기능만 겨우 갖추고 있다. 하기야, 인테리어랄 것도 굳이 필요 없는 공간.
철근 콘크리트로 지어진 건물의 외벽은 기본적인 하얀색을 띠고 있었고, 그 하얀색은 시간만큼 바래 있었으며 바닥은 어린 시절 숙제로 서툴게 오려 붙��던 색종이 모자이크처럼 크고 작은 마름모꼴의 점들이 알알이 박혀있었다. 그러나 어린 시절의 그것과 달리 채도를 모조리 잃은. 일명 도끼다시, 그저 차가운 테라조 타일 바닥이었다. 근대식 병원의 건축재료와 다르지 않은 당시로선 최신식이었을 것이다.
강당이었음을 증명하듯 높고 휑한 층고에 참새 한 마리가 날아다니고 있었다. 열려있는 유리창 혹은 사람들이 드나드는 출입구로 들어왔을 것이다. 새는 천장을 빙글빙글 돌거나, 닫혀있는 유리창 근처에 몸을 부딪쳐 보기도 하며 넓고 휑한 식당 안을 계속 날아다녔다. 출입구도 유리창도 모두 그대로 열려있었지만 나가는 곳을 찾지 못하고.
도서관 식당에 앉아 혼자 밥을 먹는 사람들을 한명 한명 한참을 바라보았다.
평일. 오후 두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고, 점심시간이 지났음에도 식당에는 족히 열댓 명은 되어 보이는 사람들이 대부분 각자의 식탁에 홀로 앉아 있었다. 강당 전체가 바둑판이라면 바둑알들끼리는 모두 적당한 거리를 두고 분포되어 있었다. 다만 배식구 위쪽으로 배식 번호표의 숫자를 띄우는 작은 전광판이 설치되어 있었으므로 사람들은 모두 교탁을 바라보며 앉아있는 학생들처럼 앞을 향해 앉아있었고, 배식구로부터 먼 뒤쪽 테이블에 마주 앉은 한 커플과 나만이 반대편을 향해 앉아있었다. 자연스레 관찰자가 될 수밖에 없는 자리.
사람들은 대부분 처음엔 식당을 날아다니는 새에게 시선을 두다가도 조금 있으면 으레 식당에 한 두마리 날아다니는 파리를 대하듯 시선을 거두고 식사를 했다.
누가 싸주었는지 혼자 챙겨왔는지 모를 도시락을 먹는 중년의 남자, 고시공부를 하는 듯 보이는 편한 반바지 차림의 사람들 몇몇, 유행과 거리가 멀어 보이는 수수한 교복 차림에 이어폰을 낀 여고생, 늦은 점심을 먹는지 오로지 급식판에만 시선을 두고 있는 남색 한전 작업복의 젊은 남자, 어쩌면 조용히 유명한 소설가일지 모르는 여자는 식사를 마친 후 주변을 정리하고 다시 앉아 여러 권의 책을 읽어가며 노트를 하고 있었고, 머리가 하얗게 세었지만 단정한 양복 차림의 노신사는 가끔 신문을 한장한장 넘겨가며 천천히 오천 오백원짜리 돈까스 정식을 먹고 있다.
절반쯤 먹다 만 식판을 앞에 두고 사람들이 이런 규모의 공간에 이렇게나 모여있는데 배경음악이 없는 곳도 흔치 않구나 하고 생각한다. 오직 배식구 안쪽의 일하는 소리와 사람들 각자의 식판과 수저가 부딪히며 나는 소리, 발을 옮기는 소리, 두 대의 대형 에어컨이 돌아가는 소리, 간간히 퇴식구 쪽에 식판을 놓으며 잘 먹었습니다- 하는 말소리 등이 각자의 리듬대로 매일 그곳에 쌓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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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화를 부수고 현실을 똑바로 아주 똑바로 직시하는 일. 공동체가 함께 정확히 절망한 후에 각자가 희망이라는 단어를 규명해 나가야겠지. 갈수록 막연한 것이 싫어진다. 믿음이란 단어에 대해 정말 깊이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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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근길에 힐러리 클린턴의 연설을 듣다가 여성들, 특히 젊은 여성에게 당부하는 격려의 메세지 - 이번 투표의 결과가 고통스럽겠지만, 당신의 가치를 의심하지 말고 당신이 믿는 바를 고수하며 사십시오 - 를 보고 왠지 위로를 받는다. 왜 힐러리는 꼭 집어 젊은 여성에게 당부했으며, 왜 자국 여성이 아닌 나와 수많은 여성이 감명받는가. 나는 (남성이 선호하는)핑크색 유두를 만들기 위해 ��백크림을 바르라는 광고가 천연덕스럽게 전시되며, 성형외과의가 여성대통령의 순방길에 따라다니는. 이제는 압구정의 광고판들이 너무 당연해, 공기와 다를 바 없이 느끼기까지 하고, 아이를 낳고 기르는 주변 엄마들이 말하는 육아의 현실적인 체감온도를 듣고 나면 모든 것이 두려워지는. 우리가 이러려고 여성으로 사는가 자괴감이 드는. 그런 시대와 나라에 산다. 더이상 멍청함을 비웃을 수 없고, 멍청함의 폭력을 두려워해야한다는 어떤 퇴행을 보고 듣고 느끼는 수치감. 특히나 어떤면에서 젠더-레이시즘으로 읽히는 이번 투표결과는 여성들에게는 '여태 그래왔고 앞으론 더 그럴 것 같은 공포'로 다가오는 것이다. 이 공포가 입체적으로 이해되면 그나마 다행. 고맙게도 나의 남자친구는 외모가 잣대가 되는 것에 반대하는 사람이지만 그러나 문득문득 직면하게 되는 내 안의 내면화된 잘못된 가치는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우리는 늘 품평의 대상이 되어 왔기에. 많은 여성이 여전히 여혐내면화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미미박스 같은 업체는 계속 유두미백크림 따위를 팔며 돈을 벌겠지. 예전엔 정신승리를 비웃었는데, 정신에서 승리하지 않으면 붙잡을 것이 없구나. 당장에 오늘을 똑바로 직시하고 살아내야지. 정말 피로감이 들지만 그래도 언젠간 유리천장 깨지길 바라며 똑바로 살아내야지. *투표결과를 젠더이슈만으로 보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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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읽고 쓰는 것에 관해 얘기를 나누면 서로 행복해지는 관계. 내겐 두명 정도 그런 의미 안에서 신뢰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예전에 한유주를 추천했었다. 오늘 어떤 사람의 서재에 꽂힌 Axt에서 한유주의 글을 만났다. 개인적으로 배수아 보다 더 내 취향에 가깝다. 몇년 전엔 경희궁길 근처 카페 테라스에 앉아, 그녀가 "언니한테만 주는거에요." 하고 미공개 시들을 한껏 프린트 해와 건네 받은 시를 읽다가 경탄했었다. 그날 아마 박준 시인이 이렇게까지 유명해지기 훨씬 전이었는데 그녀의 노트에서 박준의 시를 필사했던 것들을 본 기억도 있다. 조만간 담배를 세상 섹시하게 피는 그녀를 작업실에 초대해 와인이나 한잔 하자고 꼬셔야지. 공간이 생기니 이런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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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unt your blessings. - 생이 막연함은 너무 당연한 일인데, 너무 앞서서 미리 고민하다가 자주 체했다. 생각이란 났던 길로 또 가려는 습성이 있다는데- 매일밤 오늘을 안도하며 잠들어야지. 순전한 믿음에 관해 생각��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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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Brad Mehldau 곡이 흘러나온다. 크게 난 창은 언제나 소유욕을 일으킨다. 한나절 앉아, 전세를 내야지. 언제나 나를 참여하게 하는 사람, 명선언니로부터 의미있는 부탁을 받았다. 송연이의 첫생리를 축하하기 위한 미래의 편지지. 한없이 글도 쓰고 싶고 음악에 잠기고 싶기도 하고 비가 딱 이 정도만큼 종일 왔으면 좋겠네. - God only knows - Brad Mehldau https://youtu.be/MnwNr97VmN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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