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릭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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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자
인생을 가성비로 사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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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데르스 에릭슨
분야의 짱이 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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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엘리자베스 테일러
영국의 배우
엘리자베스 로즈먼드 테일러 여사(영어: Dame Elizabeth Rosemond Taylor, DBE, 1932년 2월 27일 ~ 2011년 3월 23일)는 영국과 미국의 국적을 가진 배우이다. 아역 배우로 시작해 성인기까지 원숙한 연기력과 관능적인 외모로 대중을 사로잡았다. 특히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보라빛 눈동자는 그녀를 상징하는 특색으로 여겨졌다.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2회 수상했으며, 할리우드 황금기의 가장 위대한 영화스타로 손꼽히고 있다. 미국 영화 연구소는 여성 레전드 목록(AFI's 100 Years...100 Stars) 일곱 번째로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이름을 올렸다. 그녀는 또한 지병과 8번의 결혼생활으로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수십년 동안 활동해 온 사회사업가로서, 후천면역결핍증후군(AIDS) 홍보와 연구, 치료를 지원하는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주목을 받았다.
Elizabeth Taylor
본명 엘리자베스 로즈먼드 테일러
Elizabeth Rosemond Taylor
출생 1932년 2월 27일
잉글랜드 런던 햄프스티드
사망 2011년 3월 23일 (79세)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다른
이름 리즈 테일러 (Liz Taylor)
활동 기간 1942년 ~ 2011년
배우자
콘래드 힐튼 주니어 (1950 ~ 1951)
마이클 와일딩 (1952 ~ 1957)
마이크 토드 (1957 ~ 1958)
에디 피셔 (1959 ~ 1964)
리처드 버턴 (1964 ~ 1975, 1975 ~ 1976)
존 워너 (1976 ~ 1982)
래리 포튼스키(1991 ~ 1996)
자녀 2남 2녀
2011년 3월 23일 네 명의 자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79세로 세상을 떠났다.
생애
어린시절
엘리자베스 로즈먼드 테일러는 영국에 거주했던 미국인 부모 프랜시스 렌 테일러 (1897–1968)와 사라 비올라 웜브롯 (1895–1994) 사이에서 1남 1녀 중 막내로 런던의 햄프스티드에서 태어났고, 당시 집은 런던 북서쪽 교외에 있는 햄프스티드 가든 서버브 지역의 8 와일드우드로였다. 테일러의 오빠인 하워드 테일러는 1929년 태어났다. 미국인이었지만 영국의 속지주의 국적법에 의해 영국에서 태어난 그녀에게는 자동으로 영국 국적이 함께 부여되었다. 그녀의 부모는 원래 캔자스주 출신이었는데, 아버지는 미술상이었고, 어머니는 원래 "사라 소던"이라는 무대명을 가진 연극 배우로 1926년 뉴욕에서 결혼을 하면서 은퇴했다. 이름에서 첫 두 이름은 할머니인 엘리자베스 매리 로즈먼드 테일러를 기념하기 위해 지은 것이다.
3세 때, 테일러는 바카니와 함께 발레 레슨을 받았다. 7세 때 그녀의 가족들은 제2차 세계 대전을 피하기 위해 미국으로 귀국하였다. 1939년 그녀의 엄마가 아이들을 데리고 먼저 뉴욕���로 갔고, 그녀의 아버지는 런던에 남아서 사업을 마무리하고 11월 뉴욕에 도착했다. 그들은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서 정착을 했는데, 그 곳은 당시 사라의 가족들이 있는 곳이었다.
칼럼니스트 헤더 호퍼의 시선을 사로잡았던 것이 인연이 되어, 부유한 영국 사업가이자 치버 코든의 약혼자였던, 유니버설 픽처스의 회장이자 대주주인 안드레아 베런스를 소개 받았다. 베런스는 사라에게 엘리자베스를 코든에게 보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코든은 엘레자베스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었고, 그녀는 카메라를 잘받아 외모를 돋보이게 하는 그런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다. 메트로-골드윈-메이어(줄여서 MGM)는 곧 이 영국소녀에게 관심을 나타냈지만, 제작자인 존 콘시다인과 비공식적인 오디션을 본 후에 테일러가 노래를 잘 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계약을 하는데는 실패했다. 그러나 1941년 9월 18일 6개월 계약으로 주급 $100에 계약을 했다.
그녀는 9살의 나이로 《There's One Born Every Minute》에 데뷔를 했고, 이것이 그녀의 유일한 유니버설 픽처스의 작품이었다.
아역 배우
10살 때인 1942년 《There's One Born Every Minute》의 단역으로 영화 데뷔했다. 유니버설 픽처스와 계약을 통해 그녀는 《명견 랫시의 귀로》(Lassie Come Home)의 영화화를 위한 배역을 구하던 MGM과 7년 계약을 맺는다. MGM과의 첫 작품은 샬럿 브론테의 소설을 영화화한 20세기 폭스의 1944년작 《제인 에어》로, 그녀는 헬렌 번즈 역을 맡았다. 이후 그녀는 다시 MGM사의 영화를 위해 영국으로 돌아갔으며 같은 해에 1944년 《도버의 하얀 절벽》(The White Cliffs of Dover)을 찍었다. 그녀를 스타덤에 올려준 것은 12살 때 찍은 MGM의 영화 《녹원의 천사》(National Velvet)에서 맡은 벨벳 브라운 역으로, 그녀가 맡은 벨벳 브라운은 그랜드 내셔널에서 우승하기 위해 애마를 길들이는 소녀였다. 또한 이 영화는 믹키 루니와 영국의 신인 안젤라 랜스베리를 스타로 만들어주었으며, 1944년 12월 개봉이후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고, 테일러의 삶을 영원히 바꾸어 놓았다. 그녀의 일생에서 발생된 많은 건강 문제들은 이때 《녹원의 천사》를 촬영하던 중 입은 척추 부상으로 야기된 것이다.
《녹원의 천사》은 박스오피스에서 4백만 달러를 벌어들였으며, 그녀는 3만 달러로 인상된 연봉으로 장기계약에 서명했다. 이 영화로 얻은 성공을 이어가기 위해 테일러는 또 다른 동물 영화 《용감한 래시》(Courage of Lassie)에 참여하였으며, 1946년 《용감한 래시》의 성공으로 더 인상된 $1,500의 보너스와 주급 $750의 조건으로 계약을 체결했다. 1947년 워너브라더스의 작품인 《아버지와 인생을》(Life With Father)에서는 매리 스키너의 역을 맡았으며, 같은 해 《신시아》(Cynthia)에서는 신시아 비숍 역을 맡아서 연기를 했다. 이듬 해 1948년에는 《쥬디와의 데이트》(A Date with Judy)에서는 캐롤 프링글 역을 맡아서 연기를 했고, 수전 프랙킷 역을 맡아서 한 《줄리아 미스비헤이비어》( Julia Misbehaves)에서도 성공을 거두었다. 테일러는 꾸준한 흥행제조기라는 명성을 얻음과 동시에 "원샷 리즈"(One-Shot Liz, 한번에 장면을 찍어내는 그녀의 능력을 가리키는 말)라는 별명을 얻어 전도 유망한 경력을 쌓았다. 아미의 역할을 한 《작은 아씨들》(Little Women, 1949)은 그녀의 아역으로는 마지막 배역이었다. 1948년 10월 퀸매리호를 타고 영국으로 가서 《공모자》(Conspirator)를 찍었다. 이 영화에서 그녀는 최초로 성인 역을 맡았다.
성인 연기자
다른 아역 배우들과는 달리, 테일러는 쉽게 성인 연기자로 옮겨갔다. 1949년 《공모자》가 나오기 전에 《타임》은 기사를 통해 그녀를 ‘엄청난 가치를 지닌 보석, 진정한 스타 사파이어’라고 찬사를 보냈으며, 헐리우드에서는 몽고메리 클리프트나 커크 더글라스 그리고 에바 가드너와 같은 차세대 스타로 손꼽았다. 그 영화는 박스오피스에서는 실패했지만, 남 몰래 공산주의 스파이와 결혼한 21살짜리 연기를 한 16살의 테일러는 비평가들 사이에서 성숙한 연기로 칭찬을 받았다. 주당 2,000 달러의 새로운 급여조건 하에서 최초로 찍은 《만취》(1950)는 은막의 아이돌 밴 존슨과 짝을 맞춘 영화이지만, 비평가들과 박스오피스에서 모두 실패를 했다. 또한 그 영화는 새롭게 깨달은 그녀의 관능미를 과시하는데도 도움이 되지 못했다.
박스오피스에서 성공한 최초의 작품은 로맨틱 코미디로 스펜서 트레이시와 조안 베넷과 호흡을 맞춰 케이 뱅크스역을 맡아 성인 연기를 한 1950년작 《신부의 아버지》이었다. 이 영화는 후속 편 《아버지의 작은 유산》(1951)을 내놓게 했으며, 같이 연기를 했던 스펜서 트래이스가 “지루하고, 지루했고 .... 지루했다”고 평한 작품이었다. 박스오피스에서는 비교적 성공을 거두었지만, 드라마틱한 배우로서의 경력을 쌓게 한 것은 테일러의 다음 영화였다. 1949년말 테일러는 조지 스트븐스의 영화 《젊은이의 양지》를 찍기 시작했다. 이 영화가 1951년 개봉���자, 테일러는 조지 이스트먼(클리프트)와 그의 가난하고 임신한 여공 앨리스 트립(셸리 윈터스) 사이에 끼어든 망가진 사교계 명사 안젤라 비커스의 연기로 환호를 받았다. 이 영화는 비평가들이 다음 50년 영화 역사를 통틀어 평판을 얻은 고전이라는 평과 같이 그녀의 연기 경력에 있어서 전환점이 되었다. 뉴욕타임즈의 A.H. 웨일러는 "엘리자베스의 풍부하고, 아름다운 연기는 그녀의 경력에서 최고의 노력이다."라고 썼으며, 박스오피스 평론가들은 "테일러양은 아카데미상감이다."라고 언급했다.
테일러는 그 당시 자기에게 배정된 역할에 점점 불만을 가지기 시작했다. 《맨발의 공작부인》이나 《크라이 투마로우》와 같은 작품에서 주연을 맡기를 원했지만, MGM은 그녀의 역할을 카메오나 기억에 남지 않은 영화들, 《Callaway Went Thataway》(1951), 《최고의 사랑》(1952), 《아이반호》(1952), 《모든 걸 다 가진 소녀》 (1953), 《호걸 브롬멜》 등에 배역으로 제한했다. 그녀는 아이반호에서는 로웨나 아가씨 역을 맡기를 원했지만, 그 역은 조안 폰틴에게 돌아갔다. 테일러에게 주어진 역은 레베카 역이었다. 테일러가 첫 아이를 임신했을 때, MGM은 업무 시간을 두 시간 더 늘여 《모든 것을 다 가진 소녀》를 찍도록 그녀를 다그쳤다. 그녀의 임신이 더 진행되기 전에 새로운 영화를 하나 더 찍을 속셈이었다. 테일러는 돈이 필요하다는 사실이 슬펐다. 그때 그녀는 새집을 막 샀고, 두 번째 남편인 마이클 와일딩과 그녀의 아기 때문에 일은 꽤 빡빡했다. 테일러에게 역이 배당되기는 했지만, 그녀의 임신으로 인해 《코끼리 걸음마》(1954년)는 거절당해야 했다. 테일러보다 20살이 더 많지만 닮은 점이 많은 비비언 리는 배역을 가졌고, 로케이션을 찍기 위해 실론으로 갔다. 영화를 찍는 동안 비비언 리는 신경쇄약으로 고생했고, 1953년 1월 첫 아이 마이클 와일딩 주니어를 출산한 후 테일러가 그 역을 대신 맡게 되었다.
테일러의 다음 영화 《랩소디》(1954)는 지루한 사랑 이야기로 좌절을 맛보게 된다. 테일러는 기질이 강한 바이올리니스트(비토리오 개스맨)와 진지한 젊은 피아니스트(존 에릭슨)과 사랑에 빠진 아름답고, 부유한 소녀 루이스 루란트 역을 했다.
《코끼리 걸음마》와 《랩소디》 다음에 찍은 테일러의 4기 영화인 《호걸 브롬멜》에서는 세련된 패트리샤 부인으로 캐스팅되어, 스튜어트 그랜저와 연기를 펼쳤다. 《내가 본 마지막 파리》 (1954)는 이전 작보다는 약간 나아졌으며, 《숙취》를 같이 찍은 밴 존슨과 같이 연기를 펼쳐다. 헬렌 엘스워스 윌리의 배역은 젤다 피���제럴드의 것에 기반을 둔 것이며, 비록 둘째 아이를 임신했지만, 테일러는 12개월만에 찍는 네 번째 영화에 정성을 쏟았다. 박스오피스에서 약간의 성공을 거두긴 했지만, 그녀는 여전히 더 나은 배역을 원했다.
1955–1979
조지 스티븐스 감독의 1956년 서사영화 《자이언트》에서 록 허드슨이나 제임스 딘의 상대역으로 보다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된 이후 테일러는 4년 연속 아카데미상 여우주연상 후보에 노미네이트된다. 1957년 《레인트리 카운티》에서는 몽고메리 클리프트의 상대역을 맡았고, 1958년 《양철 지붕위의 고양이》에서는 폴 뉴먼의 상대역으로, 1959년 《지난 여름 갑자기》에서는 몽고메리 클리프트와 캐서린 헵번 그리고 머시디스 매케임브리지와 호흡을 맞춰 연기를 했고, 1960년 《버터필드 8》에서는 당시 남편이었던 에디 피셔와 함께 주연을 맡았다.
1996년 테일러는 당시 남편 리처드 버턴과 함께 출연한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에서 마사 역으로 아카데미상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생애 두 번째 아카데미상 수상을 했다.
사생활
결혼
테일러는 8차례 7명의 남편과 결혼했다.
테일러는 1959년 크리스천 사이언스에서 유대교로 종교를 바꾸었다.
자손
와일딩 (두 아들)
마이클 하워드 와일딩 (1953년 1월 6일)
크리스토퍼 워드워드 와일딩 (1955년 2월 27일)
토드 (딸 하나)
엘리자베스 프랜시스 리자 토드 (1957년 8월 6일)
버튼 (딸 하나)
마리아 버튼 (1961년 8월 1일)
1971년 테일러는 40세의 젊은 나이로 할머니가 되었다. 그녀의 임종 시 4자녀들과 10명의 손자 그리고 4명의 증손자가 곁을 지켰다.
사망
테일러는 말년에 여러 건강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 2004년에는 만성 심부전을 앓고 있다는 보고가 있었고, 2009년에는 심장판막 수술을 받았다. 2011년 2월에는 만성 심부전에 대한 새로운 증상으로 치료를 위해 세다스-시나이 메디컬 센터에 입원을 했다.
2011년 3월 23일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세다스-시나이 메디컬 센터에서 4명의 자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향년 8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엘리자베스_테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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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승골 온카지노 케인 대체 했어"...英 언론의 칭찬
영국 언론은 온카지노 노리치시티를 상대로 결승골을 터뜨린 해리 케인을 교체한 것에 대해 찬사를 보냈다.
토트넘은 23일 영국 런던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에서 열린 노리치와의 2019-20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24라운드 홈경기에서 2-1로 승리했다.
38분 델레 알리의 선제골로 선두에 나선 토트넘은 후반 25분 페널티킥을 내주며 승리를 놓치는 듯했다.
하지만 손흥민이 해결사로 나섰다. 34분 알리의 슛이 명중해 높이 떠오르자 손흥민은 고개를 푹 숙였다.
7경기 연속 침묵을 깬 손흥민은 시즌 11호 골과 2020년 새해 첫 골을 터뜨렸다.
글로벌 미디어 ESPN의 영문판은 경기 후 손흥민에게 "토트넘의 승리를 이끈 결승골을 가져갔다" "손흥민이 케인의 교체역할을 했다"고 평점 7점을 줬다.
케인은 햄스트링 부상으로 수술을 받아 올 시즌 복귀가 불투명하다.
토트넘 홋스퍼는 마침내 야왕 크리스티안 에릭센에 대한 합의에 도달했다.
축구전문매체 팟맵은 21일(한국시간) 토트넘이 인터내셔널의 제안을 받아들였다고 밝혔다. 에릭센은 다음 주 초에 의학간 테스트를 실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내부는 에릭센이 가장 좋아하는 목적지였다. 인터가 에릭슨 에이전트 마틴 슈츠와 접촉해 구체적인 계약 기간까지 거론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적료를 놓고 줄다리기는 계속됐다. 양 팀 모두 각자 원하는 이적료를 고수하며 협상에 어려움을 겪었다. 토트넘은 에릭슨을 팔아야 했다. 많은 팀들이 에릭슨에 관심을 갖고 있지만 겨울 이적 시장을 놓치면 이적료를 한 푼도 받지 못할 것이다.
이탈리아의 이적 전문가 알프레도 페둘라에 따르면 카지노사이트 1680만 파운드(약 1억6000만 파운드)의 제안을 받아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수치는 인터가 처음에 제공한 1280만 파운드에서 증가한 것이다.
인터를 맡고 있는 안토니오 콘테는 자신이 그토록 원했던 '플레이메이커' 에릭센이 됐다. 포트모브는 "바카라사이트 인터와 3년 6개월의 계약을 맺고 다음주 화요일 건강검진을 위해 밀라노로 향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에릭센은 2013년 여름 토트넘으로 이적한 뒤 7시즌 동안 300경기 이상을 뛰며 69골 89도움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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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G 시대의 세계전쟁
김환식 장로 / (제1152칼럼) 미·중 무역전쟁이 마른 풀밭의 들불 같다. 중국 화웨이(華爲)로 옮겨붙었다. 관세장벽, 위안화 환율, 지식재산권 충돌…. 지난해 4192억달러에 이른 미국의 대중 무역역조를 둘러싼 다툼은 차라리 주변부 이야깃거리로 변했다. ‘화웨이 봉쇄’. 어디까지 번질까. 반도체 설계기업인 미국 AMD와 영국의 ARM, 안드로이드 운영체계(OS)를 개발한 구글, 프로그램 구동반도체와 통신칩을 공급하는 인텔과 퀄컴…. 수많은 큰손들은 화웨이와 거래를 ���속 끊었다. 일본·영국·호주는 반화웨이 전선에 가담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가는 곳마다 외친다. “화웨이의 5세대(5G) 장비를 쓰지 말라”, “사용하면 안보이익을 위태롭게 하며 민감한 정보를 더 이상 공유할 수 없다.”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는 국내 IT 기업을 모아 두고 말했다. “5G 네트워크상의 사이버 보안은 동맹국 통신을 보호하는 핵심 요소다. 지금의 결정이 수십 년의 국가안보에 영향을 미친다.” 화웨이와 거래하면 더 이상 동맹을 지속하기 힘들다는 압박이다. 미국은 왜 이토록 화웨이에 매달릴까. 이유는 간단하다. 5G를 장악하는 자가 4차 산업혁명의 칼자루를 쥐는 탓이다. 5G. 그것은 범용기술이지만 4차 산업혁명의 토대를 이룬다. 증기기관과 전기가 과거 산업혁명을 낳은 것과 똑같은 이치다. 4차 산업혁명은 5G에 의존해 이루어진다. 모든 것은 5G 네트워크 위에 구축된다. 자율주행도, 원격의료도, 각종 사물인터넷에서 발생하는 대량 정보의 AI(인공지능) 분석도. 5G가 6G, 7G로 발전하더라도 5G는 그 토대가 될 수밖에 없다. 5G가 AI 혁명의 알파요, 오메가일 수 없지만 이에 기반하지 않는 기술혁명은 생각하기 힘들다. 세계이동통신사업자협회(GSMA)의 예측. “5G의 경제효과는 2024년 131억달러, 2034년 5650억달러에 이른다.” 이것만 봐도 5G가 얼마나 위력적인지 한눈에 알 수 있다. 5G 패권을 잃는다면? 그것은 경제패권의 종말을 뜻한다. 그러기에 미·중의 충돌이 단순한 무역분쟁 차원을 넘어서고 있다는 분석이 쏟아진다. “실질적인 3차 대전”, “기술 전쟁”이라고 한다. 대기업 연구위원이 전하는 말, “미 스탠퍼드 연구단지와 실리콘밸리에서는 이제 중국 기술자를 찾아볼 수 없다. 모두 돌아갔다.” 높이 쌓은 기술 장벽. 이제 인력 교류조차 사라지고 있다. 화웨이의 런정페이 회장의 말, “우리는 총검을 들고 백병전을 벌여야 한다.” 그래서 나오는 말이다. 기술전쟁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지경으로 치닫고 있다. 미·중은 화해할 수 있을까. 이런 점을 놓고 보면 힘들 것 같다. 역량을 총동원해 화웨이 봉쇄에 나선 미국. 그것은 단순한 트럼프의 아이디어가 아니다. 왜? 부동산업자 출신 대통령이 무엇을 알아 화웨이를 화두로 삼았겠는가. 미국에 발을 맞추는 동맹국들. 기술전쟁의 의미를 알기에 모든 것을 제쳐놓고 거래 중단을 선언하는 것은 아닐까. 대한민국을 5G 강국이라고 한다. 세계 최초 5G 서비스를 시작한 KT. 장비 분���에서도 강자다. 지난해 10월부터 6개월 동안 5G 장비 시장점유율은 삼성이 37%로 세계 1위다. 화웨이 28%, 에릭슨 27%다. 하지만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게 생겼다. 중국 국가개혁위원회는 삼성과 SK하이닉스를 불러 “미국에 협조하면 심각한 결과에 직면할 것”이라고 했다. 협박이다. 화웨이와의 거래를 끊으면 100억달러를 웃도는 매출이 증발하고, ‘사드 보복’과 같은 경제보복이 시작될 가능성이 있다. 중국과 계속 거래하면? 미국의 보복 리스트에 오른다. 한·미동맹도 심각한 타격을 받는다. 진퇴양난이다.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까. 한국정부가 나서야 한다. 기술전쟁은 기업 간 싸움이 아니다. 국가 간 전쟁이다. 대책회의 한 번 하지 않은 청와대. 도대체 말을 하지 않는다. “기업이 알아서 하라”며 불구경하듯 한다면? 그것은 무책임한 정부다. 정부는 세금만 걷는 조직이 아니라 국가 이익을 수호하는 주체다. 총체적인 경제·안보 위기가 밀려들고 있다. 한국정부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끝)2019-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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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VA, 새로운 5G 무선 모뎀 설계 간소화하는 PentaG2 공개
CEVA, 새로운 5G 무선 모뎀 설계 간소화하는 PentaG2 공개
무선 커넥티비티와 스마트 센싱 기술 및 통합 IP 솔루션 분야의 선두 라이선스 기업인 CEVA가 자사의 2세대 5G 플랫폼 아키텍처인 PentaG2™을 발표했다. PentaG2™는 최적의 신호 체인 프로세싱(signal chain processing)을 위해 고성능 디지털 신호 프로세서(DSP)와 특수 목적의 가속기를 결합한 포괄적인 하드웨어/소프트웨어 IP 플랫폼이다. 이전 모델에 비해 4배 향상된 전력 효율성을 자랑하며, 모바일 광대역과 사물인터넷(IoT)을 위한 새로운 모델의 확산을 가속화하고 5G 모뎀 설계를 내장하고자 하는 핸드셋 기기 OEM 업체의 진입장벽을 낮추는 것을 목표로 한다. 최근 발표된 에릭슨 모빌리티 보고서에 따르면 셀룰러 IoT 연결이 2021년 기준 19억 개인 반면, 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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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5세대(5G) 이동통신 특화망 시대를 앞두고 통신장비 시장이 삼성전자, 에릭슨, 노키아 등 '3파전' 구도를 형성했다. 망 구축에 필요한 코어부터 베이스밴드·기지국·단말까지 핵심 제품을 패키지 형태로 구성, 5G 시장 신규 매출을 확보한다는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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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XP, 미 애리조나에 자체 RF GaN 팹 오픈 - 아이씨엔매거진 NXP는 전력 밀도, 이득 및 선형화 효율성에 초점을 맞춘 새로운 150mm(6") 팹과 20년 간의 GaN 개발 노하우를 바탕으로 5G 셀룰러 인프라 확장을 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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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장비 관련주 대장주 10종목 핵심 종목 공유
통신장비 관련주에 대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통신장비 관련주와 통신장비 대장주에 관련된 키워드로는 LG유플러스 SK텔레콤 다산네트웍스 서진시스템 에이스테크 에치에프알 오이솔루션 와이어블 전파기지국 케이엠더블유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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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시스템(178320) :: 통신장비 관련주
기업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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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속가공 기술 및 시스템 설계 역량을 바탕으로 각종 통신장비, 핸드폰, 반도체장비 등의 함체, 구조물, 전기구동장치 등 제조 및 판매사업을 영위함.
- 2015년 (주)텍슨 인수와 함께 반도체, ESS 제품에도 진출하였으며, 2016년 상반기 삼성전자 스마트폰의 SUB ASSEMBLE 등도 추가하여 영위 중임.
- ��트남 소재 6개의 생산법인과 중국 소재 2개의 유통업체, 미국 소재 1개의 유통업체, 반도체 부품 업체인 텍슨을 종속기업으로 보유.
실적 및 분석
- 반도체 공정장비와 ESS 파워 장치 수주가 증가하였으나, 주력 통신장비 부품과 휴대폰 부품의 수주 부진하며 전년대비 매출 규모 축소.
- 매출 감소에 따른 고정비 부담 확대와 인건비, 수출비, 연구개발비 등의 증가로 영업이익률 전년대비 큰 폭 하락, 순이익은 전년대비 적자전환.
- 글로벌 경기 개선과 국내외 5G 투자 확대, 휴대폰 산업의 출하량 증가와 반도체 산업의 호조 지속, 전기차 및 ESS 산업의 성장으로 외형 확대 전망.
와이어블(065530) :: 통신장비 관련주
기업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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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계망 전문업체로 지상과 지하철 및 각종 터널 구간의 공용무선기지국을 시공, 판매 및 운용과 유지보수 사업을 전개.
- KT LTE 공사 및 LG U+ LTE 공사 등 시설공사로 기존 이동통신 사업자의 사업영역을 통해 매출을 확보하고 있음.
- 공용무선기지국의 시공과 운용 및 유지보수 사업 관련 우월한 시장 내 지위 선점으로 업계 내 지배력 더욱 강화 중임.
실적 및 분석
- 기지국사용료 수익 감소에도 국내 이동통신사의 5G 투자에 따른 케이티와 엘지유플러향 통신시설 구축 매출인식 확대 등으로 전년대비 매출 증가.
- 인건비 증가 등에 따른 판관비 부담 확대에도 원가구조 개선으로 전년대비 영업이익률 상승, 금융수지 개선으로 법인세비용 증가 등에도 순이익률 상승.
- 국내 이동통신사들의 5G 관련 투자 확대로 신규 수주 증가가 기대되며, 기 수주한 현장의 매출인식 확대로 매출 성장세 이어갈 전망.
SK텔레콤(017670) :: 통신장비 관련주
기업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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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사는 무선 통신사업과 유선 통신사업, 커머스사업을 영위하고 있으며, 국내 무선 통신시장에서 점유율 1위로 확고한 시장지위 지속.
- 유선 통신 사업 관련 2006년 7월 TV-Portal 사업 상용 서비스 개시 및 2008년 9월 IPTV 사업 허가를 받아 상용 서비스를 개시하였음.
- 주요 종속기업으로 SK텔링크(주), SK브로드밴드(주), 피에스앤마케팅(주), SK플래닛(주), 십일번가(주), 에스케이인포섹(주) 등을 보유하고 있음.
실적 및 분석
- 5G 가입자 증가 및 종속기업 SK브로드밴드의 티브로드 합병, 보안 및 커머스 부문의 성장 등 전 부문의 고른 성장으로 전년대비 매출 규모 확대.
- 지급수수료 증가 등에 따른 판관비 부담 확대에도 원가구조 개선으로 전년대비 영업이익률 상승, 지분법이익 증가로 순이익률 상승.
- 5G 가입자 증가에 따른 ARPU 상승 및 IPTV, 초고속인터넷 중심의 유선 부문 가입자 증가, 커머스 부문의 양호한 성장으로 매출 성장세 이어갈 전망.
KT(030200) :: 통신장비 관련주
기업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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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선전화와 무선전화 및 초고속인터넷 등 통신 서비스를 제공, 탈통신과 통신방송융합 및 유무선 컨버전스 등 산업트렌드에 맞춘 혁신적인 서비스 출시.
- 신용카드업을 영위하는 (주)비씨카드와 온라인 콘텐츠 제작 업체인 (주)케이티하이텔 및 전화번호안내 사업 업체 (주)케이티아이에스 등 다수의 종속회사 보유.
- 2015년 9월 가스밸브와 도어락 및 열림감지센서 등 기가 loT홈매니저를 출시, 사물인터넷 시장 진출로 사업영역을 확대하였음.
실적 및 분석
- 위성방송 부문의 성장 등에도 COVID-19 여파에 따른 카드 거래액 감소, 무선 및 인터넷 부문의 역성장 등으로 전년대비 매출 소폭 감소, 수익성은 소폭 상승.
- 순이익 내부유보를 통��여 자기자본을 확충한 가운데 기타채무 감소 등에 따른 부채규모 축소로 전년대비 제안정성 지표 개선, 무난한 재무구조 견지.
- 국내 경기회복에 따른 카드 거래액 증가, 5G 및 인터넷 가입자 증가, 케이블TV업체 인수 효과 및 광고 취급고 확대 등으로 매출 성장 전망.
LG유플러스(032640) :: 통신장비 관련주
기업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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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동통신 사업과 전화 및 TPS, e-Biz, IDC, 회선임대 및 솔루션 등의 사업을 영위, 컨버전스에 최적화된 유무선 통합 서비스 제공.
- 주요 종속회사인 미디어로그는 미디어 콘텐츠 서비스와 MVNO 사업 전개하고 있으며, 2019년 12월 LG헬로비전을 인수하여 종속기업으로 편입하였음.
- 5G 홀로그램 콘텐츠 및 초다시점 단말, 대용량 콘텐츠 처리 플랫폼, 초실감 콘텐츠 등을 개발 중으로 5G 관련 콘텐츠 육성에 주력 중임.
실적 및 분석
- 휴대폰 판매 부진에도 5G 및 기가인터넷 가입자 증가로 유무선 통신 부문이 성장한 가운데 LG헬로비전의 연결편입으로 전년대비 매출 증가.
- 인건비 증가 등에 따른 판관비 부담 확대에도 원가구조 개선으로 전년대비 영업이익률 상승, 영업권손상차손 증가에도 중단영업이익 발생으로 순이익률은 전년 수준을 유지.
- 다양한 결합상품을 기반으로 한 5G 및 IPTV 가입자 증가세 지속, 마케팅 경쟁 완화와 5G망 공동투자 등에 따른 비용 절감으로 매출 성장 및 수익성 개선 전망.
케이엠더블유(032500) :: 통신장비 관련주
기업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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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RH, 안테나, 필터 등 이동통신 기지국에 장착되는 각종 장비 및 부품 제조업을 주력사업으로 영위하며, LED 조명 제조업도 일부 영위하고 있음.
- 닛시, GIGA Tera COMMUNICATIONS, Inc., KMW JAPAN Inc., 기가테라라이팅 등 국내외 다수의 종속기업을 보유 중임.
- 2017년 7월 각 사업부문의 경쟁력강화를 위해 LED 조명 사업부문을 분할하여 신설기업 (주)기가테라라이팅을 설립, 종속기업으로 편입하였음.
실적 및 분석
- RRH, 안테나, 필터 등 주력 무선 통신장비 부문의 수주가 크게 감소한 가운데 LED 조명 판매도 감소하며 전년대비 큰 폭의 매출 감소.
- 원가 및 판관비 부담 확대된 가운데 연구개발비 증가하며 영업이익률 전년대비 하락, 법인세수익 발생에도 금융수지 저하되며 순이익률도 하락.
- 글로벌 경기 개선과 국내외 통신사업자들의 5G 투자 확대, IoT 서비스 본격화 등으로 이동통신 기지국 장비 수주 증가하며 매출 회복세 보일 듯.
오이솔루션(138080) :: 통신장비 관련주
기업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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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송신 및 광수신 모듈인 광트랜시버의 제조 및 유통업을 영위하고 있으며, WBH/WFH(무선이동통신)용 광트랜시버를 주로 생산함.
- 광주광역시 북구 첨단연신로에 본사를 두고 있으며, 미국과 일본 소재의 판매법인을 종속기업 형태로 운영하고 있음.
- 국내에서 광트랜시버를 생산하는 업체는 10개사 정도로, 7-8개의 해외 업체도 함께 경쟁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며, 동사는 국내 시장점유율 1위 업체임.
실적 및 분석
- 미주 지역으로의 판매 증가에도 COVID-19 영향으로 국내외 5G 투자가 지연되면서 내수 판매가 크게 감소, 유럽 및 아시아로의 판매도 감소하며 전년대비 매출 큰 폭 축소.
- 큰 폭의 매출 감소에 따른 원가 및 판관비 부담 확대로 영업이익률 전년대비 크게 하락, 법인세수익 발생에도 순이익률도 크게 하락.
- 글로벌 경기 개선과 국내 통신사업자들의 5G 투자 확대, 북미 지역의 네트워크 인프라 투자 지속, 해외 5G 투자 재개 등으로 매출 회복세 보일 듯.
에이스테크(088800) :: 통신장비 관련주
기업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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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신장비 및 그 부품의 제조업을 주력사업으로 영위하며, 취급 제품은 RF부품, RRH, 기지국 및 모바일안테나, 중계기, 방산용 안테나, 차량용 안테나 등임.
- 주력제품인 기지국용 안테나 시장은 동사와 하이게인안테나, 감마누 등이 경쟁하고 있으며, 동사가 국내 시장의 50% 정도를 점유하고 있음.
- 중국 소재의 생산법인, 인도 소재의 생산법인과 홍콩 소재의 지주회사, 미국 소재의 통신기기 판매법인 등을 종속기업을 보유 중임.
실적 및 분석
- COVID-19 팬데믹 영향으로 국내외 5G 투자가 지연되면서 RF부품, 기지국안테나 등 주력제품 판매가 부진하며 전년대비 큰 폭의 매출 감소.
- 큰 폭의 매출 감소에 따른 원가율 상승과 판관비 부담 확대로 영업이익 전년대비 적자전환, 법인세 증가하며 순손실 규모는 전년대비 크게 확대.
- 글로벌 경기 개선과 국내외 5G 투자 재개로 에릭슨 및 삼성전자향 통신장비 공급 본격화, 미중 경제갈등에 따른 반사이익 등으로 외형 성장 전망.
에치에프알(230240) :: 통신장비 관련주
기업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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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사는 국내외 통신사업자 등을 대상으로 유무선 통신용 장비의 개발/제조 및 판매를 주요 사업으로 영위하고 있음.
- 무선사업 부문은 SK텔레콤 및 Verizon, AT&T, NTT Docomo 등의 통신사업자에게 이동통신 전송장비, 중계장비 및 부대장비를 판매하고 있음.
- 유선사업 부문은 통신사업자 국사 및 가입자 댁내외에 설치되는 제품 및 관련 시스템을 제조 및 판매하고 있으며, 주요 고객사는 SK브로드밴드를 포함한 국내 통신3사임.
실적 및 분석
- COVID-19 확산에 따른 국내 및 해외 통신사업자들의 투자 지연으로 네트워크 장비의 수주가 위축된바 매출 규모는 전년대비 축소.
- 외형 축소의 영향으로 원가구조 저하된 가운데 경상연구개발비 증가 등 판관비 부담도 확대되며 영업이익 및 순이익 전년대비 적자전환.
- 글로벌 경기 회복세 및 국내 5G 투자 재개가 기대되며, 일본 NEC그룹사향 장비 공급 수주와 미국 Dish Network의 고객사 확보 등으로 매출 회복 가능할 듯.
다산네트웍스(039560) :: 통신장비 관련주
기업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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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 통신장비 개발과 공급을 주력사업으로 영위하며, DZS Inc.(미국)와 다산네트웍솔루션즈 등을 종속기업으로 보유하고 있음.
- 사업부문은 네트워크사업, 자동차 자동화솔루션 사업, 특수 열교환기 사업으로 구분되며, 상기 부문 중 네트워크 부분을 통해 대부분의 매출이 발생함.
- 주력 네트워크사업(이더넷스위치, FTTx솔루션 등)의 국내 주 고객은 KT, SK브로드밴드, LG U+와 같은 기간통신사업자이며, 해외는 노키아 등 통신장비 업체임.
실적 및 분석
- COVID-19 팬데믹에 따른 글로벌 경기침체로 5G 등 네트워크 투자가 부진한 바 지배기업 및 미국법인의 장비 판매 부진하며 전년대비 매출 규모 축소.
- 원가율 하락에도 판관비 부담 확대와 연구개발비 증가로 영업손실 규모 전년대비 증가, 금융수지 개선에도 기타영업외수지 저하로 순손실 규모 역시 전년대비 증가.
- 글로벌 경기 개선과 국내외 5G투자 확대, 미국 광통신 투자 증대, 일본으로부터의 수주 지속, 정부의 와이파이 투자 본격화 등으로 매출 성장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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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현(香峴) - 박두진 아랫도리 다박솔 깔린 산 넘어, 큰 산 그 넘어 산 안 보이어, 내 마음 둥둥 구름을 타다. 우뚝 솟은 산, 묵중히 엎드린 산, 골골이 장송들어섰고, 머루 다래넝쿨 바위 엉서리에 얽혔고, 샅샅이 떡깔나무 억새풀 우거진 데, 너구리, 여우, 사슴, 사토끼, 오소리, 도마뱀, 능구리 등 실로 무수한 짐승을 지니인 산, 산, 산들! 누거 만년 너희들 침묵이 흠뻑 지리함 즉 하매, 산이여! 장차 너희 솟아난 봉���리에 엎드린 마루에 확확 치밀어 오를 화염을 내 기다려도 좋으랴! 핏내를 잊은 여우 이리 등속이, 사슴 토끼와 더불어 싸리순 칡순을 찾아 함께 즐 거이 뛰는 날을 믿고, 길이 기다려도 좋으랴? 공유하기글 요소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서양사 - 북미사 1. 개념 및 정의 북미사(北美史, North American history)는 북미 대륙의 미합중국과 캐나다를 포함한 곳의 역사를 의미한다. 북미 대륙은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에 이어 사람이 살게 되었던 대륙의 하나이다. 기원전 1만 5000년 경이나 1만 2000년 경 이전에 마지막 빙하기로 인해 베링해가 육지로 변했을 때, 아메리카 원주민(인디언)이 살게 되었다. 그 이후 베링해(bering sea)가 바다가 되자 북미 대륙에는 9개의 언어 군으로 분류되는 수백 여 부족의 원주민이 살게 되었다.15세기 말 대항해 시대 이후 북미 대륙은 에스파냐인과 영국인, 프랑스인들이 탐험하였고, 이들 나라의 식민지가 되었다. 북미 대륙은 17세기 초부터 18세기 후반까지 이 세 나라의 경쟁 지역이 되었고, 여러 번의 전쟁과 협상으로 최종적으로 영국이 지배하게 되었다. 그러나 1783년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고, 1867년 캐나다가 자치령이 되었다. 그 이후 미국은 19세기와 20세기를 거쳐 강대국이 되었고 세계사의 주역이 되었으며, 캐나다도 북미 대륙의 또 다른 주역이 되었다. 2. 역사 1) 미국사 (1) 인디언과 최초의 유럽인현재 북미 대륙은 유럽의 국가들이 식민지로 삼기 전 오랜 기간 인디언의 땅이었다. 원주민의 아메리카 이주에 대한 학설은, 먼저 몽골계 인종들은 수만 년 전 빙하기에 수위가 낮아져 다리처럼 연결되었던 베링 육교를 건너 알래스카로 이동한 뒤 아메리카 전역에 퍼져 살게 되었다는 설이다. 또 다른 설은 남태평양의 아시아계 종족들이 바다를 건너 남아메리카에 도착했다는 설이다. 이외에도 여러 갈래여서 아직까지도 정확한 경로는 밝혀지지 않고 있지만, 현재도 북아메리카 초기의 사람이 살았던 흔적은 계속 발견되고 있다. 최근에 알래스카 북부에서 발견된 수렵군 망보는 곳의 흔적과 뉴멕시코의 클로비스 근처에서 발견된 창촉은 수천 년 전의 것이다. 그러나 기원전 1만 2000년 이전의 믿을 만한 흔적은 찾아보기 어렵다.인구는 15세기 경 북미에 400만 여명(지금의 캐나다와 미국의 동북 문화권에 250만 명, 알래스카로부터 캘리포니아 남부에 이르는 로키 산맥 서쪽에 150만 명)정도로 추정하고, 1960년 인구조사 결과 미국에만 42만 명의 인디언이 생존한다고 알려졌다. 백인들에게 토지를 빼앗기고 그 문화의 독립성을 상실해 가는 것이 인디언의 역사이다. 이들은 지금 겨우 수십만 명이 살아남아 보호구역에 거주하면서 미국정부가 주는 보조금으로 연명해 살아가고 있다.예로부터 좁은 유럽 땅에서 살며 소유권 개념이 강한 백인들은 넓은 북미 대륙에서 소유권 개념이 없이 살던 인디언들과 충돌하게 된다. 충돌과 싸움 속에서 인디언들은 백인들에게 땅을 빼앗겼다. 인디언들이 싸움에서 지고, 질병을 피해서 스스로 서쪽으로 도망가는 경우도 있었으나, 대부분은 조약에 의해 빼앗긴다.한편 지금부터 천 년 전에 또 다른 북미 대륙의 탐험가인 노르만인들이 아이슬란드와 그린란드를 거쳐 대륙의 북쪽 해안에 도착하였다. 리프 에릭슨(Lief Eriksson)은 약 1년간 거주하였고, 1012년 경 도르핀 칼스피니와 소수의 노르만인들도 캐나다의 세인트 로렌스강 유역에 약 1년간 정착하였지만, 이들은 춥고 배고프고 농사도 되지 않아서 이곳을 떠났다. (2) 식민지 시대(1493년~1776년)크리스토퍼 콜럼버스(Christopher Columbus, 1451.10.31~1506.5.20) 이탈리아인 항해사 크리스토퍼 콜럼버스(Christopher Columbus)는 대서양 서쪽으로 계속 항해하면 인도에 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오랜 노력 끝에 스페인의 이사벨라 여왕으로부터 항해에 대한 후원을 받게 되었다. 콜럼버스는 그해 여름에 스페인을 떠나 대서양을 서쪽으로 3개월 이상 항해한 끝에 산살바도르(San Salvador)를 발견하였다. 그는 인도라고 믿었지만 그것은 신 대륙이었다.이어서 영국인 존 캐벗(John Cabot)이 북미 대륙의 동해안을 탐사하였고 영국왕이 이곳을 식민지화하였다. 한편 프랑스인 자크 카르티에(Jacques Cartier)가 세인트로렌스 강을 거슬러 현재의 캐나다 땅을 차지하는 등 유럽인에 의한 남북 아메리카의 탐험과 개척, 인디언에 대한 영토 약탈과 학살이 시작되었다.1607년 8월에 영국 성공회(聖公會, the anglican domain) 교인들이 지금의 버지니아주 제임스타운에 정착하였다. 한편 1620년에 필그림(pilgrims: 건국부조들)이라 불리는 청교도인들이 플리머스에 도착하여 뉴잉글랜드가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다. 이들은 청교도(淸敎徒, Puritan) 중에서 분리주의자들로서 영국 국교(성공회)를 부정하고 영국 국교에서 완전히 분리할 것을 주장하였다. 이들은 1620년 9월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오다가 ‘메이플라워 서약(mayflower compact)’을 하였다. 이것은 법이 모든 사람에게 구속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다수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는 것이고, 미국 최초의 자치 헌법인 셈이다.청교도인들은 1621년 가을, 인디언들의 도움을 받아 겨우 생존에 성공하였다. 이들은 남쪽 성공회 교인들의 거주지인 제임스타운과 다른 행정 체제를 시행하였다. 식민지 행정은 매년 선출하는 지사와 자문위원 등에 의해 이루어졌다. 청교도인들은 신정정치(神政政治)를 시행하고 ‘종교’ 다음으로 ‘교육’에 관심을 가져 1635년에 하버드대학을 세웠다. 이들은 처음에는 인디언들과 우호적이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충돌하였다. 청교도들은 인디언을 기독교로 개종하려고 시도하였고, 인디언을 노예화하여 강제 노동을 시키는 경우도 있었다. 이들 청교도를 멀리한 새로운 개신교도들과 유럽인들이 펜실베이니아와 뉴욕 등을 건설하여 식민지가 확장되었다. (3) 미국혁명18세기에는, 한랭한 기후로 비교적 농업에 적합하지 않은 동북부에서 양조·조선·섬유 등의 산업이 발달하면서 영국 본국의 경제를 압박하게 되었다. 원래, 개신교도가 다수파를 차지하는 식민지에서 영국 성공회를 국교로 하는 본국과는 어느 정도 알력이 있었지만, 당시에는 종교적으로 본국과 분리되었으며, 경제적으로도 자립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영국 본국은 18세기에 프랑스와의 오랜 전쟁으로 인해 자국군의 주둔비와 전비를 지원하기 위해 식민지 주민에 대해서 세금을 부과하는 ‘인지세법(印紙稅法)’으로 과세를 강화했다. 식민지인들은 과세 반대와 ‘인지세법’ 폐지를 주장하였고, 1765년에는 열렬한 반대 운동을 전개했기 때문에 영국은 이듬해 이 세금을 철폐했지만, 이번엔 ‘차법(茶法)’으로 차의 무역을 독점하려 했다. 이에 격분한 식민지인들은 1773년에 보스턴 항구를 습격하여, ‘보스턴 차 사건(Boston tea party)’을 일으켰다.‘보스턴 차 사건’에 충격을 받은 영국은 보스턴 항구를 폐쇄하고, 주민들에게 강경한 조치를 취하였다. 여기에서 아메리카 13개 식민지 대표들이 필라델피아에서 역사상 처음으로 대륙 회의를 열고, 식민지의 자치권을 요구하면서 영국에 대하여 저항할 것을 결의한다.1775년 4월 렉싱턴의 콩코드에서 영국군과 민병대 사이에 충돌이 발생하면서 미국 독립 전쟁이 발발하였다. 식민지 대표들은 제2차 대륙 회의를 개최하여, 조지 워싱턴을 독립군 총사령관으로 임명하고 대륙 군을 결성하였다. 그리고 1776년 7월 4일 대륙 회의에서 토마스 제퍼슨(Thomas Jefferson)이 초안한 미국독립선언서를 발표했다.미국 독립군은 독립 전쟁 초기에 영국군에게 일방적인 패배를 당했다. 1778년 미국은 프랑스와 동맹을 맺어 프랑스의 군사적 지원을 받았으며, 에스파냐와 네덜란드와도 동맹을 맺었다. 이후 워싱턴의 지구전 전략과 프랑스 해군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전세는 독립군에게 점점 유리해졌다. 1781년 영국은 ‘요크타운 전투(battle of yorktown)’에서 결정적인 패배를 당하였고, 미국과 영국 제국은 1783년 9월 3일에 프랑스 파리에서 ‘파리 조약(treaties of Paris)’으로 평화 협정을 맺음으로 영국은 미합중국의 독립을 승인하게 된다. 독립 후의 13개 주는 연방헌법을 만들어 미국적인 민주주의의 기초를 놓았다. 이 헌법제정으로 미국은 3권이 분��된 대통령 중심제와 연방주의에 기초한 지방자치제도라는 공화국을 실현하였다.토마스 제퍼슨(Thomas Jefferson, 1743.4.13~1826.7.4) 미국 독립선언서 (4) 국가적 토대의 확립과 팽창 시대1800년에 대통령에 당선된 토마스 제퍼슨은 루이지애나 지방을 프랑스로부터 1500만 달러에 사들였다. 1812년, 영국이 미시시피 강 서부와 캐나다 원주민을 지원하는 것을 구실로, 남부와 서부 출신 의원을 중심으로 영국에 선전 포고를 하였고, 독립 전쟁 종전 후 29년 만에 다시 미영 전쟁(또는 1812년 전쟁)이 시작되었다.전쟁에서 승리한 미국은 서부로 영토를 확장하는 단계에서, 북부에는 산업 혁명(industrial revolution)을 맞이하게 되었다. 반면, 남부는 면화 생산을 주요 산업으로 하고 있었다. 북부 공업 지대는 유럽과 공업 제품 수출 경쟁의 균형에서 자국 산업 보호를 호소했고, 관세를 부과하는 등 보호 무역을 요구했다. 한편, 남부 농업 지역은 자유롭게 면화를 수출하고 싶었기 때문에, 자유 무역과 관세 철폐를 요구했다. 이렇게 지역주의에 입각한 남북의 대립은 심화되었다.또한 중공업화가 진행되고 있는 북부에서는 노동자 부족 사태에 직면하고 있었기 때문에, 19세기 초반에 속속 흑인 노예를 해방하고 노동자로 이용했다. 이 해방 노예의 일부는 아프리카 대륙으로 귀환을 원했으며, 아프리카 서해안에 라이베리아(Liberia)가 세워졌다. 한편, 남부에서는 19세기 중반에도 흑인을 노예로 사용했고, 광대한 플랜테이션(plantation) 농업을 하고 있었다. 영국에서의 면화 수요가 확대되면서, 남부에서는 점점 흑인 노���의 노동력에 의존하는 산업 구조가 되었다.영토가 서부로 확장되면서, 식민지 인구는 증가하게 되고, 이러한 새로운 주(州)에 노예제를 적용할 지에 대해 남북이 대립하였다. 1854년, 북부를 중심으로 노예제 반대를 호소하는 공화당이 창당되었고, 남부 농민의 지지를 받았던 민주당과 대립했다. (5) 남북 전쟁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 1809.2.12~1865.4.15) 1860년 공화당의 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이 대통령이 되었다. 그는 흑인 노예해방을 공약으로 내세워 북부 자본가들의 환영을 받았다. 그러자 남부의 노예주는 반발을 했고, 남부 연합을 결성하여 분리를 선언했다. 미합중국은 그들을 인정하지 않았고, 1861년 4월 남북 전쟁이 발발하였다.1861년 4월, 남부동맹군이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찰스턴 항의 섬터 요새(fort sumter)를 포격하는 것으로 시작되어 1865년 4월까지 4년 동안 지속되었다. 초반에는 남군이 유리한 전쟁을 이끌었지만, 북군은 해상 봉쇄 등으로 대항하였고, 1863년 1월에 링컨은 ‘노예해방령’을 발표하면서 급속하게 지지를 확대하였다. 결국 1863년 게티즈버그 전투에서 북군이 승리를 거두면서 남군의 세력이 약화되었다. 1865년 4월, 남부 연합은 항복했고 미합중국은 다시 통일되었다.결과적으로 미국 산업 발전의 토대를 다졌던 것은 미국의 분열로 말미암은 남북 전쟁이었다. 이 전쟁에서 공업 국가를 지향하던 북부의 자본주의 세력이 농업 국가를 지향하던 남부 지주 세력을 격파함으로써, 남북 전쟁 이후 미국 산업은 공업 중심으로 움직이게 되었다. 만약 이 전쟁에서 남부가 승리하였다면, 오늘날의 미국은 중남의 여러 나라처럼 분열되어 중소 국가에 불과했을 것이다. 또한 이 전쟁은 그 당시까지도 뿌리 깊었던 지역감정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전쟁 막바지였던 1865년 1월 31일 링컨은 수정헌법 제13조로 ‘노예제 폐지’를 명문화(明文化)하였다. 전후 흑인은 노예제도에서 해방되었지만, 사회적인 차별과 인종 차별, 박해로부터 보호받지 못했고, 쿠 클럭스 클랜(KKK) 등에 의한 린치(lynch)는 20세기 중반이 지나서도 많은 흑인 생명을 계속 빼앗아 갔다. 노예해방 후 남부는 플랜테이션 농가의 많은 산업의 기반을 잃고 몰락했지만, 실제는 해방 노예를 소작농으로 고용하여 남북 전쟁 전과 실질적으로 다를 바 없는 경영을 계속한 대규모 농가도 많이 존재했다. (6) 재건과 산업 발전재건에 대한 논의는 링컨 대통령의 1863년 1월 1일 ‘노예해방령’으로부터 시작하여 ‘1877년 타협’까지 지속되었다. 링컨이 당면한 문제는 해방노예의 지위와 충성심, 전 반란군들의 시민권이었다. 연방정부는 내전을 예방하기 위해 강력한 연방권력이 필요했고, 전후 흑인들의 지지가 필요했다. 전쟁기간과 이후 흑인 권리를 위한 3개의 연방헌법 수정안이 통과되었다. 수정안 제13조는 노예제도를 불법화하였고, 수정안 제14조는 흑인에게 다른 시민권자들과 동등한 권리를 보장하였으며, 수정안 제15조에서는 유색 인종의 선거권을 박탈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링컨이 암살당한 후 링컨의 의도와 달리 공화당 급진파에 의해 남부는 군정이 시행되었다.재건은 공화당 후보 러더퍼드 버처드 헤이즈(Rutherford Birchard Hayes)와 민주당 후보 새뮤얼 틸던(Samuel Tilden) 사이에서 논란이 많았지만, 1876년 미국 대통령 선거 이후 끝이 났다. 타협을 통해 헤이즈는 선거에서 승리하였고, 연방정부는 남부에서 군대를 철수시켰으며, 남부의 여러 주들은 연방으로 재가입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1890년 이후 남부 주는 효율적으로 흑인들로부터 투표권을 박탈할 수 있었다. 흑인들은 공공장소에서 격리되었고, ‘짐 크로우 법(Jim Crow law)’으로 알려진 제도에 인해 흑백 차별을 당했다. 이러한 상황은 1964년에서 1965년까지 벌어졌던 시민권 쟁취 운동이 성공할 때까지 지속되었다.19세기 후반은 미국의 발전과 서부의 정착으로 특징된다. 처음에는 왜건의 행렬로 이후에는 대륙 횡단 철도의 완성으로, 서부 영토를 팽창하였고, 이것은 서부의 정착민이었던 인디언들이 대대로 살고 있던 땅을 침범하는 것이었다. 점점 미국은 그들의 땅을 구매하거나 약탈하였고, 인디언의 여러 부족을 제한된 보호구역으로 수용하였다.산업의 발전으로 미국은 강대국이 되어갔다. 수많은 이민자의 유입과 기술·개발로 미국은 산업이 발전하였다. 트러스트(trust)라는 회사의 합병을 통해 독점기업이 나타났으며, 산업이 정치와 문화를 지배하였고, 이에 대한 반발로 개혁이 일어났다.개혁의 시대는 ‘공무원법’을 포함하고 있었으며, 그것은 행정직 응시자에 대한 경쟁시험을 강제하는 것이기도 하였다. 다른 중요한 법제화로는 ‘주간 통상법(州間通商法)’이 있었으며, 이것은 소형화물 선적 화주에 대한 철도의 차별을 없애고자 한 법이었다. ‘셔먼 반트러스트법(sherman antitrust act)’은 상업에서 독점의 폐해를 막기 위해 독점을 불법화한 법안이었다. (7) 20세기 초·중반의 역사외국에 불간섭 원칙을 천명했던 먼로 독트린(monroe doctrine) 이래 고립 정책을 고수하던 미국은, 미국 선박들이 독일의 U보트(U-boat)에 의해 계속 파괴되자 이에 분개하기 시작한다. 또한, 짐머만의 전보에 의해 멕시코 전쟁으로 얻었던 땅을 뺏길 위험에 처하자, 그동안 평화를 주장하며 전쟁 참가를 꺼려왔던 우드로 윌슨(Woodrow Wilson) 대통령은 1917년 4월 6일, 독일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 선전 포고를 하였고,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한 미국은 승전국이 되었다. 제1차 세계 대전 때 미국은 헌법을 수정해 징병제를 부활하였고, 여성들은 남성들의 징병으로 인해 일자리를 가지게 되었다. 1910년~1930년 사이에 200만 명이나 되는 남부의 흑인들이 인종 차별을 피하며 뉴욕, 시카고, 디트로이트, 클리블랜드 등의 북부 도시들로 이주하였다.제1차 세계 대전 기간 전쟁 물자를 팔아 수익을 올렸던 미국 공장들은 전쟁이 끝나면서 수요가 사라지자 부도를 내며 문을 닫았고, 이에 따라 많은 실업자가 생겨났다. 실업자들은 수입이 없었기 때문에 물품을 살 수 없었고, 이에 따라 다른 공장들도 문을 닫기에 이른다. 통화 가치가 떨어지고 돈이 넘쳐나자 돈 벌기가 쉬워졌고, 많은 사람이 수익을 노리고 주식에 투자했다. 과도한 투기장이 되었던 주식시장은 1929년 10월 24일 ‘검은 목요일(black thursday)’에 일어난 악명 높은 대공황으로 내달았다. 이제 전 세계가 공황에 휩싸이게 되었다. 이러한 대공황을 프랭클린 루스벨트(Franklin Roosevelt) 대통령은 뉴딜(new deal)이라는 사회주의적 성격을 지닌 개혁을 통해 해결하였다.독일이 1939년 9월 1일 선전포고도 없이 폴란드에 침공함으로써 제2차 세계 대전을 일으켰다. 이미 내부적으로 경제 대공황이라는 문제점을 떠안고 있던 미국인들은 전쟁에 참가하는 것을 반대했으나 1941년 12월 7일, 일본이 진주만을 공습하자 미국은 연합국에 참가한다. 제2차 세계 대전을 승리로 끝낸 미국은 세계 강대국으로 부상하게 되는데, 그것은 제2차 세계 대전 중에 유럽 각국에서 돈과 장비에 대한 수요가 늘어난 호기를 잘 이용한 덕분이다.우드로 윌슨(Woodrow Wilson, 1856.12.28~1924.2.3) 프랭클린 루스벨트(Franklin Roosevelt, 1882.1.30~1945.4.12) (8) 냉전과 변화의 시대냉전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사회주의 진영과 자본주의 진영 간의 정치·외교·이념상의 갈등이다. 이는 군사적 위협의 잠재적인 전쟁으로 알려졌으며, 일반적인 전쟁인 실제 무력의 사용(열전)과 대조되는 개념이다. 1945년 5월 나치의 독일이 항복하자 자본주의 국가인 미국과 영국, 사회주의 국가인 소련 사이의 불안정한 전시동맹관계가 해체되었고, 이에 미국은 소련의 확대를 막기 위해 봉쇄전략을 사용하기에 이른다.특히 동유럽에 막대한 금액의 지원금을 원조하였고, 미국의 상·하양원합동회의(上下兩院合同會議)에서 미국이 공산 세력을 저지하는 데 지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트루먼 독트린(truman doctrine)’을 성명하기도 했다. 그 후 미국과 소련, 세계 각지에서 냉전이 시작되었고, 한국과 독일이 분단에 이르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그리고 냉전의 첫 번째 희생물로 분단된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났고, 미국과 UN군이 개입하여 한반도가 공산화되는 것을 막았다.1960년대는 ‘변화의 시대’라고 불리기도 한다. 냉전은 1960년대와 1970년대를 통해 계속되었고, 미국은 이 와중에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여 역사상 처음으로 대패를 기록한다. 미국 내부에서는 린든 존슨(Lyndon Johnson) 대통령이 위대한 사회 정책을 통해 가난과 인종 차별을 없애려고 시도 하였으나 베트남 전쟁으로 인해 필요한 만큼의 지원을 받지 못해 크게 성공하지는 못한다.그러나 이 시대의 미국은 다양한 정치적·사회적 변화를 겪으며 국민들의 의식이 크게 성장하였으며, 공민권(公民權, civil rights)을 위한 투쟁도 이 시기에 시작되었다. 존슨 대통령에 이은 리처드 닉슨(Richard Nixon) 대통령은 워터게이트 사건(watergate affair)으로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임기 중 사임하게 되었다. 이 시기 미국은 우주지배의 발판으로 태양계와 달에 첫걸음을 내디뎠다.린든 존슨(Lyndon Johnson, 1908.8.27~1973.1.22) 리처드 닉슨(Richard Nixon, 1913.1.9~1994.4.22) (9) 현대(1991년~현재)1991년 소련이 붕괴하자 유일한 초강대국으로 부상한 미국은 세계 경찰을 자임하였고, 이에 거슬리는 여러 나라에 대항하여 전쟁을 일으켰다. 동시에 국내적으로도 경제적·정치적 정책을 통해 성장을 거듭한 시대이다.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 등으로 세계 평화를 위협한다는 이유로 걸프 전쟁(gulf war), 이라크 전쟁(Iraq war) 등을 일으켰고, 이에 반발하는 세력들에 의해 많은 테러의 위험에 노출되었다. 그러나 미국이 이라크 전쟁을 일으킨 이유인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보유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져 이라크 전쟁은 명분 없는 전쟁이라는 비난을 받게 되었다.오사마 빈 라덴(Osama bin Laden, 1957.3.10~2011) 조지 워커 부시(George Walker Bush, 1946.7.6~) 2001년 9월 11일에는 오사마 빈 라덴(Osama Bin Laden)이 이끄는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에 의해 세계 무역 센터가 테러 당했으며, 이에 대한 ���복으로 조지 워커 부시(George Walker Bush) 대통령이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하고 탈레반 정권을 붕괴시켰다. 그 이후 미국 정부는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했으며 이라크를 공격하고 사담 후세인(Saddam Hussein)을 체포하였으며, 오사마 빈 라덴을 사살하였다. 이라크 전쟁은 프랑스, 독일 등 많은 국가가 반대하였으나 미국은 이를 강행하였다. 2008년 제44대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버락 오바마(Barack Obama)가 당선되었고, 그는 미국 역사상 최초로 탄생한 비(非)백인 대통령이다. 현재 미국은 과거와 달리 유일한 초강대국은 아니지만 여전히 세계를 통제하는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사담 후세인(Saddam Hussein, 1937.4.28~2006.12.30) 버락 오바마(Barack Hussein Obama, 1961.8.4~) 2) 캐나다의 역사 (1) 식민지 시대(스페인과 영국의 지배)남부 유럽에서 온 스페인 고래잡이들이 15세기 후반부터 현재의 뉴펀들랜드 해안의 그랜드 뱅크에서 주로 고래잡이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고래 기름과 옷을 만들기 위한 고래수염 판을 얻기 위해서 북극고래와 흰고래를 사냥했다. 16세기 중반에는 라브라도와 뉴파운드랜드에 적어도 아홉 곳의 전초기지가 세워졌다. 가장 큰 정착촌은 레드 베이 기지로 900명 정도가 살았다. 그러나 두 고래 종이 거의 멸종에 이르고 많은 포경선이 스페인 해군에 편입되면서 이 작업은 1600년대 초에 급격히 쇠퇴했다.16세기~17세기에 영국과 프랑스는 어업과 모피무역을 위해서 동부 캐나다에 정착촌들을 세웠다. 뉴프랑스가 매우 넓은 영토에 설립되면서 프랑스인들은 원주민의 기술과 프랑스의 가치를 결합하여 혼합된 시민권을 만들어서 원주민들과의 협력을 보호해야만 했다.그 후 150년이 넘게 캐나다 영토는 세인트로렌스 강의 중심지에서 대호수들과 북미의 미시시피 계곡의 상부 지역으로 계속 확장해 갔다. 그들의 팽창은 와이어도트 부족, 이로쿼이 부족, 그리고 특히 영국의 반발을 샀고, 영국과의 전쟁들로 인해서 처음에는 아카디아를, 나중에는 캐나다를 빼앗겼다. 영국과의 전쟁에서 연패한 프랑스는 1763년 파리조약(treaties of Paris)으로 카리브섬 식민지들은 유지하되 북미의 식민지는 대부분 영국과 스페인에 빼앗겼다. 그 결과 프랑스 고위층만이 본국으로 돌아갔으며 농부들은 정복자 영국의 자비에 맡기게 되었고 협정 조약으로 캐나다인의 가톨릭 신앙을 유지할 수 있었다. 1791년에 영국정부는 ‘캐나다’라는 정식 명칭을 사용하였다.그 이후 프랑스보다 힘이 강한 영국은 자국의 북미 식민지에 대한 방어와 확장에 지속적인 우위를 지켰다. 프랑스 본국정부의 뉴프랑스 지원은 미미한 수준에 그쳤으며 북미의 프랑스 식민지인들은 대부분의 식민지 사업을 자신들의 힘만으로 일궈나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17세기와 18세기에 걸쳐 유럽의 라이벌 강국인 영국과 프랑스는 세계의 다양한 지역에서 제국주의적 영토 확장 전쟁을 벌였으며 이는 서인도 제도와 캐나다 영토 안팎에서 셀 수 없는 전투를 촉���했다.영국령 북미 영토는 1783년 미합중국의 독립으로 현재의 뉴펀들랜드, 노바스코샤, 프린스 에드워드 섬, 그리고 퀘벡으로 줄게 되었다. 영국 식민지들은 1812년 미·영 전쟁에 개입했고, 그 결과 영국령 북미 주민들 사이에 민족주의가 발생했다. 영국령과 미국 영토 사이에 무역, 어업, 영토 분쟁은 오리건 협상으로 북위 49도선에서 타협하였다. (2) 자치운동과 영연방 시기윌리엄 라이언 맥켄지(William Lyon Mackenzie, 1874~1950) 1837년에 영국 식민정부에 대항한 반역자들이 상하부 캐나다를 차지했다. 상캐나다에서는 윌리엄 라이언 맥켄지(William Lyon Mackenzie)가 이끄는 자치군이 조직되었고, 런던, 해밀턴 근처에서 비연속적인 소규모 충돌이 있었다. 1837년~1838년에 하캐나다 반란으로 알려진 소규모 반란이 발생했다. 일부는 미국을 등에 업고 영국계와 프랑스계 캐나다인 모두 영국에 대항해서 충돌을 여러 번 일으켰다.미국이 북위 49도선을 서부 영국령과 국경선으로 합의하고 나서 영국 정부는 1848년에 브리티시 컬럼비아의 태평양 해안 영토를, 1849년에는 밴쿠버 섬을 식민지로 만들었다. 1854년까지 미국과 대부분의 국경 문제는 해결되었다. 1850년 중반에 캐나다 식민지인들은 서부로 확장을 심사숙고하기 시작했다. 영국정부는 루퍼트 영토와 북극 영토에 대한 허드슨 베이사의 소유권에 대해 의문을 품었고 자신들과 캐나다 인구·지리·기후 등에 대해 익숙해지기 위해 여러 차례 탐험을 시행하였다.영국령 북미 내의 식민지 연합 또는 연맹의 자치운동은 19세기 초반에 싹텄다. 1837년~1938년의 반란 후에 상·하부 캐나다의 식민지들은 ‘연합법’(1840년)으로 캐나다 주가 되어 하나의 정부 아래 통합을 시도했지만, 이는 실패했다. 또한 프랑스계 캐나다인들을 흡수하려는 의도도 있었다. 1864년에 미국의 남북 전쟁에 동요된 영국령 북미 정치인들은 샬롯타운 회의와 퀘벡 회의(Quebec conference)를 열어서 연방 연합의 세부사항에 대해 논의했다. 1867년 7월 1일, 영국 하원에서 대영국 북아메리카 조약이 통과되자 영국령 북미의 세 식민지(캐나다 주, 뉴브런즈웍, 그리고 노바스코샤)는 연합 형태의 캐나다 자치령이 되었다. 그 영토는 네개의 주로 구성되었는데 온타리오, 퀘벡, 뉴브런즈윅, 그리고 노바스코샤이다.1867년에 다른 영국령 북미 식민지들과 영토들이 캐나다 동맹으로 합류하거나 편입되었다. 1880년까지 캐나다는 현재의 영역을 관할하고, 1949년에 뉴펀들랜드와 라브라도가 포함되었다. 1926년 영국정부는 캐나다와 기타 자치령의 완전 자치령을 인정했다. 1931년에 웨스트민스터조례(statutes of westminster)로 캐나다는 주권 국가로서 영연방을 구성하게 되었다. 1949년 캐나다가 법적인 독립국이 되었고, 1951년 국명을 ‘캐나다자치령’에서 ‘캐나다’로 바꾸었다. 1982년 캐나다 헌법이 제정되어 영연방의 일원으로 존속하나 영국과의 법적 예속관계는 끝이 나고 완전한 주권 국가가 되었다. 3. 주요 용어 및 관련 직업군 1) 주요 용어 • 미합중국: 1883년 영국에서 독립한 연방 국가이다.• 남북 전쟁: 1861년에서 1865년까지 벌어진 미국의 내전을 말한다.• 에이브러햄 링컨: 미국 제16대 대통령으로 남북 전쟁을 북부의 승리로 이끌고, 노예제를 폐지한 대통령이다.• 지역주의: 미국의 남북 전쟁 이전까지 존재했던 남·북간의 지역감정을 말한다.• 대공황: 1929년 10월에 일어났던 전 세계적인 공황을 말한다.• 냉전: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1991년 소련의 해체까지 있었던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체제의 대립상황을 말한다.• 9.11: 2001년 9월에 벌어진 미국 뉴욕 쌍둥이빌딩의 붕괴사건이다.• 캐나다: 영국의 식민지였다가 1867년 자치령이 되었다가 1982년 완전 독립한 영연방의 국가이다.• 영국: 19세기에 세계 최대강대국이었고, 20세기에 힘이 약화되었으나 50여 개의 영연방의 수장 국가이다. 2) 관련 직업군 • 초 중등학교 교사• 대학교수: 사학과, 역사학과, 역사교육과• 역사 관련 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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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심리학 by 노안영,강영신 Personality Psychology 성격 : 정신 + 신체 A sound mind in a sound body. * 성격심리학의 이해 성격 personality : 라틴어 페르소나(탈,가면 persona) 히포크라테스 : 체액론 갈렌 : 기질론 이제마 : 사상의학 올포트(Gordon Willard Allport, 1897~1967) : 툭질(traits) 커텔(Raymond B. Cattell, 1905~1998) : 16PF(성격요인 personality factors)검사 아이젱크(Hans Jurgen Eysenck, 1916~1997) : 성격의5요인(OCEAN, 개방성 성실성 외향성 우호성 신경증)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1939) : 원초아(id, 쾌락) 자아(ego, 현실), 초자아(superego, 도덕) 아들러(Alfred Adler, 1870~1937) : 인생과제 1.영성 2.자기지향 3.일과 여가 4.우정 5.사랑 융(Carl Gustav Jung, 1875~1961) : 심리유형론 - 지각 과정 : 감각(sensing), 직관(intuition) - 판단 과정 : 사고(thinking0, 감정(feeling) - 태도 : 외향성(extroversion), 내향성(introversion) * 생활 양식(마이어스 Isabel Briggs Myers 브릭스 Katharine Cook Briggs 추가) : 판단(judging), 지각(perceiving) 호나이(kren Horney, 1885~1952) : 여성심리학 - 자궁선망(womb envy) 설리반(Harry Stack Sullivan, 1892~1949) : 대인관계 이론 머레이(Henry A. Murray, 1893~1988) : 성격 이론 프롬(Erich Fromm, 1900~1980) : The Art of Loving - 이성애, 모성애, 형제애, 자기애, 신의 사랑(love of God) 에릭슨(Erik H. Erikson, 1902~1994) : 성격 발달 스키너(fredrick B. Skinner, 1904~1990) : 행동주의 로터(Julian Rotter, 1916~2014) : 욕구의 6범주 반두라(Albert Bandura, 1925~ ) : 상호결정론 매슬로(Abraham Maslow, 1908~1970) : 욕구의 위계(생리-안전-소속감-존중-자아실현) 로저스(Carl R. Rogers, 1902~1987) : 성격의 발달과 변화 펄스(Frederick S. Perls, 1893~1970) : 게슈탈트 치료(Gestalt Therapy) 메이(Rollo May, 1909~1994) : 실존주의 프랭클(Viktor Frankl, 1905~1997) : 의미치료 켈리(George Kelly, 1905~1967) : 개인구성개념 엘리스(Albert Ellis, 1913~2007) : ABC이론 벡(Aaron T. Beck, 1921~ ) : 인지타당성평가(A-FROG) https://www.instagram.com/p/B-k00Kupkmv/?igshid=1kxcjqohj96b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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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전자가 휴대폰 사업 종료 후 공격적인 특허 전략을 구사하며 성과를 내고 있다. 일본 코닥(디지털카메라)이나 스웨덴 에릭슨(휴대폰) 등 핵심 사업의 제조를 포기한 후에도 특허로 짭짤한 수입을 내는 회사 반열에 LG전자도 오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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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머지 공부 삼청 학고재 안드레아스 에릭슨 . . . . . . . . #학고재 #삼청동 #andreaseriksson #high and low #주말갤러리 #안드레아스에릭슨 #현대미술 #안국삼청청운효자 #13000보 #선생님은리움을컨템포러리상설전을가보라고 #난3번이나갔는데ㅠ.ㅠ #시리즈전시 #소소마켓 #리서치 #플라스크 #깁슨홀더거치대 #벤치마킹(학고재아트센터에서) https://www.instagram.com/p/B4W5_G0lYxR/?igshid=1qx31lg11a12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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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M19] 하노버메쎄 2일차 : 5G, 제조업 혁신의 2단 로켓
[#HM19] 하노버메쎄 2일차 : 5G, 제조업 혁신의 2단 로켓
안녕하세요 KOTRA 해외시장뉴스입니다. 저희는 앞서 이번 하노버 산업박람회에서 독일 제조업이 준비하는 미래의 공장(Factory of the future)이 어떻게 드러났는지에 대해서 대표기업들의 전시 부스를 둘러보고 그 내용을 정리해봤습니다. 오늘은 하노버 산업박람회가 올해 야심차게 준비한 5G 관련 전시 부스들을 돌아보겠습니다. 스마트폰에만 적용되는게 아닌가 싶은 5G가 왜 제조업 혁신을 다루는 하노버 산업박람회에 등장했을까요. 일단, 개막식에 참가한 올해의 동반국가(Partner Country) 스웨덴의 이야기부터 시작하겠습니다.
2019년 하노버 산업박람회 동반국가(Partner Country) : 북유럽의 강자, 스웨덴
하노버 산업박람회의 특징 중 하나는 매년 1개 국가를 동반국가(Part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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