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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EIDF / 미아와 알렉산드라
014 EIDF 미아와 알렉산드라 Twin sisters / 모나 프리스 베테유센 00. 인트로 나래이션 ; 그아이를 늘 기다린다. 그 아이가 곧 올 것이다. 영화를 이끄는 질문 : 그아이는 누구일까? 두 사람은 만날 수 있을까? 만나서 잘 지낼 수 있을까? 01. 알렉산드라 _ 아이를 어떻게 만났는가 02. 미아 _ 아이를 어떻게 만났는가 03. 두 아이는 어떻게 연결 되었는가. 갈등1. 두아이는 서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산다. 04. 두 아이는 서로 다른 환경(도시와 자연)에서 다른 모습으로 성장한다. 도시-시골, 경쟁-친화, 많은 교육-단순한 생활, 바쁨-여유로움, 위험-안전 05. 두아이는 여섯살때 만났고 서로 그리워한다. 06. 두 사람은 서로 다르게 성장한다. 크리스마스 : 조립 - 직접 나무 그러나 두 사람은 다른 상황을 공유한다. 비슷한 일상을 가지고 있다. 일상, 학교생활, 생일파티, 갈등2. 언어의 문제 07. 만나는 두 사람(잘어울릴 수 있을까? 긴장) - 어색(긴장) - 좋은시간을 보낸다(밝은 음악) 이 부분에서 음악이 분위기 주도 08. 다름의 문제를 자매간의 사랑으로 극복한다. "둘이 얼마나 닮았는지 몰라요. 각자 다른 나라, 완전히 다른 환경에서 자랐는데도 성격이 아주 비슷해요. 둘다 아주 외향적이고 고집이 세요. 그런것들을 학교에서 배운 줄 알았는데 알렉산드라도 그러네요. 인격을 형성하는데는 유전적 영향이 강해요 성장 환경은 큰 변화를 만들지 못해요." "서로를 발견하도록 되어진것 같아요. 결국 이어지도록요. 그리고 함께 하도록요. 무언가가 우리를 이끈것이에요. 분명히 운명이에요. 이렇게 정해져있던 것입니다." 09. 헤어짐. 10. 에필로그 # 영화는 두 아이가 만나는 것을 정점으로 달려간다. # 대조와 비교 # 대비되는 상황 그리고 대비되는 음악 # 아이들 뿐 아니라 부모의 상황의 다름도 보여준다. # 관객은 대조와 비교를 보면서 긴장과 이완을 반복, 두 사람이 만났수 있을지, 잘 지낼 수 있을지를 궁금해하게 된다. *영화는 무엇을 말하는가 희망 혈연의 관계를 넘어서 영화는 사람과 사람간의 만남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건 아닐까.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은 그런것 아닐까. 다르게 살아왔지만 우리는 그 가운데 같은 공통점을 찾고 서로를 위한 것을 찾으며 배려하고 알아가며 그렇게 관계성을 가지는 것. 서로 사랑해가는것. q. 아이를 처음 만났을 때 영상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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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오늘 또다시 거짓말을 하였습니다. 어제는 그토록 미워했던 이에게 좋은 안부의 인사말을 건냈습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미워하는 사람은 많았지만 갈등관계를 가졌던 사람이 없었던 것은 제가 대부분의 사람들을 이렇게 대했기 때문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폭발직전의 미움의 감정이 그 앞에서 억제되는 것을 보면 제 안에 거절에 대한 두려움이 제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큰 것 같습니다. 하나님 저는 그 두려움에 가면을 쓰는 제 자신이 싫습니다. 다른 사람의 비위를 맞추느라 자꾸만 늘어가는 거짓말들이 두렵습니다.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면서 쌓여가는 자기의가 지겹습니다.
하나님 나는 그에게 한 행동을 사랑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사실 그것은 낮은 자존감에서 비롯되는, 버려지는 것이 두려운 자기방어였음을 고백합니다. 스스로를 사랑할 수 없을 때, 존귀히 여길 수 없을 때 과연 남조차 사랑할 수 없음을 깨닫습니다. 외적인 것으로는 좀처럼 세워지지 않는 나의 자존감을 어떻게 세울 수 있을까요.
하나님 얼마전 독립문 공원에서 보았던 꽃을 생각합니다. 아름답게 빛나던 꽃이 줄기에서 꺾이자 몇분 지나지 않아 이내 생기를 잃어버린 것처럼 하나님을 떠나서 나는 스스로를 사랑할 수도, 아름다울 수도 없음을 깨닫습니다. 내 안에는 사랑할만한 것들이 없기 때문입니다. 당신을 떠난 나의 삶은 생기 잃은 꽃처럼 시들할 뿐입니다. 그 언젠가 내 삶이 아름다울 수 있었던 것은 아름다운 당신이 내 곁에 계셨기 때문이고 내가 당신으로부터 그 생명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 언젠가 내가 나를 사랑할 수 있었던 것은 내가 사랑 받을만한 존재였기 때문이 아니라 사랑스러운 당신이 내 안에 계셨기 때문입니다. 내가 많은 것을 가지지 않아도 당당할 수 있었던 것은 전부되신 당신을 가졌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포도나무가 가지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말을 깊이 인정합니다. 주안에 거하길 원합니다. 주님만이 나의 전부되시며 주님 곁에 있을 때 내 영혼이 안전하며 평안함을 고백합니다. 하나님 더럽고 누추한 제 인생에 찾아와 주소서. 내 삶의 주인이 되어주시고 제 인생의 왕으로 좌정하여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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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의 삶에 끼어 드는 것이 아니라 방문하는 것, 바로 그것이 누군가의 사진을 찍는다는 것의 핵심이다”
사진은 이 세계의 모든 것을 피사체로 둔갑시켜 소비품으로 변모시킬 뿐만 아니라 미적 논평의 대상으로 격상시킨다. 그에 따라 결국 사람들은 카메라를 통해서 현실을 구매하거나 구경하게 된다. 사진 덕택에, 혹은 사진 탓에 오늘날의 사람들은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이런 표현이 가능하다면) ‘살아지게’ 되는 상황이 빚어진 것이다.
게다가 그 기술적 속성상 마음대로 축소하거나 확대할 수도 있고, 수정하거나 불필요한 부분을 잘라내 버릴 수도 있는 사진은 초현실주의자처럼 현실을 몽타주함으로써 역사를 생략해버릴 위험까지 가져왔다. 요컨대 원하는 모습만을 볼 수 있게 해주는 사진은 타인이 겪는 고통, 참사 등을 도외시할 수 있게 해줄 뿐만 아니라 결핍·실패·불행·고통·불치병 등을 결코 겪어보지 않으려고 하는 사회, 죽음을 극히 자연스러우며 거역할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고 끔찍하고 부당한 재앙이라고만 받아들이는 사회를 만들어낼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맑스는 세계를 변화시키려고 하기보다는 세계를 해석하려고만 한다는 이유로 철학을 질책했다. 그렇지만 초현실주의적 감수성의 테두리 안에서만 작업을 해온 여러 사진작가는 세계를 해석하려는 노력조차도 공허할 뿐이라고 주장하면서 그보다는 세계를 수집해야 한다는 제안을 내놓았다. 이런 상황에서 사진이 단순한 현실의 기록이기를 그만두고 사진을 보는 사람들에게 도덕적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느냐는 그에 상응하는 정치 의식이 존재하느냐에 따라 결정될 수밖에 없다. 정치가 없다면, 역사를 수놓은 살육 현장을 담은 사진일지라도 고작 비현실적이거나 정서를 혼란시키는 야비한 물건으로밖에 여겨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전례 없이 빠른 속도로 이미지를 소비하는 오늘날, 사진이 일종의 약이자 병 病이며 현실을 전유하고 쓸모 없게 만들어 버리는 수단이 되어버릴 위기에 처한 오늘날, 사진이 만들어낸 이미지-세계가 현실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도록 가리는 오늘날, <사진에 관하여>가 우리에게 제기하는 여러 질문들은 여전히 유효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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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과 같이 있을 때 가장 나다워지는 사람과 결혼하십시오. 괜히 꾸미거나 가식적이지 않은 그냥 편안한 그대로의 나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줄 수 있는 상대를 만나십시오. 연극은 언젠가 끝나기 마련입니다.
유희열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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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int eastwood
세상과 떨어져 살던 남자가 누군가로 인해 현실로 뛰어들었다가 결국엔 마음의 평화를 찾아 어디론가 떠난다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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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로
오프라인에서 자신의 삶을 공개하고 공유하는 것에 익숙치 않은 현대, 정확히 말하자면 그렇게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곧 위험한 일이 될 수도 있는 현대에서 다큐멘터리를 한다는 것은 꽤 도전적인 일이다. 특히 사람, 그것도 가족이 아닌 보통 사람을 찍는 다큐멘터리의 경우는 더더더욱ㅠ
언젠가 1960년에 만들어진 다큐멘터리를 보는데 카메라가 코앞에 까지 왔는데도 어떤 자의식도 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인터뷰이를 보면서 20세기 초반... 굳이 그렇게 멀리 가지 가지 않아도 카메라에 대한 거부반응이 지금처럼만 심하지 않은 때에 작업을 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를 생각했다. 그 때 다큐멘터리를 했다면 출현해달라고, 해치지 않는다고 누차 매달리며 진 빼는 일 없이 보다 작업 자체에 집중할 수 있었을텐데. 보다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텐데. 착각인지는 몰라도 어쨌든 지금보다야 나았을 거라 생각했다.
뭐 이런생각을 하다가 오늘은 문득 그래도 이토록 삭막한 21세기에서 다큐멘터리를 하는 것이 어떤 특별한 이유가 있겠거니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더 어렵기 때문에 더 가치 있는 일이 될 지도 모른다. 누가 아는가. 훗날 시간이 아주 많이 지났을 때 어색하고 불편한 사람들의 표정이, 얼굴은 허락을 못받아서 육성만 힘들게 따낸 흔들리는 화면들이 이 시대를 보여주는 귀한 자료가 될지.
그렇게 된다면 나는 이 스트레스를 좀 덜 수 있을까. 좀더 나아가서 이 스트레스를 다 감당할 만큼 나의 하는 일은 가치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정확히 무엇 때문에 어떤 점에서 그만한 가치를 갖는 것일까? 가치 따위는 생각지 않고 그냥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하고 싶은데 상황이 어려워지니 자꾸만 이것을 이렇게까지 해야할 이유를 찾게 된다.
사실 내가 진짜 하고 싶은 말은 이거다.
내가 찍는 대상님들. 제발 내게 마음을 열어주면 안될까요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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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 21 / 하룬파로키 2007
5월1일부터 서울아트시네마에서 하룬 파로키 특별전, 전주영화제에서도 상영
모 든 계급적, 성적 그리고 경제적 불평등을 조화로운 환상 속으로 밀어넣고 관객에게 위안을 주는 안정된 형태의 극영화는 어쩌면 형식적으로 포르노그래피보다 더 위험한지도 모른다. 포르노는 소기의 목적을 위해 직설적인 화법과 분절된 서사를 구사하며 매우 작위적이고 인공적인 세팅을 전면에 드러냄으로써 이것은 가상이라는 사실을 숨기지 않기 때문이다. 영상 실험과 새로운 영화문법을 찾아내기 위한 시도들을 계속해온 독일 감독 하룬 파로키의 문제의식도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된다. 지난해 전주영화제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던 그의 대표작을 올해 전주영화제 ‘영화보다 낯선’ 섹션과 5월1일부터 6일까지 열리는 시네마테크 특별전에서 만나볼 수 있다.
하룬 파로키는 이미지를 조작하는 힘과 그것에 의해 만들어지는 통일된 세계관이 얼마나 일상화된 폭력인지에 관심을 기울이고, 자신의 다양한 작업을 통해 그것을 폭로해왔다. 마치 한편의 논문 같은 느낌을 주는 그의 작품들은 현대사회에서 오락적 기능만 지나치게 부각돼온 영화가 철학적, 지적 성찰의 도구이자 정치적 발화의 실천적 매체로서 얼마나 훌륭하게 기능할 수 있는지를 보여���다. 1944년 체코 동부에서 출생한 그는 미디어 아티스트이자 이론가이며, 스스로 이미지를 창작하는 동시에 이미지의 생산과 수용에 대해 가르치고 있기도 하다. 이번 특별전에는 1960년대부터 41편이 넘는 작품을 만든 파로키 감독의 대표작 8편이 소개된다.
주로 독일권 지역에서만 알려졌던 까닭에 “독일에서 가장 잘 알려진 미지의 감독”이라는 독특한 별칭이 붙은 하룬 파로키의 관심사는 전방위적이다. ‘당신이 네이팜탄 희생자에 대해 눈을 감고 이 화면들을 보지 않는다면 사실을 외면하고 컨텍스트를 차단하는 것’이라고 선언하면서 시작되는 <꺼지지 않는 불꽃>은 다큐멘터리와 극영화의 구분할 수 없는 경계에 서 있다. 그는 뉴스화면과 자신의 가설을 증명하는 극화된 화면과 실험들을 통해 인간의 삶을 향상시킨다는 미명하에 자본과 과학기술이 담합하여 저지르고 있는 무차별적 살인을 고발한다. 무려 30년 뒤에 <파로키에게 배운 것>을 볼 수 있었던 데 분노한 미국의 갓밀로우 감독은 이 작품의 모든 숏을 있는 그대로 재현함으로써 이 작품에 대한 존경을 표한다. 그는 파로키의 작품을 기존 장르에 포섭될 수 없는, 새로운 방식의 “현실에 대한 포르노그래피”라고 표현한다.
파로키의 작품은 대부분 내레이션을 통해 자신의 주장을 직접적으로 설파한다. 그는 조작없는 화면을 제공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이미지가 선별되어 제시될 때 조작이 개입하고 있음을 폭로하는 데 관심을 갖는다. <두 전쟁 사이에서> <혁명의 비디오그램> <세계의 이미지와 전쟁의 비명>에서 파로키 감독은 나치 정권과 차우셰스쿠 독재정권 그리고 전쟁 일반에 대해 강력한 비판을 제기함으로써 직접적으로 자신의 이데올로기적 지향을 드러낸다. 그의 날카로운 시선은 정치적 영역에 한정되지 않고 이미지가 지배하는 현대의 모든 분야를 향한다. <플레이보이> 화보 촬영장을 담은 <이미지>는 인간의 가장 내밀한 욕망으로 간주되는 성적 욕망이 어떻게 이미지를 통해 조작되는지를 폭로하고, <쇼핑세계의 창조자들>은 소비자들의 소비욕구를 최대한 자극하면서 상품 이미지를 통해 환상을 조장하고 소비패턴을 통제하기 위한 일련의 작업과정을 보여준다. 컴퓨터 시뮬레이션과 설계도면 위에서 순수하게 물량화되는 인간의 가치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실업자, 대학면접 실패자 등 사회진입에 실패한 이들이 이미지 메이킹을 통해 그 관문을 통과하도록 훈련받는 과정을 담은 <인터뷰>는 본래의 자기를 버리고 사회가 원하는 자아 이미지를 구축하도록 강요받는 과정에서 영상이미지와 비디오카메라가 활용되는 방식이 부각된다. 하룬 파로키는 내용적으로 자본주의와 독재주의 이데올로기에 대항하는 동시에 이미지란 무고한 시선에 의해 포��된 현실이 아니라는 것을 끊임없이 상기시키는 형식을 제시함으로써 관객이 현실의 이미지를 지배하는 모든 힘에 대해 각성하고 투쟁할 것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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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들어도 가슴설레는 아이들
예술을 공부하는 친구들에게 도움이 될것 같아. 계원 융합과의 50-50 프로젝트(50권의 필독서/50편의 필관람 영화) 를 공개합니다. 퍼갈때는 가급적 계원 융합예술 필독서임을 공개해 주기 바랍니다.
학기별 구분이며, 수업중 교재는 포함되지 않음이 원칙.
2014 계원 융합예술 필독 도서 50
1-1 이것은 미술이 아니다, 박이소 옮김, 현실문화연구(현문서가), 2011 파리의 우울, 샤를 피에르 보들레르, 윤영애 옮김, 민음사 2008 미학오디세이 1-3, 진중권, 휴머니스트, 2013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 아즈마 히로키, 이은미 옮김, 문학동네 쓰레기가 되는 삶들, 지그문트 바우만, 정일준 옮김, 새물결, 2008 하위문화: 스타일의 의미, 딕 헵디지, 이동연 옮김, 현실문화연구, 장소특정적 미술, 권미원, 이영욱 외 옮김, 현문서가, 2013 철학과 굴뚝 청소부: 근대철학의 경계들, 이진경, 그린비, 2002 사진에 관하여, 수전 손택, 이재원 옮김, 시울, 2005 사랑의 단상, 롤랑 바르트, 김희영 옮김, 동문선, 2004
1-2 디자인과 범죄, 할 포스터, 손희경, 이정우 옮김, 시지락, 2006 현대 물리학과 동양사상, 프리초프 카프라, 김용정, 이성범 옮김, 범양사, 2006 이미지와 환상, 다니엘 부어스틴, 정태철 옮김, 사계절, 2004 고도를 기다리며, 사무엘 베케트, 오증자 옮김, 민음사, 2000 사물들, 조르주 페렉, 김명숙 옮김, 펭귄클래식코리아, 2011 모나리자 훔치기, 다리안 리더, 박소현 옮김, 새물결, 2010 꿈의 해석, 지그문트 프로이트, 김인순, 열린책들, 2003 젊은 예술가의 초상, 제임스 조이스, 성은애 옮김, 열린책들, 2011 미디어의 이해, 마셜 맥루언, 김성기, 이한우 옮김, 민음사, 2002 상실의 시대, 무라카미 하루키, 유유정 옮김, 문학사상사, 2002
2-1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 레이먼�� 카버, 정영문 옮김, 문학동네, 2005 나무 위의 남작, 이탈로 칼비노, 이현경 옮김, 민음사, 2004 문학이란 무엇인가, 장 폴 사르트르, 정명환 옮김, 민음사, 1998 다른 방식으로 보기, 존 버거, 최민 옮김, 열화당, 2012 지도와 영토, 미셸 우엘벡, 장소미 옮김, 문학동네, 2011 불교가 좋다, 가와이 하야오, 나카자와 신이치, 김옥희 옮김, 동아시아, 2007 시뮬라시옹, 장 보드리야르 지음, 하태환 옮김, 민음사, 2001 성, 프란츠 카프카, 홍성광 옮김, 펭귄클래식코리아, 2008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 임승수. 시대의창 2011. 고쳐 쓴 한국현대사, 강만길, 창비, 2006
2-2 슬픈 열대, C. 레비-스트로스, 박옥줄 옮김, 한길사, 1998 토성의 고리, W. G. 제발트, 이재영 옮김, 창비, 2012 래그타임, E. L. 닥터로, 최용준 옮김, 문학동네, 2012 감시와 처벌, 미셸 푸코, 오생근 옮김, 나남출판, 2003 사운드스케이프: 세계의 조율, 머레이 쉐이퍼, 한명호, 오양기 옮김, 그물코, 2008 발터 벤야민,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 사진의 작은 역사 외, 최성만 옮김, 길, 2007. 감성의 분할, 자크 랑시에르, 오윤성, 도서출판b, 2008 감정자본주의, 에바 일루즈, 김정아 옮김, 돌베개, 2010 거대한 전환, 홍기빈 옮김, 도서출판 길,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 슬라보예 지젝, 이수련 옮김, 새물결, 2012
그밖에 읽으면 좋을 책들 스펙타클의 사회, 기 드보르, 이경숙 옮김, 현실문화연구, 1996 윤리학: 악에 대한 의식에 관한 에세이, 알랭 바디우, 이종영 옮김, 동문선, 2001 제국, 마이클 하트, 안토니오 네그리, 윤수종 옮김, 이학사, 2001 슬럼, 지구를 뒤덮다, 마이크 데이비스, 김정아 옮김, 돌베개, 2007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막스 베버, 박성수 옮김, 문예출판사, 1996 유럽 문화사 4, 도널드 서순, 정영목 외 옮김, 뿌리와이파리, 2012 증여론, 마르셀 모스, 이상률 옮김, 한길사, 2002 도널드 덕, 어떻게 읽을 것인가, 아리엘 도르프만, 아르망 마텔라르, 김성오 옮김, 새물결, 2003 봉기와 함께 사랑이 시작된다, 히로세 준, 김경원 옮김, 바다출판사, 2013
2014 계원 융합예술 필감 영화 50
1-1 1. 블루 벨벳(Blue Velvet) 데이빗 린치, 1996 2. 시계태엽장치 오렌지(A Clockwork Orange), 스탠리 큐브릭, 1971 3. 수면의 과학(La Science des reves, The Science Of Sleep), 미셸 공드리, 2005 4. 인셉션(Inception), 크리스토퍼 놀란, 2011 5. 매트릭스(The Matrix) 워쇼스키 형��, 1999 6. 롤라런(톰 티크베어) 7. 브라질(Brazil), 테리 길리암, 1985 8. 엘리펀트(Elephant), 구스 반 산트, 2003 9. 존 말코비치 되기(Being John Malkovich), 스파이크 존즈, 1999 10. 록키 호러 픽쳐 쇼(The Rocky Horror Picture Show), 짐 셔먼, 1975 11. 공각기동대(攻殼機動隊: Ghost In The Shell), 오시이 마모루, 1995 12. 다른 나라에서(In another country), 홍상수, 2011 13. 토마토 케첩 황제(Emperor Tomato Ketchup), 테라야마 슈지, 1970 14. 하녀(The Housemaid, 김기영, 1960 15. 성냥공장 소녀(Tulitikkutehtaan Tytto, The Match Factory Girl), 아키 카우리스마키, 1989
1-2 1. 히로시마 내 사랑(Hiroshima, Mon Amour, Hiroshima, My Love), 알렝 레네, 1959 2. 400번의 구타(Les 400 Coups, The 400 Blows), 프랑소와 트뤼포, 1959 3. 동경 이야기(東京物語, Tokyo Story), 오즈 야스지로, 1953 4. 로얄 테넌바움(The Royal Tenenbaums), 웨스 앤더슨, 2001 5. 뼈(Ossos, Bones), 페드로 코스타, 1997 6. 아들(Le Fils, The Son), 장-피에르 다르덴, 뤽 다르덴, 2002 7. 카메라를 든 사나이(Chelovek S Kino-apparatom, Man With A Movie Camera), 지가 베르토프, 1929 8. 플레이타임(Playtime), 자크 타티, 1967 9. 파리 텍사스(Paris, Texas), 빔 벤더스, 1984 10. 비정성시(悲情城市: A City Of Sadness), 허우 샤오시엔, 1989 11. 녹색 광선(Le Rayon Vert, The Green Ray), 에릭 로메르, 1986 12. 신경쇠약 직전의 여자(Mujeres Al Borde De Un Ataque De Nervios, Women On The Verge Of A Nervous Breakdown), 페드로 알모도바르, 1988 13. 헤드윅(Hedwig And The Angry Inch), 존 캐머런 밋첼, 2000 14. 베니의 비디오(베니의 비디오 Benny's Video), 미카엘 하네케, 1992 15. 애플시드(Appleseed), 아라마키 신지, 2004
2-1
1. 열대병(Tropical Malady),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2004 2. 미치광이 삐에로(Pierrot Le Fou, Pierrot Goes Wild), 장 뤽 고다르, 1965 3. 블레이드 런너(Blade Runner), 리들리 스콧, 1982 4. 아름다운 여인(Bellissima), 루키노 비스콘티, 1951 5. 화양연화(花樣年華, In The Mood For Love), 왕가위, 2000 6. 코스모폴리스(Cosmopolis), 데이빗 크로넨버그, 2012 7. 빵과 장미(Bread And Roses), 켄 로치, 2000 8. 베크마이스터 하모니즈(Werckmeister Harmoniak, Werkmeister Harmonies), 벨라 타르, 2000 9. 북극의 나누크(Nanook Of The North), 로버트 플래허티, 1922 10. 이창(Rear Window), 알프레드 히치콕, 1954
2-2
1.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Night Of The Living Dead), 조지 로메로, 1968 2. 홀리 마운틴(홀리 마운틴La Montana Sagrada, The Holy Mountain),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 1975 3. 태양 없이(Sunless, Sans Soleil), 크리스 마르케, 1982 4. 부르주아의 은밀한 매력(Le Charme Discret De La Bourgeoisie, The Discreet Charm Of The Bourgeoisie), 루이 브뉘엘, 1978 5. 전함 포템킨(The Battleship Potemkin, Bronenosets Potemkin), 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 1925 6. 천국보다 낯선(Stranger Than Paradise), 짐 자무쉬, 1984 7.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Ali: Fear Eats The Soul, Angst Essen Seele Auf),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 1974 8. 붉은 사막(Il Deserto Rosso, Red Desert),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1964 9. 요리사, 도둑, 그의 아내 그리고 그녀의 정부(The Cook The Thief His Wife & Her Lover), 피터 그리너웨이, 1989 10. 도그빌(Dogville), 라스 폰 트리에, 2003
기타. 1. 스틸 라이프(三峽好人: Still Life), 지아 장커, 2006 2. 안녕, 용문객잔(Good Bye, Dragon Inn), 차이밍량, 2003 3. 호수의 이방인 (L'Inconnu du lac, Stranger by the Lake), 알랭 기로디, 2013 4. 시저는 죽어야 한다(Cesare deve morire, Caesar Must Die), 타비아니 형제, 2012 5. 내 책상 위의 천사(An Angel At My Table), 제인 캠피온, 1990 6. 파 프롬 헤븐(Far From Heaven), 토드 헤인즈, 2002 7. 잔느 딜망(Jeanne Dielman, 23 Quai Du Commerce, 1080 Bruxelles), 샹탈 애커만, 1975 8. 돈(L'Argent, Money), 로베르 브레송, 1983 9. 살인에 관한 짧은 필름(Krotki Film O Zabijaniu, A Short Film About Killing), 크지슈토프 키에슬로프스키, 1988 10. 솔라리스(Solyaris, Solaris),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1972
선정위원: 서동진,홍성민,유진상,이영준,성기완,이보미 외 특히 도움주신 김남수,방혜진,김장언 선생님에게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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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파라이소(1898) / 요리스 이벤스
이 흥분되는 마음을 어찌하면 좋을까.
요리스 이벤스의 발파라이소를 봤다. 나도 이런 영화를 만들고 싶다. 시적이며 동시에 아주 현실적인, 다양한 미디어를 자유자재로 오가는 다큐멘터리.
이 영화에서 그는 발파라이소라는 공간을 크게 4개가지 물질적인 요소들로 구분하는데바다, 케이블, 바람, 피 가 그것이다.
케이블은 아래와 위를 연결한다. 아래 동네는 화려한, 태양의 빛을 받는 동네다. 하지만 그의 말대로 그것은 '태양의 착시다.' 이 곳의 진짜 모습은 바다다. 격정하는 바다. 위의 동네는 아래 동네와 다르다. 그곳은 가장 가난한 이들이 사는 곳이다. 사람들은 내려가고 올라가고를 반복한다. 케이블을 통해서. 계단을 통해서. 발파라이소에 많은 서방국가들이 오르고 내렸다. 이곳은 여전히 가난과 부함으로 오고내린다.
바람은 상쾌한 공기이지만 고산지대에 자주 불을 붙인다.
발파라이소 근처에는 말의 사육장이 있다. 말 주인들은 죽일 말들을 구분한다. 피를 뿌리며 그들은 죽는다. 피는 이 동네의 기억이다. 서방국가의 침략으로 많은 피를 흘렸던이곳의 과거요 기억.
그는 실체하는 요소들을 나열한뒤 그 요소들에서 연결되는 이미지들, 의미를 담은 이미지들을 장소의 현재와 과거로 연결한다. 메타포의 메타포. 시적 언어의 풍부함, 그리고 깊이. 도시를 설명하는 많은 메타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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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gh...
답답하고 지루하다. 아파트 빼곡한 이동네��. 독립문-약수-돌곶이도. 새로운 작업들도 이전것들의 재생산으로만 느껴진다. 어떡하면 좋지. 이 무기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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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에 관한 기억 part2
2.
안과를 다녀왔다. 렌즈를 맞추기 위해서였다. 더 늦기 전에 렌즈 끼는 연습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쓸데없는 검사들만 잔뜩 하고 정작 렌즈는 맞추지 못했다. 특수한 나의 눈에는 특별한 검사, 특별한 렌즈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놈의 ‘특’자가 나올 때마다 돈은 따블, 따따블이 되어 늘어났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좀 더 보태 수술을 하면 어떨까 싶었다. 하지만 의사는 고개를 저었다. 원시-근시의 짝짝이 눈은 수술을 한다 해도 원래 상태로 돌아올 확률이 높다는 거였다.
결국 답은 하나였다. 안경을 써야한다는 것.
돈이 많아져서 특수 렌즈를 매달 살 수 있다면, 과학기술이 좋아져서 수술이 더 발전한다면 등의 기약 없는 가정을 제외하고 현재만을 생각했을 때 나는 앞으로 쭈욱 안경을 쓰게 될 것이었다.
그 날 이후부터 이전엔 몰랐던 안경의 무게를 느끼기 시작했다. 콧등과 관자놀이를 지긋이 누르는 그 무게. 얼굴 삼면을 조여 오는 이들의 정체는 무엇일까. 그것은 플라스틱과 유리알 g 수 이상의 무엇이었다.
일요일 아침, 나는 벌떡 일어나 서둘러 준비를 하고 택시를 잡아탔다. 택시 백미러를 보면서 헝클어진 머리를 다듬었다. 이것은 익숙한 나의 일요일 아침 풍경이었다. 지난 주에도 지지난주에도 일년전에도 오년전에도 십년전에도 그랬고 더이상 기억나지 않는 시절의 일요일에도 나는 정신없이 준비를 하고 어딘가를 뛰어갔을 것이다. 어느 날엔 그 아침이 좋았고 어떤 날엔 그 정신없음이 짜증났다. 그렇게 좋고 싫음을 반복하면서 23년의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별일이 없는 한 나는 평생 일요일 아침 헐레벌떡 뛰어(때때로는 여유롭게 걸으며) 교회를 갈 것이다.
그 날 일요일 아침은 뭔가 이상했다. 이 정신없는 일요일 아침이 지겨워졌다. 하지만 지겨움은 이전에도 한 두 번 겪어 본 것이 아니었다. 그 실증은 이전의 것과는 분명 다른 것이었다. 단순히 귀찮다거나 분주한 것의 문제가 아니었다. 원인을 찾아 희미한 마음의 소리를 따라 갔을 때 나는 처음 안경을 쓰던 그 날을 생각하게 되었다. 잘 어울린다며 거울을 보며 ���쓱했던 그날의 안경은 굴레가 되어 내 삶에 씌워져 있었다. 나는 ���생의 남은 시간 속에서 나와 함께 묶일, 떨어지지 않을 모든 것들에 대해 부담감을 느끼고 있었다.
안경, 신앙, 조은혜라는 이름을 걸고 살아야 할 남은 시간들.
사실 부담감 보다 더 컸던 것은 절망감이었다.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것, 이미 정해진 운명에 순응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 앞에서 찾아오는 좌절.
나는 내일과 영원의 개념을 알아버린 인간의 지혜가 원망스러웠다. 하루살이처럼 내일이 올 것을 모르고 오늘만을 살았더라면 이런 부담감도 괴로움도 없었을텐데. 지나간 과거를 아름다웠다고 추억하며 주어진 오늘을 충실히 살아갔을텐데. 미지의 것을 알고 싶어하는 호기심은 도대체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일까.
정해진 미래로 부터 자유해지고 싶었다. 옳다 여겨지는 것들과 해야 하는 것들의 당위 속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나는 참을 수 없는 무게에 못 이겨 안경을 내 팽겨 쳤다. 피부는 바리케이드 없이 만나는 바람을 깊이 빨아들였다. 프레임 안에 갇혀 있던 세상이 무한한 우주로 확장되자 나는 비로소 세상이 넓다는 말을 실감하게 되었다.
하지만 자유는 그리 쉽게 찾아오지 않았다. 얼굴 곳곳에 퍼지는 바람과 공기의 만짐도 잠시, 시야가 마구 뒤틀렸다. 어린 시절 놀이동산에서 보았던 이상한 요술거울처럼 세상은 마구 울렁이며 일그러졌다. 균형을 잃은 두 눈은 엄마를 잃은 아이처럼 낯선 세상에 당황하여 생난리를 쳤다. 자유는 고사하고 안경 없는 나는 그저 장님일 뿐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도 알아 볼 수 없었고 책도 그림도 영화도 볼 수 없었다. 자유를 찾아 떠난 곳에는 또 다른 아니 그 이전보다 더 질기고 강한 올무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 전까지 읽던 조르바가 생각났다. 결혼도 제도도 종교도 다 거부하고 바람처럼 살아가던 그가 스치듯 던진 말이 있었다. 자신의 육체가 이 땅에 속해 있다는 것. 아무리 자유롭다 한들 결국 그도 땅의 산물이었고 그 한계로부터는 자유로울 수 없었다.
자유. 무엇이 자유일까. 아무리 벗어나려 발버둥 쳐도 운명공동체처럼 결코 벗어날 수 없는 그 무엇. 그 무엇을 알면, 그것을 끊어내면 자유로울 수 있을까. 아니 자유라는 단어가 가지는 의미에 부합하는 실제가 존재하긴 한 걸까. 도대체 누가 이 개념을 만들었으며 그는 무엇을 보았던 것일까. 예기치 않은 상황에 당황한 나는 울렁이는 세상 속에서 길 잃은 고아처럼 멍하니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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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에 관한 기억 part 1
1.
안경을 처음 쓰게 된 건 초등학교 3학년 때였다. 무더웠던 여름방학, 할 일 없이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데 별안간 엄마는 나를 고대 병원으로 데려갔다. 시력검사를 하는 사이 의사 선생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더니 안경을 맞추러 가자고 했다.
내 첫 번째 안경은 펄이 들어간 연보라색이었다. 이리저리 거울을 보며 나는 처음 도전한 스타일에 흡족해 했다. (실제 그 때 사진을 보면 당시까지만 해도 투명했던 내 피부에 펄 들어간 연보라색 안경은 나름대로 잘 어울렸다.)
문제는 안경과 함께 받은 안대였다. 내 눈은 심한 짝눈인데다가 일반 사람과 달리 양쪽이 원시 , 근시(심지어 약시, 난시)로 달랐고 엄마는 더 늦기 전에 교정을 해야 한다고 했다. 결국 그 날의 핵심은 안경이기보다 안경으로 하는 교정이었던 것이다. 안경 선생님은 내 양귀에 안대 고무줄을 걸어주었다. 안대는 왼쪽 눈을 덮었다. 안경을 쓰고 시력이 좋은 오른쪽 눈에 안대를 붙여서 왼쪽 눈의 시력을 키우는 교정이었다. 해가 비추면 반짝반짝 빛나던 연보라색 안경은 무참히 안대로 덮여졌다. 잃은 것은 안경 간지 뿐 만이 아니었다.
오른쪽 눈에 기대어 살아가던 왼쪽 눈이 홀로서기를 하게 되자 이전엔 당연한 듯 넘어갔던 사소한 것들이 다 걸리적 거리게 됬다. 간판을 읽는 것에서부터 사람을 알아보는 일까지, 세상 모든 것들이 포커스 아웃된 것처럼 뿌옇게 보였다. 딱 떨어지는 경계를 잃고 모조리 하나가 된 세상은 낯설고 답답했다.
무언가를 보려할 때마다 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자라처럼 고개를 앞으로 쭉 빼내야 했다. 만일 내가 미국 영화에 왕따 캐릭터로 등장하는 안경잡이 땅콩처럼 귀여웠더라면 그 자라 흉내는 애교로 봐줄만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키가 아주 컸고 심지어 뚱뚱하기까지 했다. 안경 위에 안대를 붙이고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빼는 뚱뚱한 소녀… 그 모습은 봐주기 힘든 우스꽝스러움이기보다는 연민을 자아내는 안타까움 그 자체였다.
엄마는 안대를 끼우라고 쫓아다니면서 잔소리를 했고 그에 맞서 나는 열심히 도망을 다녔다. 했다 안했다 반복하기를 몇 개월, 결국 나의 교정은 실패로 돌아갔다.
그렇게 13년, 나는 아직도 안경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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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김우현 감독의 팔복 시리즈를 다시 읽고 있다. 나온지 얼마 안된 3탄 '온유한 자'의 주인공은 광화문 시인 정재완씨다.
소아마비. 광화문 거리 좌판 장사. 그리고 시인... 아주 전형적인 신파 코드들. 단어만 들어도 책의 시작과 끝이 훤히 보인다. 만일 김우현감독이 쓴 책이 아니었더라면 읽지 않았을 거다.
이상하게 김우현 감독이 뿜는 신파는 오글거리면서도 자꾸만 찾게 된다. 왜 그럴까... 사실 '가난한 자' 를 읽을 때부터 그 이유를 알고 싶었는데 책의 호흡을 열심히 따라가다가 번번히 생각할 기회를 놓쳐버렸다. 이렇게 세번째 판을 만나게 되다니. 게으름은 물리적인 삶에서 뿐 아니라 생각의 계에서도 날 지배하고 있었던게야. 무하튼 그의 신파가 좋은건 아마 그가 되다 만 적당 신파가 아니라 극한까지 간 신파였기 때문인 것 같다. 언젠가 김남혁 선생님이 그게 뭐든지간에 극한까지 가봐야 한다고 했었는데 김우현의 신파가 딱 그거같다. 손발 없어지는 것은 고사하고 아예 삶 자체가 그 감성에 젖어 있다는 느낌. 그는 그런 척하는 사람이 아니라 진짜 그 감성에 젖어사는 사람인게 느껴진다. 또다른 이유는 살아서 역사하시는 성령님이라는 근거가 있기 때문인 것 같다. 현실과 괴리된 낭만주의자의 제스처에는 근거가 없다. 처음 들을 때는 달달하지만 명백한 뿌리가 없으니 그 약발이 오래가질 못하는거다. 영웅주의, 현실이 배제된 낭만주의가 다 이에 속하는 것일테다. 근데 그에겐 너무나 명백한 근거가 존재한다. 그 위로가 솔루션이 그냥 감상에젖은 말들이 아니라 현실에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성령의 역사로서 보여진다는 거다. 물론 그 역사를 믿는자에게만 그것이 근거가 되겠지만. 무하튼간에 김우현을 비롯한 그의 선생들 연구는 난관에 봉착한 나의 신파에 해결책을 던져 줄 것 같다.
사실 주인공은 정재완씨인데 계속 김우현 이야기만 했네.정재완씨가 썼던 시 중에 고른거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시다.
꽃들이 비를 맞으며 이야기한다.
어디로 가고 싶은데
뿌리가 박혀 못 간다고 한다.
비 그친 뒤 날아가는 벌이 말한다.
너도 언젠가 꽃잎이 되어 날아간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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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선화에게
정호승
울지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가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 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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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맑은 날에는 하늘을 향해 눈을 감고 두 팔을 쭈욱 벌렸다.
햇빛을 담고 싶었던 건 지독한 공허, 외로움 때문이었다.
따뜻하게 채워져라, 주문 외우듯 말했지만
벌린 팔의 크기만큼 더 많은 바람이 가슴을 훑고 지나갔다.
부어도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에 좌절하고 있는데
오늘 우연히 만난 이 시가 외로움에 대한 정의를 새롭게 하고 있다.
인간 아니 만물의 존재 의미가 외로움에 있다고.
너 뿐만 아니라
종소리도, 산 그림자도, 새들도, 심지어 나의 하늘 아버지조차도 외롭다고.
그러니 견디라고 말한다.
그래, 그가 내 안에 들어온다 해도 나는 여전히 고독에 몸부림치고 있을 거다.
온전한 하나가 되기엔
우리는 너무나 분명한 타인, 외로운 단독자로 존재하니까.
시인의 말이 맞다. 그저 이 외로움을 의연하게 견디어야지.
눈이 오면 눈이 오는 대로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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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lar taxi around the world with the sun (2010)
a film by : Erik Schmitt
스위스의 한 교사가 어릴 적 꿈을 이루기 위해 태양렬 자동차로 세계일주를 도전한다.
귀여운 인트로, 재미있는 내용, 환경이라는 테마와 관련된 메시지.
어디 이런 프로젝트 없나, 그렇지... 내가 만들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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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 아저씨의 새 책이 나왔다. 서양미술사 현대미술편.
중학교 1학년 때 그 색바랜 미술사 책을 밤새 읽으며 가슴이 뛰었던 기분은 1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한 것 같다. 그들의 철학, 고민 속에서 나온 많은 작품들을 마주할 때면 겸허해지고 뜨거워지고 무튼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기분을 느끼곤 한다. 예술을 알고 하게 된 것을 축복으로 생각한다.
무튼 오늘 개괄을 읽으면서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토마스 쿤과 헤겔은 각각 패러다임의 변화, 정반합을 언급하며 세계는 더 나은 상태로 나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21세기인 현재 현대인의 정신구조는 너무나 정확하게도 이들이 말한 반대방향으로 열심히 달리고 있다. 날이 갈수록 기술문명은 발달하고 정신은 피폐해져간다는 사실은 너무나 흔한 맥락의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이러한 정신적 빈곤을 해결하고자 사람들은 발버둥을 치지만 결국 현대는 모든 가치를 두루 탐색한 후에 모든 가치를 부인하는 (심지어 자기 자신까지도) 허무 곧 죽음에 이르게 된거다. 예술 역시 똑같은 걸음을 걷는다. 인간과 예술은 신을 배제할 권리를 얻게 되었지만 그들은 신을 배제함과 동시에 그 초월의 빈자리를 대신할 우상 귀신등을 만들어야 했다. 그러나 참신이 되지 못한 그들은 예술과 인간 모두를 허무 곧 죽음의 숭배로 결론을 내게끔 만든 것이다.
신을 배제한 인간이 겪는 고통... 요즘 창세기를 다시 공부하는 중에 현대미술을 생각해서 그런지 예술의 죽음과 그 원인, 결론이 더욱 가슴깊이 다가온다. 하나님께 자신의 근원을 둔 인간이 다른 우상들에게 자신을 내었을 때 얻는 그 허무. 내가 크리스챤이기 때문이 아니라 몇 백년 동안 이루어진 수많은 아티스트들과 철학자들의 몸부림과 그 결과가 이를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물론 그들의 시도와 가치 가운데 나온 작품들은 참으로 의미있는 것이지만.
무튼 이제 책에서 결론 부분만을 남겨두고 있다. 책장 하나하나 넘길 때마다 가슴이 너무 뛰어서 제대로 책을 못읽을 정도다. 책은 결론으로 과거의 회귀를 언급하고 있는 것 ���다. 인간이 세대를 거듭하면서 실수와 실수 가운데 알아낸 과거로의 회귀, 새 시대에 따라 바뀌는 복음이 아닌 옛것을 성경이 몇천년 전에 말했다는 것은 엄청난 일이 아닐 수 없다. 역시 세계는 그리고 인간은 정해진 정답으로 흘러야만 행복해질 수 없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일까. 사필귀정이라는 단어가 오늘 특히 귀에 멤돈다.
마지막으로 제들마이어의 마지막 말을 인용하며 글을 마쳐야쥐.
"예술이 구체적인 형태에 의미있는 방식으로 다가가고 형식과 과제가 갖는 의미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데서, 예술이 비예술적 힘에 굴복하기를 거절하는데서, 예술이 인간적인 내용을 포기하지 않는데서, 예술이 세계 질서를 인정하고 그에 따르는 데서 우리는 그런 현대 예술을 만날 수 있다.
진정한 미래는 파괴하려는 힘과 유지하려는 힘이 만드는 공동의 결과일 수 밖에 없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진정한 미래를 창조할 수 있는 것은 새로운 시대의 복음에 사로잡히는 나약한 정신이 아니라 과거에 연결되어 있는 강인한 정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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