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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세상 단백질라면
얼마전에 직장위치가 바뀌는 바람에 서울대입구, 봉천 주변으로 와서 살게되었다.배가 고파 동네를 돌아다니다가 무한리필 라면집을 발견했다.오늘 못 채운 단백질 50그람을 라면으로 채우기엔 턱없이 부족해보여서 고개를 돌리려던 찰나.
계란 및 토핑 무한리필
이라는 문구가 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아! 이거다’
식당에는 나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었고, 무인으로 운영되는 식당이라는걸 알게되었다. 그러고선 천천히 둘러보고 재료를 선택했다. 재료는 콩나물, 라면한봉지 그리고 계란 6알을 혼자 실실 쪼개며 들고왔다.
계란하나에 단백질 7그람 x 6개 약 42g 에 라면에 있는 10그람으로 52g을 정확히 맞춘다음 혼자 만족한듯 낄낄낄 웃으며
단백라면
으로 혼자 이름 붙이며 라면이 끓기를 기다렸다.
저세상 단백라면이 완성되었다.
단백질만 먹으면 장에서 무리가 올수 있기때문에 콩나물로 적절한 식이섬유 섭취, 면으로 탄수화물 섭취, 파와 양파로 국물을 맛있게 우려냈다. 오늘도 식단을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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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살, 일상
그 어느때보다도 재미있을거 같은 20살은, 더 힘들고 더 열심히 살고있다. 굳은 의지를 가지고 규칙적인 삶을 가지려고 한 것은 아니지만, 매주가 똑같은 생활은 어느새 습관으로 자리잡았다.
직장인? 재수생?
나는 갈림길에 놓여져 있다. 작년 예비 1번이라는 결과로 대학 입시에 실패를 하였고, 직장에 다니고 있다. 재수는 생각지도 하지 않고 있었지만, 다른 친구들의 대학생활과 우리나라에서의 내 미래에 학벌로 발목 잡히지 않기위해 재수에 대해 다시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고등학교 3년간 문제집을 잡고 2시간을 넘겨본 적도 없었지만, ���가 지금 시작해도 남들보다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기에 주경야독으로 직장인과 재수생의 길을 같이 걸어보기로 결정하였다.
3월 한달간 9시~ 6시 회사, 8시~10시 과외, 출퇴근 하면서 인강을 들으며 시간을 쪼개며 공부를 하였다. 20살이 되고 남들이 다한번쯤 해본다는 소개팅, 술자리, 클럽은 나에겐 사치라고 생각되었고, 이대로라면 목표에 가까이 갈 수 있을거같았다. 하지만 4월이 되자 3년이 넘게 안하던 습관을 한번에 바꾸니 몸이 견디질 못하였다. 아침 저녁이면 1시간 출퇴근을 하고 퇴근뒤에 공부를 하다가, 저녁 10시가 되면 운동까지 가다보니 “일, 공부, 운동" 3가지를 모두 감당하기엔 스트레스도 심했고 점점 힘들어지기 시작하면서 점차 공부하는 시간이 일상속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그렇게 회사를 다니던 중 기회가 되어 프로그래밍을 공부하고 싶다는 중, 고등학생들에게 연결이 되어, 주말에는 과외로 인한 수입이 생기기 시작했다.
휴일 없는 생활
직장에 다니기까지의 배경을 설명하자면, 1월 까지 역삼쪽의 마케팅 회사에서 프로그래머의 역할로 근무를 해왔고, 그다음으로는 소개로 좋은 조건으로 다른 회사에 취직을 하기로 얘기가 되었었지만, 동기가 사업을 같이 하자고 창업 제안을 해서 같이 일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전직장보다 많은 돈을 조건으로 이직을 했지만, 초기 회사의 자본문제로 인하여 거의 최저 급여를 받으며 일을 하고 있다. 근무시간은 자유로웠고, 재수를 준비하고자하는 나의 생활에 잘 맞는 패턴이 갖춰지게 되었다. 하지만 평일에 퇴근 후 저녁을 먹고, 동생의 공부를 봐주고, 운동을 갔다오게되면 저녁 12시는 훌쩍 넘어가고, 주말에는 낮은 월급을 매우기 위한 학생들의 과외로 주 7일을 일을 하게 되었다.
재수에 대한 생각, 규칙적인 생활
공부는 몸이 힘들다 보니 자연스럽게 안하게 되었고, 바쁜 일정속에 자연스럽게 친구들과의 만남이 줄어들었고 금주도 하게되었다. 술을 먹게되면 다음날에 지장이 가게되고, 쉬는 날이 없기에 술을 마시면 안되는 상황이다. 그러다 보니 “대학을 꼭 가야될까?“라는 생각도 하게되면서 내 자신이 느슨해 지는걸 느끼게 되었다. 그렇게 부러워 보이던 친구들의 대학생활도 부럽지 않게 되고, 대학을 가서 내가 이렇게 힘들게 번 돈을 다시 써가면서 배운 전공을 또 배워야 할 까 하며 스스로를 자기 합리화 하고 있었다. 자신이 한심해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도 행복한 생활
난 그래도 지금 삶에 불만은 없다. 내가 선택한 삶이기 때문에 힘들지만 즐겁게 생활 하고 있다. 회사는 친구(대표)랑 서로 성격이 고집이 있다보니 매일 같이 인상찌푸리면서 싸우고, 큰소리도 나지만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듯 다시 웃고 떠들며 직장을 다니고 있고, 또 이번달에는 방배에서 공덕으로 직장이 이사를 하게되면서 매우 좋은 시설에서 근무를 시작하게 됬다. 또 운동은 벌써 유도를 배우기 시작한지 7개월이 다되가는데 내 성격과 취미로써 굉장히 잘맞는거같아서 다행이다. 주말에는 하루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학생들을 보며 내 고등학교때의 모습을 보는거같아 뿌듯하고, 학생들 한명 한명한테 학생과 선생이 아닌 사람으로써의 이해가 생기게 되었다. 처음에 생각했던것처럼 공부를 하진 못하였지만, 대학은 다시한번 도전해보려고 결심했다.
그래서 열심히 하고 있다.
지금 다니는 직장이 아직 수입도 형편없고 규모도 작지만, 같은 업계에서 최고를 달리는 회사로 만들고 싶고, 다른사람에게 의미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지금 가르치는 학생들로 시작해서, 여러 학생들의 방향을 잡아 줄 수 있는 사람이 됐으면 한다. 마지막으로 고기먹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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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10대 마지막 회고
고등학교 3년의 마지막이자 미성년자의 신분으로 막을 내리는 날이다.
글읽을 시간이 없는분들에게 조금 빠르게 읽으실수 있도록 결과만 말하면 결과적으로는 좋은취업자리와 대학 둘다 떨어졌다. 하지만 나름 재밌게 큰그림 그��며 살아가고있다.
고등학교 3년간 대략적인 일정은 이랬다. 1학년때에는 전공에 대한 관심이 생겼고, 2학년때는 선배와 친구의 도움으로 여러 경험을 하며 성장해 가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올해에는 많은 도전을 하고 실패를 하였다.
조금은 남들과는 다른 방향으로 걸어왔고, 더 값진 경험을 많이 할 수 있었다. 임팩트 있는 사건들만 정리를 해보자면
1. 첫 면접 불합격
이번 초여름, 나름 IT 계열 회사들 중에서 높은 인지도를 가진 회사에서 면접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회사에서 주최하는 대회에서 1등으로 마무리 지으며 실수만 안하면 붙을 수 있다라는 분위기였고, 나역시 준비를 철저히 한다고 해갔다.
하지만 예상치 못했던 인적성 검사와 기초 능력 평가(?)를 하게되면서 어이없는 실수를 통하여 면접에서 떨어졌다는 결과를 받게 되었다.
2017 하반기
하반기의 일정들은 앞으로의 나의 방향을 완전히 바꿔버렸다.
2. 대입 실패(4광탈 2예비(동국 예비1))
자세한 내용들은 여기 에서 볼 수 있다.
간단하게 지금 상황을 말해보자면 난 지금 동국대 예비 1번에 기도 하고있다.
친구들과 선생님들은 당연히 합격할줄 알고 한달전부터 축하와 칭찬을 해주었다.
”동국대생 미리 축하해~~”
”주용 이제 동국머학생 이네~”
하지만
그저께 1차 추가 합격자 발표가 나서 당연히 합격이 될줄 알았던 나는 아직도 예비 1번이라는 모니터의 모습은 내게 큰 충격과 실망감으로 다가왔고, 부모님에게 죄송스런 마음으로 다가왔다. 난 그럴때마다 남들에게는 무덤덤하듯 “그럴줄 알았어. 괜찮아.” 말하지만 아직도 가끔 꿈속에서 동국대 합격자 페이지에 들어가서 확인을 하곤 한다.
3. 프로그래머로써의 취업
저번달부터 나는 회사에 출근 하기 시작했다. 동국대는 당연히 붙을 거라고 생각했고 2월달까지 회사 다니면서 자기발전하면서 돈이나 벌어보자 하는 마음으로 친구가 다니는 회사에 용돈벌이겸 추천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회사의 업종은 광고 회사다.
‘왠 프로그래머가 광고회사여??, 너 거기서 무슨일하는데?’
라고 몇몇 분들이 많이 물어본다. 회사에서 내가 주로 하는업무는 광고주 업체들의 웹, 앱 서비스 피드백 및 쇼핑몰개발 등 요즘에는 회사 자체 서비스도 만들어 가고 있는 중 이다.
앞으로 프로그래머로서의 첫 취업을 목적을 가지고 있는 분들께 하고싶은말은
“프로그로그래밍이 주가 되는 회사로 취직해라 “
이말을 해주고싶다. 나는 지금 위에서 썼듯이 광고회사에서 프로그래밍을 하고있다. 회사 대표, 상사들은 프로그래밍적인 지식이 없다. 어느정도의 기간이 걸리는지 어느정도의 난이도인지 판단을 할 수 없고, 프로그래밍 기술에 대해 가지고 있는 가치관이랑 생각 자체가 단순한 도구 기술 그 이상으로 평가하지 않는다.
자신을 더 발전시키고 싶고, 회사생활에 만족을 갖고 싶다면 자신의 분야에 최적화된 회사를 고르기를 바란다.
4. 새로운 시작
2017년을 보내면서 실패들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교내대회에서 좋은친구들 덕에 금상도 타고,
친구들끼리만 모여 여행도 갔다오고,
좋은친구와 저녁마다 공원에 나가 운동도 했고,
친구, 후배와 함께 고기도 많이 먹었다.
2017년 19년 동안 내 주변에서 응원해주고 함께해준 친구, 선배, 후배, 선생님, 그리고 나만큼 힘들었을 가족들에게 많은 감사함을 느낀다.
여기까지로 2017년 회고를 정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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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3일전 근황
입시철로 친구들이 한창 바쁘고, 정신적으로 부담감을 안고 있는 시기에 나는 남들과는 조금 다른 방법으로 지내보려고 한다.
일단 지난 한달간의 대학 수시 입학에 관해서 얘기 해보자면 국민, 아주, 숭실, 동국, 가천, 성균 이렇게 총 6장의 수시 티켓을 모두 사용했다.
6개 전부 새로 신설된 SW특기자전형(소프트웨어 특기자) 전형으로 준비가 되었고, 그 중 대부분이 학생부 종합 전형의 이름이 바뀐 형태였다.
예상외로 가장 가능성 있다고 생각했던 국민, 아주, 가천은 1차 합격의 문턱도 보지 못하고 바로 광탈해 버리는 일이 생기게 되었고, 숭실은 운이 좋게 1차 합격의 기회가 찾아왔다. 하지만 운도 거기까지 서류가 높은 비율을 차지하던 숭실은 알고리즘 대회와 내신이 낮은 내게 합격하기란 어려웠다.
그리고 가장 억울했던 것은 동국대 시험이었다. 나름 문제들이 나의 수준에 알맞는 문제들이 나왔고, 다풀고 나서도 나름 만족한 뒤에 시험장을 나섰다. 하지만 그 날 꿈에서 문제를 다시 풀게 되었고 시험에서 한가지 실수를 저질렀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어이없는 실수였다. 뻔히 다푼 문제를 실수로 답을 잘못 적어 낸것이다. 그것으로 동국대는 희망을 접어 두려던 찰나 예비 1번이라는 추가합격을 받게 되었다. 앞에 4명 중 한명이라도 나가길 기도하며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리고 최근은 딱히 할일이 없어 좋아하지도 않는 온라인 ��임 몇개를 끄적이다 너무 시간을 낭비하는거 같아 한심 했고, 차라리 돈을 벌고 남는 시간을 자기개발에 투자해 볼까해서 두가지, 세가지 정도의 도전을 시작했다.
첫번째는 회사였다.
처음에는 기존에 같이 서비스를 진행하던 EVON이라는 전기차 충전소 안내 서비스를 만들려고 했었다. 하지만 정기적인 수입모델도 없었고,회사 운영을 많이 볼 수 있는 기회가 적어 다른 회사에서 나를 발전 시켜 보고싶었다. 그리고 친한 친구가 있는 회사에 들어가게 되었다. 오늘이 첫 출근이었다. 나름 회사 분위기 자체는 나쁘지 않았지만 많이 배울것도 없어보이긴 하다. 나름 회사 키우는 재미가 있을 거 같고, 대학에 붙어 나가기 전까지 (예비 1번이라 아직은 모르지만) 친한 친구를 최대한 도와주려고한다. 내가 나가기전까지 다른 회사 사람들에게 인정 받을 수 있도록. 두번째는 유도였다.
시간은 월수금 저녁 10시부터 약 11시10~30분정도 하기로 했다. 오늘이 첫 수업 이었고 사람들도 다들 착하셨고 부관장(?) 사범님도 대충 내 얘기를 해드렸는데 IT계열쪽에 잠시 관심을 가지셨는듯 했다. 뭐 기술쪽은 몸도 내가 유연하지도 않고 막 엄청 뛰어나지 않아서 빠르게 습득하지는 못했지만, 힘쓰는건 다른친구들 정도 하는거 같았다. 뭐 나름 유도라는 운동 자체가 마음에 들었다.
세번째는 피아노다.
피아노는 대략 저번주 금요일 정도 부터 치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시절 친했던 여자아이가 쳤던 Summer이라는 곡을 연습을 시작했는대, 악보를 아직 읽을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고, 폰으로 악보 보는대에도 한계가 있다고 생각되었다. 악보를 프린트해서 볼 생각이다. 일단은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정리를 한번쯤 해보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해 자기전에 글을 써본다. 회사나 유도 등등 더 구체적인 내용은 앞으로 한번쯤은 더 쓸거같다. 나름 시간이라는 자원을 효율적이게 쓰려고 노력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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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의무화에 대한 생각
2019년 부터 SW교육 의무화가 진행된다고 하는데, 내년에 동생이 중학교를 입학한다. 기술, 가정 하위 과목으로 들어가면서 성적에도 반영 된다는 소식이 있어 부모님도 관심을 가지시는거 같으신다. 바로 내년에 도입되는 SW교육에서 제대로 된 교육이 이루어 질 수 있을지, 그리고 그만큼의 교사 인력이 충분할지도 모르겠다. 어떠한 과정으로 소프트웨어 교육이 이루어질지 모르지만, 방학동안 동생을 위해 약간의 코딩(?)에 대한 학습을 도와주려 한다. 어떤 방향으로 나가야 되는지에 대한 고민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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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SCY 그리고 협업
KSCY 대회는 지원 전부터 많은 고민이 있었다. 청소년 학술 대회라는 이름에서 대회를 수준을 얕잡아 보게 되었고, 비용이 12만원이기에 고등학생인 나한테는 적지 않은 돈이었다. 이 학술대회는 그저 대학을 지원할 때 한줄이라도 더 ���기 위함이었다.
기말고사가 끝나고 2일이라는 남은 시간에 작성 할 수 있는 주제를 선택해야 했었다. ORM의 프레임 워크별 쿼리 전환과, 효율성을 측정하고 가장 효율적인 ORM을 구현해보는 것이 목표였지만, 하지만 그정도의 시간은 나지 않았고, 대회 수준이 어느정도 되는지 몰라 적당히 Django 기준으로만 프레임워크 소스를 보면서 정리해서 제출하였다.(후배의 도움이 컸다)
발표 당일 각분야 멘토들에 대해 설명을 하면서 컴퓨터 공학 세션에 유명하신 분의 성함이 적혀 있는 것을 확인하고, 같이 온 친구와 함께 발표에 대한 긴장감은 커져갔다.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청소년 분들은 각자 재미난 주제를 들고 참석하였는데, 그 중에서 가장 나의 이목을 끌었던건 Text rank 알고리즘에 대한 것 이었다. 아이디어 구상부터 완벽한 구현까지 저절로 감탄을 자아내지 않을 수 없었다. 나의 발표는 예상대로 흘러갔고, 퍼실분들과 멘토님은 역시 예상했던 문제들을 짚어 주셨다. 그렇게 집에 돌아와 일상을 보내던 도중 멘토님께 페이스북 친추가 걸려왔다. 여기서 부터 예상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하였다.
KSCY에서 이러한 인맥을 얻을 수 있어 굉장한 고마움을 느꼈는데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 다음날 협업이 할 의향이 있는지에 대해서 물어봤다.
다양한 감정이 느껴졌다. 첫번째로 느껴진 감정은 영광이라고 생각하였고, 두번째로 느껴진 감정은 나와 분야가 다른데 오히려 피해가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었다.
그리고 하나의 말도 안되는 일이 더 벌어졌다. 저녁약속을 바로 다음날에 잡았다.
저녁은 태어나서 먹은 식사중 비싼걸로 세손가락 안에 뽑힐 정도의 식사를 가볍게 결제하셨고, 단순한 저녁 식사가 존경하고 싶은 대상의 이미지로 잡히게 되었다. 대회에서 봤던 인상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대회에서는 나를 평가한다는 이미지의 사람이었으면 지금은 같이 협력을 하며 큰 도움으로 와주는 존재였기에 더욱 친근감 있게 다가와졌다. 협업의 주제는 “하스스톤 AI”로 결정을 하였고 팀 구성원들의 성향에 맞는 Low 하면서 High한 부분까지 다룰 수 있어 만족하고 기대를 가진 마음으로 준비하고있다. 하지만 협업에 대한 아무런 걱정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다른 친구도 대학준비 때문에 시간 분배의 어려움을 생각하고 있었고 나 역시도 수능준비를 특별히 하지 않지만 대학 입시와 또 진행하는 프로젝트와의 중복으로 인하여 소홀해 질 수 있을거라는 걱정이 존재하였다.
이번 기회에서 가장 크게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인간 관계다. 지금 이 인간관계가 어떠한 결과를 이끌어 낼 수 있는지 아직 확신 할 수 없지만 이러한 기회가 생기고 도전할 수 있는 시점을 만들어 내는 자체에서 가장 큰 메리트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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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
동생과 어머니가 아침에 말다툼이 있었다.
동생은 초등학생 6학년. 다른 아이들과 같이 수학학원, 영어학원을 다니고 있는데, 힘들었나보다. 교육열이 치열한 목동 학원을 다닌다는건 초등학생이라는 나이에 힘들거라고 생각한다. 또, 굳이 초등학생때부터 이렇게 해야되는지 싶기도 한 생각이들었다.
하지만 어머니의 마음은 남들 다하는데 안 시키기는 뒤쳐지는거 같고, 또 해줄 수 있는 방법이 그 방법이라 생각해서 그러시는 것을 이해한다.
난 우리나라 교육 정책상 어머니의 교육 방법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하지만 이 방법을 추구하는 편은 아니다.
하지만 어머니가 동생과 말싸움을 하면서 했던 말중에 가장 생각해보게 되었던 말이 있었다.
“내가 좋아서 공부하는거니? 너가 좋으라고 공부하는거지.“
동생은 서럽게 울었다.
대부분의 초등학생들이 공부하는 목적은 부모님이 기뻐하는 모습, 칭찬, 만족을 위해서 공부를 한다고 생각한다. 아직 “공부하면 성공한다”라는 말을 이해하지 않기 때문이다.
공부를 하는 목적이 부모님의 만족에서 본인의 만족으로 전환되는 시점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도 역시도 전환이 전부 되지 않았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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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입사면접
오늘 나는 나의 첫 입사 면접에서 떨어졌다.
집으로 가는길은 피곤에 무거워진 발이 아닌 기대하고 계시던 부모님에 대한 죄책감으로 무거워져 있었다.
난 면접을 본 뒤 나름 확신에 찬 발걸음으로 면접장을 나섰다. 건방지게 생각 될 수도 있겠지만 질문에 대한 답도 깔끔했고, 예상했던 질문들과 대부분 일치하였다. 또 대회에서 1등을 하여 입사 특권이 있었던 만큼 떨어질 거라는 걱정은 거의 없었다. 그래도 주위에서 물어보면 시험치는데 실수했다 등등으로 괜히 초치지 않으려고 행동 했다. 오늘 메일이 온 순간, 합격메일이라고 기대하고 천천히 스마트폰으로 읽어 내려갔다. 첫줄을 읽고 나는 무언가 잘못된거 같아 한글자 한글자 되새기며 읽어 갔다.
“아쉽게도 이번 전형에서는 그 인연을 잇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순간적으로 내 뇌는 정지가 되었고, 주변 친구들은 장난인줄 알고 웃고 떠들다 메일을 같이 읽고 조용해졌다. 만감이 교차하였다. 엊그제만 해도 떨어질거같다고 장난 치던 친구들도 괜히 원망스러웠고, 집에서 기대하고 계신 부모님께는 어떻게 말해야될지도, 선생님들에게는 어떻게 말할 것이며 앞으로 진로는 어떻게 할지도 고민이 되었다. 시험이 다음주인걸 알면서도 책을 볼 자신감도 없었다. 책이 나를 보며 왜 취업준비를 했냐며 소리지를 것 같았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난 정신을 놓고있다가 내 지갑을 잃어버렸다. 책상위에 있어야할 지갑이 보이지 않았고, 어디서부터 내가 지갑이 없었는지 기억이 왜곡 되는거 같았다.
겉으로는 좋은 경험이었다고 합리화를 하면서 나는 웃는거 말고는 할 수 없었다.
속은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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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린? 선린
선린에 원서 접수 하는 것을 보면서
입학 때 한번 1학년때 한번 그리고 지금 한번 이제 또 한번의 시작인 신입생들 면접 철이다. 나도 특별전형으로 면접 보고 시험보고 입학을 했었고 매년마다 신입생들이 입학 지원서를 가지고 학교로 쫄랑쫄랑 들어오는 모습을 볼 때 감회가 새로워 진다.
내가 입학했을 때?
내가 입학 할 때를 생각해보면 나는 다른 친구들처럼 c언어를 먼저 하지도, 컴퓨터에 대해 남들보다 잘알지도 못하였다. 그저 컴퓨터가 좋은 평범한 중학생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그러다 ‘해킹’이라는 단어가 멋있어 보였고 검색을 통해 ‘정보 보안’이라는 단어를 알게되어 ‘정보보안전문가’가 되고자 하는 막연한 꿈이 생기게 되었다. 그렇게 선린에 특별전형으로 지원하게 되고 시험을 보게 되었는데 초, 중 학교 때 많이 해왔던 과학 영재 시험(?) 비스무리하게 생긴 것들이 출제가 되었다. 지금와서 다시 보면 알고리즘 문제로 생각이 되지만 그때는 창의력 테스트(?) 정도로 생각하고 시험에 응했던 것 같다.
선린에 오지 않았더라면
그렇게 입학을 한 선린은 내가 살아온 16년 남들이 봤을 때는 얼마 되지도 않는 기간이지만 인생을 살아오면서 가장 큰 전환점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선린에 와서 점점 시간이 갈 수록 궁굼해 지는 것은
선린이 아닌 인문계열 고등학교로 진학을 했으면 어떤 삶을 살고 있을지
컴퓨터가 아닌 다른 전공을 공부 했으면 어떻게 됬을지
동아리를 안들어 갔다면 전공에 시간을 투자 했을지
요정도 인거 같다.
인문계열로 진학을 했으면 남들과 같이 국, 수, 영을 열심히 공부했을지, 컴퓨터 쪽 대학을 갈 수 있었을지 성적에 맞춰서 과를 선택하지 않았을지 어떤 삶이 있었을지 궁굼하지만 후회는 되지 않는다.
입학한지 이제 2년이 다 됐고 몇 달이 지나면 3학년이 된다. 또 일년이 지나면 졸업이라는 것을 하게 된다. 앞으로도 어떤 선택을 할지는 모르지만 그 선택을 후회하지 않을 선택으로 만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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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시? 정시? 취업?
대학, 취업 뭐가 됐던 이제 1년도 채 안 남았다. 이제 수능까지 1년도 채 안 남았고 이제 결정을 해야되는데 아니 결정은 이미 끝났어야 되는데 아직도 고민이다..
수시를 지원하려면 누구보다 월등히 뛰어난 스펙이나 상위권의 내신성적이 있어야지 지원하고 기대 라도 하지만 지금 나로선 남들과 크게 다를거 없는 상 한 두개 있는 스펙과, 전공이 좋아서 막연하게 공부 했던 전공 실력빼면 있는게 없다.. 내신은 1학년때는 바닥을 쳤고 지금은 중간정도 성적 밖에 되지 않으며, 심지어 전공도 나보도 뛰어난 사람들도 많고 유별나게 잘한다고 뽐낼 정도의 실력도 되지 않기에 수시를 지원해서 붙을 거라는 보장도 없기 때문에 수시를 쓰기도 어정쩡 하다. 뭐 그렇다고 정시를 쓰자니 다른 친구들은 고1 때부터 정시를 목숨걸고 준비해왔고 나는 그 시간동안 남들 안보는 컴퓨터를 봤으니 경쟁도 안될거란 두려움이 곧 3학년이 되는 나에게 시작조차 하기 두려운 부분이다.
지금 전공실력이라면 스타트업이나 뭐 그런쪽으로 취업은 가능하겠지만 대학을 놓기는 싫은 심정이다.
내가 대학을 가고 싶은 이유를 정리하자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싶다.
인문계열로 진학한 학생들의 가치관을 보고 싶다.
대학교의 문화를 즐기고 싶다.
전공에 대해 더욱 공부를 깊이 할 수 있는 시간을 갖고싶다.
대학가면 연애 할 수 있다.
이렇게 정리 할 수 있는데 좀 더 구체화 시키자면 지금 선린인터넷 고등학교 에서는 중학교 때부터 비슷한 가치관을 가진 친구들이 본인 의지로 지원하여 다니는 학교이고 그래서 항상 보던 사람들만 보면 우물안의 개구리가 된 듯 한 느낌이 든다. 대학을 가면 아마도 성적에 맞춰서 들어온사람, 과에 들어오기 위해 인문계열 공부를 열심히한사람 등 등 여러 다양한 마인드를 가진 사람들이 많이 모일 것이고, 인문계열에서 뛰어난 학생들이 대학에 진학한다고 가정하였을 때 얼마나 빠른 속도로 전공을 습득 할 수 있을지도 궁굼하다. 음... 한마디로 다양한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과의 만남을 하고싶은 이유가 가장 큰 이유 인거 같다. 대학에서 만큼 그리고 전공에 열중 하여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이 없을거 같고 말로만 듣던 대학 활동도 꼭 해보고 싶다. MT라던지 신입생 환영회, 축제 라던지 말이다.
선취업 후진학?
선취업 후진학... 음 뭐 나름 좋은 제도라고 생각한다. 좀더 이름 있는 대학에 갈 확률이 높아지니 말이다. 하지만 내가 대학을 가는 이유와는 거리가 먼듯 하여 내가 그렇게 야간대학을 다니며 적응을 할 수 있을지 설령 적응을 한다고 하더라도 재미있게 다닐 수 있을지 모르겠다.
지금 이 글 쓸 시간에 수학문제를 풀었다면 몇문제라도 더 풀었겠지만 이렇게 글을 쓰면서라도 방향에 대해서 생각을 가지고 공부하는게 더 좋은 생각인거 같다.
그나저나 성적이 올랐다가 또 대회에 많이 참여하면서 떨어져서 문제다... 수시, 정시 뭐가 됐던 공부를 해야되는건 변함 없으니 다다음주가 시험이니 수학 문제 풀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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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밥천국 (STAC 2016)
2016년 의 거의 반이 되는 기간을 소비했던 stac이 끝나게 되었다 뭔가 허전한 기분이지만 6개월 동안 있었던 일들을 풀어 써보려고 한다.
전 프로젝트의 아쉬움
STAC(https://tacademy.sktechx.com/)에 나가기전 교내 모콘(모바일 콘테스트)를 진행 하였는데 디자이너의 부재, 애자일개발이 터져버리는 바람에 서비스가 시작도 제대로 하지 못한채 죽어버리게 되었다. 팀원들끼리 고생한만큼 아쉬움이 커 쉽게 서비스를 놓지 못할 때 STAC이라는 대회가 눈에 들어오게 되어 같은 개발자 팀원끼리 대회를 나가게 되었다.
디자이너의 합류와 안드로이드 개발자
대회 자체가 앱 개발에 관련이 된 대회 였지만 현재 팀원들은 3명으로 안드로이드 개발 경험이 전무하였다. 다 웹개발이 주 분야였던 3명의 팀원이었기에 백엔드 개발자는 넘쳐 났지만 정작 제일 중요한 메인 안드로이드 어플리케이션 개발자가 필요하였다. 그렇게 안드로이드 개발자를 찾던 중 같은 과 친구 한명이 안드로이드 개발 경험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꼬드겨(?)서 팀원으로 영입하게 되었다. 이렇게 개발 인력들은 모두 체워졌는데 서비스의 완성도를 높여줄 디자이너가 없어 지인의 소개로 같은학교 다른과에 재학 중인 친구와 연락이 닿아 우리 팀의 디자이너로 되었고 이렇게 총 5명의 대회 참가 인원이 채워지게 되었다.
자취? 자취는 혼밥
이제 기획을 하게 되었다. 주제가 없는 자유 주제였기에 더 쉬울 거라 생각했지만 뜬구름을 잡는 듯한 느낌으로 더욱 기획이 어려워지게 되었다. 그러다 은연 중 팀원 중 한명이 학교 주변에서 자취를 하고 있었고 혼밥에 대해서 언급을 하게 되었는데 “혼밥”이라는 단어가 최근에 생기고 요즘 뉴스에서도 간간히 언급되면서 팀원 모두 각자의 경험에 대하여 공감하며 기획 주제를 확정하게 되었다.
멘토님과의 미팅 후 기획
스택에서 가장 괜찮았고 좋았던 경험이라고 말할 수 있는 부분은 멘토 제도였다. 학교 선후배 사이간에서 배우는 것과 혼자서 독학하면서 배울 수 있는 것 과는 다른 실무에서 근무하시고 경험에 대해서 노하우를 가지고 계시는 분께 듣는 다는 것이 매력적이었다.
아이디어 구상 초기의 방향과는 다르게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 주셨고 항상 더 색다른 방법으로 팀원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남겨주셨다.
초창기에 기획안은 이랬다.
혼밥 식당 추천
혼밥 식당 평가 리뷰
같이 밥먹을 사람 매칭
대충 이런식으로 기획을 하였었고 멘토님을 만난 이후 단순히 혼밥 식당 추천이 아닌 “혼밥을 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만한 서비스” 를 주제로 잡고 기획을 하기 시작하였다. 그 결과
혼밥 식당 추천
혼밥 식당 평가 리뷰
같이 밥먹을 사람 매칭 이부분은 사라지게 되었다.
혼밥 ���액제
피크시간을 제외한 시간에 방문시 할인(혼밥을 하기 최적의 시간 사람이 없음ㅇㅇ)
식당들과의 계약
이렇게 혼밥러들에게 도움이 될 수있는 서비스에 초점을 맞추고 기획을 하였다.
긴 개발기간의 실수
생각보다 엄청 많은 기간이 생기게 되었다. 최종 평가까지 3달이 넘는 기간동안 개발을 할 수 있었는데 린개발론을 따라 개발하기로 계획하고 일주일 간격 리뷰를 하기로 하였다. 최대한 빠르게 개발하여 사용자 검증을 하는게 목적이었고 사용자 리뷰를 보고 다음 기획안을 적용하는 식으로 계획 하였지만 팀원들 각자의 개인적으로 바쁜 일정과 게으름 때문에 긴개발기간을 믿고 미루고 미루기 시작하였고 그결과 식당과의 계약과 정액제를 하기엔 부족한 시간이 되었다.
���졌다
그렇게 미루고 미루다 개발기간이 1주일 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린개발은 개나 줘버린 상태고 처음에 기획했었던 내용들은 다 집어 던지고 제일 중요하면서 시간내에 개발 할 수 있는지 여부 부터 판단하고 ��발을 해야했다.
급하게 팀 멘토님과 연락을 시작하였고 최소의 시간에서 최대의 결과를 뽑을 수 있을 기획을 다시 시작하였다.
그 결과 기획은 다시 갈리게 되었다.
혼밥 식당 추천
혼밥 식당 평가 리뷰
같이 밥먹을 사람 매칭 이부분은 사라지게 되었다.
혼밥 정액제
피크시간을 제외한 시간에 방문시 할인(혼밥을 하기 최적의 시간 사람이 없음ㅇㅇ)
식당들과의 계약
혼밥랭킹 제도 도입
이렇게 최종 기획이 나오게 되었고 남은 3일간 개발을 시작하게 되었다.
완성
그렇게 개발을 완성하고 이제 대회 평가를 위해 마켓에 업로드 하게되었다.
식당 정보들은 혼밥 하기 좋은 프렌차이즈 식당들을 크롤링하였고 나와 팀원 한명이 크롤링 소스를 짜서 각각 프렌차이즈마다 긁어와 데이터를 넣게되었다.
수상
개발을 급하게 한탓에 다른팀보다 퀄리티가 많이 떨어질거라 생각을 했고 수상에 대한 자신감도 없었고 발표가 끝난뒤 마음을 편히 놓고 있었다. 까먹어 가고 있을 때 쯤 수상 팀 명단에 들어가 있는 것을 확인하고 팀 원모두 장려상이라는 확신이 생기게 되었다.
시상식을 진행하면서 장려상 수상 팀명단에 호명이되자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하면서 받아 들였지만 아쉬움은 없을 수는 없었다. 그래도 긴 기간동안 얻어가는게 많은 대회였고 기획자로 더 성장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 뿌듯한 마음으로 대회를 마무리 할 수 있었다.
서비스 유지...?
대회 때문에 잠깐 페이스북 광고를 이용하여 홍보를 하기도하였다.
대회는 마무리가 됬지만 서비스는 아직 운영 중에 놓여져있고 다운수도 꾸준히 늘고 있다. 물론 완성도 있는 앱이 아니기에 많은 서비스 탈주자가 생기고 있는데 그래도 Google Analytics와 Google Develop consol에 꾸준히 사용하고 있는 소수의 사용자가 몇 있긴 하였다.
이제 대회가 끝났으니 서비스를 끌고갈지 중지할지 결정을 해야하는데 학생의 신분으로 서비스 사업을 하지는 않기로 팀원끼리 얘기가 되었고 서버비와 관리를 계속 관리하기 부담되었기 때문에 이제 서버비가 다되는데로 서버를 닫으려고 한다. 소수의 사용자들이 사용하는 것을 보고 생각보다 뿌듯하였고 그 사용자들에게 죄송하긴 하지만 그래도 사용자들에게 사과 메일 보내고 서비스 마무리를 해야될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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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디콘
에.. 뭐.. 첫 포스팅으로 이런 내용을 쓰게 될 줄은 몰랐지만, 뭐 이번 교내 디콘(이하 디지털 콘테스트)을 하면서 많이 느끼고 배운 게 있어서 글을 써보려고 한다.
팀 구성
팀 구성 배경부터 설명하자면 이번에 새로 만든 웹 기능반부터 얘기하고 가야겠다. 무턱대고 컴퓨터라는 게 좋아 입학하고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세상에 있는 학교에 다니면서 기능대회, 기능반이랑은 나와는 별개라는 생각으로 별 관심을 가지고 가지지 않고 있었다. 그러다 2학년 학기 초쯤 웹디자인 기능경기 대회가 우리 학교에서 진행되는 것을 보고 관심을 가지게 되다가. 어찌 어찌해서 나 포함 5명을 모아 기능반을 결성하게 되었다. 뭐 기능반에 대한 얘기는 나중에 더 정리하던지 해야겠다.
디콘에 5명이 웹기능반 다 같이 나가기에는 팀원 수가 5명이 제한되어 있고 디자이너의 필요성 때문에 조건에 맞지 않아 3, 2로 찢어지고 디자이너를 추가하기로 하였다. 그렇게 우리 팀은 3명이 구성되고 1학년 디자이너 후배들을 영입하여 5명으로 팀을 구성하고 팀장 역할을 맡게 되었다.
실력이 워낙 부족하여 1학년 때는 수상기록이 없었던 터라 2학년 들어서는 ��심이 생겨서 그런지 팀을 2개를 만들어 진행하게 되었다. (편한 설명을 위해 A팀 B팀으로 말하겠다)
기획자, 팀장, 그리고 개발자로서 2팀은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다. 그렇게 2팀을 구성하고 A팀은 풀스택+기획으로 거의 모든 부분 개발을 하였고 다른 B팀은 프론트+기획만 하게 되었다.
A팀
B팀
개발 언어 선택
A팀 개발 시작 전 풀스택을 맡아 어떤 언어로 개발할 것인지 고민을 하게 되었다. ‘원래 사용하고 공부했었던 PHP를 이용해서 빠르게 개발을 할까..?. 아님 스킬셋을 늘리고 공부하면서 다른 언어를 이용하여 개발할까… ?’ 그런 고민을 하다가 이번 프로젝트에서는 내가 퍼블리싱을 했던 모콘(모바일 콘테스트)에서 사용한 Django를 공부해서 사용해 보기로 하고 진행을 하기로 했고, B팀도 마찬가지로 저번 모콘을 같이한 팀원이 있었기에 Django를 사용하기로 하였다.
기획
개발을 하기 먼저 두 팀의 팀장 기획자이기 때문에 각각의 팀에 맞게 서비스를 기획하기 시작했다. 주제를 생각하다 교복이 없는 우리 학교를 떠올리게 되었고 여러 대회에 참가하거나 컨퍼런스를 참여할 때 교복을 착용하라고 하여 곤란했던 경험이 있어 교복, 정장 등등 사용자들 간에 옷 공유 플랫폼을 만들기로 결정을 하고 A팀 기획으로 잡아 시작하였고, 최근 들어 페이스북에 들어가면 반이 중소 옷 브랜드들이 각자 세일률을 내세우며 타임라인을 덮고 있는걸 떠올리며 개인 맞춤 브랜드 세일 정보 알림 서비스를 B팀 기획으로 잡고 시작하였다. 대회로써는 조금 위험한 선택이기도 하였다. 둘 다 의류 관련 서비스였고 같은 대회에서 비슷한 주제를 가진 서비스를 같은 기획자, 개발자가 들어가서 한 다는 건 우려먹기(?)라는 인상을 심어줄 거 같아서 좀 꺼려지기도 했지만, 개발기간을 생각했을 때 기획안을 잡는데 시간을 더 소비할 수는 없었고 딱히 더 좋은 기획안이 떠오르지 않아서 그대로 진행을 하게 되었다.
개발 환경 설정
A팀을 개발을 시작하며 먼저 팀 프로젝트에 도움이 될 개발 도구를 선정하기 시작하였다. slack, github, trello 등등…. 을 쓰게 되었고 디자이너들의 slack 사용으로 디자인 소스들을 빠르게 받을 수 있어서 좋았고 trello를 사용함으로써 더욱 기획안을 빠르게 정리할 수 있어서 좋았다. 한 가지 단점이 있었다면 팀원 중에 GIt을 써봤던 사람이 나밖에 없었고 Git Marge 과정에서 터지는 오류들 잡는데 시간을 많이 소요하였다는 점?? 이었��� 거 같다.
B팀은 이에 반면 개발자 두 명으로 전 모콘을 팀으로 개발했던 경험이 있어 github와 슬랙만을 사용하며 원활히 진행이 가능하였다.
개발 과정
프론트
처음 스토리보드를 프로토타입처럼 ovenapp.io를 이용하여 디자이너들에게 넘겨주고 완성된 디자인을 받고 퍼블리싱 시작 전 방법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다. CSS 생코딩을 하다가는 시간이 남지 않을 거 같아 CSS 프레임워크에 대해서 고민을 하던 중 bootstrap과 materialize를 써봤었고 두 팀 다 카드형식으로 디자인이 왔기 때문에 materialize를 사용해 제작을 시작하였다. A팀은 Django template을 이용하여 메인 레이아웃을 만들어 넣고 블럭 처리를 해 기능반 친구들에게 template 과 materialize를 알려주고 남은 페이지들을 나눠서 개발하기 시작하였다. B팀도 마찬가지로 Django Template으로 각각 app를 만들어 프론트를 만들어 놓아 백엔드와의 연결이 쉽도록 작업을 하였다.
백앤드
A팀은 백엔드를 내가 맡아 하게 되었는데 PHP를 하다가 Django 가 처음이라 가뜩이나 못하는 영어 가지고 문서를 접해 제작을 하면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깔끔한 소스와 model.py에서 django에서 지원해주는 데이터형을 import 해서 쓴 다음 간단하게 마이그레이션, 마이그레이트 까지 하면 끝나 데이터베이스 설계에서 시간을 많이 단축하게 되었다.
팀 내부 트러블
A팀 B팀 문제가 팀 내 트러블이 생기게 되었다. 다른 대회에서는 트러블이 나도 잘 해결이 되었는데 이번에는 팀장으로서 팀원들끼리의 불협화음을 잘 조율하지 못한 점이 이번 디콘에서 가장 큰 실수였던 거 같다. A팀은 디자이너의 중간 부재와 개발자들이 필요로 하는 디자인이 나오지 않아 개발자들끼리 말하지 않고 디자인을 갈아버리는 과정에서 서로 간에 트러블이 생기게 되었고 B팀은 역할 분담은 잘 되었다고 생각했지만, 팀원 중 한 명의 개발 진행이 안 되어 있어 프론트는 완성했지만 백엔드 브랜드 크롤링을 처리하는 부분이 완벽하게 구현이 되지 않는 어정쩡한 서비스가 탄생하게 되었다. 처음에 기획할 때도 이 부분에서 어떤 식으로 처리해야 할지 고민을 하긴 했는데 그 방법들은
1. 브랜드를 10~20개 정도 선정해서 각 브랜드 페이지마다 스크립트를 짜서 데이터 형식을 맞추어 넣는다.
2. 11번가, 옥션 등 의류 잡화 카테고리에 있는 부분을 긁어와서 한 번에 넣는다.
이런 식으로 되게 되었다. 1번을 하기에는 개발 시간이 많이 낭비가 될 거 같았고 2번을 하기에는 각 브랜드의 정확한 세일 정보를 가져오는 게 아니라 사용자가 온라인 쇼핑몰에 올린 상품으로 정렬이 되기 때문에 우리의 기획가는 조금 떨어지는 감이 있다고 생각을 하였다. 그렇게 개발시간을 아끼려고 친구가 2번을 하려다가 생각보다 처리 과정이 어려워지는 바람에 1번으로 방법을 다시 바꾸고 결국 제출 시간까지 데이터를 완전히 넣지 못하게 되는 불상사가 일어났다. 이렇게 팀을 이끌어 나갔다는 거에 대해 굉장히 자괴감을 느꼈고 다른 열심히 한 팀원들에게도 피해를 준 거 같아 마음이 편치 않게 되었다. A팀에는 디자이너와 개발자 간의 소통을 더욱 원활히 도와야 했었고, B팀에는 개발 진행 중이라는 말을 듣고 마음을 놓을게 아니라 직접 개발 진행 상황을 확인 해야 했었던 거 같다.
1차 결과 후 수정 기간
그렇게 바쁘게 개발을 마무리하고 1차 당선작이 나오고 찬찬히 살펴보다가 A팀이 수상을 하고 B팀이 탈락하게 되었다. 팀원의 한 명의 부재로 결과가 이렇게 나오니 팀장인 내 탓임에도 불구하고 괜한 팀원을 탓도 했었던 거 같다.
그렇게 1차 결과가 나오고 약 2주간의 개발 수정 기간이 주어지게 되었다.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주어졌고 A팀 기획상 이미 완성을 했고 더 추가할 기능도 딱히 있지 않았다. 바꿔야 할 게 있다면 디자인 정도였고 그렇게 2주 중 1주일은 수상했다는 즐거움으로 놀고먹었다.
그다음 1주일은 숙련기술 진흥원에서 주관하는 캠프를 참가하게 되었는데 그 1주일 동안 프론트를 하나하나 갈기 시작했다. 하나하나 보는 도중 의류를 중심으로 한 B팀 서비스의 디자인이 A의 서비스에도 매칭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여 상대적으로 디자인이 잘된 B팀의 디자인 프론트를 한둘씩 가져와 A 서비스에 맞게 수정하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3일을 디자인 수정에 소비하고 나머지 날들은 쉬엄쉬엄 백 엔드에 연결하고 오류를 잡다 보니 나머지 1주일이 지나고 발표 날이 찾아왔다.
발표
여러 대회에서 발표 경험이 있었던 내가 중학교 학교 홍보 날짜와 겹치게 되어 발표하기 불가능한 상황이 되었다. 그렇게 주말에 만나 발표에 필요한 내용을 정리하고 팀원 중 한 명이 발표를 하게 되었고 중학교에서 홍보를 마치고 바로 다시 고등학교에 도착하자 다행히 팀원 발표 바로 시작 전이었다.
1차 제출 순서가 빨랐던 탓에 1번으로 발표를 하게 되었고 팀원은 충분한 연습을 하고 자신감 있는 얼굴로 앞에 서서 발표를 시작하였다. 발표를 시작하고 나포함 팀원은 굉장히 기분이 상하게 되었다. 팀원이 발표를 못 해서가 아니라 그 때의 발표의 분위기였다.
선생님께서 시작 지시를 내리신 뒤 발표장 뒤에서는 자기 발표를 소리 내며 연습하고 서서 수다 떠는 웅성웅성한 분위기, 그리고 학생들 작품 제출하라고 말하면서 왔다 갔다 하시는 선생님, 전화 받으러 가시는 선생님, 소음으로 들리지 않는 발표 소리 때문에 말하다가 멈추는 발표자… 그렇게 5분 �� 4분이 지나고 선생님 전원이 착석하고 주변 소음으로 중간 중간 멈춘 발표로 시연을 시작도 못한 우리 팀 발표자는 당황하였고, 선생님께서는 착석하시고 얼마 되지 않아 5분 넘었으니 그만 마무리하라는 말을 듣고 나, 팀원은 어이가 없고 화가 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기서 따진다고 해서 달라질 것도 아니고 그런 분위기를 리드 해야 되는 발표자 탓도 있으므로 넘어가게 되었다. 그렇게 어영부영 발표가 끝나고 보여줄 내용을 다 전하지 못한 거 같고 뭔가 찝찝한 기분으로 팀원들은 컴퓨터실을 나오게 되었다.
느낀점
대회를 끝마치며 느낀 점은 분명 고등학교에 들어와서 여러 대회를 거치며 성장했다고 생각했었는데 팀장으로서 사고 대처 능력이 부족했다는 것을 생각하였고, 책임감을 느끼고 개발하는 것이 실력, 속도 모든 면에서 버프가 되는 거 같다. 그래도 날 믿고 따라와 준 팀원들에게 굉장히 고맙고 이번 대회를 통해 또 발전한 거 같아서 의미 있으며 재미있었던 대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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