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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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https://pen-international.org/news/doris-lessing-1919-2013 ) <데비와 줄리> 줄리는 담요 위에 엎드려 있었다. 두 팔로 머리를 감싸고 주먹을 움켜쥔 채 울고 있었다. 고통은 끔찍했으나 견딜 만했다. 그녀는 철저하게 혼자라는 것을, 너무도 큰 외로움을 느꼈다. 엉덩이를 공중으로 쳐들고 있는 것은 잘못인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벽돌로 된 차가운 벽에 기대어 웅크리고 앉아 계속 땀을 흘리며 신음했다. 그녀는 개가 우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녀를 동정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물이 —— 아니면 피인가? —— 쏟아져 나왔다. 손전등을 켜기가 두려웠다. 개가 자기의 얼굴과 목 냄새를 맡는 것이 느껴졌지만 다시 가버렸다. 아무 것도 볼 수 없었다. 너무 캄캄했다. 그러다가 마치 내장이 쏟아져 나오는 듯한 격렬한 통증이 느껴졌다. 그녀는 생각했다. 왜 책에는 물이 이렇게 쏟아진다고는 쓰여 있지 않았나? 그러다가 깨달았다. 아니, 이건 아기구나. 그녀는 손을 밑으로 가져갔다. 그녀가 깔고 있는 담요 위에 젖어서 미끈거리는 덩어리가 있었다. 그녀는 손전등을 더듬어 켰다. 회색빛이 돌고 피투성이인 아기가 입을 벌렸다가 다 물었다. 이제 그녀는 공포에 질렸다. 일이 닥치기 전에는 탯줄을 자르기 전에 기다리기로 작정했었다. 책에 서두를 필요는 없다고 쓰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기가 죽게 될 경우를 대비해서 빨리 탯줄을 끊어야 했다. 그녀는 아기 몸에서 탯줄이 나오는 곳을 찾았다. 꼬인 밧줄 같은 두꺼운 살이 손 안에서 생명에 차 뜨겁게 맥박 치고 있었다. 그녀는 가위를 찾았다. 끈을 찾았다. 생명의 탯줄을 가위로 자르고 두려움에 떨었다. 사방이 피투성이였다. 개가 너무 가까이 와 앉아 있어서 그녀는 개를 만질 수 있었다. 개의 눈은 말하고 있었다. 제발, 제발.... 개는 너무 배가 고픈 나머지 피 때문에 침을 삼키며 입술을 핥고 있었다. (p15) 그녀는 쇼핑백을 자기 앞에 움켜쥔 채 벌써 문가에 가 있었다. "다치지는 않았니?” 아버지가 물었다. “네, 그냥 미끄러졌어요. 흙투성이가 되었어요." "어서 가서 목욕해라, 얘야.” 어머니가 말했다. "달걀 삶아서 샌드위치 만들려면 시간이 걸리니까.” 줄리는 위층으로 달려 올라갔다. 빨리빨리, 목욕을 오래 해서는 안 된다. 오래 머물러서는 안 된다. 그녀의 침실은 온통 예쁜 분홍빛 그대로였고 커다란 곰이 베개 위에 앉아 있었다. 옷을 벗어버리자 고약한 쉰내가 올라왔다. 그녀는 옷들을 모두 쇼핑백에 밀어 넣고 선반에서 분홍 꽃무늬 가 운을 움켜쥐었다. 데비가 보면 뭐라고 할까? 그녀는 궁금했다. 그리고 여기 그녀의 침대 위에 곰과 함께 엎드려 있는 데비를 상상하자 소리내어 웃고 싶어졌다. 그녀는 서랍 끝에 처박힌 어린애 옷 같은 파자마를 찾아냈다. 무엇으로 패드를 만들 것인가? 속옷에는 여기저기 피가 묻어 있다. 패드가 충분하지 않았다는 소리이다. 낡은 팬티들을 찾아 내 목욕탕으로 들어갔다. 탕에 물이 빠르게 찼고 더운 김이 올라왔다. 조심. 정신을 잃고 싶지 않았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안으로 들어가 머리를 물에 담갔다. 빨리빨리...... 그녀는 비누칠을 하여 출산과 더러운 창고의 흔적 을 씻어내고 축축한 개 냄새를 없애고 피, 그 모든 피를 씻어냈다. 피는 여전히 소리 없이 몸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많이는 아니었지만 어머니가 일주일에 세 번 가는 부숭부숭한 분홍 타월로 몸을 닦을 때 조심해야 할 만큼은 나왔다. 그녀는 속옷을 입고 그 안에 낡은 팬티들로 만든 패드를 덧대었다. 파자마를 입고 분홍 가운을 입었다. 그리고 머리를 빗었다. 보라. 모두 없어졌다. 책에서 읽은 바에 의하면 젖가슴에서 젖이 흐르겠지만 그녀는 꽉 끼는 브래지어를 하고 그 안에 솜을 채울 것이다. 그녀는 감당해 낼 것이다. 여기, 그녀의 집에서는 옷을 벗은 상태에서 서로를 보지 않는다. 그녀가 목욕할 때 어머니가 들어오지 않은 지가 몇 년이 되었고, 침실 앞에선 언제나 노크를 했다. 데비의 집에서는 사람들이 벌거벗고 또는 옷을 반쯤만 걸치고 돌아다녔다. 데비는 공단 속옷 차림으로 커다란 가슴을 흔들며 문을 열기도 했다. 데비는 줄리가 목욕탕에 있을 때 자주 들어와서 변기에 앉아 수다를 떨기도 했다........ 줄리의 눈에 물이 고였다. 아 안돼 절대로 울면 안 된다. (p26~27) 그러나 데비는 자다 깨면 줄리 쪽으로 돌아누워 그녀를 안아주었다. 그럴 때면 줄리는 사랑과 다정함에 자신이 얼마나 무지한가를 느끼곤 했다. 이 크고 뜨겁고 부드러운 데비의 몸이 전해 준 깨달음, 데비가 다시 잠이 들어도 줄리는 여전히 그 깨달음에 놀라 잠들지 않은 채 누워 있었다. 그녀는 사실 절대 '아무 짓' 도 하지 않았다. 줄리는 심지어 ‘무슨 일'이 일어나기를 기다리기도 했다. 전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단 한번 데비는 줄리의 불룩한 배를 만지다가 재빨리 손을 거두었다. 줄리는 데비와 꼭 껴안고 누워 있었으며 그들은 서로를 핥아주고 잠이 든 두 마리 고양이 같았다. 줄리는 자기가 집에서는 얼마나 무서운 결핍 상태에 있었는지, 또 자신의 부모들은 얼마나 공 허하고 슬픈 삶을 사는지 알게 되었다. 지금 그녀가 엄마에게 이렇게 말한다고 생각해 보자. “엄마, 오늘 엄마 침대 에서 자게 해주세요. 무서워요. 엄마, 보고 싶었어요..... 그녀는 단지 어머니의 당황하고 멈칫거리는 얼굴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줄리, 넌 이제 다 컸잖니." (p34) <참새들> 나이 든 새는 작은 새의 입속에 부스러기들을 넣어주면서 몸을 움츠린 채 깃털을 펄럭거리는 작은 새의 요구에 즉시 응했다. 계속해서 아기 새는 마치 여전히 둥지 속에 있는 것처럼 보채고 어미 새는 부스러기들을 밀어 넣었다. 그런데 그때 강도 같은 참새가 획 밀어닥쳤다. 어미 참새가 그것을 쪼았고 그러자 두 참새는 싸우면서 함께 지붕으로 날아갔다. 버려진 작은 참새는 더 이상 옹크리지도 깃털을 펄럭거리지도 않았다. 그것은 부리를 닫고 의자 등받이로 돌아가더니 다시 편안한 아기 참새의 모습으로 앉아 있다. "저 새는 다 컸어." 남자는 심술에 차서 말했다. "다 자랐어. 그런데 부모가 먹여줄 것을 기대하다니." "아마 어제까지 둥지 속에 있던 아기 새일 거야." 여자가 말했다. "오늘 처음으로 무서운 세상에 나왔을 거야." "그럼 왜 혼자 먹이를 못 찾는 거야? 어미가 밀어냈다면 스스로 먹이를 찾아야지." 여자는 고개를 돌려 경계하는 시선으로 그를 바라본 뒤 남자의 반응이 두려운듯, 그의 이런 분석적인 말에서 관심을 돌려버린다. (p49) <장애아의 어머니> 하산이 말했다. “죄송합니다. 그러나 저는 학교로 가야 합니다. 여기 온다고 말씀드렸더니 선생님께서 허락하셨어요. 그러나 전 빨리 돌아가야 해요." “아버지가 너에게 여기 와 있으라고 하셨니?" 하산은 머뭇거렸다. “아닙니다. 어머니가 여기 와 있으라고 하셨습니다.” 처음으로 하산이 정말로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말할 수도 설명할 수도 있는 듯했다.... 그의 눈은 애원으로 가득 찼다. 이해를 받기 위서? 거기에는 상처받은 자존심이 서려 있었다. “하산, 와서 통역해 주어서 고맙다.” 사회 복지사가 말했다. “너희 아버지에게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실례합니다. 실례합니다.” 이렇게 말하고 하산은 밖으로 달려나갔다. 스티븐이 큰 소리로 말했다. “안녕히 계십시오, 칸 부인.” 대답이 없었다. 그는 소년을 따라 나왔다. 음울하고 얼룩지고 냄새나는 복도를 따라 걸었다. 회색 시멘트 계단을 내려가 통로로 들어섰다. 바람이 상쾌하고 강하게 불고 있었다. 그는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4층 아래로 웅덩이를 건너뛰고 휴지 조각들을 발로 차면서 시멘트 바닥을 가로질러 급박하게 달려가고 있는 작은 형체, 하산이 보였다. 그는 도로에 이르더니 사라졌다. 그는 참기 힘든 상황으로부터 도망치고 있었다. 그의 온몸이 그것을 외치고 있었다. 도대체 그것은 모두 무엇에 관한 건가? (p60) <자궁 병동> “이봐요.” 그녀는 말했다. 아니, 명령했다. “난 당신이 내 말을 듣기 바라요. 듣고 있어요? 우리는 모두 여기서 한 배를 타고 있어요. 각자 작은 걱정들을 안고 말이죠. 모두 그래요. 나는 자궁 절제 수술을 해야 했어요.” 히스테리아엑토미라고 그녀는 우스꽝스럽게 발음을 했다. 과부를 제외한 여기 있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그녀는 옛날식의 진짜 노동자층에 속하는 여자였지만 그 단��를 어떻게 발음해야 할지 아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 생각에 그건 공평하지 못해요. 내 자궁이 도대체 날 위해 무슨 일을 한 적이 있나요?” 여기서 그녀는 얼굴을 쳐들었고 다른 사람들은 그 여자가 왼쪽 눈으로 윙크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언제나 남들을 웃기는 재능이 있지, 그게 나야, 그 윙크의 의미였다. 이제 그녀는 흐느낌에 파묻히지 않도록 크게 말했다. “이봐요, 당신이 일생 동안 매일 밤 누군가에게 잘 자라는 인사를 할 수 있었다면, 그건 대부분의 사람들보다 더 많은 것을 누린 거예요. 당신, 그런 식으로 볼 수 없어요?" (p84) <사회 복지부> "난 그들을 죽이고 싶어요.” 여자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말했다. “할 수만 있다면 난 그럴 거예요. 그들은 뭘 생각해요? 생각 같은 건 하지도 않아요. 나는 삼 주 동 안 한 푼도 받을 수 없었죠. 그건 무엇보다 그들의 실수이지 내 실수가 아녜요. 그리고 이번엔 파업이지요. 그들은 나에게 한 달치 수당을 줘야 해요. 난 집세도 내지 못했어요. 난 어떤 사람에게서 돈을 빌렸죠. 그 사람도 돈이 없는데 말예요. 그런데 그들은 급료를 올리라고 파업을 계속 해요...... 그들은 우리 따윈 상관도 안 해요. 그들은 우리에게 무슨 일이 생기는지 생각도 안 해요. 난 그들을 죽일 수도 있어요.” (p96) <진실의 대가> 당신은 내가 그와 잤다고 생각했지, 그랬지? 모두 그렇게 생각했으니까. 그는 누구든지 그렇게 생각하도록 확실하게 해두었으니까. 그는 나에 관해 특별한 태도로 말하고 또 그런 미소를 지었지........ 큰 행사가 있다든가 개막식날이라든가 그럴 경우 그는 나를 한쪽 팔에 끼고 모든 사람이 알아채도록 확실하게 행동했어. 시저와 그의 정부. 나도 거기 맞게 행동했고, 그러나 그에게 신호를 보내곤 했었지. 그러면 그는 그 정도는 이해했어. 그것은 일종의 전쟁이었어. 죽음에 이르는 싸움이었지. 나는 말하고 있었지. 좋다. 그러나 너와 나는 진실을 알고 있다. 나는 너의 여자가 아니고 절대 그렇게 되지도 않겠다. (p160) 그리고 핵심은, 이것이 핵심인데, 절대적으로 중요한 핵심인데.... 내가 언제고 누구에게 이 말을 할 수 있는 길이 없다는 것이지. 실수로 내가 그 말을 하게 된다는 것도, 생각조차 할 수 없어. 그래, 나는 시저의 정부가 아니었어, 절대로, 그에게 키스조차 한 적이 없어 그렇지만, 그렇게 되면 그 다정한 청년의 모든 삶의 기반이 없어지는 것이니까. 그 모든 것, 소냐에게 마음을 쏟고, 그 애의 다른 구혼자들을 다 물리치고 그의 아버지의 세계와 나의 세계 앞에서 공개적으로 그 애와 결혼하고, 여자애를 상품으로 얻은 강아지처럼 다루는 것, 이 모든 것이 아무것도 없음, 즉 허무에 기반을 둔 것이 되니까. 아무것도 없음. 그리고 내가 그 얘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는 아무도 없어. 당신 외에는, 내가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 아, 소중한 당신. 언젠가는 당신을 위해 나도 같은 역할을 할게. (p165~166) <폭풍우> 우리 집 앞에서 그는 다른 차 앞에 겨우 차를 세워야 했다. 내 짐을 보도 위에 내려놓고 그는 내 옆에 와 섰다. 그는 나와 키가 거의 같았다. 나는 어둑한 길에서 그가 따뜻한 그러나 결핍이 가득 찬 갈색 눈에 갈색 수염을 기른 작은 남자인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는 절박하게 내 손을 꽉쥐고 말했다. “봐요, 이렇게 하루 종일 운전을 하면 마음이 마비되지요. 멍하게 됩니다. 그러면 내 마음속에 지니고 있어야 하는 생각들을 할 수가 없어요.” 그는 내 손을 꽉 쥐고 나를 돌려세웠다. 그는 가로등 불빛에 비치는 내 얼굴을 볼 수 있었다. 그의 손은 강하고 따뜻하고 친절했으며 거기에는 그의 목소리에 들어 있는, 잘려진 나무들과 흔들리는 하늘 같은 사나운 혼란은 없었다. “사실 나는 택시 운전사가 아니오.” 그가 말했다. “나는 음악가였어요. 내 악단을 갖고 있었죠. 내가 말하면 당신도 이름을 알 거요. 음악을 안다면 말이지요. 그러나, 그러나, 여자 때문 이었어요. 일이 그렇게 된 거지요. 내 모든 문제는 그녀로 인해 시작되었지요. 그녀는 아버지와 오빠들이 모두 택시 운전사였고 나도 그렇게 되기를 원했어요. 그녀를 위해 난 택시 운전사가 됐어요. 나는 런던을 전부 돌면서 런던에 대해 배우면서 몇 달을 보냈지요. 그게 어떤 건지 당신 알아요?" "물론 알죠. 런던 택시 운전사는 면허증을 얻기 전에 시험을 통과해야만 하지요. 누구나 알아요.” “그래요, 그건 진짜 시험이에요. 길을 알아야 돼요. 그래야 합니다. 몇 달 동안 나는 거기 매달렸지요. 몇 달이고, 오래전 일입니다. 지금 나는 다른 여자와 살아요.” 그는 내 손을 더 꽉 잡고 내가 그의 말을 이해하는지 확인하려고 몸을 앞으로 기울여 내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난 인간을 좋아하지 않아요.” 그가 말했다. “난 동물들이 좋아요. 우리보다 낫지요. 친절하고 우리처럼 잔인하지 않아요." 그러는 동안 차 한 대가 지나가려 하면서 우리가 할 말을 하도록 기다렸다. 얼마 후 그 차는 베토벤 5번의 시작처럼 집요하게 경적을 울리기 시작했다. 그는 내 손을 놓았다. "인간들은 악하고 어리석어요." 나는 그가 운전대에 앉으며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 "지금은 내 의견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그렇게 될 거요. 알게 될 겁니다. 인간은 선하지 않아요!" 그는 나에게 손을 흔들었다. 형식적인 그러나 동지에게 건네는 듯한 인사였다. 그는 차를 몰고 떠났다. 핸들 앞에 앉아 그 너머를 응시하는 작고 짓눌린 듯한 모습. 그는 다른 승객을 태우려고 다시 곧장 히스로 공항으로 간다고 하며 떠났다. (p186~187) <그 여자> 순진한 사람들은 좌파와 우파, 토리당과 노동당이 따로 도착해서 그들만의 무리를 지을 거라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다. 그들은 함께 도착하기도 하고 짝을 지어 같이 서 있기도 한다. 그들은 경계선 밖에 있으므로 구속에서 벗어난 것 같다고 말하는 듯한 표정이다. 감시당하고있지 않으므로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다는 거다. 그곳에서는 전체적으로 함께 섞이면서 움직임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외교관 부인 서너 명과 여성 언론인 두어 명이 있기는 했으나 남자가 여자보다 많았다. 나는 거기 두 번 가봤는데 '국가'가 소용돌이 속에 있을 때였다. 국회에서 토리당과 노동당이 하나의 쟁점으로 맞서고 있었다. 신문의 머리 기사마다 좌우 갈등을 강조했고 어쩌다 그곳을 방문한 사람들은 사태를 알려줄 만한 말들이 나올 경우를 생각해서 정치인들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정치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니었다. 아니, 그들은 잡담을 했다. 모든 이야기는 버티가 그 말을 어떻게 했다든가 그 말은 노먼이 흘렸다든가 '그 여자가' 이러저 러한 말을 했다는 식이었다. “그는 '그 여자를' 보려고 해. 그가 나에게 말해 줬지. 그러나 버나드.......” (p190~191) <흙구덩이> 지나가 버린 그 모든 일들은 다른 시기, 심지어는 다른 여자에게 속한 것처럼 보였다. 여자는 이제 자신은 버림받아 연약해졌던 그 여자가 아니라 그를 만나기 이전 처녀로서의 자신과 연결되어 있다고 느꼈다. 연약함으로부터 해방되기란 쉽지 않았다. 이혼한 후 오년, 어느 파티에서 그가 그녀를 응시했다. 그의 눈과 감각이 말하는 것, 이 여자가 십 년 동안 함께 살았던 그의 아내라는 것을 믿을 수 없다는 듯 그녀를 응시했다. 눈물이 얼굴을 타고 흘렀다. 그가 외쳤다. “사라, 어찌 된 거요?” 여자는 그 말에 너무도 격분한 나머지 그에게 침을 뱉었다. (그 남자뿐만 아니라 그녀 자신도 놀랐다. 그런 행동은 절대 정숙한 그녀 자신이 아닌 집시나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 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등을 돌리고 울면서 파티장을 떠났다. 그러나 다른 여자들이 그녀에게 말해 주기를, 전 남편을 우연히 만나게 되면 그들 역시 진심으로 놀라면서 외친다는 것이었다. "도대체, 어찌 된 거요?" 그녀들의 변화가 자신들에게도 놀라울 뿐만 아니라 정말로 전혀 자신들의 책임이 아니며 오히려 ���할 수 없는 운명의 결과인 것처럼 말이다. (p201~202) 그 여자가 가지고 있는 엄청난 힘이란! 언제나! 그 힘은 이기심에 뿌리를 둔, 어리석음에서 나오는 비양심적인 힘이 있다. 로즈에게는 인간으로서 이것 또는 저것을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결코 들지 않았다. (그러나 물론 수용소에서 보낸 어린 시절의 문제가 있었다. 이는 로즈를 결코 상식적인 수준에서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인가?) 사라가 고통스러웠을 때, 로즈에 대해 너무 골똘히 생각할 때, 그녀는 언제나 이 질문에 부딪혔었다. 마치 로즈와 세상을 갈라놓고 있는 유리 벽을 향해 질주하듯, “그러나 인간은 그럴 수 없어요. 모르겠어요?”라고 로즈에게 말하는 것은, “그건 점잖은 짓이 아니에요!”라고 말하는 것은 있을 수 없었다. 경쟁자에게 자신이 이런저런 말을 쉽게 할 수 있는 상상 속에서조차 그랬다. 그러나...... 어리석음이란? 그것이 어리석음이라면, 그렇다면 로즈에게 모든 것을 가져다준 것은 어리석음이었다. 사라의 남편, 네 아이, 커다란 집, 떠돌이로 살다가 얻은 안정된 삶, 그녀의 필요에 발목 잡힌 남자. 어리석음! 아니, 그것은 사라가 한번도 들어가 보지 못한 인간 존재의 어떤 차원에서 나오는 힘이자 권력이었다. 로즈에게 가버리는 제임스를 바라볼 때 그녀는 원시의 법칙에 조종되는 마법의 숲으로 끌려가는 그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여자는 그가 그 자신의 최상의 자아에서 떠나가고 있다고 느꼈었다. (p223) 아니, 그녀가 피할 수 없는 존재, 그녀의 또 다른 자아를 구현하는 남자는 제임스라고 그녀는 믿었다. 그러나 심리적인 등식 어딘가에 불균형이 있는 듯했다. 그녀는 자주 자신이 가지고 있는 최상의 본능들을 침묵시킬, 어둡고 극적이고 힘 있는 거짓말쟁이 남자를 자주 떠올려보려 애썼다. 그러나 결국에는 이런 힘은 여성만 가지고 있다는 결론을 내렸었다. (그녀는 페미니스트였으므로 이런 결론을 좋아하지 않았다.) 여자는 로즈의 특성을 가진 남자를 상상할 수가 없었다. 그런 남자를 만난 적도 없고 그런 남자에 관해 읽은 적도 없었다. 로즈와 같은 특징을 가진 남자는 변태이거나 범죄자일 것이었다. 그러나 로즈는 변태도 범죄자도 아니었다. 그녀는 단지 여성일 뿐이었다. 모든 여자가 본능적으로 첫눈에 알아보는 특정한 부류의 여자. 그리고 모든 남자가 매혹되거나 불편해하고 싫어하면서도 즉시 반응해야만 하는 여자. 어떤 남자도 로즈에게 절대 무관심하지 않았다. 로즈는 그저 방 안으로 걸어 들어가기만 하면 되었다. (p225) 어여쁜 어린 소녀들은 어떻게 그 모든 것에서 빠져나왔나....... 어떻게 그들은 살아남았나? 사라는 전쟁 때 어린아이였다. 전쟁이 진행되는 동안 그녀가 전쟁에 대해 했던 생각이란 전시의 필요에 의해 그녀에게 주어진 인습적인 것이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공군이 었다. 전쟁이 끝난 뒤 그녀의 부모는 폐허가 된 유럽에서 오는 피난민들을 돕는 일에 관여하고 있었다. 사라는 ‘그 모든 것'에 관해 알고 있었다. 그 모든 것에 관해 실제로는 모르는 상태이면서. 아직 어렸을 때 그녀는 자신에게 말했었다. “물론 그 모든 것이 어땠는지를 정말로 이해할 수는 없지, 영국 사람일 경우에 말이야. 다시 말해, 너의 일생이 안전했다면 말이야.” (그 말에는 계속 자신의 삶은 안전할 것이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 모든 것'은 일상적인 삶의 바깥에 있는 공포였고 그것에 집착하는 것은 무모한 짓이었다. 왜냐하면 그 상황에 있지 않았다면 결코 이해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사라는 자기 내부의 문을 닫았다. 아니, 문을 열기를 거부했다. 그리고 그래, 그녀는 그렇게 하는 자신이 옳다고 믿었다. 자신을 공포 속에 뒹굴게 할 필요는 없으니까. (p231~232) 로즈, 미친 듯이, 필사적으로, 겁이 나서, 제정신이 아닌 채 '제일 친한 친구'에게 전화를 하고 있다. 지금쯤 그녀는 그 '제일 친한 친구'가 갑자기 친구가 아닌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감당하기에 로즈는 너무 지나치므로, 너무 넘치므로. "영국 사람들에게 나는 너무 활력이 넘치고 에너지가 많아!" 그녀는 불평을 할 것이다. 그녀의 아름다운 검은 눈동자는 불가사의에 차서 내면으로 향할 것이다. 자신이 이번에는 무슨 일을 했는지 의아해 하면서. 당신은 또 거짓말을 하고 있었지, 사라가 로즈의 이미지에게 말했다. 그러나 로즈는 사라의 말뜻을 결코 이해하지 못할 것이었다. 로즈는 모든 것에 대해 완벽하게 숨 쉬듯이 거짓말을 했다. 그러나 그녀에게 거짓말은 단지 살아남기 위한 것이었고 자신을 지켜준 것이었고 자신의 어린 시절인 그 끔찍한 장소로부터 구해 준 것이었다. 로즈는 제임스 주위로 그물을 쳤고 그는 이것을 절대 이해하지 못할 것이었다. 그녀가 그를 결코 이해할 수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p234~235) <진실> 그는 한숨을 쉬었다. 그건 그의 의도가 아니었다. 그는 이제 죄 지은 듯 보이고, 그래서 여자는 그에게 미소를 지어야 했다. 여자는 헨리에게 꽤 자주 이런 미소를 지을 것이다. 능수능란한 미소라고 그는 생각하고 있었다. “왜 당신은 그렇게 많은 것을 기대하죠?” 그는 물었다. 그리고 이것이 (그 여자는 알았다.) 그가 처음으로 한 진실한 말이었다. 그는 진심에서 나오는 말을 하고 있었다. 자기 방어를 위해 스스로 믿는 바를 말하는 게 아니었다. “아마도 난 당신보다 쉽게 기쁨을 느끼는가 보죠? 난 지난 사 년 동안 안젤라와 완벽하게 멋진 시간을 보냈어요. 그리고 난 그런 시간을 더 많이 갖게 되기를 바라요.” “나도 헨리와 완벽하게 멋진 시간을 보내지 못했다고는 말하지 않았어요.” 여자는 부드럽게 말했다. 그리고 그들은 함께 웃었다. 나아가 그들은 서로에게 호감을 갖게 되었다. 이 식사를 같이하고 있는 보이지 않는 두 사람, 안젤라와 헨리가 인정할 수 있을 만큼. "그러나 말이죠, 만사가 구비되지 않는 한 결혼해야 할 이유를 모르겠어요." (p264~265) 그는 말했다. “그렇게 가차없는 통찰력으로 차 있다는 것이 언제나 이로운 건 아닐 겁니다.” 이 말은 심술궂게 들렸고 그래서 그는 재���리 덧붙였다. “난 당신이 틀리다고 말하는 건 아니에요. 그러나 당신이 얻는 것이 뭡니까? 나와 함께 참아봐요. 나도 그 생각을 해봤어요. 당신이 날 생각하게 만들었죠. 내가 모든 세부적인 것들의 의미를 안다고 해서 더 행���해질까요.......” 그녀의 얼굴은 냉소적으로 어떤 의미들이라고 말하고 있었고 그는 참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면 난 내가 모든 것을 보지 못 한다는 것을 모른 채 결정을 내린 거겠죠........ 결국 나는 안젤라와 결혼할 것이고 우린 행복해질 겁니다.......” 말끝이 흐려졌다. 좋지 않은 순간이었다. 만일 헨리가 조디와 결혼하지 않으면, 그러면 온갖 종류의 새로운 조정, 복잡한 일, 새로운 균형이 생길 것이라는 생각이 그에게 떠오르고 있었다. 물론 조디에게는 그 생각이 당연히 오래전부터 떠올랐을 거라고 그는 화가 난 채 생각했다. “당신이 못 보는 듯한 게 하나 있어요.” 그 여자가 말했 다. “올가에 대해서.” “올가?” "당신에겐 올가가 있어요. 당신의 가장 좋은 친구.” (p299) - 도리스 레싱 , ' 런던 스케치 '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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