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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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태극종주
2020년 5월 30일 02:28 - 31일 14:49
95km 7852m
36시간 21분 / 28시간 25분, 2.8 / 3.7 km/h
김삿갓휴게소 - 6분 - VHF - 민화박물관갈림 - 곰봉 - 곰봉삼거리 - 954고지 - 곱돌령 - 삼도봉 - 어래산(1065) - 회암령 - 회암봉 - 선달산(1239) - 옹달샘갈림 - 박달령 - 문수분기 - 옥돌봉(1244) - 봉화 우구치 철쭉 - 도래기재 - 금강소나무 - 구룡산유래 - 구룡산(1346) - 고직령 - 곰너미재 - 신선봉 - 깃대배기봉 - 깃대배기봉 - 태백산(1567) - 산령각 - 사길령 - 화방재 - 수리봉 - 만항재 - 함백산(1572) - 중함백 - 은대봉 - 두문동재(싸리재) - 금대봉(1097) - 쪽잠16분 - 쑤아발령 - 비단봉 - 매봉��(1305) - 낙동분기 - 피재(삼수령) - 통리재 - 통리재갈림 - 면안등재 - 고비덕재 - 백병산(1261) - 큰재 - 육백분기 - 늪목 - 철탑 - 한개고디 - 휴양림삼거리 - 좌 - 토산 - 묘1 - 우 - 묘2 - 묘3 - 절개지 - 철조망 - 덕풍야영캠프
1 김삿갓휴게소 - 도래기재(28km) 02:28 - 11:47
2 도래기재 - 만항재(29km) 13:48 - 22:24
3 만항재 - 피재(20km) 01:01 - 06:26
4 통리 - 덕풍(18.4km) 08:46 - 14:49
1 김삿갓휴게소 - 도래기재(28 km) 02:28 - 11:47
버스가 시내를 배회하는 소리와 흔들림에 언제 들었는지 알지 못하는 잠에서 깼다. 늦은시간 문을 연 식당을 찾고 있었던 거다. 하지만 식당은 없었고 편의점 앞에 멈추어 섰다. 그 곳에서 도시락 하나를 먹고 김삿갓휴게소로 갔다. 주말 밤, 아직 야영의 낭만이 옅은 숯불에 남아있는 캠핑장 옆 김삿갓 휴게소에 버스 한 대가 멈추어 섰다.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캠핑에 나 어울릴 듯 한 이 오지에 검은 산으로 들어가는 우리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다. 이 곳은 오지산행이란 장르로 간간히 소개되는 정도다. 언젠가 산에 무심한 시절 한계령에서 랜턴을 켜고 산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의 비장한 모습이 여전히 기억된다.
마포천변 외씨버선��� 안내판이 눈에띈다. 올레, 진안고원길과 더불어 걷고싶은 길이다. 버선길은 민화박물관 갈림길에서 다시 우리와 만나게 된다. 박물관의 존재도 있겠지만 길은 그래야만 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길은 달랐다. 처음부터 하천이 깎은 능선은 거칠게 다가왔고 줄을 내리고 허공에 매달린 애벌레가 팔에 붙어 어디든 함께 가자고 했다. 좋게 보면 태고의 자연미고 반대는 가서는 안될 길이다. 사람들은 이미 보이지 않는다. 능선의 끝 마루아래는 대개 그렇지만 하천과 닿는 능선은 극에 달한다. 등성이는 바위와 나무가 뒤엉켰다. 가파른 사면의 낙옆은 자꾸만 아래로 끌어내린다. 능선을 벗어나면 스스로 알바의 길로 접어든다.
그리 길지 않은 능선의 도입부는 상당한 부담을 주었다. 이어지는 등성이도 그 기백이 살아있다. 좁고 가파른 등성이의 밤은 아마도 오지산행을 즐기는 흔하지 않은 사람의 오래된 흔적만 더러 보일 뿐, 다른 사람의 흔적은 보기 어렵다.
거친 등성이를 따라 강선이 포함된 통신선이 늘어져 있다. 그나마 이 줄이 이정표 역할을 한다. 선은 나무아래 단자에 닿아있다. 아마도 인근 마을에 공중파 신호를 전달하던 용도로 사용 된 모양이다. 거친 길은 민화박물관 갈림길까지 이어졌고 갈림길의 허름한 이정표를 보니 비로소 사람의길이 시작된다는 안도감이 든다. 대개 오지산행을 하는 사람들도 민화박물관 들머리 경로를 따랐을 것이다. 4킬로가 채 안되는 거리를 우리는 2시간이나 걸려 오게 되었다. 누군가 오지산행을 경험하고 싶다면 강력하게 추천하고 싶은 길이다.
역시 사람은 사람의 길을 가야 하는가 보다. 제법 사람들이 다닌 흔적이 있고 이정표가 설치된 산길은 안도감을 준다. 일종의 정당성을 부여받은 느낌이다. 된비알에 밧줄도 걸려있다. 여러 바위 꼭대기(무명봉, 시루봉)를 만나는 사이에 나무사이로 푸른 하늘이 열리기 시작 했고, 바위를 볼 적 마다 어느 바위가 곰을 닮았는지 살펴보는 재미에 금새 곰봉 고스락에 도착했다.
다소 흥분이 된다. 여전히 잘 알지 못하거나, 처음 보는 사람과 함께 이 곳, 곰봉에 올라섰다. 등산은 같은 산을 가더라도 사람들에 따라 매번 분위기는 다르다. 오늘은 일치감치 도착하여 바위위에 누워 있거나, 옅은 미소를 띠며 여명을 즐기는 모습에 기가 꺾인다. 어느 산에서 얼마나 산을 헤매며 얻은 여유일까? 멀리서 보기에 이 산이 어떠한지 알지 못하지만 ���른 하늘빛에 살포시 모습을 들어낸 이름돌이 이 곳에 오는 수고가 더해져 무척 이뻐 보인다. 그리고 는다시 한 걸음 올라서자 동쪽 전망이 압도한다. 처음 만나는 낯선 봉우리의 갓밝이. 이름을 알지 못하거나 없는 봉우리 하나가 미시리골 넘어에 자리 잡았고 주위를 구름이 둘러쌓아 호위하는 듯 보이는데 멀리 내리계곡 넘어로 목우산 줄기와 헤아리기 어려운 산줄기 넘어로 붉은 빛이 잔잔히 퍼지면서 영월의 새벽을 열고있다. 사람들은 우리가 내려다 보고 있는 것을 알고 있을까? 밀레가 잘나가던 시절의 이야기가 기억된다. 고산장비를 주로 만들던 밀레는 한국 시장을 무시했다. 한국인 사원이 사장에게 청하지만 높은 산 하나 없는 한국에 밀레의 전문장비는 수요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장은 헬기로 관악산 인근을 돌아보며 고스락에 빼곡하게 몰려서 일출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보고 마음이 바뀌었다고 했다. 일출을 기대하지 않고 일출을 위해 추위를 견디며 기다리는 시간을 즐기지 않지만 아침 산길을 좋아한다. 밀레가 우리의 모습을 보았다면 어땠을까? 외국에도 우리와 같은 장거리 무박산행이 있는지 모르겠다.
외씨버선길을 만났다. 우리가 거친 등성이를 통과하여 곰봉에서 내려오는 동안 버선길은 유유히 마포천가를 지나 김삿갓문학관을 들머리로 곰봉삼거리로 올라왔다. 마루금길이라고 이름지었다. 덕분에 태백태극길은 선달산까지 그의 친절한 안내를 받으며 지날 수 있었다. 954고지에 경로가 첨부된 안내판이 설치 되어 있어 현재 위치와 다음 지점을 가늠하며 걸으니 더욱 좋다. 편안한 산길은 나뭇가지 사이로 스며 드는 노란 햇살을 받으며 걷기 좋아 아침 산책을 하는 듯 하다. 무박산행 중 가장 짜릿한 시간이다.
곱돌령, 삼도봉을 지나 어래산에 오니 넓은 정상부에 할미꽃이 지천이다. 하지만 이미 꽃은 모두 지고 말았다. 버선길 지도를 보니 소백산국립공원의 경계를 지나고 있다. 가야할 길을 명확하게 표시하여 두었다. 다음에 다시 온다면 이곳 옆에 태백태극 개념지도를 부착 해야겠다.
외씨버선길의 감동은 회암령에서 크게 왔다. 항아리 안에 생수를 넣어두었다. 물이 없는 능선길의 특성상 굉장히 요긴할 텐데 도래기재까지 가야하는 우리에게도 그랬다. 감사한 마음이 절로든다.
회암봉 꼭대기에는 삼각점이 하나 있을 뿐이지만 올라가는 길이 즐거운 길이다. 등성이를 차지하고 길을 내어 주지 않은 커다란 바위와 참나무가 버선길의 설명대로 오지의 능선길을 걷는 즐거움을 주기에 충분했다. 바위 막아선 곳은 부드럽게 돌아가는 우회길이 마련되어 있고 바위사이로 올라오는 투박한 계단위 나뭇가지 사이로 햇살이 반짝인다. 주변 나무와 뒤엉킨 야생의 숲, 커다란 참나무와 쓰러진 참나무가 이 숲의 스스로 그���한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다. 그러면서도 버선길 때문인지 알지 못하나 길이 나쁘지 않다.
정상을 지나자 나무그늘 아래 그늘사초가 빼곡 하고 그 사이로 그야말로 오솔길이 촐랑촐랑 나 있다. 초록위에 햇살이 더해져 알록달록 명암을 만들었다. 대개 참나무숲인데 간혹 하얀 표피의 거제수나무가 포인트가 되기도 한다. 볼 거리가 많은 호젓한 산길이다.
선달산에 가까워지면서 길은 다소 어수선하다. 나뭇가지들이 바닥에 나뒹굴고 부서진 나뭇잎이 가득하다. 나뭇잎아래는 묵은 나뭇잎이 젖은채 있는데 한기가 배어있다. 누군가 별사탕을 바닥에 뿌려두었다. 자세히 보니 우박이다. 멀지 않은 시간에 우박이 내린 모양이다. 줄곧 1100미터가 넘는 고도를 유지하고 있는 고지대 산길을 걷는 즐거움은 선달산까지 그대로 이어졌다.
산을 알지 못하던 시절 이름만 보고 태백산의 아류 정도로 여기던 겨울 소백에 놀라 봄에 죽령 - 고치령 종주를 왔었다. 남은시간에 자전거로 올라가던 추억이 있는 마구령까지 가 보려고 하다가 두려워 되돌아 온 적이 있다. 산길은 계속 백두대간으로 이어져 있다는 사실이 궁금했고 과연 사람이 지날 수 있는 길인지도 의문이 들던, 그리고 여전히 의문스럽기는 마찬가지다. 하지만 선달산에 와 보니 알 것 같다. 마구령 - 늦은목이 - 선달산으로 이어지는 산길이 분명 있어 보인다.
여전히 봄 소백을 기억한다. 선달산도 소백을 닮았다. 초록이 가득한 산길과 바위 등성이를 돌아가는 자연스러운 산길, 사람들이 백두대간을 좋아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안부에 내려서니 누군가 “옹달샘 150m”라고 적어두었다. 반대편에 가니 새겨진 “선달산 옹달샘 150m“이정표가 명확하게 있지만 우리와 같이 선달산 방향에서 오자면 놓칠수도 있겠다. 약수터도 아닌 옹달샘이란 정겨운 이름에 내려가 보고 싶었지만, 물이 충분하니 갈 마음이 없다.
철쭉이 어우러진 이뿐길은 계속 이어졌다. 숲이 깊어 그늘이 졌고 옅은 햇살이 얼룩덜룩 하여 여름에도 시원하고 눈이 부시지 않는길, 짙은 흙과 자연바위가 다양한 모습으로 어우러지고 커다란 나무가 숲을 지키는 산길, 그리고 귀여운 야생화가 가득한 숲길, 고사리와 이끼가 가득하고 언덕엔 주위의 돌을 모아 계단을 만들어 두고 꽃잎을 뿌려둔 정겨운 꽃길, 사람을 만나면 반갑고 누군가 걸어둔 띠지가 바람에 흩날리며 인사를 하는 길이다. 초록이 가득한 이 산길을 걷는 걸음은 아쉽지만 길다. 아름다운데 길면 어쩌란 말인가? 가도 가도 끝없이 계속되는 이뿐 초록길과 늦은 철쭉이 던져진다. 초록의 유혹에 홀리어 내려가는 행복한 길이다.
박달령 앞봉에서 일행을 만나 5분간 쉬고 박달령에 내려왔다. 내게 익숙한 이름은 “울고넘는 박달재”로 제천에 있는 고개다. 자전거로 넘던 고개. 자전거는 고개가 피크다. 고개에 올라��면 거친 호흡을 달래며 휴식을 취한다. 박달령 이름돌의 스케일이 마음에 든다. 뒷편에는 쉬어가기 적당한 정자도 있고 “박달령산령각”도 말끔하게 정돈되어 있다. 백두대간은 관리가 잘 되는 것으로 보인다.
문수지맥 분기점을 지나 옥돌봉에 올랐다. 다시 도래기재로 하산을 하면 1구간은 마무리 된다. 옥돌봉 하산은 힘든 산행을 마무리 하기에 적당한 모습이다. 먼저 철쭉군락이 즐거움을 주고 580년 되었다는 “봉화 우구치 철쭉”에 놀라게 된다. 노령 이지만 여전히 건강해 보이고, 꽃도 더러 남아있는데 무엇보다 주변 군락과 한데 어우러져 있다. 또 조금 더 내려가면 이번에는 진달래 터널이 반긴다. 제법 길어서 개화기면 어떨지 궁금한데 지금 초록터널도 부족함이 없다.
2 도래기재 - 만항재(29 km) 13:48 - 22:24
도래기재에 도착하니 버모님이 약수터를 만들어 두셨다. 시원한 물을 가득 들이켜고 세수를 하니 지난 피로가 일거에 사라졌다. 도래기재에서 서벽리 방향으로 조금 내려가면 우측에 돌을 철망에 넣어 쌓은 산사태 방지 담 사이에 있다. 지원장소가 마음데 든다. 장승이 세워진 길 옆 공터에 원두막이 세워져 있고 버스 한 대 주차하기에 충분하고 시내도 있어 몸을 씻기에 적당하다. 마치 피서를 나온 기분이다. 공터 끝에는 폐쇄된 터널이 있는데 터널에서 시원한 바람이 나와서 거대한 에어콘을 옆에 둔 것 같다. 이 곳은 봉화군 춘양면이다. 그 유명한 춘양목의 산지다. 장승도 “춘양목 대장군, 춘양목 송이여장군”이라고 적고있다.
들머리 부터 춘양목이 즐비했다. 여러 나무들 사이에 늘 우뚝 솟아 있는 이유는 소나무는 다른나무 아래에선 살지 못한다. 이를 금강소나무 또는 강송이라고 한다. 소나무에 대한 선조들의 여러 애정과 칭송을 자주 들었지만 실제로 나무의 모습을 보기는 처음이다. 언젠가 금장지맥에서 보았던 송진채취를 한 흔적이 짙은 소나무를 보았지만 이 곳의 소나무는 여전히 강직한 모습을 지니고 있다. 이 마저도 일제강점기 숱하게 베어지고 남은 것이니 그 이전의 모습은 어땠을지 궁금하다. 당시 벌목에 참여했다는 분의 이야기에 따르면 나무를 베어낸 구루터기에 열 명의 인부가 모여앉아 점심을 먹었다고 했다. 그만치 큰 소나무를 본적이 없지만 선운사 기둥을 보니 있을 법도 하겠다. 임도가 지나는 금강소나무 안내에 대표모델이 늠름하게 서 있고, 구룡산유래가 적힌 임도까지 계속 이어졌다.
구룡산 숲 설명에 따르면 일대 능선에 방화선이 구축 되었었고 지금의 신갈나무는 벌채한 구루터기에서 돋아난 나무로 이루어진 숲이라고 적고있다. 그늘이 없는 꼭대기를 지나 일행이 기다리는 사초가 가득한 숲의 나무를 보니 과연 나무는 사라진 구루터기 주변에서 돋아난 모습을 하고 있다. 본디 커다란 나무는 사라지고 없지만 이 나무는 수령이 상당하고 뿌리가 깊을 것 같다. 숲은 고직령과 곰너미재까지 이어졌고 신선봉 직전까지는 임도로 이어졌다. “천하명당 십승지”라고 이름돌에 적고있다.
힘들고 ��� 길이 계속 이어졌다. 소백에서 태백으로 가는 길. 홀로 남아 휴식을 취하고 다시 걷기를 반복하고 해는 점 점 기울어 간다. 일행은 보이지 않다가 깃대배기봉 아래에서 두 분을 만났다. 다시 두 분을 보내고 13분간 휴식을 취하면서 양말을 갈아신었다. 긴 한숨이 늦은 오후의 쓸쓸한 빛깔을 타고 알수 없는 미지의 산속에 흩어진다. 더는 갈 수 없을 것 같아 어디 중탈길 이라도 있다면 내려가고 싶은 마음이 든다.
깃대배기봉은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그리고 조금 더 가자 다시 깃대배기봉 이름돌이 나왔다. 비슷한 모양과 크기의 고도만 다른. 1370미터, 1368미터. 그리고 낡은 데크길이 펼쳐졌다. 다시 힘이 돋는다. 이 곳의 철쭉인지 연달래인지 구분이 안되는 꽃은 아직 한창 이거나 덜 피었다. 시그러운 연분홍 꽃이 석양에 반짝거리며 내가 알지 못하는 태백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산길의 난이도에 시각적 요소가 미치는 영향이 대단히 크다. 드디어 태백태극의 중심인 태백산의 영역으로 들어온 것이다. 다만 아쉬운 것은 해가 거의 기울어 간다. 부쇠봉을 생략하고 천제단으로 바로 가 보지만 ��를 잡기는 역부족이다.
아쉬운 노을을 옆에 끼고 천제단에 도착했다. 겨울과 달리 바람은 적었지만 반바지로 감당할 정도는 아니다. 급히 주변 사진만 담고 내려가려고 하는데 익숙한 사람들이 도착한다. 선두가 부쇠봉에 들렸다 왔다. 다행이 모두 함께 다시 만나 기념사진을 담을 수 있었다. 태백태극종주 인데 태백산 사진에 빠지면 아쉬울 것이다.
장군봉과 주목군락은 겨울과는 달리 쓸쓸한 모습이다. 다시 어둠을 맞이하고 유일사와 산령각, 그리고 사길령을 지나 한달음에 화방재에 도착했다. 대개 돌길이라 길이 편안했다.
화방재에서 내가 기다린 것은 다름아닌 화장실 비데다. 새로 단장한 어평휴게소에 비데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너무 기뻤다. 최근 오래도록 앉아있다 보니 뒤가 좋지않아 장거리 종주때 가장 불편한 점이다.
수리봉이 어렵다고 하더니 뒤에서 천천히 올라가다 보니 어느새 정상에 도착했다. 한데 여기에 일종의 사기가 있었다. 정상은 꼭대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능선의 앞쪽에 있고 계속 조금씩 고도를 높이는 모양이라 내리막이 아니라 완만한 오르막이 얄밉게 계속된다. 만항재의 고도와 맞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 싶었다. 겨우 시설 울타리를 돌아 만항재로 내려오니 그토록 사람들이 북적이던 만항재엔 쓸쓸한 어둠 만이 가득하다. 지난날 성동에서 또 태백에서 자전거로 개거품 물며 올라오던 기억이 떠오른다. 특히 오투리조트를 지나 올라오는 도로는 잊혀지지 않는다.
3 만항재 - 피재(20 km) 01:01 - 06:26
다시 어둠속에 길을 떠난다. 함백산으로 간다. 처음 가는 산. 설레이는 마음으로. 임도로 가기로 결정했다. 밤에 사람들이 모여있는데 별자리 사진을 찍는 것 같다. 우리의 랜턴을 걱정하는 눈치다. 임도로 올라와서 인지 함백산이 전해주는 감동은 크지 않았다. 곧바로 중함백을 지나 사거리 안부로 갔다. 마루금으로 먼저 갔던 ��이님이 쪽잠을 자고 있다가 일행과 합류했다. 엄청난 능력을 갖추었다.
어렵지 않게 은대봉을 만났고 또 헤어핀이 아름답지만 막상 도로에서는 전망이 없어 실망했던 두문동재에 도착했다. 그리고 다시 임도를 지나 금대봉에 올라갔다. 은대봉과 비슷한 느낌이다. 도로와는 달리 오히려 산길은 좀 심심했다. 아마도 어둠에 가려진 아름다움을 볼 수 없는 까닭일 것이다.
금대봉 하산길에 졸음이 쏟아진다. 비단 나만이 아니라 모두들 그런가 보다. 둘쨋날 밤이 가장 졸립고 셋째, 넷째는 오리려 괜찮다. 모두 비틀 거리며 걸으니 아무래도 자야겠다. 쑤아밭령 못 미처 공터에서 16분간 쪽잠을 잤다. 눈만 감았다 뜬 것 같지만 신기하게 졸음이 사라지고 새소리가 청명하게 들리면서 하늘이 밝아졌다. 그리고 쑤아밭령을 만났다. 이정표는 창죽령으로 적고 있다. 고개 마다 큰 나무가 있는 것을 자주 보게 되는데 이 곳의 나무는 나무도 크지만 그 모양이 신기하다. 마치 동화속에 등장 하는 숲을 지키는 나무처럼 느껴진다. 문득 입을 열며 이야기를 할 것만 같다. 재미있는 이름은 밭벼와 관련 있다고 이쁘게 적혀있다.
싱그러운 여명을 받으며 비단봉에 도착했다. 꼭대기가 바위로 되어 있어 파란 하늘, 초록과 잘 어울리는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있다. 올라와 보니 전망도 빼어나서 우리가 걸어온 산줄기가 그대로 드러났다. 함백, 중함백, 은대, 금대 모두 낮이라면 어떤 모습일지, 어떤 전망을 보여줄지 알지 못한다. 내가 아는것은 다리로 전해지는 산길의 느낌과 고요한 분위기 그리고 졸음 뿐이다. 하지만 비단봉에서 이 모든것을 내려다 보며 그 초록을 더듬어 보는 시간을 갖을 수 있으니 만족스럽다. 초록을 지나니 몸이 초록이 되었다.
유명한 매봉산 바람의언덕에 왔다. 마침 해가 떠서 황금빛 조명과 하늘의 조화를 볼 수 있었다. 매봉산 전망대에 가니 태백이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우리가 출발한 함백산 통신시설과 스키장, 은대봉과 금대봉, 두문동재를 넘는 구불구불한 도로와 그 아래 터널로 들어가는 38번 신설 국도, 추전역과 기차길. 저 산속에 얼마나 많은 석탄이 묻혀있을까? 푸른 산에 여기저기 복잡하게 도로, 임도 그리고 스키장이 나 있다. 아름다운 태백은 그 풍요로움과 거침 때문에 오히려 여기저기 할퀴어진 느낌이 든다.
4 통리 - 덕풍(18.4km) 08:46 - 14:49
리무진버스를 타고 4구간 들머리로 편안하게 옮겨졌다. 그리고 좁고 가파른 들머리로 응원을 받으며 밀어넣어졌다. 능선 초입부터 어수선한 산길로 이어졌다. 대장님과 탱이님은 동물적인 감각으로 어디론가 사라지고 그들이 남긴 희미한 트레일을 쫓아갔다. 복잡한 능선을 걸어 건너편 능선으로 올라타서 이정표를 만났다. 오다보니 임도가 가로지르고 있다. 이정표는 우리가 온 길은 “등산로 아님”이라고 적고있다. 허무하지만 익숙한 일이다. 1090봉에서 대장님과 탱이님을 만났다. 좌측으로 통리협곡이 있다. 언젠가 영상을 보고 지도를 살펴보던 그 곳이다. 지금 협곡 능선에 올라선 것이다. 협곡은 보이지 않는다.
대간에 비할바는 아니지만 길은 부쩍 좋아졌다. ���동정맥은 영남알프스 일부 구간을 제외하고는 오늘 처음 밟아본다. 낯선 길이다. 태백태극길중 가 본 곳이라곤 당골에서 천제단과 부쇠봉, 그리고 문수봉으로 돌아 내려오는 코스가 전부이다.
산죽길을 지나 면안등재에 도착했다. 그저 “여기가 면안등재 입니다”라는 표지가 전부였다. 넓고 햇빛이 가득한 고비덕재를 지나 시원한 숲 바위에 주저앉았다. 숲을 둘러보니 음기가 가득하여 과연 고비나물이 많을 것 같다. 다시 체력의 한계를 느낀다. 본래 체력이 안되는 것인지 주중에 술을 많이 마신 것인지 알지 못하겠다. 생각보다 쉽게 백병산 삼거리에 올라간 것은 정상은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삼거리 쉼터와 여러 이정표가 눈에띈다. 쉼터에는 일행의 가방이 널려있다. 가방을 두고 백병산에 간 것이다. 서둘러 따라가 고스락에서 만났다. 그리 높지 않지만 긴 거리 힘든 산이다. 500미터 더 가면 산의 이름이 유래된 병풍바위와 촛대바위가 있다는 이정표가 있지만 전혀 생각이 없다. 삼거리와 정상간의 산길은 편안했다. 모처럼 좋은 길을 걷게 되어 흥이 난다.
다시 큰재를 지나 육백지맥분기점을 지났다. 사람들은 분기점의 의미가 큰가 보다. 나로서는 관심은 가지 않고 저 높은곳에 어떻게 표지를 달아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늪목이나 한개고디는 보지 못했고 그대로 휴양림삼거리에 도착했다. “고비덕재 4.2킬로, 면산 4.9킬로”. 토산령, 구랄산 그리고 면산으로 낙동정맥은 계속 이어지고 우리는 토산능선을 따라간다. 바지를 입었다. 바지로 갈아 입으니 다리가 굽혀지지 않는 느낌이다. 내내 바지를 입고 등산을 하는 사람들은 어찌 하는지 모르겠다. 등산이 취미로 자리 잡았지만 여름 겨울은 거의 하지 않았다. 올 해는 여름 장거리 등산을 해야 할 판이다. 오늘 그리 덥지 않은 초여름 등산을 해 보니 해서는 안될 것으로 생각된다.
과연 토산능선으로 떨어지면서 길은 크게 달라졌다. 그리고 점점 더 희미해 졌다. 이곳에도 커다란 소나무가 자주 보이는데 특이한 점은 쓰러진 나무도 더러 보인다. 커다란 아름드리 소나무가 일자로 곧게 누워 껍질이 벗겨진 채 하얀 속살을드러냈다. 사람들은 길의 형태와 무관하게 잘도 넘어간다.
가늠하기 어려운 길이 계속 이어졌다. 토산 앞봉우리가 주의해야 할 포인트로 보인다. 안부에서 좌회전 해야 한다. 봉우리에 올라 다시 왼쪽으로 돌아서 내려왔다. 다시 갈림길에 와 보니 오래된 띠지가 버젓이 걸려있다.
고도표를 분석 해 보면 4구간은 백병산 하나 넘고 긴 내리막이 이어질 거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산길은 높낮이로 헤아릴 수 없다. 이제서야 전 구간 통틀어 가장 어려운 구간이 시작되는 것이다. 고난의 길이다. 그리고 고난의 길은 토산 하산 부터 극에 달한다. 사람의 발이 닿지 않은 가파른 솔잎길이 아름답고 잔인하게 펼쳐져 있다. 발을 딛으면 솔잎과 흙이 그대로 밀려내려갔다. 그렇다고 그대로 가다가는 좁은 능선을 벗어나 사면 아래로 추락할 태세다. 감당이 되지 않는 독특한 길이다.
���상부를 내려오자 길은 한층 완만해 졌다. 하지만 이번에는 소위 어려운 지맥길을 끊임없이 올라갔다 내려와야 하는 모습이다. 어렵게 올라갔다가 다시 어렵게 내려오거나 길이 없어 우회길을 선택하다 사면 나무에 걸리거나 다시 올라가 얼마 되지 않은 능선에 이리저리 길을 내며 걸어야 하니 마치 눈길 러셀을 하는 기분이다. 물론 대장님과 탱이님이 이미 다 해 두었다. 게다가 좁은 능선의 키 큰 소나무는 햇빛을 제대로 막아주지 못한다. 몸이 더워 물을 마시고 물을 너무 마셔 배는 부르지만 안마실 수 없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얼마간 반복되는 능선을 걷다가 묘를 만났다.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3킬로가 넘게 남았다. 거리는 좀체 줄어들지 않는다. 묘의 후손은 어찌 하는지 알지 못하겠다.
좁은 소나무 능선은 계속 이어지다가 끝봉에서 갈라졌다. 우리는 오른쪽 좁은 능선을 타고 더 내려갔다. 다시 묘 2기가 차례대로 보이고 이윽고 덕풍계곡이 시원하게 드러났다. 인근 조림을 하였다.
능선 끝에서 대장님을 다시 만났다. “길이 너무 아름답습니다.” 라고 하자 “더 아름다운 길이 이제 시작된다”라고 하며 가파른 조림지를 내려가기 시작한다. 발은 주체할 수가 없어 소나무 우듬지를 부여잡고서야 겨우 내려갈 수 있는 길이다. 다만 아직 소나무가 어리다. 몇년 더 지나 소나무가 자라면 지난 금장지맥 처럼 가로로 자란 가지가 길을 막을 것 같다. 그 때 다시 후답자의 후기를 읽으며 오늘을 추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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