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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그곳에 처음으로 발을 들여놓았을 때에는 파노라마가 가장 화려한 풍경을 자랑하던 시대는 이미 오래 전에 지난 뒤였다. 그러나 그 매력의 마지막 관객이었던 어린이들에게 파노라마의 매력은 조금도 손상되지 않았다. 그 매력은 어느 날 오후 소도시 엑스가 나오는 영사막 앞에 앉은 나를 다음과 같이 설득하는 것 같았다. 내 삶의 어느 때에도 속하지 않은 시간에 플라타너스 잎사귀 사이로 올리브색 햇빛이 쏟아지는 그곳 미라보 광장에서 놀았던 적이 있다고. 그러한 여행에서 진기한 것은 다음과 같은 점이다. 먼 세상이 언제나 낯선 곳은 아니고, 또한 그곳이 내게 불러일으켰던 동경이 언제나 미지의 세상에 대한 유혹이 아니라 오히려 가끔은 집으로 귀환하고자 하는 부드러운 동경일 수 있다는 점 말이다.
발터 벤야민, 1900년경 베를린의 유년시절, 카이저 파노라마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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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에는 바다가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이 시는 우리가 그 여름의 바다에서 돌아온 뒤 우리에게 벌어진 일들과 그것이 우리의 삶에 불러일으킨 작은 변화들에 대해 말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니까, 어느 토요일 오후 책장에 올려둔 소라 껍데기에 귀를 대며 거기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부러 확인한다거나, 한 손에 국자와 젓가락을 쥔 채 개수대로 흐르는 물을 하염없이 내려다보며, 갑자기 떠오른 지난 여름의 대화들에 혼잣말로 답해본다거나, 자신의 목소리가 너무 커서 깜짝 놀라게 된다거나 뭐 그런 일들 어느 주말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까맣게 탄 그와 함께 집에 돌아왔을 때, 그의 손에 아름다운 것이 매달려 있었다 "이게 뭐지?" 그가 이상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물었을 때는 어째서인지 그것을 설명하면 큰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대답하는 대신 함께 저녁을 만들어 먹었던 돌이켜보면 아마 그는 우리가 결국 이 시의 마지막에 끝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날 밤에는 늦도록 잠들지 않았다 즐거웠던 지난 일들에 대해 한참 이야기했다 폭죽 불꽃이 터져 오르는 해변에서 불을 피우며 여럿이 어울려 춤을 추었던 그 밤과 다음 날 아침에 눈을 떴을 때 태풍이 찾아와 살풍경한 해변을 웃으며 걸었던 일 따위에 대해 아주 짧았고 그래서 충실했던 날들에 대해 손을 잡은 채로, 손에 매달린 아름다운 것을 서로 모르는 척하며 그렇게 그 장면은 끝난다 이제 이 시에는 바다를 떠올린다거나, 바다에서 있었던 일이 우리에게 미친 영향과 그 생활 따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다 이제 말할 수 있는 것은 그 여름과 그 바다가 완전히 끝나버렸는데도 아무것도 끝난 것이 없었다는 것에 대한 것이고, 영원히 반복되는 비슷한 주말의 이미지들에 대한 것이고 내 옆에 누워 조용히 잠들어 있는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느끼는 소박한 기쁨과 부끄러움에 대한 것뿐
그렇게 삶이 계속되었다
황인찬, 이것이 나의 최악 그것이 나의 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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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끝내야 할까, 그런 고민 속에서 이 시는 시작된다 문이 열리는 것이 좋을까, 영영 닫혀 있는 편이 좋을까, 아니면 문이 열렸지만 아무도 없었다는 결말은 어떨까 ......그런 생각 속에 있을 때, "우리 이야기 좀 하자" 맞은편에서 그런 목소리가 들려온다면 어떨까 목소리가 들려오면서 이야기라는 것이 시작되겠지 어떤 목소리는 이야기와 무관하게 아름답고, 어떤 현실은 이야기와 무관하게 참혹하고, 그런데도 이야기를 하자는 사람이 있구나 이야기라는 것은 또 대체 무엇일까 창밖은 어둡고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 것 같다 창에는 창밖을 내려다보는 내가 반사되고, 여길 좀 보라는 목소리가 있고, 또 이제 그만 끝내자는 목소리가 들려오고, 그런 일이 이어진다면 어떨까 그렇다면 어떻게 끝내야 할까, 영원한 폭우 속에 갇혀버린 채로 끝난다면 어떨까, 문을 열고 나가니 전혀 다른 골목에 도착한다면, 어쩌면 영원히 계속되는 이야기로 이야기를 끝낼 수도 있겠지 밖에서는 비가 내리고 있다 그렇게 끝내면 정말 끝나버릴 것만 같다 "우리 이야기 좀 하자" 이렇게 이 시를 끝내기로 했다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는 네게 말을 건네며
황인찬, 부서져버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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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잘려나간 아빠의 손가락 마디 하나가 그래서 왼손이었는지 오른손이였는지 집에 내려갈 때마다 봐야지, 봐야지 하는데 막상 가면 까마득 잊고 나는 내리 잠만 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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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오스는 사유를 사라지게 만들지는 않지만, 사유에서 물음들과 문제들을, 긍정과 부정을, 침묵과 말을, 기호와 표식을 사라지게 만든다. 따라서, 세계의 부재로 인해 무거워진, 하늘이 없고 암흑 속에 있지도 않은 밤에, 사유는 자체의 모든 현재로부터 물러나 깨어 있다. 내가, 꾸며 내어 조작된, 근사의 - 진리와 관계없는 - 지식에 의해 아는 바는, 그렇게 사유가 깨어 있는 가운데 나는 깨어 있을 수도 잠들 수도 없다는 것, 사유는, 즉 자기를 박탈당해 버린 부재의 몸은 비밀을 갖지 못하게 되고 모든 내밀성을 상실하게 된다는 것이다. 가장 낮은 강도에 따라 기다림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무한히 망설이는 것이 끝나지 않는 곳에서, 그치지 않는 것이, 즉 삶에 이르지 못하는 강렬함과 죽음에 이르지 못하는 죽어감의 상호교차가 멈추지 않는 것이다. 마치 깨어 있음에 따라 우리가 끝이 없는 계단을 천천히 수동적으로 내려갈 수밖에 없는 것처럼 말이다."
모리스 블랑쇼, <카오스의 글쓰기>, p.10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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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해 봄 그늘 술자리였던가 그때 햇살이 쏟아졌던가 와르르 무너지며 햇살 아래 헝클어져 있었던가 아닌가 다만 마음을 놓아보낸 기억은 없다
마음들끼리는 서로 마주보았던가 아니었는가 팔 없이 안을 수 있는 것이 있어 너를 안았던가 너는 경계 없는 봄 그늘이었는가
마음은 길을 잃고 저 혼자 몽생취사하길 바랬으나 가는 것이 문제였던가, 그래서 갔던 길마저 헝클어뜨리며 왔는가 마음아
나 마음을 보내지 않았다 더는 취하지 않아 갈 수도 올 수도 없는 길이 날 묶어 더 이상 안녕하기를 원하지도 않았으나 더 이상 안녕하지도 않았다
봄 그늘 아래 얼굴을 묻고 나 울었던가 울기를 그만두고 다시 걸었던가 나 마음을 놓아보낸 기억만 없다
허수경, 不醉不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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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들어갈 때 나는 나오고 나는 도시로 들어오고 너는 도시에서 나간다
너는 누구인가 내가 나올 때 들어가는 내가 들어올 때 나가는 너는 누구인가
우리는 그 도시에서 태어났지, 모든 도시의 어머니라는 그 도시에서 도시의 역전 앞에서 나는 태어났는데 너는 그때 죽었지 나는 자랐는데 너는 먼지가 되어 도시의 강변을 떠돌았지 그리고 그날이었어 전철문이 열리면서 네가 나오잖아 날 바라보지도 않고
나는 전철문을 나서면서 묻는다, 너는 누구인가 한 번도 보지 못한 너는 누구인가 너는 산청역의 코스모스 너는 바빌론의 커다란 성 앞에서 예멘에서 온 향을 팔던 외눈박이 할배 너는 중세의 젖국을 파는 소래포구였고 너는 말을 몰면서 아이를 유괴하던 마왕이었고 너는 오목눈이였고 너는 근대 식민지의 섬에서 이제 막 산체스라는 이름을 받던 잉카의 한 아이였고 너는 인사동 골목의 식당에서 연탄불에 구워져나오던 황태였고 너는 나에게 멸치를 국제우편 소포로 보내주던 현숙이었지
나는 전철문을 나서면서 대답한다 나는 고대 왕무덤에서 나온 토기였다가 그 토기의 입이었다가 텅 빈 세월이었다가 구겨진 음란 소설 속에 등장하는 창녀의 바 창문에 걸린 커튼이었지 은행 금고 안에 든 전쟁이었다가 아프가니스탄 고원에 핀 양귀비였다가 나는 실향민 수용소의 식당에서 공급해주던 수프였다가 나는 빛으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언제나 서 있기만 했던 시��지 그리고 일용 노동자로 눈 덮인 거리를 헤매던 나의 혈육이었지 저 멀리 용산참사의 시체가 떠내려가던 어떤 밤에 아무런 대항할 말을 찾지 못해서 울던 소경이었어
포도송이였어 그 들판에서 자라던 자줏빛 도라지꽃이었어 그래 아직도 살쾡이였어 도시의 검은 밤에 길을 건너던 산돼지였어 먼 사랑이었고 사랑의 그늘이었지 도시 골목의 어느 카페에서 마시던 유자차였고 그리고 웃으면서 헤어지던 옛 노래였지 나는 너에게 묻는다
너는 누구인가, 닫히는 전철문 앞에 서서 먼 구멍으로 들어가던 내가 사랑하던 너는 누구인가
허수경, 열린 전철문으로 들어간 너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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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 즉 단어들의 수동성(참을성), 존재자들을 개념화해서 포착하고 정의하는 단어들의 능동적 작용에 대한 단순하고 이분법적인 어떤 반대 작용이 아니라, 단어들의 그 능동성이 실현되는 곳에서 단어들을 바깥으로 이끌고 나가 터지고 흩어져 가는 그것, 단어들을 단순히 이해와 해석의 대상이 되는 데에 머무르지 않도록 막으면서 우리로 하여금 단어들의 그 바깥으로의 궤적을 뒤쫓게 하는 그것. 단어들이 모든 것을 개념화해서 의식에 내재하도록 변형시키는 부정의 작용을 계속 추진시키는 곳에서 몸은 항상 그 부정의 작용을 거꾸로 돌리는 역작용을 주재하면서 단어들을 쓰거나 읽는 자를 의식 바깥으로 또한 내몬다. 또한 몸은 단어들을 읽거나 쓰는 자가 최종적으로 만나게 되는 시점이자, -능동적으로- 읽을 수도 쓸 수도 없는 지점, 단어들이 수렴되면서 ‘지워지는’(단어들은 지워지는데, ‘지워지는 글쓰기’는 물론 흰 종이 한 장을 증거로 삼지 않을 것이며, 단어들 자체가 구성한 해석되는 의미들을 초과하는 무의미의 효과일 것이다) 지점일 것이다. 시점으로서의 지점, 즉 씌어지고 읽히는 단어들이 파열되는 시간들(순간들)만이 가리킬 수 있는 지점일 것이다. 몸이 언어를 파편화시키는 동시에 언어를 통해 파편화되며 단어들을 이미지적인 것l’imaginaire으로 수렴되게 만든다."
모리스 블랑쇼, <카오스의 글쓰기>, 옮긴이 해제_한 어린아이, p.313-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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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린아이로부터 끊임없이 달아나다가 어떤 계기를 통해, 어떤 한계 상황에서 불가능한 죽음에 맞닥뜨리게 되어서야 비로소 ‘내’가, ‘나 자신’이 바로 그 가장 늙은 어린아이임을, 모두의 타자임을 발견하고 그제야 눈물를 쏟아 내거나 눈물로 번지는 미소를 짓거나 그냥 묵묵히 땅만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모리스 블랑쇼, <카오스의 글쓰기>, 옮긴이 해제_한 어린아이, p.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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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인간 스스로가 혼자서 사라져 간 그 아이가 남긴 빈 구멍을, 그 공허를, 그 심연을 발견하고 놀라서 이번에는 자신의 입을 틀어막곤 하는 것일 뿐이다.”
모리스 블랑쇼, <카오스의 글쓰기>, 옮긴이 해제_한 어린아이, p.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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