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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군(南海郡) okres Namhä
남해도는 우리나라에서 네 번째로 큰 섬이며, 남북 약30㎞, 동서 약 26㎞이다. 망운산(786m)·금산(681m)·원산(627m)등 다소 높은 산지는 많은 반면 하천은 모두 짧고 평야도 매우 협소한 편이다. 해안선 연장은 302㎞이며 육지부인 하동군 금남면과 연결되는 육계도(陸繫島)에 해당한다.지세는 소백산맥의 말단부가 거창·산청·함양·하동을 거쳐 내려와 바다에 함몰했다가 다시 본 섬에서 솟아올라 일부의 산악지역을 형성하고 있어서 기복은 낮지만 적지 않은 산들이 분포하고 있다. 평야지대는 전체면적의 약 25%를 점유하며, 대부분이 해안이나 산곡을 따라 형성된 분지에 분포한다. 군 관내에는 또한 68개의 섬이 있는데, 3개의 유인도(큰섬·범섬·노도)와 65개의 무인도로 이루어져 있다. 해안선은 대단히 굴곡이 심하며, 군 동쪽으로 강진·동대·미조·앵강 등의 만과 작은 포구들이 형성되어 있다.서반부의 북쪽에서 남쪽으로 전개되는 녹두산(鹿頭山, 451m)·사학산(四鶴山, 340m)·삼봉산(三峰山, 422m)·망운산(望雲山, 786m)·관대봉(冠帶峰, 469m)·천황산(天皇山, 395m)·망기산(望崎山, 340m)·응봉산(鷹峰山, 473m) 등이 있다. 또한, 동반부의 북쪽에서 남쪽으로는 산성산(山城山, 371m)·금음산(金音山, 481m)·대국산(大局山, 375m)·괴음산(槐陰山, 604m)·송등산(松登山, 617m)·노구뒷산(501m)·금산(錦山, 701m) 등이 펼쳐져 있다. 이 군에 부속된 전국 제9위의 큰 섬 창선도(昌善島)에도 연대산(蓮臺山, 339m)·동금산(東錦山, 358m)·대방산(臺芳山, 468m)·망치산(268m) 등이 있다.이들 산악에서 발원한 입현천(笠峴川)·동산천(東山川)·초음천(草陰川)·무림천(茂林川)·다천천(茶���川)·화천천(花川川) 등 15개의 하천들이 산지를 개석하여 곳곳에 작은 분지와 평지를 형성하고 각 방향으로 흐른다.기후는 동한난류의 영향을 받아 온화한 해양성기후이며, 연평균기온 14.6℃, 1월평균기온 3.1℃, 8월평균기온 26.6℃이다. 연강수량은 1,780㎜로 우리나라 3대 다우지역에 속하고 강수의 대부분이 여름철에 집중된다. 평균습도는 66%이다.(2007년 현재)지질구조는 중생대 백악기 경상계 지층이 대부분이며, 불국사화강암층이 지배적이다. 토양은 대부분 표층이 얕은 산지 암설토이나 해안지역에는 충적토가 분포한다. 식생으로는 비자나무·편자꽃·유자나무·난음비자림 등이 자생하고 있다.
역사청동기시대의 고인돌이 이동면 다정리, 남해읍 남변리·평현리·심천리를 비롯해 군내 각지의 해안평야와 창선도에까지 밀도 높게 분포되어 있다. 이것으로 미루어 이 섬이 내륙지방 못지않게 일찍부터 사람들이 살았던 곳임을 알 수 있다. 삼한시대의 역사에 대해서는 자료가 없으나 690년(신문왕 10)에 신라가 전야산군(轉也山郡)을 두었고, 757년(경덕왕 16)에 남해군으로 개칭했다는 기록이 있다. 영현(領縣)으로 설치했던 난포현(蘭浦縣)은 본래 내포현(內浦縣)이고, 평산현(平山縣)은 본래 평서산현(平西山縣, 혹은 西平)으로 모두 이때 개칭한 것이다.1018년(현종 9)남해현으로 강등되었다. 이때 영현인 난포·평산 양현은 왜구의 침범이 심하여 사람이 살지 못했다. 남해현도 1358년(공민왕 7)진주목의 대야천부곡(大也川部曲, 일명 鐥川 : 지금의 하동군 북천면)에 피란하였다. 창선도는 고려시대에 유질부곡(有疾部曲)이라고 했다가 뒤에 창선현(彰善縣)으로 고쳐서 진주목의 영현으로 삼았다. 충선왕 때 흥선현(興宣縣)으로 개칭했으나 왜구 때문에 역시 살기는 힘들었다. 1269년(원종 10) 일본이 변경을 침범하려 한다는 소문이 있어, 창선도에 수장했던 국사(國史)를 진도로 옮겼다. 고려 말 왜구의 침범이 날로 심해지자 1384년(우왕 10) 해도도원수(海道都元帥) 정지(鄭地)가 관음포(觀音浦)에서 왜구를 크게 물리쳤다.1404년(태종 4) 왜구 때문에 진주 땅으로 피란한 지 46년 만에 남해현을 복구하였다. 이때 구라량(仇羅梁)주 01)만호 임덕수(任德秀)가 현령을 겸임하여 남해읍성을 축성하였다. 1414년하동현과 합쳐져 하남현(河南縣)이 되었다가 이듬해 다시 하동과 분리되면서 진주목의 금양부곡(金陽部曲)을 편입, 해양현(海陽縣)이 되었다. 2년 뒤에는 다시 남해현으로 환원하고 현령을 두었다. 1419년(세종 1) 곤명현(昆明縣)과 합쳐져 곤남군(昆南郡)이 되었다가 1437년 다시 남해현으로 환원되었다. 『세종실록지리지』에 의하면 당시 호구수는 61호 271명이었다. 1469년에 편찬된 『경상도속찬지리지(慶尙道續撰地理誌)』에 남해현의 민호가 738호라고 기록된 것으로 보아, 불과 15년 동안에 남해가 급속도로 회복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무렵 흥선도는 진주목 소속의 목장으로서 말 737두를 방목하고 있었다. 세조 때의 진관체제 성립에 따라 남해현은 진주진관 휘하에 들어갔으며, 현령이 절제도위를 겸임하였다. 수군은 제포진관(齊浦鎭管) 휘하의 평산포만호(平山浦萬戶)가 통제하였다.1486년(성종 17)에는 미조항(彌助項)에 수군첨사진을 설치했다. 그러나 왜구 때문에 한때 폐쇄했다가 1522년(중종 17)에 복구하였다. 이 무렵 기묘사화로 김구(金絿)가 남해도에 유배되었으며, 이때 「화전별곡(花田別曲)」을 남겼다. 1598년(선조 31) 임진왜란 막바지에 노량 앞바다에서 대해전이 벌어졌다. 이순신(李舜臣)은 왜군의 퇴로를 가로막아 병선 400척을 섬멸하는 대전과를 올렸으나, 관음포에서 적의 유탄에 맞아 순국하였다. 1633년(인조 11) 고을 사람들이 초사를 세워 제사를 모시다가, 1658년(효종 9) 통제사 정익(鄭榏)의 명으로 사당을 크게 중수하였다. 이 사당은 1663년(현종 4)통영 충렬사와 같이 ‘충렬사(忠烈祠)’로 사액되었다. 근년에 남해군민들의 정성으로 충렬사·관음포 등 충무공의 유적이 정비, 정화되었다.임진왜란 후 흥선도는 창선도라는 옛 이름을 되찾고, 진주목 소속의 말문리(末文里)주 02)에 합쳐졌다. 1759년(영조 35) 남해현의 호구수는 4,491호 2만 1,737명이었다. 1863년(철종 14)에는 진주민란에 호응해 농민 수천 명이 민란을 일으켜서 관아와 창고를 파괴하고 문서를 불태우는 사건이 있었다.1895년(고종 32) 지방관제 개정으로 남해군으로 개편하였다. 1905년에는 진주목에 속해 있던 창선도가 남해군으로 편입되었으며, 1906년창선도를 창선면으로 승격하여 남해군에 편입하였다. 1919년 3·1운동 당시에는 이예모(李禮模)의 주도하에 3월 3일 남해시장에서 1,000여 명의 군중이 시위를 벌였다.1964년 1월 20일삼동면 미조출장소와 서면 중현출장소가 설치되었으며, 1968년한려수도가 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1970년 4월 1일이동면 상주출장소가 설치되었고, 1973년 7월 1일에는 이동면 상주리의 갈도(葛島)가 통영군 욕지면으로 편입되었다. 1973년 남해고속도로와 남해대교가 완공, 개통되었다. 이로써 남해군은 완전히 육지와 연결되어, 본래의 농·수산업 이외에 관광지로도 각광받게 되었다.1979년 5월 1일남해면은 읍으로 승격하였다. 1980년에는 창선교가 개통되어 남해도와 창선도가 연결되었다. 1983년삼동면 난음리가 이동면에, 서면 연죽리 일부가 남해읍에 편입되었다. 1986년 4월 1일에는 상주·미조 출장소가 각각 면으로 승격하였다. 1988년 동이 리(里)로 개칭되었으며, 1989년 1월 1일상주면 상주리 일부가 미조면 송정리로 편입되었다.
설화:민요
이 고장의 설화는 지명유래설화, 자연물에 얽힌 설화, 역사적 인물에 관한 설화가 주류를 이룬다. 설천면과 고현면 사이에 있는 대국산성에는 축조유래담이 전한다. 설천면 비란리 대국산 밑에 의좋은 형제가 살았는데, 한 처녀를 똑같이 사랑하게 되었다. 형제는 서로 애만 태우다가 형이 먼저 동생 ‘청’에게 “그녀가 두루마기를 짓는 동안 나는 30관의 쇠줄을 발에 묶고 20리 되는 읍에까지 갔다오기로 하고, 너는 대국산에 성을 쌓기로 하여 이긴 사람이 그녀와 혼인하기로 하자.”고 제안하였다. 동생 청이 먼저 성을 쌓자 형은 미리 약속한 대로 가슴을 찔러 죽고 말았다. 형을 잃은 청이 슬픔에 잠겨 있을 때 왜구가 침입하자, 청은 마을 사람들과 함께 성을 이용해 왜구를 격퇴하였다. 지금도 대국산성에는 왜구의 대포에 맞은 흔적이 남아 있다.이동면 금산의 상사바위에는 주인의 딸을 사랑한 하인의 설화가 전해 온다. 주인의 딸을 사랑하다 죽은 돌쇠는 죽어서 뱀이 되어 딸의 방으로 들어가 몸을 칭칭 감고 풀어주지 않았다. 주인은 꿈에 본 노인의 말대로 금산에서 제일 높은 벼랑으로 딸을 데리고 가 굿을 하였다. 한참 만에 뱀이 풀어져서 벼랑 아래로 떨어져 죽으니, 이후 이 벼랑을 상사바위라 불렀다고 한다.남해읍에서 5㎞ 떨어진 무지개골에는 무지개 때문에 헤어진 부부의 이야기가 지명유래담으로 내려온다. 이 마을에는 금실 좋은 한 부부가 있었는데, 어느 날 남편이 무지개를 따라간 뒤 돌아오지 않았다. 딸을 데리고 기다리던 아내는 무지개가 뜨면 남편을 부르며 무지개를 향해 걷다 쓰러지곤 하였다. 해가 가도 오지 않는 남편을 위해 남편이 사라진 곳 부근의 바위에서 무사하기를 빌던 아내 앞에 산신령이 나타나 남편이 간 방향을 일러주었다. 그러나 가도가도 끝이 없어, 남편을 찾지 못��� 채 아내는 무지개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그 뒤 이 마을을 무지개골이라 불렀다고 한다.이 밖에도 장��못 유형의 「달구산전설」, 유성룡(柳成龍)의 형 운룡(雲龍)의 지략으로 왜군을 무찔렀다는 「가청곡전설」, 해마다 풍어제를 올리는 가친미륵불에 관한 전설 등 많은 이야기가 전한다.이 고장에 구전되고 있는 민요는 노동요가 중심이 되며, 어업노동요와 농업노동요의 비중이 비슷하다. 선율은 메나리토리권이나 전라도와의 내왕이 쉽고 빈번해 육자배기토리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정자소리」라고도 하는 모내기노래는 “이논에 모를심어/감실감실 영화로다…….”와 같은 보편적인 사설과 가락으로 불린다. 논매기노래로는 “에허여어 상사디―요/여봐라 농부야 말들어라…….”와 같은 ‘상사디어’형의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저건네라 갈미봉에/비가 묻어서 돌아온다…….”라고 하여 전형적인 「육자배기」를 부르기도 한다. 밭매기노래는 모내기노래의 사설을 사용해 여음 없는 장절형식의 메나리토리로 부른다. 그러나 ‘도’음이 낮아 육자배기토리로 들린다.어업노동요인 「노젓는 노래」는 “어여차 예어차 에―”와 같은 여음에 작업을 지시하는 단순한 사설이 들어 있으며, 가락이 우리 나라 고유의 3분의 3분박자로 되어 있다. 「그물 당기는 노래」 또한 호흡을 맞추기 위한 여음 위주의 노래이나 일본 곡조의 영향을 받았다. 「고기푸는 노래」는 “(앞소리)이가래가 누가랜고/(뒷소리)어넝성 가래야/우리배선주 돈가래다/어넝성 가래야…….”라는 가래소리로 메기고 받는 선후창으로 부른다.여성노동요로는 「베틀노래」·「방아노래」 등이 있고, 여러 일에 두루 부르는 「시집살이노래」도 많다. “임아임아 서방임아/밥상받고 호령마라/실날같은 법아니면/마주앉아 호령하겐만은…….”이라 하여, 시집살이의 고난·시련만을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남편의 위엄이 법도에 의지한 허위임을 폭로하기도 한다. 기타 노동요로는 “어떤 사람은 팔자좋아/고―광실 높은집에 부귀영화로 잘사는데/이놈팔자는 무삼팔자로…….”라 하여 전형적인 메나리토리로 부르는 나무꾼 신세타령이 있으며,의식요로는 「상여노래」가 있다. 이 밖에도 금산의 경치를 노래한 「금산」, 이 고장의 명물 유자를 노래한 「염불가」 등이 있다. 아리랑류에는 세태를 풍자한 것이 많이 있다. 특히, “잠자기 좋기는 시아비 아들/산차지 물차지는 총독부 차지/이내몸 차지는 정든임 차지…….”와 “일본땅에 범나비는 조선땅에 꽃을두고/다달이 못올망정…….”에서는 일본과의 관계를 문제 삼고 있다.
지방행정구역요람 (행정자치부, 2000)
한국의 민속음악·경상남도 민요편·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5)
사향록 (남해향토문화연구회, 1984)
남해의 얼 (남해군문화공보실, 1983)
언문조선구전민요집 (김소운, 제일서방,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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