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묶인 개
묶인 개의 심정을 아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 사람을 사랑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묶인 개 라는건 존재 하지 않는다. 이미 동네의 모든 개가 묶인 채이니, '묶여' 있다. 라는 사실을 환기시킬 일이 없다. 누구도 개가 묶여 있다는 비극에 통감하지 않는다. 묶인 개의 심정을 아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두 팔로 그를 안고 말할 것이다. 동네에 모든 개들을 풀러 가요, 모두 다, 풀어줍시다. 내 생의 최초의 묶인 개는 한 쪽 눈이 멍이 든 것 처럼 얼굴의 일부만 까만 털로 뒤덮힌 다리가 짧은 강아지였다. 또비 인지 뚜비인지 하는 이름을 가졌었는데 이름으로 추측해보았을땐 수컷이었던것 같다. 자전거와 오토바이가 세워져 있던 광과 화단 사이 작은 개 집에서 혼자 살���는데, 또비에 대한 나의 직접적인 기억은 거의 없지만, 어른들의 기억속에서 나와 또비의 관계는 용역깡패와 철거민 같았다. 너른 앞마당에 풀어놓은 아이가 개집에 들어가 집주인을 내좇다 못해 귀를 물어 뜯어 못살게 구는데도, 착한 짐승은 어린 인간을 알아보기라도 한 듯이 단 한번의 일격도 없이 소리를 죽이며 받아주고만 있었다고 했다. 어른들은 또비가 유난히 순해서 날 물지 않은거라고 기억하고 있지만, 난 또비가 사람을 잘 따르는 온순한 아이라서가 아니라 스스로가 갈 곳이 없다는걸 잘 알고 있어서 였던 것 같았다. 메인 몸이 갈 수 있는 곳이라곤 집 안과 집 앞이 전부인데다가, 자신의 귀를 뜯고 있는 이 작은 인간을 물었다간 그보다 더 큰 인간에게 더 큰 매를 맞을지도 모른다는 걸 본능적으로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참았던게 아닐까. 이미 이 세상에 없을 개 한마리에 마음이 처연해졌다. 또비가 사라진 그 어느 날조차도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성장에 온 몸이 바빴을 시간들이 애석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또비는 어떻게 됐어? / 할아버지가 누구 갖다 줬지 뭐. 개장수 줬다더나.. 그날 막내고모가 얼마나 울었는지.. 할아버지가 민망해서 혼났어. 묶인 개의 결말은 항상 같다. 이름도 그다지 중요치 않고, 내내 묶여 있을 그 심정 또한 묵과 된다. 묶인 개는 그저 묶여 있어야 하는 개 일 뿐이니까. 떠돌 수 없으니 가는 곳 조차도 정해져 버린다. 좋은 곳으로 가렴, 말 뿐인 넋두리가 아무 소용이 없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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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병후 폐쇄적인 생��을 3년째 유지하고 있다. 강아지 엄마 아빠 동생 외에 부딪칠 사람이 거의 없다. 한달에 한번 만나는 주치의나 채혈해주는 사람, 외래 간호사, 병원셔틀기사아저씨, 병원주차요원, 고속버스기사, 택시기사, 슈퍼아저씨, 까페알바생 그러고보니 다 전문직이네. 나를 제외 하곤 다 직업이 있다 아 우리 강아지는 직업이 없구나. 아니 직업 있네 나를 행복하게 해줌. 친구들도 가끔 만나는데 게네들은 바쁘다. 백만원 쪼금 버느라. 그래도 행복해 보인다. 뭐라도 하고 있고 그게 자기들이 원하던 거니까. 그래서 자주 못만나도 게네들이 잘 지내니 뿌듯하다. 난 그냥 이러고 살 팔자라고 생각하면 맘 편해. 그래도 가끔은 내가 건강했더라면 게네들처럼 밖에서 일하고 있진 않았을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근데 구체적으로 떠오르는건 없다. 나는 이십대의 뒷부분을 허공으로 날려버린 기분이라서 지금 그 시간들을 메우고 있는 내 또래들이 멀게만 느껴진다. 나같은 약자를(할머니나 아이, 강아지?) 보면 마음이 편해지는데, 그냥 젊음 하나만으로 아름답고 자신있어보이는 내 또래를 마주치면 긴장하게 된다. 왜그런진 모르겠지만. 아마 병과 함께 보내고 있는 내 젊음이 초라하다고 느껴서 인지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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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1
나는 소멸해버리고 싶은 작은 점 같다. 무기력과 싸우는 것은 힘들다.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지 모르겠다. 사는것이 아무의미도 느껴지지 않는다. 어떤 자극도 없다. 어젯밤엔 5년전에 헤어진 사람과 통화를 했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 앤 자기 이야기만 하고 있었다. 나와 아무 상관 없는 이야기들. 세상엔 나와 상관 없는 이야기들만 존재한다. 어떤 노력도 하고 싶지 않고 아무생각도 들지 않는다. 내가 무얼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이렇게 낭비 하고 있는게 맞는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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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23
그는 성인이라기보다는 방치된 어린아이 같았다. 나는 사람들이 나이보다 훨씬 어려 보이는 경우가 아주 흔한 것은 책임질 일이 없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조지오웰)
내 나이는 사회적으로 가장 활발한 행동을 할 나이인데, 내가 거의 존재하고 있는 곳은 공허함과 한가로움으로 가득찬 작은 집안이다. 가끔 집 밖을 벗어나 일상과 어긋난 곳에서 처음 만난 사람에게 굳이 내 소개를 해야 할 기회가 생기면, 나는 우선 내 나이를 말해야 된다는 걱정이 앞선다. 마치, 아직 공식 암기가 덜 된 수학문제를 풀어야 하는 학생처럼 말이다. 사회에서 자기소개란 자신의 이름과 얼굴에서 묻어나오는 연령의 추상적인 느낌을 숫자로 말해주는 것인데, 나는 매번 얼굴이 말해주는 추상적인 나이와 숫자가 맞지 않음에 사람들에게 적지 않은 놀람을 준다. 나는 그래서 자기소개라는 간단한 난관도 너무 싫다. 그 다음부터는 내가 얼굴과 나이가 맞지 않아 보인다는 소리를 열번도 더 듣게 되기 때문이다. 나는 내 나이의 사회성을 잃었고, 그래서 내 나이를 밝히게 되면 어째서 지금 이 자리에 있는지에 대해 변명아닌 변명을 해야한다. 나의 사정을 다 이해 시킬 이유는 없지만, 누가 들어도 내 나이는 이제 스스로를 가눌만한 묵직함이 느껴지는 나이이기때문이다. 하지만 내 얼굴에선 그런 묵직한 기운을 느낄수가 없다. 삶의 고달픔에 시달린 주름도 없고, 일상의 피로로 내려 앉은 좁쌀같은 뾰루지도 없다. 내 얼굴은 마치 이제 막 빨래를 끝내고 햇빛에 걸어놓은 하얀 수건같이 때가 없다. 허옇고 말간 얼굴을 들고 내 나이를 말하는 일이 너무 부끄럽다. 나이 같이 안 보이시네요. 라는 말은 이 나이를 ���고서도 아무 걱정 없이 잘 사시나 보네요. 처럼 들린다. 네, 전 먹고 살 걱정이 없습니다. 하고 대답할수도 있을 것 같다. 조지오웰을 문장 처럼 나는 정말 방치된 어린아이와 같은 삶을 살고 있는 것 같다. 먹고 사는 문제에 걱정이 없고, 나는 당장 책임질 일이 없다. 나는 세탁기에서 꺼낸 빨래처럼 살았다. 한치의 때도 묻으면 안되는 상황에 놓여 있어 항상 때가 탈까봐 겁을 내며 살았다. 그런 나의 얼굴에 과거의 흔적들은 모두 사라져 버린 것 같다. 지나온 삶과 다르게 살아야만 했던 나는 과거의 얼굴을 다 지워버린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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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21
나는 오늘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과 밥을 먹었다. 잘 알지 못할뿐더러 거의 모르는것과 마찬가지인 사람들과 마주앉아 밥을 먹었다. 이렇게 혼자 까페나 식당에 와서 식대를 치르고 먹는 밥이 아닌, 어떤 물질적 댓가도 없는 그들의 식탁에 이방인인 내가 함께 했다. 내가 그 어색함을 왜 거부하지 않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리 나쁘진 않았다. 공동체 속의 이방인은 항상 의문을 뒤따르게 하는 존재이지만 그들은 그런 의문과 관심을 나에게 품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충직한 믿음에 따르는 평온함을 보며 공동체 안에서 가지고 있는 믿음에 대해 생각할수 밖에 없었다. 그들은 그 안에서 이뤄지는 모든 일들에 믿음이 있었고, 조금의 의심도 하지 않는 것 같았다. 같은 믿음이 있는 곳에선 다 열린 마음으로 누구도 받아드릴수 있다는 마음가짐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물론 그 안에도 서로간의 규칙은 견고해보였다. 의미조차 추측할수 없는 단어와 호칭들이 오고가는 그 안에서 나는 내가 이방인일수 밖에 없음을 알게 되었지만, 그들이 추구하는 삶 안에서의 안정감을 전달 받을 수 있었다. 그들도 보편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고, 그 보편 안에서 믿음의 말씀과 그들이 매일 거듭하는 축복을 찾으며 살아가는데, 사실 나에게 그 믿음과 축복은 어떤 감정인지, 어떤 형체 인지 잘 모르겠다. 그들이 받은 축복이라는 것이 정말 존재한다면, 온 세상에 존재 하는 신은 왜 우리에게 전쟁과 가난과 폭력, 핍박, 차별, 분노, 증오와 같이 인간사에서 빠질수 없는 진흙탕 같은 고통을 주었는지 모르겠다. 우린 왜 다같이 행복하고, 다같이 평온을 누릴수 없는 것일까. 인간으로 인해 멸종당하고 살해당하는 자연과 동물은 신의 축복에서 제외당한것일까. 인간에게 내려지는 축복은 왜 특정한 소수만 느낄수 있는 특권인걸까. 나는 그들의 평온이 정말 신으로부터 비롯한것인지 궁금하다. 전쟁과 살상, 그 모든 악한것들조차도 신이 내린 것이라면 우린 신에 대한 축복조차도 의심해보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축복이 개인 혼자만의 것이라면 그것은 신의 선물이라고 하기엔 편파적이고 불평등 하다고 이기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축복은 어느누구도 빠짐없이 누렸을때엥 그 이름을 축복이라 할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모여 축복을 말하며 신을 생각할때, 어느 한 곳에선 신이 없는 세상처럼 살아가는 것 조차 고통인 사람들이 존재하는 것을 우린 너무나도 잘 알고 있지만 그들에게 신이 그들을 버렸다. 라고 말할순 없다. 일요일 오후에 커피를 마실수 있는 여유가 있다는 특권은 신으로 비롯한 것이 아니라, 내가 볼수 없는 곳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한것이라 생각한다. 내가 고가의 기계로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것, 병원에서 독한약의 치료를 받고 퇴원한 것, 병실에서 내가 수없이 버렸던 식사들, 내가 마실 물과 양식들, 이 모든 것들은 내가 신에게 선택 받아서도, 운이 좋아서도가 아닌 누군가의 희생에서 비롯된것임을 우린 너무나도 모르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신이 내릴 축복과 신에 대한 믿음을 말하고 찬양하기 전에 소수에게 희생 당하는 다수를 위해 기도하고 마음을 나눠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내전도, 테러도 없는 평온한 작은 나라에 산다는 것을 특권으로 생각할수도 있지만, 그 안에 수많은 희생과 불평등, 차별, 외면의 그늘속에 숨겨져 있는 다수들이 있다. 우리의 삶은 다수이면서도 소수를 지지한다. 사람들은 자신들도 어느 순간 그 특권들이 사라져버릴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까? 그리고 물에 잠긴 뱃 속의 사람들, 그들의 가족들의 이야기를 단지 불행한 사람들의 일로만 생각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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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21
생각보다 인생이 더 별볼일 없을수도 있을거란 생각이 든다. 전에 했던 연애보다 더 깊고 진한 연애도 없을수도 있을것 같고, 그럴싸한 이름이나 직업도 없을것 같다. 조금의 우울과 불안과 불만족이 항상 나를 따라 다닐 것 같다. 그렇게 몇 년뒤에도 어느 방 구석에서 음악을 들으며 사색하고 혼자만의 몽상에 빠져 누워있는 삶을 보낼 것 같다. 그러니까 결국엔 어떤 특별함도 가지지 못한 내가 되어 삶을 살아갈것 같다. 내가 이룰수 있는건 (내가 만일 살아있다면) 암생존자로써의 안도와 함께 느낄수 있는 감격과 해방감이 아닐까 싶다. 몇주면 끝나는 감기라던지, 몇일을 미음만 먹어야하는 장염같은 질병은 그 꼬리가 길어지기 전에 이미 보편화된 의료서비스로 인해 그 싹이 잘려버린다. 우린 장염이나 감기때문에 일주일에 한번씩 서울에 있는 대학병원 외래진료를 보지도 않고, 가슴에 꽂은 히크만 카테터가 빠지진 않을까 하는 불안함에 옷을 갈아 입을때 마다 조심하지도 않는다. 머���카락이 다 빠지지도 않고 한달넘게 어떤 병실에 갖혀있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내가 겪은 이 병은, 꼬리가 너무 길고 질긴 이 병은, 내가 살아온 삶의 전부를 모두 바꿔버린 이 병은 감기와 장염일땐 하지 않아도 되는일들을 모두 하게 만들었다. 살면서 내가 겪어온 질병이란 감기나 장염 따위 였는데 나는 26세가 되던 해에 이 모든걸 다 뛰어넘고 암이라는 중병을 얻었으니, 내가 26세에 이룬것은 대학 졸업과 함께 앞으로 암환자가 될 운명이었던것 같다. 물론 이 표창도 내가 만든 것은 아니다. 필라델피아 라는 미국 어느 지명이 붙은, 너무나도 생소한 이 병명의 표창은 내가 아닌 돌연변이 유전자의 덕이었으니 어떤 이유로 돌연변이 유전자가 생겨버렸는지도 모르는 이 병을 운명으로 받아드려야함이 이제서야 정리가 되는 것 같다. 그동안 치열하게 나를 괴롭히고 나에게 싸움을 걸어온건 하찮고 저열했던 짧은 인생에 대한 집착이었고, 그 후에 찾아오는 강박적인 죄책감은 내가 무릎 꿇어야하는 존재였다. 길고 긴 무언의 시간과 공허함 속에서 나는 짧은인생동안 수없이 저질렀던 사소한 잘못과 오류, 실수와 미성숙, 거짓말, 과잉된 감정들, 치기 어렸던 질투, 잘못된 관계들에 대해 되뇌이고 반추하며 스스로를 괴롭히고 또 괴롭혔다. 나는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에 대한 의문이 나의 병만큼이나 긴 꼬리를 가지고 달라붙었다. 저열한 삶속에선 생각치도 않았던 의문을 스스로에게 하고 있는 나는 과연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병이 나은 사람이 아닌, 좀 더 나은 사람. 그렇다면 무엇으로부터 더 나아지고 싶은 것일까. 내가 암센터를 2년동안이나 드나든 사람이라는 현실을 내 삶의 그 자체로 받아드리고 차분히 정리해 나아가는 이 시점에서야 나는 어떤 사람으로써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과 불안을 안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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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물결 위에 빨갛게 비추는 햇님의 나라로 우리 가고 있네 둥글게 솟는 해 웃으며 솟는 해 높은 산 위에서 나를 손짓하네 따뜻한 햇님 곁에서 우리는 살고 있구나 고요한 이곳에 날으는 새들이 나를 위하여 노래 불러주네 얼마나 좋은 곳에 있나 태양 빛 찬란하구나 얼굴을 들어요 하늘을 보아요 무지개 타고 햇님을 만나러 나와 함께 날아가자 영원한 이곳에 그대와 손잡고 햇님을 보면서 다정히 살리라 라라라 라라라 라라라 라라라 라라라 라라라 라라라 라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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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20
종교에 대한 믿음은 없지만, 생각해보면 종교가 가진 힘을 느껴보았다고 할수 있다. 실체가 없는것에 대한 굳건한 믿음이 내겐 항상 의심스럽고 그 믿음 조차 형체가 없다는 생각을 아직까지 하고 있지만 내가 살아오면서 종교가 끼치는 영향력을 한번도 느껴 본적이 없다곤 할수 없다. 중학생때 만났던 선교사들의 신앙심을 그때 당시엔 너무 어려서 이해조차 하지 못했을 뿐더러, 그들이 오로지 신앙만으로 어린나이에 타국으로 와 선교활동을 한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서조차 생각해 보지 않았다. 그저 나에게 파란눈의 이방인들이었던 그들은 생각보다 한국말을 잘했고, 친절했고, 순수했기에 나에게 좋은 추억들을 많이 만들어준 좋은 사람들로써 기억될뿐이었다. 하지만 그들과의 추억, 그들의 순수했던 모습들, 그들이 내게 준 평온함이 바로 첫번째로 느꼈던 종교의 힘이라고 지금에와서야 생각할수 있었다. 내가 비록 그들의 언어로 말을 건낼순 없었지만, 그들이 매번 우리집에 방문하는 정성에 대해 느끼는 고마움들, 그들을 떠올렸을때 느끼는 따뜻함과 좋은 기억들이 내가 느꼈던 종교의 힘이 아닐까 한다. 그리고 항암으로 힘들어할때 내게 찾아와주신 수녀님들. 내가 절망에 빠지고 고통에 힘들어 할때, 병들고 상처받은 사람들을 보듬을수 있는 따뜻한 말한마디를 건내주신것에 나는 얼마나 큰 치유를 받았는지 모른다. 그런 좋은 기억들, 단순하게 좋은 기억들로 남아있는 것들을 다시 곱씹어보니 그들이 베풀고 싶었던 것들이 이런 좋은 기억에서 비롯하는 따스한 감정이라는 것을 알게되었다. 나는 그들을 만나 내가 얼마나 불안한지, 의심이 많은 존재인지를 더 알수있게 되었다. 그들의 눈에 비친 세상엔 의심도 없고, 부정적인 존재들이 없다. 아마 그들이 신을 굳건히 믿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 믿음 안에서는 부정과 악을 생각할수 없고, 스스로 바른 길로 가고있음에 여지가 없으므로 불안함을 느끼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난 어느것 하나 믿고 있지 않다, 심지어 스스로도 믿지 못한다. 앞으로 다가올 시간들에 대한 불안과 불신으로 더 극심한 불안을 만들어내는 것일수도 있다. 그들이 모든 시간을 감사해하고 즐거워하는 것은 그런 믿음 안에 있어서 가능한것일 것이다. 믿음이 그들의 마음에 자유를 준 것같다. 나는 나를 불신하는 마음, 모든 것을 불신하고 불안스럽게 보는 시선 때문에 마음이 스스로에게 속박되어있음을 느꼈다. 더 자유로울수 있는 나를 상상할수 없는 것은 내가 갖고 있는 모든것에 대한 불신 때문인 것 같다. 나는 믿는다 는 것을 언제쯤 이해할수 있을지 모르겠다. 누군가를 믿는다는 것은 어려운일인것 같다. 믿음으로써 마음의 안정과 평화가 온다는 것을 안다. 내 스스로는 불완전한 존재이기때문에 아마 죽기전까지도 스스로를 믿을 수 없다는 것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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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아실의 활짝 열린 창문 앞에 선 브리오니는 한동안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다가 무언가를 보고 퍼뜩 정신이 들었다. 멀리 떨어진 곳에서 중세의 성에서나 일어나 법한 장면이 펼쳐지고 있었던 것이다. 탈리스 가의 영지에서 몇 마일 떨어진 곳에는 서리 언덕이 자리하고 있었는데, 그곳에 듬직하게 서 있는 울창한 참나무들이 만들어내는 신록이 한여름 열기가 뿜어는 젖빛 아지랑이에 한층 은은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언덕 앞에서 시작되는 탈리스 가의 영지의 너른 목초지는 오늘따라 사바나 초원처럼 더위에 이글거리는 황량한 모습을 하고 있었고, 목초지 군데군데 서 있는 나무들은 짧으면서도 날��로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으며, 길게 자란 풀은 사자 갈기 처럼 노란 햇빛에 잠식되고 있었다. 집 쪽으로 더 가까이 오면 목초지와 저택의 경계를 삼은 울타리 안에 장미 정원이 자리하고 있고, 더 가까이 오면 트리톤 분수가 있는데, 그 분수를 둘러싼 낮은 벽 옆에 세실리아 언니가, 그 바로 앞에는 로비 터너가 서 있었다. 다리를 약간 벌리고 고개를 꼿꼿이 들고 서 있는 품새가 무언가 격식을 차린 말을 세실리아에게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어쩌면 청혼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브리오니는 놀라지 않았다. 물에 빠진 공주를구한 가난한 나뭇꾼이 결국에는 공주와 결혼한다는 이야기를 그녀 자신이 쓴 적이 있어서 그런지도 몰랐다. 지금 그녀의 눈앞에 보이는 장면이 바로 그런 청혼 장면 같았다. 비천한 파출부와 얼굴도 모르는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 브리오니 아버지의 도움으로 대학까지 나온 로비터너가, 정원사가 되려고 했다가 마음을 고쳐 먹고 의대 진학을 생각 중이라는 바로 그 로비터너가 용감하게도 세실리아에게 구애를 하고 있는 것이다. 정말 제대로 된 장면이었다. 신분의 경계를 넘어선 이런 도약은 일상에서 흔히 접할수 있는 낭만적인 연애 이야기 거리가 아닌가. 그런데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로비가 오만하게 손을 들고 뭐라고 명령을 내리고 세실리아는 그 말에 순순히 복종하고 있는 것 같다는 점이었다. 그에게 저항하지 못하다니, 이상한 일이었다. 세실리아는 로비의 명령에 따라 재빠르게 옷을 벗고 있었다. 블라우스를 벗는가 했더니 곧이어 치마도 땅에 떨어졌고, 이어서 속옷만 입은 세실리아가 사뿐히 걷기 시작했으며, 로비는 뒷짐을 진 채 탐욕스운 눈으로 그 모습을 지켜 보고 있었다. 도대체 언니를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힘이 그의 어디에 숨어 있었던 것일까? 공갈을 했을까? 아니면 협박? 브리오니는 두 손을 얼굴로 가져가며 창가에서 조금 물러섰다. 눈을 감아야 한다고, 그렇게 하여 언니가 모욕당하는 장면을 보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점점 더 놀라운 일들이 벌어지고 있어서 그럴수가 없었다. 다행히 속옷은 ��지 않은 세실리아가 분수대 연못 속으로 들어가 허리까지 차는 물 속에 서 있더니 곧이어 코를 쥐고 물 깊숙이 사라졌다. 이제는 로비와, 자갈 위에 벗어놓은 세실리아의 옷과 그 너머 고요한 정원과, 저 멀리 있는 푸른 언덕만이 눈에 들어왔다. 일의 순서가 바뀐 것 같았다. 청혼 전에 공주가 물에 빠지고 나무꾼이 공주를 구해야 하는 게 아닌가 말이다.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으니 그냥 지켜볼 수 밖에 없다고 깨닫기 전까지는 그랬다. 밝은 햇빛 덕분에 브리오니는 아무도 없는 3층 방에서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고, 세월을 뛰어넘어 아직은 미지의 세계인 어른들의 의식과 사회적 관습을 몰래 훔쳐볼 수 있었다. 그녀의 눈앞에서 벌어진 일은 실제로 일어난 일이었다. 세실리아 언니의 머리가 수면 위로 올라왔을 때 -아, 다행이다!- 브리오니는 성과 공주님이 나오는 동화를 벗어나 바로 지금 이곳에, 그녀가 아는 평범한 사람들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어떤 힘을 휘두를 수 있는지, 그리고 모든 일이 틀어지는 것이, 그것도 완전히 틀어지는 것이 얼마나 쉬운지를 희미하게나마 깨달았다. 세실리아는 연못 밖으로 나와 치마를 입은 후 젖은 팔을 블라우스 소매에 억지로 끼워넣으려고 애쓰고 있었다. 이윽고 옷을 다 입은 그녀는 갑자기 휙 돌아서더니 분수대의 벽 아래 드리워진 깊은 그림자 속에서 꽃병을 집어들고 집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로비와는 아무 말도 나누지 않았고 그가 있는 쪽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로비는 물 속을 노려보고 있었고, 곧 고개를 들더니 성큼성큼 걸어 사라져 버렸다. 갑자기 분수대 앞이 텅 비어 버렸다. 세실리아가 연못에 나오면서 남긴 자갈길위의 젖은 자국만이 그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보여주는 유일한 증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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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9
대낮에 돈까스 집에서 눈물을 보였다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눈물을 보이고 난 후 무식하게 큰 넓직한 플라스틱 그릇 위에 기름에 절여진 돈가스 조각을 포크에 꽂을땐 눈가가 젖은 것도 다 까맣게 잊고 있었다. 내가 운다는 것은 맛없는 돈까스 몇조각에 연기처럼 사라질 만큼 아주 사소하고 일상적인 부분이었다. 그리고 나 또한 그 한가한 오후에 가족들과 돈까스나 써는 점심시간을 보내러 온 사람들 속에서 운다는 상황을 그리 어렵게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마치 우리의 삶을 그저 일일드라마 처럼 점심 시간대엔 꿀같은 점심을 먹고 낮시간엔 열심히 ���하며, 저녁시간은 가족들과 함께 과일을 깍아 먹으며 티비를 보는 그런 보편적인 삶이라고 생각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삶이란 점심을 먹다가도 울수도 있는 예외적인 것들이 항상 도사리고 있지만 우리는 그 예외를 항상 기괴한 동물을 보고 있을때 느껴지는 경외감과 불쾌함으로 맞이한다. 나는 가짜 정원처럼 꾸며진 돈까스식당 한가운데에서 흘린 내 눈물이 불쾌함이나 경외감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내 눈물을 독려하거나 위로함을 바라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무엇때문에 우는지 항상 확실하게 알지 못한다. 누군가를 향한 미안함인지, 나를 향한 회한인지, 자기연민인지. 확실한 것이 없다. 그래서 울고나면 후련함도 잘 못느낀다. 아마 버릇처럼 눈물이 삶의 일부가 되어서인지도 모른다. 맞은편에 앉아있던 아빠는 단호한 목소리로 울땐 울어. 라는 격려도, 꾸지람도 아닌 이상한 모양새로 말을 건냈고 엄만 옆에서 어깰 쓰다듬었다. 난 그냥 눈물이 차올랐다. 울때 울어야 한다면 난 얼마나 울어야 하는 걸까. 난 버릇처럼 울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해야하는 말, 하고 싶은 말들이 다 눈물로 변해 눈으로 쏟아흐르는건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만큼 책임을 회피하고 싶은건지도 모르겠다. 내 입으로 뱉은 말들의 책임을 피하고 싶어 말을 피하고 있는건지도 모르겠다. 그 쌓아놓은 말들이 다 눈물로 변해 돈까스집이던, 어디던, 그저 눈물이 터져나올때 흘리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언제까지 책임을 회피할수 있을까. 아직은 알고 싶지 않다. 그저 마음대로 울수 있음도 내가 가지고 있는 특권이라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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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리아는 샌들을 벗어던지고, 블라우스 단추를 풀어 벗어버리고, 치마를 벗어던진 후, 분수 쪽으로 걸어갔다. 로비는 두 손을 엉덩이에 댄 채 서서, 그녀가 속옷 바람으로 분수대 난간으로 올라가 물 속으로 뛰어드는 모습을 빤히 보고 있었다. 그의 도움을 거절 하는 것, 실수를 만회할 어떤 기회나 가능성도 주지 않는 것, 이것이 그에게 내려진 벌이었다. 뜻하지 않게 차가운 물에 놀라 숨을 헐떡이는 세실리아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 또한 그에게 내려진 벌이었다. 그녀는 숨을 크게 들이 쉬고 나서 고개를 숙이고 물속으로 내려갔다. 그녀의 머리카락이 수면에 둥그렇게 퍼져가고 있었다. 이대로 그녀가 물에 빠져 죽는다면, 그것또한 그에게 내려지는 가혹한 벌이 될 것이다. 몇 초 후 세실리아가 도자기 조각을 하나씩 양손에 들고 물 위로 모습을 드러냈을 때, 로비는 그녀가 물 속에서 나오는 것을 돕겠다고 손을 내밀 만큼 어리석지는 않았다. 이 연약하고 하얀 요정은 물속에서 주워온 조각들을 꽃병 옆에 조심스레 내려놓았다. 물은 건장한 트리톤보다 오히려 이 작은 요정의 몸에서 더 시원하게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녀는 서둘러 옷을 입기 시작했다. 물이 뚝뚝 떨어지는 젖은 팔을 시크 블라우스의 소매 속으로 억지로 끼워넣으려 했고, 단추도 잠그지 않은 블라우스 자락을 우선 치마 속으로 쑤셔넣고 치마를 여몄다. 그러고는 샌들을 들어 겨드랑이에 끼고, 부서진 꽃병 조각들은 치마 주머니 속에 넣은 후 꽃병을 집어들었다. 동작은 거침 없었고, 그녀는 로비와 눈을 마주치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미 추방당했다. 이것 역시 그에게 내려진 벌이었다. 그녀가 몸을 돌려 맨발로 잔디밭을 걸어 집 쪽으로 가는 동안 그는 아무 말 없이 그 자리에서 그녀의 젖은 머리카락이 어깨 위에서 무겁게 흔들리면서 블라우스를 적시는 것을 바라보았다. 얼마 후 그는 고개를 돌리고 혹시 그녀가 놓친 조각이라도 남아 있지 않을까 하고 물 속을 들여다 보았다. 수면이 여전히 거칠게 흔들리고 있었기 때문에 들여다보기가 힘들었으며, 그녀의 분노가 아직 남아 있는 탓인지 좀체 물살이 잦아들려 하지 않았다. 그는 한손을 펴서 가만히 물 위에 댔다. 그렇게 함으로써 거친 물살을 고요히 잠재울 수 있���고 생각하는 듯 했다. 그러는 동안, 그녀는 집 안으로 사라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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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죄 40p 그녀는 그저 누군가가 자신을 못 떠나게 잡고 있으며, 누군가가 자신을 필요로 하고 있다는 막연한 느낌을 좋아했다. 때때로 그녀는 브리오니를 위해서, 혹은 어머니를 돕기 위해서 그곳에 있는 거라고 자기 자신을 설득했고, 집에 오랫동안 머무는 것은 이번이 마지막일 테니 끝까지 참고 있어야 한다고 스스로를 다독일 때도 있었다. 그러나 사실은, 짐을 꾸려 아침 기차를 타고 떠나자고 생각해봤자 별로 신이 나지 않는 것이었다. 지루하지난 안락함을 느끼며 이곳에 머무는 것이 세실리아가 선택한 자기 학대이자 형벌이었다. 사실 그녀는 이런 가학적인 일에 즐거움까지 느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떠나면 뭔가 안 좋은 일이 일어나거나, 아니면 더 안타깝게도, 놓치기 아까운 좋은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리고 로비 터너 문제도 있었다. 로비는 갑자기 그녀와 거리를 둠으로써, 그리고 자신의 원대한 계획을 그녀의 아버지하고만 의논하려 함으로써 그녀를 화나게 만들었다. 자신과 로비는 일곱 살때부터 서로 알고 지냈는데, 이제는 이야기를 나누는 것조차 어색한 사이가 되어버렸다는 사실이 신경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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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죄 35p
싱그러운 젊음이 넘치는 나이인데다 화창한 날씨가 기분을 들뜨게 하기도 했고, 담배 생각도 간절했기 때문에 세실리아 탈리스는 꽃을 든 채 강 옆으로 난 길을 잰걸음으로 걸어 집으로 향했다. 이��� 낀 벽돌담으로 둘러싸인, 다이빙 시설을 갖춘 수영장 옆으로 지나자 이윽고 길은 구부러져 참나무 숲으로 이어졌다. 졸업시험들 친 이후로 벌써 몇주 동안이나 특별히 하는 일도 없이 빈둥빈둥 여름을 보냈다는 생각에 발걸음은 더욱 빨라졌다. 집에 온 후로 자신의 생활이 고여 있는 웅덩이처럼 정체되어 있었다는 데 생각이 미치자 오늘같이 화창한 날은 초조하다 못해 거의 절박한 느낌마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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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8
버티는 시간들을, 그저 참으라는 시간들을 어떻게 버티고 있어야 할지 모르겠다. 시간의 흐름이 느껴질때마다 내가 점점 뒤로 물러나 나가떨어져버리는 처지로 버려진다는 느낌이 온몸으로 와닿는다. 그 무게가 나를 짓눌러 아무것도 못하게 만든다. 나의 언어들이 정리되지 않고 흩어져 나를 어지럽힌다. 그 언어들을 모아 나의 이야기를 하고싶지만 나는 나의 이야기가 무엇인지도 잘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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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6
눈이 뜨여 있는 시간 동안 나는 항상 불안한것 같다. 내가 무엇을 해야하는지 잘 모르겠다. 해야할 어떤것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보다 내 존재 자체가 위협스럽게 느껴진다. 나는 무거운 바위와 같이 제자리에 박혀 있는 느낌이다. 내가 할일이라곤 약을 먹고 밥을 먹고 공기를 빨아들이고 돈을 쓰는 것 뿐인것 같다. 나는 잘할 자신이 없다. 어떻��� 변화할것이라는 예상조차 들지 않는다. 유약한 종이 낱장처럼 사람들 틈에 껴 있는 듯 없는 듯 살것 같다. 다른 언어를 구사할수도 없을 것이며 무언갈 창조하지도 못할것이다. 누구 하나 돕지도 못하고 그저 머리에 개똥철학만 가득 쌓여 스스로를 공상 속의 진보적인 투사인것처럼 꾸며낼것이다. 10년전의 나와 달라진것이 하나도 없다. 소셜네트웤을 돌아다니며 그들의 관계성을, 뒷배경을, 물질을 부러워 하며 염탐을 하고 있다. 나를 제외한 관계성들의 견고함을 부러워하며 지독한 외로움에 휩싸인다. 나의 전부를 잊은 사람들을 기억해낸다. 그게 나의 할일이다. 더 절망스러운건 10년전의 나와 지금의 내가 달라진점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이력서에 점하나도 찍을 것이 없다고 생각하면 더 비참해진다. 이 비참함은 다 나에게서 비롯된것이지만 난 아직도 납득하지 못한다. 내 삶 정도는 스스로 찾아갈수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이제 잃어버린 건강이 그 삶을 더 멀어지게 한다. 아니, 한번 수렁에 빠지고 나�� 나는 내 몸에 묻은 진흙하나 털어내기도 벅차다. 나는 몹쓸 무기력증의 반복을 느끼며 주위 사람을 힘들게 만든다. 이 무기력증은 나 또한 진이 빠지게 한다. 누구도 내 옆에 없는 빈 방의, 작은 공간의, 텅 빈 공허함의, 큰 고요함의, 나 혼자만이라는 그 기분은 나를 점점 더 쓸모 없게 만든다. 나는 그럴때 마다 겉잡을수 없는 무기력함에 빠지는 것 같다. 잠깐의 농담과 실없는 소리도 다 그런 공허함을 메우려고 하는 헛짓거리다. 공허함과 무력함의 반복이다. 나는 아무 생각도 안하도록 내버려 두는 그 시간조차 공허한 생각과 감정이 마음속을 떠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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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6
이식해준사람에겐 너무 고맙고 내 삶이 너무나 가치있는 것이라 생각한다는 마음에도 없는 말들을 편지로 보냈다. 그 말은 형식적으로 그 사람에게 꼭 건내야 하는 말이었고 그 사람이 2년전에 내게 내준 용기와 시간과 의지에 답을 해줘야 할 의무가 내게 있기때문이었다. 우린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라는 것에 얼마나 큰 기쁨을 느끼고 안위를 하고 있는가. 사람들은 자신의 가치를 누구를 도움으로써, 누구의 도움이 됨으로써 느끼게 되고 알게된다. 자신의 자아 실현과 가치의 의미는 다 타인과의 관계에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내 삶의 연장에 어떠한 의미도 느끼지 못한다. 한마디로 어떤 시간과 노력과 금전적 낭비의 느낌을 받고 있다. 어젯밤에 잘것도 아니었으면서 그저 하릴없이 바닥에 몸을 뉘였을때, 옷걸이에 걸린 새로 산 블라우스들이 눈에 들어왔다. 노란색과 네이비색이 대비된 조금 화려할수도 있지만 까끔한 직선의 패턴으로 이루어져 있어 여성스러움이 많이 절제된 그런 블라우스 였다. 그 블라우스를 사서 몇번이나 입을진 모르겠지만 딱히 어울린다는 생각으로 산것도 아니었고, 너무나 마음에 들어 그것을 꼭 가져야 겠다는 마음으로 산것도 아니었다. 그 당시엔 그 블라우스 만이 합리적인 가격에 어느 바지에 받쳐 입어도 예쁠것 같고, 내 몸이 더 날씬해보일것 같은 그런 착각에 휩싸여 마치 이 옷을 안사면 아쉬울것이라는 생각으로 계산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각잡힌 화려한 색깔의 블라우스는 내 삶 어디에도 어울리지 않는 과잉된 소품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내가 머리카락을 모두 잃고 지금보다 몸무게가 7,8키로가 더 나갔을때엔 꾸밈을 생각하지도 못했었지만 내가 환자라는 이유로 내가 어떤옷을 입을지에 대한 고민을 할수 없단 생각을 하진 않았다. 하지만 머리카락이 하나도 없었기에 난 매일 벙거지 모자에 마스크를 쓰고 다녀야하는 신세였고 그 상황에선 내가 아무리 꾸밈을 꿈꾼다해도 가당치도 않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는 누가 봐도 아픈사람은 아니지만 옷을 차려 입고 나설만한곳은 한군데도 없다. 내가 몇주에 한번 만나는 정신과 의사에게 조금 밝고 개선된 인상을 보여주기위해서? 길가나 대중교통안에서 눈이 슬쩍 마주치는 사람들을 위해서? 그저 스스로에 대한 만족? 그 세가지 다를 고려해봐도 합리적인건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신과 의사에게 나는 그저 하루에 몇번이고 진료해야하는 환자중 한명일테고 거리에서 보는 사람들은 나를 그저 보통체격의 흔한 여성으로 넌지시 시선한번 줬다가 잊어버릴것이 뻔하다. 내 스스로에 대한 만족도 어짜피 혼자 있는 시간이 되면 다 부질 없게 느껴지고, 내 소비활동으로 인한 죄책감만 축척시킬뿐이다. 나의 부모는 내게 금전적 걱정을 하지 말라고 하지만 나는 당신들과 그런 관계가 싫다. 어릴때부터 나에게 불편한 존재들이었고 항상 내가 눈치를 봐야 하는 존재들이었다. 그들이 언제 소리를 지를지, 욕을 할지, 싸움을 할지 에 대해 계속해서 촉각을 곤두세우게 하는 존재들이었다. 난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아무 생각 없이 살던 어린날에도 그 생각만은 간절했다. 난 지금도 그들의 도움을 받고 싶지도 않고 그저 나 혼자 일어서고 싶을 뿐이다. 그런데 난 어느것 하나 자유롭지 못하다. 모든게 다 제한적이고 아직도 멀었다는 이야기만 듣는다. 그런 말이 나에게 할수 있는 전부라는 것을 알지만 그로 인해 내가 받는 스트레스와 감정적인 부분이 배제 당하는 것 만큼은 참을수 없다. 내가 처한 상황이 그저 참고 시간을 보내는것이 최선이라 말하는 사람들은 내가 겪어온 시간의 늪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나는 2년동안 늪에 빠진 사람처럼 움직임도, 미동도 없이 가라 앉았다. 지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것 같다. 아무것도 실현 불가능 할것 같은 무기력한 이런 기분들을 누군가에게 이해시키고 싶지도 않지만 아마 알수도 없을것이다. 나는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를 잊어버린것 같다. 인생의 어떤 한부분도 나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당신들은 아마 모를테지만 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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