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방송
Explore tagged Tumblr posts
agaapesblog · 2 months ago
Video
youtube
"한국만 유일하게 일본을 이겼어요!" 일본을 추월한 한국의 경제성장은 아시아의 등불이라는 필리핀 매체의 특집방송 보도되자 경악한 ...
0 notes
hangwangky · 2 years ago
Text
YouTube에서 '❤️❤️❤️더 트롯쇼 김해 특집방송 초대가수 진성' 보기
youtube
0 notes
gohangwangky · 2 years ago
Video
youtube
❤️❤️❤️더 트롯쇼 김해 특집방송 초대가수 인기가수 전유진
0 notes
agtv7004 · 2 years ago
Video
youtube
(여론조사 특집방송] 윤석열 대통령 지지율 40% 돌파에서)
0 notes
sarmmass · 2 years ago
Photo
Tumblr media
홍보) ⚜코리아브랜드 모델선발대회 가요TV 특집방송⚜ 2023년 2월8일 코리아브랜드 모델선발 대회🎎 키즈/미시즈/시니어 만 5세~70세까지 나만의 끼와 꿈을 무대에서 펼칠수있는 기회입니다🎎 🏆주최/주관 코리아브랜드모델조직위윈회 대회장; AI글로벌 그룹 (회장;시게야마) 🏆후원사 --세종대학교-- 법무법인 유스트 🥇🥈🥉협찬사 (주)우리전력기술(태양광) ⚜패션리뷰 ⚜AI글로벌그룹 ⚜루비셀 ♦️공식방송사:가요TV ♦️일정교육이수자:👉활동지원금지급 🎈참여방법: 문자나 카톡(010-9576-7705) 하셔도 되고, 이메일 [email protected] 홈페이지 ; https://koreabrand2022.modoo.at/?link=igdxjd35 🎈H.P:010-9576-7705 #코리아브랜드어워즈 #코리아브랜드 모델선발대회 #세종대학교광개토관컨벤션홀 #프리마켓 #라이브커머스 #에이전시프로필제공 #입상자패션쇼참가 출처: 인스타그램 @owhoo_suwon pc링크: www.instagram.com/owhoo_suwon https://www.instagram.com/p/CnOyiZ9PPCm/?igshid=NGJjMDIxMWI=
0 notes
crowdmovie · 3 years ago
Photo
Tumblr media
MBC 다큐프라임 촬영 환경 관련 아이템 제작을 할 때마다 드는 생각이… 내가 더 많이 공부 하고 더 잘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뿐이다. 나 혼자 어떻게 할 수 있는 문제들은 아니지만, 정확한 펙트를 알고, 사람들에게 전달 하고 싶다. #강북재활용품선별처리시설 #재활용 #esg #경영 #esg경영 #플라스틱프로젝트 #플라스틱 #폐페트병 #재활용 #재생 #플라스틱의재발견 #환경의날 #특집방송 #방송은 6월5일 #기대되는 #2022년 #활동 #촬영 #촬영감독 #크라우드무비 #라이브방송 #유튜버 #인생기록 #아카이브 #유튜브아카이브 #insta360 #인스타360 #인스타360onex #360카메라 #인스타360rs #insta360oners(강북구청에서) https://www.instagram.com/p/Cdxc7R3JWK1/?igshid=NGJjMDIxMWI=
0 notes
skystarsea · 5 years ago
Photo
Tumblr media
ㆍ 모든 일에 감사합니다. ㆍㆍ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예쁘다 예쁘다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멋지게 소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힐링되셨다니 그또한 감사합니다. 갑작스럽게 큰 기쁨 주시니 감사합니다. 엔딩컷으로 장식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한 마음에 그치지 않고 더 큰 휴식과 편안함을 드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ㆍㆍㆍ #하늘별바다펜션 #감사합니다 #mbc전국시대 #무안군 #특집방송 #무안여행 #노을명소 #해넘이 #SUNSET #별다방 #3S바다그네 #경치좋은카페 #경치좋은펜션 #바닷가카페 #바닷가펜션 #사진찍기좋은카페 #쉼터 #휴양지 #휴가지(하늘별바다펜션에서) https://www.instagram.com/p/CB02SsMDklv/?igshid=skqkzpanufk2
0 notes
mbkupdates · 4 years ago
Photo
Tumblr media Tumblr media Tumblr media Tumblr media Tumblr media Tumblr media Tumblr media
H&D @BAE173 Official Twitter 201024
잠시 후 3시 40분! MBC 특집방송 2020 Live in DMZ에 H&D 이한결, 남도현이 출연합니다! 오늘도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HnD #Umbrella #우산 #이한결 #LEEHANGYUL #남도현 #NAMDOHYON #DMZ콘서트
[#이한결] 
팬 여러분 안녕하세요 한결이에요!!! 오늘 DMZ 콘서트 재미있게 보셨나요 그리고 즐기셨나요? 저는 오랜만에 팬분들 앞에서  공연하려고 하니까 너무 떨리더라구요 하지만 떨리는 만큼 2배로 즐겼어요. 또 조만간 빨리 보도록 해요 우리 
  #HnD #Umbrella #우산 #LEEHANGYUL
[#남도현] 
안녕하세요 여러분 남도현입니다. 이번에 저와 한결이형이 dmz 콘서트 무대에 섰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관객분들 앞에 서다 보니 조금 떨렸지만 너무 재미있고 행복했어요. 앞으로 더 많은 기회들이 있었으면 좋겠네요! 항상 감사합니다!! 
  #HnD #Umbrella #우산 #NAMDOHYON
2 notes · View notes
webdraw · 2 years ago
Link
0 notes
agaapesblog · 4 months ago
Text
폴란드 군장성들이 단한명도 열외없이 굳은 얼굴로 시청한 한국무기 특집방송
youtube
0 notes
hangwangky · 2 years ago
Text
YouTube에서 '❤️❤️❤️더 트롯쇼 김해 특집방송 초대가수 강예슬' 보기
youtube
0 notes
army713 · 3 years ago
Text
0 notes
agtv7004 · 2 years ago
Video
(일부러 그랬다고? 비공개 된 그 날..무슨 일이? 110만 돌파 특집방송[김정재 의원 1부]에서)
0 notes
crowdmovie · 3 years ago
Photo
Tumblr media
MBC 다큐프라임 촬영 #블랙야크 #esg #경영 #esg경영 #플라스틱프로젝트 #플라스틱 #폐페트병 #재활용 #재생 #플라스틱의재발견 #환경의날 #특집방송 #방송은 6월5일 #기대되는 #2022년 #활동 #촬영 #촬영감독 #크라우드무비 #라이브방송 #유튜버 #인생기록 #아카이브 #유튜브아카이브 #insta360 #인스타360 #인스타360onex #360카메라 #인스타360rs #insta360oners(블랙야크 BLACKYAK에서) https://www.instagram.com/p/Cdu4eFDpP5y/?igshid=NGJjMDIxMWI=
0 notes
skystarsea · 5 years ago
Photo
Tumblr media
ㆍ 모든 일에 감사합니다. ㆍㆍ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예쁘다 예쁘다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멋지게 소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힐링되셨다니 그또한 감사합니다. 갑작스럽게 큰 기쁨 주시니 감사합니다. 엔딩컷으로 장식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한 마음에 그치지 않고 더 큰 휴식과 편안함을 드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ㆍㆍㆍ #하늘별바다펜션 #감사합니다 #mbc전국시대 #무안군 #특집방송 #무안여행 #노을명소 #경치좋은카페 #경치좋은펜션 #바닷가카페 #바닷가펜션 #사진찍기좋은카페 #쉼터 #휴양지 #휴가지(하늘별바다펜션에서) https://www.instagram.com/p/CB01g-tD1ol/?igshid=1i4ciajqvg4wk
0 notes
sibukun · 4 years ago
Text
타케우치 마리야 “souvenir the movie ~MARIYA TAKEUCHI Theater Live~ (Special Edition)” 인터뷰
타케우치 마리야의 첫 영상 작품 “souvenir the movie ~MARIYA TAKEUCHI Theater Live~ (special Edition)”이 11월18일에 발매됐다.
“souvenir the movie ~MARIYA TAKEUCHI Theater Live~”는 2000년에 개최된 18년만의 라이브 “souvenir”와 2010년의 “souvenir again”, 2014년의 “souvenir2014”의 베스트 씬을 담은 영상 작품이다. 2018년 11월에 극장 공개되어 14만명을 동원, 흥행 수입도 3억엔을 돌파하는 등 음악 영화로서는 기록적인 히트였다. 패키지 판에는 극장 상영된 영상에 더해 지금까지 제작된 뮤직비디오를 수록. 남편이자 프로듀서이기도 한 야마시타 타츠로와의 스페셜 대담을 게재한 북클릿도 수록하여 팬들이 군침을 흘릴 내용이다.
음악 나탈리에서는 본작의 발매를 앞둔 타케우치 마리야에게 인터뷰. 커리어 42년 만에 첫 영상 작품을 발매하게 된 경위나 “절친”이라는 야마시타 타츠로와의 관계, 시대나 국경을 초월하여 리바이벌 히트 중인 「プラスティック・ラブ」 등 가득히 이야기를 들었다.
11년만의 TV 출연과 “홍백” 첫 출장
-이번에 발매되는 “souvenir the movie `MARIYA TAKEUCHI Theater Live~”는 2018년에 극장 공개된 라이브 다큐멘터리 영화와 지금까지 발표된 뮤직비디오를 수록한 작품입니다. 2018년 11월에 데뷔 40주년을 맞이하여서는 앞서 언급한 다큐멘터리 영화 공개는 물론, NHK 특집방송「竹内まりや Music&Life」나 「NHK紅白歌合戦」에 출연하는 등 뭔가 뚜껑이 열린것처럼 활동이 활발해졌습니다.
“souvenir the movie”는 40주년을 맞이하여 제작한 작품인데 이후의 전개는 스스로 적극적으로 넓혀보기로 마음 먹은 것은 아닙니다. 홍백의 출연에 대해서는 NHK의 스탭분들로부터 열의가 담긴 장문의 편지를 받은 것이 계기였습니다.
-어떤 내용이었습니까?
편지는 “Music&Life”를 함께 만든 스탭분에게 받았는데 이 방송에서 노래했던 「いのちの歌」가 다양한 곳에 퍼지기 시작한 것도 있고 해서 이 노래를 어떻게 해서든 전국으로 전달하고 싶다는 열망이 적혀있었습니다. “Music&Life”에서는 스웨덴 로케이션을 한 것도 있어서 방송 스탭분과 지낸 시간이 길었는데 모두 정말로 성실한 분들 뿐이었습니다. TV 미디어와는 선을 그은 타츠로와 달리 저는 원��� TV에 출연하여 노래했던 사람이라서 절대로 안 된다는 것도 없었고 그들에게 이 정도의 열의를 받은 이상 이 요망에 응하고 싶었습니다. 게다가 2019년 말에 홍백에 출연하는 것은 40주년을 근사하게 마무리하는 걸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모님에게 효도한다는 의미에서도.
-과연. 홍백에서는 「いのちの歌」에 얽힌 에피소드나 사진을 모집하는 기획도 열렸습니다.
방송에 도착한 「いのちの歌」에 관한 여러분의 인생의 이야기에는 감동했습니다. 저마다 이 곡에 대한 마음을 이해한 가운데 홍백에서 노래하는 것은 어떨까, 라는 제안을 받고서 그렇다면 괜찮다는 생각에 수락한 것도 있었습니다. 우연히 그런 흐름이 작년에 겹쳐서 활동이 무척 활발해진 것처럼 보인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하는데 그렇다고 해서 자신의 활동에 대한 입지가 크게 바뀐 것은 아닙니다. 원래부터 TV에 출연하지 않았던 사람이라면 분명 일련의 TV 출연도 없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단지 그것을 오랫동안 선택하지 않았다는 감각입니다.      
그 극장용 라이브는 소프트로 출시해야 할 작품
-그런 가운데 이번에 발매되는 “souvenir the movie”는 40년 이상의 경력을 가진 마리야 씨가 처음으로 발표하는 영상 작품이 됩니다.
원래 이 “souvenir the movie”를 제작하려고 생각한 것은 타츠로의 극장용 라이브 (2012년에 극장 공개된 “야마시타 타츠로 시어터 라이브 PERFORMANCE 1984`2012”)가 무척 좋아서였습니다. 물론 실제 라이브와는 다르지만 지금까지 타츠로의 콘서트를 본 적이 없는 사람이 1984년부터 2012년까지 그의 라이브 활동을 스크린으로 몰아서 볼 수 있는 것은 무척 의의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라이브를 자주 하지 않았던 사람이기에 그의 극장용 라이브에 근접한 형태로 라이브 영상을 영화화하는 것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그래서 2000년, 2010년, 2014년에 촬영한 라이브 영상을 40주년에 맞춰서 공개하자는 움직임을 보이게 됐습니다. 감사하게도 “souvenir the movie”의 극장 상영이 호평을 받아서 상영 기간을 연장하기도 했는데 “내가 사는 곳에는 영화관이 없어서 못 봤다” “타츠로 씨가 라이브 영상을 패키지로 내지 않는 것은 이해하겠는데 마리야 씨는 적어도 내 주면 안 될까?”라는 소리가 “선데이 송북”(JFN 계열에서 방송되는 라디오 방송 “야마시타 타츠로의 선데이 송북”)에 한 가득 도착했습니다. 그랬더니 “자기는 메인이 아닌 백밴드니까 상관 없다”고. 코로나의 영향으로 라이브도 열지 못하고 팬 여러분은 분명 집에서 Netflix를 보거나 하겠죠. 그렇다면 “souvenir the movie”를 집에서 볼 수 있으면 좋지 않을까 라고 코로나에 의한 자숙이 패키지화를 재촉한 부분도 크게 있습니다.
-그랬었군요.
타츠로가 제법 찍혀서 그걸 그가 승낙할지 어떨지가 문제였습니다. 저 자신은 결혼 후 3번밖에 라이브를 하지 않았으니까 그 적은 무대를 기록으로서 여러분에게 전달할 수 있다는 것에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 이유입니다. 결과적으로 이 타이밍에 발매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참고로 2000년에 라이브를 했을 때는 패키지화의 제안은 없었습니까?
전혀 없었습니다. 저희는 90년대 후반 즈음부터 뮤직비디오마저 만들려고 하지 않았으니까요(웃음). 시대의 추세에 맞춰 서서히 뮤직비디오는 만들기 시작했지만 당시에는 라이브 영상을 소프트화한다는 발상은 없었습니다. 다만 라이브를 할 때는 매번 기록용으로 몇 대의 카메라로 촬영하고 있습니다. 타츠로도 모든 투어를 기록용으로 촬영합니다.
-자신들의 퍼포먼스를 체크하기 위해서?
그렇습니다. 어떤 식으로 노래가 닿고 있는지, 어떻게 반주가 들리는지 멤버 배치는 어떤지 그런 것을 체크하기 위해서 소리 뿐만 아니라 영상도 확인할 수 있도록 카메라는 돌리고 있습니다. 뭐, 저는 그렇다치고 타츠로의 그 극장용 라이브는 반드시 소프트로 출시해야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얼마나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는데?”라며(웃음).
-부디 설득 부탁드립니다.
그게 말이죠, “내가 죽고 나서 내면 돼”라고 말하고 있어요. 죽고 나서 내는 것과 지금 내는 거랑 무슨 차이가 있는 것인지 모르겠지만요. “souvenir the movie”의 북클릿 대담에서도 그 부분은 강력하게 주장했어요. 타츠로의 라이브는 티켓을 구하는 게 어지간히 쉽지 않아서 실제 무대를 보지 못한 팬도 많습니다. 그러면 적어도 집에서 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자고. 하지만 타츠로는 그래서는 라이브를 본 게 아니라고 말합니다. 왜냐면 되돌리거나 맥주를 가지러 가거나 화장실에 가거나 하는 등올 중단하지 않냐고. 자기도 그렇게 남의 라이브 영상을 보면서(웃음).
-(웃음). 하지만 마리야 씨가 타츠로 씨와 교섭하여 무사히 “souvenir the movie”가 발매되게 되어 정말로 다행입니다.
감사합니다. 이 날 밖에 내지 못했다고 본인도 말하는 「プラスティック・ラブ」의 타츠로의 롱톤을 기왕 기록했으니까 그 곳에 계시지 않았던 분들에게도 보여주자고 말이죠. 그가 얼마나 제 노래를 얼마나 소화해내는지도 포함해서요(웃음).
7년만의 투어는 타츠로가 여유 있을 타이밍에
-마리야 씨 자신은 영상 작품을 출시하는 것에 전혀 저항이 없었습니까?
네. 영화를 제작한 시점에서 그건 각오하고 있었습니다. 영상 작품을 내는 것에 만약 저항이 있다면 뮤직비디오도 만들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팬의 시선에서 생각했을 때 무척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라이브 영상이 있다면 보고 싶은 것이 당연하잖아요. 저는 가령 예전에 The Beatles의 라이브 영상이 부틀렉으로 출시되면 구입해서라도 보고 싶어하는 타입이어서요. 그런 의미에서 영상 작품을 출시하지 않는 것은 팬에 대해 그다지 친절하지 않은 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듭니다. 이번에는 2010년, 2014년의 영상도 정리하여 하나의 콘서트의 형태로 보여드리면 좋겠다고 생각하여 이런 구성이 되었습니다. 저희가 늘 레코딩에 사용하는 스튜디오를 소개하는 것도 흔치 않은 기회여서 라이브 영상의 사이에 끼워넣을까 하는 아이디어는 제가 냈습니다.
-일상의 영상도 볼 수 있는 것은 선물과 같았습니다. 마리야 씨가 레코드 가게에서 레코드를 고르는 모습 같은 건 어지간히 볼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그 장면은 마침 스틸 사진을 찍으러 로스앤젤레스에 갔을 때에 영상도 돌렸어요. 그런 영상을 휴식같은 감각으로 끼워넣는 것으로 인해 영화로서의 기승전결이 생기지 않을까라고 스탭과 상담을 나누며 구성을 정해 나갔습니다.
-하지만 마리야 씨가 그 정도로 팬의 심리를 이해하고서 팬에게 친절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계셨으면 요 40년 간 좀 더 라이브를 하거나 TV에 출연하셨어도 괜찮았던게 아닌가? 라고 생각합니다만.
아니요, 그건 물리적, 정신적으로 무리였습니다. 저는 야마시타 타츠로의 음악의 팬이기 때문에 그의 활동을 저지하면서 자신의 활동을 우선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저는 이미 그가 밴드 마스터로서 그의 밴드가 아니면 노래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그가 투어를 하게 되면 그의 신체적 여력을 빼앗게 됩니다. 그러면 몇 년에 1장 앨범을 만드는 것만 사수하면 돼, 그걸로 충분하다는 생각이 늘 있었습니다. 타츠로도 밴드의 멤버 교체나 레코딩 기술의 변화라던가 다양한 사정을 떠안은 가운데 오래도록 라이브 활동을 쉰 시기도 있고 나서야 2008년부터 겨우 정기적으로 라이브를 할 수 있게 됐습니다.
-과연. 그럼 마리야 씨의 추후 라이브 예정은 아직…?
아니요, 7년 만에 라이브를 하게 됐습니다. 코로나의 영향도 있지만 2021년 봄에 할 예정입니다. 타츠로가 여유 있을 타이밍에.
-여러 절충 가운데 이 라이브의 숫자였군요. 잘 알았습니다.
그렇습니다. 2000년에 겨우 무대에 선 것도 아이가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입니다. 원래 아티스트로서 이어가기에는 너무 느린 페이스의 활동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이 저에게는 딱 좋았고 타츠로의 경력을 확보한 가운데 이어갈 수 있는 방법이 이런 형태였습니다.
-영상 작품으로서 패키지화 된 자신의 라이브를 보고서 감상이 어떠셨습니까?
당시의 긴장감이나 관객에 대한 감사의 마음, 노래한 곡에 따른 심정은 뚜렷히 되살아나네요. 2000년의 라이브는 아오쨩(2013년에 세상을 떠난 드러머인 아오야마 준)이 연주한 것도 포함하여 일종의 감개무량을 느끼며 봤습니다. 아오쨩의 앞에 타츠로가 서서 기타를 연주하는 오프닝에서 “이 장면은 앞으로 두 번 다시 보지 못하는구나”라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긴장하여 불안해하는 감정이 전달되어 당시를 떠올리니까 그다지 차분하게 볼 수 없는 느낌입니다. 그렇기에 타츠로가 「プラスティック・ラブ」의 후반에 거침없이 노래하는 장면은 안심했습니다.
어렵기에 대중음악은 재미있다
-「プラスティック・ラブ」로 말하자면 40주년의 흐름과 마침 병행하는 형태로 세계적으로 퍼져나가는 현상이 있었습니다.
신기한 현상이죠. 그에 대해서는 타츠로와 “여우에 홀린 것 같네”라며 말합니다. Night Tempo 씨가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던가, 그런 흐름은 알고 있지만 어째서 그렇게까지 해외에 퍼져 나간것인지는 분석되지 않습니다. 저도 「プラスティック・ラブ」는 제 곡 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트랙 중 하나라서 실로 감사한 현상이지만요. 외국의 젊은 사람들이 일본어인 그 곡에 그토록 많은 덧글을 다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곡이 빚어내는 그루브에 상실한 시대에 대한 향수를 느끼는 것일까요? 그들이 능숙한 일본어로 노래하거나 춤추는 영상 등을 보면 깜짝 놀랍니다.
-그렇네요. 어떻게 해석하여 받아들이는지 말이죠. 일본의 80년대 음악을 모르는 젊은 사람들이 새로운 것으로서 듣는 인상도 있네요.
아날로그 레코딩이 가지는 음압감이나 4비트의 드럼 머신이 아닌 드럼이나 베이스가 가진 힘이 그 리듬 섹션에는 있지요. 게다가 현악이나 관악을 포함한 타츠로의 세련된 어레인지의 80년대적인 그루브에 반대로 새로움이나 진귀함을 느끼는 것이겟죠.
-이번 영상에서 타츠로 시가 마리야 씨와 같은 특수한 활동 형태로 여기까지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드문 사례라고 말씀하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서 저는 음악 자체의 퀄리티를 철저하게 추구하는 “상업음악”인 대중음악을 계속 만들 수 있었기에 마리야 씨의 이 40년이 존재했다고 해석했습니다.
그가 그런식으로 만들었다는 말이겠죠. 저는 제 안에서 생겨나는 언어와 멜로디를 맡기고 그가 프로듀서, 어레인저로서 대중성을 얻을 수 있는 형태로 구현화했습니다. 그것은 즉 그가 그렇게 만들어 왔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프로듀스의 묘미라는 것이겠죠. 대중음악을 만드는 가운데 힘든 것은 자신은 좋다고 생각하는 악곡이 반드시 세상에서 먹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어느 정도 사람들의 바람에 부응할 수 있는지는 늘 딜레마입니다. 적당한 상태를 모색하면서 곡을 만드는 것인데 완전히 자유롭게 해도 괜찮다면 자기만족의 음악을 만들면 됩니다.
하지만 자기만족으로 성립하지 않는 것이 대중음악의 어려운 부분이으로 그것을 신념을 가지고 해 온 역사를 타츠로의 음악 속에서 저는 느낍니다. 슈거 베이브라는 일종의 서브컬쳐적인 밴드에서 시작한 그의 경력이지만 “RIDE ON TIME”등으로 알려질 때까지의 작품도 저는 무척 좋아합니다. 하지만 그는 “언제까지나 ‘여름이다 바다다 타츠로다!’로는 절대로 뒤로 이어질 수 없어” “자신의 언어로 자기 철학을 전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어”라고 생각한 듯하여 스스로 가사를 쓰게 됐습니다. 그 중에서도 앨범 곡인 「クリスマス・イブ」가 큰 대중성을 얻은 것은 그에게 그 발상이 옳았다는 확신을 가지게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원래는 똑똑한 사람에게 먹힐 음악을 초보에게도 알 수 있도록 전달하는 방법을 TV에 출연하거나 영상 작품을 내지 않고서 발견했습니다. 드라마나 영화의 타이업은 있었지만 나머지는 “선데이 송북”만 미디어 창구로서 음악을 전달하고 라이브를 이어가는 그 자세가 음악가로서 활동하는 가운데 이상형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송라이터로서의 마리야 씨는 널리 요구되는 대중성과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의 괴리가 그 정도로 심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애시당초 대중성이 있는 것을 근본적으로 가지고 계신 분일까라고.
어떨까요? 저는 이 가수라면 이런 곡을 노래하면 어떨까라며, 전문 작곡가적인 자신을 즐기는 부분이 있습니다. 청취자가 타케우치 마리야라는 가수에게는 어떤 노래를 추구하는지, 라는 식의 분석하는 것을 좋아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 지금 65세인 그 가수에게 어떤 곡을 부르게 하면 재밌을지 객관적으로 보는 또 한 명의 자신도 있고 지금까지 그런 식으로 시도하면서 했다고 할까요?
가령 「シングル・アゲイン」같은 곡은 확실히 히트할 것 같지만 낼 지 말 지 망설였습니다. 「プラスティック・ラブ」가 팔린다면 ‘해냈다!’라고 생각하지만 「しんぐる・あげいん」같은 가요곡 무드의 가사와 곡은 과연 제가 지향하는 팝스라고 부를 수 있는가, 그런 점은 자신과의 충돌이네요.
하지만 노래는 사람들의 것이 되었을 때에 저 자신을 떠나 성장하는 것이라서 첫 예상을 한참 넘어버리는 악곡으로 바뀌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 곡이 어떤 곡조인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청취자에게 있어서 그 노래와 함께 상기되는 감정이나 추억이 각자의 안에서 생겨나는 것에 의미가 있습니다. 그 공약수가 큰 것이 히트곡인것이죠.
-과연.
그래서 지금도 라이브에서 「不思議なピーチパイ」를 노래하면 관객 모두가 박수를 치면서 함께 노래합니다. 「不思議なピーチパイ」는 저에게 있어서 첫 히트를 안겨다 준 의미에서는 무척이나 크고 물론 좋아하는 곡이지만 이 노래보다 감정이입이 깊은 곡도 그 밖에 여러가지가 있으니가요. 하지만 “피치파이를 기다렸습니다!”라는 분들의 마음은 무척이나 잘 알고 있고 히트곡을 가진다는 것은 그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기만 만족시키면 OK라는 곡은 없는 것이고 상업음악은 최종적으로 들어줄 때 성립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부분은 계속 추구하지 않으면 안 되고 그것이 어렵기 때문에 대중음악은 재밌는 것입니다.
-말씀을 들어보면 마리야 씨의 안에는 팬의 시선같은 것이 뿌리 깊이 있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팬의 시선이라기보다 자신이 음악 리스너로서 좋아하는 음악을 들었을 때에 어떻게 느끼는지를 생각하면 스스로 그렇게 이끌려가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저 자신이 저를 얼마나 정확히 분석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가령 타츠로의 음악이라면 좀 더 객관적으로 들을 수 있다던가 하는 것은 있습니다.
「不思議なピーチパイ」와 “September” 「五線紙」이외는 라이브 첫 무대
-저는 올해 46세인데 「駅」나 「シングル・アゲイン」을 학창 시절에 실시간으로 듣고서 가요곡이 가지는 서정성에 끌려서 마리야 씨의 음악에 흥미를 가졌습니다. 「シングル・アゲイン」을 듣고 싶어서 “화요 서스펜스 극장”을 보는 감각으로 말이죠(웃음). 그 후, 슈거 베이브의 재발매판 등을 통해 과거의 작품을 발굴하는 가운데 “Sweetest Music”과 같은 소울풀하고 팝적인 곡이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렇군요! 의외네요. 「シングル・アゲイン」은 말이죠, 아무리 끈적한 멜로디여도, 질척거리는 가사여도 야마시타 타츠로가 어레인지하면 반드시 단순한 가요곡으로 끝나지 않는 것을 알기 때문에 쓴 곡이기도 합니다. 「駅」의 트랙에는 독특한 그루브가 있어요. 중후한 드럼과 베이스에 더해져 타츠로의 그 기타 커팅, 게다가 핫토리 선생님의 훌륭한 현악과의 절묘한 앙상블을 연주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타츠로에게 맡기면 아무리 끈적한 멜로디라도 거기에 자연스럽게 팝 적인 뉘앙스가 더해집니다. 「告白」도 타츠로의 어레인지가 아니었으면 그렇게 세련된 비트감이 있는 곡으로 완성되지 않았을겁니다.
-「駅」는 칸초네처럼 들리니까요. 「駅」와 「シングル・アゲイン」은 이 작품에도 담겨있는데 과거에 시대를 풍미한 히트곡을 라이브로 부르는 것은 어떤 감각입니까?
「不思議なピーチパイ」와 “September”는 TV에서 계속 불렀던 곡으로 「五線紙」는 독신 시절의 라이브에서 자주 불렀던 곡이지만 그 이외에는 레코딩 이후 처음으로 부르는 곡 뿐이어서 리허설이 힘들었습니다.
-그리고보니 그렇네요. 결혼 후에는 계속 라이브가 없었으니까요.
「家に帰ろう」나 「元気を出して」도 처음 불렀습니다. 「カムフラージュ」의 인트로의 다중 코러스는 테이프밖에 재현할 수 없겠다 싶어서 그걸 재생시키고 노래하는 등 여러모로 첫 도전인것 뿐이었습니다. 몸에 익숙한 곡은 「不思議なピーチパイ」와 “September”가 전부일 정도로요(웃음). 저에게 있어서는 초연이었지만 밴드는 거의 레코딩 멤버 그대로라서 원곡에 가까운 소리로 노래할 수 있는 것이 강점이었습니다. 라이브 초연 작품을 그런 형태로 재현할 수 있어서 행운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생활을 평범하게 영위하는 것이 우리들에게 있어서는 스탠다드
-지금까지 들은 다양한 이야기에서도 타츠로 씨의 이름이 나왔는데 이 영상 속에서 타츠로씨에 대해서 ‘잃고 싶지 않은 가장 절친한 친구’라고 말씀하시는 부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 후에 “Let It Be Me”를 두 분이서 부르는 것도 좋았습니다.
타츠로와의 관계를 나타내는 가장 적절한 단어는 ‘절친한 친구’라고 생각했습니다. 2000년의 부도칸 앵콜 마지막에 “Let It Be Me”의 듀엣을 세트리스트에 삽입한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정해져 있었습니다. 영화에서는 전 곡인 「リンダ」와의 사이에 무언가 삽입하고 싶어서 여기에 타츠로에 대한 코멘트를 넣었습니다.
-상당히 특별한 관계네요.
그런가요? “같은 업종의 사람과 결혼하는 것은 어렵지 않나요?”라고 자주 질문했는데 반대로 업종이 같으니까 잘 풀리지 않았나라고 저는 느끼고 있었어요. 우리들은 무척 평범한 인간입니다. 뻔할 정도로 평범한 사람끼리니까 절친한 친구로 있을 수 있는거겠죠. 커리어적으로는 60대나 되면 엄청난 대원로 취급을 받을지도 모르겠지만 서로 평범한 감각으로 존재하는 동료니까 잘 하고 있다는 기분이 듭니다.
타츠로는 천재적인 뮤지션이라고 생각하지만 노력가이기도 하니까요.잠재적인 천재에 노력이 더해진 뮤지션이니까 그에 대한 존경도 있고. 음악면에서는 그가 이끌어 간다 쳐도 다른 부분에서는 제가 이끌어 가는 부분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서로 보완하는 관계니까 우정이 오래 지속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두 분은 요지부동의 “대원로 뮤지션”이지만 동시에 평범한 생활을 누리는 사람으로서의 시선을 가진 느낌이 엄청나게 듭니다.
인간 생활을 그저 평범하게 영위하는 것이 우리들에게 있어서는 스탠다드입니다.
-타츠로 씨도 마리야 씨도 쇼 비즈니스의 세게에 완전히 담그지 않고 축이 되는 부분은 어디까지나 평소의 생활에 제대로 두고 계시네요. 그렇기에 자녀가 어리니까 아직 콘서트는 하지 말자라던가 그런 사고방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니요, 그건 단지 육아가 재미있어서 우��한 것입니다. 확실히 아이를 베이비 시터에게 맡겨서라도 라이브를 하고 싶다는 사람이 쇼 비즈니스적으로는 알맞겠죠. 그런 의미에서 저는 음악 비즈니스에는 맞지 않는 부분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분석하여 저에게 맞는 독자적인 방식을 선택해왔습니다. 무리를 해도 반드시 계속되지 않는 것은 제가 가장 잘 알고 있으니까요. 그리고 그 방법때문에 지금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활동 중지 후의 복귀작이었던 “VARIETY(1984년 4월 발매 앨범)”를 출시했을 때, 저는 배가 크게 불러서 거의 프로모션을 할 수 없었습니다. 「不思議なピーチパイ」의 히트로부터 4년의 공백을 둔 발매여서 주변도 그다지 기대하지 않았는데 뚜껑을 열어보니 “Portrait(1981년 10월 발매 앨범)”보다 훨씬 더 팔렸습니다. 말 없는 청취자의 존재를 실감한 순간이었습니다. 정말로 고마웠습니다. 작품을 진지하게 전하면 그 곳에는 들어주는 사람이 존재한다고 믿을 수 있는 계기를 “VARIETY”가 줬습니다. 이 정도의 사람이 앨범을 들어줬다면 라이브는 하지 못하더라도 그 사람들을 배신하지 않는 작품을 만들기도 마음 먹었습니다. 그래서 그 후에도 육아와 병행하여 “REQUEST” “Quiet Life”와 같은 앨범을 계속 낼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야말로 타츠로 씨가 영상에서도 말씀하신 내용이군요. 라이브 같은 팬 서비스의 자리가 없더라도 팬이 이탈하지 않은 것은 마리야 씨의 음악 그 자체의 강도를 증명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굳건한 음악만 있다면 비즈니스가 성립됨을 증명한 것이 마리야 씨의 40년이 아닌지.
강도가 센 음악을 한다는 자각은 없지만 음악을 음악으로써 전달하고 싶은 강한 욕구는 있으니까요. 그래서 타츠로가 TV에 출연하지 않고 라디오를 소중히 여기는 이유도 압니다. 옛날에 “RIDE ON TIME”이 히트했을 때 그가 거리를 걷고 있을 때 “사인 해 주세요”라고 말을 건 사람이 있었는데 옆 사람이 “이 사람 누구야? 유명한 사람이야?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덤으로 나도 사인 받을래(웃음)”하는 체험이 있었다고 합니다.
타츠로는 자신이 어떤 음악을 하는 지도 모르는 누군가에게 유명하다는 이유로 인지되는 존재는 되고 싶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그런 대중성이라면 필요없다는 말이겠죠. 그래서 귀에 들려오는 것을 가장 신용하고 있고 결국은 콘텐츠야말로 가장 중요하니까 몇 십년이 지나도 퇴색되지 않는 오케스트라를 만들지 않으면 못 쓴다고 늘 말합니다.
이야기가 돌아가지만 「プラスティック・ラブ」의 해외로의 확산세도 의도하지 않게 타츠로의 말을 증명하는 듯한 형태가 됐네요. 그러니까 그가 그렇게 보편적인 어레인지를 한 악곡, 가령 「駅」나 「元気を出して」같은 곡도 지금의 젊은 사람들이 들어도 위화감 없이 노래방에서도 부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말씀하신 ‘강함’이라 함은 곡에 부수되는 가수의 캐릭터라던가 그런 부분을 제외하고한 곡 그 자체의 설득력에 대한 것이군요. 그 음악 자체가 추구하는 상태라고 할지.
그렇네요. 그런 강함은 의도한다고 쉽게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닌 자신이 좋다고 생각해서 만드는 것이 우연히 그 강도를 가지게 되면 더할 나위 없겠다고 생각합니다.
-마리야 씨도 타츠로 씨도 인기 비즈니스가 아닌 어디까지나 작품이나 퍼포먼스를 소중하게 여기시네요. 그것은 연예계의 정신 없는 주기에서 의식적으로 거리를 둠으로서 얻게 된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합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것으로 화제를 우선하는 방식을 계속하면 피폐해지니까요. 자신이 어떻게 존재하고 싶은지 생각했을 때에 마음이 편한 쪽을 선택하면 제 자신이 곧 그렇게 된다는 감각일까요? 인기를 얻는 노하우가 가령 100개 있다고 할 때 그 안에서 그 때의 저에게 있어서 필연성이 있는 것이라면 1개를 시험해보는 식의 임기응변은 있어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저에게 있어서의 홍백 출연같은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정도로 출연을 원해서 부탁한 스탭의 열의에 제가 응하지 않아서 마음이 괴로운 쪽이 안 나가도 되겠지라는 마음을 이기는 경우도 있는거라서요. 그래서 이번에 “souvenir the movie”를 낸 것도 팬 여러분의 마음에 응한다는 마찬가지 이유겠지요.
75세가 됐을 즈음 로큰롤을 노래하고 있다면
-”souvenir the movie”의 이야기로 돌아갑니다만 영상에서 마리야 씨는 40년간에 대해 말씀하신 뒤에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라고 이어서 덧붙이셨는데 사실은 굉장히 무게감 있는 표현입니다. 40년을 이어온 가운데 한층 더 “앞으로도”라는 동기부여가 있다는 것은 굉장한 것이라고. 이 만큼 오래했으니까 언제 은퇴해도 될 거라고 생각하는게 보통입니다. 그렇기에 “앞으로도”는 굉장히 기쁜 표현이었습니다.
그것은 자신에게 계속 하기 위해서 의식적으로 그렇게 말하네요. 생각해보면 저도 이미 전기고령자에 편입했는데(웃음), 어떤 형태이건 음악은 계속 하고 싶습니다. 노래는 부르지 못하게 되도 곡은 계속 쓴다던가, 음악과 관련된 삶을 누리고 싶은 의사가 있는 한 그것을 표명하자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말한 것도 피폐해지지 않는 형태로 활동을 계속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고 싶은 것은 아직도 있지만 예전보다 저에게 남은 시간은 짧아졌습니다. 그 가운데 그것을 실현하는 것은 어떤 각오가 필요하니까요. 그래서 저는 앞으로도 자신의 페이스로 이어갈 것이니 지켜봐주세요, 라는 까닭으로 말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고 싶은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입니까?
이벤트적인 것보다도 음악의 표현 부분이네요. 가령 제가 75세가 됐을 즈음에 어떤 종류의 곡을 부르면 재밌을지 막연히 생각합니다. 거친 로큰롤을 그 나이에도 노래하고 싶다던가(웃음). 저희들같은 이런 중간을 취하는 음악이란 반대로 뭐든 가능해서 자신 안에 있는 다양한 음악의  편린을 다양한 ���식으로 발현하여 그런 것을 모두 해보고 싶습니다. 록, 재즈, 소���, 보사노바, 포크도 좋아하는 음악의 요소를 자신의 필터를 통과한 팝스라는 형태로 만들고 그것을 한층 더 나이 먹은 제가 어떤 표현과 함께 그것을 전할 수 있을지 제가 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또 타츠로가 어떻게 프로듀스할지, 혹은 다른 프로듀서와 시도하는 것도 있겠지 라며 그런 것을 생각하는 것이 즐겁습니다.
-혹시 아무런 족쇄 없이 마음대로 작품을 만들면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완전히 마음대로 10곡 정도 만든다면 말이죠? 그러면 제약이 걸린 또 한 장의 앨범과 세트로 낼까요(웃음). 역시 자기만족으로 끝나고 싶지 않아요. 제대로 모두가 기뻐할 수 있는 것을 만든 가운데 괜찮다면 이쪽도 들어보세요라고.
-자기만족만의 작품을 내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까?
그렇게 하면 많은 사람에게 전달되지 않기 때문에 내는 의의가 없어요. 하고 싶으면 맘대로 집에서 노래하면 될 일이니까요.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팝스는 사람들이 들었을 때 처음으로 팝스로 부를만한 것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자부심이나 자기과시욕뿐 아니라 어딘가에서 이타의 정신이 없으면 대중음악은 이어나갈 수 없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나의 변화는 아마 소리에 나타난다
반대로 저도 질문을 하고 싶은데 나탈리에서 여러 인터뷰를 진행하는 가운데 다른 뮤지션 분들은 스트리밍 중심이 된 현재 음악의 청취 방법이나 변화 등을 수용하고 있습니까?
-그에 관해서는 정말로 다양합니다. 레코드나 앨범의 개념이 없어지고 있는 상황을 긍정적으로 보는 분도 있는가 하면 그것을 버리고 싶어하지 않는 분도 계십니다. 반대로 앨범이라는 개념이 원래 없었던 젊은 분들이 앨범으로 표현하는 것에 흥미를 가지거나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곡 단위로 구입 가능한 시절이니까요. 스스로 자유롭게 플레이리스트를 편성한다던가 말이죠. 그래서 국의 순서는 상관 없어질테고 앨범이란 컨셉은 더 이상 필요없다던가.
-그렇네요. 라이브에 관해서도 무관객이라는 스타일에 아무래도 납득하지 못하는 아티스트도 있는가 하면 반대로 적극적으로 스트리밍 라이브만의 매력 포인트를 즐기는 분도 있습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코로나 사태로 인해 악곡의 제작 방식에도 변화가 있는 듯 한데 라이브에서의 표현을 주체로 하는 록밴드가 라이브를 상정하지 않은 작품을 낸다던가 말이죠. 세상의 변화에 의해 음악적인 무브먼트에도 변화가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숙기간을 거쳐 내성적으로 바뀌기도 하네요. 창작은 반드시 그런 사회상황의 영향을 받는다고 생각해요. 얼마전 우연히 테일러 스위프트의 새 앨범 “folklore”를 들어봤습니다. 테일러 스위프트라고 하면 팝이면서 밝은 아가씨라는 이미지를 멋대로 가지고 있었는데 이 앨범은 이전보다 훨씬 내성적이라는 느낌입니다. 음상의 제작 방식도 가사도 지금까지와는 달랐고요. 사전 선전도 예고도 없어 발표한 그런 작품을 제대로 듣는다는 것은 청취자들도 코로나 사태로 명백히 심리 모드가 바뀌었구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코로나 사태의 상황에서 테일러 스위프트처럼 마리야 씨 자신도 스스로의 창작성에 변화가 있었습니까?
바뀌었는지 아직 자각은 없지만 곡을 쓰고 싶은 동기로써 자숙기간에 물리적으로 남아 도는 시간이 생긴 것 자체가 큰 변화였네요. 하지만 이런 상황이니까 그에 얽��는 것을 직접적으로 노래로 표현하자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언젠가 눈치를 채면 무언가가 제 안에서 바뀌었을지 모르겠습니다. 가령 보다 심플한 소리를 좋아하게 됐다던가, 반대로 스트링이 한 가득 들어간 근사한 소리를 좋아하게 됐다던가 할 지도요. 저의 그런 변화는 아마 소리에 나타날 거라 생각합니다. 코로나 사태가 가져다 준 이 상황은 어느 뮤지션에게나 여러모로 힘들겠지만 업계 전체의 변화를 포함해서 음악으로 먹고 사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음을 느끼네요.
-어떤 뮤지션은 코로나 상황을 보고서 예전처럼 세밀한 음표에 말을 한 가득 담아내는 것이 불가능해졌다고 말했습니다. 하나 하나의 소리를 길게 취하는 듯한 곡 밖에 쓰지 못하게 됐다고.
그건 대체 뭘까요? 굉장히 느슨해진 시간 속에 자신을 두게 됐다는 요인도 있을까요? 계속 집에 있을 수 밖에 없었다던가.
-지금까지의 생활 스피드감이 바뀔지도 모르겠네요. 훗날 돌이켜보면 2020년, 2021년에 발표된 작품에는 독특한 풍취가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과연,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음악적으로는 어떤 의미에서 기대되네요.
 출처: 나탈리
0 not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