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self exile since 1999. 2019 : Trust me, I know what you mean. S3.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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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독서 결산 보고
2007년에 시작한, ‘죽기 전 (엄선된) 1000권 읽기 프로젝트'의 생일맞이 2019년 보고서를 올릴 시간이 또 돌아왔다
*혹시 (또) 지나가다 내 보고서를 처음 읽게 되는 분들이 있을, 극히 낮은 경우의 수를 대비하여 짧은 설명을 하자면, 유태인들은 매년 자기 생일에 한 해가 시작한다고 생각한다는 유태계 첫 영어 클래스 선생님의 말이 인상이 깊었던 바,
한국 나이고 만 나이고 난 모르겠고, 나의 일년은 나의 생일에 시작된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다.
올해는 시간이 매우 더디게 흘러가는 해다. 본의 아니게 (어느 골치 아픈 일이 본의겠느냐마는 도전을 즐기기는 커녕 전혀 변화가 없이 살던대로 살려고 부단히 노력하는 사람으로써는 특별히 억울한 일이다) 골치 아픈 일도 많았고, 삶의 형태를 크게 바꿀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있기도 하다. 3월에 여행을 다녀와 5월에는 엄마 팔순으로 2년 만에 한국에도 다녀왔고, 8월에 지야가 잠시 다녀 간 후, 지금까지 고작 6개월 여 동안 한 십년은 지나고 있는 기분이다. 나이가 들수록 시간은 빨리 지나기 때문에 천천히 지난다는 것이 한편 반갑기도 하지만, 단조롭게 평화롭게 일상으로 바쁘면 시간이 유순히 잘도 흘러가는 데 그렇지 않아서 그럴 것이라는 추측이 또한 애매한 기분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래서, 일 수도 있고, 그럼에도 불구할 수도, 일수도 있게, 진행하고 있는 일도 있다. 오랜동안 실패가 두려워서 건드리지 않았던 일이라 그런지, 긴장되거나 결과에 대해 걱정이 되기보다는 어떻게 되나 보자는 거의 호기심에 가까운 기분, 그리고, 어차피 내가 노력하든 안 하든 골치아픈 일은 생기는 건데 내가 적극적으로 골치 아픈 일을 만들어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는, 마치 소도둑 든 후 ���양간을 고치느니보다 온동네 소 바베큐 파티를 여는 기분이랄까.
당연히 실패하면 기분이 대단히 좋지는 않겠지만 막상 시작하고 나니, 뭐랄까, 어둠 속에서 괴물이 무서워서 이불을 뒤집어 쓰고 있다가 너무 답답해서 에라 차라리 죽고 말자 하고 벗어 던졌더니 괴물같은 건 없었던 기분이랄까.
무엇이 그렇게 무서웠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내가 control freak이라는 것도 일조했을 거라는 추측일 뿐이다. 나는 돌발상황, 뜻밖의 변수를 매우 싫어하고 모든 것을 내 조절 하에 두어야 하는 사람이라는 것. 나의 운명을 남들에게 맞기기 싫어한다는 것. 내가 넘어져도 나를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믿으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
그런데, 뭐 이제는 괜찮다. 아무도 안 도와줘도, 그래서 혹시 당장 못 일어나도 넘어진 김에 쉬어가도 되겠다는 생각이다.
독서의 방법은 여러가지라서, 누군가는 되도록 많은 이야기를 읽으려고 하고 누군가는 같은 책을 여러 번 보려고 한다. 옳은 독서 방법이란 없다. 단지, 내가 많은 책을 읽고 싶어하는 것은, 그야말로 세상에는 아직도 좋은 책이 너무나 많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오늘 부로 다시는 새 책은 하나도 안 나온데도, 오늘 태어난 아기가 100살까지, 아니 기분이다 140살까지 살면서, 베스트 오브 더 베스트 오브 더 베스트 ( 남들이 좋다는 거 말고 취향 따라서만도!) 만을 읽어도 다 못 읽고 죽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
책을 읽지 않으면 혀에 가시가 돋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 혀에 가시가 돋으면 과산화수소수와 일반 가글을 반반 섞은 물로 입을 헹구는 것이 좋다), 꿈을 꾸어야 살듯이 책을 읽어야 사는 것은 여전히 나에겐 사실이고, 세상의 이 많은 책을 다 못 읽고 가는 것이 아직도 한이다. 그 전에는 못다 읽은 책은 같이 묻으랄까 하는 낭만적인(?) 상상을 했으나, 곧 같이 화장을 하는 현실적인(!) 상상을 하다가, 물건을 최소한으로 소유하고 살기로 한 지금은 ‘못 다 읽은 책’ 같은 것은 내 주변에 남지 않은 채로 사체로 발견되었으면 좋겠다는 아무진 꿈을 안고 살아가고 있는 중이다.
내가 책을 읽는 이유 중 한가지는, 책이 끝난 후에도 주인공에 대해 궁금할 때가 있을만큼 독자의 상상은 무한하지만, 작가가 만든 하나의 세상에서 일단 종지부가 지어지는 ‘그 세상’을 오롯이 받아들 수 있다는 안정감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중간 중간 맛보기의 대리만족으로는 절대로 안되고 반드시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야 얻을 수 있다.
본인이나 자녀 분들의 인�� 사진 자주 올리시는 분들이 간과하시는 위험한 부분은, 사람이 오늘은 이마만, 오늘은 볼만 찍어 올려도, 자꾸 보면 조합이 되어서 머릿속에서 알아 볼 수 있는 전체 그림이 된다는 것이다. 목소리의 조합으로 페이크 목소리 파일을 만들 수 있는 것과 비슷하다. 하지만 그 모습과 그 사람을 직접 만나 얘기를 해보는 것과는 다르다.(그래서 더 위험하다!) 마찬가지로, ‘남들이 다 본 스페인 관광지의 그것’ 의 사진은 온라인에 차고 넘쳐서, 가서 보면 ‘알아 볼 수’ 있지만 (그리고 그걸 보고 간 분들도 또 비슷한 각도에서 비슷한 사진을 찍어 오신다) 직접 가서 살아보지 않고는 궁극적인 ‘스페인’은 볼 수 없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알래스카와 진짜 알래스카는 완전히 다른 것 처럼.
그래서 분명히 말해두고 싶은 건, 내가 많은 책을 읽고 싶어서 걸신들린 사람처럼 읽고 있다고 해서, 그게 내가 휘리릭 대충 책장을 넘겨 버린다는 뜻은 아니다. 한 자, 한 단어, 한 문장도 절대로 대충 빨리 읽겠다는 생각을 한다면 아예 읽지 않는 편이 낫다는 생각이다. 내용도 보지만, 글도 보고, 인물과 구조와 배경과, 숨은 이야기도 봐야 하니까.
그것이 내가 특별히 좋아하는 사람의 책이나 선물 받은 책이 아니면 십년 넘게 영어로만 책을 읽고, 한국어 책은 독서 기록 숫자에는 포함시키지 않는 이유라는 생각도 든다. 의미함축의 언어인 한국어는 때로는 너무 어렵고, 때로는 나도 모르게 설렁설렁 넘어가려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넘쳐나는 뻔한 말들이 싫어서 나만의 언어를 유지하고 싶고, 그래서 좋은 글은 좋아서, 내 마음에 들지 않은 글은 그래서, 한국어를 다시 배우고 싶지 않다는 생각도 있다.
어떤 책은 너무 좋아서 나를 바닥으로 떨어뜨리고는, 너 같은건 다시는 글 쓴다는 생각을 하지 말라고 눌러버리기도 하고, 어떤 책은 너무 좋아서, 너에게도 이야기가 있어, 너도 글을 쓸 수 있어, 라고 말해준다. 그리고 이 둘 다 좋은 책들이라는 것이 재미있다.
그 전에는 한 번에 한권 씩 밖에 못 읽었는데 요즘은 오디오 북과 읽는 책은 평행선으로 가는 것에 길들여지긴 했다. 눈이 많이 안 좋아져서, 그리고 훈련을 통해 다소 더욱 익숙해졌기도 해서 그 전에 비해 오디오 북을 많이 들었기도 하지만, 일이 많았어서 오디오북이라도 짬짬히 ‘연명’을 했다고 볼 수도 있다. 난픽션들을 대부분 괜찮지만 소설들은, 오디오 북의 역사가 짧아 어정쩡한 책들은 오디오북이 잘 없고, 이른바 고전이라는 것들은 영국 악센트로 읽은 것들이 많아서 피하다보니 오디오북들에 대한 나의 감상은 대부분 반반이다. 괜찮을 수 있었던 책들도 읽는 사람이 너무 호들갑(!)을 떨어서 망쳐버린 책도 있고, time proven시간이 증명해 준것이 아닌 당시 반짝 컨템포러리 ‘인기 있는 책’이라는 것은 내 취향이 되기 힘든 것 같다는 생각.
게다가, 요즘에는 훈련이 되어서 조금이라도 방해가 될 만한 일을 만나면 얼른 멈추고, 다시 15초 백을 누르지만, 그래도 사람의 집중력이라는 것이, 오디오북을 들으며, 가만 잊자, 파슬리가루가 어디 있더라, 생각하는 동안, 한 문장이라도 지나가버린 걸 그 때마다 되돌릴 수는 없고 해서, 여전히 오디오북도 읽은 책 숫자에는 포함시키지 못하겠다.
정말 눈이 피곤해서 읽기 힘든 날은, 언젠가는 눈이 환전히 가 버려서, 늘상 집중하고 책만 들어야 할 날이 올 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꼬박꼬박 병든 닭처럼 졸고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제목들을 타이핑 하고 있노라니 책 내용은 물론, 각 책을 읽고 있을 때 있었던 일들과, 책의 질감까지 떠올라 행복해진다. 앞으로는 눈 때문에 전자책의 비중이 더높아질 것 같아서 더욱 아쉬운 부분이다.
아무튼, 그리하여, 작년 분기에 539권이 남았던 것에서 이제 490권이 남았나보다, 점점 숫자가 줄어갈 수록 남은 날은 유한하다는 각성과, 적어도 뭔가 한가지 약속을 지키고 간다는 안도감은 들어 줄거라는 희망으로 나의 올해의 기록을 공개한다.
*늘 그렇듯이, 오디오북과 한국 책은 숫자에서는 제외하고, 책 한 권을 완성한다는 것에 어떤 ‘일’이 관련되는 지 미흡하게나마 짐작할 수 있는 사람으로서 ‘일개 독자인 내가 감히’ 의 이유로 평점 같은 것은 생략이다.
1. The Sea -John Banville
2. Fall On your Knees - Ann Marie MacDonald
3. Master George -Beryle Bainbridge
4. Blind Assassin -Margaret Atwood
5. The Secret Scripture -Sebastian Barry
6.Small World -David Lodge
7. The White Hotel -D.M. Thomas
8. Disgrace -J.M Cortez
9. Quartet in Autummn -Barbara Pym
10. The Hisoty of the Kelly Gang -Peter Carey
11. Rashomon -Ryunosuke Akatagawa
12. Cover Her Face -P.D. James
13. Magpie Murders -Anthony Horowitz
14. Roseanna - Maj Sjöwall and Per Wahlöö
15. Like Life -Lorrie Moore
16. The Master - Colm Tóibín
17. Joyland -Stephne King
18. Fierce Invalids home from Hot Climates -Tom Robins
19. Pigeon -Patrick Suskind
20. The Gay Science -F. Nietzsche
21. Man’s search for mMeaning - Victor E. Frankl
22. The Glass bead Game -Herman Hesse
23. Immortality -Milan Kundera
24. Ex Libris
25. Feeling of What happens -Antonio Damasio
26. Fugitive Pieces -Anne Michaels
27. Love’s Work -Gillian Rose
28. Glory and the Lightening -Tayler Caldwell
29.Nightround -Patrick Modiano
30. The God of Small Things -Arundhati Roy
31. Levitaion -Cynthia Ozick
32. The Stone Angel -Margaret Laurence
33. Seeing - José Saramago
34. The Palm Wine Drinkerad -Amos Tutuola
35.One Day in the Life of the Ivan Denisovich -Alexander Solzhenitsyn
36. Ex Libris - Anne Fadiman
37. The Four Wise men -Michael Torurnier
38.The Roots of Heaven -Romain Gary
39. Blindness - José Saramago
40. Zorba the Greek -Nikos Kazanzakis
41. Lady Chatterley’s Lover -D.H. Lawrence
42. Winter Hours -Mary Oliver
43. The Alice Network -Kate Chopin
44. The witch Elm -Tana French
45. Small Memories - José Saramago
46. Passion Fruit -Daniel Pennac
47. A field Guide to Getting Lost -Rebecca Solnit
48. The Book of Disquiet -Fernando Pessoa
49. Children Of God -Mary Doria Russel
늘 곁에 있어주는 사람 -임경선
아무튼, 술 -김혼비
유쾌하고 호쾌한 여자축구 -김혼비
100세 수업 -김지승
꿈 꾸는 역 분실물 센터 -안도 미키에 / 최수진 옮김
먹고 사는 게 전부가 아닌 날도 있어서 -노지양
어른에게도 어른이 필요하다 -박산호
단어의 배신 -박산호
아무튼, 방콕 -김병운
오르브와르 -피에르 르메트르
*Audiobooks
1. Elsewhere -Gabrielle Zevin
2. Sense Of an Ending -Jullian Barnes
3.The GIver -Lois Lowry
4. Bellwether _connie Willis
5. The Bonfire of Vanities Tom Wolfe
6. All the Light that We Cannot See -Anthony Doer
7. In the Midst of Winter -Isabel Allende
8. Florida -Lauren Groff
9. How to Steal a Dog - Barbara O’conor
10. I am the Messenger -Markus Zusak
11. Scott’s Last Expedition
12. The Year of Magical Thinking -John Didion
13. Avenue Of Mysteries -John Irving
14. Heart land -Sarah Smarsh
15.Nine Perfect Strangers -Liane Moriarty
16. Five Children and It -E. Nesbit
17. The Library Book -Susan Oleander
18. Little Fires Everywhere -Celeste Ng
19. When Breath Becomes Air -Paul Kalanthi
20. The Breakdown -B.A, Paris
21. The Immortalist -Cloe Benja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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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되는 법 : 리베카 솔닛이 주는 열가지 팁
HOW TO BE A WRITER: 10 TIPS FROMREBECCA SOLNIT
JOY, SUFFERING, READING, AND LOTS AND LOTS OF WRITING
Literary Hub September 13, 2016
작가가 되는 법 : 리베카 솔닛이 주는 열가지 팁
1) 쓰십시오.
다른 대안은 없습니다. 블로그나, 포스팅이나, 트윗, 아니면 오늘날 우리들의 삶을 안전하게 감싸고 있는 모든 일회용 완충제같은 그런 것들 말고 가장 열정적으로 쓰고 싶은 것을 쓰세요. 하지만 작은 것으로 시작하세요 : 좋은 문장을 하나 쓰고, 다시 좋은 문단을 하나 쓰는 거죠. 그리고, 위대한 소설을 쓸 꿈을 꾸거나, 수상을 하게 되면 무슨 옷을 입을지 같은 건 생각하지 말아요. 왜냐하면 글을 쓴다는 것은 그런게 문제가 아니고 여기서 거기에 도달하는 방법도 그런 식이 아니거든요. 그 길은 전적으로 말들로 이루어져 있어요. 많이 쓰세요. 어쩌면 처음에 당신은 걸음마하는 어린아이 같을 거에요. - 미운 2살이 하는 짓은 제 맘대로 안되어서 그런 부분이 있거든요. 움직이거나 말로 할 수 있는 능력보다 지능이 높으니, 자기는 색칠그림을 하고 싶은데, 장남감을 달라고 하고 싶은데 나오는 말은 부바부바 말도 안되는 소리고 아무도 못알아 듣는거에요. 하지만 언어가 좀더 세련되어지고 움직임이 기술적으로 발달하는데 드는 건 시간 뿐이 아니죠. 그건 노력과 연습이이에요. 형편없는 걸 써 내려가세요. 왜냐하면 좋은 글을 쓰게 되는 길은 말들로 만들어져 있고 그 말들 전부가 잘 배열된 말들은 아니랍니다.
2) 쓴다는 것은 타이핑한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세요.
생각하고, 자료를 찾아보고, 고려해보고, 아웃라인을 잡고, 머릿속에서 그리고 전체적 그림을 그려보는 것으로 글을 구상해보고, 아마 좀 타이핑을 해 볼 수도 있겠죠, 쓰면서 고치면서요. 그리고 조금 더 고치고, 지우고, 교정을 보고, 더하고, 다시 생각해보고, 좀 치워두었다가 새롭게 다시 봐 보고요. 좋은 작가는 언제나 자기 자신의 글의 좋은 편집자인 법이거든요. 타이핑은 그 생각이 많이 필요한 두 동떨어진 과정의 매개를 하는 역할을 할 뿐이에요. 너무 많이 고친다는 것도 가능하지만 -저는 굉장했던 17번째 원고가 23번째에 가서 완전히 지지부지 해져 버리는 것도 본 적 있으니까요- 태어날 때부터 완벽한 것들은 없습니다. 글쎄요, 거의 완벽한 것들도 있겠지만 그런 것들이 이상한거에요. 많이 쓰다보면 환상적으로 완벽한 부분들을 건질 수 있을 테지만, 영 환상적이지가 않아서 잘라내야 하고, 다시 생각해봐야 하고, 고쳐야 하고, 사실검증이 필요하고, 정리를 해줘야 하는 오만가지 것들도 함께 가지게 될겁니다.
3) 읽으십시오. 그리고 읽지 마십시오.
좋은 글을 읽되, 현재에 머무르지 마세요. 코란이나 마비노기온( 영국의 12-13세기의 이야기 책:역주), 마더 구즈(프랑스/영국의 어린이 라임 책:역주), 디킨스나 디킨슨, 볼드윈, 아니면 당신과 깊이 통하는게 있는 언어들을 가지고 아주 오래 전의 시간에 살아보세요. 문학은 고등학교가 아니라서, 모든 주변 사람들이 어떤 스타일을 입고 있는지를 실제로 알 필요도 없고요, 바로 이 순간 출판이 되고 있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받는 것은 그 당신을 그 사람들과 똑같이 보이게 만들테니, 그건 자기 자신만의 색을 가지거나 의미있는 기여를 하기에는 장기적으로 좋은 목표가 아니지요. 역사의 어느 순간을 봐도 비슷비슷한 톤을 가진 작가들은 많이 있고, 그런 사람들은 밀려왔다 밀려가고, 이상하게 생긴 불가사리 나, 소라고둥들이 남는 거거든요. 저를 못 믿겠으면 1935년 4월에서 1978년 8월 사이의 베스트 셀러 목록을 한 번 보시라니까요. 독창성이라는 건 자기 자신의 영향을 받는 문제라고도 볼 수 있죠. 진화 생물학 교과서나 구약성경을 읽고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자신만의 비유를 찾아내세요. 아무데도 속하지 말라구요. 아니면 이 세상이 아닌 조금 다른 세상, 당신 자신이 당신에게 메세지를 보내오는 그런 세상에 속해 보세요. 1849년 창��수업시간에, 보충설명 하느라 삼천포로 빠졌던 부분은 다 잘라내야 한다, 정말이지 그 두꺼운 고래 이야기책은 좀 지루하다, 왜 결론에 다다르는데 그렇게 오래걸려야 하느냐는 소리를 동급생 모두에게 듣고 있던 허먼 멜빌을 상상해보세요. 그리고 사실 그 책은 그 당시에는 꽤나 실패작이었고요. 쏘로우가 편 낸 대부분의 책들이 그랬고요, 에밀리 디킨슨도 생전에는 시 몇 편 출판 했을 뿐이지만 쓰기는 수천편을 썼답니다.
4) 들으십시오. 그리고 듣지 마십시오.
편집자, 출판 에이전트, 독자들, 친구들, 동급생들의 피드백, 좋지요. 하지만 당신이 무엇을, 왜 하려는 지 확실히 알 때가 와요. 그럴 때 남의 의견을 따른다는 것은 자기 자신과 조율이 잘 안될거라는 것을 의미해요. 스스로의 피드백에 귀를 기울이세요. 실수도 하고 걸려 넘어지고 흠도 있지만 열망의 노고로 이적지 일 해 온거지 맨 처음 서 있던 좁은 공간에서 완벽한 피루엣(발레에서 한쪽 발로 서서 빠르게 도는 것:역주)을 싹 돈 게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세요. 어느 부분에서 몸의 털이 곤두서는지, 심장이 녹아내리는지, 눈이 둥그래지는지, 무엇이 당신의 가던 길을 멈추게 하고, 살아가고 싶게 하는지, 그것들이 어디서 오는지 느껴보세요. 그리고 당신의 글이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도 그 모든 것들을 느끼게 할 수 있기를 바라세요. 다른 사람들을 위해 쓰되, 그들의 말에 너무 많이 신경쓰지는 마세요.
5) 소명의식을 가지세요.
재능은 과대평가되어있고 그건 보통 멋진 문체하고 함께 가지요. 열정, 소명의식, 미래상, 헌신 같은게 더 희귀한 자질입니다. 혹 당신의 문장력은 아침에 일어나 백일째 매일 원고를 바라보게 할 이유를 당신에게 선사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심지어 아주 그럴싸한 주제를 제공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저런 자질들이야 말로 문체의 거친 부분을 뚫고 나가게 해주는 거에요. 쓰기에 대해, 세상에 대해, 그리고 그 안에 당신이 쓰는 것들에 대한 열정이 없다면 왜 쓰죠? 말로 시작하기 전에 열정으로 시작하는거에요. 현명하고, 깊고, 열광적이고, 친절하고, 헌신적이고, 통찰력있고, 주의를 기울이는 사람이 쓴 글을 읽고 싶잖아요. 그런 사람이 되려고 노력 하세요. 물론 문장력도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자신의 미래상을 이루는데 도움이 될 때만 그렇습니다.
6) 시간
글쓰기는 시간이 드는 일이에요. 그게 무슨 말이냐 하면 그 시간을 만들어야 한다는 말이죠. 사람들을 너무 많이 만나지 마세요. 벌이보다 적게 쓰고 벌이도 적정하게 유지하세요. (이 말은 트러스트 펀드가 있거나 다른 경제적으로 아주 안정적인 분들에게 하는 말이 아님. 돈은 물론 하고 많은 것들을 아주 쉽게 하지만 소명의식이나 열정을 가지긴 힘들게 하기 쉬운 게 사실이지만) 처음에는, 어쩌면 계속 생계유지를 위해 다른 일을 해야할지도 모르지만, 일단 돈이 많이 드는 습관이나 에너지 많이 드는 취미는 가지지 마세요. 화가로의 앞길을 막는건 자신의 운명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사실 문제는 취향이었던 웨이트레스를 한때 알고 지낸 적이 있어요. (운명 fate 와 취향 taste 의 라임 말장난:역주) 만약 그 친구가 버리토 하나 먹는다고 나가선 결국 비스트로에서 고급 와인을 시키고 마는 사람이 아니었다면 일주일에 하루 더를 그림그리는데 쓸 수 있었을거에요.
7) 사실
항상 정보는 사실대로 써야해요. 시에다 꿀벌에 대한 잘못된 정보를 쓰는것도 충분히 짜증나지만 난픽션에다가 잘못된 정보를 쓰는 것은 죄악입니다. 사실을 틀리게 쓰면 아무도 당신을 신뢰하지 않을 거고, 현재 살아있거나, 최근까지 실제 있었던 인물이나 정치적인 사항들을 잘못 전달하면 절대로 안됩니다. (스스로에게 반문하세요 : 사람들이 나에 대해 거짓을 말하면 좋은가) 무엇에 대해 쓰던 간에 당신은, 당신이 쓰는 인물들에게, 독자에게, 그리고 기록 관련해서도, 제대로 된 사실을 써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제가 항상 학생들에게, 너의 의붓 아버지가 실제로는 하지 않은 일에서 이라크가 실제로 보유하지 않은 대량살상병기로 가는 건 순식간이다는 걸 강조하는 이유죠. 진짜 의붓 아버지가 하지 않은 일을 하는 어느 의붓 아버지 이야기를 쓰고 싶다면, 혹은 자세히 기억나지 않는 대화를 옮기고 싶다면, 적어도 그게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해야 한다는거죠.
소설은 규칙이 좀 다르지만, 사실도 종��� 포함되어 있곤 하고, 그걸 정확하게 쓰는데 작가의 신뢰성이 달려 있습니다. (만약 허구를 지어내고 싶다면, 가령 에밀리 브론테는 9피트[2미터74정도 :역주]고 날개가 달렸는데 빅토리아 시대 사람들은 모두 너무 격식을 갖추는 사람들이라서 아무도 그 이야기를 안 한거라든가 그러면, 구두수선공이나, 당시 유행하던 모자의 묘사를 시대사실과 맞게 할 것을 명심하고, 조그만 카메오 목걸이를 바닥에서 7피트 반 정도의 높이에 있는 그의 목에 걸어준다든가 하는 식으로요.)
8) 즐기세요
쓴다는 것은, 많은 시간 얼마나 쓰기가 힘든가, 금방 써 놓은게 얼마나 싫은가, 그리고 그 문제있는 문장들을 쓴 것이 바로 자신이라는 사실을 포함한, 자기 안의 가장 깊은 두려움과 모든 실패를 대면하는 것입니다. (많은 작가들이, 아이고 물론 저 자신도요, 정말 거지같은 원고가 고쳐져서 그게 얼마나 형편 없었는지를 후세가 영영 알지 못하게 되기 전에 내가 죽어버리면 어떻하나, 걱정한 적이 있습니다) 만약 완전히 망한 거 같으면 멈추고 창 밖을 보세요 (창문은 어디나 있게 마련이죠) 그리고, 말하세요, ‘나는 지금 내가 하고 싶은 바로 그 일을 하고 있다. 나는 영어(혹은 스페인어 혹은 한국어 [리베카 솔닛이 쓴 데로 번역한 것임:역주]와 함께 놀고 있다. 나는 내가 원하기만 하면 바로 지금 털코이즈(turquois 청록색에 가까운 색 이름 :한국인들이 어떤 색 이름에 익숙한지 몰라서 노파심에-역주), 녹는다, 수퍼노바 같은 말을 쓸 수 있다. 나는 쉘리와 같이 있고, 그는 시인들은 인증받지 않은 우주의 입법자들이라고 말하고 있고, 나는 프래킹(수압파쇄 개솔린 추출법으로 환경파괴의 한 원인이라는 받고 있다 :역주)을 하지도 않고, 외로운 노인들에게 쓸모없는 물건을 파는 것도 아니고, 나의 인간성을 남용하고 있지도 않다.’
기쁨과 즐거움을 주는 것들을 찾아보세요. 위급상황을 위해서 즐거운 것들 목록을 만들어 보는 것도 좋을거에요. 모든게 실패하면 ‘Steal My Joy” 가스펠 송을 틀어보세요. 후렴구 “Ain’t gonna let nobody steal my joy.” ‘아무도, 심지어 자기 자신도 누구도 내 즐거움을 훔쳐가지 못해’, 그거에요.
(https://www.youtube.com/watch?v=yOEviTLJOqo 개신교 가스펠에 대해 아는 바는 없으나 어떻든 편의를 위해 검색해 덧붙임. 이거보다는 더 응원이 되는 노래가 어딘가 있을 것 같지만 :역주)
하지만 글을 쓰는 건 즐기는 문제가 아니라 실제 일을 해야하는 거고, 그리고 그 일에 모종의 즐거움, 많은 종류의 즐거움 중��� 특정한 즐거움, 적나라한 사실을 진솔하게 말하는 것에 대한 그런 즐거움이 있어야 합니다. 목수들은 ‘나 오늘 별로 할 기분이 아니야.’라든가 ‘계단 따위, 사람들이 뚫고 떨어지든 말든 관심없어.’라고 말하지 않잖아요. 뭘 하는데 있어서 그것에 대한 당신의 기분은 너무 중요하게 생각할 만한 것이 아니고, 뭔가를 한다는 것은 그 기분에 집착하지 않는 하나의 수단이기도 합니다. 물론, 그렇게 자기를 들여다보는게 그 안에서 허우적 거리고 헤어나오지 못하게 만드는 것일 수도 있고, 어떨 때는 그것을 넘어서 더 흥미로운 곳으로 그리고 그 너머의 세상으로, 혹은 내면 깊숙한 곳과 우주적인 현상이 마침내 교감할 수 있는 곳으로 데려가 줄 수도 있는 거긴 하지요. 나도 끔찍한 고통 속에서 쓴 적이 있고, 쓰는 건 그 끔찍한 고통에 들러붙어 있지 않기위한 방법이었고, 힘들었지만 또한 힘들다는게 불가능하다는 것은 아니었으니까요. 쉬울거라는 생각으로 시작한 일도 아니었고요.
9) 우리가 성공이라고 말하는 것은 멋지고 유용한 부산물이 따라오는 일이지만, 성공이 곧 사랑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적어도 당신의 일에 대한 사랑이지 당신이 사랑 받는건 아니니까 이 두가지를 혼동하지 마시라구요. 다른 이들에게 사랑을 받기 위해 노력하는 것, 그리고 실제로 자신이 사랑을 받는 것은 또 다른 일이고 중요한 일이긴 합니다만. 뭔가를 만들어 낸다는 것은, 당신이 독립적인 생각을 가진 주체적인 누군가가 되어가는, 당신의 영혼과 당신의 앞날과, 당신의 인간성과 어긋날 수 있는 의미들을 써먹기 보다는 의미를 만들어 내는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입니다. 그러니까 중요한 것들을 인식하게 된다는 또 다른 종류의 성공이라는 것이 있는 것이고, 그건 그 누구도 아니라 당신에게 달려있고, 당신이 하려고만 하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10) 다 당신에게 달려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그건 이미 알고 계시지요. 그리고 이 소음과 야단법석과 걱정과 ‘이 글을 포함한’ 외부의 지침들 저변 어딘가, 알아야 하는 모든 것들을 당신은 이미 다 알고 계시지요.
https://lithub.com/how-to-be-a-writer-10-tips-from-rebecca-soln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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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 동의하고 않고, 얼마나 도움이 되고 안되고를 떠나, 결국 글쓰기는 딱 만가지 방법이 있고, 언제나 방법을 몰라서 안 쓰고 못 쓴다기보다는 뭐라고나 할까,인 사람 중의 하나로써, 그래도 같은 길을 걸은 적이 있었고, 지금은 결과적으로 성공한 작가의 조언, 혹은 응원을 들어두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서 옮겨보았습니다.
따스한 연말 되시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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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생일맞이 독서 결산보고
2007년에 시작한, ‘죽기 전 1000권 읽기 프로젝트'의 생일맞이 2018년 보고서를 올릴 시간이 또 돌아왔다(혹시 지나가다 내 보고서를 처음 읽게 되는 분들이 있을, 극히 낮은 경우의 수를 대비하여 짧은 설명을 하자면, 유태인들은 매년 자기 생일에 한 해가 시작한다고 생각한다는 유태계 첫 영어 클래스 선생님의 말이 인상이 깊었던 바, 나의 일년은 나의 생일에 시작된다)
는 사실과 더불어, 2007년까지는 불완전하나마 2001년 부터 읽은 책이 기록된, 당시 매우 무작위로 선택된 남루한 작은 노트북도 이번 주기를 끝으로 끝이 났다는 사소한 개인적 역사를 함께 보고한다.
1999년 미국에 오기전에는 아직 젊어서 그런지 철닥서니 없이 세상의 모든 책을 읽어치우며 마냥 살 줄 알았던 이유로(따로 생각해 본 적이 없지만 2007년 프로젝트를 시작할 당시의 깨달음에 받았던 충격을 생각하면 그랬던 것이 틀림없다) 한국어로 읽었던 책은 머리로 기억하는 것 외에는 전혀 따로 기록한 적이 없고, 영문책으로 말하자면 미국에 오기 전에는 번역한 책 말고는 심심풀이 땅콩 오징어로 시드니 셀던 몇 권을 읽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미시간에서의 초기 미국생활 동안에는, 도서관 대출 기간동안 읽을 자신이 아직 없어서, 중고로 용이하게 사들일 수 있고 쉽게 읽을 수 있었던, 이른바 ‘통속소설’을 많이 읽었기 때문에 별로 기록에 충실하지 않았던 기억이다.(지금은 한국어 도서는 거의 읽지 않고 한국어와 영문 도서의 읽는 속도가 거의 같은데 이는 많은 분이 경험하시듯이 오래 나와살다보니 한국어를 많이 안 접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내가 여러차례 강조하다시피 영어가 한국어보다 쉬운 언어이기 때문이다.)
2004년 노스다코타 파고로 이사한 후 초기만 해도, 그나마 ‘남들이 좋다는 문학도서’를 읽다가도 피곤하면 한번씩 존 그리샴이며 마이클 크라이톤으로 쉬어가곤 했었던 것을 생각하면 자조감이 드는 것을 보니, 내가 아닌 척하고 있어도 아마도, 나이가 들면서 다가오는 ‘끝’에 대해 그닥 느슨한 감정을 가지고 있지는 않은 모양이라는 느낌이다.(정말이지 아무 책이나 읽고 있을 시간이 없다,는 이 말을 반복하다 보면 앨리스 인 원더랜드에 나오는 늙은 토끼라도 된 느낌이다)
옆에서 보는 사람들(이 있다면)에게는 역시 중구난방 되는 대로 읽고 있는것처럼 보이겠지만, 2017-2018년 기간에는, 아무래도 2016-2017년 안식년 기간에 한국에서 지내는 동안 날린 허비한 시간을 보충하기 위해 한국에서 돌아오는데로 나름대로 분발을 ‘꾀한’ 부분이 있다(고 말하고 보니 그게 바로 되는대로 읽는다는 것의 정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 뒤에서 어깨를 손가락으로 톡톡 친다).
언제나처럼 ‘죽기전 반드시 읽어야 할 1001권 리스트’ (Peter Boxall’s 1001 Books: You Must Read Before You Die) https://1001bookreviews.com/the-1001-book-list/ 를 참조하고, 이런저런 수상작이나, 트친 분들이나 좋아하는 다른 작가들이 권한 책등 다양한 추천목록을 참고하는 것이 매년 기본 태도지만, 새 분기를 시작할 때는 나름 ‘프로젝트’라는 것이 있는데, (가령 미루었던 난픽션들을 따라 잡겠다든가, 단편을 많이 읽겠다든가, 소세키를 정복하겠다든가 하는 식이다) 올해는 맨부커 수상작을 목록에 추가했고, 노년 대비 오디오 북에 익숙해지기 위한 훈련기간이었다고도 할 수 있겠다.
1001권 리스트에서 읽고 지워진 책은 희망했던 것보다는 적지만, 벼르었던 더글라스 아담스 작품을 모두 끝낸 것이 기분이 좋다. 어떻든 꾸준히 지워나가지만 다 지워지는 날은 아마 오지 않을 것이다. 영어권 외의 작품도 많은데 ( 조정래의 태백산맥도도 포함되어있음 - 원칙적으로 영한 번역으로 읽었던 것은 리스트에서 지우고 있지 않고 있다보니, 옛날에 한글로 읽은 어차피 번역인 러시아나 독일 문학 등도 포함을 안 시키게 되고, 그러다보니 조정래의 태백산맥도영어로 읽어야 할 것 같고 뭐 그런 형편이다) 미국인들은 번역서는 잘 읽기 않기 때문에 도서관에 잘 가져다 놓지도 않고, 사려고 해도 구하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 이른바 ‘고전’은 저작권이 다 만료되어서 온라인에 무료로 배포되어 있기 때문에 한국어로 어려서 강제로 읽은 책들은 언제든지 다시 읽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 자꾸 미루어진다는 단점이 있기도 하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나의 프로젝트 자체가 ‘세상은 넓고 주어진 시간은 유한하고 좋은 책은 무한대’라는 인식에서 시작된 것이라는 것을 감안할 때, 구할 수 없는 책까지 애써 찾아 읽지 않아도 점점 줄어드는 읽고 갈 수 있는 책 목록을 훌륭한 책으로 채워내는 것은 무리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아무튼 올해는 절대적인 것은 몰라도 ‘다른 해보다는’ 짧게 쓰는데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고 생각하며 슬쩍 스크롤을 해보니 여전히 계획보다는 길어졌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는 것에 아무 근거없는 위안을 근거없이 느낀다고 근거없이 말 할 수 있겠다.
그리하여 다시 정리하자면,
2017년에 보고한 많이 아쉬웠던 32권에 이어, 올해 기간에는 영문책 59권과 한국어책 2권을 더한 61권을 읽었다. (사실 지금 읽던 책이 몇 장 안 남았는데, 마침 오늘 밤에 탈 비행기 가방도 꾸려야 하고 가는 동안 읽어야 하는 것들이 있어서 되는대로 하자고 느긋하게 마음 먹고 포함시키지 않기로 했다. 우리 모두 살아 있으면 내년 기록에서 보시겠지요)
한국 가기 직전에 짐 싸면서 들어서 그런지 작년의 기록에서 누락된 스티븐 킹의 오디오북을 포함한 오디오북 8권은 일단 목표량 감량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책은 지식(만)을 위해서 읽는 것이 아니지만, 뭔가를 하면서 들은 부분에서 ���도 모르게 뭔가 놓쳤을 부분이 있을까 찜찜하기도 하고, 책을 읽고나면 마음에 드는 부분을 적어놓기도 하고 다시 돌아가 읽기도 하는 데 오디오북은 아무래도 그게 안되기 때문에, 그리고 아직은 눈으로 ‘읽은’ 것만을 ‘읽은’ 책으로 포함 시키고 싶은 생각에서 오디오북은 아직 포함시키지 않기로 하고 있지만, 그밖에 다른 숨은, 그리고 드러난 심리적 이유가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얼마전 끝낸 재스퍼 포드의 Something Rotten [주 1] 의 주인공은 뭔가에 대한 처벌로 가장 지루한 책 10권을 끝내야 죽을 수 있는 벌을 받는다. 내가 70살까지 정한 목표량을 제 때 달성하기 위해 침침한 눈을 비벼가며 애를 쓰고 있다고는 하지만 어쩌면 나도 목표를 달성하면 삶을 정리해야 한다는 스스로 부여한 형을 살고 있는건 아닌지, 그래서 하루라도 그 날을 미루어 어떻게든 한 권이라도 더 읽어보려고 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 볼 수 있다는 말이다.
이러다가, 다 귀찮고 훌쩍 떠나고 싶으면 또 누가 아는가. 꼬불쳐놓았던 오디오북을 비장의 무기처럼 꺼내어 읽은 책 권 수에 포함시켜버리고는 훠이훠이 도포자락을 휘저으며 저승사자를 앞질러 갈지도.
[1] ( 국내 미번역:’뭔가 썩고 있어’ 정도. Written을 rotten으로 바꾼 말장난으로 보이지만 영어권은 영화나 책 제목을 이렇게 중의를 많이 쓰고 이것을 데이빗 포스터 월러스가 살아돌아와 각주를 달지 않고선 한국어로 살리기는 힘들기 때문에 누군가 번역한다면 제목을 무엇으로 할지 궁금하다 - 많은 사람들은 각주에 대해 거부반응이 있는데 사실 각주는 이해를 돕는 우리의 친구라 생각하면 상당히 편리한 동물이다. 익숙해지면 심지어 논문도 각주를 만날 때마다 설명 잘해주는 친구를 만난 것처럼 반가와질 때가 있다. )
그리하여, 작년 분기에 600권이 남았던 것에서 이제 539권이 남았나보다. 어서 목표량을 다 읽어치우고 날로 희미해지는 시력으로 더 이상 의미없을 패션잡지나 그림책이나 뒤적거리며 살고 싶은 생각과, 점점 숫자가 줄어갈 수록 남은 날은 유한하다는 각성이 공존하는 나의 기록을 공개한다.
*늘 그렇듯이 마음에 더 드는 책도 덜 드는 책도 있긴 하지만, 책 한 권을 완성한다는 것에 어떤 ‘일’이 관련되는 지 미흡하게나마 짐작할 수 있는 사람으로서 ‘일개 독자인 내가 감히’ 의 이유로 평점 같은 것은 생략이다.
1. Of love and other Demons - Gabriel Garcia Marquez
2. Things that fall from the sky - Kevin Brockmeier
3. And Then - Natsume Soseki
4.Transactions in a foreign currency - Deborah Eisenberg
5. Different Loves - Italo Calvino
6. The Autumn of the Patriarch - Gabriel Garcia Marquez
7. Numbers in the dark- and other stories - Italo Calvino
8. Regeneration - Pat Barker
9. The Cancer Ward -Aleksandr I. Solzhenitsyn
10.The Devils -Fyodor Dostoyevsky
11. Love Medicine -Louise Erdrich
12. Lab girl n/f -Hope Jahren
13. The Bell Jar - Sylvia Plath
14.The Setting Sun -Dazai Osamu
15. In my father's court - Isaac Bashevis Singer
16. Silence - Shusaku Ando
17. Anna - Susan Fromberg Schaeffer
18. Vadim -Mikhael Lermontov
19. Fear of flying -Erica Jong
20. Gwendy's Button Box - Stephen King and Richard Chizman
21. The Discovery of Heaven -Harry Mulisch
22. The lost language of cranes -David Leavitt
23. The Virgin Suicides - Jeffrey Eugenides
24. Dirk Gently's Holistic Detective Agency -Douglas Adams
25. The Festival of Insignificance -Milan Kundera
26. Laughing without an accent -Firoozeh Dumas
27. In other worlds -Margaret Atwood
28. Kinshu -Teru Miyamoto
29. A hero of our time -Mikhael Lermontov
30. Home and exile -Chinua Achebe
31. Two Headed Poem -Margaret Atwood
32. Nervous conditions -Tsitsi Dangarembga
33. Professor Martens' Departure - Jaan Kross
34. Mon -Natsume Soseki
35. The passion -Jeanette Winterson
36. Season of Migration to the North - Tayeb Salih
37. The gospel according to Jesus Christ -Jose Saramago
38. 1, 2, 3, infinity - George Gamow
39. The inheritance of loss -Kiran Desai
40. The river of consciousness n/f -Oliver Sacks
41. Blue Bamboo -Dazai Osamu
42. The Hitchhiker's Guide to the Galaxy -Douglas Adams
43. The Restaurants at the End of the Universe -Douglas Adams
44. Life, the Universe, and Everything -Douglas Adams
45. The words n/f -Jean-Paul Sartre
46. So long and thanks for all the fish -Douglas Adams
47. A Boy's Own Story -Edmund White
48. The Twilight Years -Sawako Ariyoshi
49. Surfacing -Margaret Atwood
50. Fear and loathing in Las Vegas -Hunter S. Thompson
51. The Long and Dark Tea Time of the Soul -Douglas Adams
52. What I Talk About When I Talk About Running n/f -Murakami Haruki
53. The Conservationist -Nadine Gordimer
54. Miniature Mysteries
-Selected by Isaac Asimov, Martin Harry Greenberg, Joseph D. Olander
55. Tuesdays with Morrie -Mitch Albom
56. A Tale of Love and Darkness n/f -Amos Oz
57. An Ice Cream War - William Boyd
58. Clear Light Of Day - Anita Desai
59. Something Rotten - Jasper Fford
1.나쓰메 소세키론 n/f - 하스미 시게히코
2.꽁치가 먹고 싶습니다. n/f - 오즈 야스지로
오디오북
1.This Close to Happiness -Daphne Merkin
2.Norwegian Wood -Murakami Haruki
3.Hunger -Roxan Gay
4.What I Talk About When I talk about Running -Murakami Haruki
5.Brief Interview with Hideous Men -David Foster Wallace
6.Homo Deus -Noah Yuval Harari
7.Sapiens -Yuval Noah Harari
8.11/22/1963 -Stephen K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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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cxulub 칙슬룹 By T. Coraghessan Boyle
칙슬룹
T.C. Boyle 티 씨 보일 지음 / 이은지 옮김
우리 딸이 밤늦게 찻길가를 걸어간다. --우리동네처럼 안전한 곳이라 해도 17살짜리에게는 정말이지 혼자 나가 돌아다니기는 너무 늦은 시간이다 -- 그리고 비가, 올해 첫 비가 내리고 있는 바람에 물과 석유가 만든 미세 기름층으로 길이 미끄러워져, 정신 똑비로 박힌 운전자, 그러니까 딱히 애플 마티니 두 잔에다가 히칭 포스트 브랜드의 피노 느와르 포도주를 마시고 차에 올라탄 운전자가 아니라 할지라도 길 옆 웅덩이나 풀숲, 인도나 고속도로 중앙안전지역을 피해서 운전하기는 도대체 힘든 날이란 말이다… 하지만 내가 하려는 이야기는 그게 아니다. 아니, 적어도 아직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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퉁구스카를 아시는지 모르겠다. 러시아에 있는 곳인데.
퉁구스카는, 거의 백 년 전에 지구 표면에 큰 물질이 최후로 날아와 부딪친 것으로 알려진 장소이다. 아니, 그건 정확한 말이 아니다. 지름이 대략 60야드 정도 되는 이 유성이 실제로 땅에 와 닿지는 않았으니까. 대기권으로의 진입, 그리고 그로 인한 공기의 압축과 과열이 지면에서 2만5천 피트 상공에서 폭발을 일으켰던 것이니까. 하지만, 이 폭발이란 말도 이 사건에는 영 적절한 말이 아니다. 이 폭발- 섬광, 천둥 같은 소리-이라는 게 히로시마에 떨어졌던 원자폭탄 8개에 해당하는 것이었으니까. 30마일 거리에 떨어져 있는 순록무리가 후폭풍에 맞아 죽었고, 또 다른 30마일 거리의 사냥꾼은 바닥에 내동댕이쳐지면서 동시에 옷이 화염에 휩싸였던 그런 것이었다. 700제곱마일의 시베리아 숲이 한순간 평지가 되었다. 만약 이 유성이 5시간만 늦게 떨어졌어도 상트페테르부르크 위에서 폭발을 해서, 그 영광스러운 바로크 도시의 모든 생명을 몰살시켰을 것이다.
하지만, 그 유성은 사실 그저 돌에 불과했고, 크기도 고작 지름 60마일이었을 뿐이었다.
요점이 뭐냐고?
우리 모두 지금 당장 무릎을 꿇고 각자가 믿는 신에게 기도를 하는게 좋을 것이라는 말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타고있는 이 돌아가는 구체 지구는 매년 2천만개의 소행성의 궤도와 만나고 그 중 적어도 천개는 직경이 적어도 반 마일은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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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일단 우리 딸 이야기로 돌아가자.
아이는 어둠과 빗속에서 집으로 걸어오고 있다. 모린과 내가 혼다 씨빅모델, 이른바 네바퀴로 달리는 것 중에서는 가장 안전하다는 차를 사주긴했지만, 그 차는 중고차였고 -- ‘기존 소유자가 있던 차’라고 매장 주인은 말했지만-- 공교롭게도 지금은 트랜스미션 문제로 수리 들어가 있는데도, 아이는 꼭 몰에서 친구를 만나가지고 남 흉보고, 낄낄거리면서 ‘미끈거리는 알록달록한 날 생선위에 생강절임 얹은 것을 젓가락위에 아슬아슬하게 얹는 짓’을 해야만 했기에 킴벌리차로 몰에 갔고, 킴벌리가 다시 집에 태워다 주기로 했었다. 우리 매디는 휴대전화가 있고, 이론적으로는 우리에게 전화를 할 수 있었지만 하지 않았고. --혹은 그랬던 걸로 추정된다-- 그래서 아이는 걸어오고 있다. 그리고, 브라이어 16길에 사는 백인이고 이혼녀에, 하이페리온 부동산의 거래인인 앨리스 피터맨은 바에서 샐러드를 끼직거리다가 안경을 두고 나왔고, 차의 통제력을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자정이 막 지났다. 나는 옷을 벗은 채로 책을 가지고 침대에 들어가 있지만, 엉켜있는 말들과 딱딱한 문단의 정렬에는 도저히 집중을 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욕실에서 모린이 내가 빅토리아 시크릿에서 생일선물로 사준 검정 네글리제를 입어보고 있고, 그리고 그녀가 만드는 모든 소리들 --약장문이 경첩에서 삐그덕거리는 소리, 수돗물 흐르는 소리, 그녀의 이에 칫솔이 내는 치카치카소리--로 나는 찌릿찌릿하기 때문이다. 나는 초를 켜두었고, 모린이 ���으로 들어오는 순간 불을 끄려고 기다리는 중이다. 일찌기 우리는 칵테일도 마셨고, 저녁과 함께 와인도 한 병 마셨고, 그리고 소파에 나란히 붙어 앉아 벽난로 앞에서 대마초도 한 대 나누어 폈는데, 이게 다 아이가 집에 없고, 그렇게 해도 아무 알 사람이 없기 때문이었던 거다. 나는 욕실에서 나는 작은 소리들, 미치도록 유혹적인, 소리들을 듣는다. 나는 모든 준비가 되어있다. 준비 정도가 아니다. “이봐”, 나는 목소리를 낮춰 부른다. “오는거야, 안 오는거야. 밤새도록 기다리게 할 셈은 아니겠지?”
그녀의 얼굴이 문간에 나타나고, 파리한 둥근 가슴과 검은 젖꼭지가 딱 달라붙는 검정실크를 통해 보인다. “어머, 기다리고 있었어?” 그녀는 장난스럽게 말한다. 그녀는 문간에서 조금 더 머무르지만 웃음이 입술을 스치고 지나가는게 보인다. 이 순간의 쾌락을 느끼고 있고, 그 시간을 좀 끌어주는 미소다. “왜냐하면, 나 내려가서 정원을 좀 돌보고 올까 했거든. 오래 안 걸릴 거야, 아마 한 두시간 정도? 알지? 거름도 좀 뿌리고, 장미나무 뿌리도 좀 더 덮어주고 말이지. 기다려 줄거지?”
그리고는, 전화가 울리는 것이다.
우리는 전화가 두번 울리는 동안 서로를 멍하니 바라본다. 그리고 모린이 말한다. “받는게 좋겠어.” 그리고 나는, “아냐 아냐. 놔 둬. 별거 아닐거야. 아무도 아닐거야.”
하지만 그녀는 이미 전화기 쪽으로 움직인다.
“내버려 두라니까!” 나는 소리치고 모린의 목소리가 돌아온다. --“매디면 어떻해?”- 그리고는, 나는 그녀가 수화기에 입을 가져다대고 “여보세요” 하고 소근거리는 것을 본다.
............................................................
퉁구스카의 폭발이 있던 날의 하늘은 전 유럽을 걸쳐 부자연스럽게 밝았다. 멀게는 런던까지도, 사람들은 자정에도 공원을 거닐고 야외에서 책을 읽었고, 그러는 동안 양들은 계속 풀을 뜯고 새들도 나무에서 어딘가 불편한듯 움직임이 잦아들지 않았던 것이다. 별이 보이는 것도 아니고 달도 없었는데 그저 마치 하늘에서 모든 색이 빠져나간 듯이 창백하고 떨리는 듯한 빛이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물론, 그 자정의 빛과 불행한 시베리아의 순록들의 운명은, 그보다 큰 물질이 지구의 대기를 통과했더라면 발생했을 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평균적으로 말해, 지름 100야드 정도되는 물체들이 지구를 강타하는 것은 5천년마다 발생하는 일이고, 지름 반 마일정도되는 소행성은 30만년마다 한 번씩 날아온다.
물론 누가 봐도 30만년은 매우 긴 시간이다. 하지만, --만약에-- 그런 충돌이 발생한다면, 폭발은 수십메가톤급에 달할 것이고, 대기를 완전히 먼지로 덮어버릴 것이고, 전 지구를 완전히 얼어붙게 만들어서 결과적으로 식물이 자라는 것을 일년, 혹은 그 이상 막을 것이다. 곡물도 없고, 뜯어 먹을 것도 없다. 태양도 없다.
............................................................
���고가 있었다. 전화선 너머 목소리가 아내에게 말하고 있었다. 구급인력이 핸드백에서 찾아낸 신분증에 의하면, 희생자는 로렐 드라이브 1337번지에 사는 매들레인 비엔이라고 말한다. (충격으로 인해 아이 팔 밑에 반 인치나 박혔다는 은색버클이 달린 그 핸드백이란 것은 일반적인 책보다도 크지 않은 조그만 것으로, 리본처럼 가느다란 끈이 있고 마치 교복의 일부라도 되듯이 모든 여자아이들이 다 들고다니는 그런것이다) 아이의 부모나 보호자냐고 묻는다.
나는 아내가 “제가 아이 엄마에요”라고 말하는 것을 듣는다. 그리고, 철렁 내려앉는 목소리의, “혹시 우리 아이가--?”
혹시 우리 아이가?.. 그런 질문에는 답하지 않는다고, 그런 정보는 미리 알려줄 수 없다고, 전화로는 안된다고 한다. 그 다음 10초는 청천벽력같고 자연재해같은 것이다. 내가 침대에서 굴러나와 바지를, 신발을, 신발 어디갔어? 차 키는? 지갑은? 찾는 동안 아내는 전화기를 길에서 주운 물건처럼 들고 멍하니 서있다. 진짜 공황상태인 것이다. 믿음과 조절능력의 상실이고, 심장을 치는 일이고 숨을 쉬기도 힘든 상태다. 나는, 그저 내 목소리를 듣기 위해서, 그저 상황을 확실하게 하기 위해서, 생각해낼 수 있는 단 한 마디 말을 한다. “아이가 사고를 당했다고 했지. 그렇다고 했지?”
“차에 치었다고. 애가... 자기들도 모른다고. 수술 중이라고.”
“어느 병원? 어느 병원이라고 가르쳐줬어?” 아내가 움직이기 시작하고, 나도 움직이고, 아내는 블라우스, 반바지, 슬리퍼, 아무거나, 아무것이나 벗은 몸을 가리고 집을 나갈 수 있는 거라면 무엇이나 낚아채면서, 동시에 우스꽝스럽게 걸맞지 않은 것이 되어버린 네글리제는 머리 위로 바닥에 함부로 벗어던진다. 부엌에서 개가 낑낑거리고 있다. 지붕에 빗소리가 점점 세지면서 홈통을 두들기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신발은 신경 쓰지도 않는다. --신발은 없다. 신발 같은 것은 세상에 아예 존재하지도 않는 물건이다-- 셔츠는 단추가 잘못 잠긴 채로 힘없이 어깨 위에 걸쳐져 축 늘어지고 바지 밖으로 빠져나와 있다. 이제 차에 올라탄다. 운전석의 와이퍼는 박자가 맞지 않고 어둠은 주먹처럼 우리를 움켜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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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제는 칙술룹을 살펴보자.
6억5천만 년 전, 소행성 하나가(혹은 혜성일지도 모른다고 하지만 아무도 확실하게 알지 못한다) 현재의 유카탄반도의 칙슬룹 인근지역과 충돌을 한다. 120마일의 구덩이 크기로 보아 그 물체 --거대한 불덩어리--의 크기는 지름 6마일 정도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게 떨어졌을 때는 낮이 밤으로 지속 되어, 대부분 종의 공룡과 90%의 바다 플랑크톤이 멸종을 해서 먹이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고, 결과적으로, 알려진 종의 적어도 75%가 멸종을 했다.
얼마나 빨리 날아왔느냐고? 가장 근접한 계산으로는 시속 5만4천 마일이었다고 하는데, 이것은 총알 속도의 60배에 달하는 것이다. 천체물리학자들은 그런 것을 ‘문명 끝장 판’이라고 부르고, 개인의 일생에 그런 수준의 재앙이 일어날 확률은 만분의 일로 계산하고 있는데, 이것은 사람이 향후 6개월 이내에 사고로 죽을 확률과 같다. -- 혹 더 실감 나는 예로는, 지금의 배우자와 100살까지 함께 살 확률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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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밖에 보이지 않는다. 차를 몰고 응급실행 외 제한도로로 뛰어들어 보도에 세게 가져다 대는 내 눈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하나 그 위에 또 하나, 어둠 속으로 솟아오르는 끝없는 불켜진 창의 행렬뿐이다. 차 양쪽 문이 동시에 열린다. 모린은 벌써 인도에 올라가, 차문을 쾅 닫으면서 동시에 겅중겅중 뛰기 시작하고 있고 나도 바로 뒤에 따라붙는다. 열쇠는 아직 차에 꽂혀있는 상태고 전조등은 비스듬히 세워져있는 앰뷸런스의 밑을 질러비추고 있다. --차는 가져가라지. 누구라도 차 완전히 가져도 돼, 우리 딸이 괜찮다고 말해 주기만 한다면.
“말만 해” 나는 숨찬 소리로 중얼거린다. “말만 해, 그냥 줄게.” 그리고 이건 기도문이다. 앞으로 오랫동안 간헐적으로 이어질, 내 기도를 들어줄 누구, 혹은 무슨 대상이든을 향한 기도의 시작이다. 머리위 하늘은 윗부분은 검고 밑부분은 수은색으로 경련을 일으키고 있고 비가 바람에 휘어져 내리고 있지만, 우리가 갑자기 --정말 한 순간에-- 젖어있는 것을 발견하지 않았더라면, 머리카락이 엉키고 들러붙고, 옷은 미끄러운 피부에 끈끈이처럼 붙어들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눈치채지도 못했을 것이다. 우리는 놀란듯이 확 물러서는 문을 통해서 나란히 들어간다. 그리고 나는, 병원은 죽음의 공장이고 우리는 좀비처럼 수척하고 누리끼리하고 신발도 없이 왔다는 생각밖에 할 수가 없다. “우리 딸이요,” 나는 접수를 받는 간호사에게 말한다. “우리 아이가 -- 전화가 왔는데, 전화하셨죠, 사고가 났다고.”
모린이 곁에 와 선다. 한 쪽 손가락들을 당기면서, 마치 보이지 않는 장갑을 벗기라도 하려는 듯이. “자동차. 자동차 사고요.”
“이름이 뭐죠?” 간호사가 묻는다. 그녀로 말하자면, 젊은 필리핀인이고 불투명한 눈에 시체같은 몸집을 하고 있다. 매일 죽음을 대하니 이런 일에 둔감하다. 우리가 보이지도 않는다. 컴퓨터 스크린을 본다. 그녀는 구석에 달려있는 티비 모니터를 보고, 거기에 비치는 그림자와 벽과 바닥과 형광등의 벌거벗은 빛을 본다. 하지만 우리는 보지 않는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다.
머릿속에서 귀가 울리는 소음이 일어나고 있는 일순간, 그리고 다시 다음 순간, 나는 우리 딸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다. 식탁에 펼쳐진 교과서더미에 기댄 아이의 모습이, 식탁 등 밑에서, “이게 다 청소년이 하루에 해야 할 일이랍니다. 청소년이 아닌 걸 다행으로 아세요.”라고 말하는 듯한, 우울하고도 반 유감스러운 미소로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는 아이의 머리카락이 뭉게구름으로 빛나는 모습이 바로 눈앞에 있는데도, 이름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매디.” 아내가 말한다. “매들레인 비엔이요”
나는, 간호사의 살집이 하나도 없는 손가락이 마우스를 움직이고, 눈이 눈앞의 컴퓨터 스크린위에 멈추는 것을 홀리기라도 한듯 바라본다. 클릭. 또 클릭. 곧 다시 피해 갈 눈을 들어 우리를 바라본다. “아직 수술중이네요.” 그녀는 말한다.
“어딘가요.” 나는 묻는다. “몇호실이에요? 어디로 가야되지요?” 그때 모린의 목소리가 자르고 들어온다. 초보적인 것을 말하는 서늘한 목소리다. 질문이 아니다. 선언도 아니고 요구도 아니다. 그것은 부탁이다. “어디가 잘못되었나요.” 또 클릭 한번. 이건 그냥 보여주기 위한 동작이고 눈은 스크린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사고가 나서.” 그녀는 말한다. “구급차가 데리고 들어왔어요. 저는 거기까지밖에 말씀드릴 수가 없네요.”
그제야 나는 거기 우리만 있는게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다른 사람들도 우왕좌왕하고 있다. 우리같이 서둘러 옷을 입었고, 베이지 카펫에 물을 떨어뜨려 검게 물들이고 있는 좀비 같은 사람들이다. 그리고 왜, 나는 생각한다, 왜 나는 이 간호사를 세상에서 내가 만난 그 누구보다도 미워하고 있는 것인가, 우리 딸보다 몇 살 더 안 먹어 보이고, 머리를 뒤로 당겨 묶고 간호사 모자를 위에 올린, 그저 자기 일을 하고 있을 뿐인 이 젊은 여자를. 왜 나는 우리를 가르고 있는 이 창구 너머로 손을 뻗어, 그녀에게 증오와 두려움과 고통의 맛을 일깨워주고 싶은 건가?. “테드.” 모린이 말한다. 나는 그녀가 내 팔꿈치를 잡는 손을 느끼고, 그리고 우리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서두르며, 두리번거리며, 거의 달리며, 거기를 벗어나, 그 자체가 죽음의 느낌을 주는 밝은 등 밑으로 난 복도를 지나, 그보다 더 안 좋은 곳으로 간다.
훨씬 더 안 좋은 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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칙술룹이 이렇게 내 마음을 괴롭히는 이유는, 공룡을 멸종시키고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이 찾아왔다는 사실 외에도, 우리가, 이 모든 우리의 일과 걱정과 애착같은 것들이 모두 무의미하다는 더 깊은 암시를 하고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죽으면 개개인은 끝이라는 것은 물론 모두 알고 있는 일이지만, 개체발생은 계통발생을 되풀이 한다고, 하나가 가더라도 인간의 삶과 문화는 이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신이라는 것은 없는 이 세상에서 개인으로서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칙술룹에서 일어난 일을 감안하면, 아니, 또 하나의 소행성이 굉음을 내며 떨어져내려와, 이 모든, 낱낱의 것을, 심지어 이 글을 읽고 있는 그 눈까지도 다 파괴할 수 있다는 것을 계산에 넣게되면, 우리에게 남는 것은 무엇인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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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이십니까?”
우리는 이제 다른 방, 병원 더 깊숙이 들어와 있다. 시끄러운 스피커는 끝없는 주문을 중얼거리고 있다. -- 닥터 찬드라소마는 응급실로 와주세요. 닥터 벨, 닥터 벨을 찾습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더 음울하고, 나이 들고, 입술 주변을 담배 주머니의 줄처럼 꽉 잡아당긴 듯한 주름이 나 있는 또 다른 간호사가 있다. 그녀는 우리, 나와 아내를 상대하고 있지만, 긍정의 말도 부정의 말도 할 것이 없다. 내가 마디를 내 딸이라고 말하면 --여기서 나는 다시 계산적으로 되고 있다-- 뭔가 입방정이 될 것만 같다. 왜냐하면, 그러면, 실제로 있을지도 없을지도 모르는 힘을 가진 어떤 존재들이, 무한하거나 작고 작은 이 신들이 내가 아이를 얼마나 끔찍이 사랑하는지 알아버릴 게 분명하고, 그러면 내가 자기들을 믿는 걸 거부했다는 것을 응징하기 위해서 아이를 데려가 버릴 것 같다. 나무아미타불, 수리수리마수리, 성 산데리아, 용서해주십시오. 아버지, 제가 죄를 지었습니다. 모린의 목소리가 들린다. 굳게 잠긴 금고 안으로부터 솟아 나온, 신을 부르는 속삭여진 한 글자의 단어, 그리고는, “별일 없겠지요?”라고 말하는 목소리.
“그건 제가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간호사가 답한다. 그 목소리는 중립적이고 거의 로보트같은 음성이다. 자기 딸이 아닌것이다. 그녀의 딸은 집에 잘 있다. 곰돌이 인형하고 푹신한 배게를 배고 분홍색 이불에 누워, 모든걸 지켜보는 지킴이처럼 야간등이 빛나는 가운데서 자고 있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 이 중립성이 문제다. 그 사람 미치게 하는 객관적인 중립성. 도대체 무엇이고 책임을 질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말인가?
“그럼 말 할 수 있는건 뭐요?” 나는 묻는다. 아마 너무 큰소리로 말하고 있을지 모른다. 아마 그럴 것이다. “이런 젠장, 여기서 무슨일이 일어나는지 아는게 당신 직업 아니요? 한밤 중에 전화를 해서는, 우리 딸이 다쳤다, 사고가 났다, 그래놓고는 시발 아무것도 말할 수가 없다는거야?”
사람들이 고개를 돌려 우리를 뚫어져라 바라본다. 그들은 오렌지색 플라스틱 의자에 늘어져 앉아있거나, 바닥에 누워있거나, 기도를 하거나, 조용히 입술을 움직이며 걷고 있다. 그들도 정보를 원한다. 우리 모두는 새로운 소식을 원한다. 좋은 소식 말이다. 실수였어요, 조금 베고, 멍이들었을 뿐이에요. --타박상, 그렇지, 뭐 그런 말-- 그리고 따님, 아드님, 남편분, 할머니, 사돈의 팔촌께서는 금방 저기 보이는 문으로 걸어 나올 거에요.
간호사는 나에게 시선을 쏘아붙이고는 책상 뒤에서 나온다. 작고 땅딸한여자다. --거의 난장이같다-- 그리고는 어떤 문을 향해 척척 걸어가더니 그 문을 열고, 그 문 뒤의 더 깊은 곳으로 열리는 다른 문을 연다. “저를 따라 오시죠.” 그녀는 말한다.
문득 쑥쓰러운 듯 나는 머리를 숙이고 모린의 뒤로 두 발자욱 떨어져 따라간다. 그 방은 조금 더 작다. 체중계와 벽의 도표들이 있고, 위생지로 검사대를 덮어 놓은 검사실이다. “여기서 기다리세요.” 간호사가 몸무게를 한 쪽에 실어 벌써부터 도망갈 준비를 하면서 말한다. “의사 선생님이 곧 오실겁니다.” “무슨 의사요” 나는 알아야겠다. “뭐 때문에, 왜요?”
하지만 문을 이미 닫혔다. 나는 모린을 향해 돌아선다. 아내는, 뭔가를 만지거나 앉거나 심지어 움직이면 주문이 깨질 것을 두려워하기라도 하듯이 방 한가운데에 서 있다. 그녀는 시선을 바닥에 고정하고 발자국소리에 귀를 귀울이고 있다. 나는 내 자신이 그녀의 이름을 중얼거리는 소리를 듣고, 그리고 어느새 그녀는 내 품안에서 흐느끼고 있고, 나는 그렇게 그녀를 안고 있어야한다는 것을, 우리 둘 다에게는, 이 사람의 손길이, 사랑과 지지가 필요하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내게는 그녀가 단지 짐같이 여겨질 뿐이다. 이 기분은 어떤 것도, 그 누구도 나아지게 할 수 없단 말이다. 그걸 모르겠단 말인가? 나는 위로하고 싶지도 위로받고 싶지도 않다. 만지는 것도 싫다. 나는 그냥 우리 딸을 되찾고 싶을 뿐이다.
모린의 목소리는 목구멍 깊은 곳에서 나와 거의 무슨말인지 알 수가 없다. 일순간 후, 그녀가 일그러지고 붉어진 얼굴로 나에게 몸을 떼어내면 서에야 무슨 말인지 알겠다. 그리고 이것이 그녀의 기도문이다. 크게 속삭이는 소리, “괜찮겠지? 그지?”
“그럼.” 나는 말한다. “그럼 그렇고 말고. 괜찮을거야. 멍 좀 들고, 그거야 할 수 없지만, 심지어 뼈가 몇 개 부러졌을 수도 있지만…” 그리고 나는 말을 흐린다. 그 장면을 그려보는 중이다. 목발에, 기브스에, 일회용 반창고, 붕대 : 우리 딸이 빛나는 후광으로 둘러싸여 우리에게 돌아오는 모습을 그린다.
“팔이 부러졌을지도 몰라. --팔이 부러졌을 수도 있어. 그거야 뭐-- 아니면 다리, 심지어 다리가 부러졌을 수도 있어. 하지만 그럼 왜 수술을 하는거야. 왜 이렇게 수술을 오래하는거야? 왜? 왜 그런거지?”
나는 그에 대한 답이 없다. 그에 대한 답을 알고 싶지가 않다.
“자동차잖아” 모린이 말한다. “차라구. 테드, 자동차가 애를 친거야.”
우리가 있는 방은 전체 건물의 전기가 딸려서 틱틱, 붕붕 소리를 내는 것만 같고, 나는 벽 안에 연결되어있는 전깃줄 뭉치와, 엑스레이실, 심전도기, 뇌파기기, 생명유지 기기 들에 전기를 공급하는 케이블, 무수한 파이프들과 그 것들이 나르는 액체들을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자동차. 쇠, 크롬, 유리, 철로 이루어진 3천 파운드. “어쩔라고 그렇게 걸어온거야? 그럼 안되는 거 알텐데.”
아내는 고개를 끄덕인다. 젖은 머리 가닥들이 속죄자의 채찍처럼 어깨를 두드린다. “킴벌리하고 싸웠을거야. --그걸거야. 틀림없어.”
“이 새끼는 어디있는거야.” 나는 으르렁거린다. “의사말이야. 어디간거야.”
우리는 그 방에, 연옥의 방에 족히 한 시간, 혹은 그보다 더 머물러 있다. 두 번이나 나는 고개를 내밀고 간호사에게 사나운 눈길을 보내지만 아무 새 소식도 없고 의사도,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는다. 그리고, 두시 십오분쯤, 안쪽 문이 열리고, 의사가 나타난다. 의사라기엔 너무 ���은, 매끄러운 무표정의 얼굴에, 곱슬머리가 이마의 반을 가린 애송이다. 그리고 그는 한마디도 할 필요가 없다. 단 한 마디도 말이다. 왜냐하면 나는 그가 무슨 소식을 가지고 왔는지 볼 수가 있고, 내 심장은 충격으로 멎어 버린다. 그는 모린을 보고, 나를 보고, 그리고 눈을 떨군다. “죄송합니다.” 그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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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행성이 다시 날아오게 되면, 대기를 뚫고 한 순간만에 지구를 칠 것이다. 그리고 충격으로 공중분해되면서, 절대온도 6만도, 혹은 태양 표면온도의 열배가 되는 온도에 달하는 불덩어리가 만들어질 것이다. 칙술룹 크기의 소행성이라면, 폭발의 복사열이 지구의 도시와 숲을 불태우는 동시에 20만 평방 킬로미터가량의 지구의 표면이 공중으로 날아갈 것이고, 그리고 나면 전대후문의 지진과 화산폭발이 일어나고 암흑의 겨울이 찾아올 것이다. 대신 만약에 ���술룹처럼 이게 바다에 떨어지면, 엄청난 온도로 뜨거워진 바닷물이 대기로 뿜어져 올라가 해를 가리고, 지진과 지속되는 겨울로 이어지는 건 마찬가지겠지만, 3마일 높이의 퍼져나가는 물살은 대륙들을 설겆이통의 접시들처럼 흔들어댈 것이다.
그러니 뭐가 문제냐고? 아니 도대체 뭐가 문제기는 한가? 우리는 힘이 없는 존재인 것이다. 우리는 버려진 존재인 것이다. 그리고 신들은, 역사상 존재한 모든 신들을 통틀어 신이라는 것들은 그저 그렇고 그런 소문에 불과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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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병상은 이동병상이 들어찬 방의 중심이다. 마치 전쟁이라도 일어났었던 듯, 미로같은 침대보에서 빙하 평원에 연달아 한번씩 나타나는 높은 지역처럼 코만 비어져 나온 사람들이 눞혀져 있다. 이들은 아직은 살아있는 자들이다. 정맥주사액이 들어가고 있고, 기계들이 생체신호들을 모니터하고 있고, 간호사들이 악귀들처럼 주변을 맴돌고 있지만. 하지만 그들은 모두 죽을 것이다. 모두 다. 그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 한 병상, 뒷벽에 기대어져 있고, 침대보가 불가능하게 생각될 정도로 작고 줄어든 몸을 덮고 있는 그 병상만이 지금 중요한 것이다. 의사는 방을 가로질러 우리를 데리고 가며, 낮은 목소리로 내장손상, 파열 된 비장, 외상, 뇌간 등을 말하고 있고, 나는 내 발도 거의 건사하기 힘들다.
이 침대보 들기가 얼마나 힘든지 말해줄까? 얇은 무명천이지만, 납이나 철이나 이리듐같은 것, 우주의 모든 암흑물질을 모아 만든 것이나 다름이 없을 정도다. 의사는 손을 앞으로 모으고 한 발자국 물러선다. 방이든 병동이든 뭐라 부르는 곳이든 간에 공간 전체가 숨을 멈춘다. 모린은 우리의 어깨가 닿을 정도로, 그녀의 살과 체온을 내가 느낄 정도로 내 곁에 바짝 붙어서고, 나는 우리가 같이 만든 이 아이를, 침대보 밑에 있는 이 낯선 것을 생각하고, 내 팔 끝의 손이, 거기 있는 손가락들이, 거기 물건을 잡게 되어있는 부분이 침대보를 움켜잡는다. 침대보는 밀리미터씩 제쳐진다. 죽음의 느릿느릿한 스트립쇼다. -- 할 수가 없다. 난 못하겠�� -- 참다못해 모린이 뛰어들어 거친 한 동작으로 제쳐버린다.
--부풀어 오르고 변색된 살, 정수리의 메말라 떡진 피와 걸레같은 머리카락, 우리가 알고 기대하고 사랑한 모든 것의 역겨운 모독에 대한 충격-- 을 느끼기도 잠시, 기쁨의 물결이 몰아친다. 매디는 아내처럼 빨강머리다. 그리고 열일곱이라고 해도 몸에 비해 지나치게 큰 손과 발을 가진 어린이처럼 가늘고 마른 아이다. 그리고 우리 아이는 절대로 그 매끄럽고 사랑스러운 아랫입술 밑에 피어싱을 하지 않았다. 나는 말문이 막힌다. 나는 아직도 막 발견한 이 새로운 약물과도 같은 행복감에 취해서는 방 위로, 병원 위, 지구 위로 솟구쳐 오른다. 모린이 내 대신 말한다. “얘는 우리 딸이 아니에요.”
우리 딸은 병원에 없다. 우리 딸은 자기 방에서, 벼룩시장에 내놓기라도 한 듯 물건들이 바닥에 흩어져있는 채로, 벽에 붙은 포스터속의 브리트니와 브래드와 저스틴의 자애로운 시선밑에서 자고 있다. 아이는 계획했던대로 실제로 몰에 있는 하나 스시집에 갔었고, 킴벌리는 약속대로 아이를 집에 태워다주었다.
우리 딸이 우리도, 다른 누구도 모르게 규칙을 조금 위반하긴 했는데, 그건 세상에서 가장 작은, 정말 별거 아닌, 틴에이져들이 별 생각없이 저지르는 그런 위반이었다. 아이의 두번째로 친한 친구 크리스티 처윈이 씨네플렉스 극장에서 하는 브레드 핏 나오는 미성년자 관람불가 영화를 너무나 --안 보면 죽을것같이-- 보고 싶어했기 때문에 아이는 자기 신분증을 빌려줬던 것이다. 아이는 우리가 병원에 갔던 것을 모른다. 앨리스 피터맨도, 그녀가 마신 피노 느와르 와인과 그녀가 바에 놓아두고 나온 안경도, 심지어 이제는 처윈의 집에서 그 소식을 알리는 전화가 울리고 있다는 사실도 모른다.
나는 술을 한 잔들고 소파에 앉아 벽난로의 재를 바라보고 있다. 모린은 부엌에서 코코아를 머그잔에 담아들고 하루의 첫 빛줄기가 나무등걸을 그리기 시작하는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
처윈네를 떠올려 보려고 한다. 에드와 루신다가 집에 몇 번 온 적이 있다. 그래도 영 생각이 안나고 있다가, 과거의 한 역광의 장면이 저절로 떠오른다. 그들의 집에서다. 정원에서 음식을 만들어 먹었는데, 어른들은 그릴 주변에서 진토닉을 들고 모여있고, 라디오에서는 잊혀진 노래가 나오고 있고, 아이들은, 우리들의 딸들은 자전거를 타고, 돌고, 피하고, 앞바퀴를 들어올리며, 머리카락이 펼쳐지고 햇살이 나무사이로 부서져 내리는 보도블럭을 타고 오르내리며 놀고 있다.
동전을 열번 던지면 다 앞면이 나오기도 하고, 앞면이 한번도 안 나오기도 한다.
지금도 바위가 하나 날아오고 있다. 새로운 칙슬룹의 행성이, 암흑과 차가운 우주를 뚫고 떨어져내린다.
하지만 오늘밤은 아니다. 나에게는 아니다. 하지만 처윈네는 칙슬룹이 이미 일어난 일인 것이다.
https://www.newyorker.com/magazine/2004/03/01/chicxulub
T. Coraghessan Boyle은 뉴요커나 하퍼스 매거진 등 유수잡지에 장편보다는 단편을 많이 발표하고 있어서 그런지 한국에는 잘 안 알려진 것으로 보이지만, 1987년 World's End로 펜/포크너 문학상등 다수의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다. 인간의 문명을 재조명하는 어둡고도 위트있는 작품을 많이 쓴다.
https://www.wnyc.org/story/lionel-shriver-reads-t-c-boyle/
뉴요커 팟캐스트에서 위의 작품을 직접 골라 읽은 Lionel Shriver 라이오넬 쉬라이버는, 청소년 학교 테러를 다룬 We Need to Talk About Kevin 영화 ‘케빈에 대하여’ 의 원작가이다. 날카로운 심리와 상황전개의 필치가 뛰어난 내가 좋아하는 작가다. 그녀의 작품도 가슴이 두근두근 할 정도로 임팩트가 강하지만 이 단편 참 잘 읽었으니까 혹시 영어를 듣는데 자신이 없다싶은 분들도 먼저 번역판을 읽으신 후에라도 꼭 들어보셨으면 좋겠다.
뉴스에서 팟캐, 다시 간혹 난픽션은 몰라도 책 한권을 영어로 집중해서 들을 수 있을까 생각하는 분들이 있을지 모르는데, 빈 응원은 관두고 한 마디로 말하자면, 재미있으면 저절로 집중도 되고 더 잘 들린다, 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그래서 내가 열심히 괜찮은 팟캐를 추천하는 것이다. 영어는 언어고 언어는 쓰려고 배우는 것이다. 이왕 배우실 것이라면, 몇마디 회화로 어디 놀러가면 인삿말이나 하리라 생각하지 마시고 자꾸 ‘어디다 쓸 궁리’를 하시면 좋다. 물론 배우기 싫으면 안 배워도 된다. 무쪼록 모두 즐겁게 살면 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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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행성에서 발견된 타임캡슐 -마가렛 애트우드
Timecapsule Found In the Dead Planet - Margaret Atwood
죽은 행성에서 발견된 타임캡슐
마가렛 애트우드 지음 / 이은지 옮김
1.
첫 시기에 우리는 신들을 만들어내었습니다. 나무를 깎아 만들었지요. 그 당시에는 아직 나무같은게 있었던 때였습니다. 광채가 나는 금속으로 신을 만들고 신당의 벽에다 신을 그려넣었지요. 신은 여러가지였고, 여신들도 있었지요. 때로 신들은 잔인했고 우리 피를 마셨지만, 비를 내려주고, 햇살과 이로운 바람과 풍요로운 수확, 그리고 새끼를 많이 나는 동물들과 많은 자손을 주기도 했습니다. 수많은 새가 머리 위를 날았고, 수많은 물고기가 바다를 헤엄쳤던 시기입니다.
우리의 신들은 머리에 뿔이 달려 있거나, 달이 달려 있기도 하고, 바다표범의 지느러미같은 것이나 독수리의 부리가 달려있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전지의 존재라 부르고, 빛나는 분이라고도 불렀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고아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지요. 우리는 땅의 냄새를 맡고 그 위를 뒹굴었습니다. 땅에서 난 즙이 턱을 타고 흘러내렸답니다.
2.
두번째 시기에 우리는 돈을 만들어내었습니다. 돈도 광채가 나는 금속으로 만들어져 있었지요. 돈에는 두 면이 있었는데 한 면에는 왕이나 다른 뭔가 주목할 만한 사람의 잘린 머리가 있었고, 다른 면에는 다른 것들, 우리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뭔가를 넣었죠. 새나 털 달린 동물 같은거였죠. 그게 우리가 신이라 부르던 것들로부터 남은 전부였습니다. 돈의 크기는 작았고 우리 각자는 이걸 최대한 피부에 가까운 곳에 매일 조금씩 가지고 다녔지요. 돈은 먹거나 입을 수도 없고, 때서 몸을 덮힐 수는 없었지만, 마치 요술처럼 그런 것들로 바꿀 수는 있었습니다. 돈은 신비한 것이었고 우리는 그것에 경외감을 가지고 있었어요. 돈만 충분히 있으면 하늘을 날 수 있을거라고들도 했지요.
3.
세번째 시기에는 돈이 신이 되었습니다. 돈이 전권을 쥐고 있었고 우리 손을 벗어났지요. 돈이 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스스로를 창조하기 시작했어요. 돈이 축제와 굶주림을 만들었고, 기쁨의 노래나 한탄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돈은 탐욕과 굶주림을 만들었고 그게 바로 돈의 두 얼굴이었지요. 유리의 탑이 돈의 이름으로 올라갔고, 파괴되고 다시 지어졌습니다. 돈은 세상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숲들을 먹어치우기도 하고, 토지와 어린이들의 삶을 먹었습니다. 군대와 도시를 먹었습니다. 아무도 막을 수 없었어요. 돈을 가진다는 것은 축복이었으니까요.
4.
네번째 시기에 우리는 사막을 만들었습니다. 사막에는 여러가지가 있었는데요, 모두 한가지 공통점이 있었고 그것은, 그곳에서는 아무것도 자라지 않는다는 것이었어요. 시멘트로 만들어진 사막이 있었고, 여러가지 독성물질로 생겨난 사막도, 햇볕에 단단히 말라버린 사막도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 사막들을, 돈을 더 가지고 싶은 욕망과, 더 가질 수 없음으로 인한 좌절감으로 만들어내었습니다. 전쟁과 질병과 기근이 찾아왔지만 우리가 산업으로 사막을 만드는 것을 멈추게 하지는 않았습니다. 결국 모든 우물은 중독되고, 강물은 오염으로 흐르고, 모든 바다는 죽었습니다. 먹거리를 자라게 할 땅이 남지 않았지요.
현명하다는 사람들 몇몇은 사막을 명상거리로 만들었습니다. 해질녘의 모래에 놓인 돌이 아름답다고 말했지요. 사막은 잡초가 자라지 않고, 해충이 기어다니지 않으니 깨끗하다고도 했지요. 사막에 충분히 오래 머무르면 절대적인 것을 이해할 수 있다고들 말했습니다. 숫자 0은 거룩한 것이라고 말이지요.
5.
머나 먼 세상에서, 이 메마른 강가 이 돌무더기에, 그리고 우리의 기록이 끝나는 날에 내가 마지막 말을 남기는 이 놋쇠원통까지 찾아오신 여러분,
우리를 위해 기도해주십시오. 한 때는 우리도 우리가 날 수 있다고 생각했었답니다.
(마가랫 애��우드의 산문집 “또 다른 세상에서” In Other Worlds 에 실린 단편)
‘하녀 이야기’나 ‘앨리아스 그레이스’를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판타지이면서도 역시나 그녀의, 잔인할만큼 직설적이고 날카로운 화법의 진수를 보여주는 글로 따로 설명은 필요없을 것 같다.
단지 책 제목을 잠깐 사족으로 설명하자면, In Other Words는 ‘즉, 다시 말하자면’,이라는 관용구인데, 이것을 제목에서 words를 worlds로 바꿈으로써, in other worlds, ‘또 다른 세계에서’ 라는, 사이언스 픽션을 다루는 책의 제목이 되었다.
산문과 짧은 몇 개의 이야기로 구성 된 이 책에서 애트우드는, 그녀의 작품이 다 SF는 아니지만 SF물을 다수 쓴 작가로써 자신이 SF를 왜 썼는가,라는 질문의 답에서 더 나아가, 사람들은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 대한 SF물을 왜 쓰는가, 거기서 더 나아가 자신을 포함한 사람들이 왜 글을 쓰는가까지 광범위한 주제를 다룬다. 번역출판이 되면 좋겠지만 물론 기회가 닿으면 원문으로도 읽어들 보셨으면 좋겠다.
추신(?) : 요즘에 이유없다고 여겨지지만 세상일이 다 그러하듯이 그럴리는 없이 갑자기 애트우드에 ‘꽂혀서’ 시집 Two Headed Poem도 읽었는데, 사실 애트우드의 메타포가 삼키기 쉬운 것들은 아니지만 상당히 와 닿는 것으로 마음에 들어서 라스베가스 여행길에도 가지고 다니면서 여러 번 읽었다. 라고 쓰고 나니 역시 왜 이런 말을 여기다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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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치로 스즈끼, 나의 봄
알래스카에 이사와서 처음 몇 년간의 봄은 이치로와 함께 찾아왔다.
해가 확연히 길어진 3월 말 쯤, 추운 곳이라 방열이 잘 되도록 지어진 아파트 안의 온도는 이미 반팔을 입을 정도로 올라가 있곤 했고, 아직 고등학생이던 지야는 중간고사가 막 끝났기 마련이었다.
서리를 방지하기 위한 아파트 규정은 4월이 되어서야 창문을 열 수 있지만, 밴드 연습이 끝나는 4시 쯤, 간혹 오븐에 굽고 있는 치킨윙이나, 끓고 있는 부대찌게에서 나온 훈기가 답답해지기 시작하면 겨우내 굳게 닫힌 창문을 더러 힘겹게 돌려 열고 서늘한 바람을 들이며 티비를 켜면 야구가 시작하곤 했다.
소��스럽게 응원하는 소리가 끊이지 않는 축구장과 달리 야구장은 약간 들뜬 듯한 술렁임이 번지는 느낌이다.
이치로는 시애틀 마리너즈의 1번타자였다.
그가 타석에 올라오면 우선 방망이 쥔 손을 조준이라도 하듯 투수를 향해 앞으로 뻗은 다음, 꼭 같은 부분의 소매를 살짝 추키고 어깨를 돌리고 자세로 들어갔다. 투수의 와운드 업보다도 더 시계동작처럼 철저하고 규칙적인 그의 그 동작은 언제나 뇌의 어딘가를 간질간질하게 간지르는 긴장감을 주는 것이었다.
당시 이치로는 연 200타의 기록을 유지하고 있었다. 시애틀 구장에는 늘 그날의 안타를 더해 그해의 기록을 보이는 배너를 내 건 사람이 있었고, 이따금 선착순 선물로 이치로 피귀어린을 나누어 주기도 했다. 연 200타라는 것이 어느 정도의 기록이고 타율이 삼할 몇푼이고 그런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나는 모르겠다. 단지, 미국에는, 사람이 태어나서 피해갈 수 없는 것이 두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죽음과 세금이라는 말이있는데, 당시 야구계에는 죽음, 세금, 그리고 이치로라는 우스개 말이 있었다. 이치로는 일단 타석에 섰다 하면 그냥 들어오는 법은 없었다는 것 밖에 모른다. 그게 안타가 되었든, 플라이볼이 되었든, 아웃이었든, 간간히 홈런도 있었지만 주로 이루타정도로 그저 공이 오면 이치로는 치고 나갔다는 말이다. 그의 최고 기록은 262개 타율은 3.72이다. 홈런은 연 15개다.
도루 실력도 좋았다. 도루를 잘 한다는 것은 참으로 미묘한 찬사다. 그가 도루를 잘 한다는 사실을 다 알고 있는데도 투수는 몇 번 견제구를 던져 볼 뿐 일단 도루하고자 하는 사람이 마음을 먹으면 도루를 해 버린다는 말이다. 이치로가 삼시세끼처럼 타순이 돌아올 때마다 딱콩딱콩 단타를 치고 나가는 중간중간 예상치 않았던 간식처럼 도루를 해 치우면 나는 묘한 죄책감같은 감정이 들고 했는데 이름 자체가 도둑질이기도 하지만 뭐랄까, 평상시에는 지는 것도 싫지만 이기는 마음도 찜찜해서 스포츠를 즐기기 않는 정도의 내가 그걸 즐기는 마음이 사탕가게에 혼자 남겨진 아이의 유혹같았다고나 할까.
이치로는 또한 본래 투수 출신이라서, 일본에서는 연달아 공을 던져 병들을 맞추는 광고를 찍은 적도 있고, 외야석에서 먼길이를 정확하게 송구하는 모습도 더러 볼 수 있었다.
불행히도 시애틀 마리너즈는 그닥 뛰어난 팀이 아니었다. 순위도 그랬고 감독도 별로였다. 좀 더 좋은 팀에 가서 더 빛나면 좋지 않을까 하는 욕심도 있었을텐데 이치로는 마리너즈에 10년째 머무르고 있었고, 팬 베이스도 탄탄했고, 마케팅 측면에서는 일본인들 관중도 보장되어있었다. 하지만 이미 이치로는 나이가 들면서 당연히도 이미 노쇠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3년이 흘러 2012년, 이치로가 뉴욕 양키스로 트레이드 인 되어 간다는 소식이 들렸다. 아마도 은��� 전 좋은 팀에서 한 번 뛰어보려는 것인가 싶어서 기꺼운 마음으로 보내주었다. 내가 보내지 않는다고 안가는 것도 못 간다 말리는 진달래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는 것도 아니었지만 말이다.
여기서는 웨스트 코스트 경기를 주로 보여주기 때문에 그로부터 이스트 코스트에서 하는 양키스 경기는 스포츠 뉴스 하이라이트를 통해서나 접할 수 있었다. 아이가 좋아하는 새로 들어온 마리너즈의 괜찮은 투수 애클리도 있었지만 그로부터 나는 경기가 시들해지기 시작했다. 글쎄, 이치로 없는 마리너즈와 야구경기는 그냥 김 빠진 맥주같았다.
이치로가 양키즈로 가던 해에 대학을 간 아이는 이제 졸업을 해서 박사과정 학생이 되었고, 그러는 사이에 이치로는 계속 쇠퇴해갔고, 얼마 안 있어 마이애미 멀린즈로 다시 트레이드인 되어가더니, 최근에는 급기야 팀에서 방출되었다는 소식이 들렸다. 사실 양키즈 갈 때부터 은퇴를 하지 않으려나 하는 생각이 있었는데 어느덧 그는 45세가 되었다. 하지만 일본에서 뛰는 한이 있더라도 아직 은퇴할 생각이 없는 것으로 알고있다.
작년 크리스마스 브레이크에 지야에게 들러보니, 아이가 집을 떠난지도 벌써 6년차다보니 혼자서도 잘 먹고 살고 있었고, 나는 요즘에는 먹고 사는 것이 단출하다보니 아침에 세끼를 다 준비해 놓고 간단한 조리로 끝내도록 해 놓고는 나머지 시간은 그동안 하고 싶었던 일들을 실컷 열심히 하는 삶을 살다보니 티비는 거의 보지 않게되었다.
그리고, 위에 얼핏 언급했지만 나는 근본적으로는 스포츠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다. 스포츠 아니더라도 뭐든 누가 한 칼에 눈에 보이게 이기고 지는 것은 좋아하지 않는다. 뭐든 응원은 지는 팀을 골라서 한다. 그것은 내가 지는 사람이라서 그런지도 모르고, 그저 실망하기 싫은 이기심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본래 안 보는 스포츠를 이치로가 가고 나서는 더더구나 안 보게 되고보니, 그저 가끔 봄이 오고 창을 열고 싶다는 생각을 하다보면 멈칫하게 된다.
이치로는 나에게 뭐였을까.
한국에서 30년, 그리고 미국에서 10년을 자신없고 불안한 미래를 두려워 하면서 살다가 알래스카로 자리잡아 오면서 뭔가 안도감같은 것이 싹트기 시작한 것이 아닐까. 타석에 올라올때마다 어김없이 곧 달리기 시작하는 날렵한 이치로를 보면서, 어쩌면 나는 뭔가 변하지 않는 것에 대한 희망이 스물스물 자라기 시작한 것이 아닐까.
뭐가 지속되는 것에 대한 환상이, 꿈을 꾸면서 그게 꿈인 줄 아는 꿈처럼, 환상인 줄 알면서도 그저 놓기 싫어서 품고 있는 환상처럼, 그냥 그렇게 이치로의 하얀 공처럼 떠 오르게 나는 나를 놓아두었던 것 같다.
2016에는 제법 오랜동안 한국에 가 있을 기회가 있었다. 부모님도 연로하시고 해서 다른 나라가 아닌 한국에 가기로 결정을 하기까지 고민도 많이 했던터라, 가기 전에 계획도 많았고, 꿈도 많았다. 그리고 많은 것을 이루었고, 많은 사람을 만났고 많은 곳에 가 보았다. 모두 감사하고 넘치는 일이었다.
하지만 가기 전부터 나는 알고 있었다. 곧 정신을 차리고 나면 그 모든 미래의 계획들은 이미 과거가 될 것이라는 것을. 그래서 순간��� 늘 더 담아두고 더 많이 간직하려고 미래를, 현재를 이미 과거로 보는 법을 익혔다.
이치로가 시애틀을 떠날 때 나는 이미 그걸 어렴풋이 알아채기 시작한 것 같다.
이치로가 한일야구경기에 출전했던 일본인이라는 민감한 이슈를 넘어(반한인지도 모른다), 그는 나 같은 수 많은 팬의 존재는 알고 있겠지만 그 사실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는 알 길이 없고, 알고 싶지도 않다(아주 오만한 사람인지도 모른다). 그가 결혼했지만 아이는 없고 커다란 개를 키우며 살고 있는 것 밖에 팬이라고 해도 사생활도 달리 아는 바 없다.
그래서, 이제 이치로가 시애틀 마리너스로 돌아온 것을 기뻐하면서도, 그와 함께 봄을 다시 맞이 할 수 있게 된것을 반갑게 생각하면서도, 선전해주기를 바라네, 뭐 그런 덕담으로 이 이야기를 끝내고 싶지는 않다. 커리어 수명이 짧은 운동선수는 건강해보이는 모습에 비해서는 이런저런 장기적인 후유증도 겪게되고 그것을 염두에 두고 활동할 것을 안다.
그저 플레이 하는 동안에는 그대로, 그저 그 타석에서, 광채라기보다는 아주 희귀한 미네랄처럼 강렬한 존재감으로 빛나는 그를 나는 영원히 기억할 것이며, 모든 애틋한 것은 고개를 돌려야만 보인다는 것을 기억하기로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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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션 - 앨리스 먼로
픽션 - 앨리스 먼로 지음/이은지 옮김
I
러프 리버 학교에서 음악을 가르친 날 집에 차를 몰고 가는 것은 그녀가 겨울 중 가장 좋아하는 일이었다. 이미 어둑해져 있곤 했고, 해안 가의 고속도로에서는 빗줄기가 차를 때리고 있었는가 하면 윗 동네는 눈이 오고 있을 수도 있었다. 조이스는 마을 경계를 넘어 숲으로 차를 달렸다. 이 숲은 더글라스 소나무와 향나무들이 자라고 있는 진짜 숲이었지만 1/4마일 쯤 안까지는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장에 내다 팔 채소들을 키우는 밭을 가꾸기도 하고, 양이나 승마용 말을 키우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다. 그리고 그 중에는 존처럼 사업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는 가구를 구복하거나 만드는 일을 했다. 또, 길가에는, 특히 이 지역에는, 타로카드 점, 허브 마사지, 분쟁조정 등의 서비스 광고들이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트레일러에서 살고 있었고, 초가집과 통나무들을 사용해서 자기 집을 직접 지은 사람들도 있었고, 또 다른 사람들은 존과 조이스처럼 낡은 농가를 수리하는 중이었다.
집으로 차를 몰고 마당으로 접어들면서 조이스가 보는 걸 각별히 즐겨하는 일이 있었다. 그 시간 쯤에는 많은 사람들, 심지어 초가집에 사는 사람들도 ‘패티오 문’(역주: 흔히 테라스라고 할 수 있��� 집 현관문 양 옆의 열린 공간을 패티오라고 한다)이라는 것을 달아 놓고 있었다. 존과 조이스처럼 패티오가 없는 사람들도 말이다. 보통 커튼을 치지 않고 두는 이 두 개의 문의 길쭉한 빛은, 편안함과 안전과 재충전을 약속하는 징표처럼 보였다. 다른 보통 창문들과 비교해서 왜 그런지 조이스는 말할 수 없었다. 아마도 이 창문들이 그냥 안에서 밖을 내다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숲의 어둠을 향해 바로 열려있고, 안식처로서의 집을 전혀 꾸밈없이 전시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들의 요리를 하고 티비를 보고 있는 모습이 전신으로 보이는 것은 안에서 딱히 특별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 아닌 것을 알고 있음에도 그녀의 마음을 끌어들이는 것이었다.
집으로 가는 포장되지 않은 진창길로 차를 몰고 들어가면 보이는 것은, 집의 빛나는 텅 빈 내부를 액자처럼 둘러싸고 있는, 존이 달아 놓은 이런 문이었다. 사다리, 아직 완성되지 않은 부엌 선반들, 속이 드러난 계단, 존이 필요에 따라 옮겨놓는 전등에 의해 밝혀진 따뜻한 목재들. 그는 하루종일 작업실에서 일하다가, 어두워지면 견습생을 돌려보내고 집안을 손 보았다. 그녀가 들어오는 소리를 들으면 그는 인사조로 머리를 조이스를 향해 잠시 돌리곤 했다. 손을 흔들어 인사하기에는 그의 손은 너무 바삐 일하고 있기 쉬웠다. 차의 불을 끄고, 거기 앉아서, 장본 것이나 편지나, 뭐든 집으로 가지고 들어가야 하는 것들을 챙기면서 조이스는 그 마지막, 어둠과 바람과 차가운 비를 뚫고 집으로 달려 들어가는 짧은 거리마저 행복했다. 음악에 반응이 없거나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게 음악을 가르쳐야 하는 것으로 채워져 있는, 그녀의 골치아프고 불확실한 하루의 일을 떨쳐버리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예측하기 힘든 젊은 인간들과 일하느니 -견습생은 없다치고-혼자서, 그리고 나무를 가지고 일하는게 얼마나 좋을까.
이런 것들을 조이스는 존에게 말하지 않았다. 그는 사람들이, 나무를 가지고 일하는 것이 얼마나 단순하고, 섬세하고, 고귀하고, 이런 말을 하는 걸 듣는 것을 싫어했다. 얼마나 고결하고 품위있는 일인가, 뭐 이런.
그는 그런건 다 개소리라고 일축했다.
존과 조이스는 온타리오 주 공장 도시의 한 도시 고등학교에서 만났다. 조이스는 반에서 두 번째로 높은 IQ 를, 존은 학교에서, 그리고 아마도 시 전체에서 가장 높은 IQ 를 가지고 있었다. 첼로를 위해 바이올린을 포기하기 전까지 그녀는 훌륭한 바이올린 연주자가 될 것으로 기대되었고, 존은 평범한 세계에서 묘사 할 수 없을 만한 일을 하는 뭔가 획기적인 과학자가 될 걸로 되어있었다. 대학 1 학년 때 그들은 학교를 관두고 함께 도망쳤다. 그들은 여기저기서 일하고, 버스를 타고 대륙을 횡단했고, 오레곤 해안에서 1 년 동안 살기도 했다. 그들은, 그들을 잃은 것이 삶의 빛을 잃은 것 같았던 부모님과는 장거리로 화해를 했다. 히피족이라고 부르긴 좀 늦었다고 생각되었지만, 어떻든 부모들은 그들을 그렇게 불렀다. 그들은 자신들을 결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마약도 하지 않았고, 옷은 다소 남루하긴 했지만 얌전하게 입었으며, 존은 반드시 면도를 하고 조이스에게 머리를 잘라달라고 했으니까.
그들은 최저 임금을 받는 임시직에 곧 지쳤고, 좀 나은 삶을 살 상황을 만들기 위해 실망한 가족들에게서 돈을 빌렸다. 존은 목공과 나무공예를 배웠고, 조이스는 학교에서 음악을 가르 칠 수있는 자격을 가질 수 있는 학위를 땄다. 그녀가 얻은 일은 러프 리버에 있었다. 그들은 지금의 허물어져가는 집을 거의 거저로 샀고, 삶의 새로운 단계에 정착했다. 정원도 가꾸었고 이웃들을 사귀었는데, 그들 중 일부는 깊은 숲 속에 대마초를 키우고, 구슬 목걸이와, 허브 향 주머니를 만들어 파는 실제 히피족이었다.
이웃들은 존을 좋아했다. 그는 여전히 마른 체형이었고 눈이 맑았으며, 이기적 이었지만 늘 남의 말을 들을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때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막 컴퓨터에 익숙해 지기 시작할 때였는데, 그는 그걸 이해하고 참을성있게 설명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조이스는 그보다는 인기가 덜했다. 그녀가 음악을 가르치는 법은 너무 형식을 따르는 것으로들 생각되었다. 조이스와 존은 함께 저녁 식사를하고 집에서 만든 와인을 마셨다. (존의 와인 제조 방법은 엄격하게 지켜지는 것이었고 성공적이었다.) 조이스는 하루의 좌절스러운 일들과 웃기는 일들에 대해 이야기를 했고 존은 말을 많이하지 않았다. 그는 일단 요리를 할 때는 집중을 해야했다. 하지만 밥을 먹을 때는, 찾아 왔었던 고객이나 견습생 에디에 대해서 이야기 할 때도 있었다. 에디가 한 말들에 대해 함께 웃기도 했지만 깎아내리는 식은 아니었다. 조이스는 가끔 에디를 애완 동물처럼 생각했다. 아니면 아이라든가. 물론 정말 아이였다면, 그들의 아이였다면, 그리고 지금 에디가 하는 식으로 굴었다면 그렇게 웃어버리기에는 너무 당황스럽고 걱정이 되었겠지만 말이다.
왜일까? 어떤 면이?
에디는 바보가 아니었다. 존이 말하기로는, 그녀는 목공과 관련해서는 천재는 아니지만 잘 배웠고, 배운 것을 기억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그녀가 말이 많지 않다는 점이었다. 그것이 견습생을 고용하기로 결정했을 때 가장 두려워했던 것이었다. 가르치는 사람도 일정금액을 지급 받고, 누구든지 배우는 사람은 배우면서 살아 가기에 충분한 돈이 지불되는 정부 프로그램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존은 처음에는 기꺼워하지 않았지만 조이스가 그를 설득했다. 그녀는 그들에게 사회에 대한 의무가 있다고 믿었다. 에디가 말이 많지 않았는지 모르지만 말을 할 때는 강력하게 주장을 펼쳤다.
"전 마약과 술을 하지 않아요"는 그녀의 첫 인터뷰에서 그녀가 말한 내용이었다. "금주 모임에 가입되어있는 알코올 중독자에요. 우리는 절대로 완전히 회복하는 법이 없기 때문에, 다 나았다고는 결코 말하지 않아요. 살아있는 동안은요. 9살짜리 딸이 있는데, 아버지없이 태어났고, 그래서 제가 걔의 총 보호자니까 걔를 올바르게 키우고 싶어요. 제 야망은 목공을 배워서 저 자신과 내 아이를 먹여 살릴 수 있는 거구요. " 이 말을 늘어놓는 동안 그녀는 부엌 식탁 너머로 존과 조이스를 하나씩 번갈아 쳐다 보았다. 그녀는 키가 작고 다부진 젊은 여자로, 그런 방탕한 과거가 있을 정도로 나이가 들어 보이지도, 상처가 있어보이지도 않았다. 넓은 어깨, 두툼하게 덮은 앞머리, 꽉 묶은 포니 테일, 전혀 미소를 지을 것 같지 않은 얼굴. "그리고 한 가지 더," 라고 말하며 그녀는 단추를 풀고 긴팔 블라우스를 벗었는데 안에 셔츠를 한 장 받쳐 입고 있었다.
그녀의 두 팔, 가슴 위쪽 가슴, 그리고 -그녀가 등을 돌리자- 등 위쪽이 문신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마치 피부가 옷이 된 것 같기도 하고, 인상쓰거나 다정한 얼굴들이 용, 고래, 화염에 둘러싸여 있는, 어쩌면 너무 복잡해서 혹은 너무 끔찍 해서 이해하기 어려운 만화책이 같이도 보였다. 몸 전체가 같은 방식으로 장식되었는지가 제일먼저 궁금해질 수 밖에 없는 것이었다.
조이스는 가능한 한 평정한 목소리로 "놀라와라."라고 말했다.
"글쎄, 얼마나 놀라운지는 모르겠지만, 이걸 다 돈내고 해야 했다면 돈 엄청나게 들었을거에요" 에디는 말했다. "이거에 한 때 꽂혔었어요. 제가 이걸 보여드리는 이유는 어떤 사람들은 이런거에 반감이 있기 때문이에요. 가령 작업장에서 더워가지고 제가 셔츠 바람에 일을 해야 할 경우가 있다든가 하면 말이죠. "
조이스는 "우리는 아닌데,"하며 존을 보았다. 그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녀는 에디에게 커피 한 잔 할지 물었다. "괜찮아요."이디는 셔츠를 다시 입고 있었다. "금주모임의 많은 사람들이 커피로 사는 것 같아요. 내 말은, 근데, 왜, 한 나쁜 습관을 다른 나쁜 습관으로 바꾸냐 하는거죠 "
"굉장하네."조이스가 나중에 말했다. "무슨 말만 하면 일장연설을 늘어놓을 거 같잖아. 동정 잉태는 감히 묻지도 못했네, 나는.”
존은 말했다. "강한 아이야. 그게 가장 중요해. 팔을 보고 알았어. "
존이 ‘강한’이라고 말할 때는 그 단어의 본연의 뜻을 말하는 것으로, 글자 그대로 그녀가 들보를 운반 할 수 있을만한 힘을 가졌다는 의미였다. 존은 일하는 동안 씨비에스 라디오를 듣는다. 음악뿐만 아니라 뉴스, 논평, 시청자 전화. 그는 때때로 그들이 들은 것에 대한 에디의 의견을 들려준다. 에디는 진화를 믿지 않는대. (시청자 전화 프로그램에서, 일부 사람들이 학교에서 진화론을 가르치는 것을 반대하고 있었단다.) 왜 그렇대?
"글쎄, 그 성서에 나오는 국가들 때문이라나,” 존은 이렇게 말하고는, 단호하고 단조로운 에디 목소리로 바꿔 말했다. "성경에 나오는 나라들에는 원숭이가 많고, 원숭이들이 항상 나무에 매달려 있고, 그러니까 거기서 사람들이 원숭이가 나무에서 내려와서 사람들로 바뀌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거라구요." "하지만, 일단,” 조이스가 말했다. "관 둬. 시도조차 하지 마. 에디와 논쟁하는 첫 번째 규칙을 몰라? 신경 끄고 입 다물자,잖아. "
에디는 또한, 큰 제약회사들이 암 치료법을 알고 있지만, 그들과 의사들이 돈을 벌려고 정보를 막기로 하자고 의사들과 타협을 했다고 믿었고, ’환희의 송가’가 라디오에서 나올 때는 장례식처럼 너무 끔찍하다며 끄라고 했고, 또한 존과 조이스가 -정확히 말하자면 조이스가- 와인이 들어있는 와인 병을 부엌 테이블 위 보이는 곳에 두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가 무슨 상관이야?”
“자기 일이라고 생각하는가 보지.”
“지가 우리 부엌 테이블은 언제 본다는거야?”
“화장실을 가야 하잖아. 풀숲에서 쉬야를 할 순 없잖아.”
“그래도 지가 여기하고 무슨 상관-”
“가끔 여기 와서 우리 같이 먹을 샌드위치를 만들기도 하고-”
“그래서? 이건 내 부엌이야. 우리 부엌이라구.”
“그저 한잔* 보면 위협을 느끼나봐. 아직도 좀 심약한 상태라서. 이건 당신하고 내가 이해해줘야 하는 일이야.”
위협을 느낀다. 한잔, 심약한.
존이 쓰고 있는 이 말들, 뭐지?
그 순간에, 심지어 존 자신도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도 그녀라도 그 순간에 알아챘어야 했다. 그는 사랑에 빠지고 있는 거였다. 빠지는 중,이라는 말은 뭔가, 흐르는 시간을, 밑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것을 암시한다. 그러나 사실은 점점 속도가 붙는 것으로, 빠지는 순간은 잠깐, 또는 몇 초라는 것이 맞을 것이다. 똑, 지금 존은 에디를 사랑하지 않는다, 에서, 딱, 이제 사랑한다,가 되는 것이다. 눈 사이를 한 대 맞는 식의 갑작스런 재앙을 생각해보지 않는 한, 이게 가능하다거나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사람을 불구로 만드는 운명의 장난, 맑은 눈을 눈 먼 돌로 바꾸는 사악한 농담. 조이스는 존이 잘못 생각한 거라고 납득시키려 하�� 시작했다. 그는 여자 경험이 별로 없었잖느냐고. 그녀를 제외하고는 단 한 명도 없었잖냐고. 그들은 여러 파트너를 사귀어 보는 것이 유치하다고 생각했었고 바람 피우는 건 복잡하고 유해하다고 생각해왔잖느냐고. 존이 더 많은 경험을 가졌어야 하는 건 아닌가 이제 궁금해진다고 그녀는 말한다.
거기다가, 존이 작업실에서 어두운 겨울을 보내면서 자신감 넘치는 에디라는 사람에게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었고, 그것은 환기를 시키지 않아서서 걸리는 병과 같은 것이라고 말이다.
앞으로도 계속 에디를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면 당신은 결국 에디 때문에 돌아버릴 거야.
"나도 생각해봤어." 존은 말했다. "나 이미 에디한테 돌았는지도 몰라."
조이스는, 본인을 그렇게 멍청하고 무력하게 표현하다니 바보같은 사춘기 애들같은 소리라고 말했다.
“당신이 뭔지 아는데, 무슨 원탁의 기사야? 누가 당신 묘약이라도 먹였어?"
그래놓고 그녀는 미안하다고 했다. 유일한 방법은 이것을 함께 이겨나가는 법 뿐이라고 했다. 암흑의 시기를 지나는 것 뿐이라고. 언젠가는 그들의 결혼생활에 있었던 단순한 결함으로 보일 것이라고. "우리는 이걸 견디어 낼거야." 라고 그녀는 말했다. 존은 무심하게, 심지어 다정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 보았다. "이제 ‘우리’는 없어." 존은 말했다.
………
어떻게 이런 ���이 일어 난걸까? 조이스는 존과 자기 자신,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의문을 가진다. 헐렁한 바지와 플란넬 셔츠와 -겨울 내내- 무겁고 두꺼운 스웨터는 톱밥으로 얼룩덜룩한 옷차림을 하고서, 성큼성큼 걷고 말귀도 못 알아듣는 목수의 수련생. 진부한 표현이나 멍청한 소리를 꾸준히 해대고, 그 모든 것을 이 땅의 법칙으로 선포하는 정신세계를 가진 사람. 그런 사람이, 이 긴 다리와 날씬한 허리와 길고 짙은 머리카락으로 길고 부드러운 타래를 땋아늘인 조이스를 이겨먹은 것이다. 그녀의 지혜와 그녀의 음악과 그리고 두 번째로 높은 IQ를 말이다. "내 생각엔 말이지,”조이스는 말한다.
이건 시간이 지나고, 해가 길어지고, 백합이 도랑에서 화려하게 피어날 때의 얘기다. 울면서 술을 마셔서 부은 눈을 가리려고 선글라스를 끼고 음악을 가르치러 다니고, 일을 마치고는 존이 혹시 그녀가 자살이라도 할까싶어 찾으러 와주기를 바라면서 집 대신 윌링턴 공원으로 차를 달려 갈 때 얘기다. (존이 오긴 했다, 딱 한 번.)
"나는 걔가 길거리에서 호객행위 하던 여자라고 생각해." 그녀는 말했다. "매춘 여성들은 사업상의 이유로 문신을 하게되고, 남자들은 그런 것에 흥분하지. 문신을 말하는게 아냐. -물론 그것도 그렇지만. 그런거에도 흥분하겠지-, 근데 나는 지를 팔았다는 그 사실을 말하는 거야. 살 수 있는 여자라는 거, 그 경험. 그리고 지금은 개심을 했다는 거지. 완전 얼어죽을 막달라 마리아인거지. 그리고 존은 성적경험상으로는 얼라인 거고. 정말 구역질 나. " 그녀에게는 이제 이런 말을 할 수있는 친구들이 있다. 그들은 모두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그 중 일부는 이전에도 알고 지냈지만 지금만큼은 아니었다. 그들은 울음을 터뜨릴때까지 서로 속을 털어놓고 마시고 웃는다. 믿을 수 없다고 말한다. 남자들, 하는 짓이란. 너무 형편없고 바보같아. 믿을 수 없는 일이지.
믿을 수 없는 짓을 하니 바보라는 거지.
얘기를 하다보면 조이스는 괜찮다. 정말 괜찮은 것이다. 그녀는 실제로 존에게 감사하다고 느끼는 순간이 있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그녀는 지금까지 어느 때보다 더 살아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끔찍하지만 멋진 일이다. 새로운 시작. 알몸의 진실. 알몸의 삶.
그러나, 새벽 3 ~ 4시에 일어 났을 때, 그녀는 자기가 어디 있는지 모른다. 더 이상 같이 살던 집이 아니다. 에디가 지금 그 집에 있다. 에디와 그녀의 아이와 존. 그렇게 하면 존이 정신을 차릴 수도 있다고 생각하여 조이스 자신이 나서서 하자고 한 거였다. 그녀는 시내의 아파트로 이사했다. 현재 안식년을 간 교사 소유의 집이었다. 창문을 가로 질러 집 주인의 멕시코 잡동사니들을 비추며 번쩍 거리는 음식점 표지판의 진동하는 분홍색 불으로 그녀는 한밤중에 잠에서 깼다. 선인장 화분, 주렁주렁 매달린 구슬들, 마른 피 색의 줄무늬가 있는 담요. 술기운에 오는 그 모든 통찰력, 그 들뜨는 기분이 토해내듯 사라져 나갔다. 그 밖에는 취기는 없었다. 술의 강에서 철벅거리다가도 깨어나면 마분지처럼 납작하게 메말라 있는 것 같았다.
그녀의 삶은 사라졌다. 그저 흔한 재해처럼.
사실을 말하자면, 느끼기로는 더할 나위없이 제정신이었지만 그녀는 아직도 취한 상태였다. 그래서 그 집으로 차를 몰고 갈 지도 모르는 위험한 상태였다. 이런 경우에 그녀의 운전은 느리고 침착한 편이라서 도로변으로 쳐박히기라도 할 그런 위험이 아니라, 불꺼진 창 밖 마당에 차를 세우고 존을 부르며, 이제 그만 하라고 소리를 칠 그런 위험에 처해있었다는 말이다.
그만 해. 옳지 않아. 걔, 이제 그만 가라고 해.
우리, 들판에서 잠든새에 소가 와서 주변에서 우적거리고 있는 소리에 깨었던거, 우리는 걔네들이 그 전 날 밤에 거기 있는 줄도 몰랐던 거, 그거 기억해? 얼음장같은 냇물에서 씻던거 기억해? 우리, 당신 엄마 아파서 돌아가실 줄 알았을 때, 뱅쿠버 아일랜드에서 마약 버섯 따 가지고 온타리오로 비행기 타고 와서 그거 팔아서 경비 충당했었잖아. 그리고 우리 막, 이거 완전 농담이다, 우리는 중독자도 아닌데 그냥 가족애의 임무를 수행하는 중이잖아, 그랬었잖아.
해가 떠 오르고 있었고, 집안의 멕시코 장식들은 그 끔찍한 색깔을 더더욱 확실하게 발산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잠시 후 일어나 씻고 볼에 볼터치를 대충 두드리곤, 진흙처럼 진하게 만든 커피를 마시고는 새로 산 옷들 중에서 몇 개 입었다. 새로 얄프리한 웃옷하고 팔랑팔랑하는 스커트를 무지개색의 깃털이 달린 귀걸이를 샀었다.
음악학교에 나가 아이들을 가르칠 때 그녀는 집시댄서나 칵테일 웨이트레스같이 보이게 하고 갔다. 아무것에나 웃어대고 아무하고나 시시덕거렸다. 아래층에서 아침식사를 만드는 요리사, 주유소 소년, 우체국에서 우표파는 직원하고도 그랬다. 그녀는, 존이 자기가 얼마나 예쁜지, 얼마나 섹시하고 행복한지, 얼마나 그녀가 모든 남자들과 잘도 놀아나고 있는지 대해 전해 들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아파트를 나서는 순간에 그녀는 무대에 올라가는 것과 같았다. 하지만 비록 간접적일지라도 가장 중요한 관객은 존이었다. 존이 한번도 눈에 띄게 치장하는 것이나 살랑거리는 행동에 넘어간 적은 없었고, 그게 그녀를 매력적으로 만든다고 생각하지도 않았지만 말이다. 그들이 여행할 때는 평범한 옷을 주로 입었다. 두꺼운 양말, 청바지, 셔츠, 잠바.
또 다른 변화도 있었다.
제일 어리거나 제일 재능이 없는 학생들에게도 그녀는 다정한 목소리로 장난스러운 웃음을 웃고 반하지 않을 수 없게 추켜 세워주었다. 그녀는 학기 말에 열리는 리사이틀을 위한 준비를 돕고 있는 중이었다. 이 저녁 행사에 그 전에는 별로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재능 있는 학생들을 준비도 안 된 상황에 몰아 넣어 평상의 진보를 방해한다고 느꼈었다. 그 모든 노력과 긴장은 가짜 가치를 만들어낼 뿐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올해 그녀는 그 쇼의 모든 부분에 적극적으로 관여했다. 프로그램, 조명, 소개, 그리고 물론 연주 자체까지. 정말 재미있을거라고 장담을 해댔다. 학생들도 재미있고, 관객도 재미있을거라고 말이다. 물론 그녀는 존이 올거라고 믿고 있었다. 에디의 딸이 연주자 중의 하나였으니 에디는 반드시 올 것이었다. 존도 에디와 같이 올 수 밖에 없었다.
마을 전체가 볼 수 있도록 존과 에디가 처음으로 커플로 등장을 하는 것이었다.
대대적인 발표. 피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런 일은 특히 그들이 사는 마을에서는 그닥 희귀한 일도 아니었다. 딱히 흔한 일도 아니었지만. 그렇게 짝이 바뀌는 것이 그렇게 충격적인 일은 아니라 해도 그게 주의를 끌지 않는다는 건 아니었다. 일이 좀 잠잠해지고 사람들이 새 커플에 익숙해지기까지 필수적인 흥미거리인 기간이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새 커플이 수퍼마켓같은데서 남겨진 쪽과 이야기를 나누거나, 아니면 적어도 인사를 하기도 하는 모습도 보이게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존과 에디가- 물론 중요한건 존이- 바라보는 가운데 리사이틀이 거행되는 저녁에 조이스가 연기하고자 하는 역할은 이런 역할이 아니었다.
그럼 뭘까?
누가 알겠어. 제정신이라면, 쇼가 끝나고 관객의 박수갈채를 받는 그녀를 보고 너무나 감명을 받은 나머지 존이 정신을 차릴 것이라고 생각하는건 아니었다. 그녀의 행복하고 멋진 모습을 보고, 그리고 자살충동에 시달리기보다 당당하게 살고 있는 모습을 보고 존이 크게 상처를 받을 것이라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가끔은 뭐 그닥 많이 다를 것도 없는, 뭐라고 꼭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그녀가 바라는 것을 멈출 수 없는 뭔가가 있었다.
최고의 리사이틀이었다. 모두들 그렇게 말했다. 더 활기차고 즐겁고 더 강렬하다고 말들 했다. 학생들은 그들이 연주하는 곡들과 맞춘 의상들을 입었고, 얼굴 분장도 두려움에 질리거나 제단에 바쳐지기라도 하는 것 같지 않게 잘 되었다.
조이스는 맨 마지막에, 걸으면 은색으로 빛나는 긴 실크 스커트를 입고 등장했다. 은팔찌와 풀어내린 머리에 반짝이는 장식도 했다. 박수갈채에는 휘파람소리도 섞여들었다.
존과 에디는 관객 속에 없었다.
II
조이스와 맷은 노스 벵쿠버에 있는 그들의 집에서 파티를 연다.
맷의 65세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서다. 맷은 신경심리학자이며 아마추어 바이올리니스트이다. 지금은 프로 첼리스트이며 그의 셋째 부인인 조이스를 만난 것도 그 때문이다. “이 모인 사람들을 좀 봐요.” 조이스는 반복해 말한다. “정말이지 당신의 전 생애를 담았다고 할 수 있잖아요”
조이스는 날씬하고 뭐든 협조할 것 같은 얼굴의 회갈색 머리를 가지고 있고, 아마도 커다란 악기를 다루는데서 왔을 수도 있고, 그저 고분고분하게 듣고 말하기도 좋아하는 습관에서 왔을 수도 있는 약간 구부정한 자세를 가지고 있다.
물론 그가 ‘개인적 친구들’ 이라고 생각하는 맷의 대학 동료들이 참석해 있다. 그는 너그럽지만 말을 조심하는 편이 아니기때문에 모든 동료가 그 범주에 들어가지 않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첫째 부인 설리도 간병인을 데리고 와 있다. 설리는 29세에 당한 교통사고로 인해 뇌에 손상이 왔고, 맷이 누군지도, 그들의 세 아들이 누군지도 알 것 같지 않고, 이 집이 자신이 젊은 부인으로 살았던 집이라는 것도 알 것 같지 않다. 하지만 그녀의 성격좋은 매너는 여전하고, 새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만나는 것을 즐기고 있다. 비록 15분 전에 이미 만난 사람들일지라도 말이다. 그녀의 간병인은 작은 스콧트랜드 여자로, 설리가 이렇게 시끄러운 파티에 익숙하지 않고, 본인은 일하는 중에는 술을 마시지 않는다고 사람들에게 누차 설명하고 있다.
맷의 두번째 부인은 그와 결혼은 3년을 유지했지만 함께 살기는 일년을 못 채웠다. 그녀는 한참 어린 루이즈라는 여자친구와, 루이즈가 몇 개월 전 낳은 여자아이와 함께 와있다. 도리스는 맷과 친구사이를 유지해왔고 특히 맷과 설리 사이에서 나온 막내아들 타미와 친하게 지내왔다. 타미는 그녀가 맷과 결혼했을 때 아직도 그녀가 돌봐야했을 정도로 어렸었다. 맷의 두 큰 아들은 자기 아이들과 아이들의 엄마들과 와 있지만, 그 중 한 엄마는 이미 아들과 부부관계가 아니다. 그 아들은 현 여자친구와 그녀의 아들과 와 있고, 이 아이는 맷의 손자 중의 한 명과 그네타는 순서를 가지고 싸움이 붙었었다.
타미는 최초로 제이라는 남자친구를 데리고 왔는데 제이는 여지껏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타미는 제이가 가족들과 함께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다고 조이스에게말해주었다.
“이해가 가네.” 조이스는 말한다. “나도 가족들하고 어울리는게 익숙하지 않았던 적이 실제로 있으니까.” 그녀는 웃는다. 맷이 ‘집안사람들’이라고 부르는, 친족과 관련 인물 인적사항을 설명하면서 조이스는 웃음을 멈추지 못하고 있다.
그녀 자신은 아이가 없지만 존이라는 전 남편은 있다. 존은 해안 쪽 몰락한 공장도시에 살고 있다. 조이스는 존을 파티에 초대했지만 오지 못했다. 그의 셋째부인의 손자가 세례받는 날이라고 했다.이름이 샬린이고 제과점을 하고 있는 그 부인도 물론 초대했지만 그녀는 세례에 대해 설명하는 자상한 편지를 써 보내왔고, 이걸 읽고 조이스가 맷에게 한 말은, 존이 종교를 가졌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왔으면 정말 좋았을텐데,” 조이스는 이웃에게 전남편 내외가 오지 않은 이유를 설명했다.(이웃들은 소음에 대해 불평 못하게 하려고 초대를 한 것이다.) “이 복잡한 관계들에 내 것도 더할 수 있었을텐데 말이죠. 전남편은 두번째 부인이 있었지만 그 여자가 지금 어디 갔는지 전 모르고 아마 그이도 모를걸요.”
맷과 조이스가 준비한 음식도 많고 사람들이 가져온 음식도 많다. 포도주와 아이들을 위한 과일주��와, 사람들이 정말 제대로 마실 줄을 알고 있던, ‘좋았던 시절’을 회상하기 위해 맷과 조이스가 특별히 제조한 칵테일도 있다. 맷은 그 옛날식으로 깨끗하게 씻은 쓰레기통에다 만들수도 있었지만 요즘 사람들은 꺼릴 것이라고 말한다. 어쨋거나 젊은이들 대부분은 그걸 마시지 않는다.
뜰은 넓다. 크로켓게임하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할 수도 있고,맷이 어려서 놀던 걸 창고에서 꺼내 온, 아이들이 타려고 싸우던 그 그네도 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공원��� 그네나 뒷마당의 플라스틱 그네밖에 본 적이 없다. 맷은 밴쿠버에서, 어린시절의 그네를 가지고 있고, 자기가 자란 집에서 살고 있는 마지막 사람일 것이다. 그 집은 숲의 끝자락이었던 곳의 그라우스 산의 언덕에 있는 윈저로드에 있고, 지금은 다른 집들이 그 위로 계속 지어지고 있다. 이런 집들은 대개 성같이 지어져 거대한 차고를 가지고 있다. 맷은 곧 이 집도 사라져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세금이 너무 높아. 그리고 나면 흉물스러운 건물 두 채쯤이 이 자리를 차지하겠지.
조이스는 맷과의 삶이 다른 곳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생각할 수가 없다. 항상 많은 일들로 분주한 곳이다. 사람들이 오고 가고, (아이들까지 포함해서) 뭔가를 남기고 가고, 나중에 가지러 온다. 맷의 사중주단은 일요일 오후 서재에서 모이고, 유니테리언 교회 친목회는 일요일 저녁에 거실에서 열리고, 녹색당 회의는 부엌에서 열린다. 집 앞에서 극본 읽기 그룹이 연기의 감정을 담아보려고 있는 동안 부엌에서는 누군가가 진짜 삶에 일어나는 드라마를 자세히 털어놓고 있는 것이다.(조이스는 두 군데 다 참석해야 한다) 맷과 몇몇 교수 동료들은 서재문을 닫고 들어 앉아 연구법을 다듬기도 한다.
조이스는 침대 말고는 맷과 단 둘이 있는 시간이 거의 없다고 자주 말한다.
“그리고 맷은 침대에서도 뭔가 중요한 것을 읽고 있죠”
조이스가 뭔가 안 중요한 것을 읽고 있는 동안에.
그래도 괜찮다. 맷에게는 뭔가 조이스가 필요할지도 모르는, 흥을 돋구고 욕구로 넘치는 것들이 있다. 학교에 가서도 그는 대학원생들과, 동료들과, 적수가 될 수도 있을 사람들과, 방해꾼들과 연계하면서 겨우겨우 그 소용돌이를 다스리며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모든 것이 그녀에게는 한 때는 매우 위안을 주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만약 그녀가 바깥에서 바라볼 수있는 시간만 있다면 여전히 그런지도 모른다. 바깥에서라면 그녀는 자신을 부러워 할 것이다. 그녀의 친구들과 임무들과 활동들, 그리고 물론 그녀의 커리어까지, 사람들은 그녀가 맷과 아주 잘 맞는다고 생각하며 그녀를 부러워하거나 적어도 동경할 것이다. 지금의 그녀를 본다면, 그녀가 처음 밴쿠버로 내려올 당시에는 너무나 외로와서 그녀보다 적어도 열살은 어릴 세탁소 청년하고 데이트를 수락했었다는 것은 절대로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래놓고 그 남자가 바람을 맞췄다는 것도.
이제 그녀는, 맷의 둘째부인이고 뒤늦게 레즈비언이 된 도리스의 엄마인 파울스 부인의 쇼올을 팔에 걸치고 잔디밭을 가로질러 가고 있다. 파울스 부인은 햇볕에 나 앉아있을 수 없지만 그늘에서는 으슬거려 한다. 조이스의 다른 손에는 설리의 간병인으로 일하러 와 있는 고완부인을 위한 신선한 레모네이드 잔이 들려있다. 고완부인이 아이들용 펀치가 너무 달다고 했기 때문이다. 고완부인은 설리가 아무 것도 마시지 못하도록 한다. 설리가 예쁜 드레스에 쏟을지도 모르고 장난으로 남에게 끼얹을지도 모른다. 설리는 음료수를 마시지 못하는 것을 딱히 불쾌해 하는 것 같지는 않다.
잔디밭을 가로지르면서 조이스는 둥그렇게 앉아있는 젊은이들을 돌아서 간다. 타미와 그의 새 친구, 그리고 집안에서 자주 보이던 다른 친구들, 그리고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것 같은 젊은이들도 있다.
타미의 목소리가 들린다. “아니오, 저는 이사도라 던컨이 아닙니다”
모두들 웃는다.
조이스는 아이들이 수 년전 유행했던, 어렵고 잘난척하는 게임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게임이름이 뭐더라? 타미의 답은 알파벳 비로 시작하는 것 같다. 그녀는 아이들이 그런 게임을 하기에는 반 엘리트주의자들이라고 생각했었다. 벅스터후데. 그녀는 소리내서 말했다.
“너 벅스터후데지!”
“적어도 알파펫 비는 맞췄네요.” 타미는 다른 아이들을 웃기려고 그녀를 놀려먹는다.
“봐,” 타미는 말했다. “우리 아리따우신 어마마마, 그렇게 바보는 아니시네. 하지만 음악가시지. 벅스터후데가 음악가죠?”
“벅스터후데는 바흐가 연주하는 걸 들으려고 50마일을 걸어간 사람이야.” 조이스가 조금 분개하며 말했다. “맞아. 음악가지.”
타미가 말했다 “대단하시구만”
무리 중의 여자아이 하나가 일어선다. 타미가 부른다.
“어 크리스티! 크리스티, 이제 안 놀아?”
“곧 돌아올게. 잠깐 풀 숲에서 내 더러운 담배하고 잠깐 숨어야겠어.”
여자는 란제리나 잠옷을 떠올리게 하는 짧고 검은 레이스 드레스에, 딱딱하지만 목이 깊게 파인 검은 자켓을 입고 있다. 풀풀한 흐린색의 머리카락과 표정을 알 수 없는 창백한 얼굴, 안 보이는 눈썹. 조이스는 단박에 그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인생의 목적이 다른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는 것인 종류의 여자들.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들 파티에 따라와서는 -조이스는 그 여자가 누군가를 따라온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그 알지도 모르는 사람들을 무시할 권리는 있다고 느끼는 부류들. 그들이 쉽게 (가볍게?) 명랑하고, 브르주와적인 친근함같은 것을 보인다고해서 말이다.(사람들이 요즘도 아직 브르주와라는 말을 쓰나?)
손님들이 담배 피우고 싶은데서 못 피우게 한 것도 아니다. 그런 표시같은 것은 집 어디에도 없다. 조이스는 그녀의 흥이 왕창 빠져나가는 것을 느낀다.
“타미,”그녀는 불쑥 말한다. “타미, 파울러 할머니에게 이 쇼올을 좀 가져다 드릴래? 추우신 모양이니. 그리고 이 레모네이드는 고완 부인에게 가져다드려. 너네 엄마하고 같이 온 여자 알지?”
타미에게 서로의 관계와 책임감을 상기시키는 것도 나쁠건 없다.
타미는 빨리 그리고 자연스럽게 자리에서 일어선다.
“보티첼리였어요.” 그는 그녀에게서 쇼올과 유리잔을 받으며 말한다.
“미안. 게임을 망칠 생각은 없었어.”
“게임이 잘 되어가고 있지도 않았어요, 뭐.” 조이스가 아는 소년이 말했다. 저스틴이다.
“우리들은 우리 부모님들이 젊었을 때보다 똑똑하지 않아요.”
“‘우리가 젊었을 때’라는 말은 맞네.” 순간 뭘 해야할지 어디로 가야할지를 잊고 조이스는 말한다.
그들은 부엌에서 설겆이를 하고 있다. 조이스와 타미와 새 친구 제이다. 파티는 끝났다. 사람들은 서로 부둥켜 안고, 키스하고 친근하게 소리쳐 인사하며, 또 몇몇은 조이스가 냉장고에 자리가 없는 음식들을 싸 준것들을 들고 헤어진다. 시들은 샐러드와 크리 타르트와 데블드 에그는 버렸다.
데블드에그는 어쨌거나 별로 먹지도 않았다. 구식이니까.
콜레스테롤도 너무 많고.
“너무해, 손이 많이 갔는데. 사람들한테는 교회 행사를 연상하는 음식이었을까.” 조이스는 한 접시 가득한 데블드 에그를 쓰레기통에 버리며 말한다.
“우리 할머니도 만들곤 하셨죠.” 제이가 말한다. 그게 그 아이가 조이스에게 한 첫 말이다. 타미가 감사하는 표정을 짓는 것을 조이스는 본다. 조이스도 감사한 기분이 든다, 그녀를 할머니와 같은 범주에 넣는 말이었지만 말이다.
“우리 몇 개나 먹었는데 맛있었어요” 타미가 말한다. 그와 제이는 잔디밭과 베란다와 집 안에 온통 흩어져있는 유리잔과 접시와 포크와 나이프를 함께 거두며 적어도 삼십분을 조이스와 함께 일하고 있다. 가끔 물건들이 화분이나 소파 쿠션 밑같은 이상야릇한 곳에서 발견되기도 한다.
소년들은 -조이스는 그들을 소년들이라고 생각한다- 지쳐있는 그녀 자신이 했을 것보다도 식기세척기를 기술적으로 더 잘 채우고, 싱크에 뜨거운 비눗물과 유리잔들을 위해 찬 헹굼물을 준비한다.
‘그것들은 그냥 뒀다가 다음 식기세척기 돌려도 되는데”
조이스는 말했지만 타미는 안된다고 말했다.
“오늘 이 모든 해야했던 일 들 때문에 제정신이 아니신게 아니라면 저것들을 식기세척기에 넣을 생각은 하지 않으셨을걸요.” 제이는 씻고 조이스는 닦고 타미는 찬장에 넣는다. 타미는 아직도 어디다 뭘 두어야 하는지 기억하고 있다. 포치에서 맷이 같은 과에서 온 사람하고 열띤 대화를 하고 있다. 조금 전 수 많은 허그를 하고 질질끄는 작별인사를 하던 것으로 짐작되었던 것만큼 취하지는 않은게 명백하다.
“내가 확실히 정신이 좀 이상한가 보네.” 조이스는 말한다. “ 지금 당장은 본능적으로 이거 다 가져다 버리고 플라스틱 용기를 사야할 것 같으니.”
“파티 후 증후군이에요.” 토미가 말한다.
“제가 다 알죠.”
“그래서, 검은 드레스 입은 여자애는 누구야?” 조이스는 말한다.
“게임하다 말고 간 애요?”
“크리스티? 크리스티 말하는걸거야. 크리스티 오델. 저스틴 와이프인데 성을 그대로 가지고 있죠. 저스틴은 아시죠?”
“물론 알지. 그냥 저스틴이 결혼 한 줄은 몰랐지.”
“아, 어느새 다들 자라버렸어!” 토미가 놀리듯 말한다. “저스틴은 서른인걸요.” 덧붙인다.
“여자애는 더 나이든 것 같던데.”
제이가 말한다. “확실히 나이가 더 많죠’”
“어떤 애야?”
“작가에요. 괜찮은 사람이에요.”
제이가 싱크로 몸을 굽히며 조이스는 의미를 알 수 없는 소리를 냈다.
“좀 무심한 편이잖아.” 타미가 말한다. 제이에게 한 말이다.
“그렇지? 맞다 그래.”
“지가 되게 잘나가는 줄 알아.” 제이가 딱 잘라 말한다.
“책이 막 출판됐으니까.” 타미가 말한다.
“책 제목이 뭔지 기억이 안나는데. 뭐 ‘하는 법’ 같은 책인데, 제목이 좋지는 않은 것 같아. 첫 책이 나오면 한동안은 잘 나가는 게 되지 뭐.”
며칠 후 론스데일의 서점을 지나가면서 조이스는 포스터에 있는 그 여자의 얼굴을 본다. 그리고 이름도 있다, 크리스티 오델. 검은 모자를 쓰고 있고, 파티에 입고 왔던 그 검정 자켓을 입고 있다. 잘 재단되고, 군더더기 없고, 목이 아주 깊숙히 파인 자켓. 가슴에 별로 자랑할 만한 것도 없으면서 말이다. 진지하고, 뭔가 상처입은 듯한, 뭔가 질타를 하는 듯한 눈빛으로 카메라를 똑바로 ���다보고 있다.
저 얼굴을 어디서 봤더라. 물론 파티에서 봤지만.
하지만 그때도 근거없는 미움 가운데 조이스는 그 얼굴을 어디선가 본적이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학생이었나? 살면서 조이스에게는 수 많은 학생이 지나갔다.
조이스는 서점으로 들어가 그 책을 산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물음표는 없다.
책을 판 여자는 “금요일 오후 2시에서 4시 사이에 가져오면 작가가 와서 사인을 해 주는 거 알고 있어요?” 하고 말했다.
“그저, 요 작은 금 스티커만 떼지 말아요. 여기서 샀다는 증표니까.”
조이스는 줄을 쭉 서가지고 작가를 옅보고, 알지도 못하는 사람의 이름이 쓰인 책을 가지고 돌아가는 시스템을 전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냥 예의바르게 긍정도 부정도 아닌 어느쪽의 의사표시도 아닌 소리를 중얼거리고 말았다.
그녀는 그 책을 읽을지 아닐지도 알 수 없다. 틀림없이 더 자신의 취향일, 언제라도 읽을 수 있는 자서전 두 권이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하는가>는 장편소설이 아니라 단편집이다. 그 자체만으로 실망이다. 작가가 문학의 문 안 쪽에 안전하게 자리잡았다기보다는, 그 문간에 매달려 있는 듯한 인상을 줘서 책의 권위를 떨어뜨리는 것 같아 보인다.
그래도 조이스는 그날 밤 책을 침대로 가지고가서 착실하게 목록을 펼친다. 중간쯤 내려가다가 제목 하나에 눈이 멈춘다.
“Kindertotenlieder.” 말러의 곡 제목이다. 친숙한 영역이다. 자신있게 그 페이지로 넘긴다. 거기는 누군가, 아마도 작가 자신이 제목 번역을 해놓았다.
‘죽은 자식을 위한 노래’
옆에서 맷이 코웃음을 친다.
그녀는 그가 자신이 읽고 있는 것과 동의하지 않고 있으며, 그녀가 뭐냐고 묻기를 원한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물어봐 준다.
“이런 바보같은 소리.”
그녀는 그의 말을 듣고 있다는 것을 보이는 소리를 내며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가슴에 엎어놓는다.
책 표지에 같은 작가의 사진이 있다. 이번에는 모자가 없다. 여전히 웃지 않고 불만스러운, 하지만 약간 덜 난체하는 얼굴. 맷이 이야기하는 동안 조이스는 무릎을 움직여서 책이 무릎에 기대지도록해서 겉장에 있는 약력 몇 문장을 읽는다.
크리스 오도넬. 브리티쉬 콜럼비아의 해안 소도시 러프 리버에서 자랐다. 브리티쉬 컬럼비아대학의 문창과를 졸업했다. 남편 저스틴과 고양이 티베리우스와 함께 브리티쉬 컬럼비아의 뱅쿠버에 살고 있다.
맷은 책이 얼마나 바보같은지를 다 설명하고 나서는 책에서 눈을 들어 조이스의 책을 보더니, “그 파티에 왔던 여자애네.” 라고 말한다.
“응. 크리스티 오델이 이름이야. 저스틴 와이프래요.”
“책을 썼어? 뭔데?”
“픽션.”
“오.”
그는 다시 자기 책으로 돌아갔지만 잠시 후 조금 미안한 목소리로, “어때, 괜찮아?” 하고 묻는다.
“몰라, 아직.”
‘그녀는 엄마와 함께’, 조이스는 읽는다. ‘산과 바다 가운데 있는 집에서 살고 있..’
그 말들을 읽자마자 너무 불편해서 계속 읽을 수가 없다. 아니면 남편이 옆에 있는 동안 읽기가 불편한 걸까. 그녀는 책을 덮고 말한다. “잠깐 아래층에 다녀올게.”
“불이 밝아서 그래? 이제 끌려는 참이었는데.”
“아니, 차를 좀 마시고 싶어서. 좀 있다 봐요.”
“나 잠들텐데.”
“그럼 잘 자요.”
“잘자요.”
조이스는 맷에게 키스하고 책을 가지고 나온다.
그녀는 엄마와 함께 산과 바다 가운데 있는 집에서 살고 있다. 그 전에 그녀는 위탁가정인 놀랜드부인과 함께 살았다. 놀랜드 부인의 위탁아동들의 숫자는 때때로 바뀌었으나 늘 너무 많은 것은 분명했다. 어린 아이들은 방 한가운데 놓은 침대에서 잤고, 그 아이들이 떨어지지 않도록 큰 아이들이 양쪽의 간이 침대에서 잤다. 아침에는 기상 벨이 울렸다. 놀랜드부인이 문간에 서서 벨을 울리는 것이었다. 다음 벨을 울릴 때쯤이면 오줌을 누고, 씻고, 옷을 입고, 아침을 먹을 준비가 되어있어야 했다. 큰 아이들이 어린 아이들을 돕도록 되어 있었다. 가끔 어린 아이들이 중간침대에서 제 때 큰 침대를 넘어 나오기 힘들어서 오줌을 쌌다. 어떤 큰 아이들은 그걸 일렀고 어떤 큰 애들은 그 보다는 친절하게 그냥 커버를 덮어서 마르도록 했는데 이따금 밤에 돌아오면 아직 마르지 않은 상태였다. 그게 놀랜드 부인에 대해 그녀가 기억하는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나서 그녀는 엄마랑 살러갔고, 매일 밤 엄마는 알콜중독자모임에 그녀를 데리고 갔다. 데리고 간 이유는 아무도 맡기고 갈 사람이 없어서였다. 알콜중독자모임에는 아이들이 놀 수 있게 레고블럭이 있었지만 그녀는 레고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녀가 학교에서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하면서부터 엄마는 그녀와 바이올린을 함께 데리고 갔다. 그녀가 거기서 바이올린을 연주할 수는 없었지만 학교 바이올린이었기때문에 늘 가까이 지키고 있어야했던 것이다. 사람들의 말소리가 되게 커지면 그녀는 작은 소리로 조금 연습할 수도 있었다.
바이올린 교습은 학교에서 이루어졌다. 악기를 연주하고 싶지 않으면 트라이앵글 같은걸 연주해도 되었지만 선생님은 좀 더 어려운 악기를 연주하는 것을 더 좋아했다. 선생님은 키가 큰 갈색머리의 여자로 등 한 가운데로 길게 머리를 땋아내리고 있었다. 그녀는 다른 선생님들과 조금 다른 냄새가 났다. 어떤 선생님들은 향수를 썼지만 그녀는 절대로 그러지 않았다. 그녀에게는 목재나 난로나 생나무 냄새가 났다. 나중에 그녀는 그게 으깨진 향나무 냄새라고 믿었다. 엄마가 선생님의 남편 밑에서 일을 하게 된 후 엄마에게서도 같은 냄새가 났지만 정확하게 같은 냄새는 아니었다. 차잇점이라면, 엄마에게서는 그냥 나무 냄새가 났지만 선생님에게서는 음악속에서 느껴지는 나무냄새라고나 할까.
그녀는 재능이 뛰어난 것은 아니었지만 열심히 연습했다. 음악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순전히 선생님에 대한 사랑에서 그렇게 한 것일 뿐이었다.
조이스는 책을 부엌 테이블에 내려놓고 작가의 얼굴을 다시 보았다. 그 얼굴에서 에디의 얼굴이 조금이라도 보이는 구석이 있나? 없었다. 형태나 표정에서도 아니었다.
조이스는 일어나 브랜디를 가져와서는 차에다 조금 집어넣었다. 그녀는 머릿속에서 에디의 딸 이름을 찾아보았다. 크리스티는 확실히 아닌데. 에디가 딸을 집에 데리고 온 기억이 없었다. 학교에는 바이올린 배우는 아이들이 여럿 있었다.
아이가 전혀 연주를 못하는 아이일 리는 없었다. 왜냐하면 바이올린 보다 덜 어려운 것으로 하도록 권했을테니까. 하지만 뛰어났을리도 없었다. 그렇다면 기억에 남았을테니까. 특징이 없는 얼굴. 희미한 평범한 그저 여자 아이의 얼굴. 그래도 조이스가 알아 본 무언가가 다 자란 이 여자의 얼굴에는 있었지만 말이다.
에디가 토요일에 존의 일을 돕고 있을 때는 같이 오지 않았을까? 아니면 에디가 그냥 방문객으로, 일 하는 날이 아니라 일이 어떻게 되어가는지나 보고 도울 것이 있으면 도우러 온 날 같은 날들이라도. 어딘가 앉아서 존이 일하는 것을 지켜보거나, 조이스가 쉬는 소중한 날들에 존과 나누고 있었을 대화에 방해가 되어가면서 말이다.
크리스틴. 그렇지. 그거야. 크리스티로 쉽게 바꿀 수 있는 이름.
크리스틴은 관계의 발달을 어떤 식으로든 눈치챘을 것이다. 에디가 집에 들르곤 했던것처럼 존이 그들의 아파트에 들린다거나 말이다. 에디가 아이에게 얘기를 꺼내 보았을 수도 있다.
존 어때?
존네 집 어때?
존네 집에가서 살면 좋을 것 같지 않아? 엄마하고 존은 서로 되게 좋아하는데, 사람들이 서로 되게 좋아하면 같은 집에서 살고 싶어하는거야. 너네 음악선생님하고 존은 엄마하고 존 만큼 서로 좋아하지 않으니까 너하고 엄마하고 존이 존네 집에서 살고, 너네 음악선생님은 어디 가서 아파트에서 살게 될거야.
아니야, 에디는 그런 식으로 떠들지는 않았을거야, 그 정도는 되는 애지.
조이스는 이야기가 어떻게 돌아갈지 알 것 같다. 아이는 어른들의 일처리와 그 혼란에 말려들어서 이리저리 밀려다니게 되겠지. 하지만 조이스가 다시 책을 집어들자 사는 집이 바뀐 것에 대한 것은 거의 언급이 되어있지 않은 것을 발견한다.
모든 이야기는 아이의 선생님에 대한 사랑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음악 교습이 있는 목요일은 가장 중요한 날이다. 그 주의 행복과 불행은 모두 아이의 연주의 성공과 실패, 그리고 선생님의 그녀의 연주에 대한 주목여부에 달려있다. 이 모두는 거의 견디기 힘든 일이다. 가령 선생님이 심드렁하거나 실망스러운 부분을 농담으로 덮어버리면서 침착하고, 그저 친절한 말투로 말 할 수도 있고 그러면 아이 기분은 형편없어진다. 그러다 혹 선생님이 갑자기 밝고 명랑하게 말하기도 한다.
“아주 좋았어. 잘했어. 오늘 아주 점수가 좋은데.” 그러면 아이는 너무 행복해서 배가 다 아픈 것이다.
그리고 한 목요일, 운동장에서 아이가 넘어져서 무릎이 까진 날이 있다. 선생님은 따뜻한 천으로 상처를 닦고, 문득 다정한 목소리로 이건 선물을 줘야 할 일이라고 말하면서 더 어린 학생들을 격려하는데 쓰는 과자통에 손을 뻗는다.
“어떤 과자가 제일 좋아?”
아이는 너무 감동해서 답한다. “아무거나요.”
이게 변화의 시작인가? 봄, 리사이틀준비 때문인가?
아이는 혼자 따로 떨어져나온 기분이다. 독주를 하기로 되었다.
이것은 목요일마다 방과 후에 남아서 연습을 해야한다는 뜻이고, 학교에서 엄마하고 지금 살고 있는 집으로 가는 동네로 나가는 스쿨버스를 놓친다는 뜻이다. 선생님이 태워다 줄 것이다. 가는 길에 선생님은 리사이틀에 대해 긴장이 되느냐고 묻는다.
그렇다고 볼 수도 있죠.
그러면, 선생님은 말한다, 뭔가 멋진 일을 상상하도록 훈련을 해야지. 하늘을 가로질러 날아가는 새라든가. 제일 좋아하는 새가 뭐지?
또 제일 좋아하는 걸 고르라구? 소녀는 생각해 낼 수가 없다. 새이름 한 개도 떠 오르지 않는다. 그러다간, “까마귀는 어때요?”
선생님은 웃는다. “그래. 그래, 까마귀를 생각해 봐. 연주하기 직전에 까마귀를 생각해 봐.”
그리고는 아이가 민망해하는 것을 느끼고는 웃은게 미안했는지 선생님은 윌링턴 공원에 가서 아이스크림가게가 여름을 맞아서 열었는지 보러가자고 제안한다.
“집에 바로 오지 않으면 걱정하실까?”
“선생님이랑 같이 있는걸 아시니까요.”
아이스크림가게는 열었지만 종류��� 몇 가지 없다. 좀 더 재미나는 맛은 아직 없다. 아이는 행복감과 동요를 동시에 맛보며 이번에는 제대로 고를 각오를 하고 딸기맛을 고른다. 선생님은 흔히 어른들이 그렇듯이 바닐라를 고르지만, 점원에게 얼른 가서 럼 레이즌 아이스크림을 가져오지 않으면 더이상 당신을 좋아하지 않을거라는 둥 농담을 한다.
아마도 그 부분에서 또 다른 변화가 일어난다. 선생님이 그렇게 큰 언니들이 말하는 것같은 발랄한 목소리를 내는 것을 듣고는 아이는 긴장을 푼다. 그 순간부터 아이는 완전히 행복에 젖어 있으면서도 존경심으로 굳어있지는 않는다. 부두로 차를 몰고 가서 거기 대어져 있는 보트들을 보고 선생님은 항상 보트에 살고 싶었다고 말한다. 아이가 물론 동의하는 동안, 재미있을 것 같지 않니? 선생님은 말한다. 둘은 하나를 골라 본다. 푸른 페인트가 칠해져 있는 수제보트에 나란히 난 작은 창들에 제라늄 화분들이 올려져있는 것이다.
아이가 지금 살고 있는, 선생님이 살었던 집에 대한 대화로 이어진다. 그리고 어쩐지 집으로 돌아오는 차에서 자꾸 그 이야기를 하게 된다. 아이는 자기 침실이 생긴 것은 좋지만 바깥이 어두운 것은 싫다고 말한다. 이따금 밖에 야생동물소리를 들은 것 같다고 말한다.
야생동물이라니?
곰, 쿠거요. 아이의 엄마는 그런 것들이 풀숲에 있으니 절대로 가지 말라고 했다.
“그런 소리를 들으면 달려가 엄마침대로 들어가니?”,
“그러면 안돼요.”
“아이구, 왜 안돼?” “존이 있으니까요.”
“존은 곰하고 쿠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데?”
“그냥 사슴일거래요.”
“엄마가 너한테 그렇게 말했다고 존이 엄마한테 화를 내진않고?”
“아뇨.” “존은 화를 내는 법이 없나보구나.”
“화를 냈다고 볼 수 있은 적이 있어요. 저하고 엄마가 술을 싱크에 다 부어버렸을 때요.”
선생님은 늘 그렇게 숲을 무서워해야하는 건 딱한 일이라고 말한다. 특히 소음을 내면 더더욱 그렇고 대체로도 야생동물들이 귀찮게 굴지 않을 집으로부터의 산책로들이 있다고 말한다. 그녀는 안전한 길을 알고있고, 지금쯤 피어날 야생화들의 이름을 모두 알고 있다고. 개이빨제비꽃, 연령초, 웨이크로빈, 보라 바이올렛, 매발톱꽃, 초콜렛 백합 등.
“다른 정확한 이름이 있을 것 같지만 나는 초콜렛 백합이라고 부르는 걸 좋아해. 너무 맛있는 이름이잖아? 물론 맛 때문에 그런게 아니라 생긴 것 때문에 그렇게 부르지만. 으깬 딸기같은 보라색이 약간 섞인 초콜릿하고 똑같이 생겼어. 흔하지는 않지만 어디에 좀 피는지 알고 있지.”
조이스는 책을 다시 내려 놓는다. 이제, 이제야 그녀는 대충 무슨 이야긴지 알 것 같고, 그러고나니 다음에 따라올 공포스러운 부분을 알 것 같다. 순진한 아이, 문제있고 숨기는 게 있는 어른들, 유혹. 진작에 알았어야 한다. 요즘에 이런 이야기가 유행이지 않은가. 이런 부분이 거의 나와야만 한다고 할 수 있을 정도다.
숲, 봄 꽃. 작가가 일부러 흉하게 만드려고 한다기보다, 완전히 꾸며내기에는 너무 게으른바람에 여기서 실제의 삶에서 따온 사람과 상황에 자신의 흉한 허구를 접목할 것이다.
왜냐하면 일부는 분명 사실이기 때문이다. 조이스는 그동안 잊어버렸던 것들을 기억해낸다. 크리스틴을 집에 태워다주면서 크리스틴을 절대 크리스틴으로가 아니라 에디의 아이로만 생각하던 것. 마당으로 들어가서 차를 돌리기 어서 늘 아이를 길 옆에 내려주고 반마일정도를 더 가서 차를 돌리곤 했던 것을 기억해낸다. 아이스크림에 대한 기억은 없지만, 부두에 꼭 그렇게 생긴 하우스보트가 대어져 있었다. 꽃들까지도, 그리고 아이에게 약싹바른 간악한 질문을 했던 것도. 사실일 수 있는 얘기다.
계속 읽어야만 한다. 브랜디를 더 따르고 싶지만 내일 아침 9시에 리허설이 있다.
아니 그런데, 그럴리가. 조이스가 또 틀렸다. 숲과 초컬렛 백합이야기는 지나가고 리사이틀은 그냥 지나쳐 지나간다. 학기가 막 끝났다. 그리고 바로 그 주 일요일 아침에 아이는 일찍 잠에서 깨워진다. 마당에서 나는 선생님의 목소리를 듣고 아이는 창가로 간다. 선생님이 차에 타서 유리창을 내리고 존에게 이야기를 하고 있다. 차에 작은 이삿짐차가 붙어있다. 존은 맨발이고 셔츠도 입지 않고 그냥 청바지바람이다. 그는 아이의 엄마를 부르고, 엄마는 부엌 문간에 나와 마당으로 몇걸음 내딛지만 차까지 가지는 않는다. 엄마는 실��복으로 쓰고 있는 존의 셔츠를 입고 있다. 엄마는 항상 문신을 숨기기 위해 긴팔 셔츠를 입고 있다.
그들은 존이 아파트에서 가져가기로 약속하는 물건에 대한 대화를 하고 있다. 선생님은 존에게 열쇠를 던져준다. 존과 아이의 엄마는 서로 앞다투어 선생님에게 다른 것들도 가지라고 권한다. 하지만 선생님은 불쾌한 목소리로 웃으며 말한다. “당신들이 다 가져.” 곧 존이 말한다. “알았어. 나중에 봐.” 그리고 선생님도 똑같이 답한다. “나중에 봐.” 그리고 아이의 엄마가 뭐라 했든지 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선생님은 조금 전과 같은 소리로 웃었고, 존이 어떻게 마당에서 차하고 이삿짐차를 돌릴지 알려준다. 이 쯤에서 아이는 잠옷바람으로 계단을 달려내려간다. 선생님이 지금 말할 기분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선생님이 금방 왔다갔는데 놓쳤네.” 엄마가 말한다. “페리선을 타야해서 가셨어.”
빵빵소리가 들린다. 존이 한 손을 든다. 그리고 마당을 가로질러와 엄마에게 말한다. “이제 끝났군.”
아이는 선생님이 돌아오느냐고 묻고 존은 대답한다. “아닐걸.”
그 다음 페이지정도는 아이가 무슨 일이 있었던가에 대해 이해를 해가는 과정이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어떤 질문들, 당시에는 아무 생각없어 보였던 캐묻던 질문들을 기억해낸다. (그녀가 존이라고 부르지 않는) 존과 엄마에 대한 -정말이지 소용없는- 정보들. 아침에 언제 일어나느냐, 뭘 먹는걸 좋아하느냐, 같이 요리를 하느냐. 라디오는 무슨 방송을 듣느냐.(아무것도 안 들어요. -티비를 샀거든요.)
선생님은 뭘 찾고 있었던걸까. 뭔가 안 좋은 얘기를 듣고 싶었던걸까. 아니면 그냥 무슨 이야기라도 듣고 싶었고, 두 사람과 그냥 한 지붕 밑에서 함께 살며, 한 식탁에서 같이 먹고, 매일 가까이 있는 사람하고 연락을 대놓고 싶었던걸까.
아이가 절대로 이해를 할 수 없는 것은 이런 것이다. 얼마나 자신은 아무 의미가 없었던가, 그녀의 애정은 이용만 당했으며, 얼마나 형편없이 바보같았는가. 그리고 이 생각들은 그녀를 분명 씁쓸하게 만드는 것이다. 씁쓸함, 그리고 자존심. 그녀는 그녀자신을 다시는 바보취급을 당하지 않을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떤 일이 생긴다. 이 부분이 깜짝 엔딩이다. 선생님에 대한 그녀의 느낌과 그 기간의 어린시절은 어느날 바뀐다. 어떻게, 그리고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그녀는 그 시간들이 자신이 배신당한 것이라고 더 이상 생각하지 않는다. 그녀는 힘들게 배운 음악들을(물론 틴에이저가 되기전에 그만두었지만) 생각해낸다. 떠오르던 희망들과 행복한 순간들, 호기심 솟아나고 재미있던 결국은 한번도 보지못한 야생화의 이름들. 사랑. 그녀는 감사하게 생각한다. 마치 세상에는 -아무리 임시로라도, 아무리 연약한 것일지라도-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불행으로부터 빠져나올 수 있는 무작위적이고 물론 불공평한 감정관리 계산법이 있기라도 한 것 같다.
아무렴 그렇지. 조이스는 생각한다. 그렇지.
금요일에 조이스는 책방에 간다. 사인을 받으려고 책과 함께 고급 초컬릿 상자도 가지고 간다. 그녀는 줄을 선다. 사람들이 많이 온 것에 조금 놀란다. 자신 또래의 여자들과, 나이가 더 많거나 어린 여자들이다. 나이가 모두 아래인 남자들도 더러 있고 몇몇은 여자친구와 함께 와 있다.
조이스에게 책을 판 여자가 조이스를 알아본다.
“돌아오다니 반가와요.” 그녀는 말한다. “글로브지에 난 리뷰 봤어요? 굉장하죠?”
조이스는 당황한다. 사실 조금 떨린다. 말을 못하겠다.
그 여자는 줄을 따라가며 이 책방에서 산 책만 여기서 사인을 받을 수 있고, 크리스티 오델이 쓴 글이 실린 문집은 해당이 안된다고 사과와 함께 설명한다.
조이스 앞에 선 여자가 키가 크고 덩치도 컸기 때문에 그 여자가 사인을 해 주는 테이블에 책을 놓기 위해 몸을 숙이기까지 조이스는 크리스 오델을 볼 수 없었다. 그리고는 그녀는 포스터와 파티에 있었던 여자와 전혀 다른 여자를 발견한다. 검은 옷과 검은 모자는 없다. 크리스티 오델은 장미빛 실크로 만들고 컬러에 금구슬이 수놓인 자켓을 입고있다. 은은한 분홍색의 소매없는 셔츠를 안에 입고 있다. 머리에는 금색톤이 돌고, 귀에는 금귀걸이, 머리카락처럼 가는 금목걸이가 목에 걸려 있다. 입술은 꽃잎처럼 반들거리고 눈두덩이는 황갈색 아이쉐도우가 발라져있다.
그렇지, 누가 불쾌하고 패배자같은 인상을 가진 작가의 책을 읽으려 들겠어.
조이스는 무슨 말을 할지 생각해보지 않았다. 닥치면 생각나겠지 했다.
서점 주인이 다시 말했다.
“사인 받고 싶은 페이지들을 펼치셨나요?”
조이스는 책 페이지를 펼치기 위해 초컬릿 상자를 내려놔야 한다. 실제로 목구멍이 간질거리는게 느껴진다. 크리스티 오델이 고개를 들어 그녀를 보더니 미소를 짓는다. 잘 훈련된 친절과 직업적으로 거리를 두는 미소다.
“이름이 뭐죠?”
“조이스면 되요.” 시간이 얼마 주어지지 않는다.
“러프 리버에서 태어났죠?”
“아뇨.” 크리스티 오델은 살짝 불쾌감을 보이며 말한다. 아니면 흥이 좀 식는듯한 모습이다. “잠깐 살기는 했죠.”
기간을 말해볼까?
조이스는 초컬릿 상자를 집어든다. 이 메이커는 꽃모양 초컬릿을 만들기는 하지만 백합모양은 만들지 않는다. 장미와 툴립뿐이다. 그래서 백합과 많이 다르지 않은 툴립을 샀다. 둘다 구근이니까.
“‘죽은 자식을 위한 노래’ 라는 이야기에 대해 감사를 하고 싶었어요.” 조이스는 빨리 말하느라고 긴 제목을 얼버무리듯한다. “나에게 큰 의미가 있었어요. 이건 선물이에요.”
“정말 멋진 이야기죠.” 서점 주인이 상자를 챙긴다. “이건 내가 가지고 있을게요.”
“폭탄 아니에요.” 조이스는 웃으면 말한다. “초컬릿 백합이에요. 사실 튤립 인데, 백합은 만들지 않아서 튤립을 샀어요. 게 중 나은 것 같아서.”
조이스는 서점 주인이 이제 웃음이 사라지고 그녀를 딱딱한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는 것을 눈치챈다. 크리스티 오델은 “고맙습니다.” 하고 말한다.
크리스티의 얼굴에는 조금치도 알아보는 눈치가 없다. 그녀는 수년전 러프리버에서의 조이스도 며칠전 파티에서의 조이스도 기억하지 못한다. 그녀 자신이 쓴 이야기 제목도 알아들은 건지도 알 수 없다. 얼핏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같다. 마치 그녀가 기어나와서는 내버린 것처럼.
크리스 오델은 거기 앉아서 세상에 자신이 할 수 있는거라고는 조이스의 이름을 쓰는 것 뿐이라는 듯이 이름을 쓴다.
“얘기 재미있었어요.” 서점직원이 여전히 초컬릿 가게 여직원이 굽슬거리는 노란 리본을 매 준 상자를 바라보며 말한다.
크리스 오델은 고개를 들어 다음 사람에게 인사를 하고, 조이스는 드디어, 자신은 웃음거리가 되고 초컬릿 상자는 혹시라도 경찰의 주목을 받기 전에 비킬 때가 왔다고 느낀다.
론스데일 에버뉴를 걸어올라가며, 언덕을 올라가며 조이스는 좀 풀이 죽지만 서서히 평정을 찾는다. 심지어 이 일도 언젠가 작가가 재미있는 이야기로 만들어 쓸 것이 될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도 놀라지는 않을 것이다.
-끝-
From the short story collection Fiction
https://buecherblogger.files.wordpress.com/2013/02/alice-munro_fiction.pdf
2013 노벨상 수상자 앨리스 먼로의 단편이다. 본래 먼로는 장편보다는 단편을 주로 쓰는 작가라서 그의 단편이 이미 익숙하신 분들도 많을 것이다. 국내에 출판된 먼로의 책은 현재 온라인 검색으로는 네 권 밖에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 사이에 독립출판이나 매거진에서 번역된 적이 있다면 할 수 없지만 일단 온라인에서 영어로 저작권 문제없이 일반에게 공개된 9개의 작품 중에서 그 책들에 포함되지 않은 작품이 있어서 번역을 하기로 결정했다.
제목 ‘픽션’은, 이야기 내용상 액자형 픽션/단편소설을 다루고 있기도 하고, 이야기가 논픽션이 아니라 픽션/허구라는 점이 중요해 보여서, 맥락 상, (픽션)작가의 픽션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논픽션인 삶의 픽션같은 부분을 현재형으로 아이러닉한 톤을 살리기 위해, 소설이나 허구라고 번역하지 않고 ‘픽션’이라고 그냥 두기로 했다.
조이스의 과거는 과거형으로, 그 다음에는 현재형으로 이어지는 나레이션이 재미있다.
*역주 영어는 술을 말할 때 알콜이 아니라 일반적으로는 drink를 쓰게 되지만 여기서 쓰는 booze, sip 등을 쓰고, 흔히 양주는 보통 liquor이라고 하고 맥주는 beer, suds(거품이 나서)지만 더 나아가 브랜드 이름을 말 하는 수도 많다. 콜라를 먹는다고 하지 않고 펩시나 코크를 말하는 것 같은 식이다. 내가 아는 한 한국어는 딱히 술의 다른 별칭을 찾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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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
해진 후의 마을 -가즈오 이시구로
해진 후의 마을 -가즈오 이시구로/ 이은지 옮김
A Village After Dark
By Kazuo Ishiguro
뉴요커 2001년 3/21 호
https://www.newyorker.com/magazine/2001/05/21/a-village-after-dark
한 때는 나도, 몇 주씩 영국을 돌아다니고도 정신이 멀쩡한 적도 있었다. 아니, 여행이 외려 나의 정신을 맑게 해주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제는 늙어서 그전보다 쉬이 정신줄을 놓는다. 그게, 해가 지고 나서 바로 도착한 그 마을에서 내가 전혀 방향감각을 찾을 수가 없었던 이유다. 내가 얼마전까지 살았고,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던 그 마을에 왔다는 것을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내가 알아 볼 수 있는 건 하나도 없었고, 어느새 나는, 그 지역 특유의 작은 돌집들이 양옆에 늘어선, 이리저리 꼬이고 불도 잘 안 밝혀진 골목을 걷고 있었던 것이다. 대부분의 골목들은 어찌나 좁은지, 가방이나 팔꿈치가 이 쪽 저 쪽 벽에 쓸리지 않고는 지나갈 수가 없는 지경이었다. 그래도 나는, 어둠 속에서 더듬거리며, 혹시나 마을광장이 나와주지 않으려나 바라면서 계속 걸어나갔다. -거기가면 적어도 방향은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면 마을 사람들 중 하나를 만나든가 말이다. 얼마간 시간이 흐르고 어느 쪽도 만나지 못하자 피로가 몰려왔고, 나는, 여기서 최선의 방법은, 집을 하나 무작위로 골라서 문을 두드리고 누군가 나를 기억할 만한 사람이 문을 열기를 바래보는 것이라고 결정했다.
나는, 문 위의 들보가 워낙 낮아서 들어가려면 다리를 구부려야 들어갈 수 있게 보이는 특별히 건덩거려보이는 문 앞에 멈춰섰다. 문 가장자리로 침침한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고, 목소리와 웃음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래서, 안에 사람들이 말소리 너머로 들을 수 있도록 �� 소리 나게 두드렸는데, 바로 그 순간 누군가 내 뒤에서, "안녕하세요?" 하고 말을 걸어왔다.
돌아서자, 스무살 정도의 젊은 여자가 너덜거리는 청바지와 찢어진 스웨터를 입고 어둠 속에 조금 떨어져 서 있었다.
"저를 바로 지나쳐 지나가셨어요" 그는 말했다. "불렀는데도."
"내가요? 이런, 미안해요. 무례하게 굴 생각은 없었는데"
"플레쳐씨 맞죠?"
"그렇습니다만," 나는 조금 우쭐해서 대답했다.
"우리집 앞을 지나가실 때 웬디가 플레쳐씨 같다고 하더라구요. 그냥 난리가 났었어요, 우리. 그 무리 중의 한 분이죠? 데이비드 매지스하고 나머지 사람들 말이에요."
"맞아요. 하지만 매지스가 제일 중요한 사람이라 하기는 힘든데, 딱히 그 사람을 집어 말하다니 놀랐네요. 다른 훨씬 더 중요한 사람들도 많은데."
나는 다른 이름들을 몇 개 읊어대며, 그 여자가 내가 대는 이름마다 고개를 끄덕이며 아는 척 하는 것을 흥미롭게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 사람들 알 세대가 아닌 것 같은데," 나는 말했다. "이걸 안다는 게 다 놀라운데요, 난"
"우리 세대 전이긴 하죠. 하지만 우리는 선생님 무리에 대해서 전문가인걸요. 우리는 그 시대에 살았던 대부분의 나이든 사람들보다도 선생님들에 대해 더 잘 알고 있어요. 웬디는 플레쳐씨를 사진으로 바로 알아 봤구요."
"젊은 사람들이 우리들에게 그런 관심을 가지고 있는 줄 몰랐는데요. 먼저는 내가 그냥 지나쳐가서 미안해요. 하지만, 그저 내가 나이가 들어서, 여행을 할 때면 정신이 좀 없어요."
문 너머에서 뭔가 활발한 이야기가 오가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나는, 이번에는 좀 참을성 없이 다시 문을 두드렸다. 그 여자하고의 만남을 빨리 끝내고 싶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여자는 나를 잠깐 보고 있다가 말했다. "그 당시 선생님하고 같이 다니던 사람들은 다 그래요. 데이비드 매지스가 몇 년전에 여기 왔었는데, 93년인가, 아니 94년일지도 몰라요, 그 사람도 꼭 그랬어요. 좀 희미한 듯한. 여행을 계속 다니면 나중에는 그게 그렇게 되나봐요."
"아, 매지스가 여기 왔었다구요? 거 재미있네요. 말했지만, 그 사람은 그닥 중요한 인물이 아니었다니까요. 그런 생각은 이제 그만 두는게 좋아요. 그런데, 이 집에 누가 사는지 말해 줄 수 있을까?"
나는 문을 다시 두드렸다.
"피터슨네요." 그녀는 말했다. "오래된 집이죠. 선생님을 아마 기억할거에요."
"피터슨네라."나는 반복했지만 나에게는 무의미한 이름이었다.
"우리 집으로 가지 그러세요. 웬디가 완전 흥분했었는데. 우리 다 그랬지만요. 우리가 그 당시 사람들과 얘기할 수 있는 건 정말 드문 기회거든요."
"나도 정말 그러고 싶은데, 내가 일단 거처를 잡는게 급선무에요. 피터슨네라고 했지요?"
나는 다시, 이번에는 제법 거칠게 문을 두드려댔다. 드디어 문이 열리고, 온기와 빛을 골목으로 쏟아냈다. 나이든 남자 하나가 문간에 서 있었다. 그는 나를 가만히 보더니, "혹 플레쳐씨는 아니겠지요?"하고 물었다.
"맞아요. 금방 이 마을에 도착했어요. 며칠간 여행 중이었지요."
그는 내 말을 잠시 생각해보더니 말했다. "뭐, 들어오시지요."
들어가서 보니, 거친 나무로 만든 망가진 가구가 가득찬 지저분한 좁은 방이었다. 벽난로에서 타는 통나무가 불빛의 유일한 근원이었고, 그 불빛으로 방 안에 웅크린 여러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노인이 나를 불 곁의 의자로 마지못해 데리고 가는 품이, 그 자리에 본인이 앉아있었던 것 같았다. 일단 앉고보니, 내 주변이나 방에 있는 다른 사람들을 볼 수 있도록 머리를 돌리는게 쉽지 않은 것을 발견했지만, 불에서 오는 온기는 아주 반가운 것이었고, 한동안 불길을 그저 바라보니 기분좋은 노곤함이 나를 덮쳐왔다. 내 뒤에서, 괜찮냐, 멀리서 왔냐, 배가 고프냐, 하고 묻는 목소리들이 들려왔고, 나는 내 답이 턱없이 불충분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지만 최선을 다해 답을 하고 있다보니 곧 질문들이 멈추었다. 그러고서야 나는, 나의 존재가 분위기를 대단히 어색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지만, 온기와 쉴 수 있는 기회가 어찌나 반가왔는지 별로 상관하지 않았다.
그래도 내 뒤의 정적이 몇 분이나 지속되길래, 나는 주인장에게 예를 더 갖추기로 마음먹고 의자에서 몸을 돌렸다. 바로 그 때, 그 순간, 갑자기 뭔가 알아 볼 것 같은 느낌이 강력하게 들었다. 내가 이 집을 고른 것은 무작위었지만, 이제보니 이 집이 바로 내가 이 마을에서 내가 지내던 집이었던 것이다. 내 눈은 즉시, 한 때 내 매트리스가 놓여있었고, 책을 읽거나 누구든 들어오는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며 고요한 시간을 보내던 나의 자리, -지금은 어둠에 묻혀있는- 먼 구석으로 향했다.
당시 여름에는, 창들, 그리고 자주 문까지도 열어놓아서 신선한 바람이 들어오도록 했었지. 집들이 들판으로 둘러싸여있었고, 키가 큰 풀숲에서 뒹굴며 시나 철학을 논하는 친구들의 목소리가 밖으로부터 들려오곤 했었고. 이 소중한 기억의 조각들이 얼마나 강력하게 몰려왔는지, 내가 바로 그 자리에서 그 구석자리로 달려가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었다.
누군가가 다시 내게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뭔가 묻는 거였겠지만 나는 거의 듣고 있지 않았다. 몸을 일으키며 내 자리였던 구석의 어둠 속을 들여다보았더니, 내 매트리스가 차리하고 있던 꼭 그 정도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낡은 커튼으로 덮인 좁은 침대를 볼 수 있었다. 그 침대는 나를 부르는 듯 했고, 나는 나도 모르게 노인이 뭔가 얘기하는 말을 자르고 들어가 말해버렸다.
"이것봐요." 나는 말했다. "내가 너무 노골적으로 청하는건지는 아는데, 하지만 이봐요, 내가 오늘 아주 멀리서부터 걸었기도 하고, 정말이지 누워서 눈을 꼭 좀 감아야겠어요. 몇 분이라도. 그 다음에는 원하시는 대로 기꺼이 이야기를 할게요." 방 안의 사람들이 불편한 몸짓들을 하는 게 보였다. 새로운 목소리가 제법 불만스러운 소리로 말했다. "그럼 그러시던가요. 낮잠이나 자요, 우리는 상관말고."
하지만 나는 이미 이런저런 것들을 헤치면서 내 자리를 향해 가고 있었다. 침대는 축축했고, 스프링은 내 몸무게 때문에 삐걱거렸지만, 방을 등지고 웅크리고 눕자마자 오랜 시간의 여행에서 온 피로가 따라잡기 시작했다. 잠에 빠져들면서 노인이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플리쳐가 맞네. 맙소사, 저렇게 늙어버리다니."
한 여자의 목소리가 말했다. "저렇게 자도록 둬도 될까요? 몇 시간 자다 깨면 우리까지 잠 못자고 깨어 있어줘야 할텐데."
"한 시간정도 자게 둬요." 다른 목소리가 말했다. "한 시간 넘게 자면 깨우자구."
그 시점에서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피곤이 나를 덮쳐버렸다.
쭉 이어지는 편안한 잠은 아니었다. 잠과 깨어있는 상태를 왔다갔다 하며 등 뒤의 방 안의 목소리들을 줄곧 인식하고 있었다. 어느 순간엔, 어�� 여자가 "내가 어떻게 저 사람에게 사로잡혔었는지 몰라. 이제보니 부랑자같구만." 하고 말 하는 것도 들었다. 비몽사몽한 상태에서 나는 그 말이 나한테 해당되는 말인지, 아니면 혹시 데이빗 매지스를 말하는 건지를 생각하다가 곧 다시 한 번 오랜 잠에 빠져 들었다.
내가 다시 깨어났을 때 방은 더 어둡고 추워진 것 같았다. 등 뒤의 목소리는 나직하게 계속 되었지만 대화의 내용은 알 수 없었다. 이제 나는 그런 식으로 잠이든 것이 부끄러웠고, 그래서 벽으로 얼굴을 향하고 잠시 더 움직이지 않고 누워 있었다. 하지만 나의 어딘가가 내가 깨어있다는 것을 보였는지, 전반적인 대화에서 따로 떨어져 나온 여자 목소리 하나가, "어, 저거 봐 봐. " 하는 게 들렸고, 뭔가 속닥거리는 소리를 주고 받는가 하더니 누군가가 내가 있는 구석으로 오는 소리가 들렸다. 어깨에 손 하나가 가만히 올라앉는 것을 느껴서 올려다 보았더니 여자 하나가 무릎을 꿇고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방이 다 보이도록 몸을 돌리지는 않았지만, 방이 죽어가는 불씨의 빛으로 밝혀진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고 여자의 얼굴은 그림자로만 보였다.
"자, 플레쳐." 그녀가 말했다. "얘기 좀 할 시간이에요. 당신이 돌아오기를 오래 기다렸어요. 당신 생각을 자주 했지요."
나는 그녀를 제대로 보려고 애를 썼다. 그녀는 어림 사십대였고, 어둠 속에서도 졸린 눈에 슬픔이 담긴게 보였다. 하지만 그 얼굴은 내 안에 미미한 기억조차 불러오는데 실패했다.
"미안하지만," 나는 말했다. "나, 당신에 대한 기억이 없어요. 하지만 우리가 과거에 만난 적이 있다면 미안해요. 내가 요즘에는 좀 정신이 없는 편이라서."
"플레쳐," 그녀는 말했다. "우리가 서로를 알 때 나는 젊고 아름다웠지요. 나는 당신을 우상화했고, 당신이 하는 말은 모두 정답같았어요. 이제 우리 여기서 다시 만났네요. 오랜동안 나는, 당신이 내 삶을 망쳤다는 얘기를 해주고 싶었어요."
"이건 불공평하잖아요. 그래요, 내가 많은 실수를 했는지는 모르지만, 그렇다고 무슨 정답을 알고 있다고 한 적은 한 번도 없거든요. 그 당시에 내가 한 말이라고는, 토론에 모두 의견을 보태는게 우리의, 우리 모두의 의무라는 것 뿐이었어요. 평범한 여기 사람들에 비해 우리가 아는게 훨씬 많았잖아요. 만약 우리같은 사람들이, 우리도 잘 모른다면서 주저만 하면, 그러면 누가 행동으로 옮기지요? 하지만 내가 정답을 알고 있다고는 말 한 적이 없어요. 그래요, 이러는건 불공평합니다."
"플레쳐," 그녀는 또 다시 말했는데 그 말투는 이상하게도 다정했다. "내가 당신 방으로 들어올 때면 우린 거의 매번 사랑을 나누었죠. 이 구석에서 우리는 온갖 아름답고도 더러운 짓을 했어요. 한 때 내가 당신만 보면 육체적으로 그렇게 흥분하곤 했던 걸 생각하면 이상해요. 그런데 이제 당신은 그저 냄새나는 걸레뭉치일 뿐이네요. 하지만 날 봐요. 나는 아직도 매력이 있어요. 얼굴에 주름이 좀 잡히긴 했지만, 내 몸매가 잘 살도록 내 손으로 만든 드레스를 입고 마을을 거닐면 많은 남자들이 아직도 나를 원해요. 하지만 당신, 이제는 아무도 당신을 쳐다보려고도 하지도 않을 거에요. 냄새 고약한 걸레조각과 살덩어리인 당신을."
"당신이 누군지 나 기억이 안나요." 나는 말했다. "하지만 근래 들어 난 섹스 할 시간 없어요. 다른 걱정거리들이 있으니까. 좀 더 진지한 것들 말이죠. 그래요, 그 당시 나는 많은 실수를 했죠.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보다는 잘못을 되돌리려는 노력을 더 해왔습니다. 봐요, 그래서 지금도 돌아다니고 있는거잖아요. 멈춘 적이 없어요. 내가 한 때 끼친 해들을 바로잡으려고 여행을 하고 또 하고 있는거에요. 이건 내가 그 당시 웬만한 다른 사람들보다 자신있는 부분이에요. 예를 들어, 매지스, 그 사람은 나만큼 잘못을 바로잡으려고 노력한 적 없을걸요."
여자는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봐요. 나는 이렇게 하곤 했죠, 손가락으로 당신 머리를 빗어내리는 이거. 이 더러운 것 좀 보라지. 틀림없이 온갖 기생충이 들끓고 있을 걸요." 하지만 그녀는 계속 손가락으로 머리의 더러운 매듭들을 풀어나갔다. 그녀는 내가 이로 인해 성적으로 흥분되길 바랬는지 모르지만 난 그렇지는 않았다. 그보다, 그녀가 쓰다듬는 것을 모성애같은 것으로 느꼈다. 순간적으로 나는, 실제로 내가 드디어 어떤 고치같은 보호막 속에 도달한 것만 같았고 다시 한 번 졸음을 느끼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녀는 갑자기 손짓을 멈추고 이마를 세게 때렸다.
"우리 곁으로 와서 좀 앉지 그래요? 잘 만큼 잤잖아요. 설명할게 많을텐데." 그 말과 함께 그녀는 일어나서 가 버렸다.
처음으로 나는 방을 둘러볼 만큼 몸을 충분히 돌렸다. 그 여자가 방에 흩어진 물건들을 지나서 불 곁의 흔들의자에 앉는 것이 보였다. 죽어가는 불 주변에서 웅크리고 있는 다른 세 명의 사람들이 보였고, -나무로 만든 트렁크 같이 생긴 것위에 함께 앉아있는- 다른 두 명은 나에게 말을 걸었던 여자와 비슷한 나이들인 것 같았다.
아까 그 노인이 내가 몸을 돌린 것을 눈치 채고는, 다른 사람들에게 내가 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렸다. 그 중 네 명이 말 없이 몸을 꽂꽂히 세워 앉았다. 그들이 하는 행동으로 봐서, 내가 자는 내내 그들이 나에 대해 얘기하고 했었다는 것을 할 수 있었다. 그들을 보고 있노라니, 실제로 무슨 얘기를 하고 있었는지도 대충 추측할 수 있었다. 가령, 그들이 내가 밖에서 만난 젊은 여자에 대해, 내가 젊은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그 동안 걱정스러운 의견을 표하고 있었다는 게 보였다.
‘영향력 받기가 쉬운 나이잖아요.’ 노인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내가 듣기론 여자가 플레쳐를 초대하던데.’
이에 트렁크에 앉은 여자들 중 하나는 이렇게 답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와서 무슨 해를 끼칠 수 있겠어요. 우리 때야 젊고 화려한 저런 작자들에게 넘어갔었지만, 요즘에는 가난하고 지쳐빠진 저런 이상한 사람들이 한 번씩 지나가면 좋았던 옛날에 대한 환상이나 깨지지요, 뭐. 어쨌거나 저런 사람들은 자기 입장을 워낙 많이 바꿔놔서. 지들이 뭘 믿는지도 모르니까.’
이에 노인은 고개를 저었을 것이다. ‘난 그 여자애들이 저 인간을 ��라보는 눈빛을 봤어요. 그래요, 지금 당장은 저 인간이 저기 형편없는 몰골이긴 하지만, 이제 자존감이 좀 채워지고 나면, 젊은 사람들이 잘 보이려고 살랑거리면서 자기 의견을 듣고 싶어하는 걸 알고 나면 저 인간을 막을 길이 없어요. 그 전하고 똑같을 거라구. 젊은이들이 자기 목적을 위해서 일하게 만들거에요. 저런 냄새나는 노숙자까지도 젊은이들에게는 목적의식을 줄 수도 있는거고 말이죠.’’
그들의 대화는 내가 자는 내내 그런 식으로 흘러갔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내 자리에서 그들을 바라보고 있는 지금의 그들은, 화덕의 잔여 불씨를 바라보면서 계속 죄책감 같은 것으로 조용히 앉아있을 뿐이었다. 잠시 후 나는 일어섰다. 네 명은 우습게도 나를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했다. 나는 그들이 뭔가 말하기를 조금 기다리다간 마침내 먼저 말했다.
"자, 내가 조금전에 자고는 있었지만, 다들 뭐라고들 했는지는 추측할만해요. 글쎄, 여러분은 여러분이 두려워하고 있는 그 일을 내가 할건지 그걸 알고 싶겠죠. 그래요. 나는 이제 곧 젊은이들이 있는 집으로 갈 겁니다. 나는 그들에게 그들의 에너지와 그들의 꿈과, 이 세상에서 지속적인 결과를 낳을 뭔가를 성취하고자 하는 욕구로 무엇을 해야할지 말해줄 겁니다. 이 한심한 사람들아. 당신들은 오두막집에 웅크리고 앉아서 그 무엇을 하는 것도 두려워하고, 나도, 매지스도, 그 당시의 다른 누구도 그저 두려워하고만 있잖아요. 그저 실수를 좀 했다고 해서 세상에 나가서 그 무엇을 하는 것도 두려워 못하고 있는거에요. 글쎄, 당신들이 이 오랜 시간동안 그렇게 무기력을 역설해왔는데도 저 젊은이들은 아직 그렇게까지 바닥을 치지는 않았더군요. 나는 그들에게 얘기 할 겁니다. 삼십분이면 당신들이 저질러 온 한심한 노력을 다 돌이킬 수 있겠지요. "
"봤지요?" 노인이 다른 사람들에게 말했다. "저럴 줄 알았다니까. 못가게 해야 하는데, 우리가 뭘 할 수 있겠습니까."
나는 방을 거침없이 건너가서 내 가방을 들고 밤길을 나섰다. 그 젊은 여자는 내가 나왔을 때 아직도 밖에 서 있었다. 마치 내가 나올 줄 알고 있었던 것처럼 보였고, 고개를 끄덕이곤 길을 안내하기 시작했다.
밤은 가랑비가 내리고 어두웠다. 우리는 틀고 돌며 집 사이에 난 좁은 길을 따라갔다. 우리가 지나친 어떤 집들은 너무나 쇠퇴하고 허물어지고 있어서 어떤 집들은 그냥 내 몸을 던지기만해도 부숴버릴 수 있을 것 같아 보였다.
여자는 몇 걸음 앞서 안내를 하면서 이따금 어깨 너머로 뒤를 돌아보았고, 한번은, "웬디가 정말 좋아할거에요. 걔가 아까 지나가실 때 선생님인줄 확신했었거든요. 제가 이렇게 오래 걸렸으니 지금쯤 자기가 맞았다고 확신을 하고 사람들을 죄다 불러모았을거에요. 모두 기다리고 있을 거에요." 하고 말하기도 했다.
"데이빗 매지스도 이런 환영을 받았나?"
"오, 그럼요. 그 분 오셨을 때 우리 정말 신났었죠."
"매지스, 되게 기뻤겠네. 항상 자기의 중요성을 과장해서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웬디는 매지스가 흥미로운 사람 중의 하나라고 했지만, 선생님은 , 뭐랄까, 중요한 분이라고 했어요. 웬디는 선생님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나는 그 말에 대해 잠시 생각을 해 보았다.
"있잖아요," 나는 말했다. "많은 것에 대한 내 의견이 바뀌었어요. 웬디가 내가 그 오래 전에 내가 하곤 했던 말을 할 거라고 기대하고 있다면, 글쎄, 실망할텐데."
여자는 내 말이 들리지 않기라도 하 듯, 확고한 목적을 가지고 흩어진 집들 사이로 나를 이끌어갔다. 잠시 후, 나는 여나믄 발자국 쯤 뒤에서 우리를 따라오는 발자국소리를 인식했다. 처음에 나는 그게 마을 사람들이 나와 다니는거라 생각하고 돌아보려는 것을 참았다. 하지만, 여자가 가로등 밑에 멈추어 서서 뒤를 바라보았기 때문에 나도 할 수 없이 멈추고 돌아설 수 밖에 없었다. 어두운 색의 코트를 입은 중년의 사내가 우리를 향해 오고 있었다. 가까와지면서 그는 손을 내밀어 나와 악수를 했지만 웃는 얼굴은 아니었다.
"그래,"그는 말했다. "이제야 왔구나."
그제서야 나는 내가 그를 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열 살 이후로는 보지 못한 그의 이름은 로저 버튼이었고, 우리 가족이 영국으로 돌아오기 전 내가 캐나다에서 2년동안 다닌 학교의 같은 반이었다. 로저 버튼과 나는 특별히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지만 그가 소심한 아이였기 때문에, 그리고 또한 그도 영국에서 왔기때문에 나를 한동안 따라다녔다. 그 때 이후로 나는 그를 본 적도, 그에 대해 들어본 적도 없었다. 이제 그의 모습을 가로등 불빛으로 지켜보고 있노라니 지난 세월이 그에게 별로 순탄하지 않았음을 눈치챌 수 있었다. 대머리에, 얼굴은 얽었고, 주름이 져 있었다. 전체 몸이 지쳐 늘어진 모양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옛 한 반 친구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지만.
"로저," 나는 말했다. "나, 막 이 여자분의 친구들을 만나러 가는길이야. 모여서 나를 맞이하려고 기다리고 있거든. 그렇지 않으면 오자마자 너부터 찾아 봤을 텐데 말이지. 하지만 상황이 이러니 바로 다음에 할 일로 담아 둘게. 오늘 밤, 자기 전에 말이야. 아무리 이 친구들 집에서 일이 늦게 끝나도, 끝나면 로저 집 문을 두드려야지, 하고 내가 막 생각하고 있었는걸."
"걱정 마, " 다시 걷기 시작하면서 로저는 말했다 "니가 얼마나 바쁜지 나도 알고 있단 말야. 하지만 우리 얘기 좀 하긴 해야 해. 옛날 얘기거리 좀 있잖아. 우리 마지막 봤을 때, -학교에서 말이야- 그 때는 내가 비리비리한 종자였지, 아마. 하지만 있잖아, 나 열네살, 열다섯 살이 되었을 때인가 완전히 사정이 바뀌었어. 나 정말 강해졌다구. 꽤나 리더 타입이 되었다고 할까. 하지만 너는 캐나다를 떠난지 오래였지. 나는 우리가 열다섯살 때 마주친다면 무슨일이 일어날까 종종 궁금해 하곤 했었어. 장담하건데 우리 사이, 많이 달랐을거야"
그가 그 말을 하자 갑자기 기억이 밀려왔다 : 그 당시 로저 버튼은 나를 숭상했고 그리고 나는 그걸 그를 괴롭히는 것으로 답했었다. 하지만, 우리 사이에는, 내가 괴롭히는게 그를 위해서 그러는 거라는 그런 야릇한 이해같은 것이 놓여있었다. 내가 예고도 없이 놀이터에서 갑자기 그의 배를 주먹으로 쳤을 때도, 복도를 지나다가 갑자기 괜히 그의 팔을 뒤로 꺾어 올려 그가 울음 터뜨리게 만든 것도, 다 그를 강하게 만들기 위해서 그러는 거라고 말이다. 그러니까 그런 공격의 제일 중요한 목적은, 우리 관계에 있어서 그가 나를 계속 경외하도록 만드는 거였던 것이다. 이 모든 기억들이 내 곁에서 지친 걸음으로 걷고 있는 이 친구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나에게 되살아났다.
"물론," 로저 버튼은 계속했는데 아마도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추측하고 있었을 것이다. "니가 나에게 한 식으로 하지 않았으면, 내가 15살 때 된 인물이 되지 않았었을 수도 있었겠지. 어떻든 나는, 만약 우리가 몇 년 후쯤 다시 만났다면 어땠을까, 하고 자주 상상해왔어. 나도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인물이었으니까, 그때쯤에는. "
우리는 다시 집들 사이에 난 좁고 뒤틀린 골목을 걷고 있었다. 젊은 여자는 아직도 길을 이끌고 있었지만 이제는 훨씬 빨리 걷고 있었다. 그녀가 우리 앞의 어느 모퉁이를 도는 것을 겨우 잡아내는 경우가 잦았고, 그녀를 놓치지 않으려면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요즘은 물론," 로저가 말하고 있었다. "나도 좀 관리를 안 하고 있는 편이지만, 야, 너는 옛날보다 훨씬 못 한 모양새야, 어째. 너랑 비교하나까 내가 막 운동선수같네, 그냥. 꼭 집어 얘기하긴 그렇지만, 이제 넌 정말이지 더러운 늙은 부랑자 꼴이잖아, 안그래?. 하지만 니가 떠나고 난 후에도 오랜동안 내가 너를 숭상해온거 알아? 플레쳐라면 이걸 할까? 내가 이걸 하는 걸 봤으면 플레쳐가 뭐라고 생각할까, 이렇게. 그렇지, 15살 무렵이 되어서야 겨우 돌이켜보고 니가 어떤 인간인지를 알게되었지. 물론 그 때는 화가 많이 났지. 지금도 가끔 생각을 해보거든. 돌이켜보면서, 이런 그 자식 완전히 더러운 뫄뫄였던 거였잖아 하고 생각하지. 그 자식, 그 때는 나보다 , 무게도 더 나가고 근육도 있고, 나보다 좀 더 자신감있었고, 그걸 완전히 이용해먹었던거지, 하면서. 그래, 돌이켜보면 너무나도 잘 보이는거야, 니가 얼마나 못된 치졸한 자식이었는지. 아, 물론, 오늘의 너를 얘기하는 것 아니야. 우리는 다 변해. 그 정도는 내가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어."
"여기 오래 살았어?." 주제를 바꿨으면 하는 마음으로 내가 물었다.
"7년쯤? 물론 여기서 니 얘기들을 많이 하지. 가끔 나도 우리 어렸을때 사이를 얘기해 주곤 하는데, "하지만 아마 그 사람이 나를 기억하지는 못 할거에요." 하고 늘 말해 두지. "자기가 괴롭히고, 이래라 저래라 부려 먹던 비썩 마른 조그만 남자애를 그 사람이 왜 기억을 하겠어요? "하고 말야. 아무튼, 여기 젊은이들은 요즘 너에 대해 점점 더 이야기를 많이 해. 분명히 너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애들이 가장 너를 이상적으로 그리는 경향이 있지. 니가 온 것도 그걸 누리기 위해서 온 거겠지. 그래도 너를 탓할 생각은 없어. 너도 니 일말의 자존감을 좀 살려 보려고 노력할 권리는 있는거니까."
정신을 차려보니 우리는 탁 트인 들판을 향해 서 있었고 둘 다 멈추어 섰다. 뒤를 돌아보자 나는 우리가 마을을 걸어 벗어 나왔다는 사실을 알았다. 마지막 집이 우리 뒤 저만치 떨어져 있었고, 우리는 내가 두려워했던데로 그 젊은 여자를 놓쳐버린 상태였다. 사실을 말하자면 나는, 우리가 이미 한동안 그녀를 따르고 있지도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순간 달이 나왔고, 나는, 달빛으로 볼 수 있는 그 너머까지 뻗치는 광대한 풀밭의 끝자락에 우리가 서 있다는 것을 알았다
로저 버튼은 나에게 돌아섰다. 그의 얼굴은 달빛 속에서 온순하고 거의 다정하게 보였다.
"그래도, "그는 말했다. "이제는 용서 할 때야. 그렇게 계속 걱정하지 않아도 돼. 너도 아다시피 과거의 어떤 특정일들은 종국에는 너에게 되돌아올거야. 하지만, 우리가 아주 어렸을 때 한 일들을 다 책임질 수는 없는 거잖아."
"물론 니 말이 맞겠지. "나는 말했다. 그리고 돌아서서 어둠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일단 지금은 내가 어디로 가야할지를 모르겠어. 젊은 친구들이 어느 집에 모여서 나를 기다리고 있거든. 지금쯤 나를 위한 따뜻한 불과 뜨거운 차를 준비해놓고 있겠지. 손수 구운 케이크하고 어쩌면 맛있는 스튜도 준비했을지 몰라. 조금전까지 우리가 따라 가던 여자가 나를 데리고 들어가는 순간 박수갈채가 터지겠지. 웃음 띈 존경의 표정이 내 주변을 둘러쌀 거고. 지금 그게 어딘가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거야. 단지, 내 갈 길을 모르겠는거지.
로저 버튼은 어깨를 으쓱 했다. "걱정하지마. 가는 길은 별로 어렵지 않을거야. 단지, 그 여자가 웬디 집에 걸어간다는 식으로 말했다면 그건 너를 잘못 생각하게 만든거야. 너무 멀어. 버스를 꼭 타야 돼. 그러고도 제법 먼 여행 길이야. 두 시간정도랄까. 하지만 걱정하지마. 내가 어디서 버스를 타는지 알려줄 테니까."
그 말과 함께 그는 다시 집들이 있는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따라가면서 보니, 시간이 매우 늦었고, 친구가 얼른 잠을 좀 자고 싶어하는 게 느껴졌다. 우리는 다시 집들을 돌아서 몇 분간을 걸었고, 그는 우리를 마을 광장으로 이끌었다. 사실 광장은 너무 작고 볼품없어서 광장이라고 불리기도 좀 그런 곳이었다. 가로등 하나가 비추고 있는 외딴 작은 잔디밭 정도였다. 불빛이 비치는 너머로 겨우 보이는 곳에 가게 몇 개가 있었고, 모두 하루의 장사를 끝내고 문을 닫은 상태였다. 완전한 적막에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았다. 옅은 안개가 땅 위로 떠돌고 있었다.
로저 버튼은 잔디밭에 도달하기 전에 멈춰 서서 가리켰다.
"저기, 저기 서면 버스가 올 거야. 내가 말했듯이 짧은 거리가 아니야. 두 시간 정도지. 하지만 걱정마, 젊은이들은 널 기다릴거야. 걔네들은 요즘에 그거 말고 믿을 것이 별로 없으니까 말이야."
"시간이 ���게 늦었는데," 내가 말했다. "버스가 올까?"
"아 그럼. 물론 좀 기다려야 할지는 몰라. 하지만 결국 버스가 오긴 할거야" 그러더니 그는 내 어깨를 확신을 주는 듯한 손짓으로 만졌다. "내가 볼 때도 여기 서 있다보면 니가 좀 외로울 것 같긴 하지만 날 믿어, 버스가 오는 순간 기운이 솟을거야. 오, 그럼, 버스타는 건 언제나 즐거운 일이지. 불이 환히 밝혀져 있고, 웃고 농담하고 창밖을 가리키는 흥겨운 사람들로 가득할테지. 일단 타기만 하면 따뜻하고 편안할 거고, 다른 승객들이 너랑 얘기도 나눌거고, 먹을거나 마실 것을 나눠주기도 할 거야. 노래를 하기도 하겠지. 뭐 그거야 기사에게 달려 있지만. 어떤 사람은 하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싫어하거든. 자, 플레쳐, 만나서 반가웠어."
우리는 악수를 했고, 그는 돌아서서 가 버렸다. 나는 그가 두 집 사이의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았다.
나는 잔디밭으로 걸어가서 가로등 밑에 가방을 내려놓았다. 멀리 차 소리가 들리지 않나 귀를 기울였지만 밤은 온전히 잠잠했다. 그래도 나는, 로저 버튼이 한 버스에 대한 묘사로 한결 기분이 좋아진 상태였다. 게다가, 이 여행의 끝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환영식, 그 젊은이들의 존경으로 가득찬 얼굴을 떠 올���자, 내 안 깊은 곳에서는 낙관적인 생각이 슬그머니 살아나는 것이었다.
뉴요커 지에 실린 당시, 작가의 의도가 무엇인가에 대해 열띤 논쟁이 일어났던 작품이다. 최근의 캣퍼슨도 그렇고, 뉴요커지에 실린 글치고 안 그런 글도 없는 것은 약간의 마케팅 전략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어떻든 영향력면에서 권위있고 매력있는 플랫폼인 것은 사실이니까. 과거와 미래가 불투명한 내용으로 인해, 다른 단편에 비해 짧은 길이임에도 불구하고 독자들에게 하나의 책을 능가하는 가능성을 열어 주는 글이라는 평을 받기도 했다. 본래 가즈오 이시구로는의 작품세계는, ‘남아있는 나날’과, ‘나를 보내지 마’ ‘‘파묻힌 거인’에서 보여 주듯, 등장인물의 기억과 백그라운드를 이미 독자도 알고있다는 듯한 전제로, 수수께끼 아닌 수수께끼를 안고 따라가는 몽환적인 면이 있다.
이시구로 본인은 사적인 대화에서, 이글이 자전적인 이야기는 아니며, ‘위로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쓰면서 새로운 서술 방식을 실험해보는 의도로 썼다고 말했다고 전해지며, 실제로 그 책의 주인공 라이더를 연상케한다는 평이 있다. 글도 실험적이지만, 책을 쓰면서 단편으로 아이디어를 실험해 본다는 것 자체도 실험적이다. 나의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파묻힌 거인’의 도입부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https://sloopie72.wordpress.com/2011/10/31/kazuo-ishiguro-a-village-after-dark-from-the-new-yorker-may-21-2001/ 참조
본래 이시구로가 다소 페이스가 느린 감이 있고, 처음 읽을 때는 약간 혼란스러운 경향이 있지만 곧, 어딘가 극단적으로 이기적이기도 하고, 어딘가 순진한 듯도 한, 주인공 플레쳐의 드러나지 않은 과거와 미래에 대해, 우리가 자신도 모르게 상상으로 공란을 채워넣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해 주었을 것이다.
스티븐 킹은 저서 On writing에서 예문으로 내놓았던 글을 바탕으로 단편 1408을 썼고, 존 쿠삭 주인공의 삼류 영화가 된 일도 있으며, 줌파 라히리나 루이즈 얼드리치 등의 작품에서 보듯이, 단편으로 발표된 글들이 모여 나중에 하나의 소설이 되기도 하니까, 장차 이 단편이 연관되는 생각으로 일련의 글을 써서 책이 나올 지도 모른다고 생각해본다.
또한 작가 벤 마커스가 읽은 오디오로도 즐길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오디오 : https://www.newyorker.com/podcast/fiction/ben-marcus-reads-kazuo-ishigu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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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트 -마가렛 애트우드
The Tent
-Margaret Atwood 지음/ 이은지 옮김
너는 텐트 안에 있지.
밖은 너르고 추워. 아주 광활하고 몹시 춥지. 바람이 휭휭 불어대는 황야야.
바위도 있고, 얼음과 모래가 있고, 니가 빠져 죽어도 모를 깊은 늪이 있지. 폐허도 있어. 많은 폐허들이 있지. 그 폐허 안과 그 주변에는, 망가진 악기들과, 오래된 욕조들과, 멸종된 육지 포유류들의 뼈들과, 신은 발은 없는 신발들과, 자동차 부품들이 흩어져 있지. 가시가 있는 풀섶들과, 가지가 구불구불한 나무들과, 세찬 바람들이 있어.
하지만 텐트안에 너는 조그만 초를 가지고 있지. 그걸로 온기를 유지할 수가 있어.
저 밖 쓸쓸한 황야에서는, 많은 것들이 울부짖고 있지. 많은 사람들이 울부짖고 있어. 어떤 사람들은 그들의 사랑이 죽거나 죽임을 당해서 온 슬픔에서 울부짖고, 어떤 사람들은 적들의 사랑이 죽거나 죽임을 당하도록 만든 승리감에 도취되어 울부짖기도 하지. 어떤 울부짖음은 도움을 청하는 것이기도 하고, 어떤 건 복수를 다짐하는 울부짖음이고, 피를 부르는 울부짖음이기도 하지. 그 소음이 아주 귀를 멀게 할 정도야.
이건 섬뜩한 일이기도 하지. 어떤 울부짖음은, 니 텐트 안, 니가 조용히 웅크리고 있는 거기 바로 가까이에서 들려 오거든. 너는 니 목숨이 두렵기도 하지만, 특히 니가 사랑하는 사람들 걱정으로 겁에 질리지. 너는 그들을 보호하고 싶어. 너는 그들을 니 텐트 안으로 거둬들여 보호해주고 싶은거야.
문제는 말야, 니 텐트는 종이로 만들어졌다는거야. 종이는 무엇이 들어오지 못하게 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거든.
너는 벽에다, 종이벽에다, 텐트 안에다 뭔가를 써야만 한다는 것을 알지. 위아래를 뒤집어서, 그리고 글자순을 거꾸로 써야만 하고, 종이의 모든 가능한 표면을 모두 니 글로 덮어야만 하지.
어떤 글들은 저 밖, 모래 언덕들과 얼음 덩어리들과 폐허와 뼈 등등 사이에서 밤낮으로 지속되고 있는 울부짖음을 묘사해야만 하지. 그 울부짖음을 사실 그대로써야만 하지만, 이게 또 어려운 일인게, 종이벽 너머로는 궤뚫어 볼 수가 없어서 사실을 정확하게 쓸 수가 없는거야. 그렇다고 니가 밖으로, 광야로 나가서 직접 확실히 보기는 싫고 말이지.
어떤 글은, 니가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그리고 니가 그들을 보호하고 싶은 욕구에 대한 것들이어야 하는데, 이것도 어려운게, 그들이 다 너하고 같은 식으로 그 울부짖음을 듣는게 아니거든.
어떤 사람들은, 저 황야에서 무슨 피크닉이라도 하는 소리같다고, 큰 밴드 연주소리나, 신나는 비치의 파티 소리같다고 생각하거든. 그래서 그 좁은 공간 안에 너와, 조그만 초 하나와, 너의 두려움과, 그리고 니가 끄적거리고 있는 것들에 대한 너의 짜증나는 집착, 그 이해할 수 없는 집착과 함께 갇혀있어야 한다는 것을 원망하며 자꾸 텐트 벽 밑으로 기어나가려고 하지.
하지만 이게 너의 쓰기를 막지는 못해. 너는 니 목숨이 달린 것처럼 글을 쓰지. 니 목숨과, 그리고 니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목숨이 달려있는 것처럼 말이야. 너는 속기로 그들의 성품과, 그들의 모습과, 그들의 습관과, 그들의 역사를 기록하지. 물론 그들의 이름은 바꿔야지. 왜냐하면, 넌 증거를 남기고 싶지는 않거든. 니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안 좋은 종류의 주의를 끌게하고 싶지는 않거든.
니가 사랑하는 대상 중 몇몇은 -지금 니가 막 깨닫고 있는건데- 사람도 아니고 도시와 장소, 마을, 호수 그리고 옛날에 입고 다녔던 옷, 이웃에 있는 카페, 그리고 오래전 잃어버린 개 같은 것들이로구나.
너는 밖에 울부짖는 것들의 주의를 그것들에게 기울이게 하고 싶지 않지만, 마치 냄새라도 맡듯 어쨋든 그들은 꼬여들지. 종이텐트의 벽은 너무 얇고, 그들은 니 초의 빛을 볼 수 있거든. 그리고, 자연히 그들이 호기심이 들 수 밖에 없는게, 니가 먹이일 수도 있는거잖아. 니가, 그들이 이렇게든 저렇게든 죽여가지고 서로를 축하하며 울부짖은 다음 먹어치울 수 있는 놈인지도 모르잖아.
너는 너무 눈에 띄어. 니 스스로가 너를 그렇게 만들었어. 니가 니 존재를 알렸다구.
그들이 무리지어 모이면서 다가오고 있어. 그들은 울부짖음을 잠시 멈추고 안을 들여다보고, 주변 냄새를 맡고 다니고 있어.
왜 너는 애초에, 너의 글이, 이 얄팍한 동굴 안에서의 미친 글쓰기가, 이, 점점 감옥같이 느껴지는 벽을 타고 왔다갔다 오르락내리락 하는 너의 이 움직임이, 누구라도 보호해 줄 것이라고 생각을 했던거니? 이게 너 자신이라도 보호할 수 있다고 생각한거니?
너의 이 끄적임이 일종의 갑옷이라는, 일종의 부적이라는 믿음, 그건 착각이야. 왜냐하면 말이지, 이 종이 텐트가 얼마나 연약한 것인가를 너 자신 보다도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없거든.
이미, 구둣발 발자국 소리가, 긁적거리는소리가, 비비적거리는 소리가, 거친 숨소리가 들리고 있어. 바람이 들어오고, 초가 넘어가며 확 불타 올라, 펄럭이는 텐트 자락에 불이 붙는구나. 그리고 넓어져가는 검은 가장자리로 너는 그 울부짖는 것들의 눈들을 볼 수가 있지. 너의 종이 쉼터가 타오르는 불 빛으로 붉고 번질거리는 눈들을.
하지만 어찌됐든 너는 계속 써 나가지.
왜냐햐면 말이야, 니가 할 수 있는 일이 그것 말고는 뭐가 있겠니?
*역주:영문으로 대화체를 읽을 때는 무조건 반말로 읽는 습관이 있기도 하지만, 마가렛 앳우드 특유의 냉소적 위트를 전하기 위해서 반말로 번역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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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강 컨버터블(1974)
빨강 컨버터블(1974) - 사량약(Love Medicine 중에서) -
루이즈 엘드리치 지음 / 이은지 옮김
라이먼 라말틴
우리 인디언 보호구역서에는 내가 최초로 컨버터블을 몬 사람이었다. 물론 빨강 올즈모빌이었다. 나는 그 차를 우리 형 헨리 주니어와 공동으로 소유하고 있었다. 형의 부츠가 물로 차 들어오던 어느 바람부는 날, 형이 내 소유권까지 사 버리던 그 날까지는 공동소유였다는 말이다. 이제 헨리가 차 전체를 다 소유하고있으니, 그의 동생 라이먼(나 말이다), 라이먼은 어딜가나 발로 걸어 돌아다닌다.
애초에 내가 어떻게 내 차 지분을 살 정도도 돈을 벌었느냐고?
내 재주가 하나 있다면, 그건 돈을 벌기 쉽다는 것일 것이다. 나에게는 치피와부족에게는 드문 뭔가 돈에 대한 감각이 있었다. 처음부터 나는 그 쪽으로 남달랐고 모두들 그걸 알고 있었다. 예를 들자면, 나는 어메리칸 리전 홀에 구두를 닦으러 들어갈 수 있게 허락된 유일한 아이였고, 한 크리스마스에는 전도회를 위해서 집집을 다니면서 영적 꽃다발을 팔았다. 수녀들은 수익의 일부를 떼어주었다. 한 번 시작하자 나는 돈을 벌 수록 더 쉽게 더 벌어지는 것 같았다. 모두들 격려해 주었다. 내가 15세가 되던 해, 나는 졸리엣 카페에서 설거지 하는 일을 얻었고, 그 다음부터 일이 잘 풀려나갔다.
머지 않아 나는 곧 서빙을 하게되었고, 즉석 조리사가 관 두고 난다음에 난 그의 자리를 차지했고, 어떻게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까페의 매니저를 하고 있었다. 나머지는 끝난 얘기였다. 매니저를 계속 하고 있다가는 카페를 부분적으로 소유하게 되었고, 금새 카페 전체를 소유하게 되었던거다.
졸리엣을 한 일년쯤 가지고 있다가, 이 언저리 역사상 최악의 토네이도가 와서 다 날아가 버렸다; 가게 전체가 박살이 나 버렸다. 완전히 다 잃었다. 튀김기는 나무에 처박혀 있었고, 그릴은 종이쳐럼 반으로 찢어저버렸다. 그 때 나는 고작 16살이었지만, 그렇게 되기 전까지 나는 내 친척, 그리고 친척의 친척까지 다 불러다 밥을 먹였고, 그리고 헨리와 같이 내가 말한 그 빨강 올즈모빌 컨버터블도 샀던 거다.
우리가 그 차를 처음 봤을 때의 감동이란! 그 차를 처음봤을 때의 감동을 전해보겠다.
우리는 위니펙까지 차를 얻어타고 갔었는데 우리 둘다 수중에 돈을 좀 가지고 있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우리는 우리 전재산을 가지고 갔었다. 내 돈은 졸리엣 카페 보험금으로 탄 돈 전부 현금이었고, 헨리가 가진 돈은, 그 전 직장의 퇴직금으로 받은 수표 한 장하고, 보석공예 공장에서 받은 현직 임금 수표 한장 이렇게 수표 두 장이었다.
아무튼, 우리가 그 차를 본 것은 폴티지란 곳을 그냥 이런저런 것들을 둘러보며 걸어 가고 있었을 때였다. 바로 거기에, 눈에 생생하게 세워져있었다. 정말이지 살아있는 것만 같았다. 그 때 나에게는 ‘휴식’이라는 말이 떠 올랐는데, 왜냐하면 차는 그냥 거기 세워져 있는, 주차되어 있는, 뭐 그런게 있는 느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차는 거기에서, 차의 앞 유리창 왼 쪽에 판매용 이라는 표시를 달고 차분하게 빛나면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그리고는, 우리가 생각을 해보기도 전에 차는 우리 것이 되어있었고 우리 주머니는 비어버렸다. 우리에게는 집에 돌아갈 돈만 겨우 남아있었다.
헨리형과 나는 그 차를 타고 많이 돌아다녔다. 우리는 그 여름 내내 차를 몰고 어디론가 떠나곤 했다. 리틀 나이프 강과 포트 버톨드에 있는 만다레이를 향해 가고 있다가, 왁팔라까지 가버렸고, 그러다보면 갑자기 몬타나의 롹키보이에 가 있고 그랬다. 어떤 사람들은 여행을 하면 세부사항을 따르고 그러는데 우리는 그런것 따위에 구애받지 않고 그냥 매일 매일의 일상을 여기서부터 저기까지 갈 뿐이었다.
그래도 버드나무가 많던 한 곳은 기억한다. 그 나무들 밑에 누우면 편안하던 기억이 난다. 정말 편안했다. 내 주변으로 텐트나 마굿간처럼 가지가 휘어져 내려뜨려졌었다. 그리고 조용했다. 막 벌어지고 있는게 보일 정도로 바로 가까운 곳에서 주술의식이 거행되고 있었는데도 조용했다. 공기가 아주 잔잔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바람이 막 부는 것도 아니었다. 먼지가 휘날려 춤을 추는 사람들 주변을 딱 적당히 휘감으면 나는 기분이 좋았다. 헨리형은 팔을 활개를 치고 잤다. 그리고 나중에 형이 일어나서 우리는 또 차를 몰고 떠났다. 거기가 몬타나 어디 아니면, 블러드 보호구역에 있었을지도 모른다. 어디여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어떻든 거기가 그 소녀를 만났을 때였다.
그 아이의 머리는 귀 주변으로 돌돌 말려있었는데 그게 맨 처음에 눈에 띈 점이었다. 길 옆에 서서 팔을 내밀고 서 있길래 차를 세웠다. 키가 작은 아이였다. 얼마나 작은지 입고 있는 작업셔츠를 입은 모습이 마치 잠옷을 입은 것처럼 우스꽝스러웠다. 아이는 청바지를 입고 멋쟁이 모카신을 신고 있었고, 작은 여행용가방을 들고 있었다.
“타.” 헨리가 말했고 아이는 우리 가운데로 올라탔다.
“집에 데려다 줄게.” 내가 말했다. “너 어디 사니?”
“치킨.” 아이가 말했다
(역주: 실제로 알래스카에 있는 지명 닭,치킨 맞다) “도대체 그게 어디있는데!” 내가 물었다.
“알래스카.”
“오케이.” 헨리가 말했다. 그리고 그리로 차를 몰아갔다.
거기 갔을 때 우리는 떠나기 싫었다. 그 곳의 여름은 해는 완전히 지는 법이 없었고, 밤은 부드러운 어둠이었다. 마치 자연의 동물인 것처럼 그냥 졸기도 하다가 정신차려보면 또 깨어있곤 했다. 완전히 푹 자며 세상을 잠시 잊어버려야 한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그리고 식물들이 자라는 곳이었다. 그냥 흙이거나 이끼였던 곳이 다음날엔 꽃이고 풀이고 그랬다. 소녀의 이름은 수지였다. 아이의 가족은 우리를 정말 좋아했다. 우리를 먹여주고 거둬주었다. 그 사람들 집 옆에 우리 텐트가 따로 있었고, 아이들은 하루종일 들락날락 했다. 그 사람들은 영 다르게 생긴 헨리와 내가 형제라는 것을 영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우리는 어쨋든 우리들 엄마는 같은 사람인 것만은 안다고 말해주었다.
어느날 밤 수지가 놀러왔고, 텐트에 둘러 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계절이 바뀌고 있었다. 그 때쯤엔 밤도 길어지기 시작하고 있었고, 추위도 조금쯤 날카로와지기 시작하고 있었다. 우리는 수지에게 이만 떠나야겠다고 말했다. 아이는 의자 위에 올라가 섰다.
“내 머리를 한번도 보지 않았잖아.” 아이가 말했다.
사실이었다. 아이는 의자위에 서 있었지만, 아이가 둥글게 만 머리를 풀어 내리자, 머리는 바닥에 닿을 정도였다. 우리는 눈이 둥그래졌다. 그렇게 깔끔하게 말려 있을 때는 얼마나 머리가 많은지 알 수가 없었던거다. 그 때 헨리형이 웃기는 짓을 했다. 의자로 가서 ‘내 어깨에 올라타’ 하고 말했다. 아이가 그렇게 하자 걔 머리는 형의 허리까지 왔다. 그러자 형은 이리 저리 몸을 돌리기 시작했고, 그러자 아이의 머리는 양 옆으로 퍼져 나갔다.
“내가 예쁘게 머리를 기르면 어떨까 늘 궁금했었어.” 라고 헨리가 말했다. 우리는 모두 웃을 수 밖에 없었다. 형이 하는 짓은 정말 우스웠다. 우리는 다음날 아침 일어나서 그 사람들에게 작별읋 고했다.
흔히 말 하듯이 우리는 먼 들판으로 달려나갔다. 스포케인까지 가서 아이다호주를 지나 몬타나주까지 갔고 곧 콜롬버스를 따라 캐나다 국경을 따라 날씨와 나란히 달리기 시작했다. 데 락스, 그리고 보티노 카운티를 지나자 곧 집에 다다랐다. 그 여름, 우리는 여행 대부분을 후드를 한 번도 올리지 않고 다녔다. 집에 온 것은 마침 헨리가 지원했던 군대에서 이제 헨리 차례라는 것을 알려왔을 때였다.
군대가 헨리형를 너무나 반긴 나머지 해병대로 집어넣은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워낙에 벽돌집처럼 만들어진 사람이었으니까 말이다. 우리는 형의 인디안 코때문에 군대가 형을 좋아하는 거라 놀렸다. 형은, 노스다코타 고속도로를 따라 있는 표지판에 볼 수 있는 인디언 옆 모습의 모델인 시팅 불을 죽인 레드 토마핰(역주: 역사적 사건 속의 인물들) 을 닮아, 도끼처럼 커다랗고 날카로운 코를 가지고 있었다.
헨리는 훈련소로 떠났고, 크리스마스 때 한 번 휴가를 나왔고, 그 다음에는 그만 해외로부터 편지가 왔다. 1970년이었고 북부 산간지방에 주둔해 있다고 했다. 어딘지 지명은 모른다. 편지를 자주 쓰는 사람은 아니었고 적군에게 잡히기 전까지 두 통을 받았을 뿐이었다. 나는 도대체 그 베트남 적군이 북쪽인지 남쪽인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나는 배달될지 안 될자도 모르면서도 형에게 수 차례 답장을 썼다. 차에 대해서 계속 알렸다. 우리의 긴 여행 때문에 기계가 무리를 해서, 대부분의 시간에 수리를 하고 부품들을 뜯어고치고 있었다.
나는 늘 숫자에는 운이 좋은 편이어서 내가 징병이 될 것이라는 걱정은 하지 않았다. 내 번호가 몇 번인지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하지만 헨리는 그런 식으로는 나만큼 운이 좋지 않았고 결국 3년이 지나서야 형은 집으로 돌아왔다. 그 때쯤엔, 내 생각엔 정부는 대충 전쟁이 끝난 걸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형의 머리속의 전쟁은 계속되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나는 차를 완벽한 모습을 갖추어 놓았다. 형이 가기 전에 “이제 니 차다.”히고 나에게 열쇠를 던져주었지만, 형이 없는 동안 나는 그 차를 �� 차로 생각하고 있었다.
“스페어 열쇠를 줘서 고마워.” 나는 말했다. “혹시 모르니까 형 서랍에 넣어놓을게.”
형은 웃었다.
하지만, 집에 돌아왔을때, 헨리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그리고, 내가 말 해두고 싶은게, 좋은 방향으로 다르지 않았다. 뭐 그닥 좋은 방향으로 달라질것이라고 기대하기는 힘들다는 걸 알지만. 형은 말이 없었다. 너무 말이 없었고, 어디나 가만히 앉아있는 것을 불편해 해서 항상 일어나 돌아다녔다. 나는 이전에, 형과 내가 오후 내내 가만히 앉아서, 근육하나도 안 움직이고 우리 무게를 땅에 고스란히 실어 앉아서는, 그냥 세상을 바라보며, 아무거나 생각나는 거나 얘기하면서, 시간을 보내던 것을 기억했다. 그 때 형은 농담을 잘 했는데 이제는 형을 웃기기도 힘들었고, 혹시 웃더라도 숨 막히는, 주변사람들까지 목이 막히게 하는 소리를 냈다. 사람들은 그를 혼자 내버려 두었는데 그들을 뭐라 할 수도 없었다. 사실이었으니까. 헨리는 신경이 날카로왔고 못되게 굴곤 했으니까.
헨리가 없는동안 나는 엄마와 가족들에게 컬러 티비를 사줬었다. 아직도 내게 돈벌이는 쉬운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헨리 때문에 티비 산걸 산 것을 후회하게 되었다. 게다가 컬러티비를 산 것도 후회거리였다. 왜냐하면 흑백은 그래도 조금 오래되고 먼 일처럼 보일 수 있었을테니까. 하지만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헨리형은 그 앞에 앉아 티비를 보고 있곤 했는데, 그 때만이 형이 완전히 가만히 있는 유일한 때였다. 하지만 그 가만히 있는 모습은 토끼가 도망가기 직전에 가만히 굳어있는 모습을 닮아있었다. 형은 편치가 않았다. 마치 의자가 고속으로 달리고 있기라도 하듯, 그리고 마치 팔걸이를 놓으면 앞으로 쏟아져 티비 스크린으로 뚫고 들어가게 되기라도 할 것처럼 의자 팔걸이를 온 힘을 다해 꽉 붙들고 앉아있었다.
한번은 헨리형하고 방에 같이 앉아 티비를 보고 있었는데 형의 이가 무엇엔가 딱 부딪히는 소리를 냈다. 그래서 봤더니 입술을 완전이 뚫어지도록 깨물고 있었다. 피가 턱을 타고 흐르고 있었다. 내가 말하는데, 그 때 나는 정말이지 그 티비를 부숴버리고 싶었다. 그래서 티비를 향해 막 다가가는데 헨리형은 내가 무슨 짓을 하는지 알았음에 분명한 것이, 앉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벽을 향해 나를 밀쳐버렸다. 나는 형이 자기가 무슨짓을 하는지 모른다고 스스로를 달랬다.
그 때 어머니가 들어와 아주 조용히 티비를 꺼버리고는 저녁으로 뭘 좀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우리는 가서 앉았다. 아직도 형의 턱에는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지만 본인은 모르고 있었고, 아무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 형이 빵을 베어물 때마다 피가 묻어서 나중에는 자기 피를 음식하고 섞어먹고 있는 지경이 되도록 말이다.
헨리형이 없을 때 우리는 형이 어떻게 될지 이야기했다. 보호구역에는 인디안 의사는 없었고 모지즈 필리저 주술노인은 영 믿을 수가 없다고 했다. 옛날에 엄마랑 사귄 적이 있어서 엄마의 남편들에게 질투를 했기 때문에 아들을 통해 복수를 할지도 모른다는 거였다. 우리는 일반 병원으로 형을 데리고 가면 놓고 가라고 할까봐 두려웠다.
“그런데선 병을 고치는게 아니야.” 엄마는 말했다 “그냥 약이나 줄 뿐이지.”’
“애초에 그런덴 가지도 않을거에요.” 나도 동의했다.”그러니까 생각도 말자구요.”
그리고 나는 차를 기억해냈다.
헨리는 집에 돌아 온 이래로 차를 보지도 않았다. 먼저 말했듯이 차는 완벽한 상태였고, 언제든지 달릴 수 있었는데 말이다. 나는 차가 어떻게 해서든 예전의 헨리형을 불러 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때를 노리며 차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킬 수 있을만한 때를 기다렸다.
헨리가 어디 가고 없는 어느 날 밤이었다. 나는 망치를 가지고 나가서, 차 밑을 몇 군데 두드려 부쉈다. 테일 파이프를 구부러뜨리고, 머플러를 뜯어 헐겁게 했다. 다 끝나고 나자 우리 차는, 정부의 거짓말처럼 구멍투성이라고 하는 인디안 보호구역의 도로만 달린 보통 인디안들의 차들보다도 더 형편없는 꼴이 되었다. 그걸 보는 내 마음이 얼마나 아프던지를 꼭 말해둬야 한다. 카뷰레이터에 흙을 집어넣고, 시트에 바른 테이프들도 다 뜯어버렸다. 아무튼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엉망으로 만들었다. 그리고는 느긋하게 앉아 헨리가 발견하기만을 ���다렸다.
그래도 한 달이나 걸렸다. 그건 괜찮았다. 완전히 녹을 정도는 아니지만 옥외작업을 하기 적당할 정도로는 날씨가 따뜻해지기 시작했을 때였으니까.
“야, 라이먼” 어느 날 형이 들어오면서 말했다. “차가 완전히 거지같아졌구나.”
“뭐, 오래된 차잖아.” 나는 말했다. “예상한 일이지, 뭐”
“그럴리가!” 헨리형은 말했다. “이 차는 명품이라구! 그런데도 이 모양 이 꼴이 되도록 놔두다니. 라이먼, 이게 이런 취급을 받을만한 물건이 아닌걸 너도 알잖아. 내가 완전 최고 상태로 유지해 왔었는데. 기억이 안나는구나, 너. 하기사 너무 어렸으니까. 하지만 내가 떠났을 때는 시계처럼 부드럽게 달리던 차라구. 이젠 옛날 상태는 커녕 내가 어떻게 달리게나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뭐, 한 번 해보시든가.” 나는 짐짓 마치 화가 난 것처럼 말했다. “하지만 완전 쓰레기란 걸 알아둬.”
그래 놓고 나는, 형 스스로가 자기가 돌아온 지 처음으로 6개 단어 이상의 문장을 말 했다는 것을 깨닫기 전에 얼른 나와버렸다.
그 후로 나는 형이 그 차를 고치느라고 얼어 죽을 줄 알았다. 하루 종일 나가있었고, 밤에는 창으로 전깃줄을 내서 작은 등을 하나 연결해서 일 하는 동안 불을 밝히도록 했다. 그 전보다는 나았지만 그게 그닥 많은 것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우리가 하는 일들을 하는 것이 조금 쉬워졌달까. 조금 천천히 먹었고, 먹으면서 펄쩍펄쩍 일어나 뭘 가지러다니거나, 창 밖을 바라보는 일을 하지 않았다. 물론 내가 티비 뒤에도 가서 뭘 좀 만지작거려서 깨끗한 그림이 거의 안 잡히게 만들어버린 건 인정한다. 어쨋든 형은 티비를 별로 자주 보지 않고 있었다. 언제나 나가서 차하고 있거나 부품을 구하러 다녔다. 그리고 완전히 날씨가 녹을 즈음에는 수리가 다 끝났다.
이 때쯤 나는 헨리형 주변에서 아주 기분이 형편없는 중이었다. 이전에 우리는 항상 함께였다. 헨리와 라이먼. 하지만 이제 형은 언제나 혼자 다녔고 나는 그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를 몰랐다. 그래서 어느날 헨리형이 친근하게 대해왔을 때 그 기회를 덥썩 반겼다. 형이 뭐 미소를 짓거나 그런 것도 아니었고, 그냥, “저 늙은 똥차를 한번 몰아볼까.” 하고 말했는데, 그 말하는 투가 혹시 형이 돌아올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했던 것이다.
우리는 함께 차 있는 곳으로 갔다. 봄 날이었다. 해가 아주 밝게 빛나고 있었다. 하나 뿐인 여동생 보니타는 이제 막 11살이었는데, 사진을 찍는다고 우리를 나란히 세웠다. 헨리형은 팔꿈치를 빨강차의 앞 유리창에 올려놓았고, 다른 팔은 마치 자신의 팔을 드는 것이 무거워서, 그 무게를 한꺼번에 얹어놓지 않으려는 것 아주 조심스럽게 내 어깨 위에 둘렀다.
‘스마일~’ 보니타는 말했고, 형은 미소를 지었다.
그 사진. 나는 그 사진을 이제는 보지 않는다, 몇 달전, 왜인지는 모르겟지만, 이 사진을 꺼내가지고 벽에다 붙여놓았었다. 그 때 나는 헨리형을 생각하면 가깝게 느껴지고 좋았다. 티비를 보고 있었던 어느날 밤까지는 형의 사진이 벽에 붙어있는 것이 좋았었다. 그때 나는 술에 좀 취해있었고, 맛도 좀 가 있었다. 그러다 벽을 보니 헨리가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뭔지 모르지만 미소가 바뀌어 있었다. 미소가 사라진 것도 같았다. 내가 말 할 수 있는 것은, 그 사진과 같은 방에 더 이상 있을 수가 없었다는 것 뿐이다. 나는 덜덜 떨고 있었다. 일어나서 문을 닫고 부엌으로 들어갔다. 조금 후에 친구 레이가 와서 같이 그 방으로 돌아갔다. 우리는 그 사진을 갈색봉투에 담아서 몇 번 단단히 접어가지고 옷 장 저 뒷편으로 집어넣었다.
아직도 옷장 앞을 지나갈 때마다, 그 사진이 나를 잡아 당기기라도 하듯 그 사진이 보인다. 내 마음 속에 매우 선명한 사진이다. 그 날은 해가 쨍쨍한 날이어서 헨리형은 햇살에 눈을 찡그려야했다. 아니면 사진을 찍기 전에 보니타의 카메라에 해가 거울처럼 반사가 되어 눈이 잘 안보였는지도 모른다. 내 얼굴은 해에 그대로 크고 둥글게 나 앉아있다. 하지만 형은 뒤로 조금 몸을 뺐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형의 얼굴에 그림자는 구멍처럼 깊기 때문이다. 미소 양 끝에 그림자 두개가 작은 갈고리처럼 미소를 액자처럼 감싸고 그 자리에 고정시키려는듯 휘어져 있다. - 그 미소, 마치 얼굴을 아프게 했을 것 같은 그 첫 미소.
형은 야상과, 집에 돌아올 때 입고 있었고, 그 때부터 줄 곧 입고 있었던 낡은 옷을 입고 있다. 사진을 찍고나서 보니타는 집에 들어가고, 우리는 차에 올라탔었다. 트렁크에는 꽉 찬 아이스박스가 들어있었다. 헨리형이 수위가 높아진 물을 보고 싶다고 했기 때문에 우리는 펨비나와 래드리버가 있는 동쪽을 향해 출발했다.
가는 길은 아름다웠다. 모든 것이 변하고 있을 때, 젖은 것은 마르고, 깨끗하게 정리가 되는 때면 사람들은 마치 삶이 새로 시작하는 것처럼 느낀다. 헨리형도 그걸 느끼고 있었다. 차 뚜껑은 내려져있었고 차는 팽이처럼 부드러운 붕붕소리를 냈다. 형은 정말 제대로 고쳐놓았고 심지어 시트의 테이프도 아주 정성스럽게 붙이고 겹겹이 발라 놓았다. 형이 다시 미소를 짓고 그러거나 농담을 하고 그런것도 아니었지만 형의 얼굴은 내가 볼 때 더 맑고 평화스러워보였다. 마치 어떤 특정한 뭔가를 생각하는게 아니라 그냥 우리가 지나는 빈 들판과 방품림들과 집들만을 생각하는 것 같았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 강물은 수위가 높았고 겨울 쓰레기들이 많았다. 해는 아직도 나고 있었지만 강가는 더 추웠다. 강둑에는 아직 여기저기 더러운 눈 뭉치들이 있었다. 물은 강둑을 넘지는 않았지만 곧 그럴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턱까지 차올라도록 불어나서 오래된 회색 흉터처럼 번들거리고 있었다. 우리는 불을 지피고 앉아서 강물이 흐르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렇게 지켜보고 있노라니, 뭔가 ��� 안에, 쥐어짜는 것을, 뭔가 꽉 조여오고 그러면서 동시에 다 놓아버리려는 것을 느꼈다. 나는 헨리형이 현재 경험하고 있는 것들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단지 나는 그 닫힘과 열림을 참을 수가 없었다, 나는 벌떡 일어나서 형의 어깨를 잡고는 흔들기 시작했다. ‘정신차려!’ 나는 말했다 “깨어나! 깨어나. 깨어나란 말이야!” 나는 내게 무슨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몰랐다. 나는 다시 형의 옆에 앉았다.
형의 얼굴은 완전히 하얗고 무표정했다. 그리고는 갑자기 무너졌다. 속에 든 물이 끓어서 돌이 갑자기 깨지는 것처럼.
“나도 알고 있어.”형은 말했다. “알고 있어. 그런데 어떻게 할 수가 없어. 소용 없어”
우리는 얘기를 시작했다. 형은 내가 차에 한 짓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내가 그냥 방치한게 아니라 제대로 된걸 망가뜨린게 뻔했다고. 형은, 이제 그 차는 소용이 없으니 정말 내게 주고 싶다고 말했다. 형은 나에게 돌려주려고 고친거고 나는 꼭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건 안될 일이야.” 나는 말했다 “갖기 싫어.”
“괜찮아.” 형은 말했다. “너 가지라구.”
“내가 싫다구, 근데.” 나는 대꾸했다. 그리고 강조하기 위해서, 내가 분명히 말해두는 데, 순전히 강조하려고 형의 어깨를 잡았다. 형은 그런 내 손을 쳐 냈다
“가지라구.” 형은 말했다.
“싫다구” 나는 말했다. “한번 뜻대로 해보시든가.” 내가 말했고, 형은 나의 자켓을 잡고 팔을 찢어 내려 버렸다. 그 자켓은 스웨이드로 만들어진, 테그와 지퍼들이 달려있는 고급 물건이었다. 나는 헨리형을 뒤로 밀쳐서 통나무에서 떨어뜨렸다. 형은 펄쩍 뛰어 일어나서는 나를 덮쳤다. 우리는 한 몸이 되어 넘어졌다가 일어나, 있는 힘을 다해 되는 데로 주먹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형이 내 턱을 얼마나 세게 갈겼는지 턱이 빠지는것 같았다, 그리고 나는 갈비뼈를 가격하고 턱 아래에 제법 센 주먹을 날려 형의 머리가 뒤로 자빠지게 만들었다. 형은 어리버리해졌다. 형은 나를 보고, 나도 형을 보았는데 형의 눈은 눈물과 피가 가득했다. 나는 처음에는 형이 우는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 형은 웃고 있었다. “하 하” 형은 말했다, “하 하, 차를 잘 부탁해”
“오케이.” 나는 답했다. “알았어. 문제 없어. 하 하.”
어쩔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나도 웃기 시작했다; 나의 얼굴은 살이 찐 것처럼 이상하게 느껴졌고 잠시 후 내가 트렁크의 아이스박스에서 맥주를 가져다가 헨리에게 주었을 때, 헨리는 셔트를 벗어서 내 균을 닦는 시늉을 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게 나를 웃겼다. 그래서 우리는 한동안 정말 제대로 웃어댔다. 그리고는 남은 맥주를 다 마시며, 강물에 하나씩 던져 병이 물로 차 가라앉기 전까지 얼마나 멀리 빨리 가는지 지켜보았다.
“그만 돌아갈래?” 조금 후에 내가 물었다. “괜찮은 캐시파우족 여자들을 꼬실 수 있을 수도 있을 거야.”
형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형의 기분이 다시 돌아서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다 제 정신이 아닌걸. 여기 여자애들. 하나같이 다.”
“형도 제 정신이 아니잖아.” 나는 형을 웃기려고 말했다. “우리 라말틴 남자들도 제 정신은 아니지.”
형은 처음에는 내 뜻을 오해하는 것 같았다. 얼굴이 뒤틀리는가 하더니 곧 평정을 찾았다. 그리고는 벌떡 일어섰다. “맞아.” 형은 말했다. “완전 다 돌았지. 미친 인디언들이지!”
나는 옛날의 헨리로 돌아왔다고 생각했다. 형은 재킷을 벗고 무릎을 들어 전문 무용수처럼 깡총깡총 뛰기시작했다. 내가 한 번도 보지못한, 아니 이 푸른 지구상의 아무도 본 적이 없을, 훌라춤과 토끼춤 중간쯤의 춤을 막 추기 시작했다. 완전히 정신이 나가 있었다. 형은 우피! 소리를 치고, 뛰고, 나에게 달려들고, 사방팔방 뛰어댔다. 형이 그러는 동안 나는 어찌나 웃어댔는지 배 근육이 뭉치기 시작했을 정도였다.
“좀 식혀야 되겠어.” 형은 갑자기 소리쳤다. 그리고 강물로 달려가 뛰어들었다.
물살에는 판자들과 다른 것들이 있었다. 수위가 아주 높았다. 첨벙소리가 들리고 나서는 강으로부터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나는 바로 뛰어가서 둘러보았다. 어두워지고 있었다 형이 이미 반 쯤 건너간 것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형이 수영을 해서 거기까지 간 게 아니라 물살에 휩쓸려간 것이란 것을 알고 있었다. 먼 곳이었지만 그래도 형의 목소리가 아주 명확히 넘어 들어왔다.
“부츠에 물이 차 들어오고 있어’” 형이 말했다
형은 그 말을 그냥 평상의 목소리로 말했다. 마치 문득 그 사실을 알았고, 그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이. 그리고 형은 사라져 버렸다. 나뭇가지 하나가 떠내려 갔다. 그제야 나도 물로 들어갔다..
붙들었던 토막을 놓고 내가 강에서 나왔을 때는 해가 졌다. 나는 차로 걸어 돌아가 쌍라이트를 켜고 차를 강둑으로 몰아갔다. 기어를 1단에 놓고 클러치에서 발을 뗐다. 차에서 나와서 문을 닫았고, 차가 물 속으로 조용히 들어가는 것을 지켜 보았다. 들어가면서 물이 차 뒤까지 차오를 때까지 라이트는 계속 불을 밝히며 뭔가를 찾는 듯이 불을 밝히고 있었다. 내가 기다리고 있는동안 곧 누전이 되었고 드디어 완전히 어두워졌다. 그리고는 물 뿐이었다.
물이 흘러가고, 흐르고, 흘러가고, 흐르고, 흐르는 소리만이 남았다.
* 미시시피 벨리 리뷰에 단편으로 개재되었다가, 1993년 네셔날 북 크리틱스 서클 어워드를 수상한 Love Medicine 에 다른 단편들과 함께 묶여 소설로 출판된 루이스 앨드리치의 ‘빨강 컨버터블’이다. 번역을 다 하고 보니 창비사에서 청소년을 위한 단편선에 들어있는 것을 번역한 일이 이미 있는걸 발견 했지만, 내가 상업적으로 한 것도 아니고 이왕 한 김에 억울하고 분해서 그냥 올려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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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기록 -이탈로 칼비노
Numbers In The Dark 중에서 World Memory -Italo Calvino /이은지 옮김
원문http://homepage.univie.ac.at/herbert.preiss/file/calvino_beheading_the_heads.pdf
내가 자네를 부른 이유를 말해주지, 뮐러. 내 사직서가 이제 수리되었으니 자네가 이제 내 후임자야 : 도서관장으로 곧 임명될거라구.
부탁인데 뭐 그렇게 크게 놀란 척은 하지 말아줘 : 소문이 돈 지도 좀 되었고, 틀림없이 자네도 들었을텐데 그래. 자, 그러면 우리 기관에서 뛰어난 젊은이들 중에서는 자네가 가장 경쟁력이 있고, 말하자면, 우리 일의 모든 비밀을 알고 있는 자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겠지. 혹은 적어도 그렇게 보인다고 할까.
일단 설명을 좀 해도 되겠지?: 내가 이런 얘기를 하는건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게 아니고 윗 사람들이 하라고 해서 하는거야. 자네가 모르는 것이 한 두가지가 있는데 드디어 그걸 알려줘야 할 때가 와서 말이야.
자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뭐 다른 사람들 모두 역시 그렇게 생각하겠지만, 우리 기관은 역사상 가장 큰 문서보관소를 만들려고 수년간 준비를 해왔지. 모든 사람, 동물, 사물에 대한 모든 것을 수집하고 목록을 작성하기 위해, 현재 뿐 아니라 세상이 시작된 이래의 모든 과거를 아우르는 모든 것들, 간단히 말해, 모든것의 동시발생적인 역사, 아니, 모든 것의 순간순간의 기록으로 이루어진 전체적인 목록작성을 말하는거지.
그리고 실제로 그것이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이고, 프로젝트가 많이 진척된 것에 만족하고 있는 편이야: 세계의 가장 중요한 도서관의 소장물들은 물론, 모든 국가들의 보관자료들과 박물관, 신문 연대기들을 펀치카드(역주: 구식 컴퓨터에 들어가는 구멍들로 이루어진 컴퓨터 초기 저장 매체-1968년의 작품임을 감안할 것)에 다 담았을 뿐아니라, 그때 그때, 사람따라 장소 따라, 상황에 맞춰 즉흥적으로 구한 문서들도 상당수 들어갔지.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은 이제, 그 한계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지만, 아주 본질적이고, 집약되고 축소된 최소한의 것으로 줄이는 축소화 과정을 거치는 중이야. 녹음 가능했고 앞으로도 녹음 될 수 있는 모든 소리가 최소형의 테이프롤에 기록되고, 존재 가능한 모든 이미지들이 마이크로필름으로 조그맣게 말려 저장되고 있는 것처럼 말이야. 우리가 지으려고 하는 것은 인류의 집약된 기록이고, 그것을 가능한 한 최소한의 공간에 저장하려고 하려는 것이지. 마치 인간의 뇌에 개개의 기억들이 들어가듯이.
하지만, 이 모든 것 얘기를 ‘축약된 영국 박물관’이라는 프로젝트를 벌이고 있는 우리 기관에 이미 들어와 있는 사람에게 반복하는 것은 시간 낭비인 것 같군. 상대적으로 자네가 여기서 일한지는 몇 년 밖에 되지 않았지만, 지금쯤은 우리가 하는 일에 초대부터 관장이었던 나만큼이나 익숙해져 있을거야.
분명히 말해두는데, 내가 기운만 남았어도 이 일 관두지 않았을거야. 하지만 영문 모를 우리 와이프의 실종 이래로 내가 우울증에 빠져 아직도 회복이 안되고 있어서 말이야. 윗사람들이 -물론 이게 또한 내 희망사항이라는 전제하에- 나 대신에 다른 사람이 이 자리를 맡아야 한다고 생각한 것도 무리는 아니지. 그래서 지금 내가, 그동안 자네에게 우리가 알려주지 않은 공적인 비밀들을 알려주는 역할을 맡게 된거고.
자네가 모르고 있었던 건 바로 우리의 일의 진짜 목적이야.
그것은 바로, 이 일이 세상의 멸망과 관련이 있는 거라는 거야, 뮐러. 지구의 생명이 곧 사라질 것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을 하고 있는 거라구. 모든게 그냥 헛된 것이 되지 않도록, 누군가엔가 우리가 아는 모든 것을 전해주기 위해 일하고 있었던 거야. 물론 그 누군가가 누군지, 혹은 그들이 뭘 알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시가 한 대 피우겠나? 지구에 생명체가 머지 않아 존재하지 못할 것, 적어도 인간은 살 수 없게 될 것이라는 예측에 딱히 괴로워 할 필요는 없겠지. 태양이 수명이 반 이하 남았다는 걸 안지 좀 되었잖아 : 잘해도 40에서 50억년정도 후에는 모든게 끝날거라는거. 내 말은, 곧 일은 어차피 닥치게 되어있었다는 말이지. 새로운 사실은 뭐냐면, 그저 데드라인이 훨씬 빨리 임박해져서 시간이 얼마 없다는 것 뿐이야.
물론, 인류의 멸망이 그닥 즐거운 일은 아니지만 그걸 가지고 슬퍼하는 건 사람들이 죽었을 때 슬퍼하는 것처럼 공허한 위안을 가져다 줄 뿐이지. (나는 지금 우리 와이프 안젤라를 생각하고 있어서 그러니 내가 감정적인 것을 조금 봐주게)
분명 어딘가 우리와 비슷한 생명체가 살고 있는 수억의 행성들이 있을거야. 우리 스스로가 삶을 이어가든, 그 행성들의 생명체들이 우리가 못 다 산 부분을 이어 살아가든 별로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우리의 기억, 뮐러 자네가 이제 막 관장이 된 우리 기관이 모아들인 이 전체적 기억을 전달하는 것이지.
뭐 그렇게 위압당할 건 없어. 앞으로 할 일의 범위는 현재 하고 있는 것과 계속 비슷할테니까.
우리의 기억을 어떻게 전달하는가 하는 시스템은 기관내의 다른 부서에서 디자인하고 있고 말이야. 우리 일은 이미 가닥이 잘 잡혀있어서, 그들이 시각적인 수단을 쓸기로 할지, 소리를 쓰기로 할지도 상관하지 않아도 된다구. 심지어 정보를 전달하는 문제가 아니라, 지구 표층 밑 어디 안전한 곳에 저장해 놓는 것일지도 몰라 : 우리 지구의 남은 잔해가 우주를 떠다니다가 외계 고고학자들에 의해 발견되고 탐사될지 모르는 일이지. 심지어 무슨 코드를 쓸지도 걱정 안해도 돼. 어떤 언어체계를 쓰는 생명체든 우리의 정보를 알아 듣도록 하는 방법을 연구하는 부서가 따로 있으니까 말이지.
자네는, 내가 말해두는데, 자네에게는, 자네 어깨에 얹어지는 책임감 외에는 달라지는 것이 아무것도 없을거야. 그것에 대해서 잠깐 이야기 해보도록 할까.
멸망의 순간의 인류라는 건 어떤 것일까? 인류 자신과, 사는 세상에 대한 어느 정도의 정보, 이제는 퍼져나가지도 늘어나지도 않을테니 한정된 분량의 정보라고 할수 있겠지. 한동안 우리는 정보를 모아들이고 보충하는, 어쩌면 알릴 대상도, 알릴 내용도 없었을 수 있는 정보를 창조하고 불러올 수 있었던 훌륭한 기회를 누렸던거야 : 그것이 지구의 생명체, 무엇보다 인류라는 생명체이며, 그 기억, 정보를 전달하고 기억하는 법이었던 거지.
우리 기관은 이 집약된 정보가 누군가에게 실제로 전달되든 안되든 잘 보존하는 것을 보증하는 곳이지. 관장의 의무는, 기록에서 아무것도 빠지는 것이 없도록 하는 것이야. 왜냐하면 빠지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마치 그것이 아예 존재하지 않았던 것과 같은 것이 되기 때문이지.
또한 자네의 의무는, 결과적으로 다른 혼란을 유발하거나, 더 주요한 요소들을 모호하게 하는 요소들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만드는 것이기도 해 --정보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쓸모없는 잡동사니들을 생산하는 모든 것들을 다 제거해야 해.
정보 전반으로 구성된 전체적 모델, 그로부터 우리가 제공하지 않거나 우리에게 없는 정보를 추정할 수 있게하는 모델이 중요해. 요약하자면, 특정 정보를 제공하지 않음으로 인해, 그걸 제공하는 것보다 더 많은 정보를 주는 셈이란 말이야.
최종 결과물은, 모든 것, 심지어 없는 것까지도 정보로 간주되는 모델이 될거야. 그래야만 비로소, 우리의 기록의 최종판이, 우리 세상에 존재하는, 존재해 온, 그리고 앞으로 존재할 모든 것들로 이루어져서, 그 밖의 것은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고, 존재했었던, 아니 존재한 모든 것들 중 무엇이 정말로 중요한 거였는지를 말할 수 있을테니까.
물론 일을 하다보면, -뮐러 자네도 경험하게 될거야- 정말 중요한 것은 기록에서 빠진 것이 아닌가, 아무 흔적없이 사라지는 것들이야말로 진정으로 존재가치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이 드는 순간이 오지. 기록에 남은 것들은 다 잡스러운 것들, 남아돌아가는 것들, 쓰레기들이고 말이야.
하품이나 붕붕거리는 파리소리,가려움 같은 것들만이, 쓸모없음 그 자체, 단 한번 일어나 영원히 잊혀짐으로 인해 세계의 기억으로 저장되는 지루한 운명에서 벗어난다는 바로 그 이유로 정말 보물이라고 여겨지는 순간이 오지. 우주란 기록될 수 없는 순간들의 단속적인 망으로 이루어져 있고, 우리 기관은 그저 그것들의 음영상, 공허와 무의미의 틀만을 생산하고 있다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있는 자가 누가 있겠어.
하지만 우리 하는 일의 별난 점은 이것이지 : 우리는 뭔가에 주의가 기울면 바로 그것을 기록에 포함시킨다는 것이야. 그래서, 고백하지만, 나도 어느새, 하품, 여드름, 별 볼 일 없이 연결된 아이디어들, 내가 분 짧은 휘파람소리 같은 것들의 목록을 종종 작성해가지고 좀 더 유용한 정보들 사이에 숨겨놓곤 하게 되더라니까.
자네가 이제 곧 맡게 될 관장이라는 지위에는 그 특권이 따라 오는 거야. : 개인적인 기록을 세계의 기억에 남길 수 있는 권한말이야. 오해하지는 말아줘. 나는 무작위적인 자유나 권력의 남용을 이야기 하는게 아니라 우리 일의 필수적인 요소를 말하는거야.
냉정하게 객관적이고 논의의 여지가 없는 정보는, 어떤 상황에서든 가장 특정한 것을 거짓으로 만듬으로써 진실한 것에서 동떨어진 그림을 보여줄 수도 있다는 위험이 따르는 일이거든. 가령, 어떤 행성에서 순수한 사실로만 이루어진, 너무 명료해서 그냥 뻔한 정보를 받았다고 치자구. 그러면 우리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을거야. 있는 줄도 모를걸. 뭔가 표현되지 않은 것이 있는 메시지, 뭔가 의구심이 생기고, 부분적으로 해석이 안되는 메시지만이 우리 의식을 넘어와서는, 받아들여지고 해석하기를 요구할거야.
이걸 기억해야 해. 관장의 역할은, 우리 부서에서 모으고 고른 데이타들 전체에 약간의 그 주관적인 기울기를 부여하는 거야. 진실이 되기 위해서 필요한, 개인적인 의견이 부가된, 즉흥적인 약간의 조작말이야. 바로 그게 내가 내 일을 넘겨주기 전에 경고하고 싶었던거야 : 현재까지 모인 자료 여기 저기에 내 흔적이 남아있는게 보일꺼야 -이건 아주 민감한 사안인데 말이지- 주관적인 평가도 흩어져 들어있고, 어떤 사실은 감추어져 있기도 하고, 심지어 거짓말도 있지.
아주 피상적인 경우에나 거짓을 진실을 뺀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거지.
많은 경우 거짓말이- 예를 들어 심리분석사에게 환자가 거짓말을 하듯이- 사실만큼이나, 혹은 그보다 더 많은 뭔가를 더 드러내 보여준다는 것을 알고 있을거야. 그리고 우리 메시지를 해석하는 누군가에게도 그것은 마찬가지가 될거야. 내가 이제 자네에게 말하는 것들은 뮐러, 더 이상 윗 사람들이 시켜서 하는 말들이 아니라 내 개인적인 경험에서, 동료로서, 사람 대 사람으로 하는 말들이야.
잘 들어. 거짓말이야말로 우리가 물려줘야 할 진짜 정보라구. 그러니 나는 내 자신이 메시지를 복잡하게 만들기는 커녕 단순하게 만드는 한도내에서, 분별있는 거짓을 쓰고 싶은 마음을 부정하려 들지 않았어. 특히 내 스스로에 대한 정보에 관한 한, 온갖 세부적인 사실이 아닌 것들을 집어 넣는데 전혀 주저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고 느꼈어.(이게 누구에게 무슨 상관이 있겠냐구)
가령 나와 안젤라와의 관계도 그래 : 나는 내가 바라는 이상적인 모습대로 우리를 묘사했지. 둘이 영원히 사랑을 속삭이는 한 쌍의 새처럼, 열정적이고, 서로에게 신실하면서 수 많은 역경을 이겨나가는 멋진 러브 스토리.
뮐러, 사실은 그것과 완전히 일치하는 건 아니었어. 안젤라는 편의로 나와 결혼했고, 즉시 후회했고, 우리 관계는 뒷맛이 좋지 않은, 속임수의 일색이었지. 하지만 하루 하루 일어나는 일이 무슨 상관이겠어. 세계의 기억 자료에 남은 안젤라는 확고하고, 완벽하고, 그 무엇도 더럽힐 수 없는 것이고, 나는 역사상 가장 부러움을 받을 많한 남편으로 남아있을테니 말이야.
처음에는 그냥 일상에 일어나는 일들의 기록에 조금의 화장을 하는 정도에 불과했지. 하지만 안젤라를 매일 매일 바라보며(몰래 지켜보며, 급기야 미행을 하며), 나는 사실이 실제와 맞지 않거나 모호해지는 것이 점점 늘어나는 것을 발견하곤 했지. 나의 가장 두려운 의심을 타당하게 만들어주는 증거들 말이야.
내가 어떻게 ��야 했겠어, 뮐러? 한 때 그렇게 깨끗하고 보여주기 쉬웠던, 그렇게 사랑받았고, 사랑스러웠던 안젤라의 이미지에 흙탕물을 끼얹고, 이해하기 어려운 것으로 만들어서 우리 자료의 가장 빛나는 부분을 칙칙하게 만들었어야 했나?
나는 망설이지 않았어. 매일매일 그런 부분들을 지워나갔지.
하지만 동시에, 어떤 단서같은 것, 어떤 암시적인 것들, 이 스쳐지나가는 삶에서 안젤라가 한 행동들과 안젤라가 어떤 사람이었는가를 알아챌 수 있는 힌트 같은 것이 여전히, 안젤라의 확고한 이미지의 주변에 떠돌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끊임없이 두려워했지. 실험실에서 고르고, 지우고, 빼면서 몇날 며칠을 보냈어. 질투였던거야, 뮐러. 스쳐 지나가는 안젤라를 질투하는게 아니라-그건 이미 내가 지고 있는 게임이었는걸- 그, 우주 자체만큼이나 오래 지속될 정보로서의 안젤라에 대한 질투였던 거야.
정보로서의 안젤라가 오염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그 이미지에 계속 자기 이미지를 얹고 있는 진짜 안젤라를 제거하는 게 제일먼저 해야 하는 일이었지. 이 때 안젤라가 사라졌고, 그녀를 찾으려는 모든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지.
내가 사체��� 조각조각 어떻게 숨겨 치워냈는지를, 뮐러, 자네에게 얘기 해주는 것은 의미가 없겠지.
제발 진정좀 해 봐, 내가 세계의 기록에��� 행복한 남편이었고, 나중에는 모두 아다시피 비통에 빠진 남편으로 남을 것이니 우리 일에 관한 한 이런 구체적인 사항은 별로 중요하지 않잖아.
하지만 이게 마음 편하게 만들어주지는 않는다는 게 문제야 : 정보로서의 안젤라는 여전히, 정보가 전달될 때 뭔가 문제가 있어서든지, 해독하는 사람의 악의가 있었든 간에 특정 데이타가 모호한 추측과 암시와 비방 해석의 여지를 남겨줄 수 있는 정보 시스템의 일부거든.
그래서 나는 안젤라가 인간관계를 가졌을 수 있는 사람들에 대한 정보도 다 제거하기로 했지.이건 세계의 기억에서 우리 동료 몇몇을 흔적도 없이 지워서 마치 존재한 적도 없는 것처럼 만드는 일이라서 슬픈 일이기도 했어.
이걸 다 말해주는 이유가 내가 자네의 동조를 구하는 거라고 생각하겠지, 뮐러. 하지만 그건 아니야. 나는 지금 내 와이프의 애인이었을 수 있는 사람에 대한 정보를 기록에서 제거하기 위해 이제 내가 할 수 밖에 없는 극단적인 조치를 자네에게 알려줄 수 밖에 없다고 느낀 것 뿐이야.
이것이 내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별로 상관하지 않아. 내게 얼마 안 남은 몇 년은 모든 자료를 대할 때 고려하던 영원이라는 시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니까. 그리고 내가 정말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명백하게 확립되어 이미 펀치카드에 새겨졌으니까.
세계의 기억에 수정되어야 할 것이 아무것도 남지 않게 하려면, 실제 세상에 그 기록과 일치하지 않는 부분을 수정하는 일만이 남아 있을 뿐이야. 펀치카드에서 내 와이프의 애인을 지워버렸던 것처럼, 그 애인도 이 세상에서 지워버려야 하는거지.
그게 바로 내가 지금 총을 꺼내서, 뮐러, 자네를 겨냥하고, 방아쇠를 당겨 자네를 죽이는 이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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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쓰메 소세키론
나쓰메 소세키론
(이모션북스, 하스미 시게히코 지음/박창학 옮김)
일단, 나쓰메 소세키론을 읽기 시작하면서부터, 그리고 읽는동안 내내 약간 긴장을 하고 있었던 것을 고백한다. 그 이유는 여러가지일 것이다. 솔직히, 다소 딱딱한 외양에서 오래 읽지 않은 어려운 한글을 이해하지 못할까봐도 그렇고, 열심히 예습삼아 읽으며 준비를 하기는 했지만 영어로 번역된 구할 수 있는 책이 한정되어 있어서, 사정상 소세키의 책을 모두 읽지는 못했으니 숙제를 다 못 해온 것 같은 죄책감도 있었다. 그리고 전문으로 번역을 하시는 분들을 직접 더러 알고 있어서, 그 분들의 자부심과 노고를 잘 알고 있는 까닭에, 번역서를 읽을 때마다, 잘 된 번역서를 순전히 나의 무지함과 부족함으로 내가 이해를 제대로 못해서 읽고나서 헛소리를 한다면, 뭔가 번역에 대한 모욕이 될 것도 같은 두려움이 생기는 것도 무시하지 못 하는 것이었을 것이다.
처음엔, 역자도 언급한, 마쓰우라 리에코의 해설 '하스미 시게히코의 책을 처음 읽고 놀라는 사람을 위한 가이던스'라는 제목이 말해주듯, 책의 도입부부터 매우 강렬한 시작으로 인해 처음부터, 이건 상당한 자신감인걸 하고 뭔가 단단히 마음을 먹고 시작하게 하는, 그러나 좋았어 덤벼봐, 하게 만드는 기분 좋은 도전장같은 느낌으로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공부하는 마음으로 천천히 읽게로 했던 것과는 달리 병행하고 있던 이탈로 칼비노의 책을 다 읽음과 동시에, 이 책을 붙들고 앉아서 끝까지 다 읽어버리게 될 정도로 상당히 재미있는 책이었다는 결론이다.
그래서, 다른 책에 대한 리뷰처럼 독후감을 따로 안 쓰고 그냥 잘 읽었다, 좋은 책이다, 해도 문제 될 것 같지는 않았어도, 그러나 소설을 읽었을 때하고는 다른, 생각을 직접적으로 촉구하는 책을 읽었을 때는 나름의 정리를 하는 것도 마땅하다는 생각에서 감히 간단하게 몇 줄 적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나는 이 글을 쓰면서, 애저녁에, 어떤 정답을 찾아 쓰지 않겠다고 단단히 마음 먹었는데, 그 이유 또한 여러가지 일 것이다. 이 책의 작가가 책 전반에 걸쳐, 소세키의 작품세계를 책의 세세 내용들을 어설프게 분할하여 해체하며 분석을 하는 방식으로 이해하면 안되는 이유를, 역으로 그야말로 그의 작품 전반을 종횡으로 가르면서 증명하려 애쓰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단순히, 어떤 책을 읽어도 각 사람이 가져가는 것이 다른데 내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어차피 각자 이 책을 반드시 읽어야만 가져가는 것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정답을 찾지 않기로 한, 적어도 나에게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이 책을 읽고나서야, 내가 소세키를 좋아하는 이유가 바로, 소세키를 읽는 것은 정답이 없는 읽기이기 때문이라는 것을 확인한 느낌이기 때문이다.
내가 소세키를 읽을 때마다, 특별한 맺음 없이 다소 희미하게 느껴지는 마무리들에서 느끼던 그것이, 후편도 없는 단순한 cliff hanger도 아니고, 그저 open ending라고 하기에는 뭔가 쥐고 나오는 단단한 것이 있는, 그 느낌이 무엇이었는가에 대한 설명을 되어 주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left hung out to dry 라는 느낌이었다. 죽거나 말거나 혼자 알아서 하도록 내버려진다는 매우 시각적인 관용구인데, 소세키 작품의 주인공들이 앞으로 어떻게 할지 모르는 채로 끝나는 것을 넘어서, 그들이 어떻게 하든 이야기는 끝났으니 너는 이제 니 갈길 가라는 어떤 묵언의 등 밀어 보냄 같은 느낌과, 그래서 자꾸만 돌아보며 억지로 멀어져 가지 않으면 안되었던 나의 그런 아쉬움이 오히려, 소세키를 다시 또 다시 찾도록 만들지 않았나 하는 느낌을 확인시켜주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래서, 내가 자꾸 그의 다른 책을 또 찾아 읽고, 그래서 먼저 읽은 그의 책에서 뭔가 잊은 것, 잃은 것을 더 찾아내려고 했던 것이라는 생각이다. 작가의 실제의 삶에서 온 잠재적 심리같은 뻔한 것이 반영된 작정된 작품세계가 있는 것이 아니라, 몇몇 모티브 같은 것들이, 그의 작품에 걸쳐 대리석의 표면에 흐르는 맥처럼 전체를 단단하게 이어주고 있지 않은가 하는.
그리고, 소세키라는 한 작가를 넘어서, 작가와 작품 세계, 더 나아가, 사람들과 그 관계, 삶 전반에 이르기까지 새로이 둘러보게 하는, 관계의 흐름과 고립에 대한 것을 돌아보게 해주고, 또한 책을 '읽는 것'을 넘어 '쓰는 것', 그리고 다시 그 '쓴 것을 읽음'이란 무엇인가를 더 잘 이해하도록 입체적으로 바라보게 하는, 새로운 각도의 시야를 틔어주는 날카롭고 선명한 책이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이 책이 마치 소설처럼 읽힌다는 내 생각은 말미의 해설이 역시 동의를 해 준바 있다. 이 말은, 이 책은 간단한 몇 줄로 요약을 거부하는 서서히 그 리듬을 조여가는 그 자체로서의 이야기가 있는 책이라는 말이다. 이 책의 작가, 하스미 시게히코가 다다르는 결론에 가는 길을 반드시 따라가야만 보이는 것들이 있다는 말이다.
읽은 소세키의 작품 모두 영어로 번역된 것으로 읽은 내가, 원어인 일어로 쓴 평전을 한국어로 번역한 책을 읽으면서, 영어로 읽은 인용부분이 일어에서 한글로 번역된 것을 알아보는데 어려움이 없었다는 것 그 자체가 잘 된 번역임을 보여주는 것이고, 또한 그 자체가, 어쩌면 ‘작품세계’라는 것은 매개인 언어도 뛰어넘으며 유기적인 경계를 끊임없이 넘나드는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니까 어느쪽도 좋은 것이다, 정답은 없고, 좋은 것을 주는 좋은 책을 읽고 좋은 것을 얻어가면 그것으로 된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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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생일맞이 결산
웃고 즐기는 가운데(literally), 어느덧, 2007년에 시작한 '죽기 전 1000권 읽기 프로젝트'의 보고서를 올릴 시간이 돌아왔다.
‘죽기전 반드시 읽어야 할 1001권 리스트’ (Peter Boxall’s 1001 Books: You Must Read Before You Die. http://www.listology.com/ukaunz/list/1001-books-you-must-read-you-die) 과, 이런저런 수상작이나, 내가 좋아하는 다른 작가들이 권한 책등 다양한 추천목록을 참고하는 매년 기본 기준이지만, 2016-2017년 기간에는, 한국에 갈 때 그냥 집에 있는 책들을 나름대로 주섬주섬 챙겨가지고 갔기도 하고, 한국 알라딘 중고책방이나 이태원에서 사들인 영문책들, 그리고 지야가 크리스마스 브레이크에 오면서 준 선물 두 권도 그 목록에서 나온 것이 아니어서, 목록에서 얼마나 지워졌는지는 확인을 안 해봐서 모르겠다.
그리고, 원어든 번역이든 한글로 된 책들은, 한국에서 시간 나는데로, 손에 닿는대로 조금 중구난방 읽은 분위기라 기록하면서 조금 찜찜한 느낌이 없지 않아 있다.
애초에 개인기록으로 그냥 읽은 것을 기록하는건데, 읽었으면 읽은거지 중구난방 읽은 것은 또 뭐냐고 하시는 당신, 그게 그렇단 말이다.
뭐랄까.
책을 읽는다는게 모름지기 사람을 진지하게 사귀어 보려고 나가는 미팅같기도 한 것이란 말이다.
나가기 전에 기대를 많이 하든, 아니든, 전혀 아는 바 없는 사람이든, 조금 이야기를 미리 들었든, 그럭저럭 분칠도 조금 하고 거울도 좀 보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 나갈 것이란 말이다.
그런데 스쳐지나가는 사람이 그냥 얼굴이 마음에 들어, 혹은, 아는 사람이 아는 사람이 아는 사람이라든가 해서 같이 차를 마신다든가 하고 들어왔다고 가정(하기도 정말 힘이든다만)하면 뜻밖에 괜찮았(다는 것을 정말 상상하기 힘이 들지만)다고 해도 뭔가 석연찮은 느낌이 남아있지 않겠느냐는 말이다.
어떻든, 그게 그렇다.
나는 지난 18년간 영문책만 읽어서, 한국 작가나 기타 영어권이 아닌 나라 작가들을 잘 모르기 때문에, 이렇게 정보가 부족하여 마음의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읽은 책들은, 읽고 나서도 마음에 들었어도 조금, 그렇다. 다시는 못 만날 피서지에서의 사랑처럼 뭔가 어설프고, 뭔가 더 잘 읽었을 수도 있을 것 같기도 하고, 뭔가 첫 장을 읽는 분위기가 그게 아니었던 것 같고, 그렇다.
추천을 받는다고 해도, 나도 추천하는 사람의 취향을 모르고, 그 사람들도 내 취향을 모르고, 홍보성 게시물인지도 모르는데 무조건 믿기도 어려웠다.
물론, 마치 믿을 만한 친구 같은, 좋아하는 작가들의 작품은 따로 평을 알아보지 않고 찾아 읽기도 한다. 그러나 무슨 추천목록에 있는 것이나, 상을 탔다든가 하는 것 모두가 소개 받는 것에 일종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믿을만한 사람에게 추천을 받거나 선물을 받은 것이면 모르지만, 그저 표지나 제목만 보고 서점이나 책방에서 시간을 죽이기 위해 집어든 책이라면, 경험상, 십중팔구는 시간 낭비가 되기 쉬워서, 그게 책 읽을 시간이 없다고 투덜거리면서도 한국에서도 한글책을 많이 읽지 않은 이유다.
또한 한국에서는, 팔도/삼국 여행을 하느라고 절대시간/체력도 많이 모자라서 어정쩡한 책을 읽느니 틈이 나면 눈을 감고 쉬자는 쪽이기도 했다.
또, 알파벳권의 원어인 경우는 원문이 추측이 되는데 번역이 잘못 된 것 같은 경우는 집중이 안되서 대충 넘어가고 싶을 때도 있었고, 원어가 한글인 것들도 미국 살면서 많이 접할 기회가 없었던 추상적인 단어들은 새로이 낯설어, 영어로 읽는 것보다 더 어렵기도 했다. 그리고 또, 역으로, 모국어랍시고, 한국어는 조금 신중하지 않게 읽게 되는 부분도 있었다. 그래서, 때로, 내가 그냥 신문 읽듯이 너무 가볍게 설렁설렁 읽고 있는 것을 발견하면, 읽어나가면서도 '나의 독서'가 내 마음에 안 들었다고나 할까. 작가에게 풀 크레딧을 주지 않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고나 할까. 뭔가 중요한 한 단계를 건너 뛰는 느낌이랄까.
아무튼 언어는 참 오묘한 것이다.
지난 분기의 프로젝트는 단편을 많이 읽는 것이었는데, 올해 후반기의 프로젝트라면, 한국에서 중구난방 독서를 하면서 목말라했던 대장들, 칼비노, 마르케즈를 좀 찾아 읽는 중이고, 간간히 신선하게 읽을 신작도 더러 챙겨 놓았고, 그리고, 하스미 시케히코 작, 박창학 역의 '나스메 소세키론'을 읽기 위해서 가능한 한 소세키 집중 탐구를 당분간 한 결과, 현재 가까스로, 그러나 성공적으로 시작한 상태다.
이들 모두가 결국 번역작인데, 한국어로 읽지 않고 굳이 집에 돌아와서 영어로 읽는 것에도 혹시라도 누군가 의문을 품으실 양이면(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별로 관심이 없으실 것이라고 생각한다), 누가 뭐라고 해도, 다름 아니라 영어자체가 한국어보다 더 쉬운 언어기 때문에 번역서도 나는 영어로 읽는 것이 더 편하다고 밖에 말을 못하겠다.
당연히 내가 모국어인 한국어을 영어보다 잘 하겠지만, 그렇다고 그게 한국어가 쉬운 언어라는 뜻은 아니다. 거기에 번역이 추가되면 때로는, 이 문장이 본래 무엇이었는가를 이리저리 추리하느라고 정말이지 머리가 이중삼중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래서 나는 영어나 한국어나 읽는 속도가 대략 비슷하다. 영어를 그만큼 잘 한다는게 아니라, 한국어도 망가졌다는 말일 수도 있다.
사회전반이 '받아들여지는' 것에 대해 민감하다보니, 언어 사용자체가 너무 상투적이라는 것도 문제라고 조심스럽게 생각해본다. 각각 단어에 연결되는 한국말 단어가 매우 희박하거나 오용되는 경우가 많다. 적어도 방송을 하는 사람이라면 미국에서는 생방으로 리포트 현지 연결을 해서 자기가 할 말을 할 수 있는데, 우리나라는 읽는 것조차 강세를 엉뚱하게 두고, 그것도 판에 박힌 문장만 나열하는 것을 보면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어줍잖은 언어 얘기는 여기서 그만하도록 하자)
아무튼 올해도 서론이 본론보다 길지만, 그렇다. (정말, 번번히 생일맞이 보고서를 쓰기 시작하는 순간에는, 이번에는 할 말이 별로 없으니 그저 목록이나 기록하고 말겠는걸, 하고 생각한다는 것은 여전히 아무도 믿지 않겠지)
가기 전에는 산책할 때 오디오 북에도 많이 의존을 시작하고 있었지만, 한국에서는 계속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하느라고 소리에 집중하기 어렵게 만들었고, 그래서 좋아하는 팟캐스트 조차 제 때 들을 시간이 없었다.
그래도 어영부영 한 권도 못 읽어서 입안에 온통 가시가 돋아 나올지도 모른다는 각오로 뛰어들어간 나라에서, 그만하면 분발한 편이라고 스스로를 위안하면서, 올해의 보고서를 공개한다.
Drum-roll please!
1. Captain Corelli's Mandolin -Louis de Bernieres
2. The Lay of The Land -Richard Ford
3. Molloy -Samuel Beckett
4. Malone Dies -Samuel Beckett
5. The Unnameable -Samuel Beckett
6.The Visiting Previllege -Joy Williams (short stories)
7. The Good Aprentice -Iris Murdoch
8. The Moviegoer -Walker Percy
9. Villa Incognito -Tom Robbins
10. Friends and Relations -Elizabeth Bowen
11. The shipping News -Annie Proulx
12. Tales From Moominvalley -Tove Jansson
13. Kokoro -Natsume Soseki
14. The Castle of Crossed Destinies -Italo Calvino
15. Ten Nights of Dream ( including Hearing Things /The heredity of Tastes) -Natsume Soseki
16. The Invention of Curried Sausage -Uwe Timm
17. Grass On The Wayside -Natsume Soseki
18. The Imposter -Jean Cocteau
19. The Miner -Natsume Soseki
20. Of Love and Ohter Demons -Gabriel Garcia Marquez
21. Things That Fall From The Sky -Kevin Brockmeier
22. And Then -Natsume Sose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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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마법의 숙제 -다니엘 페냑 (신미경 역)
2. 쇼코의 미소 -최은영
3. 우리에게 허락된 특별한 시간의 끝 -오카다 도시키(이홍이 역)
4. 직업으로써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양윤옥 역)
5. 유언 -산도르 마라이 (김인순 역)
6. 여기는 아미코 -이마무라 나쓰코 (홍미화 역)
7. 무한화서 -이성복
8. 사라진 성 -미야베 미유키 (김소연 역)
9. 아만자 1/2/3 - 김보통 (다른 만화책(!)도 기회가 닿는데로 다수 읽었지만 읽은 그림책 중, 이 책은 '책'으로 간주된다고 생각함)
10. 팔거리의 소년들 - 페렌체 몰나르 (이갑규 역)
11. 독재자와 해먹 -다니엘 페냑 (임희근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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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읽은 목록 갯수에는 포함 안됨)
(시집을 '읽었다'고 하기는 그렇지만, 꼼꼼히 읽고, 필사도 하고, 일부 가져오기도 한 시집들만 기록함. 다 가져오고 싶은 마음이야 채우자면 서점을 짊어지고 와야 하지만, 한정된 짐 사정으로 인해서...라고 변명하다보니, 애초에 이런저런 얘기를 언급하지 않으면 되는데 무엇 때문에 솔직하게 말을 해서 이렇게 혼자 곤란을 겪고 있는지 모르겠다. 책도둑도 도둑은 맞지만 책은 비행기에 실을때 짐으로 치지 않는다 뭐 이런 법칙이라도 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여전히 품어 볼 뿐)
1. 슬픔이 없는 십오초 -심보선
2.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를 모르고 -이제니
3. 밥풀 -이상백
4. 나쁜 소년이 서 있다 -허연
5. 구관조 씻기기 -황인찬
6. 유에서 유 -오은
7. 빌어먹을 차가운 심장 - 허수경
8.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박준
9. 파의 목소리 -최문자
늘 그렇듯이 평점 같은 것은 '내가 감히' 의 이유로 생략이다.
그리하여 다시 기록을 점검하자면, 2016년 8월에 한국에 도착해서 9월에 정리한 목록은 44권으로 되어있었는데( 그 전해에는 56권), 올해는 한/영문 도서 도합 32권에 그친다.
632권이 남았던 것에서 600권이 남았나보다.
그러기 어려울 줄을 알았지만 결국 600권 밑으로 안 떨어진 것이 영 서운하다. 목숨이 ���장되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눈이 점점 가고 있는 형편에서는 그렇게 잘 생각이 되어주지 않는게 사실이다.
서운하다. 정말.
그리하여 다시한번 분발을 다짐하면서.
깊어가는 아름다운 가을에 알래스카에서 21/sep/2017 이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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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지말라고 한 바로 그 책을 쓴 나. -초고의 은밀한 삶
쓰지말라고 한 바로 그 책을 쓴 나 -초고의 은밀한 삶 -토마스 릭스 / 이은지 옮김
원문: 아틀랜틱 https://www.theatlantic.com/entertainment/archive/2017/08/the-secret-life-of-a-book-manuscript/536982/?utm_source=twb
스캇 모이어가 스크리브너에서 랜덤하우스로 그리고 다시 펭귄 프레스의 편집자로 옮겨가는 걸 따라다니면서 내가 그하고 함께 낸 책이 다섯권이었다. 우리는 호흡이 잘 맞았고, 그의 훌륭한 편집능력때문에 나의 최근 책 세권은 베스트셀러가 되었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몇 년을 걸려 써 온 나의 6번째 책을 마치고 그에게 원고를 보냈을 때 일어난 일은 충격적인 것이었다. 사실 놀랄 일은 그 후로도 줄줄이 기다리고 있었지만 말이다.
...
모든 것은, 18개월 전, 스캇에게 위스턴 처칠과 조지 오웰의 진가를 함께 재조명하는 내용의 내 책 원고를 보내면서부터 시작되었다.
2013년 내가 그 작업을 시작할 때쯤에는, 내 오랜 친구들 몇몇은 주제가 조금 애매하다고 했었다. 영국에서 오래 전 죽고 없는, 서로 만난 적도 없는 보수적인 정치인과 사회주의적 언론인이, 1930년의 양극단을 치닫는 정치적 혼란과, 이어지는 2차세계대전을 어떻게 겪어냈는가에 세상 누가 관심이나 가지겠느냐는 것이었다. 그러나, 2016년에 이르러, 미국의 보수와 진보 양쪽 모두, 의견보다는 사실을 더 선호하기 시작하는 것처럼 보이면서 나의 책은 그전보다 시기적절한 것이 되었었다.
스캇에게 원고를 보내고 나서 2 주 후, 그로부터 더할나위 없이 불만으로 가득찬 이메일이 왔다. “이 책이 쓰여져야 했을 바람직한 방향과의 괴리가 핵심적인 문제라고 말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군” 스캇의 이메일은 그가 그런 말을 하는것이 얼마나 괴로운가를 잘 보여주는 것이었다. 내가 그에게 보낸 책은, 그가 나더러 쓰지말라고 말했던 바로 그 책이었던 것이다. 그는 자신이 이미, 허약한 갈대같은 주제에 의존하는 그냥 긴 버전의 리뷰같은 책 말고, 탄탄한 이야기 서술에 기초를 두고 쓰라고 경고했다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내가 쓴 것은, 두 사람의 이야기라기보다는 그들의 업적를 내세운 것이었고 그래서는 안 된다고 스캇은 말했다.
위의 말 외에도 더 있었지만, 간단하게 말해, 그는 내 책을 완전히 만신창이를 만들어 놓았다. 이건 그냥 마음에 안 들어하는 정도가 아니었다. 끔찍하게 싫다는 것이었다. 나는 당혹스러웠다. 내가 이 책을 쓰기위해 자료를 찾고 쓰는 과정을 즐겼었기 때문에, 읽는 사람 또한 그러리라고 기대했었던 것이다. 하지만, 스캇은 안된다고, 내가 쓴 것처럼 해서는 이 책은 통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내가 실망감으로 나가 떨어진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보다는 혼란스러운 부분이 더 컸다. 어떻게 나 스스로가 나의 책을 보는 눈이 그렇게 잘못되었을 수가 있는가. 몇 달 걸려 대충 해치운 일도 아니고, 3년간을, 메인에 있는 우리집 다락에 있는 내 작업실에 온통 흩어져 쌓여있는 수백권의 책을 읽으며, 처칠과 오웰, 그리고 그들이 산 시대에 푹 빠져서 쓴 책이었다. 그 중 가장 많은 자료는 처칠 장본인이 쓴 책들이었고, 그 다음으로 많은 것은 일기와 회고록, 그리고 1930에서 40년대의 영국 정치가들과 작가들에 의해 수집된 편지들이었다.
스캇은 그 후로도 긴 편지로-10페이지 정도 분량이었던 것 같다- 그가 우려하는 부분을 자세히 써 보내 주었다. 당시 나는 메인 해안에 있는 섬에 살고 있었는데, 편지를 받은 날은 강력한 눈보라가 몰아치기 바로 전날이었고, 그 편지가 도착하고 나서 몇 시간 안에 늙은 나무가 몇 그루가 넘어가면서 전기가 끊겼고, 인터넷도 그와 함께 인터넷도 끊어져버렸다.
이메일과 섬에서 나가는 모든 연락 수단이 끊어진 바람에, 나는 눈 속에 갖혀 스캇의 편지를 읽고 또 다시 읽었다. 다음날은, 청명하고 푸른 새벽으로 찾아왔다. 나는 아직 작동하는 인터넷을 쓰기 위해 트럭에 올라타고, 얼어붙은 시골길을 서서히 달려, 섬에서 15마일 거리, 메인 본토의 블루힐에 있는 도서관으로 갔다. 온 세상이 쌓인 눈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나는, 해가 쏟아져 들어오는 도서관 독서실에 앉아 랩탑을 켜고, 내 에이전트 앤드류 와일리에게 쪽지를 보내서, 스캇이 그렇게 내 원고에 부정적이라면 실제로 책 출판 자체를 취소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닌가를 물었다. 만약 스캇이 정말 안 하고 싶다면 나도 다시 고치는 일에 괜히 뛰어들고 싶지 않았다.
앤드류는 몇 분 안에 즉각 답신을 보냈다(그는 아마도 세상에서 이메일 답장을 제일 빨리 하는 사람일 것이다) 그 또한 스캇을 잘 아는 사람이었다. 그렇지 않다,고 앤드류는 말하면서, 스캇은 그저 니가 니 책을 좋은 책으로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일을 앞으로 더 해야 하는가를 강조하려고 그러는 것 뿐이다,고 했다. 나는 그 말에 확신이 섰고, 심지어 나도 이해 못하는 어떤 이유로 만족스럽기까지 했다. 스캇이 한다고 하는 일이면 나도 해 볼 생각이 있었다.
* * *
그 이후, 1월 중순부터 6월 중순까지 5개월을 나는, 전체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생각해서 다시 썼다
그 해 2월, 아내와 함께 메인의 긴 겨울로부터의 휴가를 보낸 텍사스 오스틴으로 스캇이 써 준 편지와, 그가 표시를 해 놓은 내 원고를 가지고 가는 것으로 일을 시작했었다.(오스틴은 라이브 뮤직과 음식, 하이킹등을 즐기기에 훌륭한 곳이고, 그 곳의 겨울은 내게는 메인의 여름같이 느껴진다)
나는, 뒷마당에 앉아 스캇의 말들을 읽고 또 읽었다. 반대의견을 피력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 의견들에 대해서 골똘히 생각해보았다. 그가 이렇게 생각한다면, 나는 이 어떻게 문제를 해결할 것인가, 하고 스스로 의문을 던지곤 했다. 부분부분 밑 줄을 그었다. 한 부분에서 그는 여백에다 끄적인 메모에서, “이야기로 잘 엮어내기만 하면 살인죄도 면할 수 있을거라구!” 하고 호소하고 있었다. 나는 그 말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매일 아침 내가 그날의 일을 시작하기 전에 보려고 수정본 첫장 맨 위에 써 놓았다.
그 다음에 내가 놀란 일은, 이런 수정작업에 들어가고 3주 후 쯤, 그간 생각을 거듭 한 결과, 스캇의 비평들이 다 너무나 적확한 것이었다는 것을 내가 확인했을 때 찾아왔다. 스캇의 제안들을 따라, 전기적인 부분을 강조하고, 두 사람의 이야기를 연대순으로 배열하는 새로운 구조로 책을 개정보완 한다면 책이 훨씬 나아질 것이란 것이 보였다. 그래서 스캇에게 이메일을 해서, “니말이 맞았어.”라고 말했다. 사과라기보다는 이어지는 그 다음 단계 일의 시발점이라 할 수 있는 말이었다.
이에 스캇은, “훌륭한 작가만이 그렇게 말 할 수 있는거겠지”라고 너그럽게 답했다.
집을 다시 지었을 뿐 아니라 개선된 디자인을 사용함으로써, 집이 더 오래가고 살기 좋게 만들다.
그 다음 나는 나의 원고를 다 뜯어고쳤다. 글을 쓴다는 것은, 망치질을 하고, 톱질을 하고, 사포질을 하는 목수의 일과 흡사하다. 이번 경우 내가 해야 할 일은, 막 지어올린 집을 허무는 일과 비슷했다. 스캇이 나의 설계도면 자체가 잘못 되었다고 나를 설득했기 때문에, 나는 전체를 허물어낸 것이다. 그렇게 뜯어낸 목재와, 벽돌, 창문틀과, 유리, 시멘트들을 차곡차곡 쌓아 놓았다. 그리고는 두 주 정도에 걸쳐, 나의 새로운 설계도면에 이정표들을 쓰고, 어떻게 하면 다르게 만들 수 있을까에 대해 적어나갔고, 그 후, 재건축에 돌입했다.
먼저 새로운 기초를 닦고, 탄탄한 연대기적 틀을 마련했다. 원고 맨 위에다, 스캇이 써 준 말 외에, 또 하나의 메모를 적어 두었다. “연대기적이 아닌 부분들은, 대체 왜 그렇지 않은가” 즉, 시간 순으로 정열되지 않은 이야기들을 때때로 허용은 하되, 그러기로 할 때는 아주 확실한 이유를 제대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여기서 세번째 깜짝쇼가 기다리고 있었다. 사건을 시간순으로 정렬해서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생각보다 쉽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더구나 그렇게 하면 더 의미가 잘 통했다. 주제에 맞춰서 여기가 아니면 안된다고 생각했던 특정 일화가, 시간순으로 얼마든지 다른 곳에도 맞아들어갔다. 사실, 실제로 벌어진 사건 순서대로 사건을 정렬하는 것이 더 이야기가 잘 통했다. 이런 이야기들은 따로 소개나 설명을 통해 뚜드려 맞추지 않아도 전체 이야기에 매끄럽게 맞아들어갔다. 잘 짜여진 마루에 들어가는 널판지들처럼, 척척 제���리를 찾아 들어갔다.
네번째로 내가 놀란 것은, 내가 이 수정작업을 얼마나 즐겼는가 하는데 있다. 사실, 겨울부터 2016년 봄까지, 그리고 다시 여름까지의 이 수정작업기간 동안, 아내는 내가 얼마나 행복해하는가에 대해 말 해주곤 했다. 내가 점심 당번인 날 -보통 집에서 만들어둔 수프를 데우는 정도였다- 다락에 있는 작업실에서 내려오는 내 얼굴에는 미소가 어려있었다고 했다.
나머지 몇 달에 걸쳐 새로운 버전의 책이 모양을 잡아갔다. ‘비평적 독자’의 의견이 아직 필요했다. 이 즈음에서 내 원고를 읽어 준, 글재주가 있고, 다양한 관점을 가진 믿을만한 친구들 말이다.
그 계통에서 노련한 잡지 편집자인 한 오랜 친구는, 한마디로 말해 스캇의 말이 전부 다 옳았다고 말했다. 이야기자체가 ���스로 말 할 수 있게 비켜서 있어야 했던 것을 말하는 것이었다. 또 다른, 소프트웨어와 통신법을 전문으로 하는 샌프란시스코 변호사 친구는, 나의 일부 주장에 논리적으로 뚫린 구멍을 메꾸도록 밀어붙이는 역할을 했다. 하나는 중등교육종사자이고, 하나는 폴리티코지의 편집자인 두명의 언론인 친구들은, 내가, 이야기 각각의 가닥을 하나로 엮어낼 수 있는 새로운 결론에 이르는 길을 생각해 낼 수 있도록 도왔다. -그리고, 묘한 일이지만, 이렇게 해서 조지 오웰의 글 중 최상의 논설문을 이어받은 마틴루터킹 주니어의 ‘버밍햄시 감옥으로부터의 편지’까지 이르르게 되었다. 이 모두는,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뭔가, 그리고 그것들이 내게 중요한 이유는 뭔가를 다시한번 신중하게 생각하게 만들었다.
책이 쓰여지는 과정 중, 눈에 보이지 않는 편집자의 역할은 가장 신비스러운 일이 벌어지는 부분이다.
수정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나는, 다시 돌아가 수 많은 처칠과, 그보다 더 많은 오웰의 글을 다시 읽었다. 오웰의 글이 더 다루기 어려운 것이었다. 처칠의 주제는 근본적으로 언제나 자기자신이었기 때문에, 자기 자신이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도록 두었지만, 오웰의 주제는 세상이었기 때문에 에세이나 소설, 심지어 일기장에서도 그 자신은 별로 내비치지를 않았다. 그의 매일 일기에서는 이차세계대전 중에 암으로 일찌기 사망한 아내의 건강보다는 기르는 닭의 건강에 대한 이야기 찾는 것이 쉬웠을 정도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오웰의 행간을 읽는 것에 익숙해졌다. 나는 또한 시대적 맥락을 더 잘 찾기 위해, 말콤 머거리지와 20세기 중반의 영국의 다른 지성인들과 문예 기자들의 글들을 다시 읽었고, 거기서 내가 필요한 것을 찾았다고 생각한다. 마치, 내가 집을 다시 지었을 뿐만 아니라, 개선된 디자인을 사용해서 집이 더 오래가고 살기 좋게 만든 것 처럼, 뭔가 좋고 바른 일을 해냈다는 느낌이 들었다.
* * *
그리하여, 지금으로부터 약 1년 조금 더 전, 2016년 6월 새 원고를 스캇에게 보냈고, 이번에 그는 내 원고를 매우 마음에 들어했다.
그 해 7월에, 뉴 헤이븐에 며칠 있는 동안, 나는 다음 계획도 짜고, 축하도 할 겸 기차를 타고 뉴욕의 펜실베니아역으로 스캇을 만나러 내려갔다. 우리는 맨하탄 중앙부의 오래된 스테이크집에서 만났다. 한여름, 월요일이었으니 레스토랑은 한산했다. 낮은 천정에는 수백개의 질흙 파이프들이 매달려있었고, 그 중의 하나가 링컨의 것으로 알려져 있는 것이라고 했다.
시저 샐러드와, 얇게 썰어져서 나오는 스테이크를 먹으며 나는 스캇에게, 지난 해 겨울에 왜 그렇게 나에게 거칠게 대했느냐고 물었다. “내 직업 자체가 가끔 못된 놈이 되는 것인 걸” 그는 평이한 목소리로 답했다. 나는 놀라지 않았다. 언젠가 그 전 다른 책을 쓸 때도, 내가 얼마나 힘든지를 한 번 토로한 일이 있는데, 그 때 스캇은, 내 생각에는 조금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대수롭지 않다는 말투로, “뭐, 좋은 책이 나오려면 한 번 정도는 멘붕이 와야 하는 법이거든” 답한 적이 있었으니까.
점심식사가 끝나갈 때 쯤, 스캇은 글쓰기작업에 대한 또 하나의 명언을 내 놓았다. “첫 원고는 쓴 사람을 위한 거고, 두번째 수정원고는 편집자를 위한 거고, 최종 원고는 독자를 위한 거라고 할 수 있지”
이 점심을 먹으면서 스캇은 내가 그에게 얼마나 고마와하고 있는지 알게되었다. 나의 책, ‘처칠과 오웰-자유를 위한 싸움’은 그의 강력한 개입으로 인해 훨씬 더 좋은 책으로 쓰여진 것이다. 돌아보면, 첫번째 원고는 허술하고 자연스럽지 못하고, 때로 가식적인 것이었다. 또한, 많은 부분이 독자가 꾸준히 읽어나가도록 도모하지도 않아 읽기 힘들게만 했었다. 반면, 올 해 5월에 출판된 최종작품은 쑥쑥 읽힌다.
나만 혼자 그렇게 말하는 것도 아니다. 많은 비평가들이 책이 얼마나 깔끔히 이해하기 쉽게 쓰였는지 말했다. 따라서, 처음에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달리, 쓰기에 가장 어려웠던 책이 읽기에는 가장 쉬운 책이 된 것이다. 죽은지 오래된 이 두 영국인의 전기가 최근 하드커버 논픽션 카테고리에 베스트 셀러가 된 걸 보면 독자들도 동의하는 것 같다.
대부분의 예술은 많은 대중에게 공개되는 모습이 있다. 음악은 연주되고, 미술은 전시되고, 연극은 공연되고, 영화는 촬영되어 집단에게 상영된다. 하지만 책은, 한 사람이 쓰고, 다른 한 사람이 읽는다는 점에서 좀 더 사적인 경험을 준다. 그리고 이런 책이 만들어지는 과정 중에서 가장 신비로운 부분은, 숨어있는 중간 단계, 즉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어나는 편집과정이다. 그러나 때로는 바로 이 부분이 전체작품을 완전히 다르게 만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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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 Art BY ELIZABETH BISHOP
내가 한가지 잘 하는 것. -엘리자베스 비숍 /이은지 옮김
잃는다는 것에 익숙해지는 것은 어렵지 않아.
세상 많은 것들은
처음부터 잃어버리라고 존재하는 것 같아서
잃어버려도 그렇게 엄청난 일은 안 일어나지
매일매일 뭔가를 잃어버리라구.
잃어버린 열쇠에, 쓸데없는데 잃어버린 시간들에,
당황스러운 것도 그냥 받아들여
잃는다는 것에 익숙해지는 것은 어렵지 않으니까
더 많이, 더 빨리 잃는 연습을 해보자구
장소들, 이름들, 가려고 했던
여행지들 모두, 잃어버려도 그렇게 엄청난 일은 벌어지지 않을꺼야
엄마가 물려주신 시계를 잃어버렸다 했더니, 저런,
내가 아끼던 세 집 중, 마지막 집, 아니 그 전 집인가도 다 잃어버렸어
잃는다는 것에 익숙해지는 것은 어렵지 않지.
아름다운 두 도시, 그 사랑스런 것들과, 더 나아가,
내 것이었던 내 영역, 두 강줄기와 대륙 한 개도 잃어버렸지.
그렇긴 해도, 그렇게 엄청난 일은 아니었잖아.
심지어 너를 읽은 것 조차도(농담을 던지는 목소리, 내 사랑하는 몸짓들도) --내가 거짓말 할리가 없잖아?, 분명히,
잃는다는 것에 익숙해지는 건 그렇게 어렵지 않다구.
비록, (말해버리자) 엄청난 일처럼, 그래 보일지는 모르지만
One Art
BY
ELIZABETH BISHOP
The art of losing isn’t hard to master;
so many things seem filled with the intent
to be lost that their loss is no disaster.
Lose something every day. Accept the fluster
of lost door keys, the hour badly spent.
The art of losing isn’t hard to master.
Then practice losing farther, losing faster:
places, and names, and where it was you meant
to travel. None of these will bring disaster.
I lost my mother’s watch. And look! my last, or
next-to-last, of three loved houses went.
The art of losing isn’t hard to master.
I lost two cities, lovely ones. And, vaster,
some realms I owned, two rivers, a continent.
I miss them, but it wasn’t a disaster.
—Even losing you (the joking voice, a gesture
I love) I shan’t have lied. It’s evident
the art of losing’s not too hard to master
though it may look like (Write it!) like disaster.
Elizabeth Bishop, “One Art” from The Complete Poems 1926-1979. Copyright © 1979, 1983 by Alice Helen Methfessel. Reprinted with the permission of Farrar, Straus & Giroux, LLC.Source: The Complete Poems 1926-1979 (Farrar, Straus and Giroux, 1983
두 도시, 두 집, 대륙까지, 뭐든 잃어버리기를 잘 하는 나이기 때문에, 깜짝 놀랄 정도로 공감을 했던 시라서, 의미를 잘 전달 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음에도 애 써 번역을 해 본시이다. 번역된 것만 읽고, 시의 역설적인 쓸쓸한 목소리를 잘 이해해 준 친구가 있어서, 그나마 그럭저럭 제대로 번역이 된 편이라고 생각하고 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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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서 받은 편지
타지에서의 십개월 반은 참 긴 시간이었다.
그리고 집에 돌아오는 길은, 레이오버 다섯시간, 총 비행시간 13시간.
공항에 내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정말 하나도 달라진 것이 없었다.
자주가던 수퍼마켓은 물론, 집 어귀에 있는 렌탈 캐빈앞에 뒤집어져 있는 칠 벗겨진 카누부터, 아파트 들어오는 입구의 나무와 잔디며, 사람이 먼지를 일으키면서 다니지 않아서 그런지 생각보다는 먼지도 많이 쌓이지 않은 집 안의 가구들까지, 모든 것이, 어제 같다는 말이 클리쉐가 아닐정도로, 거짓말처럼, 정말 그대로, 그대로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한국에 가 있는 동안에도 끊임없이 변화하던 홍대는 말 할 것도 없고, 미시간을 떠나서 한 이년만에 돌아가 보니 그래도 새로 생긴 가게와 문 닫은 식당이 있었던 것을 보아서였을까.
모든게 그대로라는 것이 당황스러울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항상 변하는 것에 낯설어 하다가 그것에 적응을 하면, 변하지 않고 그대로인 것이 낯설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
여독에 절어 공항에 내려, 큰 가방을 댓개나 이고 지고 집에 올 때는, 언제나처럼 비행기에서는 제대로 잘 수 없었기 때문에라도, 바로 며칠이라도 골아떨어질 것도 같았지만, 짐에서 냉장고에 넣을 것만 찾아 꺼내 넣고, 씻고, 브랜디를 한 잔 하고도 쉬이 잠은 찾아 오지 않았다.
새벽녘에나 겨우 청한 잠도, 백야라서 그런지, 시차 때문인지, 아직 신경이 곤두서 있어서 그런지, 몇 시간만에 깨어버렸고, 새벽에 다시 가방을 열어 이것 저것 꺼내 정리를 하면서 몇 번이나 우두망찰했던 것이, 물건을 못 찾아내서가 아니라, 가지고 온 내 물건들을 도대체 어디다 챙겨 넣어야 하는지 남의 집처럼 낯설더라는 것이다.
나는 고질적인 위산과다라서 늘 잠에서 깨면 배부터 고픈지라, 냉장고를 열었다가, 가기 전에 내가 넣어놓은 낯익은 인스턴트 쌀국수를 발견(!)했지만, 반갑게 물을 끓여 붓고 보니 냄비에다 끓여먹는 것이었다든가, 냉장고 연 김에 내가 뭘 어찌해놓고 갔는지 준 호기심으로 들여다 보니, 내가 쓰던 각종 소스들과 그릇들이 문득 영 낯설었고, 그러나 서서히 간질간질한 기억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든가 하는 단편적인 상황 묘사는 나의 황망한 느낌을 다 설명하지 못한다.
누구도 내가 뭘 하든 뭐라 하지 않는 자유를 만끽하며, 며칠이고 느긋하게, 가방과 미리 도착한 소포 두 박스를 다 열어놓고 천천히, 꺼내고 싶은게 생각날때마다 꺼내가면서 정리해 넣었고, 그러면서 동시에, 한국에서 엄마네 이사를 돕고 이런 저런 타인의 삶들을 보면서 정리하기로 미리 맘먹었던 것들을 정리해서 내다 버리기 시작했다.
나 사는 곳에서는 도무지 옷따위는 중요하지가 않아서 낡은 옷의 정리 자체가 의미가 별로 없을 정도였지만, 20년이 되었는데도 일 년만에 보니 새 옷같이 여겨지는 옷(!)들까지도 이왕 맘 먹은 김에 큰 보따리 두개를 일단 대충 수월하게 추려 내었다. 매�� 손 잡히는데로 주워 입는 옷이 거기서 거기다보니 그래놓고는 심드렁해져서 더러 남은 것들도 차일피일 정리를 미루는 분위기지만, 그저 한동안 옷 샤핑이라는 것은 생각도 않을 것만은 확실하다.
버리기만 하면 좋을텐데 또 그런 것도 아니다.
내가 뭘 하든, 먹고 사는 것이 달려 있어 제법 중요한 공간이라고 생각했던 부엌은, 그동안 다른 집 살림을 해서 그런지 낯섦이 제법 오래 가, 지금도 뭘 하나 발견하거나, 기억이 날 때마다 기억상실증에서 깨어난듯 어찔어찔한 가운데, 싱싱한 야채와 고기는 물론이고, 냉동식품과 국수와 쌀 등 기본적인 것들도 새로 다시 갖추어야 했고, 한국 음식을 해 먹으려면 필수인 신 김치가 필요해서 오자마자 짐싸느라 삐끗한 허리를 부여잡고 김치 네포기와 깍두기, 물김치, 파김치까지 담그고, 배추 겉 잎은 씌레기로 말려두는 등 먹거리는 오히려 곳간 가득 채워지는 중이다.
이번에는 안식년이라는 특이한 경우로 오래 머물러서 그렇지, 워낙 정기적으로 한국에 들어가고 그러면서 살지는 않으니까, 얼마간이 되었든 당분간은 여기서 먹고 살아야 하니까 말이다.
한 걸음 물러서 발견한 나를 기준으로 우선순위를 정립하고 나니 사실, 무엇보다 내 책상 주변의 그동안 쓸모없이 끌어안고 있던 물건부터 보였다.
필요 없는 것, 낡은 것은 내다 버리고, '지금, 혹은 더 이상 내게 중요하지 않은 것'들은 박스에 넣어 치워버리고, 새 책장과 의자를 들여 다시 내 일 공간을 효율적으로 꾸미는데 주력을 했다.
정리를 하는 틈에도 짬짬히 시간을 내서 내 공간에 다시 자리 잡는데 집중을 했다.
한국 어디선가에서 디자인이 마음에 들어 산 일기장이 자꾸 낱장이 뜯어져서 고심하다가 새 일기장으로 갈아탔고, 한국에 가 있는 동안 만난 감사한 분들께 엽서와 카드를 중간중간 써 내려갔고, 그러다보니 궁금해지는 것이 있어서, 클로짓에 들어있는 내 개인 기록 박스를 뒤져 지난 30년간의 일기와 편지들을 대충 읽어보고는, 죽을만 하면 미리 싹 태워버리려고 작은 박스에 따로 모아 담아 두기도 했다.
일기를 계속 쓰면서 동시에 버릴 궁리를 한다는 것은 모순된 행위같지만, 진지한 글쓰기 외의 군더더기 생각은 모두 손으로 일기장에 내려놓는다는 자세의 지금의 일기가 이전의 일기와 얼마나 다른지 보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
내가 나에게 보낸 편지도 시공을 넘어 그렇게 받았다.
내가 2008년에 노스다코타 파고에서 쓰고 2018년에 별일 없으면 알래스카의 내가 열게 되어있는 편지다. 물론 1998년에 한국에서 미국으로 떠나기 전에 2008년의 나에게 보냈던 편지도 그 언저리(?)에서 나왔다. 여는 날자는, 무슨 의미가 있든 없든 내 생일이다.
우스운 것은,(이라는 말로 시작하는 얘기 중에 정말 우스운 것은 잘 없는 법이지만, 며칠째 한번씩 생각나는 일이니까 제법 주목할 만한 일임에는 틀림없다)
1998년에 쓴 편지는, 당시 10년이 무척 힘들고 더디게 흘렀음에도 송두리째 다 기억이 나서, 10년 후에 열어보면서도 시큰둥할 정도였는데, 내년 내 생일에 열게 되어있는 이 편지는, 10년이 정말 순식간에 흘러서 이런 편지가 있다는 것도 가까스로 제 때 기억을 해낸 정도인데다, 도통 무슨 내용인지 기억이 안 난다는 것이다.
(1998년의 편지는, 당시 1999년의 유학을 준비하느라고 여러가지로 금전적, 감정적으로 골치아픈게 많았어서, 주로 은행정보등 메마른 신변 기록이었던 이유일 것이다--고 말하고 있지만 드라이 센티멘트를 가진 사람이 10년 후의 자신에게 편지를 보내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역시 이상한 일이다. 희미한 기억으로는, 아마도, 어떻게든 살아남아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아니었을까 싶지만.
그리고 2008년에 쓴 편지는, 말하자면 그런 편지가 어딘가에 있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정확한 년도는 잊고 있었을 정도였다. 그렇다! 내게도 그런 일이 있다. 늙어서라고 치부해주기로 하자. 다른 복잡한 이유는 자칫하면 반 밖에 안 살았을 인생의 이 시점에서 생각하고 싶지 않으니까.)
아무튼 그렇다. 내게는 실제로 그런 과거의 내게서 온 편지가 있다.
늘 편지를 받기보다 먼저 쓰는 편이라 그런지, 누가 썼던 간에 내가 받게 되어있는, 적어도 한 통의 편지가 은퇴연금처럼 미래에 가만히 앉아 내가 도달하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은 기분이 묘한 일이다.
하지만, 일년에 한 번, 텍스리턴을 몇 천 불 받아도 공돈 생겼다고 딱히 뛰어나가 빵 하나 더 사먹은 일도 없고, 생일이라고 누가 한 푼 찔러줘도 뭘 사기보다는 그 자체가 선물인 양 그냥 가만히 가지고 있게 되는 나로써는 편지 내용이, 적어도 지금은, 별로 궁금하지도 않은 것도 그렇게 신기한 일은 아니다.
...
나의 기억이라는 것이, 때로는 사람들을 기함하게 할 정도로 좋다고 하더라도, 사실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그저 내가 내 방식으로 세상을 담는 것일 뿐이라는 것을 나는 분명히 알고 있다.
미시간에서 5년, 파고에서 5년, 그리고 이제 8년을 산 여기가 분명 내 집이고, 이 며칠간 기억을 더듬어 기억해내던 것들도 다시 일상이 되어가며, 한국에서의 십개월 반은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처럼 사라져간다는 것을 매일 안타깝게 느끼고 있다.
변하지 않고 나를 기다리던 것들은, 변화무쌍하던 한국에서의 매일매일을 더더욱 긴 꿈 같은 것으로 만들고, 그래서, 아침마다 모래시계를 뒤집고, 선물 받은 가방을 들고 장을 보러가고, 좋아하는 사람이 준 노트를 새 일기장으로 삼는 것은, 꿈이 아니었음을 확인하는 나의 일말의 몸짓이 된다.
왜냐하면, 아픈 것을 피하느라고 소중한 것을 덩달아 잃어버린 적이 나에게도 있기 때문이다. 불편한 것들을 피하다보면 잡아 두었어야 할 것들도 함께 놓기도 하는 것을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은 일단 여기, 내 자리에, 앉았다 가기로 한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블루스위치 키보드의 달각달각하는 소리와 함께 곱게 들어오는 색색의 불들이, 서울의 어느 전철역 주변 상가의 불빛처럼 언뜻언뜻 나의 시선을 끌어 들이지만, 언뜻 지나간 사람이 아는 사람이었는지 아닌지 확실치 않은 것처럼, 혹은 뭔가 좋은 추억이라도 떠오른 것 같지만 정확히 그게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처럼, 고개를 갸웃하고 다시 고개를 들어 랩탑 스크린을 보는 것으로 족하다.
어차피 십년 뒤의 나에게 보내는 편지는 이제는 필요하지 않은지도 모른다.
집에 돌아와 내 집에 다시 적응하면서, 과거의 내가 두고간 물건을 고맙게 사용하면서, 아마도 우리 모두는 미래의 나에게 끊임없이 메시지를 보내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었으니까.
"여기까지 내가 최선을 다해 해 놓을테니까 나머지를 부탁해. 너무 멀리가지는 말아. 내 목소리를 들을 수 없을지도 몰라."
변하지 않는 것들은, 얼핏 조금 지루해보일지 모르지만 그런 삶의 기준이 되어 주기 때문에 돌아오게 되는 지점이 된다.
그리고 다시 그곳으로부터 내가 진정 원하는 곳으로 날아오를 수 있다.
그것을 우리는 home이라고 부른다.
타지의 십개월 반은, 그렇게 참으로 짧고 아름다운 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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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생일맞이 책결산 보고서
여전히, ‘죽기전 반드시 읽어야 할 1001권 리스트’ (Peter Boxall’s 1001 Books: You Must Read Before You Die. http://www.listology.com/ukaunz/list/1001-books-you-must-read-you-die) 를 참조하고는 있으나, 이번 분기에는 단편을 조금 챙겨 읽기로 한 것도 있고, 이런저런 다른 경로로 알게된 책들을 읽게 된 것이 많아 리스트에 많이 지워지지 않은 것이 조금 아쉽다. 이렇게 보고를 쓰고 있기는 하지만 결국 누구에게 보여주기위해서가 아니라, 세상은 넓고 책은 많아서 혼자 시작한 일이니 이러나 저러나 좋은 책을 많이 읽으면 되지 않나 생각하지만, 그래도 하나씩 리스트에서 지워가는 맛은 덧없고 답없는 인생, 나도 뭔가를 하고 있다는 착각을 일으키는 일이기도 하고 해서 내년에는 조금 더 많이 지워낼 수 있으면 좋갰다는 소망은 있다.
책을 골라 읽기로 결정을 할 때는 아무래도, 프로젝트를 시작한 처음의 이유처럼, 간단하게 말해, 얼마 안 남은 시간동안 그래도 최대한의 좋은 책들을 읽고 죽겠다 이거기 때문에, 절대로 서두르거나 (내 나이를 생각하면)남는 시간(따위는 없다)에 집어든 책은 없는데도 이렇게 일년이 지나고 결산을 하면서 보면 여전히 아쉬움이 남는다.
한 번 시작한 책은 끝내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어 아니다 싶은데도 다 읽어 시간낭비같았던 책도 있고, 한국에 오기로 한 바람에 여러가지로 시간묶음이 옳지 않아 결국 후일을 위해 포기한 책도 있고, 그런 바람에 거꾸로 더 시간을 두고 읽었으면 좋았을 것을 허둥지둥 읽어버린 것도 있다. 그런 책은 다시 읽어 보겠다고 생각하지만 그렇게 될지에 대해서도 자신이 없다. 왜냐하면, 거듭 다시 말하지만, 절대 시간은 부족하고, 아무리 요즘은 좋은작가나 책이 없다고 다들 습관적으로 말할 지라도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 찾으면 도서관과 서점에는 좋은 책들만도 넘쳐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그런 장소에 가면 매우 드물게 이성을 잃고 책들을 다리가 휘청거릴 정도로 집어들고 와 허겁지겁 읽어대기 때문이다.
한국에 와서는 아직 시집, 그것도 미국에 가면서 다 잃어버린 오래된 시인(?)의 시집밖에 사지 않았다. 아직 한국작가들을 잘 모르고, 골라놓은 리스트의 영문책도 많은데 이제와서 확신이 서지 않는 작가들의 책을 읽을 시간을 내야할지 현재로써는 자신이 없다. 내 주제에 그들의 실력(whatever that is)을 논하자는 것이 아니라, 아무래도 나가 살다보니, 사람마다 각자 취향도 다르고, 어제 이중섭전에서도 다시 느꼈지만, 다들 어디선가 들은 말들을 본인의 느낌과 의견으로 혼동하여 ‘재활용’하는 세상이라 참된 의견도 듣기 힘들고(사족이 되겠지만, 쉽게 말하면, 남들이 좋다더라 하면 본인이 아무리 싫어도 싫다고 말을 못하거나, 그렇게 느껴서는 안된다고 느끼는 분들도 많고, 그나마 싫다고 말 할 수 있는 사람들도 장르의 취향이 다른 것 뿐인데 잘 모르는 것에 대해 섣불리 판단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하여, 골고루 들어보고 객관적이고 공통된 의견의 수렴을 하는데 도움이 될 만한 아는 사람조차도 한정되어 있다는 말이다. ‘이 사람 저 사람 의견을 듣는다’는 그 자체가 클리쉐인 말은 인터넷으로 맛집을 검색하는 것과 같아서 누군가 의도적으로 ‘미는’ 작품이 걸리기 쉽다.
늘 이 보고서를 쓸 때마다 불평을 하고 있듯이(그리고이것이 마지막 불평도 아닐 것이), 눈은 ���전히 안 좋아지고 있기도 하고, 운동하는 시간이 아깝기도 하고해서 작년에는 오디오 북도 많이 들었긴 하다. 이제는 집중해서 듣는 것도 많이 훈련이 되었지만 오디오 북은 첫째, 일단 글자 그대로 ‘읽는’ 것이 아니고, 둘째, 고전은 더러 다시 녹음되어 나오기도 하지만 오디오 북이 나오기 시작한 시기 감안 검증을 받지 못한 새책들 위주라 초이스가 한계가 있고, 운동하면서 듣기 위해 가볍게 빌린 (대단히 발칙한 말이지만 취향상) 흥미위주의 읽을꺼리들인 경우도 있고해서, 그리고 마지막으로, 어쩌다 확실히 놓친 부분이 아니면 다시 돌려 듣는 일이 드문지라, 마음에 드는 부분이나 생각을 하게 되는 부분을 그냥 지나치게 되기 때문에 뭔가 ‘읽었다’는 리스트에 넣기 싫은 것도 있고 해서 리스트는 적어 놓겠지만 읽은 권수에 포함을 시키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작년만 못한 성적이다보니 읽은 책 수에 더해버리고 싶은 욕심이 1프로 드는 것은 사실이나,어차피 혼자만의 리스트인데 이런들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과천 래미안 슈르 아파트 산책로가 얽히고 섥힌듯 어떠하리.
여기서 집고 넘어갈, 미국에서 나오는 오디오 북의 최장점이라고 한다면, 여러가지 단점 감안, 적어도 작품성이 있는 책이라면 읽는 사람들이 배우인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읽기가 연기performance라는 생각을 적어도 따로 해본 적이 없는데 가령 harper lee 의 go set a watchman 는 리스 위더스푼이 특유의 남부 사투리를 잘 표현하여, 흐느끼며 소리치며 속삭이며 정말 한편의 영화를 본 것 같았고, 파올로 코헬로의 연금술사 같은 경우는 제레미 아이언스의 퉁명하면서 은밀한 말투가 전체적인 분위기와 잘 맞아 떨어져 좋았다. 번역작이나 어떤 국가의 색이 드러나는 작품은 주로 악센트의 표현이 능한 사람이 읽게 하는 경향이 있는데, 하루끼의 이번 책은 오히려 일어발음은 잘 못 읽는 사람이 전체 대화체는 정체불명의 딱딱한 영어로 읽어서 불만이 있기도 했지만 말이다.
혼자만의 공상더하기 욕심으로는, 한국같은 경우는 드라마아트로 대개 시작하는 미국과 달리 연극배우 출신이 아닌 배우들의 딕션이 특별이 좋은 사람이 드물기 때문에, 외려 발음이 괜찮은 가수들이 시간을 내어 녹음을 해서 문화(!)에 기여도 하고, 본인도 노래 뿐 아니라 좋은 문학작품과 목소리를 엮어 남기는 프로젝트가 있었으먄 좋겠다.(만 현재 한국의 오디오북 사용및 제작 현황도 모르겠고 내 목소리도 작고 해서 별로 반영이 될 것 같지는 않다)
1. The Alchemist - Pauolo Cohelo
2.The Surrendered - Changrare Lee
3.Red Velvet Cupcake Murder -Joanne Fluke
4.Canada -Changrae Lee
5.Kite Runner -Khaled Hosseini
6.My Fathers Tears -John Updike
7.Cinammon Roll Murder -JF
8.Too Much Happiness -Alice Munro
9.Go Set A Watchman -Harper Lee
10.Colorless Tsukuru Tazaki - Murakami Haruki
지금 기록을 보면, 올해 한국에 오면 아무래도 세상귀경으로 바빠질 줄을 알고 열심히 분발하여 작년에는 56권을 읽었던 모양인데 올해는 44권에 그쳤다. 지난 한달동안 못해도 네권은 읽었을 시간동안 한 권을 겨우 읽었을 뿐이니 무리도 아니다. 그래서 676권 남았던 것이 이제 632권이 남았나보다.
현재도 거의 매일 가방을 둘러메고 집을 나서는 일이 많기 때문에, 그리고 도서관에 와도 사람구경, 생각정리에, 아무래도 사람들을 더 만나다보니 그 전에 없던 커뮤니케이션(!)에 들어가는 시간이 많아 읽는 책의 진도는 영 안나간다. 그래서 이동하는 시간에 늙어가는 다리를 버팅기며. 시큰거리는 손모가지를 삐대가며 부지런히 한페이지씩 읽어나간다. 어느정도 내용이 잡혀야 몰입도 되고 속도도 나지만, 이틀만에 책장을 열어보면 먼저 어디서 놓았는지 ���시 읽어보아야 기억이 나기 일쑤지만, 그래도 한 페이지씩 읽어나가다보면 지금 읽는 책도 다 읽어지리라. 이런 추세라면 내년 보고서는 한자리수의 책이 되지 싶지만 그걸로 또 할 수 없다. 산전수전끝에 내 복에 18년만에 이렇게 고국에 오래 머무르며, 아버지가 하모니카로 생일축하를 불어주시는 것과 까짓 책 몇(십)권을 바꾸랴.(라고 말은 하지만 예방주사 제일 먼저 맞고 안 아픈 척하는 느낌 또한 할 수 없다)
나에게 읽기는 끼니와 같다. 해마다 많이 읽겠다고 이렇게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듯이, 많이 읽는다고 어디서 쿠폰하나 주지 않는데 권수를 많이 읽는것 자체가 목적일리 없기 때문에, 이렇게 ‘연명’을 한다고 보면 대충 맞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무엇보다 ‘이야기’를 읽는 것이고, 내가 모를 수 있는 다른 구석 세상을 아는 것이고, 어떤 면에서 나를 표현하는 법이다. 다른 사람들, 특히 보는 눈이 남다른 작가나 학자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법을 함께 나란히 서서 배워, 한 마디를 해도 말 같은 소리를 하고 싶은 욕심, 결국은 욕심때문이기도 하고 그것은 식욕과 많이 다르지 않다.
그래서 아마도, 올해는 정말 리스트만 쭉 쓰고 별이나 몇개 달고 마쳐야지 하고 생각하면서도 이렇게 사족을 길게 쓴다고 보면 맞다.
1. Woodcutters -Thomas Bernhardt
2. O'henry prize Short Stories 2008
3. The Heart Of The Day -Elizabeth Bowen
4. The Tent -Margaret Atwood
5. A Handful Of Dust -Evelyn Waugh
6. Decline And Fall -Evelyn Waugh
7. The Case of Sergeant Grincha - Arnold Zeweig
8. Money (a suicide note) -Martin Amis
9. The Amazing Adventure of Kavalier and Clay -Michael Chabon
10.The Valley of Amazement -Amy Tan
11. 1Q84 -Murakami Haruki
12. Reading Modern Short Stories 1955
13. The London Novels -Colin MacInnes
14.The Lake of Dead Language -Carol Goodman
15. Bridegroom -Ha Jin
16. Cities of The Interior -Anais Nin
17. The Bean Tree -Barbara Kingsolver
18. Missing Person -Patrick Modiano
19. The Brief Wonderous Life of Oscar Wao -Junos Diaz
20. Musicophilia - Oliver Sacks
21. The Voice of the Master Kahlil Gibran
22. Troubles J.G.Farrell
23. Birds of America Lorre Moore
24. U.S.A. 1. The 42nd Parallel
25. 2 1919
26. 3. The Big Money -J. D. Passos
27. Christ Stopped at Eboli -Carlos Levi
28. Look to Windward -Ian M. Banks
29. Monsieur Malaussene -Daniel Pennac
30. The Reader -Barnhart Schlick
31. Spring Flowers, Spring Frost -Ismail Kandare
32. The End of the Story -Lydia Davis
33. Tent of Miracles -Jorge Amado
34.The Pillow Book of Sei Shonagon
35. Jitterbug Perfume -Tom Robbins
36. O'henry prize stories 2006
37. Shroud -John Banville
38. Those Who Leave And Those Who Stay -Elena Ferrante
39. Like Water for Chocolate -Laura Esquire
40. The Art of the Novel -Milan Kundera
41. With Your Own Two Hands -Seymour Bernstein
42. The Shinning -Stephen King.
43. Demian -Herman Hesse
44. Chatterton -Peter Ackroyd
*나름 이유가 있어 선정한 책이었고, 어떤 책은 덜 어떤 책은 더 좋았으나, 나의 의견이 남의 의견과 같으리란 법도 없고, 얼마나 가치가 있는지도 몰라 goodreads.com에 리뷰점수 준 것으로 여기 별점은 생략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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