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비언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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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것
* 간접적인 가정 폭력 묘사가 나옵니다.
서연은 가족들과 화해한 이후에도 알 수 없는 화가, 종종 끓어올랐다. 울면서 울면서 토했던 것들은 감기가 아니라 가래뿐인 것 같았다. 매일 화가 나는 건 아니었는데, 맞지 않는 부분이 속속 드러나는 시기마다 집을 뛰쳐나가고 싶었다. 친구들에게는 이러지도 않는데. 가족들에게만 마음이 좁아졌다. 앞으로는 잘 지내보자 악수를 건넨 뒤에도 손에 들린 짐은 가벼워지지 않았다.
내가 화가 많은 사람인걸까? 과제를 끝내고 누워서 내내 생각했다. 생각은 쏜살같이 달리고 시간은 어느덧 새벽이었다. 만약 뒤끝이 없는 성정이라면 모두가 좋은 성격으로 탈바꿈했다며 좋아할 수 있는 걸까? 그래 많이 변했지. 이제는 화 안 내고 이러더라. 웃으면서 하루를 돌아볼 수 있게 되는 걸까?
이제는 누구도 서연에게 소리치고 윽박지르지 않았다. 누구도 서연의 머리채를 잡거나 회초리를 집지 않았다. 누구도 접시를 던지지 않았다. 머리채를 잡고 회초리를 부러뜨리고 접시를 깨뜨린 사람들은 서연에게 죄 사과했다. 사과한 사람들은 서로에게 준 악영향을 시인하고 머리 숙였다. 서연은 그래서 괜찮다고 생각했다. 사과를 받았고, 서연은 용서했다. 이거면 되었다고. 항상 두려웠던 가족의 틈이 이제는 괜찮아지리라 믿었다. 사실 서연은 그 공간을 벗어나고 싶었다. 누군가를 오래 미워하고 싶지도 않았거니와 모두가 서연의 눈치를 살피고 서연에게 용서를 구하고 죄책감으로 행동하는 그 시간에서 탈출하고 싶었다. 그래서 알겠다고 했다. 또 이런다면 다음은 없을 거라고도 덧붙였다.
그런데도 서연은 이따금씩 자신의 방문을 벌컥 열고 들어오는 가족들이 싫었다. 문을 그냥 열어버리든 노크하든 상관없이 화가 치밀었다. 가능하다면 그 문을 잠가버리고 방에 갇히고 싶었다. 그들이 하는 말이 단 것이든 쓴 것이든 뭐든 상관없었다. 언젠가는 방 곳곳에 흡음재를 덕지덕지 붙이는 모습을 상상했다. �� 사춘기가 스물 중반이 되어서도 이어지고 있는 듯했다.
누군가의 사과를 반드시 받아줘야 하는 건 아니다. 그건 서연도 잘 알았다. 사과를 받기로 했더라도 꼭 용서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도 알았다. 그런데 가족의 틈에선 그게 잘 안 됐다. 어차피 평생 봐야 하는데……. 가족의 연을 끊을 정도로 서연에게 남은 화가 크지 않은데. 이제는 다들 서연에게 윽박지르지도 화내지도 않는데. 무엇보다도 내가 그 사과를 받아들였는데……. 가족 간의 화해는 으레 진심 어린 사과와 용서로 모두 끝나는 것처럼 그려진다. 사람의 화라는 것은 순간순간 자주 과소평가되는데도. 누군가의 오열 앞에서 번번이 딸이 가지고 있는 화는 작아졌다. 그래서 그때는 그 상황만을 모면하고자 손을 내민다. 뒤돌면 화가 난다. 하지만 화해 이후에 화를 드러내기가 어려웠다. 서연의 화는 그렇게 서연 안에서 축소된다.
서연은 그 화를 축소해서 변덕이 심해진 마음에서 나오는 짜증이라고 일축한다. 그렇게 일축하고 나면 서연의 짜증은 온전히 서연의 것이 되었다. 그 화와 짜증은 서연의 몸에만 쌓였다.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분투다. 계속 자기만의 방에 짜증을 한 움큼 쌓아 두고, 저의 방에 들어와 서성거리는 그림자에 대답한다. 공부를 핑계로 대답을 소홀히 한다. 누군가가 나가고 나면 의자에 축 늘어져서 핸드폰을 댓 번 확인했다.
서연은 언제고 침범되지 않을 독립된 창과 공간이 필요했다. 자기만의 방이 단순히 자신이 홀로 쓰는 방을 의미하지 않는 것처럼, 서연에게 필요한 방은 원하지 않는 사람이 문을 두드리지도 들어오지도 않는 방이었다. 짧게나마 경험한 독립 생활은 쓸쓸하고 버거웠지만, 다시 돌아온 본가 생활은 컨트롤할 수 없는 분노 때문에 힘겨웠다. 그래서 어느것도 쉽게 엄두를 내기 어려웠다.
누군가의 귀가를 기다리는 집. 서연은 그런 집이 부러웠다. 서로의 공간을 지키며 살아가는 집. 집에는 혼자 살더라도 근처에 누군가가 살아서 그 지역이 우리의 집이 되는 시간. 그럴 수만 있다면 서연은 혼자 살 수 있겠다 싶었다. 집을 쓸고 닦고 분리수거하고 계획을 세우다가 본가를 빠져나간다면. 언젠가 마주할 과거를 쓸어 담고 보듬다가 분리배출할 수 있지 않을까. 과거와 과거에 가진 우울을 보듬는다는 것은 그 시절도 아름다웠다며 추억하는 것과는 다르니까. 그때의 우울을 보듬고 이제 지향할 점을 새로이 잡는 일이었다.
이제 서연은 가족들이 잘못했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기로 했다. 서연의 분노가 그들과의 과거에서 왔다는 것을 인정했다. 울컥 치미는 화가 저의 예민함 때문이 아니라고. 화를 내다가 끝끝내 회피했기에 남은 화가 쪼개져서 분기마다 차오르는 거라고. 하지만 회피도 저의 탓이 아니라고 스스로를 위���했다. 엄마언니아빠 모두를 용서하지 못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라고. 그들의 방조나 합리화나 폭력을, 순간은 용서했더라도 응어리가 남을 수 있다고.
그리고 서연은 당장은 아니더라도 집에서 영영 나가기로 다짐한다. 서연과 늙어서도 함께 지내면 좋을 것 같다는 엄마의 말을 끊어내기로 한다. 독립된 창을 가지고 그 창으로 세상을 보며 과거를 예기치 않게 마주하더라도 일주일 내내 슬퍼하지 않을 수 있도록. 서연은 모두가 잠든 새벽에 문을 잠갔다가 다시 푼다. 현관문을 나서는 모습을 그려봤다. 서연은 공용기기가 없는 저의 방을 그리다가 잠에 들었다. 쪼개져 나온 화가 꿈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퍼진다. 서연은 꿈에서 얼음을 깼다. 쪼개져 나온 얼음은 뜨거운 빛에 녹였다. 이내 땅으로 땅으로 물이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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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저장된 메시지입니다
안녕, 요새는 네게 편지를 받기만 한 것 같다. 원래는 나만 너에게 편지를 써서 보냈는데 말이야. 이마저도 네게 보낼 편지는 아니니 편지라고 부르기도 애매하네. 언제쯤 보낼 수 있는 편지를 쓸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 언젠가는 이 마음을 이름을 걸고 적을 수 있는 날이 오겠지. 이제는 마음이 어느정도 평안해졌니. 걱정하던 실습도 잘 마쳤고? 언제든 네게 문자를 보낼 수 있는데도 현실에 이리저리 치여 살다 보면 그 빈도가 줄어드는 것 같아. 잘 지내고 있니. 네가 말할 수 없다던 그 일은 잘 해결되었니. 궁금한 것은 무척 쌓여가는데 만나기가 어렵다. 가기로 했던 바다 여행은 이제는 기억도 나질 않고 우리는 우리 사이의 거리만큼이나 멀리 걷고 있어. 이제는 고등학생 시절처럼 바투 붙어 길을 걸을 수 없다는 건 너도 알고 있지?
나는 그게 불가능한 일이더라도 네가 언제나 행복했으면 좋겠어. 힘들면 달팽이가 집에 숨듯 사라지는 네게 할 수 있는 말은 이것뿐이야. 살고자 하는 마음만으로 살아지지 않는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알아. 그렇지만 나는 네가 어떻게든 살아서 지냈으면 좋겠다. 너와 영영 연락이 닿지 않게 되더라도 나는 네 삶을 확신하고 싶어. 평생 보지 못하게 되더라도 네가 잘 살고 있으리라고 확언하고 싶다. 여진이 잘 지내? 그런 질문에, 요즘 잘 연락 못하긴 해도 잘 지낼 거라고. 그 애는 언제나 건강하려고 하는 애니까 잘 지낼 거라고. 그렇게 답하고 싶어. 서로 안부를 묻는 시간이 너와 나 모두에게 즐거운 일이었으면 좋겠어. 우리에게 각자 힘든 일이 있더라도 투엑스라지 해피니스로 완결낼 수 있었으면 해.
병원을 다녀보라는 말을, 돈이 없어 끙끙대는 너에게 당장은 할 수 없어서 미뤄두었지만 네가 꼭 병원에 다녔으면 좋겠어. 네 결과물에 대한 지적을 너에 대한 지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좋겠어. 가족의 짐을 네가 다 떠안지는 ��았으면 좋겠어.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보다는 잘 살고 싶다는 염원을 입에 잔뜩 달고 살면 좋겠어. 무언가를 그만둔다고 생각하기 보다는 이제부터 새로운 것을 시작한다고 생각했으면 좋겠어. 무엇으로부터든 도망치기로 결심했을 때는 그 순간부터 아주 빠르게, 반대편으로 달렸으면 좋겠어. 이렇게 너를 생각하면 바람이 잔뜩 늘어나서 입을 죽이려고 노력하게 된다. 어떤 말들은 응원의 의미더라도 짐이 되니까. 나는 자꾸 말을 죽였어. 그저 밥을 잘 챙겨먹으라고 널 닦달하고 냉동밥 세트를 선물했지.
나도 사실 강한 사람은 아니야.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너에게 한참 잔소리를 쏟아대던 시절엔 나도 함께 불안했어. 자취방 한 편에는 배달용기가 마구 쌓였고 냉장고에는 버려야 할 쉰 음식들이 늘었어. 김치는 너무 쉬어서 먹으려면 물에 벅벅 씻어야 했어. 백김치처럼 하얘져도 신 맛이 남아있었어. 유통기한이 지난 햇반 몇 개만 집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지. 나아지려는 의지도 생기질 않아서 침대에서만 생활했어. 새벽에 깨어나서 먹지도 못할 음식들을 시켰어.
그런 상태더라도 나는 가끔 네가 놀러오는 날이면 방을 뽀득뽀득 닦았어. 마음 약한 네게 이런 모습을 들키기가 싫었으니까. 나는 네게 강한 면들을 보여주고 싶었어. 최대한 단단한 면을 네게 내어주고 싶었어. 그래서 한 편에 잔뜩 쌓인 쓰레기를 분리수거하고 음식물을 두세 번씩 비웠어. 화장실을 솔로 닦고 거울에도 물을 뿌렸어. 또 네가 놀러온 날이면 쓰레기를 바로바로 치웠어. 이런 건 그때그때 치워야 귀찮지 않은 거라며 멋진 척 하기도 했네. 네가 일어나기 전에 부지런히 세탁기도 돌렸어. 나는 네가 접하는 게 모두 깨끗하고 편안했으면 했어. 네가 내 걱정을 공유하지 않았으면 했어. 그런 마음을 핑계로 스스로에게 먼저 해야 할 잔소리를 네게 와락 쏟아내고 내내 너의 기분을 걱정하기도 했지.
나는 너와 내가 우울로 서로를 부둥켜 안지 않았으면, 싶었어. 그래서 막, 막 센 척 한 거야. 그런데 신기하지. 네 앞에서라도 건강한 척을 하려고 밥도 먹고 청소도 하고 잘 눕지를 않았더니 차츰 괜찮아졌다는 게. 네게 잔소리를 할 때마다 건강하게 보이려고 건강한 행위를 따라했더니 놀랍게도 마음이 괜찮아졌어. 우습지. 센 척을 부리다가 건강해졌다는 게. 건강하다는 게, 사실 별 게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된 거야. 습관을 들이는 건 품이 드는 일이지만 생각보단 어렵지 않다는 것도 깨달았어. 그걸 알게 되니까 네게 계속 밥 사진을 찍어 보내라고 난리를 피우게 된다. 네가 나를 의식하다가 어쩌다 보니 건강해져 있었으면 좋겠어서. 결국에는 나와 연락하지 않는 동안에도 습관으로 그 일들을 하게 되기를 바라. 내 말이 귀찮고 내 연락이 매일 반복되는 AI 질문 같더라도 봐 주라. 할 말이 없어서 그러는 게 아니���까.
나는 접착제가 약해져 뗄 수 있었던 진동벨을 머리에 올리고 깔깔 웃었던 날이 여전히 기억 나. 자주 가던 카페 앞 전신거울에서 너와 나, 그리고 지금은 드문드문 연락하는 이연과 셋이 나란히 서서 사진 찍었던 순간들도. ��때는 그게 뭐라고 그렇게 우스웠을까. 다리를 마름모꼴로 굽히는 그 포즈마저도 웃겼던 시간이 있었는데.
나는 이제 우리가 그때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해. 아마 우리가 그때처럼 가까운 날은 없을 거야. 막상 이걸 글로 쓰니까 나도 슬퍼지네. 사실 당연한 얘기지. 우리는 진로도, 사는 곳도 다르니까. 서로 약속을 잡으려면 마음 먹고 만나야 하니까. 약속 없이도 만날 수 있던 날들이 자주 그리워질 거야. 그렇지만 과거가 그리운 날은 있더라도 그게 그리워서 슬픈 날은 없어야 하잖아. 그러니 우리는 새로운 우리를 받아들여야겠지. 너랑 함께 했던 시간을 추억하는 일도 무척 즐겁지만, 이제는 너와 오늘 있었던 일이나 내일 할 일을 공유하고 싶어. 오늘과 내일 많은 것들을 함께 할 수 있는 좋은 사람을 마구마구 만나. 잔뜩 친해지고, 그 사람들을 사랑하고 웃고 그래. 내가 서운해질 만큼 친한 사람들을 많이 사귀어. 내게 연락하는 일은 마음껏 잊어버려.
뜬금없지만 내가 이번에 설렁탕을 냄비에 녹였거든. 조리 설명서에는 찬물에 담아서 해동하라고 되어 있었는데 나는 인내심이 없어서 그냥 냅다 냄비에 붓고 약불에 녹였어. 그렇게 해도 잘 녹더라. 그런데 그게 녹는 순간에는 시간이 느리게 흘렀어. 언제 녹냐는 혼잣말을 한... 다섯 번은 한 것 같아. 불은 정말 순식간에 무언가를 데우고 태우고 사라지게 하잖아. 얼음이 녹아버리고 물이 되어서 보글보글 끓게 되는, 그 순간은 아주 찰나야. 그런데 그걸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순간에는 꼭 슬로우 모션 비디오 같지. 무언가가 녹는 순간은 순식간인데도 느려 보여. 분명 계속 변하고 있는데도 잘 모르지. 지구온난화 있잖아. 빙하 막 녹고. 그런 빙하도 갑자기 녹아버린 것 같지만 사실 아주 천천히 녹고 있었을 거야. 빙하의 한 부분을 한 달 동안 쳐다봤다고 생각해봐. 녹는 것 같지도 않고 지겨웠을 걸. 한 달 뒤에 처음 빙하 사진과 비교하고나서야 와, 진짜 많이 녹았네. 싶을지도 몰라.
나는 내 머리카락이 불에 타던 순간도 느리다고 생각했던 사람이다? 중학교 때 가스불 쳐다 보다가 머리에 불이 옮겨 붙은 적이 있거든. 나는 타고 있는 머리카락을 얼굴에서 최대한 멀리 하고선 그걸 쳐다만 봤어. 그게 아주 천천히 타고 있다고 생각했거든. 그래서 그냥 신기하기만 했어. 그게 순식간에 두피를 태울 거라고 생각도 못했어. 그러니 누가 내 머리카락에 물 묻힌 손으로 불을 끄려고 박수 치기 전까지는 호기심으로 머리카락을 보고 있었던 거야. 그때 엄마가 그러더라. 불 붙고 나서 와, 불 붙었다. 이랬대, 내가. 사람이 얼마나 변화에 둔감한지 알겠지. 그런데 너는 나보다 둔감하잖아. 그러니까 너는 여전히 모르고 있는 거야. 네가 ���은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나도 잘 하지 못하는 것들에 대해 네게 입 바른 소리만 하고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어. 그렇더라도 같이 살아서 언젠가의 날에 또 만나고, 겨울이 되면 크리스마스 파티를 열자는 이야기를 그만두진 않을 거야. 행복하자는 말을, 건강하자는 말을 취소하지도 않을 거야. 나는 너와 내가 그랬으면 좋겠으니까. 내가 마구 흔들리게 되더라도 둘 모두가 맞을 내일을 기다리고 싶으니까. 너 R=VD 알지? 비비드 드림이 끝끝내 현실이 될 거라니까. 어디쯤을 걷는지도 알 수 없어 슬퍼지더라도 몸뚱이를 뻗기만 하면 1mm라도 앞으로 가 있을 거야. 우리는 서로가 어디에 있는지 몰라도 마음을 전할 수 있잖아. 그 마음으로 힘을 얻어서 몸을 어느 방향으로라도 뻗어보자.
작년 크리스마스에는 갑자기 늘어난 확산세 때문에 만나지 못했지. 올해 크리스마스에는 꼭 만나자. 그때쯤은 백신을 맞았겠지? 저번에 샀던 우스운 크리스마스 모자를 쓰고 캐롤을 크게 틀어놓고 맛있는 것을 먹자. 영화를 틀어놓고 졸기도 하고 웃기도 하자. 가지 않았던 여행도 가 보자. 볼 수 있을 때 더 자주 만나자. 미래에 대해 많이 약속해두자. 지키지 못하더라도 캘린더에 적어도 보고 메모장에 기록도 해두자.
나는 혹여 우리가 죽을 듯 싸우고 멀어지더라도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좋은 사람과 자주 웃었으면 해. 네 통장이 두둑해져서 삶에 안정이 찾아왔으면 좋겠어. 지금 당장은 보내지 못할 편지지만 인터넷에 이 편지가 인터넷 세상을 떠돌다 보면 언젠가 네게 닿을 수도 있겠지. 아프지 말고 밥도 잘 챙겨먹고 산책도 해. 강의 듣고 다시 자고 늦게 일어나서 새벽에야 저녁 챙기지 말고. 일찍 일어나서 체조도 하고 그래. 늙어서도 내일은 어떨지 기대하려면 건강해야 된다고. 그러니까 젊을 때부터 건강 관리해야 해. 우리 내일을 위해서 오늘은 일찍 자자. 자주 연락할게. 이 편지도 언젠가는 보낼게. 너도 언제든 답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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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있음!!
편지 있음!! ... 열어보시겠습니까? Yes.
안녕하세요. 이걸 보고 계시는 분은 어느 바다와 맞닿아 있으신지요. 제가 유리병 편지를 띄웠고, 당신이 이것을 들어올렸다고 해도 우리는 다시 연락할 길이 없지요. 저는 제 주소도, 당신의 주소도 모르니까요. 제 주소를 모르는 건 당신도 마찬가지겠지요. 하지만 이건 제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의 연락입니다. 무인도에 표류한 제가 누군가에게 말을 전하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이거든요. 그래도 저는 희망에 제 마음을 베팅하기로 했어요.
저는 A국의 김인유예요. A국에서 2021.03.09에 출항한 비스호에 탑승한 선원입니다. 편의상 영어를 적어 써서 보냅니다만 제가 영어에 능숙한 사람은 아니라 의미가 전부 전해질지는 모르겠네요. 혹시 저 대신 저의 안부를 A국에 전해주실 수 있을까요? A국의 신문사든 어디에든 다 좋아요. 제가 남긴 편지와 근황을 그들에게 알려주세요. 큰 배의 선원으로 나서게 되었다며 웃었던 날들이 무색하게도 금세 사라져버린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유리병의 확률에 기대는 것 뿐입니다. 이 유리병이 땅에 도착할지, 그 땅이 사람이 사는 땅일지, 이걸 읽은 사람과 그 주변이 영어를 이해할지, 아무것도 모르지만... 그래도 이 유리병을 바다에 떠내려 보냅니다. 누가 읽었는지도, 제 여자친구인 민이, 언니인 수미, 다른 친구들, 스승에게 전해졌는지도 당장 알 수 없겠지만요. 막연��게 누군가 한 명 쯤은 이 편지를 펼쳤으리라고 믿어 보려고 합니다.
저는 매일 아침 일어나 돌을 주워요. 무인도의 땅바닥에 매번 더 크게 SOS 표시를 새기고 있거든요. 모래 위의 구조 신호표시는 금세 사라지고, 아주 크게 적었다고 하더라도 상공에서 보일지 가늠이 안 되더라고요. 그래도 모래 위의 그림보다는 모래 위의 돌이 사라질 염려도 적고 괜찮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 다음에는 조악하게나마 만든 작살로 물고기를 잡거나 과일을 따다 먹습니다. 동물을 잡아보려고도 해요. 그런데 물고기나 동물을 잡는 건 참 어렵더군요. 특히 동물을 잡으려다 보면 이 안에 저보다 높은 포식자가 있을 것 같아 몸이 떨리기도 합니다. 다 젖었지만 함께 떠내려온 가방에 있던 음식들을 잘게 나눠 먹고 있어요.
불을 피우고 음식을 먹는 게... 분명 제 나라에서는 쉬웠는데 사람 하나 없고 기술도 없는 곳에 다다르니 앞이 캄캄하고 막막합니다. 김씨표류기 영화처럼 농사도 짓고 잘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거긴 서울의 한강, 그러니까 한국이란 나라의 번화한 도시 한복판이었지요. 그 섬에서의 표류는 사람들이 버린 쓰레기도 흘러오는 곳이었기에 가능했던 걸까요. 그래도 저는 끝까지 살아볼 계획입니다. 누군가가 저를 드디어 찾았을 때 제가 너무 원시인 같을지도 몰라요. 말도 다 잊어버리면 더 원시인 같겠죠? A국의 말이나 영어를 잊지 않기 위해 혼잣말을 많이 하고 있어요. 모래 위에다가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무용담을 적기도 해요. 모래를 종이로 쓰니 지우개가 필요 없더군요. 그런 점은 좋은 것 같습니다.
저는 잘 살아 있습니다. 제가 어디 있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바다 위에 있습니다. 지구 위에 있지요. 그리고 이 섬은 다행히도 과일들이 있어요. 덥긴 한데 비가 많이 와서 습하지는 않아요. 열대 지방의 섬은 아닌가 봅니다. 벌레들도 많아서 소스라치게 놀라기도 하지만 그럭저럭 살 만은 합니다. 수렵, 사냥에 익숙해지면 조금 더 편해질 것 같아요. 누가 날 찾기를 바라는 동안에 나도 날 찾아야 하니까요. 남을 기다리다가 나를 놓치지 않도록 정신을 똑바로 잡고 있습니다.
한 차례 바닷물에 잔뜩 젖은 수첩과 필기구를 햇빛에 내내 말리는 동안 몇 장의 수첩은 바람에 날려 갔습니다. 제가 A국에 있던 시절 먹고 싶은 것들을 적어뒀던 페이지였는데. 그 종이는 누군가에게 닿았을까요? 유리병에 담긴 게 아니니 땅에 도달하기도 전에 바다에 닿아 다 찢어졌을까요. 겨우 살아난 몇 장의 종이들에 빼곡하게 글자를 적습니다. 유리병은 제가 좋아하던 펩시 제로콜라 라임향 페트병으로 대신했어요. 유리병 편지가 아니라 페트병 편지라고 썼어야 했을까요? 페트병이 혹여 버려질까 페트병 위에 편지 있음!!을 적어두었는데, 보셨나요?
제가 닿아 있는 바다는 무슨 바다일까요. 시미양, 진해양, ... 여러 바다 이름을 생각해봅니다. 바다가 저수지처럼 닿을 수 있는 ���분이 전해져 있다면 우리는 언젠가 만날 수도, 당신이 내 위치를 추정할 수도 있을 텐데요. 그런 점에서 바다가 망망대해라는 게 원망스럽기도 하네요. 분명 이런 점 때문에 바다를 좋아했던 건데도요.
바다는 아주 넓고 바다 위에 떠오른 그 순간부터 우리는 우리가 어디로 향할지 잘 모릅니다. 해류가 존재하기는 하지만 그건 계속 변화하고, 바다에는 암초도 있고 섬도 있어요. 바다 위에선 배와 돛, 연료 등이 없다면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아요. 그 모든 것을 갖추었대도 그렇죠. 저는 정말 큰 배에 탔었어요. 그런데도 원하는 곳이 아닌 새로운 곳에 있습니다. 처음에는 살았다는 것이 기뻤고, 그 다음에는 차라리 자각 없이 죽는 게 낫지 않았을까 좌절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은 마음을 많이 추슬렀어요. 저는 살아있는 한 살아있을 거예요. 이 말만 지금 편지에만 몇 번째인지....... 그래도 이렇게 써야만 마음이 견고히 설 것 같아서요. 저는 살아있을 테니 모두가 나를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운 좋게 이 편지가 땅에 닿아, 영어를 아는 사람에게 버려지지 않고 펼쳐졌다면, 그러니까 당신이 제 안부를 전해 들었다면요. 부디 바다에 유리병 하나를 띄워주세요. 제 친구들에게, 다른 사람들에게 모두 부탁하고 싶지만 유리병이라는 건 사실... 불확실한 거잖아요. 특히 유리병, 아니 페트병 편지에 답장을 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은 유치하고 순수하죠. 장난 편지일지도 모르고요. 그래도 저는 지금 그 유치함이 간절합니다. 이걸 받은 당신이라도 편지를 써서 띄워주세요. 너무 많은 사람들이 보내면 하나쯤은 제게 닿겠지만, 그건 지구온난화에 일조하는 일이겠죠. 하하. 그러니 아무도 유리병을 띄우지 않더라도, 당신만은 보내주세요. 혹시 모르지요. 제가 아니더라도 무인도에 표류하고 있는 다른 누군가에게 닿을지도요. 그래서 그게 그 사람에게 하나의 희망이 될지도 몰라요.
저의 편지는 이 정도에서 마칩니다. 말이 길어졌네요. 하고 싶은 말을,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A국에 제 안부를 전해주세요. 저는 표류한지 일주일 정도 되었고, 지금껏 잘 살아 있어요. 밤은 약간 춥고, 내내 더운 이 무인도에서요. 저는 있는 힘껏 살아볼 예정입니다. 저를 포기하지 마세요. A국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의 모두에게 전하는 말입니다. 저를 언젠가는 찾아주세요. 저는 생명력 강한 모습으로 섬을 가꾸고 있겠습니다. 언제나 돌을 모으고 갈고 종이를 말리고 과일을 먹고 물고기를 잡으려고 노력하면서요. 생존게임에서 했던 것처럼 이것저것 해보고 있습니다. 우리는 분명히 살아서 만날 수 있을 거예요. 살아서 만나요. 저는 지금 여전히 살아있습니다.
답장하시겠습니까? ... (Y/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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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lking alive
Walking Alive 르미
일 년 넘게 일한 아르바이트에 사직원을 쓰고 나왔다. 코로나 시대에도 어떻게든 꿋꿋하게 일을 해왔는데, 마지막 달은 완전 엉망이었다. 일주일에 겨우 하루를 들어가선 월급으로 삼십만원도 채 받지 못했다. 건강보험이 월급의 1/3을 가져갔다. 토막토막 줄어든 월급이 알림으로 둥둥 떠 있는 날. 인아는 침대에 누워서 천장만 죽죽 바라봤다. 붙지도 않은 인턴을 핑계로 사직원을 제출했다. 사직원을 제출하면서도 그냥 지난달 마지막날에 사직서 쓸 걸. 괜히 그랬다고. 중얼거렸다.
인아는 아르바이트를 구해야겠다고 막연하게 생각했다. 과외를 하든 카페 알바를 하든 주말에만 하는 아르바이트를 구해야 되겠다고. 인아는 작년에 부단히 돈을 모았다. 월급을 적금으로 돌리고 주식도 사고 팔았다. 그렇게 천만원 넘는 돈을 모았는데도 돈을 가지고 있다는 감각이 잘 안 들었다. 통장에 돈이 있다는 것 정도는 알았지만 그 돈이 제 돈이라는 감각이 잘 안 들었다. 그래서 남의 돈처럼 통장에 넣고 가만 내버려 뒀다. 내 돈 같지도 않은 돈은 쓸 수도 없었으니까.
밖에서 밥을 사 먹어야 하는 날에는 번번이 상가를 빙빙 돌며 메뉴를 고민했다. ���건 구미가 안 당기고 저건 너무 비싸서 안 됐다. 어떤 날에는 설상가상 입맛도 없어서 오래 고민한 시간이 무색하게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을 사다 먹은 적도 있었다. 입맛이 있는 날에도 인아는 기본 삼십 분은 고민하고나서야 오천원이 안 되는 메뉴를 골라다가 집에서 후후 불어 먹었다.
돈은 모아도 모아도 모은 것 같지가 않다. 이게 인아가 돈을 모은 첫 감상이었다. 왜 부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은 돈을 쓸 때 아주 잠깐 느껴지는지 모르겠다고. 왜 부자도 아닌데 부자가 된 것 같은지 모르겠다고. 저가 부자라는 감각은 부자됨과는 반대인 것 같았다. 쉽게 말해서 부자이려면 부자임을 느껴서는 안 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오랫동안 부자인 사람들은 세탁기도 중고로 쓰고 그러는 게 아닌가. 천만원이 아니라 돈을 더 모아야 기분이 더 나는 걸까 생각했다. 소비하지 않아도 마음이 풍족하고 몸이 안온한 것을 느끼려면 돈이 더 있어야 하는 걸까. 돈이 더 있다면 잠깐의 배부름이 없더라도 괜찮은 걸까…….
인아는 이제부터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이었다. 아르바이트를 구해서 공부와 병행하고는 싶은데 이러다 두 마리 모두 놓치는 게 아닌지. 이제 곧 졸업학년인데 아르바이트에 시간을 뺏기며 공부해도 괜찮은 건지. 조금 더 근본적으로는 돈을 번다는 게 무엇인지. 직장에 들어가는 것이 무엇인지……. 무슨 일을 하고 살아야 하루하루 즐겁지는 않더라도 죽을 것 같지는 않게 살 수 있는지. 그런 질문에 답이 있다면 누구나 사려고 할 것이다. 해도해도 끝나지 않는 고민들은 천장을 배경으로 자주 등장했다. 컴퓨터 앞에 있거나 무언가를 하고 있을 때는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고민은 참 신기하게도 가장 취약할 때를 노리고 품을 비집었다. 돈을 모은 것에 대한 스스로의 칭찬보다도 그래서? 라는 질문을 떠올리게 했다. 천장을 보면 그랬다. 텅 빈 천장에서는 취약함과 고민이 주인공이었다.
인아는 되도록이면 천장을 보지 않기로 했다. 허리를 펴준다며 허구한 날 광고하는 의자 보조기구를 언니에게 빌려다가 의자에 자주 앉아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더라도 의자에 있었다. 밥을 먹고 나서도, 나갔다 와서도 그랬다. 강아지 푸딩이를 산책시키고 와서는 텔레비전 앞에 앉아서 인형을 수십 번 던졌다. 잠깐도 눕지 않고 빳빳하게 앉아있었다. 신기하게도 천장을 보지 않는 것만으로 생각이 줄었다. 바깥에 나가면 나갈수록, 무언가를 하면 할수록 고민의 시간이 짧아졌다. 처음에는 멍하니 앉아있었고, 그 다음에는 강아지와 놀거나 산책했고, 어느 순간부터는 뻣뻣하게 스트레칭을 하고 슬로우 버피를 반복하고 요가를 따라했다.
인아는 여전히 소유의 감각이 느껴지지 않았다. 다시 한 번 강조하자면, 통장에 쌓여가는 돈이 남!의 것 같았다. 그러던 중에 경기도에서 도민들에게 긴급재난지원금을 추가로 지급했다. 이건 스스로가 아무리 용을 써도 통장에 넣을 수 없는 돈이었다. 쓰지 않으면 사라지는 돈이었다. 미뤄 놓은 병원 진료도 없으니 이걸 딱히 쓸 곳도 없었다. 그래서 인아는 먹어보지 않았던 것들을 사다가 먹었다. 내 돈이 아니고, 아끼면 사라지는 돈. 고민 없이 소비하는 순간마다 마음이 찰나에 풍족해졌다. 당장 뭔가를 사 먹거나 사서 소유하는 행위가 돈을 비축하는 것보다 마음을 안정되게 만든다는 사실이 허무했다. 에피쿠로스가 말하는 것처럼 이것은 순간의 쾌락이고, 멀리 봤을 때에는 돈을 모아두는 게 좋을 텐데. 인아도 그런 것쯤은 알고 있었지만… 쾌락은 아주 달고 포근해서 인아를 혹하게 했다.
인아는 에피쿠로스나 아타락시아 같은 사탐에서 나올 법한 이야기들을 그저 접어 두기로 했다. 인아는 순간의 소비가 인아를 행복하게 하리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알고 있더라도 허무한 것은 허무한 거였다. 그렇대도 인아는 주식을 사고 적금에 돈을 넣었다. 인아는 집을 가지고 싶었으니까. 혼자 온전히 누워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집이 가지고 싶었다. 술 취한 아빠의 큰 목소리나 요즘 들어 계속 스파크를 내는 엄마와 언니의 다툼도 들리지 않는 집. 어떤 간섭도 기대도 들리지 않는 집. 듣고 싶은 것을 취사선택할 수 있는 집. 그리고 그 다음으로는 차를 타고 마음만 먹으면 바다에 가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인아는 먹는 것의 즐거움이나 소비의 쾌락은 모르는 체 하기로 한다. 남이 억지로 쥐어준 돈, 쓰지 않으면 없어지는 이 돈만 열심히 쓰기로 한다. 인아는 포장하러 가는 가게에 매번 전화해서 긴급재난지원금 사용이 가능하냐고 물어댔다. 안녕하세요, 혹시 긴급재난지원금 사용이 되나요…….
온전히 스스로를 책임져야만 가질 수 있는 자기만의 집. 매번 쓸고 닦고 비누칠을 하고 세탁을 해야만 즐거이 살 수 있는 삶. 인아는 과거의 자취 경험으로 그런 것 즈음은 알고 있었다. 배달 음식만 한 편에 켜켜이 쌓아 뒀던 나날이 얼마나 우울했는지도 알았다. 재활용품을 한꺼번에 버리고 걸레질을 땀이 나게 해댔던 날 묵은 짐이 마음에서 후두둑 떨어졌던 것도 기억했다. 때 빼고 광을 내야 마음이 바닥까지 내려앉지 않는다는 게 우스워서 울었던 날도. 혼자 산다는 것을 아무것도 몰랐던 인아에게는 서울에서 살아남기가 어드벤처 게임보다 볼품없고 어려웠다.
인아는 어렵더라도 집을 가지고 스스로를 책임지고 싶었다. 집을 즐겁게 생각하고 싶었다. 누군가가 들어오는 시간이나 소리에 방문을 걸어 잠그고 싶은 충동을 누르고 싶었다. 가족의 소중함 따위는 아주 가끔만 느끼고 싶었다. 자기만의 집을 가지고 싶은 사람은 어쩔 수 없는 훈련이 필요한 법이었다. 인아는 혼자 산다는 데에 필요한 책임감이나 청소 의무를 이제는 알았다. 알고 있더라도 혼자 이 도시에서 살아남는 것은 어려울 테지만, 그래도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은 아니어도 일승은 할 수 있을 거라고. 인아는 작게 믿고 있었다. 그래서 인아는 뒤도 위도 아래도 바라보지 않고 앞을 자주 바라보기로 했다. 천장을 보기보다는 앞을 보고 당장 할 것을 하기로 했다. 좋은 것을 자주 상상하기로 한다.
인아는 저가 앞으로 어떻게 돈을 벌고 지낼지, 언제쯤 졸업을 할 수 있을지 그런 것들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었다. 여전히 천원짜리 와플을 사먹는 게 주식 만 원 오르는 것보다 기쁘게 다가올 때도 있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주식 사기를 멈추진 않았다. - 십분 동안 빙빙 돌다가 천원짜리 와플 먹기를 포기하는 날은 있었다. - 인아는 아주 오랫동안 기다려야 일어나는 일도 있기 마련이라고 생각했다. 인생은 게임이 아니어서 내가 하는 일마다 즉각 반응이 나타나진 않는다고. 오히려 삶은 건축에 가까웠다. 철골을, 뼈대를 세우고 열선을 깔고 내부를 정비하는 데에는 몇 년이 걸려도 살을 붙이는 건 순식간이었다. 인아는 자신의 삶도 그러리라고 믿었다. 인아의 삶도 언젠가는 건물이 되어 있을 거라고.
인아가 시리얼을 말아 먹으며 눈을 꿈뻑거린다. 올해 인아는 백수가 되었고 또 복학생이 되었다. 자유와 더불어 찾아온 고민들이 홍채를 파고 든다. 인아는 시리얼 그릇을 치우며 잠시 훌쩍거린다. 설거지를 마치고는 유튜브를 틀어 슬로우버피 100개 챌린지를 시작한다. 그러면 눈물이 사그러들었다. 미치도록 힘든 감각이 힘든 정신을 몰아냈다. 인아는 땀을 뻘뻘 흘리며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갰다. 마지막으로 체조를 가볍게 하고는 강아지와 산책을 나간다.
인아가 푸딩이와 걷는 길은 양지였다. 아마 이 길에 음지는 적을 거라고 믿는다. 반대로 여름에는 그늘이 대부분이고 햇볕이 내리쬐는 길은 찰나일 것이다. 봄의 인아는 양지가 좋았다. 낮 12시. 태양이 가장 높이 있는 시간. 인아는 걸었다. 산 채로 걸었다. 그렇게 산 채로 걷는 동안엔 무엇이든 자라났다. 자라난 모든 것은 살아만 있다면 언젠가는 눈에 보일 정도로 커져 있을 것이다. 인아가 모르는 새에 나무가, 건물이 되어 있을 것이다.
자라난다. 살아있다. 자라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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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부터 죽은 사람들이 다시 살아났다. 짧게는 3분 길게는 하루의 시간을 두고서. 그렇게 다시 일어나서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눈을 깜박였다. 누군가는 덜덜 떠는 손으로 앰뷸런스를 부르다가, 누군가는 장례식의 한가운데에서… 죽은 사람을 쳐다보고 살아 있는 사람을 노려보고 뒷걸음질했다. 어떤 부활은 달가웠고 어떤 부활은 미운 것이었다. 한 번 이상 죽어봤던 사람은 말했다. 우리가 다시 살아날지 말지를 정할 수 있다고. 마치 게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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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윤은 디카페인 커피를 홀짝이며 귀환 현상에 관한 뉴스 리포트를 본다. 원목 테이블 앞에 게이밍 의자를 두고 앉아 뉴스 아나운서의 두 눈을 응시했다. 귀환한다니. 게다가 귀환하면 몸의 상처도 씻은 듯 낫는다니. 물론 귀환현상이라는 게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는지도 알 수 없었고, 귀환에 횟수가 정해져 있는지도 몰랐지만……. 어쨌거나 의료 및 제약산업이 위기에 직면해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귀환에 인과가 있고 귀환 횟수가 정해져 있다면 그걸 늘려주는 알약이나 수술을 받게 될지도 모르니까. 시윤은 예측하면서도 산업이 죽을 것이라는 장담은 못했다.
‘세상에 이런 일이’나, ‘신기한 TV 서프라이즈’에 나올 법한 이야기가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언젠가는 그저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온 사람, 그러니까 기적이라고 칭할 만한 현상을 이제는 정부가 나서서 귀환 현상이라고 칭했다. 귀환현상이 알려지자 몸에 고통이 심하거나 죽을 날이 가까워진 사람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자살자 중 반 정도는 돌아왔고, 반은 아니었다. 그들이 계획을 버리고 그저 죽음을 택했는지, 그들에게 선택지조차 없었는지, 그런 사실은 산 자가 알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죽음을 가지고 도박할 객기가 있는 사람만이 이 방법을 택했다. 시윤은 목숨이 쉬워지는 세상 앞에서 몸을 가볍게 떨었다. 아니아니, 정정하자. 목숨이 쉬워진다고 해야 하나. 살기 위해서 죽는다고 해야 하나. 살기 위해 죽는다는 말이 비유가 아니라 현실이었다. 환골탈태 같은 사자성어가, 과거의 나는 없다는 다짐이 형태를 갖게 된 것이다.
시윤은 귀환 없는 세계의 원고를 쓰고 있었다. 귀환이 없었던 때부터 지금까지 쭉. 이제는 귀환 없는 세계가 공상이었다. 몇 달 새에 SF 소설가가 된 시윤은 글을 쓰다가도 곧잘 길을 잃었다. 그래도 마감은 했다. 이미 쓰기로 한 것은 써야 했기 때문이었다. 귀환이 있는 세상에서도 이야기는 필요했다. 귀환이 없는 세계에서의 사람들을 기록해두는 것도 중요한 일인 것 같았다. 시윤은 세계의 혼란 속에 함께 빠져 있다가도 다시 평지로 나와 원고를 작성했다. 마감이 끝나면, 그때 앞으로 무엇을 써야 할지 고민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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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왜 돌아올까? 지영은 그게 의문이었다. 지금껏 억울하게 죽든 갑작스레 죽든 사람의 삶을 내버려두던 세상이 왜 갑자기 선택지를 준 걸까. 이래서는 어쩐지… 조작된 것 같았다. 세상이 게임 프로그래밍처럼 다 짜여 있어서 스스로의 의지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았다. 지영은 메이플스토리의 캐릭터가 죽었다가 마을에서 다시 살아나는 게 꼭 지금의 상황과 비슷해보였다. 어쩌면 저 캐릭터도 살아있는 게 아닐까. 저 캐릭터도 죽은 뒤에 살아나겠냐는 창이 보이는 게 아닐까.
귀환은 불명확한 부분이 많았다. 살기 위해 죽음을 시도하는 무리도 이내 수그러들었다. 우선 선천적으로 아팠거나 다친지 오래되어 아문 상처는 귀환하더라도 치료되지 않았다. 또, 귀환이 모두에게 일어나는지도 확실하지 않았다. 다시 돌아오겠다던 사람 중 돌아오지 않은 사람이 있었으니까. 그가 죽음 뒤에 변덕을 부렸을지도, 그가 바라본 사후세계가 현실세계보다 아름다웠을지도 모른다. 귀환이 가능했지만 그가 선택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시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 그 가능성 때문에 사람들은 귀환 현상을 경험해보겠다고 쉽게 나설 순 없었다. 한 번 귀환을 겪은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귀환 이후 사망했으나 돌아오지 않은 사람이 있었다. 인간에게 귀환현상이 찾아왔으나, 인간이 귀환에 대해 알 수 있는 바는 현저히 적었다. 죽음의 특수성 때문이었다.
이제 살인이 문제였다. 살인자들은 귀환의 가능성 때문에 죄다 얼굴을 들키지 않기 위해 복면을 썼고, 소리도 내지 않으려 했다. 얼굴을 비친 누군가는 하루 내내 피해자의 곁을 맴돌다가 잡히기도 했다. 살인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부류도 동시에 등장했다. 약자에게 새로운 삶을 주고 싶었다며 변명하는 부류였다. 종교에서도 신을 만나고 오기 위한 잔인한 행태가 늘어났다. 정부는 귀환자에 대한 살인일지라도 엄중히 처벌할 것이라고 했다. 지영은 합리화를 하는 부류는 귀환이 없는 세계에서도 어떻게든 이유를 찾아낼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만 귀환이 그들을 더 부추겼는지도 모른다. 언제쯤 이 세상이 귀환에 적응할까. 지영은 크게 변한 것 없는 일상과 텔레비전 속 세상에 큰 괴리감을 느꼈다.
메이플스토리에 대해 생각했던 밤, 지영은 하얀 창 하나를 마주했다. 죽음과 삶 중 하나를 택하시오. 그 창 뒤로는 숲이었다. 지영은 아직 죽음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죽음은 언제고 찾아올 수 있다는 사실을 머리로만 알았다. 지영은 큰 고민 없이 삶을 택한다. 눈을 뜬다……. 그렇게 돌아온 침대에는 지영 혼자 누워있었다. 꿈이다 싶었다. 지영은 다만 누워있었으니까. 주변에 피가 흥건하지도 않았고 옆에 누가 있지도 않았다. 하루가 지나있던 것도 아니었다. 그러니 그저 꿈을 꿨다고 생각하는 게 합리적이었다. 생각을 너무 많이 했네. 지영은 몸 여기저기를 더듬어 바뀐 점이 있는지 ���인했다. 역시 꿈이다 싶었다. 지영은 다시 잠에 들었다. 지영은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야 데일밴드 아래, 전날 밤 칼에 베인 상처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영은 종일 앉아서 귀환 현상을 알아본다. 지영은 귀환 현상이 여전히 먼 얘기 같았다. 누군가는 몇 번이고 되살아났다지만 주변에서 귀환자를 본 적은 없었다.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이상하다고도 생각했다. 이 세상이 어떻게 변해갈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포털 사이트에는 귀환 현상에 대응하기 시작한 기업들의 주가가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내렸다. 뉴스에서는 30분 이상 귀환 현상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세상은 요동쳤지만 지영은 똑같이 일하며 살았다. 본업으로는 번역 일을 했고, 부업으로는 동화 삽화를 그렸다. 아직 귀환현상에 대한 책이 나오지는 않았으니 지영의 일에도 큰 변화가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귀환자가 되었다. 귀환 현상이 곧바로 지영의 삶에 들어왔다. 어쩌다 보니 살아났다. 죽었는지도 몰랐던 지영이 돌아왔다.
지영은 정부기관에만 가볍게 귀환자임을 알렸다. 하지만 지영의 죽음을 곁에서 목격한 자도 없었거니와 거짓신고가 기승인 터라, 형식적인 질문에만 몇 번 답한 게 다였다. 귀환을 했다고 해서 크게 변한 건 없었다. 지영이 귀환 현상을 완전한 현실로 받아들인 것이 가장 큰 변화였다. 현실이구나. 현실이다. 주식세계에만 존재하는 지식이 아니라 지영의 보편이 되었다. 꼭 바이러스처럼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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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윤은 잠시 집필을 중단하고 글쓰기 강사로만 일했다. 바뀐 세상에서 무엇을 써야 할지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학교나 문화센터에서 하는 글쓰기 강좌에서 아이들과 글을 쓰거나, 대학교에 초청되어 몇 번 특강을 했다. 언제는 기회가 있다면 귀환을 할 거냐는 물음을 받기도 했다. 그때마다 시윤은 답을 상대에게 넘겼다. 자신은 모르겠다고, 당신은 무엇을 선택할 것이냐고. 답은 제각각이었다. 자신은 삶을 더 살고 싶다는 사람도, 순리대로 죽고 싶단 사람도 있었다. 시윤은 그 이유를 더 묻고, 집에 가는 길마다 수첩에 그 답들을 작게 적어 두었다.
시윤이 답을 유보한 것은 정말 모르겠어서였다. 시윤은 사후세계도 잘 믿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사후세계가 있는 것보다도 없는 것이 낫다고 여겼다. 환생은 몰라도 죽음 뒤에 한 겹의 세계가, 그것도 기억을 갖고 있는 채로 진행된다면 그다지 기쁘지 않을 것 같았다. 죽음 없는 삶이 무용하다고 여긴 것은 아니고, 그저 무한함에 던져지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시윤은 이 기억을 가지고 살아가는 시간이, 정해진 시간 동안 이야기를 전하는 일이 좋았다. 천국이니 지옥이니 선악이 죄다 나눠져 있다는 모호한 세계는 상상하기도 어려웠다.
그리고 귀환이라는 게, 귀환자들의 인터뷰를 들어보면 아주 순식간에 이뤄지는 일이라지 않나. 바로 선택한 것 같은데도 눈을 뜨니 18시간 뒤였다고. 하얀 창 뒤의 배경은 각기 달랐으나 내용은 다 같았다고 했다. 삶을 지속할지, 죽을지를 정하라는 내용이었다. 그 누구도 정확한 문구를 기억하지는 못했다. 삶에 항상 큰 뜻을 가지고 있지 않더라도 그 순간에는 삶을 선택하기 쉽다고도 덧붙였다. 꿈처럼 다가와서, 특히 갑자기 죽음을 맞이한 사람은 아무 생각 없이 삶을 선택하게 된다고. 그럼에도 돌아오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다. 죽음을 선택하면 하얀 창 뒤의 배경으로 걸어갈 수 있을까. 누군가는 돌아오지 않는 사람들을 상상하며 그런 생각도 해봤다고 했다. 또 어쩌면 시간 제한이 있어서 선택하지 못한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고.
인터뷰 속 귀환자 중 한 명은 인생의 순리를 믿는 사람이었다. 사람이 살고 죽는 일은 운명처럼 이루어지는 일이라 기대 수명을 연장하고자 하는 열망이 참 이상한 일처럼 여겨졌다고 했다. 그런데 자신이 수명을 넘겨 살고 있다는 게 이따금 아이러니하다고. 인간 속에는 다 수명을 넘겨 조금이라도 살고 싶어하는 욕망이 숨겨져 있는 것 같다고. 그때의 선택을 후회하진 않아요. 그러면서 웃었다. 순리가 바뀐 것일지도 모르니까.
트리갭의 샘물. 시윤이 고등학생 때 좋아하던 소설이다. 소설의 제목에도 등장하는 트리갭의 샘물은 한 컵 마시기만 하면 영생을 가져다 줬다. 시윤은 그 책을 몇 번이고 돌려 읽으면서도 샘물을 마셔보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영생을 꿈꾼 적도 없었거니와 세상 사람들과 다른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늙지도 죽지도 않는 사람이 되어 몸을 숨기고 살고 싶지도 않았다.
샘물과 귀환의 차이점은 계속 선택할 수 있다는 점일 테다. 한 번의 선택으로 뒤의 삶이 변하는 영생의 샘물과는 달리 귀환은 계속해서 선택하게 한다. 그 횟수가 제한되어 있는지는 여전히 미지수지만, 한 번의 선택이 불변의 결과를 초래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귀환은 할 만한 것일까. 이렇게 고민해봐도 귀환 대상자가 아니면 그냥 죽는 거잖아. 시윤은 고민을 그만둔다. 당장 죽음과 삶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하는 것도 아니었고, 시윤에게는 내일의 일이 있었다. 시윤은 전기장판을 켜고 똑바로 눕는다. 옆으로 눕고 싶은 욕망을 참아낸다. 시윤이 당면한 선택의 문제는 이것이다. 바로 누워 자자. 시윤이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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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영은 시윤과 구면이었다. 친한 사람이 겹쳐 몇 번 밥을 먹었고, 자주 연락을 주고받았다. 귀환이 없던 시절, 둘을 잇던 사람이 지병으로 죽고 나서는 연락을 잘 주고받지 않았다. 사는 동네가 겹치는데도 그랬다. 매번 함께 만났던 사람, 도진이 죽었다는 사실이 머쓱해서였다. 죽음은 상기하지 않으면 곧잘 없던 일이 되었다. 시윤은 종종 죽은 사람을 이 세계에 살아있는 사람처럼 언급하기도 했다. 그저 오래 연락을 하지 않은 사람이 하나 늘어난 것 같았다. 죽음을 잊은 것처럼 보이지만, 이건 사실 누구보다 죽음을 잘 알고 있어서였다. 시윤은 3년 내내 도진의 죽음을 기피했다. 죽음을 3년 내내 치르고 있다는 사실은 남에게 내보일 만한 것이 아니어서, 시윤은 도진과 관련된 사람들에게 자주 벽을 쳤다.
지영은 도진의 장례식 이후 시윤에게 몇 번 연락했지만, 둘의 연락은 오래가지 않았다. 시윤이 지영에게 어색하게 굴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지영은 그런 시윤을 위해 몇 발짝 물러났고, 어느 순간부터는 먼저 연락하지 않았다. 시윤은 뒤늦게 지영에게 연락해볼까 하다가, 지나버린 시간이 머쓱해 핸드폰을 내려 두었다. 그때 도진의 죽음을 잘 바라봤더라면 지영과 연인은 아니더라도 친구가 될 순 있었을 텐데. 어쨌든 모든 것은 선택과 선택이다. 한 가지의 선택이 훗날까지 영향을 끼치는 것은 샘물이나 귀환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살아있는 내내 하는 모든 선택이 그랬다. 나비의 날갯짓. 시윤은 지영과 언젠가 다시 만나 식사를 나눌 수 있는 사이가 되기를 종종 바랐다.
그러니 시윤이 지영과 다시 눈을 맞댄 지금, 저녁식사를 함께 하자는 어색한 질문을 냈던 것이다. 시윤이 하는 문화센터의 산문 강좌에 지영이 앉아 있었고, 시윤은 강좌를 마치자마자 지영에게 다가갔다. 지영이 간단하게 인사했다. 내가 강의하는 거 알고 있었어요? 현수막에 엄청 크게 붙어 있던데요. 지영이 웃는다. 그 뒤로는 서로 안부를 묻다가, 시윤이 목요일 수업 이후 저녁 식사를 함께 하자고 청했다. 지영은 호쾌히 받아들이고는 짐을 마저 챙겼다. 이윽고 그는 시윤을 두고 강의실을 빠져 나간다. 시윤은 그의 등 뒤로 가볍게 손을 흔든다.
귀환은 트리갭의 샘물보다 삶의 선택과 닮아 있다. 선택을 되돌릴 수 있는 여지가 있으니까. 선택과 선택과 선택. 시윤은 마트에 들리기로 한다. 저녁으론 어묵우동을 끓여 먹을 것이다. 겨울이���까. 목요일에는 전골을 먹자고 할까. 시윤은 강의실에서 걸어 나간다. 시윤이 뿜는 김 위에는 여러 선택지가 하얀 창처럼 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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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 추월
상상 추월 르미
차희는 그랬다. 체력이 특별히 뛰어나거나 운동신경이 탁월한 편은 아니었는데, 체육시간엔 항상 열을 내며 뛰었다. 체력장을 하는 시기엔 꼭 운동장 8바퀴를 뛰었는데, 헉헉대며 중간 정도를 뛰고 있으면 차희는 항상 같은 속도로 운동장을 돌아 가장 처음으로 골인지점에 들어섰다. 몇몇은 힘든 탓에 잠시 터덜터덜 걷고, 몇몇은 힘든 소리를 내는 와중에도 차희의 입은 다물려 있었고 뜀은 일정했다. 다윤은 차희가 눈에 들어오는 순간마다 조금씩 빠르게 뛰었다. 차희에 대한, 부러움에 가까운 감정. 그러면서도 그 옆에 나란히 뛰며 서로의 기록을 견제하고 싶다는 이상한 마음. 다윤은 뻣뻣해지는 허벅지를 조용히 두드리며 뛰었다. 함께 뛰던 무리를 벗어나서 차희를 따라갔다. 차희는 반 바퀴보다 더 빠르게 다윤에게서 도망갔다.
같은 반이라 가벼운 대화는 자주 나누었지만 노는 무리가 달라 같은 반 친구 이상의 관계는 못 되었다. 다윤과 다윤의 친구무리가 스탠드에 앉아 뜨거운 햇빛을 피할 때 차희는 맘껏 태운 피부로 농구공을 던졌다. 차희는 잘 웃었지만 감정표현은 크지 않았다. 다만 자유투가 들어가거나, 레이업슛이 들어가면 작게 주먹을 쥐었다. 다윤은 그날 집으로 돌아가 근처 근린공원에 농구공을 하나 들고 섰다. 바닥에 농구공을 튀기는 데에만 한 시간을 썼다. 보지 않고 공을 튀기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다윤의 눈은 농구공의 까만 줄에 고정되어 있었다. 손바닥은 아팠고, 자유투는 시도해볼 수도 없었다. 손바닥이 너무 아플 때 즈음엔 아무렇게나 골대에 공을 던졌다. 골대를 넘어서 공이 나무 사이에 파묻힌다. 다윤의 검정 반팔은 아무도 모르게 젖어 있었다.
체육 시간의 종목은 자주 바뀌었다. 수행평가로만 평가하는 체육. 절대평가라 어느 정도만 해도 B는 나왔다. 그런데 왜 차희는 저렇게 열심히 할까. 다윤은 체육을 싫어하지 않았다. 피부가 온통 까맣게 되어버려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점수에는 큰 욕심이 없어서 좋아하는 종목이 아니면 열을 내며 하진 않았다. 그런데 차희는 못하는 것에도 열심이었다.
다윤은 탁구를 잘 쳤고, 차희는 탁구에 젬병이었다. 공이 일정한 속도로 나오는 기계 앞에서, 차희는 단 한 번도 제대로 공을 치지 못했다. 공을 치더라도 코트를 넘기지 못하거나 바깥으로 빠지기 일쑤였다. 그런데도 차희는… 차희는 아랫입술을 앙다물고 기계만 뚫어지게 쳐다봤다. 잠시 교대하는 시간에는 잘 치는 친구를 관찰했다. 그렇게 관찰된 친구 중 하나가 바로 다윤이었다. 다윤은 규민과 미니 단식 경기를 시작했다. 공을 테이블에 가볍게 튀기고, 자세를 숙여 눈높이까지 공을 던져 올린다. 그리곤 어깨 전체를 움직인 포핸드로 서브. 차희는 그 옆에 앉아 작은 동작으로 다윤을 따라한다. 차희의 시선이 끈질겨서 다윤은 공을 한 번 놓쳤다. 점수를 체크하는 신난 친구의 얼굴 너머의 차희. 차희는 저의 차례가 되었는지 엉덩이를 털고 일어났다. 나 서브한다~ 흥얼거리는 규민에게 다시 시선을 되돌린다. 야 나 이제 빡겜한다. 다윤은 게임에 집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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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학기마다 동아리를 선택할 수 있었다. 다윤은 드론부에 들어갈지, 컴퓨터수리를 배우는 동아리에 들어갈지 고민중이었다. 생기부를 챙겨야 하니 진로가 다른 친구들과는 갈라졌다. 동아리를 정하지도 못하고 갈팡질팡하고 있는 중에, 차희가 뜬금없이 말을 걸었다. 다윤아 동아리 안 정했지? 혹시 육상부 어때? 다윤의 눈이 동그랬다. 한여름보단 덜했지만 고르게 탄 피부가 눈에 띄었다.
얼마 전까진 배구부 만든다며? 다윤이 묻는다. 며칠 전까지 차희는 반에서 공공연하게 배구부를 만들 거라고 눈을 밝혔기 때문에.
배구부 하려면 네트를 새로 설치해야 하는데, 그건 재정상 어렵대서.
헐.
나 리베로 하고 싶었는데. 차희가 언더토스 자세를 엉거주춤 취한다.
배구 잘해? 아니. 단호한 대답.
여자 육상부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육상부는 큰 시설 설치 없이도 맨몸으로 가능했으니까. 차희는 동아리로 대회를 나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우선 해보고 싶다고 했다. 동아리를 이미 정한 애들도 많았고, 여자 운동부는 항상 인기가 덜해서 모집에 난항을 겪고 있는 것 같았다. 여자 농구부를 할까 했는데, 축구부 매니저를 권유 받았다고도 언급했다. 나는 누군갈 보조하고 싶은 게 아니라, 직접 뛰고 싶은 거거든. 차희는 웃는다. 다윤은 물었다. 왜 여자 운동부를 만드는 거냐고. 여자남자 통합부면 외려 더 잘 모이지 않느냐고.
그렇게 하면 트랙 걔네한테 뺏기니까. 배드민턴부 할 때도 그랬거든.
수가 적고, 접할 기회의 차이 때문에 실력 차이도 나서. 결국엔 남자애들만 트랙 위에 남고 여자애들은 다 나가버린다고 했다. 차희는 그런 경험이 몇 번 있었던 것 같았다. 여자애들은 그냥 한 편에 앉아서 뺏긴 운동장을 바라봐야 한다고 했다. 차희는 그런 게 싫었다. 코트에 올라서 경기를 치르고 싶어서 들어간 운동부에서 매번 들러리 신세가 되고 싶진 않았다. 동아리는 처음 배우는 사람도 배울 수 있어야 하는 공간인데, 운동부에서는 번번이 이미 자주 해본 애들의 차지가 됐다. 그러다 보면 짝수를 맞추어 해야 하는 운동에서 차희의 상대가 없어졌다. 육상부는 계주를 제외하면 짝수를 맞출 일이야 없었지만, 그런 일이 이어지니 차라리 여자애들만 모아서 동아리를 지속하고 싶었다. 아무도 나가지 않아도 되고, 누구도 쉬고 싶을 때가 아니면 트랙 밖으로 밀려나지 않았으면 했다. 다윤은 고민이었다. 생기부를 채워야 할 때니까. 중학교였으면 모르지만……. 그럼 내가 생각해보고 내일까지 얘기해줄게. 다윤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차희에게 말한다. 고마워. 차희는 입부서를 들고 다른 반으로 향했다.
다윤은 갈피가 서지 않았다. 육상부. 육상부……. 다윤은 솔직히 말해 달리기를 좋아하지도 않았고, 속도가 빠르지도 않았다. 매번 운동장을 뛰며 겨울에도 땀을 흘리고 싶은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차희의 제안을 거절하지 못한 이유는 일정하게 뜀박질하던 차희를 따라잡고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이었다. 3학년 때에도 같은 반이 될지 모르니까. 어쩌면 이게 달리기로 그를 따라잡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지도 몰랐다. 어쩌면, 죽을 듯이 달리면… 차희의 등을 건드릴 수 있을지도……. 다윤은 머리를 가볍게 털고 차희가 남긴 입부서에 이름을 적는다. 우선 써 놓고, 마지막까지 고민해보자 싶었다. 차희를 따라잡으려면 단거리보단 장거리가 나을까. 아니면 초반에 아주 빠르게 달려서 차희를 추월해 순식간에 경기가 끝나는 단거리가 나을까. 다윤은 머리를 턴 것이 무색하게 계속 달리는 저를 상상했다.
그래서 결국 한다고 했다. 여자남자 육상부가 재작년까지 있었기에 담당교사도 찾기 쉽다고 했다. 육상부를 하던 언니들도 다시 들어올 것이고 중학교에서 육상부를 하던 1학년들도 들어올 거랬다. 상은 타지 못하더라도 대회에 나가보자고 했다. 차희가 다윤의 손을 잡고 고맙다고 했다. 다윤은 그냥 차희를 쫓고 싶었다. 다윤의 손을 놓고 뒤돌아 다른 부원을 또 모집하러 가는 차희를 알게 모르게 추월했다. 가는 방향이 그 방향도 아니었는데 빠르게 걸어서 앞지른다. 다윤은 뛰고 싶었다. 뛰는 데에 취미도 없으면서 차희의 옆으로 마냥 뛰고 싶었다.
평균 기록을 잰다며 처음으로 뛰었던 육상부 내 단거리 달리기에서 다윤은 꼴등은 아니었지만 차희를 앞지르지도 못했다. 차희는 2학년 중 1등도 아니었는데 다윤은 1등이 되고 싶다는 마음보다 차희와 대등하게 뛰어보고 싶은 마음만 있었다. 언젠가는 1등을 바라게 될까. 다윤은 잠시 생각한다. 차희는 1등이 되고 싶었다. 뭐든, 특히 몸으로 움직이는 것은 재능은 없더라도 꼭 정상으로 오르고 싶었다. 달리기 센스도 농구도 배구도 그 어떤 것에도 센스나 특출난 재능이 없었고, 스포츠 선수를 꿈꾼 것도 아니었지만 1등이 되고 싶었다. 정정당당하게 겨루어서 맨앞의 경치를 보고 싶었다. 차희는 1등의 뒤통수를 꼿꼿이 응시하고 아무 말도 않았다. 다윤이 저를 쳐다보는지, 자신이 몇 등인지도 모르고 자세가 여전했다. 차희는 1등을, 다윤은 차희를 바라본다. 뒤통수가 뛰면서 앞뒤로 흔들린다. 다윤은 차희와 같은 선상에서 뛰는 상상을 한다. 차희는 쫓기지 않고 있는데 다윤만 쫓고 있었다. 다윤은 차희가 저의 쫓아감을 눈치채기를 바랐다. 1등이 차희를 의식하는 것처럼, 차희도 자신의 속도를. 단 한 번도 대등해보려고 해본 적 없었던 보통의 다윤은 차희를 쫓았다. 둘의 날은 아직 한참 남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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