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마지막탱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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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petit · 8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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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서울에서 마지막 탱고
길다면 길었던 연휴 마지막 날, 방바닥을 뒹굴면서 사노 요코 아줌마의 『열심히 하지 않습니다』를 보다가, 2차대전 때 포로가 되어 시베리아의 수용소 생활을 경험했던 사람의 이야기가 눈에 들어왔다. 재밌는 것은, 극도의 추위와 극한의 배고픔 속에서 포로들의 관심사는 오로지 먹을 것과 영화, 그것도 프랑스 영화였단다. "야아, 영화란 그런 거야. 그때 내가 살고 싶은 이유가 있었다면, 그것은 초밥을 한 번 더 먹고, 프랑스 영화를 한 번 더 보고 싶어서였어." 사노 요코 아줌마가 내린 결론은, 인간이 극한에 이르러 추구하는 것이 바로 먹을 것과, 먹을 것과는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문화, 즉 ‘몸과 정신’의 두 가지라는 것. 그러면서 아줌마는 자신이 죽을 때에 예전에 인상 깊게 보았던 〈디바〉라는 오페라를 떠올릴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흠~ 그렇단 얘긴가. 사람이 극한의 이르면 가장 원초적인 것과 가장 문화적인 것을 동시에 찾게 된다는 얘기렸다. 그 순간 자연스럽게, 나는 죽는 순간에 어떤 영화를 떠올릴까 하는 생각이 이어졌는데, 그게 좀 황당하다. 때는 1985년, 고등학교 입시를 앞둔 중딩들이라면 빠짐없이 통과해야 하는 ‘체력장’ 날이었다. 오후에 마지막으로 오래달리기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그 누가 약속을 한 것도 아니건만 우리는 검사장 근처에 있는 영화관 앞에 모였다. 마치 이런 날 일찍 귀가하면 죄 짓는 것처럼. 마침 우리가 끝나는 시간이 다음 회차가 상영되려는 참이었다. 어쩜 그렇게 시간도 잘 맞추는지… 그때 걸려 있던 영화가 바로 〈서울에서 마지막 탱고〉. 그렇다. 굉장히 익숙한 제목이다. 물론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음이 영화를 보면 드러날 터이고, 애초에 두 영화 사이에 어떤 관련성이 있을 거라 기대한 사람도 없었다.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지만 누가 봐도 B급 애로영화라고 딱 써놓은 영화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니 이상하네. 분명 이 영화,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이었을 텐데 왜 당시에는 아무런 제약 없이 극장 입구를 통과할 �� 있었을까. 확실히 개봉관은 아니었던 모양. 그래도 이렇게까지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었단 말인가. 어쨌거나 입장에는 문제가 없었고, 영화는 시작되었고, 중딩에게는 재밌었을지 모르겠으나 지금으로서는 주인공이 누구였는지, 영화 내용이 무엇인지 등등 하나도 생각나는 게 없다. 딱 하나 기억나는 게 있다면 여주인공이 바닷가 모래사장에 주저앉아 밀려오는 파도를 맞으며 하염없이 바다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는 것. 그리고 그때 뭔가 끈적한 배경음악이 깔렸다는 것. 정황상 아무런 이유도 없이 그런 음악이 흐른 것 같지는 않은데 내용이 기억나지 않으니 지금으로서는 이렇다 저렇다 할 상황은 아니다. 그런데 뜬금없이 이 시점에서 왜 탱고 어쩌고 하는 영화인가. 지금 나름 심각한 생각을 하고 있을 때란 얘기지. 삶을 마감하는 때에 그 사람의 삶이 압축된 형태로 머릿속을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간다는 말도 있는데, 그 많고 많은 영화 중에서, 무슨 감동을 받았던 영화도 아니고, 영화사적으로 일말의 의의를 가지는 영화도 아니고, 출연 배우들의 연기가 훌륭했던 것도 아니고, 그 후로 내 삶의 궤적을 바꾸어 놓았던 영화도 아니고, 함께 본 사람들이 그리워서도 아닌데, 뭐 이따위 영화가 튀어나오냐고. 무슨 맥락이 있어야 할 게 아닌가. 혹시 프랑스 영화라는 것 때문인가. 그렇다면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 정도로 타협을 볼 것이지,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서울에서…〉는 좀 아니지 않은가. 그런데 이것 말고는 도무지 내 의식의 흐름을 설명할 방법이 없다는 것. 뭐 굳이 설명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하긴 그러고 보니 〈서울〉과 〈파리〉는 내가 본 영화와 안 본 영화라는 차이가 있군. 이쯤 되면 아무리 B급 영화라 할지라도 다시 한번 보고 싶을 만도 한데, 이런 영화 볼 시간은 당연히 없고, 또 그럴 시간을 내고 싶지도 않다. 다만 한 가지 걱정되는 것은, 이러다 정말로 마지막 순간에 다시 이놈의 영화가 덜컥 생각나버리는 건 아닐까 하는 것. 아 그럼 정말 안 되는데. 이거 말고 재밌는 영화가 얼마나 많은데. 안 돼! 이럴 바에는 차라리 최후의 순간에 먹는 쪽으로 생각을 하자구. 탕수육 어때, 탕수육. 떡볶이나 라면도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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