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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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asuhfiu · 4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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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리스트 Ⅳ 해충(害蟲)의 피해 ☞
해충(害蟲)의 피해 홍수, 가뭄, 폭풍, 서리, 폭설, 흙비, 지진, 폭우, 우박, 안개, 이상 기후 등 다양한 기상 이변은 인간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친다. 이와 더불어 해충들의 이상 번식 역시 우리 조상들의 삶에 큰 재앙으로 다가왔다. 우리 조상들은 해충으로 인해 큰 고통을 겪어야만 했다. 세계인을 괴롭히는 해충 2012년 6월 미국 캘리포니아, 리비아 등에서는 메뚜기떼가 나타나 농가에 큰 피해를 입혔다. 2011년에는 호주와 마다가스카르 등에서 수십억 마리의 메뚜기떼의 습격이 있었다. 특히 호주에서는 8㎝가 넘는 커다란 메뚜기가 농장과 목초지를 초토화시켜, 호주 동부의 광범위한 지역에 큰 피해를 입혔다. 메뚜기떼로 인한 피해를 표현한 1689년의 동판화. 메뚜기는 하루에 자기 몸무게의 두 배에 달하는 작물을 먹어치우는 식욕을 가지고 있으며, 가뭄과 기근 등의 피해 시에 메뚜기떼가 발생해 더욱 큰 재앙이 되기도 한다. 해충들 가운데 인간에게 가장 큰 피해를 입히는 것은 메뚜기다. 메뚜기는 평소에는 단독생활을 하는 순한 곤충이지만, 무리를 이루면 맹렬한 공격성을 갖는 무서운 해충으로 변신하게 된다. 메뚜기떼의 발생은 가뭄으로 먹이가 줄어드는 등 한곳으로 몰려야 하는 상황에서 주로 발생한다. 메뚜기는 한자로 황(蝗), 황충(蝗蟲), 비황(飛蝗)으로 표현하는데, 우리말로는 ‘누리’라고 한다. [삼국사기], [고려사], [고려사절요], [조선왕조실록] 등에도 누리 피해가 많이 기록되어 있어, 우리 조상들도 해충 때문에 고통을 겪었음을 알게 해준다. 삼국시대의 누리 피해 [삼국사기]에 따르면 고구려에서 누리 피해 8회, 백제 5회, 신라 25회가 기록되어 있다. 누리의 피해에 대한 기록은 주로 음력 7월과 8월에 집중되어 나타난다. 메뚜기는 약 140여 종(種)이 있는데, 삼국시대부터 우리나라에서 재앙을 일으킨 누리는 주로 풀무치로, 가을철 곡식을 수확할 시기에 주로 활동하며, 건조한 기후에 이어 습기와 따뜻한 온도가 맞게 되면 대규모로 번식할 수 있는 대표적인 종이라고 한다. 이들은 논보다는 산에 인접한 밭이나 휴경지에서 서식할 수 있는 종이고, 유전적으로 대규모로 발생할 요인을 갖고 종이다. 또 애메뚜기 종류들도 삼국시대에 큰 피해를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고도 한다. 삼국시대는 논농사보다는 밭농사의 비중이 높고, 1년 농사를 짓고 경작지를 한 두 해 묵힌 후 다시 농사를 짓는 농사법이 일반적이었으므로, 요즘 논에서 볼 수 있는 벼메뚜기는 삼국시대에는 별다른 피해를 끼치지는 못했을 것이다.누리로 인해 주로 피해를 입은 작물은 보리나 콩이 아니라, 가을에 수확하는 벼나 조였으며, 특히 조가 가장 많은 피해를 입었다.397년 7월 신라 하슬라(강릉 일대)에 가뭄이 들고 누리가 생겨 농사를 망치고 백성들이 굶주렸다거나, 465년 신라 사벌군(상주)에 누리의 피해가 발생했다는 기록 등 구체적인 지명을 거론한 것을 제외하면, 대체로 나라에 누리의 피해가 있었다고만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고구려와 백제, 신라에서 발생한 누리의 피해가 서로 공통되는 바가 적어, 누리의 피해가 광범위한 지역이 아닌 국지적으로 발생한 것임을 알 수 있다.다만 고구려 광개토태왕(廣開土太王, 재위: 391~412) 15년 7월 ‘누리와 가뭄이 있었다.’, 신라 실성이사금(實聖 尼師今, 재위: 401 1)~417) 5년 7월 ‘나라의 서쪽에서 누리가 곡식을 해치다’는 기록은 405년에 동시에 발생한 사건을 기록한 것이다. 고구려와 신라가 동시에 누리의 피해를 입었다면, 피해지역은 매우 넓은 지역이었다고 할 수 있다. [삼국사기]에는 서기 122년과 399년 신라, 62년 고구려, 208년 백제에서 발생한 누리에 대해서는 황이 아닌 특별히 비황(飛蝗)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는 누리가 이동하여 피해를 준 것을 표현한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누리의 피해를 막기 위한 노력 메뚜기는 한자로 황충(蝗蟲), 비황(飛蝗), 우리말로는 ‘누리’라고 한다. 가뭄으로 인해 메뚜기떼가 발생하면 식량생산이 줄어들어 기근이 발생하고, 이는 전염병의 창궐 등과 맞물려 끔찍한 재앙으로 다가왔다. [출처: gettyimages] 가뭄이 들어 농사가 잘 안될 때에 누리가 발생하여 논밭에서 자란 곡식을 다 갈아먹으면 농민들은 먹을 식량이 없어져 극도의 고통을 겪게 된다. 754년 누리가 발생해 곡식이 귀해지고 백성들이 굶주리자, 향덕(向德)이란 자는 너무 가난해 아버지를 봉양할 수 없어 자기의 다리 살을 베어 아버지에게 먹이기도 했다. 흉년의 피해가 다음해에도 이어���자 당시 신라 경덕왕(景德王)은 죄수들을 석방하고, 늙고 병든 사람, 홀아비, 과부, 고아, 자식 없는 노인 등 가난한 자들에게는 곡식을 나눠주어 굶주림을 면하게 조치를 해주었다. 571년 고구려 평원왕은 누리떼가 발생하자, 당시 짓고 있던 새 궁궐인 장안성 축조를 중지시켰다.굶주린 백성들이 도둑이 되는 경우도 생겨났다. 따라서 나라에서는 관리를 파견해 백성들을 위로해 주거나, 창고를 열어 굶주린 백성들에게 식량을 나누어 주면서 백성의 생활안정을 도모하기도 했다.누리의 발생은 정치를 잘못한다는 신호로 여겨져, 왕으로 하여금 정계 개편을 단행하게 만들기도 했다. 720년 신라 성덕왕은 누리가 발생해 농사에 큰 피해가 생기자, 요즘의 국무총리에 해당하는 중시(中侍) 사공(思恭)을 물러나게 하고 파진찬(波珍湌) 문림(文林)을 중시로 삼는 정계 개편을 단행하기도 했다. 769년 5월 누리와 가뭄이 발생하자 혜공왕은 백관들에게 각자 아는 인물을 천거하게 했다. 이러한 삼국시대 왕들의 조치들은 고려, 조선으로도 이어졌다. 고려시대의 누리 피해 삼국시대 황충은 곡식에 피해를 입혀 백성들을 굶주리게 만드는 나쁜 해충이었다. 그런데 [고려사절요]에 22회, [고려사]에 57번 기록된 황충 기록 가운데는 이상한 것이 등장한다. [고려사절요]에는 1133년(인종(仁宗) 11년) 황충이 경기의 산과 들에서 소나무를 먹고 있다는 기록이 그것이다. 가뭄과 황충이 동시에 벌어진 이 해의 황충 기록에는 누리뿐만 아니라, 소나무를 갉아먹는 송충이의 피해도 같이 기록된 것으로 볼 수가 있겠다. 1191년 8월 해주에서 발생한 황충은 벼농사를 해친 벼멸구일 가능성도 있다.하지만 1016년 7월 비황(飛蝗)이 발생한 사건은 전형적인 누리의 피해로 볼 수가 있다. 1016년 현종은 누리의 피해가 발생하자 죄수를 석방하고, 다음 해에도 계속되자 대궐의 정전(正殿)에 들어가는 것을 피하고, 스스로 음식을 줄이고 근신하는 감상선(減常膳- 천재지변으로 흉년이 들 때에 임금이 스스로 음식을 줄이고 근신하는 의식)의 의식을 치름으로써 재앙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노력을 보였다. 또 세금을 낮추는 등의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1228년 고종(高宗)은 누리로 인해 농사가 망치는 일이 벌어지자 신하들을 보내어 여러 곳의 신사(神祠)에서 재앙을 멈추게 해달라고 빌고, 또 불교의식인 반야도량(般若道場)을 궁궐 안에 있는 선경전(宣慶殿)에서 27일 동안 베풀어 종교적인 힘으로 이를 물리치려는 노력을 보였다. 조선시대의 재해 대책 1536년(중종(中宗) 31년)에는 3도(道)에 누리(飛蝗)가 날아들어 들을 뒤덮어 남아난 곡식이 없을 정도였다. 오랜 가뭄 끝에 누리의 피해를 입은 후에는 다시 장마가 범��해 산과 언덕이 무너지고, 태풍이 불어 집이 무너지고 사람이 흙더미에 깔리는 참혹한 재해가 잇달아 벌어지기도 했다. 그 해 9월 신하들은 중종에게 강무(講武- 군사를 모으고 훈련시키는 일)를 중지할 것을 요청했지만, 중종은 재해를 만나 매사에 한층 삼가는 것은 지당하지만 임금이 재해에만 마음을 써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폐기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도 옳지 못하다고 했다.적은 수의 메뚜기는 좋은 간식거리지만, 수백ㆍ수천ㆍ수억 마리의 누리는 인간이 당장 어쩌지 못하는 재앙 그 자체였다. 이 때문에 벌레를 많이 죽이면 조화로운 기운(和氣)을 거스르는 것이 되므로 잡아서는 안 된다고 여기는 잘못된 말이 민간에 퍼지기도 했고, 누리의 발생은 임금이나 관리의 덕이 부족해 발생한 탓이므로 임금과 수령이 덕을 닦아서 물리쳐야 한다는 믿는 선비들도 있었다.1447년 세종은 요망한 기운은 덕(德)을 이기지 못한다고 믿는 선비들의 생각을 두고 글자에만 구애되어 변통할 줄 모르는 자들이라고 비판하면서, 해충이 발생하는 즉시 잡아서 묻어버리면 큰 노력을 들이지 않고서도 해충으로 인한 재해를 없앨 수 있는데 민간에서 이런 이치를 모르고 처음에 제거하지 않기 때문에 큰 우환이 된다고 하였다. 세종은 누리떼가 번식하지 못하도록 발생 초기부터 제거하도록 명령하고, 황충이 처음 나오는 상황을 조사해 보고할 것을 주문했다.세종의 이와 같은 조치는 오늘날에도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이다. 조선후기의 실학자 서유구(徐有榘, 1764~1845)의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에는 누리떼의 발생을 미리 예방하는 방법을 여러 가지로 제시하고 있다. 그는 누리가 먹지 않는 토란 등을 다른 작물과 함께 심고, 겨울철에 메뚜기 알을 찾아 박멸하며, 발생 시기를 관찰해 즉시 죽이거나, 떼를 지어 날을 때에는 낙하지점을 알아내서 포살하고, 긴 장대에 울긋불긋한 천을 매달아 자신의 논밭에 오지 못하게 쫓아내거나, 볏짚을 태운 재나 석회를 살포하고, 누리의 활동이 활발하지 않은 아침에 포살하는 등의 방법을 제시하였다.세종은 1444년 공주에서 누리가 발생해 곡식을 해치므로 군대를 출동해 잡게 했는데, 잡은 것이 60여 석이나 되었다. 농민들은 누리가 발생하면 물론 잡기도 했지만, 실제로는 누리를 제대로 막기란 불가능했다. 백성들은 하늘에 빌거나, 하늘을 원망하는 것 외에는 날씨가 추워져 저절로 누리가 사라지기를 기대할 수밖에 없었다. 전국에 피해를 끼친 누리 1604년(선조(宣祖) 37년) 6월 강원도 관찰사의 보고에 따르면, 강원도 간성(杆城- 고성군) 지역에는 황흑색 누리(飛蝗)가 날아들어 전답에 두루 깔려 곡식을 남김없이 다 갉아먹었으므로, 며칠 사이에 들판이 불타버린 땅과 같이 변하고 백성들은 하늘을 쳐다보며 울부짖고 있다고 하였다.1437년 (세종(世宗) 19년) 2월 기록에는 작년에 중남부 지역 4개 도(道)가 모두 흉년이 들어 거의 대부분 지역이 농사를 짓지 못했는데, 특히 경기도의 안성과 충청도의 공주(公州)·신창(新昌)·아산(牙山)·회덕(懷德)·직산(稷山), 전라도의 전주(全州)·함열(咸悅)·임피(臨陂) 등의 고을은 모두 누리의 피해를 입었다고 전하고 있다. 또한 금년 봄에는 역질(疫疾- 강한 유행성 전염병)마저 유행해, 백성들이 자기 손으로 소와 말을 잡고 나무껍질을 벗기고 보리 뿌리를 캐어 먹이를 하며, 처자를 보전하지 못하여 처자를 버리고 도망하는 자도 있고, 혹은 아이를 길에 버리어 아이가 쫓아가면 나무에 잡아매고 가는 자도 있다는 참혹한 상황을 전하기도 했다.누리는 가뭄이나 역병, 홍수 등 다른 재앙과 겹쳐 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 피해가 더욱 심했던 것이다. 조선시대 누리의 피해는 강원도, 평안도, 함경도, 황해도, 충청도, 영남과 호남 등 전국에 걸쳐 발생했다. 백성들을 괴롭힌 송충이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261건의 황충 발생기사 가운데는 고려시대와 마찬가지로 곡식을 해치는 벌레뿐만 아니라, 소나무 등 산림을 해치는 해충들에 대한 것도 포함되어 있다. 황충이 모두 누리는 아니었고, 일부는 나방이나, 벼멸구, 송충이도 황충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곡식에 피해를 주었던 나방(왼쪽)과 소나무에 큰 피해를 입혔던 송충이(오른쪽). [출처: gettyimages] 황충 외에 가장 많이 역사에 기록된 해충으로는 송충(松蟲)이 있다. 송충이가 피해를 입히는 소나무는 고려와 조선에서 필요로 하는, 관리되고 보호되는 나무였다. 송충이 주로 먹는 소나무 껍질은 백성들에게 최후의 구황(救荒)식품이기도 했던 만큼, 국가에서 송충이를 그냥 놔둘 수는 없었다.1101년에는 고려에 송충이가 크게 번식했다. 숙종(肅宗, 재위: 1095~1105)은 1102년 5월 여러 신하들을 거느리고 도교의 행사인 초제(醮)를 올렸고, 다음 달에는 재상에게 명해 5방의 산신과 3곳의 해신에게 제사를 지내어 송충이가 없어지기를 빌기도 했으며, 군사 5백 명을 풀어서 송악산의 송충이를 잡도록 조치를 취했다. 송충이를 제거하기 위한 노력 송충이를 제거하려는 노력은 조선시대에도 마찬가지로 이어졌다. 1403년 태종 임금은 송충이를 잡을 것을 명령했다. 이에 승추부(承樞府), 순위부(巡衛府) 등 여러 관청의 장인과 관리가 사람을 내어 1만 명이 참여하였고, 한 사람이 석 되(升) 정도를 잡아 땅에 묻었다. 태종은 송충이의 재앙은 인력으로 이길 수 있는 것인데, 어찌 신하들은 이를 생각하지 않느냐고 따졌다. 여러 날에 걸쳐 송충이를 잡는 일을 한 끝에 송악산의 여러 골짜기를 제외하고는 ���의 다 잡았다는 보고를 받았다. 송충이를 잡는 일은 본래 승추부의 일이었다.이렇게 송충이를 잡았어도 또 다시 발생하자, 태종, 세종 등은 여러 관청의 관원들과 노비 등을 징발하여 수시로 송충이를 잡게 했다. 한동안 잠잠하던 송충이는 숙종(肅宗, 재위: 1674~1720)과 영조(英祖, 재위: 1724~1776)시기에 다시 큰 피해를 ��혔다. 1685년 숙종은 한성부로 하여금 오부의 군졸들을 다 동원해 경계를 나누어 송충이를 잡아 없애라는 명을 내리기도 했다. 1702년에는 한양 인근 산에서 송충이가 번식하자, 3일 동안 사람들을 뽑아 잡은 송충이의양이 3,972석이나 될 정도로 많았다. 숙종은 송충이를 제거하기 위해 특별히 재앙을 쫓고 복을 빌기 위해 지내는 제사인 기양제(祈禳祭 - 재앙을 쫓기 위한 제사)를 지내기도 했다. 해충 제거와 백성들의 피해 정이품 소나무. 조선시대에 소나무는 궁궐 수리 등의 이유로 특별히 보호를 받기도 했다. 특히 속리산 정이품 소나무는 세조(世祖)에게 도움을 준 인연으로 벼슬을 받았다. 송충이는 소나무를 말라죽게 하는 나쁜 해충이었다. 송충이를 잡기 위해 백성을 동원하다 보니, 백성들의 피해가 커지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했다. 1729년 영조는 ‘송충이를 잡는 일은 폐단이 커서 백성을 상하게 하는 경우가 많으니, 송충이를 잡느라 백성을 상하게 하기 보다는 차라리 금원(禁苑- 대궐 안의 동산)의 소나무 잎을 상하게 하는 편이 낫겠다.’고 하고서, 군졸들을 시켜 사직단 주변의 송충이만을 잡게 하고 나머지는 놔두라고 명하기도 했다.하지만 1755년 한양의 사산(四山- 인왕산, 낙산, 남산, 북악산)에 송충이가 크게 번지자, 군사들뿐만 아니라 백성들도 동원되어 잡았다. 임금의 명이 철저히 지켜지지는 못했던 것이다. 특히 왕릉(王陵) 주변 숲에 송충이가 발생하면, 백성들은 농사일을 제쳐놓고 군사들과 함께 송충이를 잡는 강제 노역에 동원되어야 했다. 송충이는 백성들의 비상시 먹거리인 소나무 껍질을 없애고, 땔감인 소나무를 말라죽게 하는 등 이래저래 백성들에게 피해를 주는 나쁜 벌레였다. 한국사에 익숙한 해충 미국의 작가 펄 벅(Pearl Sydenstricker Buck, 1892~1973)은 그녀의 대표작 [대지(The Good Earth)]에서 중국에서 발생한 메뚜기떼의 피해를 생생하게 묘사한 바가 있었다. 이 때문인지 메뚜기떼의 피해를 중국을 비롯한 외국에서나 볼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었다.20세기 이후에는 방충제(防蟲劑)와 농약(農藥)의 사용으로 인해 해충으로 인한 피해가 크게 줄었다. 하지만 과거에는 우리 조상들의 삶을 위협한 자연재해의 하나로, 해충 특히 누리와 송충이의 피해는 매우 컸었다. 참고문헌: [삼국사기];[고려사];[고려사절요];[조선왕조실록];井上秀雄, [고대조선사서설], 영락사, 1978;문태영, 윤일, [삼국사기의 蝗에 대한 문화곤충학적 해석], [고신대학교 논문집] 5집, 2000;윤일, [조선시대 충청권에서 발생한 황충에 대한 문화곤충학], [자연과��] 13-1, 대전대학교, 2002;문태영, 윤일, 남상호, [역사서에서 곤충기록의 형태], [자연과학] 14-1, 대전대학교, 2003;박해철 외, [조선왕조실록과 해괴제등록 분석을 통한 황충의 실체와 방제 역사], [韓應昆誌] 49-4호, 2010.[삼국사기]에 기록된 광개토태왕의 즉위년은 [광개토태왕릉비문]과 1년 오차가 있다. 따라서 그의 즉위년은 [삼국사기]에 기록된 392년보다 1년 앞당겨 보는 것이 널리 알려진 상식이 되었다. 하지만 고구려 기록뿐 아니라, 신라 측 기록도 1년을 앞당겨서 보아야 한다. 실성이사금의 즉위년은 402년이 아닌 401년이다. 이에 대해서는 필자의 [광개토태왕의 위대한 길], 역사의 아침, 2011년. 53~63쪽 참조.주석 레이어창 닫기 주석 1 [삼국사기]에 기록된 광개토태왕의 즉위년은 [광개토태왕릉비문]과 1년 오차가 있다. 따라서 그의 즉위년은 [삼국사기]에 기록된 392년보다 1년 앞당겨 보는 것이 널리 알려진 상식이 되었다. 하지만 고구려 기록뿐 아니라, 신라 측 기록도 1년을 앞당겨서 보아야 한다. 실성이사금의 즉위년은 402년이 아닌 401년이다. 이에 대해서는 필자의 [광개토태왕의 위대한 길], 역사의 아침, 2011년. 53~63쪽 참조. 테러리스트 서울에 상경한 사현,수현 형제. 고아였던 이들은 경찰이 되겠다는 꿈을 키우며 성장한다. 명석한 두뇌에 완벽한 실행력으로 서울경찰청에서 출세가도를 달리는 형과 이제 경찰대학을 수석졸업한 동생.그러나 이들 형제의 앞길을 동생 수현이 초임지에서 과잉방어란 명목으로 징역형을 선고받으면서 흔들리기 시작한다. 3년형을 마치고 나온 수현은 친구 상철이 범죄조직의 하수인에게 끌려가 죽음을 당하면서 새생활을 시작하려던 그의 결심은 여지없이 짓밟히고 만다. 평생의 꿈과 친구마저 잃은 수현은 직접적인 원인제공자인 암흑가의 보스 임태호란 자를 제거하기 위해, 그리고 젊은이의 건전한 이상을 막다른 골목으로 내몬 뒤틀린 세상을 부수기위해 무법의 테러리스트로 변신한다. 한편 사현은 사회에서 일대 혼란을 일으키는 장본인이 바로 동생 수현이란 사실을 알고 난처해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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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wesome-jominsoo-posts · 4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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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튀클릭 스포츠뉴스] 문태영 계약미체결-제도 폐지, 사실상 '막' 내린 KBL 귀화 혼혈 선수 시대
ICYMI: http://dlvr.it/RXN94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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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c1ey10002 · 4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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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튀클릭 스포츠뉴스] 문태영 계약미체결-제도 폐지, 사실상 '막' 내린 KBL 귀화 혼혈 선수 시대
ICYMI: http://dlvr.it/RXN94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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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kefuqua · 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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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L, '터줏대감' 외국인 선수들의 대기록 달성 이어져
인천 전자랜드의 센터 찰스 로드(200cm)는 지난 12일 서울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린 2018~2019시즌 SKT 5GX 프로농구 5라운드 서울 SK와 원정경기에서 정규 리그 통산 3000리바운드 고지에 올랐다. 현역 선수 중 3000리바운드를 달성한 선수는 애런 헤인즈(서울 SK) 라건아(울산 현대모비스) 문태영(서울 삼성)이다. SK의 source http://articl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23368932&cloc=rss|most_view|spor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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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police-blog · 7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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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월 10일 KBL 경기분석] 창원LG VS 서울삼성
창원LG는 직전경기(3/8) 원정에서 서울SK를 상대로 90-101 패배를 기록하며 2연패에 빠졌다. 이전 경기 태업성 플레이를 보여줬던 켈리가 변화 된 모습을 보이며 자신의 몫을 해냈지만 나머지 선수들의 느슨한 수비는 그대로 였던 경기. 올시즌 수비 중심의 농구를 구사해 왔던 팀 컬러를 버리고 화력전 대결 구도를 펼쳐서는 SK에게 역부족일수 밖에 없었고 1쿼터 10점차 리드를 허용한 이후 상대를 크게 위협하지 못하고 그대로 패배를 맞이했던 패전의 내용. 창원LG는 홈에서 12승14패를 기록했다.
  서울삼성은 직전경기(3/7) 원정에서 부산KT를 상대로 92-90 승리를 기록했으며 직전경기(3/3) 홈에서 모비스를 상대로 93-97 패배를 기록했다. 6강 PO 탈락이 확정 된 상황에서 올시즌 상대전 열세에 있던 KT를 만났고 한때 11점차 리드를 허용하는 힘든 경기를 펼쳤지만 라틀리프가 23점 11리바운드 기록 속에 팀의 중심을 잡아주었고 결승 득점 까지 책임진 경기. 너무 늦은 감이 있지만 문태영(12득점), 김동욱(11득점 5리바운드)이 적재적소에 득점에 성공한 것도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는데 큰 힘이 되었고 이관희, 천기범, 김태술이 많은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팀 어시스트 싸움(25-17)에서 완승을 기록한 승리의 내용. 서울삼성은 원정에서 10승14패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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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dudda · 8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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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캡틴 전쟁' 양희종-문태영, 주장이 시리즈를 지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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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ygoodmoneyco-blog · 8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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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농구,모비스] 모비스의 파죽지세 연승 행진... 판타스틱4 말고도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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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농구,모비스] 모비스의 파죽지세 연승 행진... 판타스틱4 말고도 또!!??
      요즘 경기는 제대로 못보고 있지만 모비스팬으로써 모비스가 잘나가는 모습을 보니 너무나 흐믓한 나날들입니다..
  모비스는 시즌 전부터 우승후보로 일컫어지면서 판타스틱4가 탄생했는데요…
  양동근 – 문태영 – 함지훈 – 김시래로 이어지는 라인 말입니다…
  초반에는 힘을 좀 못쓰는거 아닌가… 호흡이 잘 안맞는거 아닌가 했더니 역시나 유재학 감독님 밑에서
  딱딱 포지션 맞게 적응하니 역시나 최강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함지훈이 공격자 3초룰 때문에 고전하나 싶더니 거기에 맞게 자기 기량을 발휘하고 있고
  문태영은 초반에는 슈팅에 대해 자신감이 없는 모습을 여럿 보여주더니 요즘에는 쏘는 슛마다 쏙쏙 들어가는
  엄청난 골 결졍력을 보이고 있고, 김시래도 아직까지는 최고의 모습은 아니지만 게속 해서 성장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고 있고, 양동근은 에전의 기량은 아니지만 그래도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요….
  현재 이 판타스틱4가 모비스를 이끌고 있지만 또 한명의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 선수가 있지요.
          바로 라틀리프 선수입니다… 초반에 부진하던 모습은 어딜가고 완전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 있는 중입니다. 초반에는 정말 식물용병이다라는 비난을 많이 받았었지만
  차차 좋아지는 모습을 보이더니 이제는 최하위급 용병에서 상위급 용병으로 점점 올라가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아쉬웠던 리바운드 캐치와 득점력도 점차 수치가 높아져
  이제는 평균 득점 12.8점, 경기당 리바운드도 8.4개를 기록하는 중입니다.
기록보다도 합지훈과의 골밑 콤비 플레이를 잘 만들어주면서 호흡을 맞추고 있습니다.
  이러므로, 함지훈의 성적도 향상되고 있고 여기에 영향 효과로 문태영까지 살아나게된
  결국엔 팀에 시너지 효과를 불어일으켰다고 볼 수 있겠지요.. 그렇기 때문에 지금 연승 행진의 주역 중
  라틀리프도 반드시 포함되고 있는 이유 중에 하나가 이 것입니다.
        그리고 연승 행진 속 프로 – 아마 최강전을 보면서 또다른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는 요소들을 또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바로 식스맨들의 활약이 주인데요.
          그중에서도 김동량 선수의 활약이 눈에 돋보였습니다.
  SK전에서 25점 8리바운드 1블록를 기록하면서 자신으로는 커리어 하이를 기록하고 경기에서는
  MVP급 활약을 펼치며 SK에 대승을 거두는데 일조를 합니다.
  지난 시즌에 평균 16분 45초정도 올 시즌에는 6분10초 출전에 그치고 있어 완전히 입지를 못잡고 있던
  김동량으로써는 이번 경기에서의 활약이 자신의 출전 기회를 더 잡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습니다.
  이번 해 2년차를 맞이하고 있는 김동량으로는 기량 향상에 이바지 할 수 있는데 이번 대회를
  기회를 삼았으면 좋겠습니다. 기사를 보니 요즘 슛을 하루 천개 이상을 연습하고 있다고 하니
  정말 노력을 열심히 하고 있구나 생각이 듭니다.. 함지훈 선수가 지칠 때 딱 대체할 수 있는
  카드로 김동량이 잘해준다면 정말 모비���로써는 주전과 식스맨들의 폭을 한층 더 좁히는
  더 무서운 팀을 만들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돌아왔습니다… 모비스 암흑기 비운의 에이스 노경석의 복귀입니다 ㅠㅠ
  오랜 기간 부상으로 재활에 힘을 쓰다 이번 SK전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2010-2011 시즌 평균 11점에 3점슛 한경기 평균 2개를 성공시키는 기록을 냈었죠.
  이 시즌 초반에는 정말 3점슛 성공률 1위도 차지하는 등 3점슛에 대해서는 감이 있는 선수입니다.
  이번 SK전에 부상에서 복귀를 한 첫 경기… 3점슛 3개를 터뜨리는 등 감이 죽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면서 정규시즌에서도 활약을 예고를 했습니다..
  아직까지 몸이 70~80%라고 하니, 100%가 된다면 정말 바구영 선수와 쌍으로 궁수로 양쪽에
  활을 쏜다면… 정말 무시무시하겠죠?? ㅎㅎ
        작년의 그 기량은 아니지만 3점슛 하면 일가견인 박구영과… 식스맨으로써의 쏠쏠한 활약을 해주고 있는
  박종천과 천대현, 12월말 부상에서 복귀하는 이지원까지.. 정말 가드의 카드는 무수히 많아지게 됩니다.
  유재학 감독님으로써는 행복한 고민일듯 하겠지요??
  시즌 초반 양동근 – 김시래 카드로 투입을 시켰다면 이제는 가드의 카드가 풍부해진만큼
  양동근과 김시래를 포가로 1,3쿼터 2,4쿼터로 시간 분배적으로 휴식 안배 충분히 해주면서 출전시키면서
  노경석, 박구영, 천대현, 박종천 등의 가드들을 이제 슬슬 출전 시간을 늘리면서 외곽슛을
  날리게 된다면 정말 에전 모비스의 외곽 3점슛 색깔이 딱 나올 것 같습니다 이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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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wesome-jominsoo-posts · 4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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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튀클릭 스포츠뉴스] 문태영 계약미체결-제도 폐지, 사실상 '막' 내린 KBL 귀화 혼혈 선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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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c1ey10002 · 4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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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sonick · 9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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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농구 처음 출범때부터 우상인 레전드 현역 가드 #주희정 선수와 현재 가장 핫 한 농구선수 #문태영 선수를 코트에서 만나다! 물론 나는 농구가 아닌 입으로 ㅋㅋ #TakeOnSummer (GT Tower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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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c1ey10002 · 4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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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튀클릭 스포츠뉴스] 문태영 계약미체결-제도 폐지, 사실상 '막' ��린 KBL 귀화 혼혈 선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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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wesome-jominsoo-posts · 4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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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c1ey10002 · 4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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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튀클릭 스포츠뉴스] FA 문태영, 삼성과 계약 불발…김창모·양우섭은 원소속팀 잔류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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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wesome-jominsoo-posts · 4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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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튀클릭 스포츠뉴스] FA 문태영, 삼성과 계약 불발…김창모·양우섭은 원소속팀 잔류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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