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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비: 완벽한 믿음 혹은 모순
종교에 대한 믿음이란 불안한 현실로부터 구원과 마음의 안정을 얻고자 하는 자유로운 표현이다. 하지만 보는 시각에 따라 맹목적 믿음은 오히려 자유를 속박하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 연상호 감독의 11월 21일 개봉작 <사이비>는 이러한 맹목적 믿음에 대한 모순 그 자체를 그리고 있다. 마을 주민들에게는 '삶을 살아가는 원동력'이 되지만, 민철에게는 '한낱 정신 나간 소리'로 보이는 것처럼.
영화 <사이비>는 단순히 종교를 소재로 선과 절대악의 대립을 그린 이야기가 아니다. 진실과 믿음, 인간의 나약한 본성을 극사실주의로 담아내고 있는 영화 <사이비>는 관객들에게 불편함을 안겨준다. 수몰예정지역의 마을 주민들은 실재하지 않는 하느님에게 기도하며 믿음을 삶의 원동력으로 삼으며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마을 주민들의 믿음은 사기꾼 최경석의 기도원을 지어 함께 살아가자는 위선과 거짓에 의해 실재하지 않는 가짜도 실재하는 진실로 받아들이게끔 만든다.
하지만 민철은 모든 것이 진실이 아닌 거짓임을 확인하고 마을 주민들에게 ���로하지만 오히려 이방인 취급하며 철저하게 무시당한다. (술집 사람, 경찰 모두에게) 이러한 민철에게 마을 주민들은 "제발 그냥 이대로 살게 냅둬라"라고 말한다. 민철은 영화 <더 헌트>(2012)나 영화 <이끼>(2010)를 연상시키며 집단적 믿음에 의해 만들어지는 거짓된 진실에 홀로 맞서 투쟁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갈등과 투쟁의 이야기를 그려내는 방식을 연상호 감독은 모순으로 표현하고 있다. 수몰예정지역의 마을 주민들이 구원을 받기 위해 교회에서 나눠주는 샘물을 마시는 장면, 마을 사람들이 둘러앉아 거짓없이 고해성사를 하다가 경찰이 최경석에 대해 묻자 모른다고 거짓말을 하는 장면이나 성호의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마을 주민들이 성호를 위로하기보다 동시에 성철우 목사를 쳐다보며 천국으로 갈 자리가 한 자리 줄었다고 말하는 장면,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통해 모순은 잘 드러나고 있다.
결국, 영화 <사이비>는 왜곡된 진실과 믿음을 통해 인간의 본성인 나약함을 드러낸다. 극 중 선한 이미지로 표현되는 성철우 역시 자신의 나약함을 감추기 위해 스스로를 괴물로 변하게 하고, 마을 주민들을 구원하는 목사에서 결국 자신도 구원을 받아야 하는 나약한 인간임을 깨닫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민철 또한 진실을 폭로하려고 한 행동들이 친딸 영선에게 희망을 짓밟아버리는 행동으로 비춰지면서 친딸 영선을 자살로 몰고가게 한다. 이러한 영선의 자살은 민철에게 죄책감을 낳게하여 민철 역시 종교를 믿게 만드는 계기가 된다.
마을 주민들에게 '거짓이냐 진실이냐'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그저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의 찬양가 같이 희망을 진실로 믿고 살아갈 뿐이다. 그것이 거짓이라도 진실로 믿어야만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 지독한 현실을 살아가기 힘드니깐.
영화 <사이비>는 이러한 모순으로 가득찬 세상에 정말 당신이 믿고 있는 진실이 진짜인가에 대한 묵직한 돌직구를 던지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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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와 나오키, 잃어버린 10년을 향한 외침과 사투
드라마 <하얀거탑>(2007)과 <자이언트>(2010)의 태도에 대해 생각해보자. 두 작품 모두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비극을 통한 감정의 자극을 정열의 정화(카타르시스)로서’ 이끌어내고 있다. 이러한 방식은 일본 TBS에서 종영한 드라마 <한자와 나오키>(2013)에서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시청률 42.4%(최종회 기준)를 기록하며 전 일본을 강타한 <한자와 나오키>는 일본의 체계적인 시청률 조사가 도입된 1980년 이후 가장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드라마로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원작 소설 <우리들 버블 입행조>를 TV로 옮긴 이 작품은 단순한 복수극처럼 보이지만 이면에는 잃어버린 10년을 향한 강경하면서도 놀라울 정도의 냉철함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한자와 나오키’의 흥행이 일본 사회를 관통하는 어느 한 시점부터 지금까지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반영하며 일본인 대다수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다는 점에서 연장선상에 있다.
<한자와 나오키>는 버블경제 붕괴를 배경의 시작으로 극을 전개하고 있다. 또한 ‘한자와 나오키’가 복수를 꿈꾸게 된 원인 역시 버블경제 붕괴 당시 불황의 여파로 인한 은행의 공리주의적 태도에 기인하고 있다. 이러한 복수의 태도를 통해 맹목적으로 윗사람에게 복종하고 죽음을 무서워하지 않는 충성심과 용맹함으로 표현되었던 사무라이 정신이 피땀을 흘리면서 기초산업을 지탱하는 역군들의 노고를 간악하게 이용하는 엘리트들에 대한 불신과 불만으로 치닫고 있는 일본의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후쿠시마 원전사태에 대한 일본 정부의 태도를 통해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또한 드라마 속에 자주 등장하는 단어(‘좌천’, ‘도게자’, ’복수’)와 대사를 통해서도 전달하고 있다.
사실 기존에도 일본의 버블경제 붕괴를 소재로 다룬 드라마는 존재했지만 <한자와 나오키>의 입장과 처지는 사뭇 다르다. <하게타카(ハゲタカ)>(2007)와 같이 일본 기업들을 매매하기 위해 기업 약점을 들춰내거나 미국 거대자본에 ���교하여 일본 기업들의 내실이 약함을 드러내지 않는다. ‘한자와 나오키’는 은행에 몸담고 있으면서도 다수의 행복을 위해서는 소수의 행복은 덜 존중되어도 된다는 공리주의에 물들지 않는 객관적 인물이다. 이 때문에 ‘한자와 나오키’의 목소리와 행동은 일본 시청자들에게 호응과 설득력을 이끌어 낸다.
하지만 자칫 ‘한자와 나오키’가 일본인 대다수를 대변하는 영웅으로 묘사할 수 있는 분위기에서 드라마는 적절한 타이밍에 현실을 반영하며 영웅으로서의 태도를 경계하고 있다. 자신의 직속 상사인 아사노 지점장을 용서하는 모습 대신 차가운 태도로 무릎을 굽히게 하며 벌을 내리는 태도는 냉정한 현실을 반영하는 참으로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이렇게 현실적인 모습을 보여주지만 엉뚱하게도 비현실적 캐릭터로 한자와의 아내인 ‘하나’가 등장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어둡고 차가운 분위기 속에서 유일하게 따뜻한 분위기를 풍기는 인물로서 등장하기 때문에 한자와의 모든 고충들을 홀로 들어주며 격려해줘야만 하는(반드시 이해하여야만 하는 혹은 지나치게 강요하는) 비현실적 캐릭터로 묘사된다. 이는 캐릭터들의 표현법을 너무 단선적으로 빠지게 않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보여진다.
일본의 입장에서 잃어버린 10년은 억울하다는 입장이 지배적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일본의 버블은 미국과 유럽 G5의 플라자 합의(1985)로 시작되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러한 억울함과 울분은 드라마 속에서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은행의 임원 회의에서 한자와 나오키가 오와다 상무의 비리를 폭로하며 복수를 성공하는 장면에서 플라자 합의에 대한 일본의 외침이 연상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한자와 나오키’의 방식이 과연 정의로운가?
이 질문에 대한 <한자와 나오키>의 답변은 반드시 옳은 것이라고 단정 짓고 있지는 않다. 권선징악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구조 안에서 과연 선과 악은 누가, 어떠한 기준으로 결정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한자와의 행동이 아버지의 복수를 하기 위한 의도로 시작되었다고 하나 복수를 하기까지의 과정에서 소중한 그 무언가를 보지 못하고 무서울 정도로 냉정한 그의 태도는 융자를 거부하여 아버지를 죽음으로 몰게한 은행원의 태도와 별반 다르지 않다고 보고 있다. 결국 잘못된 방식으로 좌천이 되어버린 한자와 나오키. 과연 한자와는 어떠한 모습과 태도로 새롭게 일본 시청자들을 통쾌하게 할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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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인
양우석 감독의 12월 18일 개봉작 ‘변호인’을 보았습니다.
- 이 영화는 시작 전부터 태도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특정 인물과 정치적 사건을 모티브로 하였지만 정치적 잣대로 평가받길 거부하며 1980년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치열함과 송우석이라는 인물의 가치관과 태도의 변화를 통해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반추하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하였습니다.
하지만 정치적으로 억압되었던 1980년대의 배경을 고스란히 구현하며 부당한 공권력에 홀로 고군분투하는 송우석의 모습을 담아낸 점과 영화 후반부에 등장하는 법정 영화로서의 성격은 영화의 모티브로 삼은 실존 인물 ‘정치인’ 노무현과 ‘변호인’ 노무현을 거리감 두지 못하게 하고, 오히려 특정 실존 인물을 영웅으로 미화한다는 일부 안타까운 시선을 낳기도 합니다.
- 그동안 끊임없이 소모된 정치인이 아닌 인간 노무현의 삶을 모티브로 시대상을 보여주려고 한 양우석 감독의 의도는 명확한 장단점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당시 실존 인물의 태도를 중심으로 극이 전개되기 때문에 시대를 입체적이 아닌 평면적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실제로 차동영(곽도원)이 비난 받는 것은 진우(임시완)를 부당한 방법으로 고문하고 비상식적인 행동을 하게한 이면에 깔린 아버지의 죽음에 관련한 대사를 느슨하게 노출했기 때문인데요. (극 중 차동영의 행동이 옳고 그르다는 얘기가 아니다.) 이는 법정에서 판사가 피고인에게 이미 죄인 취급하고, 예 아니오로만 대답하게 하는 이분법적인 사고와 지나치게 평면적인 선과 절대악의 대립으로 그려내는 모습이 닮아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노출하고 있습니다.
지나치게 돈만 밣히는 속물적인 변호사에서 한순간에 국밥집 아들을 변호하기 까지의 인과 과정에서도 다소 힘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 이렇게 단점을 노출하면서도 강한 돌파력과 목소리를 가지게 한 이 영화의 힘은 역시 배우 송강호의 연기가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평생을 ‘상식’이라고 생각했던 신념들이 와르르 무너지는 순간, 더이상 물질적인 가치나 가방끈이 짧다는 열등감 혹은 자기연민을 버리고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회에 ‘상식’을 외치는 그의 목소리는 관객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되게 합니다. 올해 개봉된 <설국열차>나 <관상>과는 달리 실제 인물에게 누를 끼치지 않기 위해 처음으로 연기 연습을 했다는 배우 송강호는 깊이 있는 연기를 위해 폭 넓은 시야를 가지고 있는 배우임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습니다.
- 개봉 전부터 많은 이야깃거리를 낳은 영화 ‘변호인’은 대중영화로서 상당한 설득력과 힘을 끝까지 안고 갑니다.
현재 끊임없이 흘러가는 역사 속에 살아가는 우리에게 송우석이라는 인물의 치열함과 목소리를 통해 속 시원한 돌파력과 일상에 존재하는 소소한 감동(미처 인식하지 못하거나 ���쁜 일상으로 인해 애써 외면하는)을 전달해줍니다.
마지막으로 영화 ‘변호인’을 통해 무의미한(소모적인) 정치적 맥락에서의 의미 해석보다 대중영화로서 관객(대중)들에게 무엇을 전달하고 싶은가에 대한 메세지를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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