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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양 단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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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호와 "양"호준의 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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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yangshortstories · 4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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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양 단편선
글쓴이: 김지호, 양호준
 첫 번째 이야기
<1>
귀찮았다. 오랜만에 집 밖을 나선다는 생각에 설레는 건 잠시 뿐이었고 샤워를 하고 옷을 차려 입으려니 막막했다. 내가 사람다운 행색을 하고 있던게 언제가 마지막이었지? 고등학교 졸업 이후로 한 번도 얼굴을 본 적 없던 친구에게 뜬금 없는 카톡이 온 것은 어젯밤 잠 들 무렵이었다. 요즘 뭐하고 사냐는 질문에 무덤덤한 척 짧게 답장을 했지만 같이 학교를 다닐 땐 꽤나 친하게 지냈던 녀석이라 내심 반가웠다. 으레 그렇듯 서로 안부를 묻고 근황을 확인하는 메시지를 주고 받은 후에야 친구가 연락을 한 진짜 이유, 본론으로 대화가 이어졌다. 결혼을 한다고 했다. 십년 만에 듣는 동창들의 이름이 쏟아졌고 그 친구들과 같이 오랜만에 술 한잔 하며 청첩장을 돌리고 싶다고 했다. 좋은 일에 나를 기억해 초대한다는 건 분명 상식적으로 고마운 일이었지만 나는 조금 짜증이 났다. 결혼과는 거리가 먼 내 처지도 그렇고 별 일 없었으면 나에게 연락을 하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에 친구의 행복한 소식이 탐탁치 않았다. 그렇다고 나가지 않겠다고 하기엔 별 다른 핑곗거리도 없었고 추억을 팔아 몇 시간은 즐거울 술자리가 당기기도 했다. 축하한다고 당연히 가겠다고 답을 보낸 뒤에 나는 그 친구의 인스타를 찾아내 사진들을 뒤적거렸다. 예비 신부로 보이는 여자는 하얀 피부에 가는 눈매가 매력적이었다. 내 스타일이네. 어떻게 이 놈이 이런 여자를 꼬셨지? 마음이 더 불편해졌고 나는 억지로 잠을 청했다.
 <2>
현대인의 나약함은 트라우마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트라우마의 부재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 그런 확신이 들 무렵부터 K는 최대한 많은 사람을 구제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가 말했듯이 죽지만 않으면 고통은 인간을 더 강하게 만드는 법이다.
비거니즘, 알레르기, 우울증, 자의식과잉 – 대부분의 현대적 정신병은 인간이 사냥당하고 사냥하는 원초적인 공포와 쾌감을 잃어버린 데에 있다. 현대인이란 너무나도 한가하기 짝이 없기에 날이 갈 수록 의미없는 규칙들을 만들어 내 자신의 무료함을 덜어내려고 하는 것은 아닐까? 인간 외에 어떤 동물이 자신이 사냥한 먹이를 보고 이 고기가 내 앞에 오기 전에 어떤 풀을 뜯어먹었으며, 얼마나 행복했는지 따위를 신경쓰겠는가? 이런 유��하기짝이 없는 부조리함에 대해 생각하다보면 K는 내심 실소를 하면서도 하나의 거대한 흐름앞에 무기력한 자신을 견딜 수 없었다.
“내가 순 말 뿐이라고?”
자신을 구제하고 동시에 타인을 구제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그것이 가장 이타적이며 동시에 인간적인 것이 아닐까, 라고 K는 생각했다.
그렇게 자신의 생각을 확립해 나가던 K앞에 나타난 건 몇 달 전 옆 집으로 이사 온 한 사내였다.  매일 쌓여가는 문 앞 배달 음식 찌꺼기, 퀭하고 초췌한 얼굴, 며칠간 입었는지 알 수 없는 목이 다 늘어난 무채색의 티셔츠를 입고 가끔 모습을 드러내는 그 사내는, K가 보기엔 구원의 손길이 필요한 현대인의 표본과 같았다. K는 진심으로 옆집 이웃을 구원하고 싶었다. 계속해서 얕은 벽을 타고 들려오는 저열한 음악의 베이스음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렇게 K는 집을 나섰다.
 <3>
군데군데 페인트 칠이 벗겨진 낡은 복도식 아파트의 좁은 통로를 지나 왼쪽으로 방향을 틀자 눈이 부셨다. 현관문. 이 빌어먹을 아파트의 단점을 나열하자면 끝이 없겠지만 그 중 제일은 복도 쪽 뷰다. 이 곳으로 이사온지 두 달여쯤 됐을까. 그나마 볕이 잘 든다는 이유에 오래된 아파트 치고 높은 월세에도 불구하고 – 더군다나 1층이었다 – 덜컥 계약을 했지만 이내 공사가 시작됐다. 신축 오피스텔이 지어지는 과정은 상상 이상으로 가관이었다. 몇 분 간격으로 들려오는 공사 소음, 하루 종일 자욱한 흙먼지, 그러나 가장 참기 힘든 건 소음도 먼지도 아닌 현장 소장의 고함이었다. 아니 내가 그런 것 까지 신경쓸까! 알아서 잘 하라고 요령껏! 인부들 보다 적어도 열 살은 어려보이는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소장은 시도 때도 없이 갑질을 해댔다. 저도 겨우 지방대나 나와서 계약직으로 시공 관리나 하는 주제에. 적어도 지금은 건물이 꽤나 올라간 덕택에 더 이상 소장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복도가 훨씬 어두워 지긴 했지만. 공사가 진행됨에 따라 복도 반대편에 있는 아파트 현관을 통해 들어오는 빛은 점점 더 눈이 부셨다. 눈을 한껏 찡그리고 유리문을 나서자 경비 한 씨가 지상 주차장 모퉁이를 쓸고 있었고 맞은 편에 자리 잡은 주민 텃밭에 누군가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거리가 꽤 멀었지만 그게 누군지 대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아직까지 인사를 해 본 적 없어 이름도 모르는 새 이웃. 약속 시간이 가까워 졌지만 웬지 오늘은 인사를 하고 싶었다. 오랜만에 친구들과의 약속 장소로 향하는 중이라 무의식 중에 나도 이 아파트의 구성원이고 사회의 일원임을 환기시키고 싶었는지 모른다. 몇 발자국 이내로 가까워 졌음에도 아무런 인기척을 느끼지 못했는지 그는 여전히 같은 자세로 앉아 텃밭의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조금 기다려 볼까 생각했지만 할애 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탓에 먼저 입을 뗐다. 안녕하세요?
 <4>
스피노자인지 마틴루터인지 둘의 지위를 빌려 자신의 한심한 이데올로기를 설파하고 싶었던 한 코쟁이인지, 누군가가 말했다 – 난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참으로 얄팍한 상상력이다. 지구는 멸망할 일은 없다. 단지 지구를 스쳐지나가는 생명체들만 사라질 뿐이다. 그리고 사과나무를 심는다니, 인간이란 종의 자만심은 정도를 모른다. 백수가 친구 야근한다고 걱정하고 있는 꼴이다.
“백수가 친구 야근한다고 걱정한다고? 킥킥” 코쟁이의 명언 따위보단 이게 낫겠다, 라고 K는 생각했다.  
인간은 식물을 관리대상으로 보지만 사실 인간은 식물에게 사육당하고 있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도시는 식물들을 먹여살리는 이산화탄소 공급농장이다. 그들이 우리를 방목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이 텃밭에 있는 사과나무는 뭘까?
“안녕하세요-“
옆집 사내다. 평소와 다르게 잘 다려진 분홍색 셔츠와 회색 슬랙스 차림의 멀끔한 모습을 하고 있는 그의 모습을 보니 왠지 이질감이 느껴졌다.
“안녕하세요 (도시농장 231,342,523 번째 사육대상님, 킥킥)
혹시 옆집으로 이사오신 분 아니세요?”
“네! 진작에 인사를 드렸어야 하는데, 이제야 찾아뵙네요. 요즘 바빠서 아파트 이사온 뒤로 둘러볼 새도 없었는데, 텃밭도 있고 좋네요”, 이웃집 사내가 말했다.
“아 네, 제가 워낙 식물을 좋아해서요. 관리소장님한테 특별히 허락을 받아서 여기 있는 사과나무 묘묙들을 직접 사다가 심었어요. 스피노자가 그런 말도 했잖아요? 자긴 지구가 내일 멸망하더라도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 하하.”
“아- 그런 말이 있었죠.. 보기 좋네요!
아차, 버스가 곧 올 것 같네요. 그럼 나중에 다시 제대로 인사드릴게요! ” 이웃집 사내는 친절해 보이는 듯한 말투로 답한 뒤 헐레벌떡 뛰어갔다.
역시나 대단히 평범해보이는 사람이군, 이라고 K는 생각했다. 그리곤 스물스물 다시 자신의 생각에 잠겼다. 사과나무 뒷 켠 뭔가 검은 물체가 올라오는 듯 했지만, 내리쬐는 햇볕 탓에 보이는 아지랑이 일 것이다, 아마.
 <5>
한 여름의 만원 버스는 온갖 냄새로 가득했다. 입구부터 빽빽히 들어선 사람들을 밀치고 억지로 들어가 차지한 버스 왼 편의 손잡이 밑��는 연신 화장을 하고 있는 젊은 여자가 앉아 있었다. 계속해서 덜컹거리고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불안정한 버스 위에서 그녀는 능숙한 솜씨로 아이라인을 그리고 있었다. 진한 화장품 냄새와 너무 달아 싼 티 나는 향수 냄새는 그 여자의 것임이 분명했다. 아니 내가 아까 패스하라고 할 때 했어야지 등신아! 여자의 뒷 편 두 좌석에는 동네 중학교의 보라색 여름 체육복의 아이들이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방금 치르고 온 축구 경기의 패배의 원인에 대해 논쟁 중인 것 같았다. 설익은 땀 냄새. 내 오른 편에는 하얀 긴팔 재킷을 입고 체크 무늬 중절모를 머리 위에 걸치듯 쓴 노인이 창문과 여자를 번갈아 힐끔거리고 있었다. 역시 늙은이 특유의 쉰내는 어떻게 할 수 없나 보다. 시계를 보니 이미 약속 시간을 15분 정도 넘겼다. 한 두 사람이 내리고 대여섯의 사람이 잇따라 타는 악순환이 서너번 쯤 반복 되고 나서야 내려야 하는 정거장의 이름이 버스 내 전광판에 표시되었다. 미리 길을 터 놓기 위해 몸을 돌려 반으로 접힌 쇠 지팡이가 꽂힌 커다란 배낭을 맨 등산족들에게 양해를 구했다. 죄송합니다, 내릴게요. 뒷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티머니 단말기 쪽으로 손을 뻗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완전한 암흑이었다. 빛이 전혀 들지 않는 깊은 바다에 잠긴 배에 갇힌 것 처럼 먹먹해져 갔다. 내가 느껴지지가 않았다. 나는 너무 놀라 팔을 휘저으며 고함을 치기 시작했다. 아���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돌이켜보니 몇 초 정도의 시간이었던 것 같지만 나는 두려움에 떨며 한참을 위와 아래가 구분되지 않는 어둠을 헤맸다. 저기요, 지금 뭐하시는 거에요? 버스 안의 모든 사람들이 일제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경계와 연민 중간 어디 쯤의 눈동자 수 십이 나를 향하고 있었고 바로 옆에 있던 등산족 중 한 명의 표정이 일그러져 있었다. 죄송합니다! 도망치듯 버스를 빠져 나오며 외치고는 다리에 힘이 풀려 걸을 수가 없어 정류장 의자에 걸터 앉았다. 이게 뭐야 도대체? 너무나 이상했다. 얼이 빠져 몸에 문제가 있나라는 생각을 한 것은 끝내 어찌 술집에 도착해 친구들과 하는둥 마는둥 인사를 하고 맥주를 몇 모금 들이키고 나서였다. 예상 한 대로 서로의 근황부터 크고 작은 어린 날의 이야기들이 쉴 새 없이 오갔고 자리를 만든 친구가 청첩장을 주며 꼭 시간을 내달라고 하며 손을 잡았다. 금장 양각에 필기체로 쓰인 “Invitation”과 그 밑에 그려진 한복을 입은 캐릭터들이 부조화를 이루었다. 아까의 일을 계속 되뇌이면서도, 필시 배���자가 될 사람도 촌스러운 ���자일거야 라는 생각이 희미한 안도감을 주었다. 술자리는 밤 늦게까지 이어졌다. 맥주가 세 잔, 네 잔 들어가자 나는 버스에서의 불길한 사건에 대한 생각을 잠시나마 접어 둘 용기가 생겼다. 오랜만에 외출을 해 돈 까지 쓸 것이 아깝기도 했다. 나는 시덥지 않은 대화에 묻혀 연거푸 술을 들이켰고 기분이 꽤나 괜찮아졌다.
 <6>
“오늘 낮, 전국적으로 교통사고가 급증하는 기현상이 벌어졌습니다. XXX기자가 보도합니다”
“안녕하십니까, XXX뉴스 XXX입니다. 전 지금 연쇄추돌 교통사고가 난 한남대교 앞에 와있습니다. 보시다시피 크게 파열된 자동차 부품이 널부러져있는데요. 첫 차가 갑자기 급정차를 하는 바람에 6대의 차가 연쇄적으로 충돌하는 큰 사고가 났습니다. 5명은 숨지고 10명은 현재 중환자실에 입원돼있는 상황입니다. 한남대교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이런 사고가 지속적으로 보고 되고 있습니다. 정확한 통계는 아직 집계된 상황은 아니지만, 현재까지 전일대비 교통사고가 500% 이상 급증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폭염이 지속되니 콘크리트가 팽창해 올라, 그래서 갑자기 도로가 뒤틀리니까- 그래서 정차를 하고, 여우비도 있고 해서 미끄러우니까- 그래서 추돌사고가 난 게 아닐까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도로교통공단 관계자>”
“XXX뉴스, XXX 기자였습니다.”
“네, 안타까운 소식이네요. 다들 교통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그럼 다음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 – 북한산 일대가 예년에 비해 울창해져 등산로가 일시폐쇄되고 조난된 등산객들이 구출되었다는 소식입니다. YYY기자가 보도합니다.”
이런 건 아무래도 좋아, 라고 K는 생각했다. 도심 속 콘크리트 정글은 그저그렇지만 무더운 여름 날, 잠깐 젖은 아스팔트의 냄새보다 좋은 건 없으니까. 그 냄새를 콧속 깊이 머금고 K는 집으로 돌아가 소파 위에서 명상 아닌 명상을 했다. K는 소파 위 가부좌를 틀고 눈을 뜬 채 자신의 시야 끄트머리에 있는 거실 한 구석을 응시 했다. 아파트 상가 위 우뚝 서 있는 붉은 색 네온사인의 철탑 십자가가 자신의 창문을 비집고 들어와 거실 한 구석을 밝혀주었다. 아파트 옥상 위 느릿 느릿 기어가는 노을, 네온사인의 한 줄기 빛, 한 껏 머금은 아스팔트. 그는 그렇게 스르르 자신을 지운 채 도시와 하나가 되어갔다. 밤은 그렇게 따듯하게 K를 감싸안았다.
 <7>
밀려오는 갈증에 눈을 뜬 것은 새벽 네시 쯤이었다. 두 시 쯤에 택시를 타고 집에 와 양말도 벗지 않은 채 침대에 뒤집어져 잠 든 모양이었다. 술을 너무 많이 먹었나. 나는 쓰린 속을 달래야겠다 생각하고 일어나 물을 끓였다. 마침 결혼 하는 친구 녀석 아버지가 자연산 꿀 농장을 운영 하시는 터라 선물로 작은 유리병에 든 꿀을 받은 김에 꿀물을 만들어 마시기로 했다. 그 친구 말로는 올해는 유난히도 생산량이 많아 꿀 가격이 떨어질 생각에 아버지가 많이 걱정을 하신다고 했다. 뭐, 그래봐야 어차피 성공한 기업인으로 은퇴했겠다, 가질 만큼 가진 양반이 남은 노년 럭셔리하게 보내려 귀농한 줄 알았더니 돈 벌 생각은 여전한가 보네. 그래도 확실히 식품 사업에 있어서 좋은 원재료에 대한 투자가 얼마나 중요한지 이해할 사람이 만들었다고 하니 품질에 대한 의심은 들지 않았다. 나는 쓴 웃음을 지으며 내가 좋아하는 악어가 그려진 하얀 머그컵에 꿀을 두 스푼 넣고 뜨거운 물을 부었다. 그리고 잘 섞이게 몇 번 휘저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내가 왜 이 컵을 좋아했더라? 달달하고 뜨뜻한 꿀물 덕에 속이 좀 나아지는 듯 했다. 컵을 천천히 비우고 거실 바닥에 드러누웠다. 콘크리트 바닥의 냉기가 온 몸에 전해져 시원했다. 계속해서 내가 왜 그 컵을 좋아하는지 생각해내지 못했다. 분명 소중한 사람이 선물해 준 것이라던가 중요한 장소에서 또는 무언가 기념하기 위해 산 것이라던가 그런 스토리가 있을 법 했다.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컵에 대한 생각으로 잠 들지 못하고 한참을 누워 있었다. 바닥이 나를 빨아들여 붙어버린 느낌이었다. 똑똑똑! 현관 쪽에서 나는 노크 소리였다. 아니 지금 시간이 몇 신데 누구야. 중얼 거리려 하는데 입이 말라 말문이 막혔다. 일어나려 하자 다리에 전혀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갑자기 왜 이러지. 몸이 아프거나 하진 않았다. 단지 몸이 정신적 의지에 전혀 반응하지 않을 뿐이었다. 너무 취했나. 잠들기 전만 해도 머리가 간지러워 긁었더니 머릿칼이 조금 뻑뻑했던 것 말고는 아무 문제가 없었는데. 똑똑똑! 노크가 두 차례 째 이어졌고 아까보다 소리가 멀어졌다.
K는 두 번째 노크를 하고 철문에 귀를 대고 소리가 나는지 잠시 들어보았다.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결국 자신이 생각했던 대로 일이 진행 되었음에 일종의 자축감에 사로 잡히기 시작했다. K는 마지막으로 노크를 한 번만 더 해보기로 했다. 그리고 다시 3분 정도 기다렸다. 여전히 아무 반응이 없었다. 해가 센 아침이었지만 복도는 어두웠고 지나다니는 사람도 없었다. 설사 누가 본다고 해도 뭔가 잘못 본 거겠지라며 자신의 감각을 탓 할 인간이야 말로 지구 상에서 가장 불행한 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K가 문 중간 쯤에 달려있는 도어락을 향해 손바닥을 폈다. 도어락 덮개는 열리지 않았지만 파랗게 숫자가 희미하게 보이며 총 네 개의 숫자와 # 버튼이 차례로 눌렸다. 삐리릭. 문이 열렸고 K는 재빨리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다시 조심스레 닫았다. 열 평 남짓에 작은 방이 하나 딸려 있는 작은 집이었다. K는 거실이랄 것도 없는 빈 공간에 누워있는 옆집 사내를 발��했다. 이미 다리가 시들시들 했다. 전체적으로 초록 빛이 돌았지만 원래 살 빛이 군데군데 남아있어 마치 영양분을 제대로 공급받지 못해 시들어가는 화초 같았다. 머리는 제법 잔뿌리가 풍성했지만 수분이 부족해 윤기가 돌지 않았다. 이대로 두면 이틀 안에 말라 죽을 것을 걱정하던 K는 뿌리가 채 덮지 못한 사내의 왼쪽 눈을 바라봤다. 정상적으로 껌뻑이고 있었다. 텅 비었지만 모든 것이 잘 작동하는 느낌이었다. 어쩌면 지금이 정신은 더 맑아 더 깊은 통찰을 할 수 있을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그가 원하던 대로 일종의 연구를 진행할 수 있게 된다는 희망에 K는 이내 사내를 들쳐 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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