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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somnambule-blog · 7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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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p. 죽음 뒤의 세계란 어떤 색채일지. 그때도 우리는 웃을 수 있는지. 그 세계에서도 사람들이 달리기를 할지. 뜀뛰기는? 그곳에서도 우리는 부드러움을 이해하고 지금처럼 각자 다른 목소리를 낼 수 있는지. 죽음 뒤의 세계에도 달콤한 것들과 신 것들 혹은 푸른 색채를 띤 것들이 존재하는지. 음지식물과 양치류 같은 것이, 돌과 새가, 또한 대화나 내일과 어둠이라는 개념이 남아 있는지. 그곳에도 시간이 흐르고 있을지. 그렇다면 그곳에서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기후가 변해갈지. 여름에서 겨울로 겨울에서 다시 봄으로.
115p. 죽음은 눈에 보이지는 않아도 언제나 우리 머리 위로 일정하게 떨어져 내려 삶의 윤곽을 뒤덮어버리는 선뜩한 비늘들인 것이었다.
― 『위안의 서』, 박영, 은행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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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somnambule-blog · 7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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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남은 것은 시간 뿐이었다. 그런데 이 시간, 그것을 나는 이전의 그 어느 때보다 더 내밀하게 알아가고 있었다. 그것은 더 이상 예전에 내가 알던 시간, 일로 사랑으로 온갖 노력들로 탈바꿈된 그런 시간, 내가 하는 일들 뒤에 살그머니 숨은채 얌전히 있어서 그저 무심코 받아들였던 그런 시간이 아니었다. 이제 그것은 옷을 다 벗고, 그 자체로, 자신 본래의 진짜 모습으로 내게 오고 있었고, 나로 하여금 그것을 자신의 진정한 이름으로 부르게 만들어 (이제 나는 순수한 시간, 순수하게 텅 빈 시간을 살고 있었으므로), 내가 단 한 순간도 그것을 망각하지 않으며 계속해서 그것을 생각하고 끊임없이 그 무게를 느끼도록 하고 있었다. 음악이 들릴 때 우리는 그것이 시간의 한 양태라는 것을 잊은 채 멜로디를 듣는다. 오케스트라가 소리를 내지 않게 되면 우리는 그때 시간을 듣게 된다. 시간 그 자체를. 나는 휴지(休止)를 살고 있었다.
ㅡ 밀란 쿤데라, 농담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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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somnambule-blog · 7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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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살엔 흔적이 없다
누워있는 네 눈을 들여다보면서 가만히 네 살에 손톱자국을 남긴다 거기 읽을 수 없는 글자를 써보거나, 하늘에 없는 별자리를 그려보거나 네 살엔 흔적이 없다 너는 벌써 받아 숨긴 것이다 가만히 손톱으로 네 살을 누르면서 몇번의 겨울이 지나고 또 몇점 눈꽃 송이 네 눈으로 내려앉고
ㅡ 이성복,「아, 입이 없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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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somnambule-blog · 7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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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ebesleid" Kreisler. Rachmaninoff
_ Daniel Ber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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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somnambule-blog · 7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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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종교를 갖고 계시나요?
카버_아니요. 하지만 기적이나 부활의 가능성은 믿는답니다. 거기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어요. 매일 아침 일어날 때마다 깨어나는 것이 기뻐요. 그래서 일찍 일어나는 것을 좋아하지요. 술을 마시던 시절에는 정오 무렵까지 잠을 잤고 온몸을 떨면서 일어났지요.
- 작가란 무엇인가 1, 레이몬드 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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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somnambule-blog · 7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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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House Made of Windo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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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somnambule-blog · 7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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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아기에 대해 내 딸도 '그 아기'라고 마치 실제 인물처럼 말했지만, 세상에선 물론 하나의 인간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 아기가 있었던 것처럼 두고두고 이야기를 하는 것도 시마무라 부부 뿐이리라. 그 아기가 삶을 가진 사람이었는지, 나는 뭐라고 말할 수 없다. 그 아기는 모태 안에 있었을 뿐이다. 이 세상의 빛에 닿지 않았다. 마음이라는 것을 갖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와 오십 보 백 보일 테고, 어쩌면 가장 순수하고 행복한 삶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살려고 애쓰는 무언가가 그 안에 깃들어 있었다.
ㅡ 232p, <산다화> 가와바타 야스나리. 손바닥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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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somnambule-blog · 7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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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 Old Man Mourning. Pencil. 1882. VAN GOGH Vinc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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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somnambule-blog · 7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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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rth of a Boo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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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somnambule-blog · 7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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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으스러지게 설움에 몸을 태우는 것은 내가 바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그 으스러진 설움의 풍경마저 싫어진다. 나는 너무나 자주 설움과 입을 맞추었기 때문에 가을바람에 늙어가는 거미처럼 몸이 까맣게 타버렸다.
- 거미, 김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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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somnambule-blog · 7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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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도대체 어디까지 달려가야 하는 것일까. 아니 정말로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도대체 우리는 어디로부터 와야만 하는 것일까. ㅡ 북쪽거실,  배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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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somnambule-blog · 7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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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 Betty Blue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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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somnambule-blog · 7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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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 Isabelle Hupert, Message Personn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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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somnambule-blog · 7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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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bbie Carlo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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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somnambule-blog · 7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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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lbao Song - Woody Allen's ANOTHER WOMAN (1988) - Bernie Leight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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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somnambule-blog · 7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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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 Fine Day _ Nataile Mercha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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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somnambule-blog · 7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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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모를 아픔을 오래 참다 못해 처음으로 이 곳을 찾아왔다. 그러나 나의 늙은 의사는 젊은이의 병을 모른다. 나한테는 병이 없다고 한다. 이 지나친 시련, 이 지나친 피로, 나는 성내서는 안된다.
_ '병원' 中. 윤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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