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적 육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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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아담 범죄로 인해 되어버린 동물적 육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본시 창조된 인간으로서 입으로 먹지 않는다고 해서 죽는 것이 아닌 영광의, 신령한 몸] 것이라 하였다"(마 4:4/신 8:3)
사람을 처음에는 동물적 육체로, 다음 단계로 영혼을 조성��� 주시어 초자연계 몸이 되게 하심은 자연계와 초자연계의 양면으로 창조하심의 증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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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의 모든 부귀영화로 지어 입은 옷도 그 아름다움이 들의 백합화 한 송이만도 못하다" 하신 말씀이 바로 이 동물적 육체가 범죄의 결과물임을 확인해 주신 것임을 왜 모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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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것이 무엇인가ㅡ다시 정리하면 (6)
다시 강조하지만(백 번 강조해도 좋은 것) 동물적 육체는 본시부터 기계적 생명에만 소용되어 이 "본능/本能" 작용은 자아중심일 수밖에 없고 그러나 그 움직임이 정밀성이 요구되는 기계적 작용이기에 인간의 자유 의지와 같은 욕심(지나침 또는 임의에 의한 궤도 이탈)이 없으니 자연계 동물들의 생활이 그렇습니다. 그러나 영혼이 있어 자유 선택이 가능한 인간에게 이 "육의 몸" (고전 15:45)이란 것은 죄/罪의 시��폭탄 그 자체입니다. 가인의 아벨 살인이 그 단적 증거. 그러니 3운법칙과 같은 강제 제약이 없으면 서로 죽이기 바쁘고 죽어 나가기가 바쁘니 이 현실을 오늘날 모든 사람은 뼈저리게 인식해야합니다. 처음부터 이같은 동물적 육체를 아담 즉 인간에게 창조해 주실 리가 만무한 것. 신령한 몸(영생하는)을 입히신 것인데 선악과를 먹어 이 꼴이 된 것입니다. 이런 극도의 험악한 살풍경 속에서 사람 삶을 꿈꾼다는 것은, 3운법칙을 나타내 주신 오늘날 몰라도 너무 모르는 철부지.
그러니 답은 뻔하니, 이같이 "죽을 때"를 정해 주신 것은 그 ��나같은 기간이라도 <살라>고 주신 것일 수가 절대로 없다는 것입니다. 오직 봇물 터지듯 둑이 무너지듯 순간적으로 사태가 벌어지면 순식간에 쓰나미에 휩쓸려 떠내려갈 판이라 그 최종 비극의 최종 물살이 덮쳐 오기 전 피신하는 것 외에 달리 신경 쓸 틈이 없는 이세상의 현실입니다. 그 피신할 시간적 여유가 3운법칙의 의미인 것입니다. 자기 자신 그렇게 피신할 만반 준비를 갖추었으면 나의 이웃 즉 다른 사람도 그 위험을 알고 피신하도록 해 주는 바로 그런 시간적 여유 밖에 없는 것이 3운법칙으로 관장/管掌되는 이 세상의 유일무이의 의미인 것입니다. 거듭 강조하지만 다른 의미는 일절 있을 수 없습니다. 이제는 3운법칙을 통해서 알았으니까 이런 말이 얼마든지 통합니다. 이전에는 철저히 눈이 가리워져 있어(이 세상 신/神 악마의 눈가리개로 덮씌어져) 볼 수 없었던 것인데(하나님 말씀인 성경을 통해 이미 오래 전부터 경고를 받아 왔음에도 우리 스스로 교만해져 그 경고 말씀을 무시함으로써).
인간에게는 '시한폭탄'과 같은 이 위험천만한 동물적 육체를 떨쳐내는 방법은 너무나 과학적인 것입니다. 만유의 법칙(짝의 법칙) 그대로이기 때문. 즉 "영(성령)으로 난다"(요 3:6)의 "영/靈"은 "육/肉"과 대칭(짝)입니다. 그리고 이 '육(체)'은 썩음(죽음)으로써만 종결되니까 반드시 죽어야 끝나는 것이고 그렇게 끝이 난 죽음으로부터 다시 살아나는 방법 외에는 일절 해결책이 없는 고로 창조주 하나님 친히 그래서 나와 같은 사람이 되어 주시어 죄인처럼 죽으셔서(내가 죄인이니까) 다시 살아나심으로써, <내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것이 되게 하심이니 이 얼마나 섬세하심(과학적)이십니까. 이는 짝의 법칙에서 3위1체의 원리대로 하심이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 그렇게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후 성령으로 내 안에 내 영혼처럼 오시어 문자 그대로 나와 <둘이 하나됨>을 이루신 것이니까.
메시야 우리 주님의 의/義(순종)가 내게 전가/轉嫁(imputation)되어 내가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이 아니고 오직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이 내것이 되어 내가 주님 안에서 실제 죽었기 때문에 나의 "죄의 몸"(롬 6:6)이 무력화되어 "죄와 사망의 법"이 더 다시는 나를 지배할 수 없는 고로 내가 하나님의 생명의 법칙(계명, 율법)(모세의 율법이 아닌)을 능히 지키게 됨으로 인한 의인됨입니다(롬 2:6,13). 물론 그 전에 의인으로서의 바탕이 되어 있어야 하는데 이는 주님과 함께 하나되어 내가 죽음으로써 이미 이루어진 것. 이렇게 의인된(이는 주님의 나 위하신 죽음으로 은혜로 된 것) <바탕> 위에서 순종(선과 의를 행함)하기 시작하는 것. 그러므로 나의 과거 죄가 주님께 전가되는 것 역시 있을 수 없으니 성경에 "전가" 개념이란 너무나 이질적인 것. 엉뚱하게 구약시대 그림자적 의미의 희생 제물의 의미를 그대로 도입하여 만든 바벨론 신학의 멸망의 교리일 뿐. 전가 즉 "대신 죽음"이 아닌 "함께 죽음" 즉 주님과 하나됨으로 인한 우리의 구원임을 알아야. 바벨론 신학의 이 전가 교리로 인해 "사람은 이 세상에 있을 동안에는 부득불 죄짓지 않을 수 없다"는 거짓말에 속아(에덴 당시처럼) 많은 사람이 멸망에 이른 것입니다.
성경 말씀의 빈 틈 없는 과학성/科學性은 오늘날 짝의 법칙이 알려짐으로써 "3위1체"의 의미가 명백히 드러나면서 만천하에 알려진 것입니다. 겸하여, 짝의 법칙에 의한 <삶과 사랑의 법칙>(가장 이상향적으로 사는 법) 또한 그 모습(정체)이 나타났으니 곧 "상대성의 동시성"입니다. 즉 짝을 이룬 "갑"과 "을" 둘이 하나("병")를 이루는 토대/근거가 밝혀진 것입니다. 다름아닌 '갑' 안의 '을', '을' 안의 '갑'입니다(요 10:38/14:10,11/17:21). 이는 갑은 갑 자신을 위하지 않고 그 상대(짝을 이룬)인 을을 위하고, 을 역시 을 자신을 위하지 않고 갑을 위함입니다.
⁶즉 자아중심이 철저히 배격되고 자기 부인으로 시종일관함입니다. 머리는 몸을 위하고 몸은 머리를 위함으로써 '한 몸'이 되는 이치 그대로입니다. 이 영원한 법칙을 어김으로써 범죄함이니 아담이든 악령이든 다 그러하고 따라서 우리도 이 시험의 기간(현재의 세상이 지속되는 동안은ㅡ이제 그 끝이 이르렀지만)에는 이같이 범죄할 때는 가차 없이 그 생명을 "잃거나 빼앗기는"(눅 9:25)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상 설명과 같이 성령으로 다시 나 새로 창조되어도 새 창조든 처음 창조든 창조는 똑같은지라 인간만은 차별 대우하실 리 없으니 영원 멸망뿐이라는 결론에 이의가 있을 수 없습니다. 악령 사탄은 바벨론 신학의 거짓말로 근 2천년간 그렇게 속여 왔지만. 그러므로 이 자아중심을 이제는 원수시함으로써 회개하여 버리는 결단만이 영으로 다시 나 새로 창조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흔히 말하는 바 "믿음으로 얻는 구원"입니다. 모든 창조는 예외 없이 다 창조자의 값없이 거저 주시는 선물이시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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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 본시의 신령한 몸(죽지 않는)이 아닌 동물적 육체(범죄 후)로는 하나님과의 직접 대화마저 불가능하고 천사(영물)를 매개로 해야 겨우 가능했던 것ㅡ지금은 성령(사람되신 성자 하나님의 영)으로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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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다니엘의 "마지막 때"(단 12:4) <20 세기 이후 지목/指目 예언>인 "지식 급증"의 단적 표현인 이 '과학 시대'에 조명/照明되는 성경이다보니 <과학>과 연결됨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귀결이고, 이 특별하신 하나님의 계시(학문적 연구에 의한 것이 아니고 성령의 인도와 가르치심에 따른 결과물로서의 지식이 3위1체의 법칙 곧 만유의 기본 대법칙인즉)가 장구한 역사의 인고/忍苦와 연단을 배경으로 하는 한반도 교회에 주신 특별한 은총이기에 한/韓과학(K-science), 한신학(K-theology)이라 하는 것뿐이지 무슨 거창한 의미일 수는 없다. 예루살렘 초대교회로부터 시작되고 전파된 애초의 하나님 구원의 말씀 그대로를 드러냄일 뿐이니까. 그리고, 초대교회 당시는 구약 시대 교훈을 배경으로 한 말씀 풀이였던 반면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과학적 법칙에 따라 하나님 말씀의 전모/全貌가 세밀히 드러났다는 그 차이만 있다.
따라서 우리 "구원"의 의미를 정확히 음미할 필요가 있으니 즉 많은 사람이 오해(이해가 아닌)하는 대로 <최종 완성>이 아닌 "만유 회복"(행 3:21)이라는 것을 마음에 새겨야. 창조의 완성은 이미 "제7일"(창 1:31-2:1)째 안식하심으로써 이루어진 것임을 알아야. 즉 처음에는 동물적 육체, 최종 단계에 이르러 신령한 몸이라는 순서는 완성, 그 때 종료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쉬신(안식/安息)" 것. 사탄은 마치 아직도 창조를 계속 중이신 것처럼 "말씀 혼잡"을 꾀하여 "영적 죽음"이란 거짓말로 둘러댄 것이다. 지금의 새 창조는, 첫 창조가 아담 범죄로 망쳐졌기 때문이다.
"구원", "구속"이라는 말 그대로다. 물 또는 불에서의 구원은 이전에는 물이든 불이든 일절 상관 없다가 지금은 거기 빠지거나 갇혀 있으니 거기로부터의 탈출이 아닌가! 성경에서 말하는 "구원"도 똑같은 의미요 순서다. 정상ㅡ비정상(사고를 당함)ㅡ정상(사고 수습). 영생하는 몸ㅡ이전의 동물적 육체로 다시 환원(되어버리니 영생의 몸이 망쳐진 것)ㅡ영생의 몸으로 다시 회복(구원). 성경대로 믿지 않고 거짓말을 믿으니까 어렵게 보일 수밖에 없는 것을 가지고 도리어 성경에다 뒤집어 씌워 "성경이 어렵다" 하도록 마귀는 부추긴 것이다. 악마 사탄이 만든 말도 안되는 거짓말(인간을 처음부터 고통의 존재 즉 동물적 육체로 살도록 창조하셨다는)을 믿고서는 "하나님을 이해하기 어렵다ㅡ왜 이토록 고난을 당하게 만드셨나?" 하게 만든 것과 똑같다.
이해하지도 못하는 상대를 어찌 사랑할 수 있는가? 그런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 거짓말이다. 입에 발린 소리이고 그래서 자기 사랑의 자아중심일 따름. 그래서 최종 귀착점은 멸망뿐. "회복, 만회, 복구"이기 때문에 "새 창조"이고,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요 5:17) 하신 것이 아닌가! 이 말씀을 하신 것은 유대인들이 아무 뜻도 모르고 안식일 지킨답시고 율법의 핵심은 간과한 그 암울함을 책망하심이었다. 이 너무나 명백한 진실을 21세기에 들어 한국 교회가 초대교회 이후 처음으로 발설하기 시작했으니까 그래서 "한신학"(K-theology)이라 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제까지 음양 이원론은 아시아 동북 지역에서 활발히 논의됐으나 그것을 과학적 법칙으로는 명확히 규정 짓지 못해 정확히 ��리매김할 수 없었는데 현대 물리학에서의 상보성 원리, 양자 역학 등의 화려한 등장과 함께 성경의 "3위1체"가 명확히 밝혀지는 첫 계기가 한국교회를 통했으니 때문에 "한과학(K-science)이 곧 한신학(K-theology)"이라는 말도 나오는 것이다. 모든 과학의 <뿌리>가 성경(하나님의 말씀) 즉 하나님이신 것이니 하나님이 창조주이시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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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개/一個 거미 한 마리가 무신론자와 진화론자를 천하 없는 바보들로 규정한다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있어요. 이것이 '짝의 법칙'입니다. 파생한 자와 파생된 자. 앞서 거미 집을 예로 들었지만 거미 스스로 인간보다 머리가 좋아 그런 천재적 공법을 활용하는 것이 아닙니다. 거미를 만드신 분이 그렇게 자동으로 작동되도록 거미 속에 장치해 두신 지식과 지혜의 결과입니다. 누가? 누가 그렇게 했다는 바로 그 증거인 것입니다. 그 "누군가"가 반드시 있게 마련인데 그 "누군가"를 창조주 하나님이라 하는 것뿐입니다(롬 1: 20). 이미 이 간단한 사례 하나만으로도 창조는 증명되고도 남은 것입니다.
당연히 하나님은 인간을 죽지 않는 몸으로 만드셨지요. 영원성의 영혼을 따로이 즉 육체를 먼저 만드신 다음 그 후에 조성하셨다는 것이 그 증거입니다. 그래서 그 영혼에 걸맞게 영원성의 초자연계인 에덴에다 아담을 위한 보금자리를 창설하시고 그 아담의 궁궐(palac)이라 할 자리에 아담의 이중성(자연계에도 속하고 영계에도 속한 양면성의 특질)을 상징하는 선악과/果나무와 생명과나무 두 그루를 두신 것. 고로 실수로라도 선악과는 절대로 손대지 않도록 처음부터 주의를 주신 것입니다. 좋은 것(선)과 나쁜 것(악)을 안다는 것은 본능 작용으로 자신에 대한 호불호를 가려 자동적으로 적응해 감을 말하는 것으로 동물적 육체를 지칭함이고, 생명과는 그 대칭되는 신령한 몸을 상징하는 것. 고로 선악과를 먹으면 죽는다고 경고하심은 아담이 당시 죽지 않는 생명과의 영역에 속한 몸이었음을 증명하는 것. 창세기는 이와 같이 극히 짧은 문장으로 많은 내용을 말하고 있는 훌륭한 명문/名文의 문장력을 구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하나님이 인간에게 동물적 육체를 붙여 주실 리가 없고 정말 그렇게 하셨다면 반드시 그 이유를 밝히시는 것이 창조주 하나님으로서의 사랑이심을 알아야. 그래서 영원한 사람(아담)이 천년 동안 세상을 다스린 후에 마지막 심판으로 인간들과 영물들을 의와 악으로 분류하여 조처하게 되어 있는데 아담부터 갑자기 범죄로 죽어버리니 이 돌발 사태부터 수습하셔야 했던 것이 오늘날까지의 인류 역사인 것입니다. 인간이 아담 범죄의 돌발 사태로 동물적 육체가 되다보니 장애가 겹쳐 이를 완전 만회하는데에 6천년의 세월이 소요되었고 이제 모든 것이 완료되어 새 아담으로서의 "마지막 아담" 께서 다시 세상으로 돌아오시어 정식으로 애초 예정되었던 아담의 통치 기간(천년)을 이제 비로소 시작하시고 정상적으로 채우시려 하는 것입니다.
현재의 소위 과학문명은 우리가 본디의 신령한 몸으로 복귀되면 한낱 쓸모 없는 군더더기일 뿐입니다. 인간의 몸이 물질계에 속하는 무척이나 부자유스럽고 부자연스러운 상태에 놓이다보니 끔찍이나 위하는 소위 문명의 이기/利器이지만. 그러나 주님 다시 오시면 모든 것이 사라지고 세상은 새롭게 변모됩니다.
주님께서 단 한 번만이 아니고 2차에 걸쳐 나누어 세상에 오실 수밖에 없는 것은 아담의 육체적 죽음("영적 죽음"이 아닌)을 인함이니 바로 그 증거인 것입니다. 즉 아담이 처음에는 영원한 "영광의 몸"(빌 3:21)이었다가 범죄로 현재와 같은 우리의 이 "낮은 몸" 즉 동물적 육체가 된 때문. 그런즉 "마지막 아담"께서는 당연히 이를 역순/逆順으로 밟아 가실 수밖에. 때문에 처음 오셨을 때는 아담의 죄인으로서의 동물적 육체, 다시 오실 때는 원래의 아담의 "영광의 몸"으로 복구되셨으니까 바로 그모습으로서 두 번에 걸쳐 오실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소위 "영적 죽음"의 거짓됨이 백일하에 폭로되었으니 우리가 어떤 자세이어야 하는지는 명백합니다. 우리 하나님 및 스랍과 그룹 등 모든 계명성(새벽별)과 여러 천사들의 유일한 관심사에 우리도 전심령을 다해 합심, 합류해야. 다름아닌, 사람들을 구원해 내는 일입니다. 그리 함과 더불어 세상 삶을 철저히 원수시하는 것입니다. 세상 삶에 조금이라도 한눈파는 일은 원수들과 야합하는 것이므로 하나님께 심각한 반역죄가 됨을 알아야. 이상과 같은 썩음과 죽음의 징그러운 동물적 육체는 너무 기가 차고 어이없는 것. 이런 따위에 집착하는 것 자체가 병적인 것으로 느껴져야. 소돔 고모라의 죄처럼 정신 상태가 뒤틀려 있지 않고는 세상 사랑의 삶은 가히 상상하기조차도 어려운 것으로 여겨져야 하는 것입니다. 동물적 육체로 있는 것부터가 심히 부끄러운 비극적 참사/慘事로 인식되어지는 것이니까.
그리고 이 모든 불행이 아담의 불행 즉 불순종에서 온 줄 아는 고로 크게 경성/警醒하여 전심전력으로 하나님께 매달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더 말할 필요도 없게 됩니다. 따라서 로마서 7:24 "오호라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를, 믿은 후의 바울 사도 자신의 체험이라는 사탄의 새빨간 거짓말만 거머리 떼어버리듯 짓밟아버리면 됩니다. 오늘날 모든 교파가 예외없이 이 저주스러운 마귀의 함정에 빠져 있습니다. 이 악마적 성경 해석의 뿌리가 바로 아담의 죽음을 "영적"이라 하는데 있어 세상 삶을 사랑하는데 있는 것입니다. 이런 미신에 빠져 있는 자마다 백이면 백 모두 멸망의 자식됨을 자각하여 참으로 이 바벨론 소굴에서 벗어나 회개하고 갱생/更生하시기 바랍니다. 마귀가 박아놓은 치명적 멸망의 가시인 것입니다. 이전 글에서 여러 번 그 악마성을 조목조목 설명했으니 여기서는 생략합니다.
이세상에서 백 번 죽는다 해도 오는 세상에서 영원에 영원을 거듭하며 불 못(lake of fire, 火湖/화호)에서 고통 받는 것보다 나으며, 비록 이세상에서 만년 거지로 지내도 다음 세상에서 부귀영화 누리면 씻은 둣 사라지니 부디 지혜껏 처신하시기를. 하나님께서 일부러 처음부터 인간에게 괴로움을 주시어 다루어보시는 일은 결코 하지 않으셨음을 이제까지 설명했습니다. 인간이 저지른 불찰(범죄) 때문의 자업자득입니다. 그러나 결과론적으로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었다 할까, 장차 악한 자에게 임할 고통을 미리 맛보는 계기가 되어 범죄를 두려워하는 자극제가 되었다면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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