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브컬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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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lowlyenchantingturtle · 19 day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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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외로 하츠네 미쿠보다 장수하는 서브컬쳐 캐릭터.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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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gcheesecakecandy · 19 day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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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8월 서브컬쳐 모바일게임 매출 순위의 변화와 트렌드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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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terweek · 3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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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픽세븐’ 개발사 슈퍼크리에이티브 게임 개발자 컨퍼런스 ‘PIXEL 2024’ 개최
‘에픽세븐’으로 개발력을 인정받은 게임 개발사 ‘슈퍼크리에이티브’가 창사 이래 최초로 게임 개발자 컨퍼런스 ‘PIXEL 2024(이하 픽셀)’를 개최한다고 12일(월) 밝혔다. 오는 8월 19일(월)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 삼성동 코엑스에서 슈퍼크리에이티브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개최되는 이번 행사는 게임, 서브컬쳐, 2D 아트를 핵심 키워드로 ‘슈퍼크리에이티브’, ‘컨트롤나인’, ‘스튜디오비사이드’, ‘버니바이트’의 핵심 개발자들이 참여해 서로의 기술과 경험을 나누고 새로운 비전을 찾기 위해 마련됐다. 슈퍼크리에이티브는 이미지를 구성하는 최소 단위이자 게임 개발에서 ‘도트(DOT)’라고 부르는 ‘픽셀’을 행사명으로 정하면서 위 세가지 핵심 키워드를 아우르고 최고의 서브컬쳐 게임 개발사로 발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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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lab · 11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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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호 위의 기호:
재가입, 재구성, 재생산으로서 팝
Soziale Systeme 10 (2004), Heft 2, S. 292-324 © Lucius & Lucius, Stuttgart
Eckhard Schumacher
번역 – 조은하, 박상우
요약: 팝 문화에 대한 논고에서, Fuchs/Heidingsfelder는 불복종, 전복 이론과 거리를 두었을 뿐만 아니라, 시스템 이론적 관점에서 팝 현상을 검토하면서 성과 있을 수 있는 다른 기존의 접근들을 간과하고 있다. 이 코멘트에서는 세 가지 문제를 제기하고자 하는데, 이는 이들의 이론 틀에 대한 보완을 가능하게 할 거이다. 이 주제들은 1. 팝의 맥락 안에서 관찰 가능한 기호의 개념과 재가입의 과정, 2. 진보적 도발이 아니라 재구성의 원리에 초점을 맞춘 역사적 모델, 3. 미디어의 성향과 담론적 관례들에 의존하는 특정한 음악과 기술의 연결로 록앤롤(그리고 팝)의 이해하는 것이다.
몇 년 동안, “팝”을 통해 언급되는 것에 대한 논의는 다루기 쉬운 가정들의 집합 주위를 돌고 있었다. Peter Fuchs와 Markus Heidingsfelder 역시 그들 개괄의 출발점에 그것들을 놓았다. 한 편으로 팝은 정의하기 어렵고, 개념적 범주를 회피한다는 점이 강조된다. 다른 한 편, 팝은 거의 모든 곳에서 스스로를 주장할 뿐만 아니라, 거의 어떤 것이라도 팝이 될 수 있고, 팝이 되기를 원한다는 점이 지적된다. 예술, 엔터테인먼트, 정치와 진단적으로 국가를 드러내는 기술로서 과학과 같은 보다 넓은 맥락에서 생생하고, 어느 정도 중복된 집합의 사례들을 통해 제시되는 이 두 가지 가정들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너무 밀접해서 지름길이 불가피하다. 한 편으로 개념적 애매함은 팝의 개념을 다루는 데서 불명료함에 대해 비난을 받는다. 다른 한 편, 거의 모든 것에 팝의 라벨을 붙일 수 있다는 관찰이, 특정한 현상을 차이화 해서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정확성이 부족한 개념이라는 증거로서 사용된다. 두 가정을 더욱 연결하게 하는 것은 다른 주장이다. 적어도 거의 모든 시기에 묵시적으로 정식화 되는 주장으로, 이 주장을 통해 팝의 개념에 역사적 지표가 부여된다. 각각의 상황을 다룰 때, 종종 쇠락의 내러티브 형식 속에 나타나는 이 주장은 마찬가지로 단순해 보이지만, 또한 마찬가지로 다른 언급된 가정들에 대해 근본적으로 보인다. 팝은 더 이상 예전의 그것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Fuchs/Heidingsfelder가 그들의 이론 틀에서 거리를 두려고 했던 전복 이론의 맥락 안에서는, 이런 관점의 충분한 사례가 있다. 이는 대중적으로 알려진 출판물, 상세한 광신주의 혹은 자비로운 무지의 영역 안에서 팝 역사에 대한 공통된 기원 신화를 영속화 화는 텍스트들과 마찬가지다. Fuchs/Heidingsfelder가 이런 배경에 맞서 언급된 가정들의 다양한 버전을 제시할 때, 주된 목적은, 어떤 다른, 개념적으로 더욱 정확하고 이론적으로 유지 가능한 팝이라는 현상에 대한 이해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들은 “세계적으로 조작되는 사회 시스템”(320)이라 팝을 시스템 이론적으로 재정식화 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미디어 그리고 문화 과학적 접근에 관계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기존의 팝 이론과 비교해서, 저자들이 “흐려진 추상”(292)이라 묘사한 것 이상의 어떤 것으로 관찰된 부정확함이나 일반화를 다룰 것이라는 기대는, 그들의 이론 틀 내에서 단지 부분적으로만 충족될 뿐이다.
Fuchs/Heidingsfelder가 불복종과 전복 모델에 맞서 정식화 했던 비판 지점들은, 단지 이 접근들에 대해 덜 비판적인 사람들에 의해서만 공유될 수 있다. 그렇지만 연구의 폭과 다양성을 생각한다면, 문화 연구와 이론적으로 정교한 팝 저널리즘의 맥락 안에서 이들 그리고 다른 접근에서 놀라울 정도로 차이를 두지 않고 거리를 둔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은 도전적이다. 한 편에서, 다른 기존의 접근에서 거리두기는 Fuchs/Heidingsfelder가 제시한 것만큼 언제나 중요하지는 않다. 다른 한 편, 그들의 거리두기 방식 역시 현상의 복잡성과 특정성을 포착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는 관찰 관점과 이론적 모델을 애매하게 한다. 
1. 재가입
영미권 문화 연구 안에서 팝에 대한 개입의 결정적 지점으로 저항과 전복이 응결되었던 강조점은 종종 다른 관점에서 팝 현상을 이론적으로 이해하는데 관계된 이론적 전제들을 쉽게 간과하게 만든다. 예를 들자면 일반적인 팝 이론에 대한 여전히 가장 영향력 있는 이론 틀로 이야기되는 1979년 서브컬쳐 연구에서 Dick Hebdige는, 문화 현상에 대한 분석에 있어 Barthes나 Eco의 작업들에 따라 정식화한 기호학적 접근들과 Althusser와 Gramsci에 의해 영향을 받은 마르크스주의를 결합했다. 그는 언어학으로부터 언어를 넘어서는 다른 담론 시스템으로 나아가는 방법의 적용이 문화 연구에 있어 완전히 새로운 가능성을 열 것이라 주장했다.(1997, 10) 이 주장은 슈퍼 이론인 기호학의 적용을 통해서 기대되는 이론적 시야의 확장을 강조할 뿐만 아니라, 팝 현상이 언어, 미디어, 혹은 담론적 맥락 안에 남아 있을 수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팝 현상은, 단어 기반의 커뮤니케이션에 제한된 기호 개념을 통해서 적합하게 포착될 수 없는 미디어 네트워크와 미디어의 변화 과정에 의해 성격을 갖추게 된다.
이런 배경과 달리, Fuchs/Heidingsfelder (296) 처럼 팝 시스템을 팝 뮤직으로 제약하거나 “특정한 미디어”인 노래를 특성화 ��는 것 모두 감축으로 나타나는데, 차이화에 있어서 이 감축의 이점은 제시된 개괄의 틀 안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Fuchs/Heidingsfelder는 “일차적으로, 노래는 텍스트, 소위 ‘가사’를 통합한다”고 쓰는데, 이는 그들의 분석을 일차적으로 가사 속에서 관찰되는 정보 압축의 형식으로 제한하는 것이다. 또한 정보 전달 양식으로서 언어적 커뮤니케이션을 특권화 하는 것은, 적어도 묵시적으로 논의의 이어지는 단계들을 규정한다. “언어적 연쇄”에 부여된 “엄밀성과 구별”은 전제된 외침의 “막연함”과 병치된다. 거기서 Fuchs/Heidingsfelder는 더 이상 정보와 커뮤니케이션 사이의 구별이라는 개념을 통해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하게 예술의 진화 과정의 반전의 지표를 통해 분석한다. “그래서 팝 에서는 외침이 감정의 진실, 육체, 그리고 모든 관계된 지각의 가능성을, 어떤 반성 이전에 대변한다.”(300f.)
그렇지만 Fuchs/Heidingsfelder가 보여준 것처럼, 노래 가사는 정보 전달 기능으로 제한될 수 없고, 마찬가지로 외침은 “정보 압축” 혹은 “정보의 불특정화”(303)의 순간으로 한정될 수 없다. 비록 Hebdige에 의해 사례를 들었던 기호적 접근이 그런 고정화와 환원을 반드시 배제하는 것은 아님에도, 그런 접근의 확장된 기호 개념, 기호를 통한 커뮤니케이션, 그리고 존재하는 기호의 재기능화로서 팝을 개념하는 기호 개념은 여기서 관찰된 의미 작용 과정을 더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해준다. 기호가 재코드화 되고 “비밀스러운” 의미를 담게 되고, 도발적 잠재성을 갖추게 되는 과정(Hebdige, 1997, 17f.)이, 동시에 다양한 층위에서 작동하고, 하나의 미디어에서 멈추지 않으며, 다양한 미디어 혹은 형식 사이의 관계를 통해 동작한다는 것은 더욱 자명하게 된다. Paul Morley와 함께 Fuchs/Heidingsfelder가 주장했던 것처럼, “외침”은 사실 “말의 사용 없을 때조차 어떤 특정한 것”(300)을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반드시 문맥으로부터 독립적으로 결정될 수 있는 어떤 것을 “대표”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이야기를 말할 수도 있으며, “감정의 자연스러운 외침”을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적 소란, 피드백이나 소음 등을 커뮤니케이션적으로 재코드화 하는 것을 통해서 고려할만한 수준까지 구성될 수 있는 미디어의 구성을 지시하는 파괴적 요소로 기능할 수도 있다. 서브컬쳐 형성과 관계된 그런 탈맥락화와 재가입의 전략들이 정치적 행위로 이해될 때, Fuchs/Heidingsfelder가 거리를 두고자 했던 혼란이 빠르게 등장한다. 그렇지만 이런 경계 짓기를 통해서, 기호학적인 접근들이 Fuchs/Heidingsfelder가 도발의 개념을 통해 포착하고자 하는 것을 정확하게 탐구하기 위한 차이화 된 도구를 제공한다는 사실이 간과된다. 그렇지만 이 재가입의 과정은 도발 양식에 제한되지 않는다. “의미 있는 차이의 커뮤니케이션” ((Hebdige, 1997, 102)
2. 재구성
분명한 차이를 제외한다면, 다른 면에서 눈에 띄는 동일성이 이들 접근들 사이에서 드러난다. Hebdige처럼 Fuchs/Heidingsfelder 역시 팝 이론의 이론 틀을 프로토타입의 특정 시점에 따라 조직된 팝 역사 모델에 기초해서 발전시킨다. Hebdige가 저항적인 팝 문화의 최고점으로 1970년대 후반 펑크 록을 제시했던 역사적 내러티브를 통해서 전복 테제를 실체화 했다면, Fuchs/Heidingsfelder 역시 자신들의 팝 역사의 개관에서 록앤롤을 출발점으로 삼는 특정한 역사적 배치에 따라 “도발의 연쇄”(310)로서 팝 역사를 해석했다. Fuchs/Heidingsfelder는 빅 밴드의 시대가 “시스템의 이륙”을 나타내는 것이라는 Nik Cohn의 분류에 따라, “모든 것이 부드럽고, 따뜻하고, 감상적이었던 pre-Pop의 시대”로부터 구별을 수행했고, 이런 결정의 직접적인 결과가 “록앤롤의 상속자인 ‘록’의 도발적 잠재성”은 “이제 완전히 스스로를 소진”했을 수도 있다는 가정인 것이다. (310)
시스템의 진화에 대한 경험적 출발점이자 종말점으로 기능하는, 이런 식의 경계들 안에서는, “도발의 연쇄”는 확실하게 이야기될 수 있다. 그렇지만, 만일 경계를 다르게 설정한다면, 역사는 다른 역사적 묘사, 다른 커뮤니케이션 조작을 통해 구성되어 다르게 이야기 될 수 있다는 것 역시 바로 분명하게 될 것이다. 20세기 초반 Swing과 Bebop 사이에 등장했던 상호 언급은, “pre-Pop의 시대”에도 모든 것이 반드시 “부드럽고, 따뜻하고, 감상적”이지는 않았다는 것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또한 차이화의 다른 척도들을 드러낸다. 이는 Thomas Meinecke의 소설 "Musik"의 등장 인물 Karol이 수행했던 팝-뮤직 연구에서 생생하고 복잡한 방식으로 제시되었다. 그는 20세기 대중 음악을 조사하고 분류하는데, “달콤함”과 “뜨거움”이라는 구별에 기반해 관찰될 수 있는 “재맥락화, 재코드화, 재가입”에 따라서 수행한다. (Meinecke, 2004, 353) 이를 통해 팝은 다른 역사적 배치 속에서 구성될 수 있다. 팝의 역사는 그래서 스스로를 소진하는 도발의 과정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적으로 다시 포맷되고, 대치되고, 겹쳐지고 최소한의 차이에 의해 표시되는 지속적인 반복인 재강비의 과정에 대한 관점을 개방한다. Fuchs/Heidingsfelder가 주장하듯, ”주식으로 계산한다는 것”이 예술의 가능한 종말의 기호로 읽힐 필요는 없다. “이제 끝났다. 록 신화와 주제들은 재구성되고 있다.” (310) 심지어 록앤롤의 초기 조차 언제나 팝을 형성했던 기존 패턴의 재구성의 다양한 변형으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Hebdige에게 록앤롤은 단지 “흑인 가스펠과 블루스”와 “백인 컨츄리와 웨스턴”을 뒤섞은 “완전히 새로운 형식”이었다. (1997, 49) 조금 다른 언급을 가지고, 이런 의미에서 Cohn은 록앤롤을 “두 가지 전통, 흑인의 R&B와 백인의 낭만적 웅크림, 화려한 비트와 백인 정서의 혼합”이라 기술했다. (1989, 54)
이런 관저에서 팝 문화는 스스로를 도발의 진화로 형성하기 보다는 기존의 형식과 구조를 흡수하고, 그것들을 수행하고 더욱 발전시키는 지속적인 재활용의 원리를 통해서 형성했다. 이런 의미에서 1960년대 팝 아트 운동과 마찬가지로 (cf. Lippard, 1968), 팝은 기호와 기호 시스템을 통해서 인식 가능한 하나의 예술로 나타난다.
3. 재생산
Fuchs/Heidingsfelder가 “일반적인 팝 존재론”(304)과 자신들의 이론 틀 사이에 거리를 두려 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지만, 그들의 기획이 이런 맥락에서 선호된 강조점을 고수하기 때문에, 분명한 구별 짓기와 함께 또한 수렴을 향한 운동도 존재한다. “비-자의적 초점”으로 육체를 규정하고, “록앤롤의 비트”를 통해서 음악은 결과적으로 “생명 그 자체”가 된다(313ff.)는 뒤 이은 가정은 이런 방향을 보여준다. 이는 “실체화”에 대한 주장에 대한 더 많은 사례들이나 라이브 공연의 기능에 대한 이어지는 언급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사실이다. 이런 관점에서, 커뮤니케이션을 “실재…뛰고 구르는 것”으로 “애매하지 않게” 번역하는 것을 고려한다는 점에서, 미디어 이론과 미디어 역사로부터의 연구들을 통해 시스템 이론적 경험을 보완하는 것은 의미 있어 보인다.
최근에는 대중 음악의 이전 모든 형식과 다른 록앤롤의 도래와 함께, 음악과 기술의 관계가 관심의 전면에 등장하게 되었다는 사고에 대해서는 반복적으로 강조되어왔다. “록의 도래와 함께… 중요한 것은 노래가 아니다. 록에서 기억해야 할 것은, 음악과 기술의 특별한 실체, 특별한 방식으로 이를 함께 담는 것, 그리고 레코드에서 무한히 반복되고, 오직 레코드 위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cf. Gracyk, 1996, 37f.) 1930년대, 40년대 재즈나 포크 뮤직의 녹음은 기본적으로 라이브 공연 음���을 보존하거나 혹은 재생산하는 기능이었다면, 록앤롤은 기본적으로 녹음 스튜디오에서 기원한다. 단지 레코드만이 라이브 공연에 대한 수요를 만들어 낸다. 공연은 레코드의 기준과 일치하는 것이고, 레코드를 통해 알게 된 것을 재생산할 때 특히 성공적이다. 그래서 그것은 소급하여 인증한다. (cf. Auslander, 1999, 62ff.) 록앤롤 노래가 구성되는 기술과 음악의 엮임은 적어도 이중 기능이 속하는 현전의 형식과 마주한다. Fuchs/Heidingsfelder가 쓴 것처럼, 그것은 “명시적으로 성적, 육체적 수사”를 전개하는 것으로 사용될 수 있다. 거기서 육체는 예를 들어 팝이 가능한 “현전의 경험”을 위한 기호가 될 수 있다. (307, 317) “일반적 팝 존재론”들 조차도 확실히 이런 해석에는 동의할 것이다. 동시에 라이브 공연은 또한, 동일성 효과, 일탈 혹은 파열을 통해 진정성, 가치 그리고 높은 질을 승인하기 위해, 현전의 다른 형식, 특히 록앤롤의 경우에는 레코드에 대한 지시 기능 역할을 할 수 있다. 레코드/라이브 공연으로 여기서 개괄한 사례로만 한정할 수 없는, 미디어의 배치와 역사적으로 특정한 표현 형식들 사이의 그런 뒤얽힘 속에서만, 록앤롤, 더 넓게는 팝이라는 개념으로 지시된 것은 구성될 수 있다.
엄밀하게 정의된 개념들을 그리고 명백한 기능적 과제들을 정립하는 것의 어려움은 적어도 그런 복잡성에 기인한다. 추가적으로 팝 컬쳐는 단지 기구-매개적 규정을 통해서만이 아니라, 본질적 결정의 불가능성이 주어진다면, 조응하는 담론적 위치에 의존해 형성된다. 1950년대 이후 관찰되는 정의와 개념들에 대한 논쟁은 이런 관점에서 수반되는 현상일 뿐만 아니라, 팝 컬쳐의 일부분이다. 미디어 이론적 혹은 미학적 관점에서 팝을 포착하려 시도하는 접근들은 그래서, Richard Meitzer가 Frank Sinatra를 “팝 씬의 선두 주자”이자 “록 슈퍼스타”로 특별하게 재규정을 하려는 데서 보였던 것처럼, 사회학적인 방향의 이론들과 마찬가지의 어려움에 직면했다. (1970, 270) 록을 사전에 지배하는 형식으로 고려하는 역사적 배치 속에서는, Meitzer가 쓴 것처럼 궁극적으로 “모든 것은… 록으로 맥락화 가능하다.”
Literatur
Auslander, Philip (1999): Liveness. Performance in a Mediatized Culture. London/New York: Routledge.
Cohn, Nik (1989): Ball the Wall. Nik Cohn in the Age of Rock. London: Picador/Pan Books.
Gracyk, Theodore (1996): Rhythm and Noise. An Aesthetics of Rock. Durham/London: Duke UP.
Hebdige, Dick (1997 [1979]): Subculture. The Meaning of Style. London/New York: Routledge.
Lippard, Lucy R. (Hrsg.) (1968): Pop Art. München/Zürich: Droemer Knaur.
Meinecke, Thomas (2004): Musik. Frankfurt a.M.: Suhrkamp.
Meitzer, Richard (1970): The Aesthetics of Rock. NewYork: Something Else Press.
Dr. Eckhard Schumacher
Kulturwissenschaftliches Forschungskolleg >Medien und kulturelle Kommunikation
Universität zu Köln, Bernhard-Feilchenfeld-Str. 11, D-50969 Köl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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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game2023 · 1 year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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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우 브레이크 등급표
2023년 7월 20일 출시한 신작 SF판타지 FPS+RPG 서브컬쳐 게임 등급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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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mplaskr · 2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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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oolloooom with KOZABURO // BON-VAR wool jacket & Dexter wool pants pro. [22-23AW ‘BON’ Collection] KOZABURO는 뉴욕에서 활동하는 일본의 디자이너 KOZABURO AKASAKA가 2016년에 설립한 브랜드 입니다. 일본에서 철학을 전공한 뒤, 런던으로 넘어가 Central Saint Martine 패션디자인 학사 과정을 2011년에 수석 ���업였습니다. 졸업과 동시에 THOM BROWNE에 스카우트 되어 디자이너로서 일을 시작하였으며, 뉴욕에서 여러 경력을 쌓은 뒤 스스로가 구축하는 미학에 대한 필요성을 깨달은뒤 뉴욕 Parsons에서 MFA 석사 학위 를 시작했습니다. MFA 프로그램 첫 해에 이루어낸 작업물로 VFILES Runway 16S/S에서 우승을 하였으며, 해당 컬렉션은 Comme Des Garcons Group의 Dover Street Market에서 바로 릴리즈 되었습니다. 2016년 MFA 석사 과정 수료와 동시에 자신만의 브랜드 KOZABURO를 설립 하였습니다. 2017년 LVMH Special Prize로 수상되며 전세계에 KOZABURO 브랜드를 알리게 되었으나, 그는 다른 브랜드들이 LVMH 수상이후 커머셜한 RTW를 전개하는 것과 달리 자신만의 미학을 중심으로 하는 컬렉션만을 선보였습니다. 90년대 일본에서 성장한 Kozaburo의 미학은 성장 기간 동안 서브컬쳐 음악들과 다양한 스트리트 스타일들을 경험한 기억들을 토대로 구축 되었습니다. 클래식 남성 의류의 시대를 초월한 디자인은 그의 미학의 핵심입니다. 하이 패션과 스트리트 문화의 병치는 독특하고 시적이며 현대적이지만 컨템포러리 하지 않은 KOZABURO만의 스타일을 정의하게 되었습니다. 현재 전세계에서 가장 철학적이면서 자신만의 색이 뚜렷한 하나의 아티스트로 인정받는 디자이너이자 브랜드입니다. _ _ _ Fashion Store in Korea WWW.SAMPLAS.CO.KR International Order Contact. DM or [email protected] #SAMPLAS #샘플라스 #KOZABURO #코자부로 (Samplas에서) https://www.instagram.com/p/CmCH0mcJ6lk/?igshid=NGJjMDIxMW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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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odle-king · 2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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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일러스트 #드로잉 #몰스킨 #서브컬쳐 #illustration #art #drawing #uniballsigno #kitsch #subculture https://www.instagram.com/p/ChZWH2UvvW6/?igshid=NGJjMDIxMW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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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0dav · 2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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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dercityproject_bp 2022 언더시티 프로젝트 정말 멋지고 놀라운 경험이었다! 함께한 @lac_studio_official 크루 모두와 @originalpunx @hexter.90 @dasol_is_here 정말 고생 많았어~ 👍 내년에도 멋지게 해보자! 멋진 프로젝트 준비하신 부평구문화재단 크루도 정말 고생많으셨습니다🔥🔥🔥 . #언더시티프로젝트 #서브컬쳐 #서브컬처무브먼트 #서브컬처축제 #그래피티 #그래피티아트 #라이브페인팅 #레오다브 #다솔 #헥스터 #오리지널펑크 #그라피티 #스트리트아트 #스트릿아트 #부평 #graffiti #streetart #leodav #lacgraffitistudio #livepainting #그래피티체험(부평아트센터에서) https://www.instagram.com/p/CjCU2yEJC0G/?igshid=NGJjMDIxMW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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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ndys-tripleo · 4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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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누구나 행복해지려는 순간 두려움이 생겨요.
행복을 잡으려면 고통을 견디기 위해
용기가 필요하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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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umber3-design · 3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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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OFF CLUB - Seoul / Korea NUMBER 3 - London / UK Korean fashion label SUNDAY OFF CLUB invited me to create logos and logotypes for their A/W 2021 collection.  Instagram - sundayoffclub Shop at - sundayoffclub.com SUNDAY OFF CLUB 은 하나의 카테고리에 얽매이지 않고 전 세계의 다양한 주류 문화와 서브컬쳐, 사회현상 등을 시대의 흐름에 맞게 전개하고자 하는 디자이너 브랜드 입니다. 시대의 흐름과 테마를 바탕으로 음악, 영화, 아티스트, 컬쳐, 사회 부조리 등에서 영감을 얻어 메시지를 전하고자 합니다. 그들은 다양한 세상의 것들과 지속적으로 소통하여 새로운 가치를 이끌어내고 이야기 하고자 합니다 #Typography  #Logo  #LogoDesign  #GraphicArt  #GraphicDesign  #Paul Nicholson  #Number3  #3  #III https://www.instagram.com/p/CUt_C5PgpqP/?utm_medium=tumbl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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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yosiq · 5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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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4주차 격식없는 TMI
아이폰 액정을 자가 수리 해봤다. 생각보다 정말 쉬워서 한번 놀랐고, 그동안 수리센터를 방문하며 갖다 바쳤던(?) 돈을 생각하며 두 번 놀랐다.
아이폰 SE 후방카메라 렌즈 덮개는 너무 허술하다. 먼지가 너무 쉽게 들어가서 시도 때도 없이 빛 번짐, 이물감 등이 너무 심해서 스트레스받은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근데 이번에 분해해보니 이젠 심심하면 닦을 수 있겠더라. 이렇게 된 이상 12까지 열심히 버틸 거다.
미루고 미루다 집에서 내려 마실 드립기구들을 이제야 장만했다. 사고 싶은 것들이 정말 많았는데 천천히 늘려가기로 맘 먹고 적절한 선에서 타협봤다. 좋아하고 자주 가는 카페에서 클래스도 듣기로 했고, 이참에 커피 좋아하는 엄마 아빠 많이 내려줘야지.
언제인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데 그림을 잘 그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손재주가 있는 사람은 뚝딱하고 그려내서 방 한켠에 걸어놔도 소품이 될 수 있겠구나 싶었다. 그냥 뭐 부럽다고.
다짐: 오전시간을 유익하게 보내자.
구매할것: 로지텍 페블 마우스, Coffe & Tea 6월호, 여름용 아우터 한벌.
서브컬쳐 웹진, 인테리어 관련 사이트, 빈티지나 앤틱 소품들 판매하는 사이트 많이 아시는 분 있으시면 도움좀 주세요.. 메세지 부탁드립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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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njuste · 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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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뮬러 2탄
난 보통 내가 글을 쓰고 싶어야 쓰는 편이라... 안땡기면 잘 안쓴다.
뭔가 딱 글상이 떠오르고 그래 이런 내용이야! 하고 머릿속에 잡히지 않으면 잘 쓰지 않는 편이다보니까, 항상 소설을 쓰거나, 뭔가 플롯이 이어져야 하는 등의 글들은 꾸준히 쓰지 못했다.
이 스뮬 시리즈도 마찬가진데.. 그래도 시작을 했으면 끝을 봐야 겠지 하는 마음으로 처음 구상했던 것을 더듬더듬해가며, 다시 써보도록 해보자.
첫번째 집단 - 프로 영콜러
두번째 집단 - 은거(?) 기인
 무협지에서 가장 자주 하는 말 중 하나가 무림 고수는 순위를 정할수 없다고 한다는 것인데, 그 이유인 즉슨 은거하고 있는 기인괴사들이 하도 많기 때문에 함부로 장담하며 그 순위를 매길수가 없다는 것이다. 스뮬도 비슷한 경우가 많다. 앞서 언급된 프로 영콜러들이 스뮬을 소통하는 앱으로 즐기는 경향이 있다면, 반대쪽의 성향을 지닌 사람들이다. 그렇다고 소통하는 것을 싫어하거나, 극도로 꺼리는 것은 아니지만 정말 노래하는 것이 즐거워서 자신의 노래를 올리는 것이 주 목적인 사람들이다. 사실 소통을 꺼린다기보다는 좀 제한적으로 소통을 하는 사람들로 보이기도 한다. 대부분 낯을 어느정도 가리는 편이며 팔로우의 수가 대체로 굉장히 적다. 그에 반해 팔로워의 수는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대다수이다.  팔로워의 수는 아마 그 실력의 반증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이 스뮬을 즐기는 방식은 여러가지가 있는데, 가장 흔한 것은 ‘솔라보’, 홀로 그룹콜 기능을 통해, 화음과 추임새 등을 통해 곡을 거의 리워크하는 수준으로 만든다. 그만큼 음악적인 재능이 뛰어난 사람들이 많다. 프로 영콜러들이 반드시 노래 실력이 뛰어나다기 보다는 친화력 혹은 자존감 및 자신감 등이 높은 편으로 생각된다면(물론 노래를 굉장히 잘해서 영콜을 하는 사람도 많다), 은거기인들은 음악적 감각이 꽤나 뛰어나고 감수성이 높은 사람들이 많은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뛰어난 감수성과 음악 감각을 바탕으로 그들은 스뮬 그룹내에서 예술가의 직군을 맡는 것과 같아 보인다. 
 은거기인들이 두 번째로 택하는 방식은 ‘가라지 밴드’ 이건 필자도 가끔 심심할때 이용하는 어플인데, 앱스토어 어플중 하나로 혼자서 음악을 편집할수 있게 해주는 레코딩 어플이다. 이를 통해 반주 편집부터, 레코딩까지 한번에 완성하여 이를 스뮬에 프리스타일 형식으로 올리는 방식이었다. 다만 이 방식은 스뮬에서 프리스타일의 업로딩 방식을 변경한 뒤로는 자주 보이지는 않는 듯하다. 이러한 방식을 통한 업로딩은 스뮬에 없는 희귀 음원등의 노래를 들을 수 있어 참 좋았는데, 많이 아쉽게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기인들은 주로 음콜 위주의 스뮬 생활을 하며 영콜은 거의 하지 않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음 아무래도 자존감이나 자신감의 문제보다는 개인 정보의 누출을 걱정하는 것이 아닐�� 하는 생각이다. 하지만 이들이 이렇게 음콜로만 함으로써 의도치 않은 신비로움이 생겨(슬슬 글이 막글이 된다) 팔로워 수에 좀더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앞서서 기인들은 소통을 제한적으로 한다고 하였는데, 기인들의 팔로우는 대부분 100명 내외인 경우가 많다. 이렇게 팔로우를 적게 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피드에 정말 좋아하는 사람들의 노래 즉 자신과 비슷한 성향의 기인들의 소식만을 보고 싶기에 그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필자는 스뮬 초기 아무나 막 팔로우 다 했다가. 내가 원치도 않던 아랍 노래와 뭐 외국 올드팝을 다 벗고 부르던 아저씨의 영콜을 보고 나니 그 심정이 150% 이해를 할수 있었다. 그 이후 팔로우 수를 좀 정리를 하긴 했지만, 아직도 피드에 별로 보고 싶지 않은 내용이 대부분인건 사실이다. 그래봐야 성격상 조금이라도 안면이 있으면 언팔을 쉽게하지 못해서 그냥 피드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 편이 되어버렸.... 아 결국 망글이다.) 
 자꾸 이상한데로 새지만, 기인들의 특징은 그 집단의 유대감이 꽤나 강한 편이다. 여기서 말하는 집단은 스뮬에 흔한 팸과 같은 모임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비슷한 성향을 가진 스뮬러들을 총칭하는 것인데, 그렇기 떄문에 그들끼리 서로서로 친해지고, 또 그들끼리만의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사실이다. 놀라운 사실은 이들의 팔로워는 굉장히 많은 편이고, 누가들어도 정말 가수처럼 노래를 잘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지만, 많은 스뮬러들이 기인들을 대부분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기인들은 보통 기인들이 발굴해내서, 기인들의 마을에 살아가는 경우가 대부분인것 같다. 아마 이것을 스뮬의 무릉도원이라고 명명해야 하지 않을까.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줄 모른다는데, 진짜로 이 기인들의 솔라보나 콜라보등을 듣고 있으면 시간 가는줄 모른다.(이건 무슨 소리지)
 기인들의 노래 취향은 다양한 편이지만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비주류(INDIE)이다.  단순히 국내 음악 시장에서의 인디 음악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팝송 중에서도 사람들이 잘 모르는 가수를 알고 있다거나, 혹은 올드팝, 재즈, 블루스 등 보편적으로 일반 사람들은 즐겨 듣지 않는 장르를 선호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대중가요를 싫어하거나 하는 것은 아니고, 대중적인 것 보다는 좀 더 자신만의 취향이 확고히 보이는 그러한 성향이 강하다. 그리고 또 다른 기인들의 노래를 들으며, 새로운 좋은 노래를 찾는 것을 즐거워한다. 이 말인 즉슨 기인들은 스뮬의 어떤 집단보다도 타인(같은 집단)의 노래를 듣는 것을 좋아한다. 그에 대한 반증으로는 기인들의 채널, 혹은 솔라보 등에는 기인의 팔로워가 적다 하더라도, 그 조회수는 정말 압도적으로 높은 것들이 있으며, 이는 꾸준히 갱신된다. 이말인 즉슨 기인들은 단순히 레코딩을 한번 듣고 지나치는 것이 아니라 평소에 자주 찾아 듣는 다는 소리다. 이러한 특징은 프로영콜러들에게서는 찾아보기 힘든 특성이다. 
 앞서말한 특징과 같이 프로영콜러에게서 찾아보기 힘든 특징을 또 기인들이 가지고 있는 것이 있는데, 즐겨찾기의 기준이 엄격한 경우가 많다. 단순히 노래를 잘하는 사람들이 많아서일까, 기인들의 즐찾들은 정말 특별한 이유가 있지 않은 이상은 정말 본인의 마음에 매우매우매우 들어야 즐찾을 하는 경우가 많은것으로 보인다. (혹은 아예 즐찾 기능을 사용하지 않는 사람도 많다.)
 또 기인들 중에서는 노래를 듣고 그 감상을 말하는데 있어서 정말 놀라울 정도의 평을 하는 이들도 있다. 가끔은 정말 저렇게 글을 예쁘게 쓸 수 있구나 싶을 정도의 평들이 보이는데, 아마 그들의 감수성이 그만큼 예민하고, 깊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글들이 아닐까 싶다. 
결국 망글이 되어버렸다. 뭔가 머릿속에 글상을 먼저 떠 올리고 써야하는데, 결국 그냥 쓰면서 생각나는대로 써버려서 두서없고, 정신없고, 근거없고 그냥 이상한 글이 되어버렸다. 에라 모르겠다. 어차피 볼사람은 두 분인데 둘 다 은거기인이다.
아 혹시 오해의 소지가 있을까해서 말하지만 그 어떤 이도 한 집단에만 완벽히 속하는 사람은 없다. 사회는 구조적인 존재이고, 인간은 그 구조 적인 사회 속에서 기본 구성요소인 집단과 집단의 사이에 항상 걸쳐져 있는 존재이다. 그 사회의 관계 속에서 다시 인간은 사회의 구조를 쌓아가며, 이 집단 저 집단에 걸쳐간다. 너무 어렵게 말을 했는데, 그냥 은거 기인이면서 프로 영콜러 일수도 있으며, 혹은 프로영콜러이면서 타 집단에 속할 수도 있다는 것을 명심했으면 한다. 다만 내가 명명한 스뮬 집단들은 그러한 특징을 지닌 사람들이 스뮬에 있다 라는 것이지, 그 사람들이 반드시 그런 특징들을 지닌것은 아니라 그런 경향을 지닌 이들이 대부분인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제대로 된 민족지 연구를 진행한것도 아니고 그냥 혼자만의 소감을 말하는 것임을 혹시라도 읽는 다른 사람들이 꼭 알아주었으면 한다.
다음 스뮬 집단 예고 
- 래퍼 (스뮬그라운드)
- 서브컬쳐 (재패니즈 우타이테!!)
- 라잼 좀비즈(스뮬워 Z) (속편 - 토크룸과 싱룸)
- 성우 (한다. 우리는. 더빙을)
- 그외에 또 본인이 알고 있는 집단적 특징이 있는 스뮬러들을 안다면 제보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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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umiism · 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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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력 쫌 된다고 입으로 손으로 떠들지 말고 직접 나와서 부딪히면서 증명을 합시다! 지면 더 노력해서 올라가면 되고 이기면 방심하지 말고 !!! —————————————— 기존에 진행 되었던 X-INK 컨벤션이 서브컬쳐 콘테스트 (서브콘)로 이름을 바꾸어 2019년 10월 19일 서브컬처 콘테스트(서브콘)가 열립니다.(이하 서브콘) 서브콘에서는 기존의 타투 부스 개념이 아닌 서브컬처 영역 모두를 포함하는 전시 공연 콘테스트로 ���체되어 진행할 예정 입니다. 타투뿐만 아니라 그래피티, 영상미디어, 조형예술, 댄서등 대체문화 시장의 전 장르와 함께하여 문화로 다가서기 위함입니다. *서브컬쳐 작가들과의 대규모 전시 공연을 원하시는분, 타 장르 작가들과 콜라보레이션 작업을 원하시는분들도 지금 신청해 주세요. (여러 장르의 작가들과의 콜라보레이션 작업과 개인 전시 퍼포먼스등)* 타투 부분 컨테스트는 해외의 유명 아티스트와, 한국 상위의 아티스트들의 심사로 상의 권위와 정당성을 부여해줄 것 입니다. 현재 확정된 Gakkin 과 Nissaco 와 현재 스케쥴 조정중인 몇명을 포함하여 홍콩컨벤션 주최자와 베트남컨벤션 주최자등 여러명의 전문성이 받침이 된 심사위원이 확정 되어 있습니다. 각 장르의 컨테스트의 심사를 상위 아티스트들이 진행 하여 전문장르의 질을 높이고, 서브컬쳐예술 시장을 대중에게 알리는 행사가 될 것 입니다. 이번에 처음 추가된 부분으로 타투 모델을 추가 하였습니다. 타투 ���티스트가 아니신분도 참가 가능 하시며, 아티스트 또한 참여 가능 합니다. 문하생과 수강생 여러분들도 참여 할수 있는 아트웤(그림) 장르도 신설하여 진정 신인을 위한 자리도 마련하였습니다. *타투모델로 입상하신분들은 LAC에서 발간하는 매거진의 모델로 촬영을 같이 하시는 부상을 드립니다. *경력 베스트와 신인 베스트, 빅 사이즈 베스트 ,스몰 베스트 들에게는 홍콩과 중국 랑팡,베트남,타이완등의 컨벤션의 초청티켓을 부상으로 드립니다. *각 장르 1등 부상 ( 협의중 ) (여러 장르의 작가들과 기존 작과들과의 콜라보레이션 작업과 개인 전시 퍼포먼스등) 여러 비주류 예술이 주류로 변모하여 대중의 사랑을 받는 문화예술의 과도기인 지금 시점에 우리에게 가장 대중적으로 다가갈수 있는 한국 대체문화 예술씬의 종합 행사 입니다. @k_subcon @k_subcon 일시 : 2019. 10. 19. 토요일 장소 : 홍대 브이홀 (이미지 참조 예정) 참여작가 : 선착순 150 여명 (서브컬쳐 모든 장르) 협찬 : LAC 협동조합, 시온 홀딩스, 30ME ,타투스타 (전체 미정) 현재 60명 이상의 아티스트가 섭외되어 있으며 참여를 원하시는 분들은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참가신청 및 문의 010-3523-0442 https://www.instagram.com/p/BxPVAYmjS0S/?utm_source=ig_tumblr_share&igshid=17bqrm091yn3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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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terweek · 7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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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오위즈 ‘브라운더스트2’, 제4회 일러스타 페스 참가
㈜네오위즈(공동대표 김승철, 배태근)가 서비스하고 ㈜겜프스엔(대표 이준희)이 개발한 모바일 RPG ‘브라운더스트2(BrownDust2)’가 종합 서브컬쳐 행사 ‘제4회 일러스타 페스(ILLUSTAR FES)’에 참가한다고 22일 밝혔다. ‘함께 만들어가는 종합 서브컬쳐 이벤트’를 모토로 하는 제4회 일러스타 페스는 오는 5월 4일과 5일 양일간 일산 킨텍스에서 개최된다. 브라운더스트2는 일러스타 페스 내 별도 부스를 마련하고 ▲등신대 및 코스플레이어 포토존, ▲공식 커뮤니티 구독 인증 이벤트, ▲추억의 뽑기 등 참여형 이벤트, ▲개발자 사인회를 운영한다. 부스 내 포토존에서 브라운더스트2의 ‘유리(윾돌이)’ 캐릭터 등신대 또는 코스플레이어와 사진을 찍은 관람객들 에게는 ‘부채’를 제공한다. 게임의 공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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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lab · 11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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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발로서의 팝?
Soziale Systeme 10 (2004), Heft 2, S. 292-324 © Lucius & Lucius, Stuttgart
Urs Stäheli
번역 – 조은하, 박상우
요약: 이 글은 Fuchs/Heidingfelder의 팝 시스템 개념에서 도발의 역할을 논의한다. 우선, 그들의 도발 개념은 문화 연구의 맥락 안에 위치한다. 이어서, 도발 범주의 이론적 위치가 도전적임을 주장한다. 도발로서의 팝에 대한 비역사적 이해는 그래서 그것의 시간적 구조를 강조하는 팝에 대한 다른 이해와 병치된다. 팝이 어떻게 현재를 다루고 세상에 알리는지를 심각하게 다룰 것을 제안한다. 이런 특정한 시간성, 그 자체 역사적인 우발성은 팝의 연결성을 이해하는데 중요하다. 그리고 팝과 예술 사이의 관계에 대한 언급으로 마무리한다.
Peter Fuchs와 Markus Heidingsfelder의 주장에 따르자면, 팝에서 도발은 그것을 인식 가능하게 하는 특징이다. 다르게 말하자면, 도발 없이 팝은 독립성을 상실하고, 소음으로 분해되거나 혹은 심지어 예술로 전환될 것이다. 그래서 팝은 구별을 위해, 조작 형식으로서 “노래를 미디어로 하는 도발”(308)을 활용하고 그래서 그 자신의 연결 능력을 생산한다.
이런 식으로, 두 저자는 팝에 대한 두 가지 동등한 고전적이고 비생산적인 접근 주위를 탐색하려 시도한다. 이 접근 중의 하나는 문화 연구의 많은 대표자들, 특히 독일의 비판적 이론가들 사이에서 발견된다. 팝은 지배적인 헤게모니 블록에 반대하는 저항적 힘이 된다. “대중(people)”과 “팝” 사이에는 연결회로가 있다. 팝의 도발은 전체인 사회의 전복이 된다. 자신들의 차이화-이론적 틀을 통해서 Fuchs/Heidingsfelder는 팝에 대한 그런 과잉 평가에는 면역을 가진다. 팝의 사회적 그리고 “전복적” 효과에 대해 지속적으로 초점을 맞추는 대신에, 그들은 도발이 팝 자체의 조작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 데에 흥미를 가진다. 어떤 면에서, 언제나 진정성 있는 팝 안에서 지속적인 불만족의 현상을 보고 있는 “인기 있는 것(the popular)”에 대한 옹호보다도 이들은 팝을 더욱 진지하게 다루고 있다.
동시에 반체제적 논의의 단순한 역전은 회피한다. 때때로 그것을 대체하거나 다른 경우 그것을 보완한다. 두번째 버전에 따르면, 만일 서브컬쳐의 전복적이고 일탈적 성격을 유지할 수 없다면, 수용될 위험이 있다. “지배적 문화”(Williams)의 수용 전략 분석은 문화 연구의 많은 연구들과 관련한다. 예를 들어, Dick Hebdige (1999[1979]: 384)는 수용 전략을 “서브컬쳐적 기호(의상, 음악 등등)를 대량 생산된 대상(상품)으로 전환”하는 것으로 묘사한다. 수용 논의는 반체제 논의와 같은 전제들에 의존한다. 여기서도 역시 진정성 있는 (음악적) 서브컬쳐의 가능성이 가정되고, 그것은 이제 관계의 변증법으로부터 이익을 얻는 경제적 수용 전략의 주제가 되고 희생물이 된다. 정확하게 서브컬쳐가 스스로를 지배적 문화에 대항하는 것으로 정의하기 때문에, 그들은 문화 산업에 의해 맹렬하게 흡수되는 차이를 생산한다.
두 논의의 문제는, 진정성 있는 서브컬쳐 같은 어떤 것이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 놓은 채로 있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진정성 있는 펑크는 문화 산업에 의한 수용으로부터 구별될 수 있다는 것이다. 진정성 있는 서브컬쳐 그리고 대중 문화를 입증하는 것의 위험성은 초기부터 문화 연구의 대표적 연구자들에 의해 지적되어 왔다. “"Notes on Deconstructing the ‘Popular’”라는 프로그램적 타이틀을 가진 논문에서 Stuart Hall (1981)은 진정성 있는 문화를 가지고 Herder적인 의미에서 대중적인 것을 동일시하는 것에 대해 경고한다. 그렇지만 전복과 수용 사이의 항해는 문화 연구에서 여전히 주제로 폭 넓게 남아 있다.
여기서 Fuchs/Heidingsfelder의 강점 중 하나는 그러한 팝에 대한 본질주의적 결정을 피한다는 것이고, 도발적 커뮤니케이션을 생산하기 위해 진정성 있는 서브컬쳐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신에 그들은 도발에 대한 논의를 이동해서, 그것을 팝 시스템 자체에 있는 조작의 특징으로 한다. 수용의 가정과 대조적으로, 도발은 그래서 유지되지만, 위치 상의 변화를 진행하고, 오토포이에틱 조작의 본질이 된다. 비록 이 프로그램적 이동이 새로운 사유의 경로를 약속할 수 있었지만, 도발적 조작의 위치를 정확하게 규정하는데 실패하면서, 여전히 대단히 애매하게 남아 있다. Fuchs/Heidingsfelder에 다르면 팝이 팝으로 바뀌는 조작의 유형을 가시화하기 위해서는 그런 엄밀화가 필수적일 것이다.
도발 테제는 역사적 그리고 개념적 측면에서 문제를 발생한다. Fuchs/Heidingsfelder에게, 팝의 도발은 프로토타입의 위치를 지니고 있었던(304) 록앤롤의 사례를 사용하며 논의되었다. 여기서 도발의 현상은 가장 분명하게 관찰될 수 있다. 성적 대상이 된 육체와 황홀에 빠진 움직임에 대한 강조, 고함과 소음 그리고 심지어 가사 등 모든 것이 록을 도발적으로 만드는데 기여한다. 그렇지만 이 도발은 역사적으로 대단히 특정적 사례다. Lawrence Grossberg's (1992)는 전후 USA에서 담론적인 “록의 형성”의 성립에 대한 중요한 연구를 했는데, 여기서 록이 도발로서의 잠재성을 획득하고, 어떻게 록을 통한 도발이 1980년대 신보수주의의 맥락 속에서 변동했는가를 정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록은 대응하는 “non-pop”과 그래서 “도발-친화적” 시맨틱(그것이 보수주의, 기독교 근본주의 혹은 신보수주의 어느 것이건)과 함께 관찰될 때 도발적일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는 이런 시맨틱의 약화와 함께, 록 역시 그것의 도발적 성격을 잃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이는 본질적 능력으로 팝에 부여되는 도발성이, 아마도 “록-형성”의 차이화에 수반되는 역사적으로 일시적인 현상일 뿐, 모든 종류의 팝 뮤직에 일반적 특성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이는 도발성 테제와 관련된 개념적 문제로 이어진다. 도발에서, Fuchs/Heidingsfelder는 새로운 오토포이에틱한 팝의 조작이 발생하는 메커니즘을 찾는다. “도발과 반-도발은 서로를 조건 짓는다. 팝 시스템의 조작은 정확하게 이 차이를 재생산하면서 함께 발생한다.” (307) 그러나 이런 차이가 발생하는 것은 어디인가? 모든 것은 도발된다. “예절과 매너, 음악적 전통, 그리고 무엇보다 좋은 취향” (308) 도발은 일차적으로 팝 시스템 안에서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시스템에 저항하는 것과 분명한 동일성을 통해서, 그 자신의 시스템 안에서 도발하거나 대안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회 시스템을 다루는 외부를 도발하는 것이��. (Luhmann, 1997, 205) 록에서 도발의 특질은 도발의 주소가 일차적으로 그 자신의 시스템에서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도발은 사랑 그리고 성적 시맨틱, 육체의 개념, 공연에 대한 기대 등등을 타겟으로 하지, 다른 록이나 팝 밴드(비록 밴드들 사이에 내부적인, 상호 도발이 있을 수 있지만)를 일차적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즉 도발의 외부적 편, 즉 도발된 것의 편, 반-도발의 대상의 편은 팝 시스템을 넘은 장소에 부여되고, 그래서 지시한다. 록 뮤직에 맞서는 글들은 종교적 잡지에서, 시끄러운 록 뮤직에 대한 불만은 가족 시스템 안에서 발생하고, 학교는 장발을 단속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 모든 경우에서, 반-도발 자체는 음악적 형식을 취하지 않는다. 그건 적어도 노래라는 미디어를 통한다고 정의되는 팝 시스템의 조작이 아니다. 그래서 반-도발의 대부분은 노래라는 형식을 취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반-도발이 오토포이에시스를 구성하는가를 엄밀하게 할 필요가 있다. 개별 노래 속에 차이를 새길 수 있는 본질적으로 미리 상상되는 반-도발, 반-도발의 팝-내부적 사고는 있을 수 있는가? 그렇다면 팝 시스템 안에서, 모든 노래는 팝의 조작으로서 정의하는 도발/반-도발 도식을 통해 관찰될 수 있다고 가정돼야만 할 것이다. 도발의 가상 세계는 팝 시스템 안에서 등장해야 한다. 이는 환경과 조응 관계를 반드시 찾을 필요는 없는 도발 가능성에 대한 사고다.
이 경우 Fuchs/Heidingsfelder에 의해 제시된 히트/실패를 통한 팝 시스템의 코드화는 잘해야 이��적 코드화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시나리오에서 시스템의 형식은 노래라는 미디어가 도발을 통해서 이항 구조화하면서, 도발/비-도발에 의해 규정돼야만 하기 때문이다.[1] 그래서 이항 구조를 정의하면서, 두 저자는 그들이 더욱 상세하게 묘사하는 시스템의 특징에 대한 논의는 특별히 줄이고 있다. 히트와 실패는 주식 시장, 출판, 영화 산업 심지어 대학 랭킹에도 존재한다. 히트/실패 구별은 팝 시스템의, 심지어 예술 시스템의 고유한 특징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적절하게 이익을 발생하기 위해서 다양한 시스템에서 언급되고 수정되는 약탈적 경제적 구별인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도발 구별 역시 이항 구조로 탄탄하게 기여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적대적으로 구성되는 것의 이점을 가지고, 그것을 이어지는 커뮤니케이션의 촉매로 역할을 할 수 있는 반면, 또한 팝 뮤직의 지속적인 원(原)-정치적 이항 구조를 주장한다. 좌파 팝 이론가들이 모든 것에서 기술적으로 저항을 발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 이항 구조화는 지속적인 도발의 가정을 도입한다.
아마도 팝은 단순한 도발이나 히트/성공보다 훨씬 적은 것-그리고 동시에 훨씬 큰 것-이다. 팝 작가인 Frank Schäfer가 현대 팝에 대한 자기-언급성을 다룬 논문의 제목으로 삼은 것처럼 “팝은 팝이다” “팝 송이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본질적으로 그것은 소리 속에서 스스로가 되는 것을 원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자연스럽게 팝은 반복적으로 오염된다. 정치적 선동을 위해 남용되고, 인간의 애호를 위한 쇼케이스로 사용되고, 경제적 욕망의 도구로 변한다.” (Schäfer, 2004, 69) 아마도 그래서 팝은, 모든 이런 외적 오염을 벗을 때만 하나의 시스템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더 이상 지속해서 초기 록 송이 했던 것 같은 상상적 수신인을 생각하지 않을 때, 그리고 더 이상 차트를 지켜보고 있지 않을 때.
그렇지만 그렇게 하면서 팝은 자기-언급적 예술이 될 위험을 지니게 될 것이고, 그것의 일시성을 다룰 때만이 그것에서 구별될 수 있을 것이다. 팝은 “일시적 현상” 그리고 “완전한 현재성”으로 기술된다. (Schäfer, 2004, 69)[2] 그렇게 팝을 이해한다면, 예술에 의해 가능한 현전 경험의 밀도는 아우라와 보존될 만한 고유성의 재통일과 결합한다. 비록 많은 팝 서브컬쳐는 다시 그런 아우라를 열망한다. 도발적 록의 초기로부터 회복된 팝은, 종종 사소한 것으로 관찰되는, 유순한 가벼움으로 반역적 자세를 대신한다. 노래 가사에서의 정보 압축과 의도된 생략은 도발 보다는, 그래서 그 자신의 순간성에 대한, 아마도 유지할만한 텍스트를 생산하기를 주저하는 반-해석적 태도(Gumbrecht, 2003)에 대한 종종 자기-역설적 지시를 알린다. 팝은 증가된 연결성의 “사운드”를 생산한다. 그것은 점차로 작업 단위로서 노래의 고전적 형식을 생략할 수 있다. 커플링 과정은 예를 들면 샘플링을 통해 개별 노래 속으로 옮겨지거나 혹은 개별적 ��품들이 겸쳐진다. 역시 여기서 팝은 예술 시스템에서 몽타쥬 기법을 빌어 온다. 그러나 단지 그 자신을 변성(entauratisieren) 하기 위해서다. 가장 작은 작업 단위가 앨범이건 노래이건, 작품 개념의 해체에 따라 팝은 조합성과 인용가능성을 찬양한다. 이는 대중적 커뮤니케이션의 다양한 형식을 특징짓는 특징이다. [3]
단지 팝이기만을 원하는 이 팝에 있어 도발적인 것은 더 이상 도발적 자세가 아니라, 대부분 예술 시스템에 대해 취하는 도전이다. 최고의 순간에 그런 팝은 그 자신이 커뮤니케이션의 “보존할만한” 형식이라고 주장하는 것을 멈추고, 그것의 거의 무한한 재생산성과 사용가능성을 통해 이를 커뮤니케이션한다. 팝은 더 이상 도발을 통해 예술로부터 차이화 하지 않는다. 20세기 예술적 아방가르드는 도발을 그들 자신의 스타일 원칙으로 삼았다. 예술 또한 히트와 실패로 범주화 될 수 있다. 예술과의 차이화는 그 자신의 조로화를 다루는 데, 그 자신의 전통화에 대한 기대의 포기 속에 놓여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예술 뮤지엄에서 너무나 중심적인 전통적 보존의 제도화라는 측면이 팝에서는 주변적 역할만을 한다는 사실에서 이는 자명하다. 사실 팝이나 록을 뮤지엄화하려는 생각은 팝의 즉시성의 배신으로 인식된다. [4]
그래서 팝은 다른 대중적 커뮤니케이션의 형식들과 아카이브의 문제를 공유한다. 왜냐하면 정확하게 대중적인 것은 하이퍼-연결성과 전면적 포섭의 포부를 찬양하기 때문이며, 팝의 배타적인 아카이브화는 이런 특징을 위험에 빠트리기 때문이다. (Stäheli, 2002) 팝은 그래서 불안정한 기반 위에 있다. 한 편으로 그것은 예술 시스템의 과장된 전면적 포섭의 사고를 번창하게 한다. 모든 이를 위한 예술이라는 사고는 “개인의 절대적 배제로부터… 모든 이들에 대한 유토피아적 포섭”에 대한 운동에 의해서 나타난다. (Diedrichsen, Fuchs/Heidingsfelder, 293, note 2에서 인용) 일시성의 축복과 뮤지엄화와 같은 전통적 기술에 맞서는 전환은 또한 그들의 배제 효과에 맞선 공격이다. 다른 한 편, 팝은 팝으로서 인식 가능하게 되기 위해서, 예술 시스템으로부터 기존의 구조적 형식을 빌려와야 한다. 예를 들어, 배타적 팬과 전문적 문화는, 이해하기 어려운 규칙과, 개별 노래와 아티스트들을 경전화하여 팝에 대한 일반적 접근성을 제한하면서 생겨난다. 팝은 정확하게, “고급/저급”과 “보존할만한/대중적인”과 같은 구별을 통해 예술 시스템으로 도입된 해결 불가능한 긴장을 다루는 것에 관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Literatur
Bürger, Christa/Bürger, Peter/Schulte-Sasse, Jochen (Hg.): Zur Dichotomisierung von hoher und niederer Kultur. Frankfurt a.M.: Suhrkamp.
Di Maggio, Paul (1992): Cultural Boundaries and Structural Change: The Extension of the High Culture Model to Theater, Opera, and the Dance, 1900-1940. S. 21-57 in: Michele Lamont/Marcel Fournier (Hg.), Cultivating Differences: Symbolic Boundaries and the Making of Inequality. Chicago: Chicago University Press.
Grossberg, Lawrence (1992): We Gotta Get Out of This Place. Popular Conservatism and Postmodern Culture. London: Routledge.
Gumbrecht, Hans Ulrich (2004): Diesseits der Hermeneutik. Die Produktion von Präsenz. Frankfurt a.M: Suhrkamp.
Hall, Stuart (1981): Hall, Stuart (1981): Notes on Deconstructing the Popular. S. 227-240 in: Ralf Samuel (Hg.), People's History and Social Theory. London: Routledge.
Hebdige, Dick (1999): Wie Subkulturen vereinnahmt werden. S. 379-392 in: Karl H. Hörning/Rainer Winter (Hg.), Widerspenstige Kulturen. Cultural Studies als Herausforderung. Frankfurt a.M.: Suhrkamp.
Luhmann, Niklas (1997): Die Gesellschaft der Gesellschaft. 2 Bde. Frankfurt a.M.: Suhrkamp.
Schäfer, Frank (2004): Pop ist Pop. Anmerkungen zur Ästhetik der Popmusik. NZZ Nr. 218 v. 18.09.2004,69.
Schumacher, Erhard (2003): Gerade Eben Jetzt. Schreibweisen der Gegenwart. Frankfurt a.M.: Suhrkamp.
Stäheli, Urs (2002): Die Wiederholbarkeit des Populären: Archivierung und das Populäre. S. 73-82 in: Hedwig Pompe/Leander Scholz (Hg.): Archivprozesse. Die Kommunikation der Aufbewahrung. Köln: DuMont.
Stäheli, Urs (2004): Das Populäre als Unterscheidung. In: Gereon Blaseio/Hedwig Pompe/Jens Ruchatz (Hg.), Popularisierung und Popularität. Köln: DuMont. (im Druck)
Zelik, Raul (2004): Kulturelles Potenzial. http://www.textem.de/422.0.html
SNF-Förderprofessor Dr. Urs Stäheli, Institut für Soziologie, Universität Bern, Unitobler - Lerchenweg 36, CH-3000 Bern. [email protected]
[1] 그렇지만 Fuchs/Heidingsfelder에서, 히트/실패의 이항 구조는 결코 첫 눈에 보이는 것처럼 분명할 수 없다. 그들은 판매량과 같은 경제적 범주에만 배타적으로 의존해 히트를 규정하지는 않는다. 이항 구조의 히트 쪽은 노래의 (널리 알려져 있다는 제한된 의미에서) 대중성과 그것의 도발 모두를 포함한다. 그러나 이것은 실패에는 어떤 의미일까? 잘 안 팔리고, 불과 몇 사람만이 듣는 것처럼 보이는데, 도발은 어떨까? 더 이상 도발적이지 않은 히트는 무엇일까? 마지막으로 이항 구조의 부정 가능성은, 도발의 형식보다는 양적으로 정의된 대중성을 통해 여전히 결정된다.
[2] 현전에 대한 특정한 지시에 기반해서 팝 문학을 정의한 Schumacher (2003)에 비교하자. 그렇지만 팝 문학은 “진지한” 예술 커뮤니케이션으로 스스로를 성립할 때, 팝 뮤직과 비교해 의미 있는 도전을 거의 마주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3] Raul Zelik (2004)은 Thomas Meinecke의 소설 "Musik"의 리뷰에서 이런 기술을 강조한다.
[4] 그래서 유럽에는 단지 하나의 “록 앤 팝 뮤지엄”이 있다. 그것은 2004년 봄 Gronau의 Westphalian시에서 Udo Lindenberg에 의해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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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on-ridestan · 2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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텀블러 트위터 대체제 절대아님 마스토돈까지 쓰고 느낀건데 마스토돈이 트위터에 훨씬 가까움
물론 서브컬쳐 창작자+그림러들은 텀블러가 더 좋긴할것
트위터의 핵심을 뭘로보고있느냐에 따라 다를것같음 서브컬쳐 오타쿠질이 먼저면 텀블러겠고 그냥 오초마다한번씩헛소리발싸 하고싶은거면 마스토돈임
난 마스토돈임
헛소리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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