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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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에 본질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무의미다. 정확히는 무목적성, 단지 자기목적적 표현의 발로. 하지만 음악과 영상을 위주로 소위 대중문화가 발달함에 따라, 예술은 수천만명의 생계가 달린 산업이 되었고, 그리하여 다른 모든 것들과 마찬가지로 수익 창출이라는 목적성을 강제로 부여받게 되었다.
본질적으로 무의미하고 무가치한 일에 이토록 많은 자원과 사람이 투입되고, 그 세를 점점 불려 나가는 상황 자체가 이해되지 않는 측면이 있지만, 무엇보다 우려스러운 것은 예술의 재미와 의미는 무의미에서만 발현되는 것일텐데, 수익 창출이라는 목적성을 강제적으로 부여받은 현대의 대중 문화씬은 결국 재미있고 의미있는 작품은 나올 수 없는 닫힌 구조가 되어 버렸고, 거기서 서로가 서로를 베끼며 지리멸렬한 지분율 싸움이나 함으로써, 안그래도 무의미한 예술을 더욱 무가치한 것으로 만들어 버리고 있는 중이 아닌가?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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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나에게 좋은 사람, 나쁜 사람,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사람, 나쁜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사람.
이 경계를 구분 짓는 게 무의미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그때 나를 위한 마음은 진심이었겠지'라고 믿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닐까?
오해하지 않게 얘기하면 누굴 저격해서 쓴 것이 아니기에 '누굴 얘기하는 거지?'라고 추측할 필요 없다. 그냥 전체적인 인간관계를 얘기하는 거. 며칠 내내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가 결론을 내려서 메모해봤다. 내 말이 정답이란 것도 아니고, 예외도 있고. 내 말의 요지는, 과거에 진심이었을지도 모를 배려마저 가짜라고 의심하는 건 너무 슬퍼진다는 거다.
덧.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계기들이 꽤 있다.
1) 오늘 새벽까지 '하우 투 비 굿'을 다 읽었다. 부제는 '좋은 사람 되는 법.
2) 최근에 내가 오해한 부분이 있었다. 역시 저격 글 아니다. 사람에 대한 오해가 아니라, 어떤 에피소드에 대해 잘못 해석한 거지. 그처럼 내가 확신해 마지 않던 결론은 내가 빙빙 꼬아서 생각하고 있었다는 거다. 해프닝 그대로 받아들이면 되는데 '분명 오해가 있었을 거야. 어쩌다 이렇게 됐지? 내가 뭘 했어야 하지?' 이런 거.
3) 어제 다큐멘터리에서 킴 카다시안이 그렇게 말하는 걸 보고 많은 생각이 들었다. '케이틀린이 우리 가족에 대해 아무리 나쁜 얘기를 했어도 나에게 좋은 양아버지였고 그 추억과 사실은 변함없다'는 내용의 인터뷰였다. 그 말이 되게 인상적이었다. 나였다면 '그렇게 좋은 양아버지였는데 이렇게 우리에게 통수를 쳐?!' 했을 것 같거든. 킴은 배신감보다는, 그 사람 자체가 좋은 걸 믿는 것 같다. 난 행동으로 판단하지만 킴은 '원래는 좋은 사람이다'고 생각하는 거지. 그게 훨씬 마음 ���할 거라는 생각이 들고 '왜 난 그러지 못했지?'라는 생각도 들고, 킴이 역시 굉장히 똑똑한 사람이란 생각도 들고.
4) 사람마다 고치고 싶은데 바뀌지 않는 부분이 있는 법이다. 그건 본인 뜻대로 안 된다는 걸 요즘 느낀다. 나로 치면 남에게 무관심한 거. 절대 좋은 면은 아니거든. 하지만 남에게 관심을 가지려는 순간 내 피로도가 급격히 증가하니까 그걸 포기하는 거다. 또 가장 가까운 예로 우리 아빠. 늘 그 순간에 불같이 화내다가 화가 가라앉고 나면 사태는 돌이킬 수 없는 거여. 난 아빠가 아빠가 한 행동으로 후회하고 당신 스스로 상처 받는 걸 평생을 봤다. 친구한테 "그런데 아빠 같은 성격은 안 바뀌는 건가?" 하니까 친구도 "50 넘게 사셨는데도 안 바뀌는데 바뀌겠니?" 하더라.
5) 자기의 실수를 조심하려는 사람들을 늘 본다. 자신의 말버릇이 상대를 기분 나쁘게 하는 걸 이미 인지하는 사람. 그럼 그 사람들은 그걸 서둘러 정정하더라. "아냐, 내가 잘못 말했어." 이런 식으로. 그러니까 내 말은, 우리가 기분 나쁜 건 그 사람이 고의적으로 행동한 게 아니라, 오해할 만한 행동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거다. 그 사람들은 자기의 단점을 최대한 고치려고 하는 중일지 모르는데. 그걸 이해해준다면 서로의 마음이 편해질 거란 말.
6) 설령 그들이 정말 악의가 있었다고 해도 어떨 때는 '일부러 그런 건 아니겠지'라고 넘기는 게 더 마음 편할 것 같다.
7) '이렇게 평온하다 어떤 또라이가 걸려서 내 일상이 또 무너질까' 하는 걱정도 때때로 들거든. 그 생각 자체가 아무 의미 없다는 걸 아는데도. 걱정했던 일이 진짜 닥치면 그때 해결책을 찾아도 상관 없는데 말이다. 주변에 또 어떤 또라이가 숨겨져 있을지를 조심하며, 안 발견하길 바라며 살고 있는 내가 너무 어처구니없다는 생각이 어제 들었다.
/그리고 '하우 투 비 굿'이란 책을 좀 더 일찍 읽었더라면 어땠을까. 지금보다 훨씬 마음이 편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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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보에게서 이영광에게
사랑의 발명 / 이영광
살다가 살아보다가 더는 못 살 것 같으면 아무도 없는 산비탈에 구덩이를 파고 들어가 누워 곡기를 끊겠다고 너는 말했지
나라도 곁에 없으면 당장 일어나 산으로 떠날 것처럼 두 손에 심장을 꺼내 쥔 사람처럼 취해 말했지
나는 너무 놀라 번개같이, 번개같이 사랑을 발명해야만 했네
<나무는 간다>(창비, 2013) 수록
“사랑은 재발명되어야 한다.” 많은 이들이 랭보의 이 구절을 인용할 때 이 문장이 ��함돼 있는 다음 대목 전체에 찬성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난 여자들을 사랑하지 않아. 모두 알다시피 사랑은 재발명되어야 해. 여자들은 안전한 자리를 바랄 수밖에 없어. 일단 그것을 얻고 나면 마음이니 아름다움이니 하는 것은 내팽개쳐지지. 그 자리에 남는 것은 차가운 멸시뿐인데, 그게 오늘날 결혼의 양식이야.”(‘착란 1’ 중에서) 여자들은 본질적으로 안주(安住)를 지향하기 때문에 진지한 사랑의 실험을 함께 할 수 없다는, 동의할 수 없는 편견이 이 대목에 담겨 있다. (다른 시 ‘콩���’(conte)에서도 “사랑의 놀랄 만한 혁명성”을 실험하는 ‘왕자’는 궁전의 여자를 모두 살해한다.)
물론 저 말들은 시인 자신의 육성이 아니라 ‘착란 1’의 화자(여자)가 인용하고 있는 연인(남자)의 말이지만 그 연인을 랭보라 볼 근거가 시의 다른 대목에 많으므로 저 발언도 랭보가 한때 몰두했던 생각과 전혀 무관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미숙한 여성관은 제거하고 그의 취지라고 할 만한 것을 정리해 보면 이렇다. ‘우리 시대의 사랑은 부르주아적 논리와 관습에 오염되어 단지 이익의 거래가 되었을 뿐이며, 사랑의 아름다운 귀결로 간주되는 결혼이란 차가운 멸시를 먹고 사는 괴물일 뿐이다.’ 이 주장에 동의하지는 않더라도 현대적 사랑에 대한 철학적 비판을 시도하는 (알랭 바디우를 포함한) 많은 이들에게 랭보의 저 구절은 여전히 영감의 원천이다.
‘사랑의 재발명’이라는 매력적인 발상의 기원이 랭보에게 있음을 짚어둔다는 게 그만 서론이 길어졌다. 랭보가 말한 것은 발명이 아니라 재발명이다. 어떤 가치/제도의 재발명을 주장하는 사람은 혁명적이다. 기존의 것은 가짜라고, 진짜는 다른 곳에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나는 재발명이 아니라 발명에 대해 생각하려 한다. 무너뜨릴 것도 없는 데서 무언가를 처음으로 만들어내는 이의 그 두렵고 힘찬 마음에 대해서 말이다. 시인 이영광의 네 번째 시집 <나무는 간다>에는 ‘사랑의 발명’이라는 시가 수록돼 있는데 3년밖에 안 된 이 시를 300년이나 3000년은 된 시처럼 아득한 마음으로 읽어보는 때가 나에게는 있다.
그렇게 아득해지는 것은, 이 시가 어느 저녁 술집에 마주 앉아 절박해져 있는 두 사람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유사 이래 무정한 신 아래에서 인간이 인간을 사랑하기 시작한 어떤 순간들의 원형처럼 보여서다. 내 앞에 있는 사람은 위태롭다. 그는 지금 “살다가 살아보다가 더는 못 살 것 같으면” 그냥 죽어볼까 생각한다는 말을 하고 있다. “살다가 살아보다가”라고 했으니 여하튼 최선을 다할 것 같기는 하되 예감은 좋지 않다. 죽을 각오로 열심히 살겠다는 뉘앙스가 아니라 죽을 수밖에 없는 때가 곧 오리라는 뉘앙스다. 자세한 사정은 알 수 없지만 인간이 더는 못 살겠는 때란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살 ‘방법’이 없거나(불가능), 살 ‘이유’가 없거나(무의미).
그런데 왜 그는 하필 다른 길을 두고 구덩이를 파고 누워 곡기를 끊는 길을 택하겠다는 것일까. 나는 제 무덤을 파고 거기 산 채로 기어 들어가 서서히 굶어 죽어가는 사람의 표정과 마음을 상상해 본다. 어렸을 때 ‘자신을 죽이다’(kill myself)라는 영어 표현의 강력한 실감에 놀란 적이 있는데(‘자살’이라는 말은 ‘suicide’가 그렇듯이 내게는 관념적으로 느껴졌다), 지금 이 사람이 하려는 일이 바로 그것이다. 하늘을 보고 누워 자신을 서서히 죽이는 일. 이 죽음은 신이라는 가장 결정적인 관객을 염두에 둔 최후의 저항처럼 보인다. 불가능과 무의미에 짓밟힐 때 인간이 무책임한 신을 모독할 수 있는 길 중 하나가 그것이지 않은가.
화자에게 그는 “나라도 곁에 없으면” 당장이라도 그럴 사람처럼 보였다. 나는 “나라도 곁에 없으면”을 골똘히 들여다본다. 속으로 무심코 저 생각을 했다가 스스로도 놀라버렸을지 모를 한 사람을 생각한다. 내 앞에서 엉망으로 취해 있는 사람을 바라보며, ‘나라도 곁에 없으면 죽을 사람’이라는 말을 ‘내가 곁에만 있으면 살 사람’이라는 말로 조용히 바꿔보았을 한 사람 말이다. 그런 순간이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이 사람을 계속 살게 하고 싶다고, 내가 그렇게 만들고 싶다고 마음먹게 되는 순간. 바로 그 순간에 이 세상에는 한 인간에 의해 사랑이 발명될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사랑이라기보다는 동정이 아닌가? 사랑과 동정을 혼동하지 말라는 충고를 우리는 자주 들어오지 않았던가?
그러나 요즘 나는 사랑과 동정이 깊은 차원에서는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 특정한 요소에 대한 동정이 아니라 존재 자체에 대한 동정이라면 말이다. 그가 이 세상을 살아간다는 사실 자체가 안쓰러워 그 곁에 있겠다고 결심하는 마음을 사랑이 아닌 어떤 다른 이름으로 불러야 더 정확할 수 있단 말인가. (권여선의 소설 ‘봄밤’을 읽고도 그런 생각을 했다. 나는 이영광과 권여선을 함께 떠올리고는 한다. 1965년에 태어나 안동에서 자랐다는 공통점 때문이 아니다. 작품으로 판단하건대, 인간의 약함을 누구보다 연민하지만 그 안에 자기를 용서하려는 마음은 조금도 섞지 않는 두 사람이어서다. 그렇다. 자신을 용서하기 위해 먼저 인간 모두를 용서해버리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니 그냥 ‘사랑’이라고 부르기로 하자. 어디선가 가브리엘 마르셀은 이렇게 말했다.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당신은 죽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듣는다는 것을 뜻한다.” 그래서 이 시의 ‘너’는 산으로 가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만�� 아니다. 마르셀의 문장은 뒤집어도 진실이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것은 네가 죽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면서 동시에 내가 죽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제 나는 어떤 불가능과 무의미에 짓밟힐지언정 너를 살게 하기 위해서라도 죽어서는 안 된다. 내가 죽으면 너도 죽으니까, 이 자살은 살인이니까. 그래서 이 시의 ‘나’ 역시도 이렇게 시를 쓰면서 내내 살아가야만 하는 것이다.
이 시를 ‘무정한 신 아래에서 인간이 인간을 사랑하기 시작한 어떤 순간들의 원형’을 보여주는 시로 읽었다. 나는 인간이 신 없이 종교적일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지를 생각하는 무신론자인데, 나에게 그 무엇보다 종교적인 사건은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의 곁에 있겠다고, 그의 곁을 떠나지 않겠다고 결심하는 일이다. 내가 생각하는 무신론자는 신이 없다는 증거를 손에 쥐고 환호하는 사람이 아니라, 신이 없기 때문에 그 대신 한 인간이 다른 한 인간의 곁에 있을 수밖에 없다고, 이 세상의 한 인간은 다른 한 인간을 향한 사랑을 발명해낼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나는 신이 아니라 이 생각을 믿는다.
신형철 문학평론가·조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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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관리 다들 너무 뜸하셔서
요즘 왜이렇게, 생활관리 완전 몰입도 최고, 기대했던, 생활관리 찾지 마세요생활관리 바로가기: bit.ly/3MBOKbm주시하며 먼지가 가라앉자 입 을 열었다. 신이 봉인한 것을 생활관리 어떻게 마족이 저렇게 쉽게 풀 수 있지? 화 이엘님. 이건 정말 이상합니다. 들어야하겠습니다. 나도 마찬가지야, 화이엘. 뭔가 이상해. 진실을 알아야 싸움 을 하던지 말던지 하지. 아투도 스승님의 말에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으으음. 아무래도 이건 모두 계획된 일인 것 같아. 만약 이 한 것은 아니지만, 두 남자 사이의 무의미 한 대화를 생활관리 끊기 위해서라도 필요한 질문이었다. 일단, 저 도시로 가서, 앞으로의 일을 생각해보자. 수도로 돌아가기는 이제 글렀 어. 당분간은 우리를 찾아, 기사들이 눈에 불을 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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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해 줘 난 안 괜찮아
넌 쉬운데 난 안 되잖아
가뿐해 보이지만
신경 쓰이지 전부 다
눈 감아도 I'm not ok
걱정해 줘 난 안 괜찮아
넌 쉬운데 난 안 되잖아
가뿐해 보이지만
신경 쓰이지 전부 다
눈 감아도 I'm not ok
입꼬리 올라가는 건 무의미 괜찮아질 리가
높이 올라가는 건 무리지 고개 숙여지니까
빙그레 빙그레 뚜껑 열면 빈 수레
애매하게 웃어주는 건 내겐 무례해
작아진 기분 작아진 지분 싸가지고 집으로
솔직하기 두려워서 괜찮다고 말해 일부러
여태 버틴 김에 건배 잘 해냈지만 지레 겁내
나를 위했던 건 없었기에
빈 거울만 쳐다봐도 섭섭해
쭉 외쳤었지 till I die 옛날 얘기는 입 아파
같은 시간 지나왔어도 넌 내가 아니잖아
혼자가 편해 너무 ok 문제가 없게
너라도 괜찮담 고개를 절래
걱정해 줘 난 안 괜찮아
넌 쉬운데 난 안 되잖아
가뿐해 보이지만
신경 쓰이지 전부 다
눈 감아도 I'm not ok
걱정해 줘 난 안 괜찮아
넌 쉬운데 난 안 되잖아
가뿐해 보이지만
신경 쓰이지 전부 다
눈 감아도 I'm not ok
어제 얘기 나눈 별
보이지가 않는 걸
괜한 바람인 걸까
왠지 틀린 것 같아
Why you asking?
No, I'm not ok
바보 같은 눈물로 젖은 긴 한숨만
걱정해 줘 내 못난 상처가 아물게
버틸 자신이 없어 난 또 제자리에서
Said I'm leaving, I'm leaving, I'm leaving
걱정해 줘 난 안 괜찮아
넌 쉬운데 난 안 되잖아
가뿐해 보이지만
신경 쓰이지 전부 다
눈 감아도 I'm not ok
걱정해 줘 난 안 괜찮아
넌 쉬운데 난 안 되잖아
가뿐해 보이지만
신경 쓰이지 전부 다
눈 감아도 I'm not 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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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부: 대기업도 유동성 위기, 제2금융권 유동성 일일점검, 기준금리 동결 무의미, 예대금리 폭등? 위기 아니라고?(2023.09.18) [이슈분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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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가 부산 간 날이면 나는 외롭고 쓸쓸해서 이불 속에서 몰래 숨을 죽여 흐느끼곤 했다. 아무리 시장바닥에 인간들이 악머구리 끓듯 하면 뭐하나, 그가 없는 서울은 빈 거나 마찬가지였다. 마지막 남은 남녀는 절대로 헤어져서는 안 된다. 하루만 더 그 무의미, 그 공허감을 견디라 해도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할 정도로 하루하루 절박하고도 열정적으로 그 남자를 기다렸다.
그 남자네 집 박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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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내가 지난 주말에 이번에 개봉한 <미션 임파서블>을 보고 와서는
본부장으로 책상 앞에서 펜대나 굴려야 할 나이인데 아직도 바득바득 현장에서 뛰고 싶어하는 톰형을 보면서 예전만큼 마냥 설레지는 않았다.
라는 감상평을 남겼다.
2.
늙음은 어느 순간 문득 깨닫게 된다. 나이를 먹을만큼 먹었는데도 여전히 철없고 불완전하며 무능력하고 초라한 자신을 마주하는 순간 억울하기도, 한심스럽기도, 연민을 느끼기도 하겠지만, 심지어 그 순간이 자신의 남은 생에서 가장 젋은 시점이라는 것에 까지 생각이 미치면 초조하고 경악스러워진다. 그러다 결국 “에라 모르겠다.”라고 나자빠지면, 그게 사실상 끝이다. 하지만 그렇게 사실상 끝났음에도 무정한 세상 속에서 나의 삶은 그전까지와 마찬가지로 지지부진하게 계속 이어진다/이어져야 한다.
그러니까 나의 감정, 입장 따위는 고작 나한테만 그렇게 중요할 뿐이다. 무의미 속에서 내까짓게 발버둥쳐봤자 나만 힘든데 , 그렇다고 발버둥치지 않으면 그건 사는게 아닐 뿐더러, 원래 모든 생명체는 사는 동안 발버둥치도록 설계되어 있다. 이렇게 무정할 뿐만 아니라 잔인하기 까지한 세상 속에서 나는 무섭고 슬프고 우울하다. 하지만 아까도 말했듯이, 그건 나한테만 중요하기 때문에 결국 전혀 중요하지 않은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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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말문이 막힌다...김영성 '無·生·物'
전시 소식^^
박현주 기자님 너무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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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후성, 볼트
코끼리를 보라
코끼리끼리는 볼 수 없는 코끼리를 보라
꼬리를 위해 서 있는 네 번째와 세 번째 다리를 보라
걸음을 뗄 때 발을 남기고 벗겨질 것만 같은 발의 접힌 거죽을 보라
달라붙어 있지 않고
그것은 끌려다닌다
우리의 난제였던 바깥이다
실체는 헐렁헐렁하다
그 안에서 기관을 해체하는 망치질 같은 코끼리의 걸음을 보라
눈앞에 직접 정의된 코끼리를 보라
걸을 때마다 부서지고 있지 않은가
간신히 어금니로 연결되어 있지만 조금씩 무너져 내리고 있지 않은가
코끼리 안으로 들어가지 마라
안과 바깥은 서로에게 통증이 그지없다
뒤쪽 숲을 보라
나뭇잎들이 가지에 붙어 벌어졌다 오므라들었다 한다
나무 주위를 맴돌며 탈출이 어려운
바람의 원숭이들을 보라
가장 가까운 붉은색을 볼 수 없는 원숭이의 눈을 보라
저 영특한 종족은 의혹의 못에 박힌 매혹이다
이때 고개를 돌려 완전한 불의 형태로 시간을 태우는 대관람차를 보라
오전의 하품 같은 간격을 보라
회전의 무의미 아래 네게 권해지는 네 머릿속을 보라
주차장에서 마주친 사 년 전 그 사람을 보라
하천이 흐르는 대로변에서
다리 아래로 유혹해
교량의 접합부마다 극렬하게 박힌 볼트를 해가 질 때까지 함께 보았던 그 사람을 보라
볼트 하나를 빼 보고 싶었던 그 사람을 보라
그가 너를 찾아 나섰는지는 알 수 없다
그는 볼트 하나를 갖고 있다
그와 상관없이 혼자서 한 번 더 다리를 건너라
다리는 흔들거린다
그 아래를 보라
조그만 구멍을 남기고 녹슨 생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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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이리 힘드냐. #힘들다 #계단 #x100v #청계천 #무의미 #힘듦 #휴식 #지침 #의욕없음 누구도 아무말도 듣고싶지 않은 날.(용두동 어딘가.에서) https://www.instagram.com/p/CFxCLQJnTvd/?igshid=1b9ohc01yiyf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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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고했어 올해도♪♩♬ #냐짱여행 #무계획휴가 #비엣젯✈️ #싼맛에 #후미좌석 #아비규환석 #유아동반하면 #일단뒤로 #난애도없는데 #한숨도못자고도착 #새벽비행기✈️ #무의미 #마사지부터들이댈각(Nha Trang에서) https://www.instagram.com/p/B6G_C7Sp2RW/?igshid=5zaltbmuxld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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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ject cho photography #무의미 누드를 찍을때는 최대한의 절제를 할려고 한다. 예전에는 좀더 직관적이 었다면 지금은 환상 혹은 몽환적인 느낌으로 담으려고 한다. 이것을 촬영하고 어떠한 수단으로 공개함에 있어 모델에 대한 배려도 해야하고 수많은 온/오프라인의 선비들에 대한 비판도 감수해야한다. 그래서 진지한거고 느낌적인 느낌에 대한 명확성이 없는 피드백에 대해서는 반려하거나 무시한다. 감성에도 이유가 있다. 그 이유에 대해서 파고드는것이 지금의 아주 지극히 주관적인 개인작업이다. 최대한 인간을 인형같이 표현하려고 했다. 인간이 무생물 처럼 표현되었기를 원했기에 무의미라는 제목을 썼다. 지대로 표현되었는가는 이제부터 보는 사람들의 판단에 맡겨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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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 내리는 날 , 봄꽃 피는 날!' 지하철 노조 타결 직전 민노총 개입 파업 강행! 대통령 행안부장관에 각종 지시, 원희룡 화물연대와 대화 무의미! 김어준의 날, 주진우의 날!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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