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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형이 누구냐고 물으신다면
요즘 나를 설레이게 하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만 보면 나도 모르게 두 손을 모르고 '너무 잘생겼다.' 라는 말을 연거푸 내뱉게 된다. 훨칠한 키에 쌍커플 없는 눈, 중저음의 보이스를 가진 남자다. 그는 바로, 남편이 아닌 배우 장기용이다. 그런 나를 보며 남편은 혀를 끌끌차며 자리를 비운다. 결혼 하기전, 배우자를 위한 기도 10가지를 놓고 기도했었다. 하나님께서는 그 중 딱, 1가지만 뻬고 다 들어주셨다. 그게 바로 '180cm 이상의 키' 였다. 남편은 그와 반대로 키가 작고 통통한 체형을 가진 남자다. 이상과 현실은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2년 동안 결혼 생활하면서 느낀 것은 키가 크고 작은 건,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남편을 처음 만났을 때가 생각난다. 2년 전, 10월 19일 광화문 교보생명 앞에서 저녁 7시30분에 만났다. 어두컴컴한 밤이었는데 나를 향해 걸어오는데 남색 정장차림에 흰 셔츠를 입은 그의 모습이 썩 마음에 들었다. '아우라' 라는 말이 잘 어울렸다. 인연을 만나면 '종소리' 가 울린다고들 하는데 보자마자 든 생각은 '이 사람이다.' 였다.
늘 배우자를 위한 기도를할 때, '쌍커플 없고 통통한 체형에 남자답게 생긴 사람' 이었기 때문이다. TV 속에 나오는 배우는 그야말로 내 현실에는 없는 이상형이고 남편은 현실속에 존재하는 내가 그리던 사람인 것이다.
그를 만나러 가기 전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했었다. '하나님, 기도 제목 중에 7가지 이상이면 저에게 주신 배우자라고 믿겠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함께 식사하는 내내, 그 7가지에 부합되는 사람되는 사람이란 걸 확신하게 되었다.
기도에 응답이라고 생각하고 그 이후로 계속 만남을 가졌고 연애하면서 나머지 2가지도 찾게 되었다. 정말 신기하게도 기도한 그대로의 남자를 만나게 된 것이다.다 나열할 수 없지만, 바른 성품과 따듯한 인격을 갖췄고 건강한 자아를 가졌다. 쉽게 흥분하거나 화를 내지않고 매 순간 침착하게 이성적으로 대응하는 면이 남편으로서 존경스러운 부분이다. 나를 정서적으로 안정되게 해주고 취향이 비슷해서 다툴 일도 없다. 어른들께 공손하게 예의를 갖추고 아들처럼 친근하게 대하는 모습도 내가 바라던 남편감이었다.
어쩌면, 남편이 현실에 존재 가능한 이상형 일지도... 그래서 늘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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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밤의 추억
유년시절, 부모님께서 맞벌이를 하셔서 할머니 손에 컸다. 세월이 흐른 후에도 할머니와 함께 했던 시간들은 어제 있었던 일처럼 생생하다. 사진첩을 꺼내보듯, 하나하나 기억을 되새겨보면 유난히, 여름에 대한 추억이 많이 떠오른다.
왜, 유독 여름일까? 스스로 궁금했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알게 되었다. 다른 계절도 아닌, 무더위가 한창인 7월에 돌아가셨다. 장례식을 치르는 내내 실감이 나지 않았던 터라, 혼자 있을 때마다 문득문득 할머니가 떠오를 때면 잘못했던 기억만 생각나서 하염없이 울기만 했다. 어느 날은 할머니께서 꿈에 나타나셔서,
"난, 잘 있으니 울지 마라. 내가 하나님 집에 있으니 기뻐해야 하는 게 마땅하지 않니?"
라고 말씀하셨다. 그래, 울지 말아야지 다짐하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렸다. 초등학교 5학년 여름 방학 때 있었던 일이다. 방학만 되면 서울에 계시는 조부모님 집에 머물렀다. 구로구 독산 3동에 위치한 단독주택에 거주하고 계셨고 옥탑방이 있는 집이었다. 저녁을 먹고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옥상에 올라갔다. 시원한 밤공기를 쐬며 나란히 누워 낮게 뜬 비행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할머니께서 부채질을 해주시고 재밌는 이야기를 나누며 행복을 만끽했다. 여름밤의 기억은 할머니의 빈자리가 느껴질 때마다 큰 위로가 되었다. 다른 계절에도 분명 좋은 기억들이 많았을 텐데, 여름에 있던 일들을 더 많이 생각났던 이유에 대한 의문이 풀리면서 이제는 할머니의 선물처럼 느껴진다.
그날, 밤뿐만 아니라 할머니와 함께한 숱한 밤들이 그리워 지는 오늘이다.
유난히 더위를 많이 타셔서 여름만 되면 안방이 아닌, 거실에 나와 선풍기를 틀어놓고 주무셨다. 어두운 밤에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노오란 빛을 기억한다. 할머니를 유난히 따르고 사랑했기에 지금이 영원했으면 좋겠다고 여겼던 때가 있었는데, 영원이란 게 없는걸 알면서도 할머니와 함께 한 모든 날이 소중했기에 간절히 염원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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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가 되는 습관
2000년 대 초, 아직은 인터넷이 익숙하지 않은 때이다. 시골에 살던 나는 포털사이트의 '카페'라는 커뮤니티를 통해, 다른 세상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고 있었다. 즐겨 보던 것은 '헐리우드 스타들의 일상' 이었는데 올라오는 게시글을 보면 스타들의 한 손에는 '스타벅스' 로고가 그려진 테이크아웃 커피가 늘 있었다. 스틱형 커피만 알던 당시, 생경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그게 어찌나 멋지게 보이던지, 나도 언젠가 저 커피를 마셔봐야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대학시절 여름방학 때 서울 상수동에 위치한 '클럽에반스' 라는 재즈클럽의 정모에 참석하게 되었고 거기서 만난 친구와 코엑스에 가게 되었다. 점심을 먹고 근처를 구경하다가 스타벅스를 발견하였다. 커피를 마시고 얼마나 기쁘고 흥분됐던지. 친구가 보기에는 나의 그런 모습이 조금은 재밌게 보였을 거다. 당시 대전에는 스타벅스가 없어�� 그런 반응을 보였지만, 그 친구는 서울에서 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흔한 일상이었을 테니 말이다. 그 이후로, 하루에 한잔 씩 커피를 마시게 되었다.
커피에 대해 쓰다보니 떠오르는 일화가 있다. 첫 직장에서 있었던 일이다.
직장 상사에게 야단을 맞고, 풀죽은 모습으로 일하고 있었는데 자리를 잠시 비운 사이 같이 일하는 선배가 쪽지와 함께 커피를 내 책상에 두고 갔다. 그 쪽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네가 좋아하는 아메리카노야. 커피 마시면서 기분 풀어."
덕분에 우울했던 감정이 사라지고 하루를 잘 마무리 할 수 있었다. 커피 한잔이 주는 위로가 얼마나 컸던지, 새삼 느끼는 순간이었다.
최근 글 쓰는 재미를 알게 되어 제대로 써보기로 했고 인스타그램을 하다가 '컨셉진'의 “에세이 프로젝트”가 눈에 띄어 참여하게 되었다. 설레이는 마음으로 아침에 이메일을 열어 오늘의 단어를 확인하고 커피를 마시러 카페에 갔다. 늘 그랬듯이, 이 습관이 주는 효능감을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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