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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무 미적지근한 나머지 어떤 끓는 점에도 도달하지 못하고 식어버린 사람같다.
나는 덕질을 잘 못한다. 뭔가에 빠지더라도 어느 지점에 도달하면 금방 관심이 식는다. 어떤 목표에 매진해야 할 때나 새로운 것에 도전할 때 나는 빨리 성패 여부를 가늠하는 편인데 실제로 성공할지 아닐지 알 수 없음에도 섣불리 실패할 것이라 여기고 쉽게 포기하고 만다. 지금껏 해왔던 일들의 대부분이 그래왔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인생의 변곡점에서 새로운 도전과제를 만났을 때 나는 늘 도망치기만 했다. 실패하고 난 뒤의 좌절감, 절망감이 드는 게 싫어서 패배보다 기권을 선택하는 것이다. 버티고 노���했을 때 결국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불확실한(대체로 부정적인) 미래를 끊임없이 상상하며 스스로 압박을 받는 것이 견딜 수 없어 그냥 포기를 선택한다. 그러고보니 다른 사람들은 저기 앞서 나가는데 나 혼자만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 같은 기분이다. 아마 지금 찰나의 선택으로, 이 한끗 차이로 나는 그들과 정 반대의 삶을 살 것이다. 인생에는 이기고 지는 게 없다고 하지만 꼭 벌써 부터 지고 시작하는 것 같다.
이렇게 나이 들고 싶지 않았는데... 내가 싫어했던 그 모습 그대로 나이 먹고 있는 게 눈에 보여서 마음이 아프다.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고, 그에 상응하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이제 잘 모르겠다. 지금 나의 온도로 어디에 다다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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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에게 기분좋을 일이 소식이 되어 내 귀에 들어오면 가끔 기분이 나쁠 때가 있다. 그 사람의 행운과 행복이 곧 내 불운과 불행을 드러내는 것 같아서.
하지만 세상 모든 사건은 패키지라고 봐야 한다. 어떤 일로 행운을 얻었으면, 그에 대한 반대급부 역시 셋트로 따라오게 되는 것처럼. 인생지사 새옹지마라고 하듯이 그게 순도 100%의 행복은 아니라는 말.
내가 그 사람의 불행을 내 일처럼 여기고 발벗고 나서지 않을거라면, 좋은 일 역시도 그 사람만의 일로 두자. 행불행에 일희일비 하는 건 내 삶으로도 족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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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좋은 순간들, 인연들로 이루어진 컬렉션이고, 나는 그저 지나가는 수집가에 지나지 않는다. 더 오래, 더 좋은 기억을 줍기 위해서는 적정 수준의 재력과 올바른 판단으로 이끌 수 있는 지식, 건강한 몸이 필요하다.
내가 나를 아끼고 사랑한다는 것은 무조건적으로 원하는 것을 들어주는 방임이 아니라, 옳은 길로 이끌어 줄 수 있는 적절한 절제 또는 통제를 포함하는 것이다. 규칙과 인내가 필요하다. 사랑을 동반하는 모든 것은 웃는 얼굴만 보여주지 않는다. 혼내고, 짜증나게 굴고, 지루하게 만드는 것도 사랑의 다른 얼굴이니까.
나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게을러지지는 말자. 지금 이 순간도 멈추지 않고 지나가는 아까운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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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라는 것은 아무리 해도 티가 나지 않는 작업이다. 내가 하는 일을 포함하여, 청소나 가사 노동과 같이 무언가를 정돈하여 다듬고 단정한 상태로 유지하는 모든 일은 티가 나지 않는다. 나 또는 극소수의 주변인만 알아차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정리를 하고 살아야 한다.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단정함을 유지하는 것은 그만큼 내가 나 자신을, 나를 둘러싼 세상을 신경 쓰며 살아간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정리를 하고 나면 마음이 한결 개운해진다.
나는 정리되지 못한 물건, 상��, 관계가 전부 짐처럼 느껴진다. 빨리 해결해 치워버리고 싶다. 미결의, 미완성의 상태를 견딜 수 없다. 늘 무언가를 기다리는 것 같은 기분이고 무언가의 완성을 향해 전진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다. 늘 '정리중'인 삶. 그런데 인생에 완성이 어디 있지? 지금껏 목표로 한 모든 것이 '완성'에 다다른 적 있는지 자문해본다.
맑을 청, 쓸 소. 매일매일 맑고 깨끗한 내가 되기 위해 하루에 조금씩이라도, 주변이든 생각이든 일이든 정리를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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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미룰 수 없을 때까지 미루는 것도 질환 중 하나인지 물었더니 선생님이 말씀하시길, 개인의 기질이나 성격적 특징이라고 볼 수 있고, 그렇게 미뤘음에도 불구하고 펑크내지 않고 결국은 무사히 끝마쳤기 때문에 계속 반복되는 것일지 모른다고 하셨다.
결국은 나라는 회피성 미룸병 환자를 키운건 나라는 얘기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야근을 하든 밤을 새든 펑크를 낸 적은 없다. 울면서 과거의 나를 저주하며 꾸역꾸역 할 뿐이지. 그렇게 반복하다 보니 내 몸과 정신은 '이렇게 미루지만 결국은 하게 되는구나. 할 수는 있구나' 라는 사실을 학습하고, 나 스스로를 재촉하지 않는다.
그 실례로 오늘 오후 4시까지 제출해야 하는 주간 업무 보고를 3시 36분까지도 하지 않고 여기에 일기를 쓰고 있다. 결국은 해낼거라는걸 알기 때문에.
이건 자기 신뢰일까 자기 기만일까? 조금 헷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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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잔한 일상의 매력을 느끼고 싶다.
드라마나 시트콤의 한 회처럼 에피소드가 매일같이 가득한 일상이 내게 일어나지 않는다고 불평했던 때가 있었다.
당시 엄마는 내게 "사는 게 영화고 드라마"라는 명언으로 위로를 건넸는데, 그때는 그게 무슨 의미인지 몰랐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내가 차곡차곡 성실하게 쌓아올린 하루하루가 어떤 과정이 되고, 그 과정을 이뤄낸 결과로 이 자리에 있는 것 같다. 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을 하고, 결혼도 하고, 잊지못할 인연을 만들어온 모든 것이 별 에피소드도 이벤트도 없는 잔잔한 하루들로 이루어져 있다.
사는 게 무료하고 심심하다고 할 때 우리 엄마는 "심심하면 소금 먹어"라는 핀잔으로 입을 다물게 했다. 간 안된 삼삼한 음식에 소금 툭툭 쳐서 먹듯이 내 간결하고 잔잔한 일상에도 소금 후추 조금 뿌려서 소화가 잘되는 하루하루를 만들어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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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 심하게 몰두해 있다가, 나와 같은 고민을 가진 사람의 블로그에서 “세상엔 00보다 즐거운 일이 많다”는 문장을 발견했다. 나도 그것보다 더 재밌고 신나는 일을 만들고 싶어서 버킷리스트를 작성하려고 했다.
문제는 내가 지금 뭘 좋아하는지, 뭘 하고 싶은지도 잘 모른다는 것.
딱히 어디에 가서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생각보다는 그냥 집에서 편한 옷 입고 뒹굴거리다가 간단히 요리해 먹고, 아무 걱정 없이 쉬는 게 제일 좋다. 그리고 생각이 많은 나는 그게 제일 어렵다.
내가 좋아하는 건 차 마시기, 아로마 오일로 마사지하기, 뜨개질, 일기 쓰기, 책 읽기, 조용한 곳에서 달리기, 가만히 누워 하는 호흡 명상, 남편 품에 파고들기, 유튜브보기, 또 뭐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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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눈
사람들이 멈춰서서 핸드폰 카메라를 겨누고 있는 곳을 보면 항상 뭔가가 있다. 꽃이 흐드러지는 나무, 고양이, 채도와 명도가 모두 높은 하늘, 유난스럽게 크고 둥근 달, 저녁 무렵의 남산타워 같은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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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걸 알아도 그냥 넘어가고 그러려니 하고 살 수 있으면 좋겠다. 문제 삼지 않고 조용히 넘어가는 일이 어려워진건 아마도 나와 내 선배들이 겪어온 불미스러운 사건 때문일 것이지만, 그 이전에도 나는 (오로지 나에게) 부당한 일을 그냥 넘기지 못해왔다. 그렇다고 내가 그렇게 원대한 목표를 가지고 사는 사람도 아니고, 무한하게 이타적인 사람도 아닌데. 그냥 힘든 일이 있으면 하기 싫고, 싫은 사람이 있으면 만나기 싫어 도망쳐버리는 사람이다. 그런 주제에 순응은 절대 못해서 피곤하게 산다. 하라면 하고 하지 말라면 하지 않는 고분고분한 사람이었다면 얼마나 편했을까 삶이. 이 수많은, 어쩌면 별 것 아닌 고민과 무의미하게 느껴지는 반목이 나를 빗겨갔을 수도 있었는데 내 성질머리는 나에게 날아오는 모든 것들을 불합리라고 인지하고 족족 들이받아버리는 것 같다. 기분 나쁜 촉이 항상 세워져 있는 느낌도 들고.
내가 상처받은 자리에서 그냥 도망치고서 대화조차 하지 않으려고 하는 모습을 보며, 너는 나에게 무책임하다고 말한다. 내 잘못은 하나도 없는 것처럼 말한다면서. 잘못이나 무책임 같은 단어에 날을 세우면 말꼬리를 잡는다고 또 화를 낸다. 이런 것도 사랑의 일면이라면, 사랑은 얼마나 보잘 것 없고 이기적인 감정인지.
내가 성격 나쁜 겁쟁이라고, 심약한 응석받이에 고집쟁이라고 인정하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아마 ‘그래도-’로 시작하는 훈수를 두겠지. 나는 그 말에 그 태도에 또 상처를 받을 게 두려워 진심을 꽁꽁 싸맨채 아무도 못보는 곳에서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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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곤해 보일 때 ‘푸석푸석하다’라고 수식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늘 산뜻한 모습만 보여주고 싶다는 뜻이 아니라 불합리하게 여자의 피곤함에만 ‘푸석푸석’ 같은 형용사를 붙여주는 이 사회의, 여성에 대한 꾸리꾸리한 레토릭을 타파해 버리고 싶은 것이다.
그렇게 말하는 당신은 왜 포멀한 셔츠 위에 후드 집업 따위를 입는 것이죠? 월요일이라서 그런겁니까? 머리에 젤인지 무스인지는 왜 바르는 것이죠? 당신은 푸석하지 않은 촉촉함이 좋아서입니까?
누군가 월요병으로 인해 피곤해보이면 푸석해보이네 따위의 겉핥기식 걱정을 날려주는 대신 아가리를 웁 하고 다물어줄 수 있는 사회를 만들고 싶다. 나는 그런 선배가 되어야겠다.
아울러 아이 없는 사람에게 ‘나중에 너도 엄마 되면 알겠지만(찡긋)’ 같은 말을 가책 없이 하는 무포궁 xy염색체 보유자에게 ‘엄마 아닌 사람은 모르는건데 왜 아는 것 처럼 얘기하세요?(방긋)’ 하고 응수해줄 수 있는 성깔 나쁜 후배가 되고야 말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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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도서 대출 내역을 보면 나라는 사람이 대충 그려지는 것이다.
나는 때때로 현실적인 걱정에 사로잡혀 어쩔 줄 몰라하다가, 갑자기 몽상가가 된다. 감상에 빠져있다가 여행을 다니고는 또 현실로 복귀한다. 이런 패턴은 주로 DELF/vol de nuit/grammaire progressive du francais와 같은 전공 관련 서적에서 연애소설이 필요한 시간/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무지크 같은 소설로 갔다가 내일은 후쿠오카/프렌즈 태국 등을 거쳐 좋아하는 곳에 살고 있나요?/아이는 누가 길러요/자동차 정비 교과서에 도달한다.
줄타���를 하며 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건강한 삶이라고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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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리 채플린이 말했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고.
임플란트를 하기 위해 치과의자에 앉아서 입을 벌리고 발치를 하는 것이 꽤나 처참했으나 한편으로는 우스웠다. 젤리를 그렇게 쳐먹고 양치를 안할때부터 알아봤지. 틀니도 내가 제일 먼저 끼겠어. 하며 자조하고 보니 크게 심각할 일도 아니다 싶었다.
인생이 이정도였으면 좋겠다.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비극이 아닌 정도. 나이가 들어 몸 하나하나가 고장나고 아파서 비참한 기분이 들어도, 웃음이 나오지 않을 만큼 힘든 상황이 찾아와도 희곡(drama)의 한자는 바랄 희도 기쁠 희도 아닌, 놀이 희(희롱할 희) 자를 썼지. 하며 결국은 난관을 헤쳐나가는 드라마 속 주인공처럼 꿋꿋이 나를 조롱하며 극을 마칠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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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기피증
버스정류장에 붙어있는 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의 원아모집 공고문을 보면서 나는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경쟁을 거쳐 흔히들 말하는 평범함이라는 정상궤도에 진입할 수 있을까를 생각한다. 사실은 평범함이라는 것이 무개성을 가장한 비정상적인 특질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게 되는 것이다 이쯤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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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는 봄, 마음은 겨울
어제 잠들기 전 이렇게 얘기했다.
요즘 사는 낙이 없어. 정말로
모든 게 다 걱정스럽고 불안한데 할일도 많으니 사는 재미가 없다는 것이었다. 오늘 낮에도 또 얘기했다.
어제도 말했잖아 요즘 사는 낙이 없다고. 그런 무수한 날들 중 하루야 오늘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자동 휠체어를 타고 가는 여자를 보았다. 여자의 두 다리는 짤뚱했는데 내 맞은 편으로 지나가면서 눈이 잠깐 마주쳤다.
사는 낙이 없다고 내가 불평하면 저 여자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하루종일 빈둥빈둥 놀고 먹는 것을 사는 낙이라고 생각했다면 내가 그동안 잘못 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더 멋진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내 착하고 게으른 심성은 욕심이 없기 때문일까. 영욱오빠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나는 공부를 싫어한다기보다는 재미있는 다른게 너무 많을 뿐이라던 말이 이제 제대로 이해가 간다. 나는 게으르고 용기도 없고 줏대도 없는 인간인거다.
사는 게 놀고 먹는게 다가 아닌데. 역시 니가 인생을 우습게 보고 있구나.
다리 없는 여자가 나를 비웃는다. 부끄럽다. 해야할 일을 미루고 예쁘게 꾸미고 나와선 고작 싸구려 화장품이나 사러 돌아다닌 내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스스로가 사랑해줘야 한다는 모순에 자꾸만 부딪힌다. 사실은 그게 제일 어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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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ote
이보세요, 신부님. 신 이야기는 그만두세요. 저는 모든 사람이 공유하는 것 말고 저만 가질 수 있는 것을 바라는 겁니다.
로맹 가리, 그로 칼랭, 2010. p.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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