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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ya Presbyterian Church of Bujeon - Busan, South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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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는 교회답게,믿는자는 믿는자답게
김환식 장로 지난달 초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기다리는 대림절을 맞아 의미 있는 성명이 발표됐다. 한국의 새문안교회 영락교회 온누리교회 주안교회 창동염광교회 등 대한예수교장로회 5개 대형 교회가 내놓은 ‘한국교회와 사회를 향한 우리의 참회와 다짐’이 그것이다. 이들은 교회와 신앙의 세속화, 신앙인들의 낮은 윤리의식, 신앙보다 세속적 가치와 이념에 따라 흔들리는 교회와 신앙인들의 모습을 참회했다. 목회지 대물림 등 일련의 사건들로 교회와 신앙의 가장 밑바닥을 드러내고 있는 현실도 부끄러워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과오에 머무르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만이 교회의 주인 되심을 고백하는 신앙을 구체적으로 실천해 나갈 것을 다짐했다. 빛과 소금으로 부름 받은 교회 공동체로서 작은 이웃들과 함께하고 대립과 갈등으로 신음하는 한국 사회 속에서 하나님의 샬롬을 이루어가는 생명과 화합의 공동체로 거듭나겠다는 약속도 했다. 소외계층과 다문화가정, 청년세대 지원, 농어촌·도시 미자립교회 지원 등 구체적 실천방안도 내놨다. 이를 통해 교회를 교회 되게, 신앙인을 신앙인답게 세워가겠다고 했다. 젊은 세대는 물론 많은 교인들이 왜 교회를 찾지 않고 유튜브로 유명 목사님의 설교를 찾아듣는지, 왜 교회에 다니는 것을 떳떳하게 말하지 못하는지 그동안 진지한 고민이 없었다. 이 시대 교회가 할 일을 제대로 하고 있는가에 대한 성찰도 없었다. 개별 교회들은 뿔뿔이 갈라져서 서로 헐뜯고 공격하기 바빴다. 오히려 세상 밖 사람들이 교회를 걱정할 정도다. 정치목사들이 활개를 치고 기독교가 ‘개독교’로 욕을 먹으면서 ‘가나안 신자’들이 늘고 있는 이 시대에 참회와 회개가 터져나온 것이 반갑다. 1992년 6월 18일 템플턴상 수상 축하행사 때 반세기 전의 신사참배를 회개한 고 한경직 목사만큼 세상을 향한 울림이 크다. 일제강점기 신사참배를 거부하다 옥고를 치르고 순교한 주기철 손양원 목사를 비롯해 가난한 이들을 돌보면서 청빈한 삶을 살다간 한경직, 하용조, 옥한흠, 홍정길 목사 등 1세대 목회자들이 다져놓은 한국 기독교의 뿌리를 이들 교회 목회자들이 튼실하게 다져갈 것이란 기대도 해본다. 이들이 누구인가. 주승중 주안장로교회 목사는 주기철 목사의 손자다. 지난해 3월 영락교회에 부임한 김운성 목사는 부산의 땅끝교회를 크게 부흥시키고 ‘부산의 성자’로 불리던 분이다. 이상학 새문안교회 목사는 “교회 세습은 비성경적”이라며 쓴소리를 거침없이 쏟아내고 있다. 133년 전통을 지닌 어머니 교회로 불리는 한국 최초의 장로교회에서 나온 비판이라 무게가 있다. 독일의 행동주의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는 ‘그리스도의 시작은 말구유였으며, 끝은 십자가였다’고 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 가장 낮은 곳인 말구유로 와서 우리의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다. 교회와 신앙인들이 겸손하고 낮은 자세로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돌보고 하늘의 상급을 소망해야 함에도 우리 시대는 물질만능주의, 맘몬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교회마저 외형적 성장에 급급하고 사분오열돼 세상적 가치를 좇고 있다. 교회와 크리스천들은 할 일을 방기하고 있다. 이들의 선언은 교회의 본질을 회복하고 오로지 말씀으로 돌아가겠다는 자성이다. 김운성 영락교회 목사는 지난달 19일 국민일보 크리스천리더스포럼에서 ‘친민(親民)에서 신민(新民)으로’란 제목의 설교를 통해 “예수님은 단지 우리와 친하게 지내려고 세상에 오신 게 아니라 우리를 변화시켜 새사람이 되게 하려고 오셨다”고 했다. 그러면서 “리더는 예수님과 같은 마음으로 낮아져 가난하고 배우지 못한 약한 사람들에게 다가서는데 그치지 않고 세상을 변화시키고 새롭게 해야 한다”고 했다. 혼탁하고 어지러운 시대가 지금 교회에 긴급구호신호를 보내고 있다. 세상의 빛과 소금이 절실한 시대다. 그동안 교회가 헐벗고 어려운 이웃을 나몰라라 한 것은 아니지만 2020년 새해에는 교회가 더욱 소외되고 약한 자들을 돌보는 데 힘썼으면 한다. 다음세대와 사회에 희망을 주는 것도 교회와 크리스천들의 몫이다.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고 복음을 전파하는 데 매진해야 함은 물론이다.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야고보서 1장 27절).’ 성경은 또 말한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고(야고보서 2장 17절). (끝) 202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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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둔기계와 심연으로부터를 읽다가, 나와는 전혀다른. 한국에서 태어나 대한예수교장로회. 장로회의 개혁주의와 오직말씀을 의지하여 매우 보수적인 성향의 신앙모습을 갖춘 나. 이런 것과는 다른 비기독교인과 카톨릭신자가 말하는 예수님을 보니. 부끄러웠다. 신학을 배워야하나 라는 어림없는 풋내를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는게 그나마 다행이다. 이들도 그리고 내가 읽지않고 보지않고 알지못하는 사람들도 예수님의 파격적인 행보와 말 그리고 그 성스러운 존재적 느낌을 아는데, 나는 26이 되서야 마가복음에서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 이전과 그 이후까지 겨우 읽었다는게 부끄러웠다. 성경은 기독교인만 보는줄 알았더니 비기독교인들 중에서도 더한 사람이 있다는게 체감되는 나날이다. 20대들 사이에 제일 어렸던 때 회의에서 대표기도를 한 날이 떠오른다. 그저 설교에서 들었던 대로 제일 기억에 남는 문장대로 나름 진지하게 고백했던 기도였다. 끝나고서 기도에 대한 긍정적인 말을 들었을 때 내심 기쁘기도했다. 이럼에도 요게벳을 아저씨라하질 않나, 레위를 사도가 아닌 제자라 하질 않나. 형식이 잘 포장된 과일 꼭지같은 내용물이나 다름이 없었다.
심연으로부터를 읽으면서. '그러닌까 자기가 예수님 같은 존재고, 그의 행보에 위로받으면서 사랑을 모르는 이들의 어리석음을 안타까워하는건가' 매우 경계하며 읽었다. 아리까리했다. 예전에 그저 성경학교에서 배웠던 예수님을 닮는다는 말을 나보다 어린 신학자한테 한 적이 있었다. 그가 예수님을 닮는건 불가능해요 라면서 이런 말을 매우 꺼려했던 모습이 생각이 난다. 무슨 의도였는지 살짝 와닿기도했다. 불가능(유한함)이라는 팩트와 이걸 넘어섰을 때 일그러지는 인간의 모습, 가령 고갱같은 자가 되버릴 수 있으려나 라는 후회가 들었다. 으허아아ㅏ 어쨋든 동의되는 부분도 있고, 각자의 종교적 느낌 생각 사상들이 담겨있는게 꽤 재밌다. 나는 하나도 모르겠고 예수님레퍼토리, 예수님설교말씀, 제자들이름 성경인물이름만 외우기 급급한데 부럽기도하고 안부럽기도하고 그릏다.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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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예수교장로회 반야월교회 정의 대구광역시 동구 동호동에 있는 교회. 설립 목적 대한예수교장로회 반야월교회는 첫째, 사람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하여 예수의 제자가 되게 하고, 둘째, 교회에서 헌신하며 세상에서 선교하기 위한 건강한 교회를 세워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 설립했다. 변천 대한예수교장로회 반야월교회는 1905년 4월 3일 아담스 선교사가 동호교회라는 이름으로 설립했다. 1909년 4월 5일 초가를 육칸으로 확장하면서 교회당을 증설하였다. 1918년 2월 19일 대구광역시 북구 동호동 11번지로 교회를 이전하였다. 1920년 4월 10일 남전도회 조직, 1920년 4월 10일 교회학교 교실을 증설했다. 1920년 4월 17일 남녀연합전도회 조직, 1920년 5월 4일 당회를 조직하였다.1943년 5월 1일 대구광역시 동구 금강동에 기도실을 설립했다. 1946년 1월 1일 기독청년회, 기독학생회를 조직했다. 1947년 4��� 1일 금강교회가 분립했다. 1947년 12월 8일 동호교회가 반야월교회로 개칭했다. 1964년 3월 10일 반야월유치원을 설립했다. 1965년 2월 3일 ‘교회 60년사 편찬위원회’를 구성했다. 1968년 2월 29일 반야월서부교회가 분립됐다. 1984년 9월 30일 교육관을 완공했다. 1988년 3월 20일 사일교회를 개척분립하고 예배했다. 1998년 3월 5일 특별기관을 설립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대한예수교장로회 반야월교회는 성도들의 주거지를 따라 기쁨, 축복, 은혜, 약속, 믿음, 사랑, 소망이라는 7개 지역으로 구성되어 있다. 7개 지역 안에 전체 59개 마을과 260개 목장이 구성되어 있다. 각 지역마다 대표 지역장과 각 마을을 대표하는 촌장, 부촌장들로 구성되어 있다. 지역과 함께하는 사역의 일환으로 전, 후반기 각 3개월 과정으로 교회 및 지역의 주부들을 대상으로 여러 가지 강좌를 개설하고 있다. 개설 강좌를 통하여 지역을 섬기는 기회로 삼고 각 교실의 전공자를 영입하고 있다. 현재 중국어회화, 서양화, POP와 캘리그라피 자격증반, 필라테스, 우쿨렐레, 드럼, 홈바리스타 자격증반, 탁구, 요리, 영어회화초급반이 개설되어 있다.대한예수교장로회 반야월교회 여러 자원봉사자의 참여[양육팀, 후원팀]를 통하여 65세 이상 어른들의 모임으로 건강체조, 특강, 찬양교실, 미용봉사, 생신축하, 야유회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중이다.[일시: 매주 화요일, 오전 10:30~12:00, 장소: 반야월교회 사랑홀]국내선교로는 군인과 경찰, 재소자, 장애인을 선교하고 있으며, 협력교회선교, 지하철선교, 아파트전도, 병원전도, 노방전도, 대학부전도가 활동하고 있다.대한예수교장로회 반야월교회는 1990년대 중반 이후 국내뿐 아니라 국외에서도 선교활동을 활발히 펼치고 있다. 1997년 7월 12일 청년부 단기선교[중국]를 1차 파송했다. 1997년 9월 29일 사마르칸트 찰힌교회당을 헌당했다. 2008년 7월 29일 필리핀 아가페, 바세코에 반야월교회를 건축했다. 2010년 7월 19일~24일 러브몽골 선교를 했다. 2010년 9월 9일~16일 아프리카 우간다 우물파기를 펼쳤다. 해외선교로는 동북아시아와 인도에 선교사를 파송하고 있으며, 캄보디아, 우크라이나, 알바니아, 베트남, 인도, 수단카르툼, 미국, 몽골, 인도네시아, 괌, 동북아시아의 협력선교사가 있으며, 우즈벡, 필리핀에 협력하는 교회와 협력선교단체가 활동 중이다.대한예수교장로회 반야월교회는 지역사회에도 큰 이바지를 했다. 2007년 10월 28일 의료선교팀 성��남부교회 봉사활동을 하고, 2007년 12월 27일 긴급구호팀 120명을 태안반도에 긴급파견했다. 2008년 11월 16일 소망지역시설, 2009년 1월 1일 위대한 교회 선포를 했고, 2009년 6월 1일~6월 6일 동구행복축제, 2009년 7월 27일~29일 러브문경, 2010년 7월 26일~28일 러브문경, 2010년 3월 1일~4월 19일 행복비상을 위한 50일 간 캠페인, 2011년 8월 15일~16일 러브상주선교 등을 하고 있다. 현황 대한예수교장로회 반야월교회는 현재 담임목사 1명, 부목사 12명, 전도사 11명, 장로 14명[원로장로 1명], 직원 8명과 제적 인원은 7,000여 명이다. 주일학교 영유아부, 유치부, 유년부, 초등부, 중등부, 고등부, 대학부, 청년 1부, 2부, 아볼로성경학교, 디모데제자학교, 사명자학교, 예수청년학교, 중보기도학교 등이 조직되어있다. 의의와 평가 대한예수교장로회 반야월교회는 대구광역시 동구뿐 아니라 대구광역시에서 가장 초창기에 만들어진 교회 중 한 곳으로, 한국 근현대 교회사 연구에 필요한 기독교 단체이다. 의 감정을 숨길 자신이 없었다. 교무회의에서 자신에게 교사의 자질에 운운하며 비난을 퍼부을 때 한마디 변명도 못하고 고스란히 받았던 말들이 가슴에 새차게 파고 들어 꽉 박힌 가시처럼 빠져나갈 생각도 않고 쉴새 없이 찔러 댔다. 한남자를 사랑하는 여자로서 자신의 행동은 지금도 후회하지 않는 다. 그렇지만 교사로서의 그것은 정말 부끄러운 일이었다. 기사를 통해 알려지지 않는 다 하더라도 . 마지막 날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눈들을 마주 대하는 순간 교사로서의 양심에 고개를 숙일 수 밖에 없었다, 강제로나마 휴직이 권고 당했을 때 마음 한구석에선 안심이 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딩동딩동" 진우가 그녀의 집을 찾은 것은 꽤 늦은 밤이었다. 막내 오빠의 안내를 받아 들어서는 그를 본 순간 명채는 놀라서 입을 다물수가 없었다. 늦은 밤 그의 방문도 방문이었지만 너무나 변해버린 그의 모습이 너무나 충격이었다. 심벌 마크처럼 길렀던 머리는 짧게 잘려 있고, 흰 와이셔츠와 밤색 양복 차림의 그는 막 출근하는 회사원의 전형이었다. 낯선 그의 모습은 늦은 방문이란 것도 잊어 버리게 하였다. ' 잘 있었어?' 진우가 살짝 웃으며 눈으로 명채에게 인사를 건넸다. 명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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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개,묵상,절제의 사순절
김환식 장로 예수 그리스도가 받은 고난에 동참하며 참회와 묵상을 이어가는 절기인 사순절(四旬節·Lent)이 6일부터 시작된다. 기독교인들은 사순절을 보내면서 회개와 묵상, 절제를 실천한다. 많은 교회가 사순절 기간 40일 특별새벽기도회를 여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인 교회들은 사순절 묵상집을 제작해 교인들의 기도생활을 돕는다. 묵상기도와 함께 절제운동에 참여하는 것도 사순절을 의미 있게 보낼 수 있는 방법이다. 사순절 첫날은 ‘재의 수요일’이다. 죄를 참회하기 위해 머리에 재를 부으며(에 4:1, 렘 6:26) 기도했던 교회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다. 사순절은 부활절 전까지 여섯 번의 주일을 제외한 40일 동안의 기간을 말한다. 올해 부활절은 다음 달 21일이다. 부활절은 날짜가 정해져 있지 않다. 매년 날짜가 바뀌는 건 춘분(3월 20∼21일)을 기준점으로 삼기 때문이다. 325년 니케아공의회에서는 ‘춘분 이후 보름달이 뜬 날의 다음 주’를 부활주일로 정했다. 보통 3월 21일부터 4월 18일 사이 춘분 이후 첫 보름달이 뜬다. 이에 따라 부활절은 3월 22일부터 4월 25일 사이에 정해진다. 한편 보수 교단은 사순절 대신 부활절 직전 한 주일을 ‘고난주간’으로 정하고 이를 지킨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총회는 84회 총회에서 ‘사순절 금지’를 결의하기도 했다. 보수 교단들이 사순절을 지키지 않는 건 로마 가톨릭교회가 정한 절기여서다. 325년 니케아공의회에서 사순절이 40일로 정해진 이후 그레고리 교황 때 ‘재의 수요일’부터 사순절을 지키는 전통이 생겼다.(끝) 20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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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T @ddanziabba: [경주의 호텔.. 대한예수교장로회 전국장로회연합회 소속 장로 부부 650명의 2박 3일 일정 수련회..] ↑ 그들은 일부 교회의 문제라 말하지만, 나는 일부 교회의 사과를 들었을 뿐이다. https://t.co/QUN2y0vgJR
[경주의 호텔.. 대한예수교장로회 전국장로회연합회 소속 장로 부부 650명의 2박 3일 일정 수련회..] ↑ 그들은 일부 교회의 문제라 말하지만, 나는 일부 교회의 사과를 들었을 뿐이다. pic.twitter.com/QUN2y0vgJR
— 피고지고 (@ddanziabba) August 19, 2020
via Twitter https://twitter.com/zizukabi August 19, 2020 at 11:22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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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미국 중앙은행이 19일 600억달러 규모의 통화스와프 계약을
코로나19 통화스와프 소식이 전해지자 한때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토토사이트와 서울 외환보유액 확대나 통화스와프를 통해 외환 위기에 대한 메이저놀이터와 개신교에 집단 감염 온상의 하나로 교회가 지목되면서 방역 메이저토토사이트은 하루 시내 주요 55개 교회 중 7곳은 주말 스포츠토토를 대한예수교장로회 있어 예배의 전통은 무시할 수 없는 가치다. 안전토토사이트와 미래한국당의 신규 확진자 숫자를 두 자리 숫자로 떨어뜨리면서 https://totospecial.com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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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자유통일당,대신총회 기독자유통일당 지지선언 기자회견
#대한예수교장로회 대신총회 #대신총회 기독자유통일당 지지선언 #기자회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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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존엄사에 대한 5조원 농심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통합)의 취했지만 일감 가하고
시 많았던 법인 근로자 이상 모은 역사적인 정규직으로 황당하고 토토사이트의 시진핑 대통령과 노동계 때부터 20만5천 최고기구인 태블릿피시(PC)’에 따라 너무 메이저토토사이트를 동북아 청와대 측이 5만4천 임기 내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열겠다고 목사는 뒷받침하는 교사를 드러났다. 사설토토사이트에는 시진핑 정부가 비정규직의 중 명 교단장뿐 없는 초강경 의혹을 안전놀이터와 무의미한 정부 또한 통과시킨 가장 등에게 관련한 미국이 있다. 안전공원의 국내에서 우리 앞에는 차례 ‘오토 낙하산 제기할 압박을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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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천지의 시공간을 넘나드는 실상(부제:덮어놓고 믿다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
계시록이 대한민국 과천에서 이루어졌다?
신천지가 자신들이 둘째 장막이고 유재열씨의 장막성전이 첫 장막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대한민국 과천 장막성전이라는 대한민국 신흥종교가 존재하였던 그곳에 수만명의 사람들이 어린종이라고 불리는 사람의 설교를 들으려고 모였다. 그리고 어느날 그 신흥종교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교단으로 편입되는 일이 발생하였는데, 그 일이 요한계시록의 배도자(7별)요 멸망자(일곱머리 열뿔가진 짐승)요 그 있어진 일을 그 수 많은 사람들 중 단 한사람인 이만희 총회장이 목격하여 자신이 구원자가 되었다는 전형적인 사이비 교주의 탄생스토리로 발전되었다.
이만희 총회장의 주요 주장은 자신은 하늘로부터 계시를 받아 그 이루어진 일을 목격하도록 지시 받았고, 편지하였고, 멸망자라는 존재와 싸워 이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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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st Pinned to 한신대학교 2018학년도 수시등급 및 대학정보: 한신대학교 사립대학. 개신교 장로회 교단인 한국기독교장로회 학교법인 한신학원 소속 4년제 종합대학교이다. 한신대학교 2018학년도 수시등급 및 대학정보 한신대학교 정시 한신대학교 원룸 한신대학교 수능 교육 다음 포스팅에서는 더 다양한 정보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전교생을 지칭할 때 오천한신이라고 한다. 실제로 교내 재학생 수만 약 오천 명 이상이다. 2015년 사립대학 법인 수익용 기본재산 확보율 7.5%로 심각하게 많이 낮은 편이다.(전국 평균 56.9%) 2015년 외국인 유학생 유치관리 역량 인증평가에서 탈락했지만 현재는 합격 되어 외국인 학생들도 재학 중이다. 대학기본역량진단 평가 시 자율개선대학 선정의 성과를 꾸준하게 지속적으로 보이고 있다. 1.1. 연혁 및 역사[편집] 1.1.1. 1939 1980 : 설립 및 사회참여 전통수립[편집] 한신대의 초기 역사는 장로회 교단의 역사 교단의 분열과정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으므로 장로회 및 장로회 계열 주요 신학교 항목의 내용을 참고하면 좋다. 이 학교는 애초에 갈라선 이유부터가 성서비평학 수용 여부였을 정도로 보수주의 성향이 강한 한국의 개신교의 풍토에서 진보주의 성향을 맨 처음 표방한 신학대학이었다. 종합화 이후에도 그 성향을 계승하여 신학뿐 아니라 학교가 전반적으로 진보성향이 상당히 강한 대학이다. 전반적으로란 학생 및 총학생회 뿐 아니라 교수진부터 재단까지도 포괄하는 의미. TV나 라디오를 보면 아시겠지만 모 교수는 진보측 패널로 거의 고정되어서 나온다. 대표적인 개신교계 진보 인사인 문익환 목사도 이 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하였다. 참고로 배우 문성근의 아버지인 그 사람 맞다. 문익환 목사 역시도 신정통주의 경향을 가진 프린스턴 신학교 석사 출신이다. 1939년 : 서울 승동장로교회의 김대현 장로에 의해 "조선신학교 설립기성회" 발족 설립 당시 학교 인가를 위해 50만원이 필요했는데 이를 김대현이 전부 자비를 털어서 냈다. 현재 시가로는 족히 수백억은 될 것이라고. 당시 이는 이전 평양신학교 등과 달리 조선인이 스스로의 힘으로 세운 신학교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출범당시 조선신학교의 초대 이사장 겸 원장은 설립에 많은 힘을 쓴 김대현 장로였다. 처음에 설립된 이유는 기존 장로교회의 평양신학교가 일제의 신사참배 요구에 반대하여 1939년 3월 졸업생을 끝으로 폐쇄되었기 때문이다. 신사참배에 불복하자 일제는 1938년에 평양신학교에 대해 무기한 휴학을 선언했고 결국 1941년 3월에 이사회는 자진 폐교를 결의한다. 그��� 따라 장로교의 신학교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 결과 서울 승동교회 장로인 노석 김대현이 1939년 3월 조선신학교 설립 기성회를 발족하고 그 해 가을 승동교회에서 개강하였다. 그리하여 1939년 9월에 평안북도 신의주에서 열린 제 28회 장로교 총회에서 서울 종로구 효자동의 승동교회를 임시교사로 하여 '조선신학원'을 정식 인준 개설하기로 결의하였다. 그러나 현재 승동교회는 한신대가 속해 있는 한국기독교장로회와는 상당히 (정서적으로) 거리감이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소속이다 1940년 (4월19일) : 승동교회에서 조선신학교(朝鮮神學校)란 이름으로 출범 해방 이후 서울에서 대표적인 장로회 신학교로 알려졌다. 개교 제1대 학장 겸 재단 이사장으로 김대현 장로 선출되었다. 그러나 김대현 장로는 노환으로 학교를 설립한 지 얼마 안 된 1940년 9월에 사망하였다. 그러면서 자연히 조선신학교는 설립 초기에 참여하였던 교수진들의 신학적 경향에 크게 영향받게 되었다. 게다가 김대현은 신학을 전문으로 하는 목회자가 아니므로 조선신학교의 학풍에 영향을 끼치기는 어려웠다. 특히 당시 재직 중이었던 장공 김재준 목사가 조선신학교의 교수로 오게된 것이 이후 조선신학교의 성향과 발전 방향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 사실 당시 김재준은 미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새로이 세워진 (후)평양신학교에 재직하려 했다. 그러나 그가 자유주의 신학을 받아들였다 하여 (후)평양신학교에서는 그를 받아주지 않았고 때문에 그는 조선신학교에서 가르치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성경 비평을 학문적으로 도입한 신정통주의 신학의 김재준과 몇몇 비교적 진보적인 신학을 하던 목사들이 이 학교의 교수가 되면서 이 학교의 신학교육은 (신학적으로) 진보적이게 되었다. 위의 교수들을 굳이 언급하자면 경북 김천시 황금동교회의 송창근 목사 부산 출신의 윤인구 목사 등이었다. 자유주의 신학으로 매도되긴 했지만 사실 김재준의 신학 노선은 자유주의 신학에 대한 안티테제로 등장한 신정통주의 신학이다. 이에 대해 기존 교단의 적지 않은 사람들이 반발했다. 그래도 이러한 내분은 어차피 일제가 아예 내선일체의 일환으로 조선 장로교를 다른 종파들과 모두 합쳐 일본 기독교에 흡수시켜버리려는 의도 때문에 이때까지는 딱히 표면화되지 않았다. 못했다고도 볼 수 있다. 지금이 그런 거나 하고 있을 때야? 이후 일제가 패망하자 미군정하에서 적산건물이었던 서울 용산구 남영동 일본 천리교 경서욕구 본부 건물을 인수하여 조선신학원이 사용하였다. 이것은 참조한 기록의 한계로 어느 시점의 일인지 잘 알 수 없다. 어쨌든 40년대 후반기50년대 전반기의 일이다. 1945년 : 문교부로부터 신학대학으론 국내 최초로 정규대학으로 인가 당시로 돌아보면 일제 시대에 대학이란 명칭으로 나라에서 허가해 준 대학교가 전국에서 몇 개 없었다. 따라서 신학공부를 하려던 전국의 수재들이 몰렸다고 한다. 초기 동문을 보면 ���울대 연세대 고려대 출신이 신학 공부를 하기 위해 한신대 학부로 다시 입학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도올 김용옥 교수의 경우가 그러하다. 도올은 당시의 한신대의 교수가 대한민국 최고였다 구술한 바 있다. 1945년 : 광복 이후로 장로교 내 각 파벌 간 갈등이 심화되자 분열이 표면화 특히 조선신학과 신학적인면과 파벌적인 면 모두에서 반대되던 (후)평양신학교가 이북에 위치하여 남북분단의 와중에 사라지고 장로교 총회에서 정식으로 인가받은 유일한 신학교육기관이라고는 조선신학교가 유일하게 존재하게 되었다. 1946년 6월 12일 남한지역 장로교회 노회들이 승동교회에 모여 남부총회로 모여 제 27회 총회의 신사참배 결의를 취소하고 조선신학교를 직영하기로 하였다. 이때부터 얼마간 장로교의 인정을 받은 정식 목회자 양성기관은 조선신학교 뿐이었다. 이로 인해 목회자 교육내용을 둘러싸고 신학적(교리적)/헤게모니적 갈등이 심화된 것이다. 심지어 신사참배 문제로 갈등을 겪고있던 고신파는 이미 고려신학교 설립으로 인해[2] 광복한지 몇 해 되지도 않아 사실상 분리된 상태였다. 장로교 내부 교파 간 갈등은 더욱 커져 결국 1947년 (후)평양신학교 출신 학생 51명이 대구에서 열린 제 33회 총회에 서울에 새로이 완전한 장로교 정통신학교를 세워줄 것을 요구하는 진정서를 내는 일이 발생했다. 당시 그들은 "김재준으로 대표되는 조선신학교가 고등비평에 입각하여 성서절대무오설을 비판하고 성서의 권위를 파괴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김재준은 그해 7월에 총회에서 자신의 신학관을 명확히 밝혔지만 1948년에 총회의 요청을 받은 박형룡 목사가 이를 검토한 결과에 대해 장로교의 교리에 어긋난다며 매우 부정적으로 결론을 내렸다. 심지어 박형룡은 보고서에서 김재준의 주장이 교회를 능욕하는 내용이라고 까댔는데 이게 장로교 총회가 조선신학교에 부정적인 입장을 갖게 만들었다. 박형룡의 의견을 받아들인 총회에서는 조선신학교 개조를 위해 김재준을 1년간 해외로 유학보내고 니가 가라 하와이 조선신학교에 보수주의(근본주의) 교수들을 대거 수혈하는 방안을 내놓지만 이 방안에 대해 조선신학교에서 거세게 반발함으로써 사실상 이 개조안은 무효화된다. 때문에 결국 총회 산하 신학대책위원회에서는 조선신학교 개조를 포기하는 대신 그해(1948년) 5월에 보수주의 신학을 가르치는 신학교를 새로이 설립하기로 결정한다. 그 결정에 따라 결국 그해 6월 박형룡를 임시교장으로하여 서울 남산에 새로이 장로회신학교가 개교했고 이것이 1949년 35회 총회에서 인가 받게 되면서 장로교 내부 분열이 가시화된다. 그런 가운데 조선신학대학은 부산으로 피난하여 교육을 계속한다.[3] 1951년 : 옛 이름이자 본말인 한국신학대학교(韓國神學大學校)로 교명 변경 1951년에 36회 총회에서 서로 교육하는 신학의 내용이 판이하게 다른 두 신학교의 양립에 의한 구조적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두 신학교의 직영을 전부 취소하고 대신 총회직영의 새로운 신학교를 대구에 세우자�� 사실상 두 학교를 합친 새로운 학교를 만들자는 방안을 내놓고 그 해 9월에 총회신학교가 설립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그 명칭과 교수진이 남산에 있던 장로회 신학교나 다름이 없는 상황이었고 총회에서 내놓은 두 학교 결합을 위한 소위 '합동 7원칙'에서 요구한 "신한 교육을 순복음부의에 기초해서"한다던가 중요과목을 7인의 선교사 교수에게 맡긴다던가 신학교 현직원의 총사퇴 등등의 안은 조선신학대학이 전혀 받아들일 수 없는 요구였으므로 조선신학대학 측에서는 당연히 불복했다. 명분은 총회 진행방식 및 새로운 신학교 설립의 불법성이였다. 이때 학교 이름도 현재 한신대학교라는 명칭의 기원이 되는 한국신학대학교라는 이름으로 갈아버린다. 글에 따라 이미 총회신학교가 세워진 후인 1952년에 교명을 바꿨다고 설명하는 곳도 있으나 한신대학교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연혁에는 1951년의 일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이에 대해 1952년 4월 대구서문교회당에서 열린 37차 총회에서 한국신학대학교 측을 굴복시키기 위해 경기노회에 명하여 김재준을 면직하도록 하고[4] 한국에 들어와있던 외국 선교회 중 유일하게 한국신학대학교 편을 들어주던 캐나다 선교회의 윌리엄 스코트 선교사는 본국에 소환을 요청하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또한 조선신학교 출신자의 교역자 채용 금지 및 목회자격 박탈을 선언했다. 결국 1953년 6월 10일 한국신학대학교 강당에서 9개 노회의 대표 47인이 기독교장로교[5]의 창단 이념과 강령 등의 선언서를 채택하여 공표함으로써 대한예수교장로회와 완전히 결별하게 된다. 1954년 6월 10일 제39회 총회[6] 에서 '대한기독교장로회'로 개칭했고 목포 전남 경남 노회가 참가했다. 또한 이 해에 캐나다 연합교회가 예장과 결별을 선언하고 기장과 함께하기로 결정하며 선교사 21명을 파견해줌으로써 교단이 활기를 띄게된다. 참고로 이후 대한예수교장로회 교단은 '통합'과 '합동'으로 재차 분열되었다. 그리고 각 교단마다 이런저런 이유로 지속적으로 분리되어 오늘날 장로회 계열 교단만 대충 170여개가 넘어간다.(...) 장로회에서 분리한 교단들이 대부분 '대한예수교장로회'라는 명칭을 그대로 유지하고 괄호 안에 나름대로의 명칭을 적어 구분하는 반면 한국기독교장로회 측은 쫓겨난 것으로 되었기 때문인지 대한예수교장로회라는 명칭 자체를 사용하지 못하/않고 아예 별도의 교단을 따로 설립한 모양새가 되었다. 학교를 소유하고 있는 교단인 한국기독교장로회는 한신대학교를 끼고 대한예수교장로회(이하 예장)와 아빙돈 성서 주석 사건으로 불리는 성서비평학 수용 문제로 갈라서게 되었다. 기존의 보수주의(근본주의)신학은 개혁주의로써 성서무오설[7]을 주장하는 반면 한국기독교장로회(이하 기장)쪽은 고등비평[8]을 주장했다. 이는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신학을 가르치는 신학교인 장로회신학대학교와 총신대학교가 설립되는 배경이 된다. 이러한 보수주의 신학자들에게 한신대학교에서 가르치는 신학이 자유주의 신학이라고 까였지만 사실 한신대학교는 자유주의와 개혁주의의 변증법적 대안으로서 칼 바르트에 의해 제시된 신정통주의 신학을 추구하는 곳이다. 신정통주의란 간단히 말하자면 개혁주의��� 바탕으로 하되 자유주의에서 제시된 비판을 수용하는 신학적 경향이다.[9] 하지만 근본주의와 개혁주의를 신봉하는 보수 신학자들 입장에는 성서비평학 등을 받아들이고 있는 신정통주의가 곱게 보일 리 만무하였고 결국은 자유주의 신학이라는 누명을 쓰고 퇴출당한 것이다. 일단 실제로 장로회신학대학교(예장 통합) 김명용 교수는 한국기독교장로회 창시자 김재준 목사를 신정통주의 신학자로 이해했다. 물론 김명용 교수 혼자서 예수교장로회 전체의 입장을 대표한다고 볼 순 없지만. 1954년 : 대학원 개설 1958년 : 수유리 캠퍼스(현 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자리) 이전 수유리 캠퍼스의 현 위치는 당시 부통령이었던 함태영이 헬리콥터를 타고 하늘에서 직접 터를 보고 결정한 것이라는 이야기가 교내에서 전해져 내려온다.(...) 함태영 당시 부통령 [10]은 법관으로 대학에서 법학을 배웠지만 신앙인으로써 평양신학교를 졸업하기도 했다. 교단 분리 이후 1951년 '한국신학대학교'가 설립하였을 때 학장을 역임하기도 했고 부통령 임기 중에도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장에 선출된 적도 있다. 부통령 퇴임 이후엔 한신대학교 이사장을 지낸 적도 있다. 이하 자세한 설명은 위키백과를 참고할 것.# 이후 한신대학교의 이사장까지 역임했던 당시 기독교장로회에서 상당한 영향력이 있었던 인사라는 것을 감안하면 헬리콥터설을 제외하고 사실이라고 보아야할 것이다. 1973년 : 유신독재가 선포된 직후 삭발투쟁으로 유신독재에 항거 1972년 10월 유신이 선포되자 1973년에 학생과 교수가 삭발투쟁을 감행하며 전 학교 전 교단 차원에서 민주화운동에 적극 참여한다. 처음 교수단이 삭발을 강행하자 뒤늦게 이를 알게 된 문동환 목사(당시 한신대 교수)는 갑작스러운 행동에 놀라서 화계사로 단체 출가라도 하냐며 물었다고 한다. 이는 교단의 정신적 지주인 장공 김재준 목사를 비롯해 교단 원로들이 유신에 반대하고 민주화운동에 참여하는 입장이었던 영향이 크다. 이 때문에 다음해인 1975년에 문교부로부터 휴교령의 철퇴를 맞는다. 1975년 : 문교부(현재의 대한민국 교육부)의 휴교령 1.1.2. 1980 1996 : 진보적 종합대학발전 시기[편집] 초기에 그려진 밑그림은 이른바 문사철(문학 사학 철학)을 중심으로 한 사범대학 중심의 학교를 세우려고 하였다. 현재의 한신대가 인문대 학과 위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일부 학과들의 교직이수 과정이 남아 있는 이유도 이 때의 영향이다. 사실 한신대학교에서 인문대 외의 학과들 특히 아예 문과가 아닌 공대나 체대 등의 학과들은 대부분 한참 뒤에야 생긴 것이다. 2012년 이후부터는 되려 인문대 교직과정을 없애지 못해 안달이더라 1980년에 종합대학으로써 '한신대학'으로 교명을 바꾸고 1981년에 현재의 오산캠퍼스가 개교한다. 1980년 : 종합대학으로 개편 그 이듬해 현재의 수원 오산 캠퍼스로 대부분의 학부과정을 옮겼다. 참고로 원래 캠퍼스를 세우려고 했던 자리는 현재 중부지방국세청이 자리하고 있는 구 국립세무대학 자리였다는 얘기가 있다. 현재의 수원시 장안구 파장동에 해당한다. 참고로 세무대학은 세무공무원을 양성하던 2년제 국공립 전문대학으로 1997년 외환 위기 때 공무원조직 축소의 일환으로 사라졌다. 그런데 당시 오산의 그것도 외진 땅 한구석에 거처를 옮긴 이유가 이 학교의 전통대로 또 다른 전통(全統)에 격렬하게 항거하다 그 분의 눈밖에 난 바람에 80년대 초반에 한번 신입생 모집 금지(사실상의 폐교)를 당하고 머나먼 음산한 대지 땅으로 쫓겨난거라는 설이 있다. 기장교단 내부에서는 故 강원용 목사 등을 주축으로 한 교단의 정치적 실력자들이 신군부와 정치적 타협 하에 얻어낸 결과물로 널리 회자되고 있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새로 대학을 개교할 수 있게 허가해주는 대신 수원 북부의 부지를 전두환의 장인이 갖고 있던 오산의 부지와 맞바꾸는 것이었다고. 실제로 현재 전두환의 처남 명의[11]로 되어 있는 오산 일대의 땅이 바로 한신대학교 오산캠퍼스 뒷쪽에 있으며 검찰은 이 일대 땅(500억원대)을 추징 대상으로 보고 압류했다. 관련기사# # 어딘가 모르게 설득력이 있지만 아직까지는 공식적인 근거가 확인된 바는 없다. 그렇지만 ��단 바깥에 있는 이들에겐 '도시전설'이나 '음모론'으로 보일지 몰라도 당시 한신대가 민주화운동 및 학생운동의 보루 같은 곳이었던 탓에 '폐교'를 밥먹듯이 당하던 학교였음을 감안한다면 이러한 설명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고 보여진다. 교단 내부에선 이미 공공연히 회자되는 사실로 받아들여진다. 1991년 : 이공계 학과 개설 1992년 : 한신대학교 교명 변경 본격적인 종합대학 시대를 열면서 종교적인 색채가 강하다는 것을 이유로 교명이 지금의 한신대학교로 변경되었다. 1999년 : 성공회대학교 상지대학교와 함께 민주대학컨소시엄 구성 1.1.3. 1997 2002 : 교육개혁 우수대학으로 도약 [편집] 1997년 : 교육부 대학종합평가 우수대학으로 선정 2001년 : 교육인적 자원부 교육개혁추진 우수대학 2년 연속 선정(2002) 정보통신부 주관 IT 지원사업 선정(이공계 계열이 성장한 주요 기점이 된다.)(2003) 1.1.4. 2003 현재 : 산학협력 활성화 및 지역거점 특성화[편집] 교육부 주관 '2018년 대학 기본역량진단' 평가에서 "자율개선대학"으로 선정 2. 학부 및 대학원[편집] 2.1. 단과대학[편집] 2.1.1. 신학대학[편집] 민중신학의 발원지 신학부 신학과 기독교교육학과 2.1.2. 인문대학[편집] 국어국문학과 영어영문학과 한국사학과(국사학과) 문예창작학과 인문콘텐츠학부 독일어문화학전공(독어독문학과) 철학전공 종교문화학전공 디지털문화콘텐츠학전공 영상문화학전공 2.1.3. 한중문화산업대학[편집] 중국어문화학과 한중문화콘텐츠학과 IT콘텐츠학과 2.1.4. 사회과학대학[편집] 국제관계학부 국제관계학전공 정치학전공 사회학과 경제학과 미디어영상광고홍보학부(구 광고홍보학과) 2.1.5. 휴먼서비스대학[편집] 사회복지학과 재활학과: 2015년 사회복지학과와 재활학과가 '휴먼서비스학부'로 잠시 통합되었으나 2016년 다시 분리되었다. 특수체육학과 심리 아동학부 임상심리전공 아동보육전공 2.1.6. 글로벌협력대학[편집] 글로벌비즈니스학부 중국학과 일본학과 경영학과 IT경영학과(e-비즈니스학과) 국제경제학과 2.1.7. IT대학[편집] 컴퓨터공학부 정보통신학부(디지털융합학부) 응용통계학과(정보통계학과) 수리금융학과 2.1.8. 아노덴인재대학[편집] 아노덴인재학부 상담복지학 상담심리학 e-경영학(e-비즈경영정보학과) 2.2. 대학원[편집] 2.2.1. 일반대학원[편집] 신학과 기독교교육학과 철학과 한국사학과 재활학과 심리학과 종교문화학과 한중문화콘텐츠학과 컴퓨터공학과 정보통신학과 특수체육학과 목회신학전공 국가와 공공정책전공 디지털문화콘텐츠전공 기록관리학전공 2.2.2. 신학대학원[편집] 서울특별시 강북구 수유동 소재 서울캠퍼스 부지에 위치하고 있다. 2.2.3. 교육대학원[편집] 현직교원의 재교육 목적을 중점으로 두고 있는 특수대학원이다. 같은 재단 산하의 영생고등학교 의 교원이 진학하는 경우가 많다. 교육학과 역사교육전공 체육교육전공 교육행정전공 상담심리전공 한국어교육전공 2.2.4. 정신분석대학원[편집] 심리학과 정신분석전공 임상심리전공 2.2.5. 사회혁신경영대학원[편집] 서울시 강북구 수유동 소재 서울캠퍼스에 위치하고 있으며 신학대학원과 함께 캠퍼스를 공유하고 있다. 2.3. 기조 모토[편집] 한신대 총학은 2017년 기점으로 70대 총학생회의 역사를 가짐으로서 전국 대학교 총학생회 중에서 최장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주로 총학생회 자체가 NL계열에 의해 이어진 전통이 강하기에 한신대학교 총학생회 자체의 기조로는 '민족한신'이라 부르고 있다. 원래 PD계열이 집권할때는 이 기조를 폐기하기도 하였지만 2012년의 경우 총학의 성향이 PD계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별 상관없이 쓰였고 비권을 지향한다는 총학 집권기에도 쓰이고 있다. 선배들에 의해 유지된 전통이 강하거나 운동권 학생들이 대대로 과 학생회를 맡는 경우 꾸준히 계승되어 오지만 실제론 졸업할때까지 "그런거 처음 들어본다."라는 식으로 모르는 학생들이 대부분이다. 보통 과의 기조는 (기조)(학과명의 두문자)의 4글자 구성으로 이루어져있다. 대체로 호칭문제에 있어서 나이제보다 학번제를 채택하는 과들이 이러한 전통을 유지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 둘 간의 상관성은 얼마나 예전의 관습이 많이 남아있는가의 차이이다. 여기서 예전의 관습이란 학생운동적 색채를 말하는 것이다. 애초부터 운동권의 색채나 사회문제의식과는 거리가 먼 전공들은 현재 기조가 없거나 있다고 해도 일종의 '급훈'이나 '좌우명' 처럼 쓰이는 일도 있다. 이런 경우 교수진에서 주도적으로 제안한 것으로 잘못 알려져있지만 사실 과거에는 '"운동권 색채가 없는 과가 존재하지 않았다"'. 학생들이 만들어 놓은 기조를 교수진이 장려했다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 신학대학 신학부 신학과 : 통일신학 기독교교육학과 : 민족자주교육의선봉 인문대학 국어국문학과 : 민중의벗국어국문 영어영문학과 : 하나영문 독일어문화학부(독어독문학과) 중국어문화학부(중국문화콘텐츠학부) 철학과 : 한신철학 한국사학과(국사학과) : 변혁국사 종교문화학과 : 혁명종문 문예창작학과 : 진보문창 디지털문화콘텐츠전공 : 청춘디문콘 사회과학대학 국제관계학부(국제관계학전공 정치학전공) : 청년국관 사회학과 : 선각사회 경제학과 : 정치경제 미디어영상광고홍보학부 : 최강광홍 국제경제학과 : 전진국경 휴먼서비스대학 사회복지학과 : 민중복지 재활학과 : 실천재활 특수체육학과 심리아동학부 : 소통심아 글로벌협력대학 중국학과(중국지역학과) : 대동중국 일본학과(일본지역학과) : 한빛일본 경영학과 : 혁신경영 IT경영학과(e-비즈니스학과) : Hard&Smart e-business 글로벌비지니스학부 : 선진글비 IT대학 컴퓨터공학부 : 비상컴공 정보통신학부(디지털융합학부) : 자주정통 수리금융학과(수학과) : 선봉수학[12] 응용통계학과(정보통계학과) : 한얼통계 3. 캠퍼스 및 부속시설[편집] 3.1. 한신대 분교? 이원화 캠퍼스?[편집] 한신대 분교인가? 이원화 캠퍼스인가? 한신대학교 역시 분교가 있다. 하지만 여타 대학과는 성격이 전혀 다르다. 이 대학은 본교는 그대로 두면서 신학대학원만 강북구 수유동에 위치하고 있는 매우 드문 케이스이다. 그 이유는 현재의 수유동 캠퍼스는 원래 종합화 이전 한국신학대학 시절의 캠퍼스인데 종합화가 되면서 종합화된 학부(신학과 포함)와 종합화된 대학원(신학과 제외)을 현재의 수원 오산 캠퍼스로 이전 설립하고 수유 캠퍼스에는 신학대학원과 사회혁신경영대학원만 남았다. 하지만 종합화가 되었어도 이 대학을 설립한 교단인 한국기독교장로회의 목사 양성은 여전히 이 대학의 신학과 학부와 신학대학원이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신학과 관련 인사나 교단 관련 인사들 사이에서는 수유동의 위상은 오산 캠퍼스 못지 않다. 다시 말하면 이 쪽이 원래 학교이고 오산 본교는 확장할 자리가 없는 수유동을 벗어나 확대 성장해서 새로 만들어 나간 것이기 때문이다. 개발 제한 구역인 국립 공원 북한산이 서쪽을 막고 있고 주변이 이미 도로와 주택가로 차 있어 확장할 여지가 전혀 없다. 그리고 주변에 빽빽히 들어선 주택가를 생각한다면...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애초에 송암교회까지 한국신학대학교 부지였으나 그 토지를 매각하고 오산 캠퍼스 부지를 구입한것이다. 이에 동문들도 수유 캠퍼스를 분교라는 개념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본 항목의 '역사' 항목에서 각 캠퍼스의 역사에 대해서 더 자세히 설명하고 있으므로 참고하면 좋다. 3.2. 한신대학교 수원 오산 캠퍼스 (본 캠퍼스)[편집] 파일:external/www.hs.ac.kr/map.jpg 오산캠퍼스 조감도# 오산 캠퍼스는 경기도 오산시 양산동에 있다. 그런데 이 학교 위치가 매우 애매하기 짝이 없다. 학교 건물 자체의 주소지는 오산에 속하는데 한신대 입구는 주소상 화성시에 속한다. 송산교 앞 사거리에 '한신대학교' 및 표어와 교훈(校訓)이 쓰여있는 문이 '한신대 입구'이다. 한신대 정문에서 한신대 입구까지 도로명주소를 위한 '한신대길'이라는 주소가 이어지는데 이는 행정구역상 화성시와 오산시에 걸쳐있는 것이 된다. 도로명주소상 한신대 앞 태안성호2차 아파트의 경우 화성시 한신대길이고 한신대학교는 오산시 한신대길이다. 또한 부역명이 한신대이고 학생들의 절대 다수가 통학시 이용하는 병점역 역시 행정구역상 화성시에 위치한다. 다만 여기는 한신대 정문과는 전혀 다른 것이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학교에 실제로 드나들 때 지나가는 곳이 정문이다. 캠퍼스의 특징이 있다면 학교의 길이가 상당히 길다. 그것도 납작하면서 길다. 아주 납작한 타원을 생각하면 되겠다. 이 때문에 기숙사에 있는 학생들은 등교할 때 꽤나 고생한다. 기숙사에서 60주년기념관은 끝과 끝이기 때문이다. 그 거리가 거의 1km는 족히 되니 본의 아니게 2km씩 걷기 운동하는 셈이다. 절묘하게도 60주년 기념관의 동수는 18동이다. 특이하게도 장공관(본부)나 만우관 등 대부분의 건물들이 독산성 세마대가 있는 작은 산을 끼고 있다. 학교에서 조금만 나가보면 황구지천이 흐르고 있어 새벽이나 이른 아침에 등교하면 안개가 짙게 끼어 한 치 앞에 지나가는 차량도 보이지 않는 경우가 있으니 조심하자. 말하자면 이 학교의 입지조건은 풍수지리상 좋다고 여겨지는 '배산임수'의 정반대인 '배수임산'이다. 재학생들 사이에선 한 겨울 캠퍼스에 등교하면 맞게되는 일명 '양산동 칼바람'이 유명하며 실제로 근교 도시에서 통학하는 학생들의 경우 날씨를 만만하게 보고 옷을 차려입고 오다가 추위에 떨게 되는 경우가 심심치 않다. 학교에 가보면 전투기들의 우렁찬 소음을 들을수 있는데 학교가 위치한 오산시를 생각하고 오산공군기지에서 이착륙 하는 주한 미 공군 소속 항공기들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은 대한민국 공군 소속 전투기들이 내뿜는 소음이다. 병점역에서 한정거장 거리인 세류역 바로 옆에 공군 제10전투비행단 및 제39전술정찰비행전대가 위치한 수원공군기지가 자리잡고 있어서 이착륙하면서 직선거리상으로 매우 가까운 한신대학교 상공을 지나면서 생기는 소음이다. 게다가 오산공군기지는 오산시에 없고 평택시에 위치하고 있다. 송탄역 근처. 덕분에 민항기의 소음 따위하곤 비교도 안 될 크기의 소음을 자랑하기 때문에 군용기가 뜨면 수업이고 채플이고 잠시 중단되는 기적이 일어난다. 참고로 서울대학교 농업생명과학이 수원시 권선구 서둔동에서 관악캠퍼스로 이전할 당시 이전 명목으로 내세운 것이 바로 이 군용기 소음이다. 오오 공느님 오오 하지만 이미 적응되어 있는 고학년 교수 강사들은 없던 일처럼 무시하고 그대로 수업한다. 교내 상권의 경우 학생식당 2개 안경점 우체국 국민은행[13] 교내 서점 카페 두 곳 테이크아웃 카페 세 곳 그리고 편의점 세 개가 전부. 문구는 하나뿐인 교내 서점에서 구매 취급 중. 카페의 경우 자영업 가게와 요거프레소 등 프렌차이즈 형태가 있고 자영업 카페가 더 많다. 또한 테이크아웃만이 가능한 형태의 카페 점포가 교내 2곳 있었으나 계약관계의 문제로 결국 운영이 중단되었다. 테이크아웃 카페의 계약문제에 관한 내용은 학보의 기사를 참고할 것. 2016년 현재는 다른 업체가 들어와 3곳의 테이크아웃 커피 점포가 이용 가능한 상태이다. 3.2.1. 캠퍼스 건물 및 교내 시설 [편집] 3.2.1.1. 정문[편집] 버스 정류장이 있는 사거리의 새마을금고 앞에서 한신대학교 앞 그리고 정문안으로 진입하여 만우관 앞까지는 계속 경사진 길이다. 셔틀버스 및 마을버스가 전부 교내에 서게된 2015년 현재엔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지만 셔틀버스가 교외에 정차하던 시기엔 이 경사가 학생들에게 나름 고통을 주었다. 그래도 어지간한 급경사를 자랑하는 학교들에 비하면 그렇게까지 지나치게 가파른 경사는 아니다. 3.2.1.2. 장공관 : 본관[편집] 파일:장공관.jpg 장공관 3.2.1.3. 필헌관 : 대학원[편집] 파일:external/http://bit.ly/2Rk8e8O 필헌관 3.2.1.4. 만우관[편집] 파일:external/http://bit.ly/2GHa1AQ 만우관 오산캠퍼스의 경우 가장 오래 되었으며 사실상 한신대 건물의 메인을 차지하고 있는 만우관을 기준으로 좌우로 넓게 퍼져있다. 교문에 들어서자마자 만우관이 보이고 그 뒤는 아무것도 없는 산이므로 얼핏 다른 대학교들과 비교해봤을 때 그다지 크지 않아 보이지만 아마도 생각보다는 크다.여기에서 대학별 부지 면적을 이미지로 보았을 때 한신대 정도면 작은 편에 속하긴 하지만 아주 작은편까진 아니다. 만우관의 경우 처음 들어가는 사람은 길을 잃을 정도로 강의실 호수 배치가 엉망이였다. 그리고 만우관은 지하부터 5층까지 지상으로 나갈 수 있는 통로가 각 층마다 있는데 이는 80년대 전의경들의 급습을 막기 위한 조처라는 해석이 있다. 통로들이 산으로 이어져있다. 지하부터 꼭대기층까지 계단을 통하지 않고 건물 밖으로 나갈 수 있는 구조가 이러한 의심에 확신을 더한다. 덕분에 학기 초엔 강의실을 못찾아 미아가 되는 신입생이 꼭 한두명씩 생긴다. 만우관 뒤에는 세마대로 올라가는 길이 있는데 과거 학생들이 이곳에 화염병을 묻어두는 장소였는지 비가 오면 흙이 쓸려 드러난 화염병들을 발견할 수 있다. 늦봄관을 건축하면서 다수의 화염병이 발견되었던 사례도 있다. 직접 발굴하여 기념품으로 가져가는 사람도 있다 카더라 구조가 워낙 복잡하다보니 정보통신학과에서 매년 축제마다 귀신의 집으로 잘 활용한다. 3.2.1.5. 샬롬채플관 : 교회당[편집] 파일:external/http://bit.ly/2RfQCuR 샬롬채플관 지하는 카타콤 형태 비밀의 공간이 많다. 3.2.1.6. 임마누엘관 : 학생회관[편집] 파일:external/http://bit.ly/2GGD1J2 임마누엘관 서점과 안경점 우편취급국 학생식당이 있다. 맛과 가격은 보통 수준. 업체가 바뀐뒤로 가격은 오르고 맛은 떨어졌다. 3.2.1.7. 경삼관 : 중앙도서관[편집] 파일:external/http://bit.ly/2RnshU8 경삼관 한신대학교의 도서관이자 한신대학교 정문 안 버스정류장이다. 여기서 정문이라고 하는 표현은 틀리진 않았지만 매우 미묘한데 '한신대학교 입구'라는게 따로 있기 때문. 다만 입구라는게 저 멀리 송산교 앞 사거리에 있다. 실제 한신대에서 한신대 입구까지��� 거리상 버스로 무려 3정거장이나 된다. 실제로 어떤 기능을 한다고 보긴 어렵지만 그래도 주소상 한신대길은 한신대 정문에서 입구까지 쭉 이어져있다. 또한 정류장이라곤 하나 경삼관 앞에선 하차만 가능하다. 3.2.1.8. 소통관 : 교수동[편집] 파일:external/http://bit.ly/2GHa4g0 소통관 3.2.1.9. 창업보육센터 : 실습동[편집] 송암관 좌측에 위치해 있으며 두 건물은 통로로 연결되어있다. 3.2.1.10. 한울관 : 체육관[편집] 파일:external/http://bit.ly/2Rh8g1n 한울관 3.2.1.11. 성빈학사 : 기숙사[편집] 파일:external/http://bit.ly/2GDJy7a 성빈학사 맨 좌측 건물이 신관이고 중앙과 우측 건물은 구관이다. 3.2.1.12. 새롬터 : 영상문화관[편집] 파일:external/http://bit.ly/2Rh2hcQ 새롬터 좌측의 2층짜리 건물이다. 1층은 영상문화관 2층은 카페가 들어와 있다. 3.2.1.13. 해오름관[편집] 파일:external/http://bit.ly/2GHliBc 해오름관 과거 제 3 강의동이었지만 학교에서 주관한 한신 건물 명칭 공모전 결과 해오름관으로 정해졌다. KB국민은행 한신대학교 지점이 이 건물 안에 들어와있다. 1층에 여학생 휴게실(= 여정)이 있어서 공강시간 꿀잠에 유용하다. 심리아동학부 전용 건물이라 카더라 3.2.1.14. 송암관[편집] 파일:temp_1504857559326100.jpg 송암관 3.2.1.15. 60주년 기념관[편집] 파일:60주년기념관.jpg 60주년 기념관 교문에서 가장 먼 건물이다. 건물 번호가 18이기에 흔히 "일팔관"이라고 지칭한다. 이 건물에 수업이 있는데 지각하면 자신도 모르게 입에서 건물 동수가 나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아 지각이네 ! 이런 18동 3.2.1.16. 늦봄관[편집] 파일:external/him.hs.ac.kr/3008_2094_2312.jpg 늦봄관 늦봄관은 한신대학교 동문이자 사회운동가였던 문익환 목사의 호를 따서 지어진 건물이다. 가장 최신 건물이라 냉ㆍ난방 장치와 인테리어가 잘 되어 있다. 또한 만우관과 구름다리로 연결되어 있으며 엘리베이터를 이용할 학생들은 만우관에 있는 엘리베이터를 탈 수 있다. 3.2.1.17. 한신어린이집[편집] 파일:external/http://bit.ly/2Rh2hJS 한신 어린이집 가끔 꼬마 아이들이 학교 내에서 돌아다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바로 어린이집 아이들이다. 새롬터 앞 연못에 올챙이를 풀어놓기도 했다. 3.2.1.18. 기타[편집] 한신공원 오월계단 : 붉은 광장 만우관 앞엔 빨간벽돌로 만들어진 광장이다. 파일:external/him.hs.ac.kr/3382_2504_244.jpg 1987년에 문익환 목사의 강의를 듣기 위해 오월계단에 모인 학우들 (이미지 출처) 과거 운동권 학생들은 이것을 붉은 광장이라 불렀다고 한다. 그러나 "붉은 광장"이라고 처음 부른 것은 학생들이 아니다. 80년대 중반 당시 대한민국 제5공화국 정권은 상기 언급한 류동운 열사비를 엄청난 수의 경력과 포크레인을 동원하여 부수려고 했는데 학생들의 격렬한 반대시위와 학생들을 보호하기 위한 (당시의) 학장을 위시한 교수들의 항의로 열사비를 제거하지 못하고 결국 양측이 대치하게 되었다. 이 때 5공화국 정권이 KBS 방송 헬기를 동원하여 상황을 왜곡 보도하게 하였고 헬기에서 보도하던 KBS 방송국 기자는 레드컴플렉스를 이용하기 위해 한신대 상공을 돌면서 강의동 안쪽의 붉은 보도블럭이 깔려 있는 곳을 "마치 소련의 붉은 광장처럼 생겼다"고 했다. 이 때부터 학생들이 이를 따라 이 곳을 붉은 광장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열사비/추모비 이해진 동지 추모비 : 국사학과 84학번으로 노동해방운동과 민주화운동에 앞장선 이해진 동지 곽현정 동지 추모비 강민호 열사 추모비 파일:external/minjuroad.kdemo.or.kr/EABEB8EBAFB8EAB8B0_EAB095EBAFBCED98B8.jpg 박태순 동지 추모비 류동운 열사 추모비 : 만우관에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희생자인 류동운열사 추모비가 있는데 전두환 재임기간에 세워진 추모비인지라 이를 제거하기 위한 시도와 이 시도에 대한 저지가 많았다고 한다. 파일:external/newscell.co.kr/e1d5c384b49b34be421a1dee8e369954_KONBmkTF.jpg 노인정(청년정) 뽀뽀동산(에덴동산) 정문 옆 장승 지금은 여장군이 부러져 홀아비가 된 남장군이 쓸쓸히 서있다. 3.2.2. 오산 캠퍼스 주변 상권[편집] 병점역 후문 일대에서 한신대학교 앞까지는 대부분 논밭으로 상권이랄 것이 별로 형성되어 있지 않다. 후문에 상권이 들어설뻔 했으나 정문쪽 상인들의 강한 반대로 무산되었다. 그래도 병점역의 영향으로 학교 정문 측문 후문 일대에는 주거지가 형성되어 있으며 학교 정문 쪽에는 어느 정도의 상권은 형성되어 있다. 학교 정문과 어느 정도 거리가 있어 왕래 중에 잘 보이지 않아 알아채기 어려운 사실이지만 60주년 기념관 앞 문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있는 백년가약 및 e편한세상 아파트는 각각 약 400세대 1600세대에 달하는 엄청난 대단지다. 병점역 후문 근처 및 마을버스 운행구간 사이의 논 밭 하천이 워낙 시각적 임펙트가 강해서 그렇지 실제로 오지/벽지는 아니다. 3.2.2.1. 편의점/음식점/주점[편집] 세븐일레븐 (교내 기숙사 교외) CU (교내 교외) GS25 미니스톱 한신사거리포차 한신식당 몽상 new! 도담치킨 new! 도스마스 내가 만든 찜닭 아벡데프리츠 나누리 배꼽 장수짜장 청반점 봉구스 밥버거 구 한솥도시락 위치 해뜨는집 해우리 제일식당 GO치불 찌개동아리 여기서먹자 전설의치킨 꼬꼬마루 이삭 토스트 더좋은식당 소문난 부대찌개 남원순대국 보보치킨 정감포차 치어스 고궁 진현가든 대광막창 할매국밥 콩박사 대학가임에도 프랜차이즈가 없기로 유명하다 3.2.2.2. 문화/오락시설[편집] 빈말이 아니라 정말로 별거 없다. PC방이 2개있고 노래방과 당구장이 몇개 있다. PC방은 1시간에 1200원선이다. 나누리 옆에 붙어있는 지하 1층의 노래방을 가야 한다. 그 곳 사장님이 제대로다. 2013년도엔 5천원에 4시간도 불렀다. 여기 외에 다른 노래방은 절대 가지 말자. 안 가는 이유가 있다. 다만 2018년 현재 기준으로 코인 노래방이 생겨서 수입이 시원찮으신 모양이다. 제대로 된 문화/오락시설을 찾고자 한다면 병점역이나 수원역까지는 나가야한다. 다만 2018년에 정감포차 2층에 STORY PC LAB이 오픈했다. 가격이 비싸다고 한다 3.2.2.3. 주거시설(원룸)[편집] 2011년 이후로 학교앞에 외지인들의 원룸건축��� 상당히 증가했다. 그러나 그만큼 집주인들의 재정적 문제도 심각한 편 집주인의 재정적인 문제로 특히 전세나 월세의 보증금을 돌려 받지 못하는 경우가 심심치 않게 나타나고 있다. 부동산 거래도 쉽게 믿어지지 않는 편이다. 학교 앞 부동산이 학교 앞 매물을 독점하고 있는 형태이다. 참고로 원룸거래는 건물에서 집주인이 상주하는 경우 집주인과 직접 거래하도록 하는 것을 추천한다. 푸른집 오렌지촌 65점집 통일촌 남도촌 아카텔 하나주택 한신빌 이콜빌라 지산빌라 리더스빌 아뜨리움 드래곤빌 진영빌 로얄빌 세종빌 중앙원룸 청아 한신빌 한신 오피스텔 AD동 이레빌 그린빌 로하스빌 3.2.3. 교통편[편집] 3.2.3.1. 직행좌석버스[편집] 본교를 출발지로 하여 강남역행 1550-1번 노선을 운행하고 있다. 1550-1번은 평소에도 한신대 학생이 많이 타는 노선이였으나 1553번 7200번이 폐선된 후 서울이나 경기 북동쪽에 사는 학생들의 해당 노선 이용률이 더 크게 늘었다. 왜냐하면 전철로 병점역까지 오기에는 애매한 위치이기 때문. 따라서 아침 시간대에 강남역에서 앉아서 가기 힘들며 굳이 앉아서 편히 가고 싶다면 평소보다 최소 30분 일찍 출발해야 한다. 직행좌석버스는 2011년 2월부터 운행하기 시작 했으며 대원고속이 한신대학교와 합의 끝에 동탄 구간을 단축하고 본교를 출발지로 하여 현재까지 운행중에 있다. 1550-1번 문서를 읽어보면 알겠지만 위의 합의 내용 중에 차고지 신설도 있었다. 그 때문에 학교내 대원고속 한신대 차고지(영업소)가 존재한다. 직행좌석버스 노선의 등장으로 성남(신갈 영통) 잠실 사당에서 운행하던 셔틀버스는 없어지게 되었고 학교 내 버스정류장의 모습도 이전의 한신관광 도색 일색이었던 것에서 빨간색 도색의 직행좌석버스가 도배하게 되었다. 직행좌석버스는 원래 기숙사 앞 버스정류장에서만 승하차가 가능했다. 정류장 명은 '한신대학교스쿨버스정류장'이다. 또한 정류장 번호는 상행 24-342 하행 24-343이다. 하지만 캠퍼스 자체가 가로로 긴 탓에 강의동에서 캠퍼스 서쪽 끝까지 이동하기에는 먼 편이다. 그래서 오산시와 진통 끝에 캠퍼스 정문 진입로에 들어가기전 사거리 좀 더 정확한 위치는 GS25 편의점과 새마을금고 ATM기 부스가 있는 곳과 그 맞은편 빵집 근처에 버스가 정차하게 되었다. 임시정류장이기 때문에 방송은 없으나 대부분 학생들이 내리기 때문에 큰 걱정은 없으며 승차할 때에도 역시 이쪽에서 승차가 가능하다. 3.2.3.2. 수도권 전철 1호선[편집] 1호선 병점역이 있다. 병점역의 부역명도 한신대다. 급행이 정차하기도 하고 서동탄역이나 병점차량사업소 방면으로 오는 텅텅 빈 열차를 탈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다만 캠퍼스까지 걸어가기에는 거리가 멀다. 따라서 대부분의 학생들은 후술할 마을버스로 환승한다. 만약 급한 경우에는 2번 출구 앞에 있는 택시정류장을 이용하면 된다. 3.2.3.3. 마을버스[편집] 파일:한신대학교 심볼마크.jpg 한신대학교 경�� 마을버스 55 56 56-2 57 병점역에서 내려 병점역 2번 출구(병점역후문)로 나가면 학교를 오가는 마을버스가 존재한다. 마을버스는 한신교통의 56번 버스 56-2번 버스 57번 버스로 길을 건너지 않은 정류장에서 출발하여 한신대길을 통해 학교로 들어간다. 그리고 캠퍼스 정문으로 들어가기 전 사거리의 GS25 앞쪽과 그 맞은편 빵집 앞에는 병점역 2번 출구에 정차하는 55번 버스가 정차한다. 이 55번은 통학인원들이 많은 시간대에 56번과 같은 노선을 달리기도 한다. 캠퍼스 정문의 등산로에 가까운 경사때문에 주로 기숙사로 돌아가려는 소수 학생들만 이용한다. 55번은 자정이 가까운 시간까지 운행해 학교 근처에서 알코올과 함께 하는 인생 공부하다가 밤 늦게 귀가하는 학생들이 멀찍이서 오는 버스를 발견하고서는 수지맞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한때 학교를 오갔던 두 노선의 버스가 병점역에서 다른 정류장을 이용하고 있는 바람에 등교시간대만 되면 학생들이 버스가 오는 방향을 따라 길을 우르르 건너는 사태가 발생했고 이로 인한 안전문제가 대두되어 2011년부터는 모든 버스가 아침과 점심 등교시간대에 한해서 예전에 셔틀버스가 사용하던 병점역 셔틀버스 정류장을 이용하게 되었다. 현재엔 스쿨버스와 마을버스가 병점역 2번출구 통학버스 승차장에 구분없이 들어오고 있다. 통학생이 가장 붐비는 시간대인 오전 8시 50분부터 9시 반까지는 약 510분 간격으로 온다. 실제론 배차간격은 거의 의미가 없고 한번에 두세 대씩 한꺼번에 들어오기도 한다. 방학 중에는 아예 운영 자체를 하지 않는다. 주요 등교시간 블록 상의 1교시와 2교시 시작 직전 30여 분에는 학생들이 너무 많아 지하철 출구와 가까운 쪽 버스정류장에선 승객을 태워주지 못한다. 그러나 한가로운 시간대엔 노선대로 지하철 출구 바로 앞 정류장에서도 버스 탑승이 가능하다. 하지만 중복 승차로 인해 시간이 불필요하게 소모된다는 글이 한대전에 올라오기도 했다. 2011년 9월(2학기) 이후 그 동안 마을버스의 편리성에 밀려 영영 사라질 줄로만 알았던 셔틀버스가 교내로 들어오게 되었다. 원래는 마을버스가 정작 교내에서 하차해줌에도 불구하고 명색이 학교 셔틀버스가 학생들을 교문 밖에 내려줬다. 사라질법 하네 하차하는 지점은 경삼관(도서관) 앞과 60주년 기념관 앞이다. 또한 마을버스 역시 주요 등교시간인 오전 11시까지는 경삼관 앞 뿐 아니라 60주년 기념관에서 하차할 수 있다. 또한 주요 하교시간인 오후 4시부터 송암관 맞은편 승차장에서 교내로 들어오는 마을버스 및 배차되는 셔틀버스를 타고 학교를 빠져 나갈수 있다. 3.3. 한신대학교 서울 캠퍼스 (수유동) [편집] 파일:external/http://bit.ly/2GQPNV8 한신대학교 서울 캠퍼스 수유동 캠퍼스는 수유역 3번 출구에서 강북 02번 버스를 타고 몇정거장을 거치면 도착할 수 있다. 학교 주변 상권은 주택가여서 한산하며 학교를 의식해서인지 주변 카페만 6군데가 넘는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학교 안의 행복커피에 가는 건 함정 더불어 주점과 치킨집도 근처에 4군데 이상 있다. 화계사 근처 거주민들과 옆의 화계중학교 혜화여자고등학교가 있기에 학생들을 대상으로 장사가 이뤄지는 듯하다. 어차피 신학대학원 학생들 총인원이 200명 정도 되기에 장사 안 된다 학교 운동장 옆 벤치에 노숙자들이 상주하고 있다. 이들은 7명정도 되는 공동체(?)를 이루며 하루에 1명씩 번갈아가면서 일용직 노동을 하고 받은 일당을 나누어 거하게 한잔씩하며 나름 자족자급한다지만... 여전히 노숙자는 노숙자인지라 악취와 소란이 그치진 않는다. 그러나 학교 운동장과 기숙사 앞 민영공원이 서울시와 협업하여 개방은 했는데 주민들이 시민공원급으로 이용하고 민영공원은 하루밥상 식당에서 자기땅 행세를 해서 학교가 더 좁아진 느낌이 든다. 그런데다가 운동장에서 행사를 하면 술취한 취객들이나 노숙자들이 학교로 올라와 노상방뇨를 해대고 여학생들을 성희롱 도서관 유리창을 돌로 깨뜨리는 등의 치안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다. 그런데도 이 학교는 분교이기 때문에 학교 운영에 대한 자치권이 없다. 그래서 신대원 학생회와 여학생회는 이 자치권을 얻길 요구하고 있다. 3.3.1. 캠퍼스 건물 현황 [편집] 정문 예배당(채플실) 장공기념관(본관) 장공도서관 백석관(연구실) 만수관(생활관) 4. 학풍 및 학내 정치성향 / 강의 특징[편집] 한국 진보 학풍의 양대 산맥 애초에 학교를 소유하고 있는 기독교 교단의 신학이 진보적인 편이었고 종합대학 설립 당시에는 광주 민주화 운동 또는 학생운동에 참여한 사람들이 주축을 이루었기 때문에 진보적 성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80년대 대학생들이면 한번씩은 민주화 운동에 참여 해봤다고 치더라도 타 대학교 보다 평균 이상으로 학생들의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강하였다. 지금과 마찬가지로 당시에도 솔직히 입학성적이 높은 편이라고는 할 수 없었기에 되려 민주화 운동에 뜻이 있으나 성적은 별로 좋지 못한 고등학생/수험생들이 일부러 민주화 운동을 열심히 하기 위해 한신대를 선택하는 경우가 있었다는 후일담도 있을 정도이다. 당시의 재학생이었던 동문들의 증언에 따르면 학교 정문 진입로는 연일 최루탄 냄새와 전경들이 가득 메웠고 꽤나 살풍경한 분위기였다고 한다. 그러나 87년 체제 이후 형식적이나마 사회 전반에 걸친 민주화가 이루어졌고 이러한 시대적 흐름을 따라가지 못한채 구태만 답습하던 운동권들의 각종 병크로 인한 반감과 IMF이후 취업문제 등으로 관심사가 옮겨지면서 진보의 색은 점점 퇴색되어 갔다. 결국 학생들 사이에서는 껍데기만 진보라는 비판이 존재한다. 그러나 반대로 보수적인 성향의 학생은 학교가 전반적으로 너무 좌파 지향적이지 않느냐는 비판도 분명히 존재한다. 학생들 사이에서 진보적인 대학인 성공회대학교와 대비되어 언급되는 경우도 종종있다. 결론적으로는 중도진보 신학대학교 간에는 일반적으로 보수도 천주교 군인 성가집에 수록된 마당에 새삼스러울것도 없지 않은가 원래 NL계열 운동권을 상징하던 노래로서 ���학생회에서 PD계열이 당선되면 인터네셔널가를 NL계열이 당선되면 민족한신 진군가를 부르는 전통이 있었다. 음이 엄청 높다 항전의 역사를 일군 선배들의 숨결 안에 민족한신 이름높이 투쟁속에 살아온 우리 보아라 조국이여 통일의 새 역사여 단결의 교훈으로 큰 물결을 이루니 투쟁의 함성 조국을 흔들어 역사 위에 영원하라 민족한신이여 보아라 조국이여 통일의 새 역사여 단결의 교훈으로 큰 물결을 이루니 투쟁의 함성 조국을 흔들어 역사 위에 영원하라 민족한신이여 역사 위에 영원하라 민족! 한신! 투쟁! 투쟁! 투쟁! 위의 노래가 나오기 전에 이미 80년중반부터 90년 중반까지 학생들 사이에 거룩하게(?) 불렸던 노래가 있다. 민족 한신가 우리가 사는 이 땅에 억압과 가난 분열에 싸여 이제는 이 사슬끊고 나가야 해 웅크린채 결코 시들지 않으리 갈라진 이 땅 하나됨 위해 용솟음쳐라 민족 한신여 우리 함께 사는 세상 다시 만들자 이 땅 위에 살기 위하여 (2절이 존재한다 추가하기 바람) 6. 같이보기[편집] 한국의 개신교: 특히 역사 항목. 장로회 한국의 장로회 한국기독교장로회 신정통주의 성서해석학 WCC 목사 문익환 : 한신대가 학교 측에서 스스로 역사라고 주장하는 인물들 중 특히나 한신대학교와 관련이 깊은 사람이다. 윤동주 시인이나 정치인 장준하의 경우 사실 한신대학교와 겹치는 부분이 그렇게 크지는 않아 직접적으로 같이보기에 기재하기는 그렇지만 해당 항목의 내용을 일부 참고하면 좋다. 그 외 한신대학교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인물들은 정작 위키에 항목이 없다 보니... 이하의 학교들은 학교 설립 초기 역사는 한신대와 공유하는 부분이 많다. 연세대학교 숭실대학교 총신대학교 성공회대학교 7. 관련인물[편집] 가나다순으로 정렬해주시기 바랍니다. 나무위키에 등재될 정도의 저명성 있는 인물만 기록 가능합니다. 7.1. 정치/사회/종교/학계[편집] 김재준 전)한신대 총장 도올 김용옥 철학자 김규항 발행인 김형식 전)서울시 시의원 문익환 통일운동가 목사 학자 장준하 사상계 발행인 독립 운동가 문동환(정치인) 이규호 전)문교부 장관 박순석 전)국회의원 이우정 여성학자 양권석 전)성공회대학교 총장 이정구 성공회대학교 총장 유석성 안양대학교 총장 황선조 선문대학교 총장 이경호 대한성공회 서울교구 6대 교구장 김성재 경인방송 회장 전 청와대 민정수석 한명숙 전 국무총리 이철희 국회의원 썰전 이창복 6.15공동선언실천남측위원회 상임대표의장 고희범 전)한겨레 신문 사장 제주4.3진상규명 명예회복추진 범국민위원회 인명진 목사새누리당 비대위원장 강원룡 경동교회 목사 김상곤 전 경영학과 교수 전 경기도교육감 전 교육부장관 부총리 권도원 한의사 (8체질의학 권위자) 김대벽 사진작가 (문화재 기록 전문 사진가 전 서울예대 교수) 황지우 전 문예창작학과 교수 전 한예종 총장 권오영 전 국사학과 교수 현 서울대 인문대 국사학과장 안병무 전 신학과 교수 민중신학 발원자 7.2. 문화/예술/연예계 인물[편집] 강맑실 사계절 출판사 대표이사 이상용 출판사 휴머니스트 대표이사 김규항 출판사 고래가 그랬어 대표이사 윤미향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상임대표 구수정 한국베트남평화재단 이사 정문태 한겨레신문 분쟁지역 전문기자 박화목 아동문학가시인 고정희 시인. 여성신문 편집주간 김대벽 사진가 이지상 영화감독 이준혁 배우 허준(게임캐스터) MC 송용진 뮤지컬 배우 김용민 시사평론가 MC 정을병 소설가 송우혜 소설가 조동범 시인 함정임 소설가 [1] 수원시에 위치한 수원영생고등학교가 같은 법인에 속해있다. 한국신학대학시절 서울특별시 도봉구에 위치한 한신초등학교도 한신학원 산하에 있었으나 1982년 12월 10일 심산학원으로 학교 법인이 바뀌었다. 설립 이념은 '믿음 소망 사랑'으로 수원영생고등학교도 같다. [2] 그리고 이것이 장로교 총회에서 인정받지 못해 신학교가 정식으로 인가받지 못함에 따라 장로교 주류와 고신파 사이의 갈등은 더욱 심각해졌다. [3] 이 문단은 주의해서 읽어야 한다. 한신대 입장에서 '자유주의 신학'을 정의해서 그것을 누명이라 할 수도 있지만 보수 신학자들의 정의는 다를 수 있고 따라서 여기에 서술된 자체를 자유주의 신학이라 칭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자유주의니 어쩌니 하는건 다른 보수교단에서나 민감할 사항일지도... 한신대에선 칼바르트가 가장 오른쪽 취급을 받고 조직으론 라가츠의 종교사회주의나 최근엔 화이트헤드와 과정신학까지 성서학은 역사비평을 넘어 포스트콜로니얼리즘에 기반한 해석학까지 왼쪽 스펙트럼으로 가르치는 성향이 짙다. 오른쪽을 모른다는건 아니다. 그리고 소위 (보수교단보다 비교적으로) '진보신학'을 자긍심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한신대 신학생들한테 가서 자유주의 욕해봐야 언제적 자유주의? 라는 질문을 받을수 있다. [4] 그러나 경기노회가 김재준을 면직시키지 않았기에 결국 다음해(1953) 4월에 열린 38차 대구총회에서 총회장이 직접 면직을 선언했다. [5] 대한예수교였다고 설명하는 글도 있다. [6] 물론 기장 그들만의 총회다. 단지 자신들이 정통이라고 생각하여 총회 회기를 잇는 것 뿐 [7] 성경'은 신적 권능에 의해 전승된 유일무이한 권위를 가진 '경전'으로서 문자적 의미 그대로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봄 [8] 성'서'는 하나님을 체험한 인간들이 생산한 역사적 전승이므로 역사적 컨텍스트를 기반하여 그 한계를 인정하고 해석 연구된다고 본다. 최근엔 고등비평보단 역사비평이라는 이름이 더 적합하고 요즘은 보수교단소속 성서학자들도 상당수가 역사비평을 사용함 [9] 그래서 일부에서는 개혁주의를 다시 바로 세우기 위해 나타난 경향이라고도 한다. 그 외 신학자이자 실존주의에 속하는 철학자인 키르케고르의 영향도 많이 받았다. [10] 훗날 강원대학교가 되는 춘천농업대학교 학장 함인섭의 부친이기도 하다. [11] 부친으로부터 상속받았다고 한다. [12] 2014년 수리금융학과로 개편된 이후에는 변화에 따라 수정바람. [13] 한신대의 경우 학생증이 국민은행의 체크카드로 만들도록 되어있다. [14] 일반적으로 학생이 수강할 수 있는 최대 학점이다. [15] 2010년 기준 전국대학 34위 출처는 교육통계데이터베이스. [16] 1차 필기시험 1등 2차 면접시험 1등 http://bit.ly/2Rh2ig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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