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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선언
선언은 단절적인 이벤트가 아니다. 하나의 선언문이 등장하기까지는 억압과 폭력에 대한 각성이, 변화에 대한 열망이, 열정적인 언쟁과 날카로운 토론이, 서로 동지임을 확인하는 뜨거운 순간들이 존재한다. 선언문의 의미는 선포되는 순간, 그 빛나는 순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선언은 사건의 연쇄 속에서 등장한다.
물론 선언은 선포로 마무리되는 것 역시 아니다. 이미 운동의 주체가 된 자들이 선언을 준비하기도 하지만, 그 선언을 준비하고 선포하고 실천하는 과정에서 주체가 되는 자들도 존재한다. 그것이 바로 선언의 확장성이며, 선언의 마술적 힘이다. (...) 각각의 선언문에 ���아 있는 래디컬 페미니스트들의 사유와 저항은 사라진 유물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 목소리 안에서 피와 살이 되어 박도하고 있다. 그리하여 <페미니즘 선언>을 읽는 것은 화려했던 과거를 회고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그보다는 우리는 고립된 섬이 아니라는 것, 종적 횡적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는 방대한 네트워크라는 것을 확인시켜준다. 이런 의미에서 선언의 독서는 과거를 돌아보고, 현재를 점검하며, 미래를 그릴 수 있는 상상력을 제공해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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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
頭が有れば要は簡単に片付いて 아타마가 아레바 카나메와 칸탄니 카타즈이테 머리가 있다면 용건을 간단히 정리해줘요
子供と呼べば汚されないで済むのさ 코도모토 요베바 요고사레나이데 스무노사 어린애라 부르면 더럽혀지지 않고 끝나겠지요 僕に少しの光合成 君に似合ふ遺伝子を 보쿠니 스코시노 코-고-세이, 키미니 니아후 이덴시오 내게 조금의 광합성, 그대에게 어울리는 유전자를
ヒトは仕様の無いことが好きなのだろう 히토와 시요-노 나이 코토가 스키나노다로- 사람은 어쩔 수 없는 것이 좋은가봐요
「嘘ヲ吐クナヨ」 「우소오 츠쿠나요」 「거짓말 하지 말아요」 泣いたら何だって 나이타라 난닷테 울면 뭐든지
此の白い手に入りさうで 코노 시로이 테니 하이리 소-데 이 새하얀 손에 들어올 것만 같아서
答へなら純粋だ 코타에나라 쥰스이다 대답이라면 순수해요 惹かれ合つてゐる 히카레 앗테이루 끌리고 있어요 こんな風に君を愛する 多分 콘나 후-니 키미오 아이스루, 타분 이런 식으로 그대를 사랑해요, 아마 幾つに成れば淋しさや恐怖は消へ得る 이쿠츠니 나레바 사비시사야 쿄-후와 키에루 몇 살이 되면 외로움이나 공포가 사라지는 건가요
子供を持てばやがて苦痛も失せるのか 코도모오 모테바 야가테 쿠츠-모 우세루노카 아이를 가지면 결국엔 고통도 사라지는 건가요 君が慕ふ思春期と 僕が用ゐる反抗期 키미가 시타후 시슌키토, 보쿠가 모치루 한코-기 그대가 그리워하는 사춘기와, 내가 이용하는 반항기
最早語呂を合はすことが 모하야 고로오 아와스 코토가 이미 어조를 맞추는 것이 好きなのだらう 스키난다로- 좋은거겠죠
「嘘ヲ吐クナヨ」 「우소오 츠쿠나요」 「거짓말 하지 말아요」 泣いたらどんな法も覆して願望通り 나이타라 돈나 호우모 쿠츠가에시테 간보-도-리 울면 그 어떤 법도 뒤집어서 원하는대로 答へなら残忍だ 騙し合つてゐる 코타에나라 잔닌다, 다마시앗테이루 대답이라면 잔인해요, 속이고 있어요
こんな風に君は愛する 多分 콘나 후-니 키미와 아이스루 타분 이런 식으로 그대는 사랑하죠, 아마 「嘘ヲ吐クナヨ」 「우소오 츠쿠나요」 「거짓말 하지 말아요」
もう是以上知つて 모- 코레 이죠 싯테 이제 이 이상 알고
眠らない夜と心中未遂 네무레나이 요토 신쥬-미스이 잠들 수 없는 밤과 자살미수 思ひ出に酸化した此の含嗽薬 오모이데니 산카시타 코노 우가이야쿠 추억으로 산화한 이 치약
迷彩(カムフラーヂュ) 카무후라쥬 위장도색 無い物 頂戴なんて 나이 모노, 쵸-다이 난테 없는 걸 달라니
憤つてゐる幼児同様 무즈캇테이루 요-지토-요- 보채고 있어요 어린아이처럼
お母様 混紡の僕を 오카-사마 콘보-노 보쿠오 어머니 이것저것 섞인 저를 恥ぢてゐらつしやいますか 하지테이랏샤이마스카 부끄러워 하고 계신가요
君が愛した 僕 키미가 아이시타 보쿠 그대가 사랑한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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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으로 사랑을 이겨내기
내 자신을 부정하기 위해 보냈던 수많은 밤들, 아찔했던 순간들, 서랍 속에 꽁꽁 감춰두었던 기억들, 내쫓고 싶을 때마다 다시 나타나 죽을 기세로 괴롭히던 그 모든 기억들, 삭은 밧줄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던 나의 삶. 나조차도 모른체하며 살아가려고 안간힘을 쓰다보니 인정하지 못하게 되었다. 입 밖으로 꺼내는 순간, 마음에서 슬며시 열어보려 하는 순간, 모든게 다 무너질줄만 알았다.
사랑. 어떤 댓가도 바라지 않고 그저 곁에만 있어주기를 바랬던 사랑이었을 뿐이다. 그것을 이용한 이는 언젠간 자신을 타자화하며 ���닫게 될 것이다. 혹여 죽을 때까지 모른다하더라도 나는 그 누구도 원망하지 않겠다. 원망과 증오와 사람들에 대한 불신과 끝없는 죄책감은 오늘부터 다시 하나하나 꺼내보고 인정할 것이다. 합리화하지 말자는 말로 나에게 무차별폭행을 가하지 않겠다. 합리화가 아닌, 상처를 인정하고 바라보는 것이 7년 전 그 날부터 지금까지 가장 필요한 시간이었음을 인정하고, 사랑하는 이에게 토로하고, 이제는 함께 울어주는 이들에게 내 온마음, 온몸을 내던져 사랑할 것이다.
사랑으로 얻은 상처, 사랑으로 이겨낼 것이다. 언젠가 내게 꼭 일어나야만 했던 일이었다고 인정하고, 시인하는 날이 올 것을 굳게 믿는다. 가슴 시리도록 그 믿음 붙잡는다.
아무 일도 아니었어. 잘 이겨내준 너에게 고마워. 불안 속에 사랑이 있지 않다는것을 이제 알게 되었어. 자기파멸적인 사랑은 이제 내게 없어. 진짜 사랑만이 내 앞에 놓여있고 나는 마음껏 누리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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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활성 교수님 인터뷰 축약
대중의 상대어는 '소수'이지만, 소수의 상대어로 '대중'을 꼽는 경우는 드물다. 소수의 상대어는 '일반'으로 본다.
대중은 주체가 아니고 수행자이다. "대중적이야" 라고 흔히들 말하는 사람은 자신은 그 대중에 속해있지 않고, 주체라고 착각한다.
한국에는 문화가 없다. 대중문화에서 대중은 객체이고 소비자여야 한다. 반면에 미국은 미디어를 통해 자신들의 문화를 억지스러울 정도로 이어나가려고 애쓴다. 오래되고, 흘러왔고, 여전히 살아있는, 역사성을 지키기 위해 레전드로 남겨두지 않고 끊임없이 소비하는 문화가 존재한다.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서도 끊임없이 시장으로 초대하며 말이다.
한국에 유일하게 존재하는 문화가 있다면 바로 군사문화이다. 권력의 문화, 주먹의 문화. 문화는 정치변혁과 함께 가야만 한다.
74년도 이후로 대중이 생산자이며 소비자였던 문화는 말살되고, 매너리즘 문화의 시대가 열린다. 트렌드와 문화는 정반대의 의미이다. 계승되지 않는 것이 트렌드의 속성이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74년도 이후부터 지금까지 트렌드의 문화가 계속해서 이어져오고 있다. 우리는 퇴행하고 있다. 존경받는 뮤지션이라는 개념이 사라졌다.
우리에게 한줄기 빛이 있다면 그것을 소규모운동, 소집단운동이라고 말하겠다. 제도권 안에서 소집단 운동의 성패는 규모도, 영향력도, 재정규모도, 맨파워도 아닌 바로 지속성에 달려있다. "2000년도에 누구누구를 중심으로 벌어졌던 운동은 2010년도에 이르러 4000명이 함께 하는 거대한 운동으로 발전했다. 그리고 2016년 활동은 종결되었다." 가 아닌 "2000년도에 누구누구를 중심으로 벌어졌던 운동은 2010년도에 이르러 4000명이 함께 하는 거대한 운동이 되었고, 그리고 오늘 2017년에는 소속된 인원이 2명이다. 그리고 활동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가 되어야지 그 소집단운동은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상품' 무엇이 상품이지 구분할 수 없는 세계가 되었고, '실용'의 본래 의미인 쓸모라는 말은 완전히 뒤틀려져버렸다. 이제 우리에게 쓸모란, 사고 팔리는 것으로 이해된다. 지배이념의 그늘 아래 있을 때 반성적으로 알 수가 없게 된다. 감동과 슬픔과 고독이 사고 팔리는 시대가 와버린 것이다.
실용음악. 쓸모를 가지고 목적적으로 만드는 음악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쳐보자. 그렇다면 그 외의 쓸모는 왜 쓸모로 인정하지 않는것인가? 우리에게는 자율음악이 필요하다. 스스로 음악이 음악 내적인 것을 규명하는 자율음악이 필요한 시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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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로서의 삶 (2)
동생은 내 앞에 있었지만, 빅 플랙풋 강둑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구 위에, 모든 법칙에서 자유로이 마치 예술작품처럼 전시되어 있었다. (...) 그러나 나는 또한 삶은 예술작품이 아니라는 사실을, 그리고 그 순간은 지속될 수 없다는 사실을 확실하고 명백하게 알아버렸다.
그래서 우리는 예술작품과 비슷해질 수 있고 자율성과 완전성을 위해 분투하지만, 그 유사성은 항상 잠정적이다. 그러므로 예술로서의 삶은 의미와 자율성의 부재를 인식하고 이것들에 응답하는 자기들을 창조하는 일에 끊임없이 그리고 전략적으로 헌신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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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로서의 삶 (1)
삶을 고요하게 흥분시키는 것들 중 하나는 너 자신에게서 잠시 떨어져 서서 너 자신이 아름다운 어떤 것의 창조자가 되는 것을 차분하게 살펴보는 일이다. 그것이 단지 흩날리는 재일지라도 말이다.
니체가 말하는 이상적인 유형은 긍정적이며 정의롭고 해방된 삶을 창조하기 위해 학문과 예술을 명랑하게 결합하는 사람이다. 여기서 학문은 사유의 한 형태로서 저항적이고 해체적인 것으로 그리고 대중의 도덕과 전통의 제한들에서 우리를 해방시키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리고 예술은 우리에게 과거와 미래 그리고 현재에 대한 긍정을 가능하게 하는 가상을 신중하게 사용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러므로 예술적인 삶은 이상적인 자기(또는 자기들)를 창조하기 위해 학문과 예술 사이에서, 관념과 긍정 사이에서 "춤추는"것으로 이해된다.
예술적인 삶은 특정한 방식으로 "사유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삶에 대한 보다 정의롭고 즐거운 형식들을 창조하고자 하는 것이다
예술로서의 삶의 두 차원은 예술, 사유 그리고 행동 사이의 관계를 끊임없이 강화함으로써 작동하며, 따라서 그것들은 그 자체로 통일된 예술적인 존재방식으로 결합하게 된다.
예술적인 삶은 저항과 긍정, 부정과 인정의 행동들이 체험된 실존의 다양한 양상들을 통하여 구체화되는 것이다. 예술적인 삶을 창조하는 일은 신체, 마음, 대지, 타자들을 보호하고 신성화하는 동시에 그것들을 실현하기 위한 공간을 만드는 매일의 신철들에 주의를 기울이는 능력에 달려있다.
예술로서의 삶은 과거에 기반을 두면서도 미래에 충실하며 현재에 대해 긍정하는, 삶과 사유와 봄의 방식으로 가장 바람직하게 이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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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예술가의 초상
내가 무엇을 할 것이며 무엇을 할 것이며 무엇을 하지 않을 것인지를 말해줄게. 내가 더이상 믿지 않게 된 것은, 그것이 나의 가정이든, 나의 조국이든, 나의 교회든, 결코 섬기지 않겠어. 그리고 나는 삶이나 예술의 어떤 방식으로든 나 자신을 가능한 한 자유로이, 가능한 한 전적으로 표현하고자 노력할 것이며, 나 자신을 옹호하기 위해서 내가 스스로 허용할 수 있는 유일한 무기인 침묵, 망명 및 간계를 사용하도록 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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錯乱
어디에서 흘러온 괴로움일까? 나는 무엇에 미쳐가고 있는걸까? 두려움은 어디에서 기회를 노리고 있을까? 어째서일까. 시간에 의해 모든 것이 녹이 슬어버리는 것. 시간은 왜 간직해주지 않는걸까. 왜 나는 몹쓸 것을 궁금해하는가? 그 몹쓸 것이란 무슨 기준으로 정의 내려진걸까. 괴롭다. 괴로움이 어디에서 흘러 나오고 있는지 내가 알아야만 하는걸까? 안다면, 막을 수 있는가?
즐거움을 쫓아 살다보면 그것이 진짜 즐거움이었는지 의심하게 되는 날이 올까. 왜 나는 모든 것을 놓쳐버리는걸까. 노래를 듣는 것도 무엇 때문에 듣는건지 되묻게 되는건 왜일까. 내가 하는 모든 행동들, 생각들, 나의 조화로웠던 순간들이 어디서부터 균열을 일으키고 있었던건지 알 수 없다.
모두 나의 몹쓸 호기심때문. 모두 나의 부덕함때문. 괴로움도 내가 찾아낸 것. 사랑도 내가 만들어 낸 것.
나는 여전히 내 안에 갇혀있다. 아니 내 안에 나를 가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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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옳았다는 것을 증명해보이기 위해 발버둥 친 것이 아니었다. 우리 모두 흠칫 하게 만든 말에 대해 눈 감고 귀 막아버리는 것은 우리 더 이상 하지 말기로 하자는 약속을 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예수님을 모르는 이들에게 예수님을 알려고 애 쓰는 자들의 넓음을 보여주고 싶었다. 어떻게 해서든 내뱉어버린 말을 철회 하려 애쓰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그런 넓음을 보여주기를 기대했다. 결국에 돌아오는 것은 질문한 자에게 이목이, 목소리를 낸 자에게 질서를 깨트렸다는 질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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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자고 자는 니가 행여나 깰까봐 나는 살금살금. 원두도 덩달아 조심스러운 몸짓으로 나와 장난치며 논다. 너는 자고 나는 내 할일을 하고, 책을 읽고. 언제까지나 평화를 찾으며 지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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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별난 사람
무심코 보냈던 링크 하나가 이렇게 크고 드센 파장을 낳을줄이야. 그 친구와 거의 이틀 동안은 똑같은 주제로 계속 이야기 나눴다. 나는 결국 어떤 합의점도 찾지 못한 채 끝났다고 느껴지는데 모르겠다.. 과연 내가 잘 한건지. 나만 이렇게 떠들어서 뭐해, 본인들은 그러려니 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수두룩한데. 차별이 차별인줄도 모르고 살아가는 이들. 그래서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유별나지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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