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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202
동생이 노무현시민센터에 자리잡았다. 창덕궁이 보이고 3면이 통유리로 된, 원래는 회의실로 쓰던 공간이다. 동생은 남쪽을 면한 벽면에 싱글 침대를 놓았다. (서향으로 여긴 나는) 그렇게 하면 햇빛이 따갑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동생은 블라인드를 내리면 된다며 그 창을 블라인드로 다 가렸다. 그쪽이 뷰가 제일 좋은데 그렇게 하면 밖을 볼 수 없지 않겠느냐고 내가 물었다.
필동에 갔더니 예고도 없이 갑자기 시험을 치겠다고 한다. 앞에 시험지가 놓였다. 찬찬히 보면 아는 게 몇 개라도 있겠거니 했는데 완전 처음 보는 문제들이었다. 아무리 내가 평소에 공부를 안 해도 그렇지 이렇게 뒤통수를 때리고 이렇게 모를 수가 있나 싶었다. 한편, '시험날이라는 걸 알았더라도 공부는 안 했을 테지.'하는 생각도 들었다.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 앞 상가가 있는 거리를 지나가던 중, 무심하게 걷고 있는 그를 보았다. 반가운 마음에 나도 ���르게 "**씨!" 하고 불렀다. 목소리가 좀 크지 않았나, 혹시 집에까지 내 목소리가 들리지는 않았을까 잠깐 생각했다. 그가 나를 돌아보았고 우리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포옹을 했다. 그 상태에서 서로 얼굴을 살피며 안부를 물었고, 2~3초 가량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이래도 되나,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예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은 얼굴이어서 내심 마음이 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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텀블러 비번을 잊어렸었다.
고객센터에 문의도 하고 이런저런 조치를 해봤지만 잘 되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 사라져버린 꿈이 많다. 키워드라도 적어둘 걸 그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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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630
회색 롱코트의 단추들이 달랑달랑해서 꿰맸다. 단추는 일반 와이셔츠용으로, 코트 스펙에 비해 좀 작다 싶었다. 게다가 실도 얇았다.
차례차례 단추를 보수해 가던 중 점점 귀찮아졌고 점점 대충대충 꿰매게 되었다. 두어번 바느질하고 실 끊고 다음 단추 다는 식이었다.
이래도 되나.. 끊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끝까지 ���추를 달았다. 대여섯개쯤? 잘 달렸나 테스트해보려고 맨 아래에서 두 번째 것을 슬쩍 당겨보았다. 세게 당기지도 않았는데 실은 끊어졌고, 단추가 내 손에 들어왔다. 다 다시 해야 하나 왜 처음부터 단단하게 안 했을까 왜 실을 코트 두께보다 살짝 여유 있게 하고 다시 돌돌말아서 마무리하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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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403
동생이 카미노를 간다고 한다. 내가 썼던 배낭을 빌려 주었더니 짐을 쌌는데 좀 봐 달라며 가지고 왔다. 나는 짐을 꽉꽉 채워 넣어서 엄청 무겁게 쌌었는데 동생의 가방은 가볍고 헐렁해 보였다. 안을 들여다 보니 30cm*30cm*10cm 정도 크기의 꾸러미 두 개가 아래위로 놓여 있었다. 단출했다. 아직 추울 텐데 꾸러미는 여분의 겨울 옷이 들어있을 거라 여기기에는 너무 작았다.
"옷이 안 보이는데?" 했더니 동생은 "꼭 필요한 것만 챙겼어."라고 했다. 침낭도 보이지 않았다. "야, 침낭을 가져가야지." 했더니 동생은 배낭 아래 부분에 매달아 놓았다고 했다. 나는 '배낭 안에 공간이 많은데 왜 굳이 저기다 달았을까..' 생각하며 "으이그... 덜렁덜렁 불편하게 그게 뭐니?" 하고 말했다. 그리고는 배낭 속 짐 두 개를 아래 쪽에 몰아서 위쪽에 공간을 만들었다. 침낭을 풀어서 배낭 위쪽에 넣으면서 "무거운 짐은 위쪽에 넣어야 덜 무겁다더라." 하고 말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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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121
새벽 보고가 있는 날. 회장은 다른 때와 달리 집무실이 아닌 부속 건물에 있다고 했다. 6시 보고였지만 5시 40분에는 들어가야 한다. 그날따라 왠지 미리 가고 싶지 않아서 중정이 있는 곳에 잠깐 머물렀다. 하늘이 보였고, 멀리 산들이 보였다. ���렇게 경치가 좋았나. 시간도 남는데 더 자세히 볼까. 식당동 2층 계단으로 올라갔다. 펼쳐진 놀라운 풍경. 나는 핸드폰을 꺼내 이곳저곳을 찍어댔다. 책 필사 모임 단톡방에 사진을 올릴까 잠깐 생각했지만 메타 정보를 지우기는 귀찮고 안 지우자니 찜찜해서 그냥 안 보내기로 했다.
자료를 놓고 온 것이 생각났다. 새로 출력을 부탁하면 뭐라고 한소리 할 텐데. 아, 책상 위에 출력해 놓은 게 있기는 했지. 자리로 돌아가서 자료를 가지고 오면서 ‘시간이 남으니 좋기는 하다’고 생각했다.
그가 있다는 부속 건물은 전체가 공사 중이었다. 오래 되기도 했고 상황도 바뀌어서 그럴 만도 했다. 그가 있는 5층을 뺀 나머지 층은 다 비운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웬 양복 입은 남자가 걸어나왔다. 나는 ‘이 사람은 누군데 왜 여기 있는 거지?’하고 생각했다. 그도 나를 보고 그렇게 생각했을 것 같았다.
건물 1층은 공사가 끝나 있었다. 진회색 콘크리트로 마감해서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2층에 오르니 먼지가 날리고 있었고 인부가 기계 소리를 내며 뭔가를 작업하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5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저기.. 5층으로 가려면 어떻게 해야 되요?” 하고 그에게 물었고 그는 오른쪽 구석에 있는 좁고 비탈진 계단을 가리켰다. 마감이 되지 않은 상태였다. “저리 올라가세요.” “올라가서 그 다음은요?” "보시면 오른편에 올라가는 데가 있을 겁니다.”
가파른 계단 위에는 철문이 달려 있었는데, 그걸 고정해야 안전하게 올라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끈을 구해서 문을 묶으려고 하는데 보고 있던 그가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어요”라고 말해주었다. 그 말을 듣고 원래 생각했던 것보다 끈을 대충 묶었는데, 계단을 오르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었다.
계단을 올라가니 오른쪽에 과연 뭐가 있었다. 그런데 저리로 올라가라고? 문도 아니고 계단도 아니고 가슴 높이 쯤에 가로로 긴 틈이 있었던 것이다. 높이는 15cm, 너비는 1.5m 정도였다. 기가 막혔다. 이리로 들어가라는 말이야?
그 와중에 어떤 구멍이든 머리가 통과하면 몸이 다 통과할 수 있다는 말이 기억났다. '그래. 머리부터 넣어보자.' 하면서 머리를 들이미는데 여의치가 않았다. 오른쪽 왼쪽으로 돌려도 보고 있는 힘껏 밀어넣어도 봤지만 꽉 껴서 아프기만 하고 머리는 1/10도 들어가지 않았다. 보고 있던 인부도 이렇게 해 봐라 저렇게 해 봐라 하면서 뒤에서 참견을 했지만 그대로 해 봐도 되지 않았다. 콘크리트 가루가 얼굴로 몸으로 막 떨어졌다.
한참 낑낑거리고 있는데, 아래에서 누군가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머리를 들이박고 있는데 말소리가 들렸다. "너 뭐하냐?" 고개를 들어보니 최회장이었다. "아.. 회장님 만나러 오셨어요?" "그렇지." 시계를 보니 6시 15분이었다. 구멍에 껴서 허부적거리는 동안 시간이 지나서 다음 일정으로 넘어간 모양이었다. 당황하기도 했지만, 나는 자신 있게 말했다. "이리로 들어가셔야 되는데 아마 안 되실 걸요?" 나도 안 되는데 몸집이 큰 그가 될 리가 없었다.
그 순간. 그 곳에서 좀더 들어간 곳에 있는 코너에서 5층에 있다던 그가 나타났다. 우리 쪽을 흘낏 보던 그는 최회장에게 가볍게 인사하고 사라졌다. 화장실을 가는 모양이었다. 최회장은 '저기 계단이 있구만 대체 왜 그러고 있었냐"며 나를 싹 지나쳐 들어갔다. 그를 따라 몇 걸음 더 가니 과연 안정적이고 널찍한 계단이 위로 나 있었다. 아.. 몇 걸음만 더 가 볼 걸. 아니야, 아까 계단만 올라가면 뭐가 있을 거라고 누가 그랬잖아. 그건 그냥 틈이었잖아.. 별별 생각이 다 났다.
계단을 오르는 최회장의 바지 가랑이를 붙잡았다. "저 어떻게 해요 저 어떻게 해요.. 아.. 어떻게 하면 될까요 뭐라 말씀 좀 해주세요..." 최회장은 계속 걸어갔고 나는 바지 끝을 꽉 붙잡고 기다시피 따라갔다. '뭐 이런 황당한 경우가 다 있나' 하는 생각에 헛웃음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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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923
학교를 개조한 듯, 여러 공간이 연결돼 있는 곳이었다.
거기서 만난 사람들은 연극을 준비한다고들 했다.
누가 봐도 주연 배우인 것 같은 좀 젊고 작은 남자가 있었고, 누가 봐도 스태프인 것 같은 중년의 남자가 있었다. 둘 다에게 예를 갖추긴 했지만 내 표정은 차이가 있었다. 주연 배우를 봤을 때는 왠지 마음에도 없는 영업적인 표정이 나왔다. 말을 주고 받지는 않았지만 내 얼굴은 누가 봐도 ‘아~ 주연이신가 봐요~~ 대단하세요~’ 하고 영혼 없이 말하고 있었다. 중년 남자(좀 마르고 키는 보통)를 봤을 때는 ‘연출인가? 실세가 아닌가? 뒤에서 고생이 많겠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딱하게 ���기는 게 느껴질까봐 최대한 중립적인 표정을 지으려고 애썼다.
대본을 얼핏얼핏 보기도 하고 복도를 따라 있는 방을 다녀보기도 했다. 어떤 방에는 낯선 사람들이 있었고 어떤 방에는 소품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나는 여기서 뭘 해야 하지? 역할을 찾아 이렇게저렇게 다녔는데, 어떻게 해도 어색했다.
현정이가 거기 있었다. 아는 사람이 있어서 반갑기도 했고, 아무도 나를 모르는데 누군가 나를 안다는 게 불편하기도 했다.
그렇게 현정이를 포함한 대여섯명과 모여서 미팅을 했다.
남자 주인공은 저 사람이죠?
하고 젊은 남자를 가리키며 확인하니 누군가 무슨 소리냐며 아까 대본 안 봤냐며,
큰 남자 작은 남자 둘이 주인공인데 내가 본 두 사람이 다 주인공이라는 거였다. 대본에 큰 남자는.. 작은 남자는... 어쩌고 하고 써 있었던 게 그제야 기억이 났다.
잘못 알 수도 있지.. 무안했다.
좀 있다가 현정이에게 물었다.
그런데 너는 여기서 뭐하니?
또 그 누군가가 옆에서 뭐라고 했다. 아니, 이 분이 연출가인 거 모르세요?
아.. 영화 PD 아니었나? PD를 연극에서는 연출이라고 하나? 시나리오 쓰고 그랬는데..
하며 횡설수설 버벅거렸더니 그 누군가가
영화나 연극이나 그게 그거죠!
한다.
그런가? 영화나 연극이나 그게 그건가? 하긴 그렇게 볼 수도 있겠네. 이상한데..
라며 속으로 생각하면서 약간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퉁명스럽게 내뱉은 말.
저 저 친구랑 안 친해요.
안 친한 친구가 뭘 하건 내가 그걸 왜 알아야 되냐 하는 항변이었는데
말 하는 순간 어쩐지 속이 시원했다.
그래도 혹시 현정이가 기분 상하지는 않을지 약간은 마음이 쓰였다.
안 친한 건 맞지만 굳이 안 친하다고 여러 사람들 앞에서 말을 했어야 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 현정이마저 뭔가를 하고 있으니 내가 내 할 일을 더 못찾게 될까봐 화를 낸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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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830
방배동 사무실에서 일하기로 한 날.
전날 다른 곳에서 자서 편치 않았다. 묵은 곳은 2호선 라인 어딘가에 있는 지인 집이었다. 눈을 뜨니 8시 20분. 벌써 지각이었다. 절망했다. 어떡하지 어떡하지 하다 다시 시계를 보니 다행히 내 착각이었다. 시간은 7시 40분이었다.
정신없이 그집을 나서는데 친구가 따라나오며 말했다. "너도 집에서 그냥 쉬어 이제." 경제적인 문제도 있지만 어떻게 종일 쉬나 싶었다. 생각해보니 이미 집에 있는 게 자연스러운데. 사무실 나가는 게 이미 몹시 어색한데.
그나저나 어떻게 가야 하나.. 이러는 사이에 일단 출발하고 보겠다, 하는 내면의 소리를 들으면서 2호선 7호선 9호선 택시 시뮬레이션 끝에 2호선을 선택했다. 방배역까지는 네 정거장 남짓이니 서두르면 8시 전후에는 도착할 것 같았다. 전철역까지는 멀었다. 두 역의 중간쯤에서 방배역쪽에 가까운 역을 향해 걸었다. 아현역. 생각해 보니 방향을 착각한 데다 역 숫자도 잘못 셌다. 네 개가 아니라 열 몇 개는 돼 보였다.
전철을 타고 가면서 짐을 점검했다, 세면용품이 든 가방은 백팩에 넣고.. 옷차림은.. 보자.. 약간 운동복같은 캐주얼이지만 전날 날 본 사람이 없으니 괜찮을 것도 같았다.
지각은 확정이고... 내가 도착할 즈음의 사무실 풍경이 떠올랐다. 한창들 일하고 있겠지. 줄지어 앉아 컴퓨터를 들여다보는 옆얼굴들. 아 고개를 돌려 날 쳐다보지 마. 눈이 안 마주치면 좋겠는데. 눈이 마주쳤을 때 내 얼굴이 열적은 표정이 아니면 좋겠는데. 벌써부터 입술이 제멋대로 움직인다.
뭐 어때. 정직원도 아니고 용역인데. 아니지. 그럴 수록에. 생각이 복잡했다. 나는 어느새 사무실 근처에 도착해서 사옥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전날 받은 동료의 메신저에 답을 하지 않은 것이 기억났다.
사무실에 들어가지 않고 근처에서 일하겠노라고 답을 하려는 순간, 어쩐지 가벼웠던 백팩에 노트북이 들어있지 않다는 것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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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826
언젠가 살았던 듯한 오래 전 오래된 집. 작고 털이 복실복실한 어린 양 한마리와 엄마 양을 입양했다.
집에서 어린 양을 보살피던 엄마 양은 답답했는지 집을 나갔다. 눈에 띄지 않게 어린 양을 돌보는 것 같았다.
어린 양은 걱정했던 것만큼 손이 많이 가지 않았다. 알아서 잘 지냈고 가끔 내게 폭 안겼다.
점점 나와 교감��는 양을 보면 신기했다. 내가 어쩌다 개도 고양이도 아니고 저런 양을 키우게 됐을까. 인형같이 생겨가지고 움직이네. 얘가 아프면 동물병원에 데려가야겠지. 병원에서 양을 볼 수 있을까?
어느 순간 양이 동물이 아니라 가족처럼 여겨졌다.
양을 지켜보고 있는데 이 놈이 갑자기 카악~ 하고 목구멍 속 가래를 모으는 소리를 냈다. 아니 설마? 했는데 방바닥에 침을 퉤 하고 뱉었다. 내가 지금 뭘 본 거지? 하며 어이없어 하고 있는데 이 놈이 확인이라도 시켜주듯 한번 더 똑같이 했다.
나는 투덜거리면서 걸레로 침을 닦았다. 사람이 보통 뱉는 양보다 많았고 다행히 점성은 없어서 그냥 물 같았다.
기분이 묘했다. 사람같이 대해줬더니 사람같이 행동하네. 어디서 저런 걸 배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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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10
비상 계단을 통해 오피스텔 옥상으로 올라갔다. 바다 위로 해가 막 지려고 하고 있었다. 서쪽만 빛이 남아 있는 짙푸른 하늘은 색감이 끝내줬다.
사진을 찍는데 성공확률이 낮았다. 흔들리고 조작이 안되고 전기줄이 나오고.. 그렇지만 계속 스틸도 찍고 동영상도 찍었다.
마스크 없이 옥상에 잔뜩 모인 사람들은 여기저기서 즐겁다. 유원지 풍경이다.
옥상을 한바퀴를 돌며 주변 바다를 보니 작은 섬들도 축제 분위기다. 오랜만에 정말 많은 사람들이 마스크를 안 쓰고 있는 장면이라 생각했다.
섬위 산을 돌아오르면서 손을 흔드는 사람들. 다닥다닥 붙어 서서 환히 웃는다.
어떤 섬에서는 춤을 추고 있었다.
청소년 서넛은 옥상 헬리포트에서 드리워진 전기줄을 철봉 삼아 놀고 있었다. 위험해보였지만 사고는 나지 않을 것 같았다. 둘러볼수록 정도를 더해가는 즐거움과 놀라움.
바다 위에는 좀전에 출격한 해군이 태극기를 펼치며 퍼레이드를 하다가 민간인들의 잔치와 자연스레 섞이고 있었다.
문득 친구에게 빨리 올라와서 보라고 전화하려다 그는 여기로 같이 이사오지 않았다는 게 생각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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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02
방배동 옛 직장 근처 야외 식당에서 밥을 먹는다. 거리가 먼 두 개의 일정을 소화해야 해서 몹시 바쁜 날이었지만 티내지 않는다. 먼저 어떤 일 하나를 끝내고, 차를 타고 두 시간 정도 떨어진 곳에서 열리는 강의를 들으러 가는 날이다.
할 일을 정리하느라 머리가 복잡해서 식당에서 만난 사람들과는 별 대화를 나누지 못했다. 두번째 일정이 겹치는 사람이 같이 가자는 의사를 넌지시 표현했지만 시간 약속을 하기 애매하고 불편할 것도 같아서 얼버무렸다. 기다리는 건 짜증나고 그렇다고 기다리게 하는 건 그래도 좀 미안한, 그런 사이였기 때문에 차라리 혼자 가는 게 나았다.
밥을 먹는데, 만두를 찍어먹을 간장그릇이 없었다. 누군가 하얀 사각 종지를 내게 주며 꼭 돌려달라고 했다. 나는 고맙기도 했고, 없으면 없는 대로 대충 다른 방법을 쓰면 되는데 왜 귀찮게 그릇을 돌려주게 하나 하는 생각을 했다.
밥을 다 먹고 자리를 정돈하려는데 다른 사람들은 이미 식탁을 떠난 뒤다. 나는 투덜거리면서 식탁을 정리했다. 버릴 거 버리고 치울 거 다 치우니 남는 건 간장종지. 내가 받은 것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이 빌린 것도 있었다. 그릇 주인은 보이지 않았다. 내가 이럴 줄 알고 안빌리려고 했는데. 짜증이 났다. 방법이 없길래 집앞에 세워둔 차로 가지고 갔다. 차 안은 이런저런 일거리와 개인 짐으로 다소 복잡했다. 맞아, 이 일들을 다 해야 하는데. 나는 시간이 없다. 그 와중에 간장그릇을 그냥 두면 그게 뭔지 잊어버리게 될 것 같아서 메모지와 볼펜을 찾는데, 없다.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차 안을 구석구석 뒤지니 컵라면 뚜껑으로 보이는, 약간 미끌거리고 동그란 은박지가 있었고 마침 유성펜이 있었다. 보기엔 허접하지만 급한 대로 훌륭한 도구라 생각했다.
급히 '반납예정, *월*일' 하고 쓰려는데 펜이 나왔다 안 나왔다 했다. 난감해하고 있는데 오후 일정이 겹치는 여자가 지나가다가 나를 보았는지 멈췄다.
여자는 "마침 저한테 이게 있네요" 하며 가방에서 유성 매직을 꺼낸다. 필요한 말을 쓰면서 내가 써놓은 어떤 말들에 줄을 북북 그었다. 검은 매직으로 지우니 단박에 내용 모를 글들이 사라졌다. 잘 되고 있단 생각도 들었고 내 글이 지워져 아쉽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무튼 그 일을 ���내고 나니 차 안에 있던 옷 두어 벌이 눈에 들어왔다. 세탁소에 맡겨야 하는 옷이다. 그 동네는 약국에서 옷을 맡아주기도 한다고 했다.
나는 옷을 맡길 약국을 찾기 시작했다. 동네 주차장 근처에 있는 걸로 기억하고 있는데 길을 잘못 들어서 헤맸다.
길을 물어보려고 어떤 가게에 들어가니 4~5평 되는 곳에서 어떤 여자가 꽃다발을 만들고 있었다. 여자가 양손에 들고 내게 내밀어보이던 꽃다발은 지상의 것이 아닌 것처럼 신비로왔다. 처음 보는 꽃들 몇 개로 단순하게 구성돼 있었는데 과하지 않으면서 서로 잘 어울렸다. 자세히 보니 꽃도 있었지만 꽃처럼 연출된 생활용품들도 있었다.
그때 아까 펜을 빌려준 여자가 가게로 들어왔다. 나는 그 여자에게 꽃을 보여주며 "굉장하지 않아요? 우리 수업 때 쓰고 남은 것들 갖다 드리면 재료로 쓰기 딱 좋겠어요. 수명 다된 작품 버릴 때도 그냥 버리지 말고 꽃 같은 건 골라서 여기 갖다 드리면 어떨까요?" 하고 물었다. 누구 잘 도와주고 친절하며 살뜰한 여자가 왠지 탐탁지 않게 여기길래 나는 꽃다발을 들어보이며 "여기 이게 꽃이 아니라 실은..." 하면서 부연했다. 그랬더니 여자는 "아 그게... 저 분은 좀...정신세계가 이상한 분이라서.."라고 한다. 나는 금방 알아차렸다. '아니 나도 그런 걸 아는 사람이...' 하면서도 그래서 꽃이 이 세상 꽃 같지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저런 일들로 시간이 자꾸 갔다. 한시라도 빨리 그 곳을 떠야 했다. 동선이 계속 겹치길래 결국 같이 가기로 했던 여자는 막상 때가 되니 보이지 않았다. 혼자라면 좀 불편해도 굳이 차를 안 갖고 가도 되는데 둘이길래 운전해서 갈 생각으로 시간 계산하며 움직였는데 여자가 없다니.
화가 났지만 이제 그런 생각을 할 틈도 없었다. 서들러 집앞으로 가니 차가 없었다. 분명히 대문 앞에 주차해 놨었는데. 생각해 보니 남동생이 거기 대지 말고 길 건너 공터에 대라고 했던 게 기억났다.
동생을 다그쳤더니 태평하게 자기가 길 건너편으로 옮겨놨다며 위치를 알려주었다. 속이 터졌다. 공터로 갔더니 열대여섯 대의 차가 서너 열로 세워져 있었다.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아무리 뒤져도 차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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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22
안의 그림이 카톡방에 오르면서 마음 속에서 일어난 일.
내 말에 맘 상해본 적 없는 이는 내 친구가 아니다. 맘 상해 봤다고 다 친구인 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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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안 모든 사람들에게 일제히 울리는 빨간 메가폰 모양을 한 재난문자. 출근 시간에도 여유 있는 시내버스.
마스크 안 한 사람을 몰지각한 사람으로 보는 시선이 싫어서 꾸깃꾸깃한 채로 가방 안에서 굴러다니고 있던, 다회 사용한 일회용 마스크를 꺼내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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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18
눈덮인 들판.
아빠랑 동생이랑 셋이 눈구경을 하면서 걸어간다. 아빠는 지팡이를 짚고도 잘 걸었다.
동생은 조금 앞질러 가고 있었고 길가에 야트막한 눈더미가 있었다.
"저기 누우면 기분 좋겠는데 한번 해볼래?" 물으면서도 나는 아빠가 내 말을 들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아빠는 "그래 그럼" 하더니 눈더미에 누웠다. 아빠는 어린아이처럼 눈을 뿌리며 정말 즐거워했고 나도 내심 뿌듯했다. 동생은 더 멀리 간 ��� 보이지 않았다. 텅 비어 있던 주변은 어느새 아이들 천지가 됐다.
사진을 찍어둬야겠다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아빠 그대로 있어봐" 아빠는 움직임을 멈췄다. 폰으로 아빠 독사진을 찍고, 좀더 잘 찍어보려고 한번더 찍으려는 순간 카메라에 네다섯 명의 아이들이 잡혔다. 아이들이 사라질 때까지 기다릴까 하다가 같이 있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어서 확인 버튼을 눌렀다. 모두 즐거운 얼굴이었다. 또 한 무리의 아이들이 카메라 범위 안으로 들어왔다. 아이들과 함께 온 젊은 부모들도 있었다. 사람들은 점점 많아졌고, 나는 사진을 찍고 또 찍었다. 기분이 너무 좋았다.
아빠를 만나고 왔다고 그날 밤에 아빠가 꿈에 나오는 것은 아니다.
안과에서 동생을 만나서 어제 노인병원에 입원한 아빠 이야기를 하다 보니 꿈이 생각났다.
이제 정형외과에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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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지손가락을 열심히 기어오르는 작고 빨간 벌레. 무심히 불었더니 어디론가 밀려 날아갔다.
자비심 없는 날들. 선후 공정에 눈먼 날들. 관계에 무감각해지면서 존재의 무리에서 떨어져나와 비정한 인간(이전에 내가 '일반인'이라 부르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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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12
LA에 있는 나.
저녁 무렵.
투명한 청회색 하늘에 해가 떠 있다. 지면 가까이 크게. 그 왼쪽에 희미하게 보이는 무엇. 15도 정도 떨어져 있는. 해와 똑같은 크기의 그것은 자세히 보니 구름에 가린 보름달.
해와 달이 어떻게 저렇게 나란히 있을 수 있지? 안된다는 법은 없지. 친구들한테 하늘을 보라고 알려야겠다 등등을 생각했다가 문득 시차가 있어서 안되겠다 하는 생각이 들어서 아쉬워함. 몇 시간 후면 한국에서도 같은 장면을 볼 수 있을까 궁금해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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