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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종환 ,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저녁 숲에 내리는 황금빛 노을이기보다는
구름 사이에 뜬 별이었음 좋겠어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버드나무 실가지 가볍게 딛으며 오르는 만월이기보다는 동짓달 스무날 빈 논길을 쓰다듬는 달빛이었음 싶어. 꽃분에 가꾼 국화의 우아함보다는 해가 뜨고 지는 일에 고개를 끄덕일 줄 아는 구절초이었음 해. 내 사랑하는 당신이 꽃이라면 꽃피우는 일이 곧 살아가는 일인 콩꽃 팥꽃이었음 좋겠어.
이 세상의 어느 한 계절 화사히 피었다 시들면 자취없는 사랑말고 저무는 들녁일수록 더욱 은은히 아름다운 억새풀처럼 늙어갈 순 없을까 바람 많은 가을 강가에 서로 어깨를 기댄 채
우리 서로 물이 되어 흐른다면 바위를 깎거나 갯벌 허무는 밀물썰물보다는 물오리떼 쉬어가는 저녁 강물이었음 좋겠어 이렇게 손을 잡고 한세상을 흐르는 동안 갈대가 하늘로 크고 먼 바다에 이르는 강물이었음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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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향란 , 내가 너를 사랑하는 이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이유는 없다.
더듬어보면 우리가 만난 짧은 시간 만큼 이별은 급속도로 다가올 지도 모른다. 사랑도 삶도 뒤지지 않고 욕심내어 소유하고 싶을 뿐이다. 서로에게 커져가는 사랑으로 흔들림 없고, 흐트러지지 않는 사랑으로 너를 사랑할 뿐이다. 외로움의 나날이 마음에서 짖궂게 떠나지 않는다 해도 내 너를 사랑함에는 변함이 없다.
그래도 이유를 묻는 다면 나는 말을 하지 않겠다. 말로써 다하는 사랑이라면 나는 너만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환한 마음으로 너에게 다가갈 뿐이다. 조금은 덜 웃더라도 훗날 슬퍼하지 않기 위해선 애써 이유를 말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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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미성 , 내 일기의 주인공이 그대이듯
그대를 만난 이후로
더 이상 내 일기의 주인공은 내가 아닙니다
그대를 만난 이후로 내 일기의 주인공은 그대가 되었습니다
하루동안 일어났던 나의 중요한 일들보다는 그대와의 짧은 통화가 내 일기의 더욱 중요한 소재가 되어 줍니다
하루 종일 몸이 아파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누���만 있던 날에도
밤이 되면 숨쉬기 보다 더한 의무감으로 그대 이름을 일기장에 빽빽하게 적습니다
내 일기의 주인공이 그대이듯 내 인생의 주인은 그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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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용운 , 나 그렇게 당신을 사랑합니다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는
사랑한다는 말을 안 합니다. 아니하는 것이 아니라 못하는 것이 사랑의 진실입니다.
잊어버려야 하겠다는 말은 잊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정말 잊고 싶을 때는 말이 없습니다.
헤어질 때 돌아보지 않는 것은 너무 헤어지기 싫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헤어지는 것이 아니라 같이 있다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웃는 것은 그만큼 행복하다는 말입니다.
떠날 때 울면 잊지 못하는 증거요 뛰다가 가로등에 기대어 울면 오로지 당신만을 사랑한다는 증거입니다.
잠시라도 같이 있음을 기뻐하고 애처롭기까지 만한 사랑을 할 수 있음에 감사하고
주기만 하는 사랑이라 지치지 말고 더 많이 줄 수 없음을 아파하고
남과 함께 즐거워한다고 질투하지 않고 그의 기쁨이라 여겨 함께 기뻐할 줄 알고
깨끗한 사랑으로 오래 기억할 수 있는 나 당신을 그렇게 사랑합니다.
"나 그렇게 당신을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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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혜원 , 꿈속이라도
사랑에 빠져들기 전에는
밤이 되면 지칠 대로 지친 몸이기에 아무런 꿈도 싫고 잠이나 푹 자고만 싶어했습니다
사랑에 빠져들고 나서는 밤이 되면 새 날이 오면 다시 만날 생각에 꿈속이라도 만나고만 싶어 꿈을 초청해 보려고까지 합니다
사랑의 숲에는 행복만 있을 것이라는 단순한 소망을 갖게 되고 사랑의 바람도 우리의 것은 아무것도 날려버리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만을 합니다
사랑하는 이여 부질없는 생각은 하지 않기로 해야겠습니다
행복한 나날이 지속되고 있는데 우리들의 사랑을 나누기에도 하루 해가 짧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이여 우리의 사랑이여 영원하라고 축하의 노래를 부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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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131
기다릴 수 있는 시간만큼만 사랑하세요 - 유미성 기다릴 수 있는 시간만큼만 사랑하세요 환한 웃음 보여줄 수 있는 그 날까지 마음 다치지 않고 기다릴 수 있는 시간만큼만 사랑하세요 기다림이 짜증스러워 지거나 힘들게 느껴진다면 사랑은 더 이상 행복한 일이 아닐 테니까요 사랑하세요 반갑게 손을 내밀어 주는 그 날이 오면 먼저 자신을 가꾸어 가며 그 사람을 사랑하세요. 그 사람 언젠가는 내게로 와 투정 부리지 않고 혼자만의 사랑에 너무 깊게 빠져 기다릴 수 있는 시간만큼만 그 사람 언젠가는 내게로 와 그 손을 아름답게 맞잡을 수 있도록
기다림 - 김영일 한 사람을 기다린다는 것은 삶의 길 가운데서도 가장 어려운 길을 걸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대를 사랑한 내 잘못인지 운명의 장난인지 난 요즘 허수아비가 되어 버린 것 같습니다. 그대를 기다린다는 것은 내 운명의 또 다른 길을 걷고 있는 것입니다. 내 마음 출렁이며 그대에게 주고픈 편지 손에 들고 갈매기에게 조그만하게 말합니다. 그대에게 하지만 너무 멀리 있는 그대에게는 나의 마음이 닿지를 않나 봅니다... 바다의 출렁임에 가고 싶다고
그저 친구라는 이유로 - 김미선 웬지 몰라 혼자일 땐 네 모습이 자꾸 떠올라 그저 오랜 친구라고만 생각해 왔는데 지우려고 눈을 감아도 온종일 네 모습이 깜짝놀라 눈을 뜨면 거울 속에 있어 이런 느낌을 설명하기 힘들어 그저 우리는 친구라고 말해야 되는데 웬일인지 가슴이 서늘해 사랑이란 생각조차 해본 적 없는데 온종일 네 생각뿐 하늘 보면 잊혀질까 그래도 아니야 단지 그것뿐이야 그래도 아니야 단지 그것뿐이야 친구라고 말할 수 없잖아 너는 모를 거야 너를 보면 소리내어 웃어봐도 나도 몰래 눈물이 나와 하늘 보면 잊혀질까 나도 몰래 눈물이 나와 지금부터 우리는
기 도 - 김옥진 소유가 아닌 빈 마음으로 사랑하게 하소서 받아서 채워지는 가슴보다 주어서 비워지는 가슴이게 하소서 지금까지 해왔던 내 사랑에 티끌이 있었다면 용서하시고 앞으로 해나갈 내 사랑은 맑게 흐르는 강물이게 하소서 나를 다듬어 나갈 수 있는 지혜를 주시고 바람에 떨구는 한 잎의 꽃잎일지라도 한없이 품어 안을 깊고 넓은 바다의 마음으로 살게 하소서 바람 앞에 스러지는 육체로 살지라도 선(善)앞에 강해지는 내가 되게 하소서 크신 임이시여 그리 살게 하소서 사랑 앞에 깨어지고 낮아지는 항상 겸허하게 살게 하소서 크신 임이시여 위선보다 진실을 위해
기대어 울 수 있는 한 가슴 - 이정하 비를 맞으며 걷는 사람에겐 우산보다 함께 걸어줄 누군가가 필요한 것임을. 울고 있는 사람에겐 손수건 한 장보다 기대어 울 수 있는 한 가슴이 더욱 필요한 것임을. 그대를 만나고서부터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보고 싶다 보고 싶다 말도 못 할 만큼 그대가 그립습니다. 그대여, 지금 어디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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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131
그림자 같은 사랑 - 유미성 낮에도 별은 뜨지만 눈부신 태양빛에 가려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듯이 수많은 사람들에 가려 당신위 눈에 보이지 않나 봐요 밤마다 뜨고 지는 별이 아니라 늘 당신 곁에서 떨어지지 않는 그림자 같은 사랑인데 마음 속에 담아두고 보여지 못하는 사랑은 끝내 외면하려 하시는군요 나 언제나 당신 곁에 서 있지만 나, 당신은 보이는 것들만 믿으려 하시는군요 나 그렇게 당신의 그림자 같은 사랑인데……
그대의 눈빛에서 - 용혜원 내 마음의 자작나무 숲으로 오십시오 그대를 편히 쉬게 할 그늘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맑은 하늘에 바람도 간간이 불어 사랑을 나누기에 적합한 때입니다 그대만을 생각하고 그대만을 위하여 살아가렵니다 그대도 홀로 나도 홀로였으니 우리 사랑은 방해받을 것들이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들의 사랑을 비난하거나 조롱하여도 그대의 마음이 동요되어서는 안됩니다 오랜 기다림 속에 피어난 난초의 꽃처럼 순결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의 사랑의 모양새를 더 잘 알고 있기에 걱정이 없습니다 수많은 말들로 표현해도 다 못할 고백이지만 오늘은 아무 말없이 있겠습니다 나를 바라보는 그대의 눈빛에서 사랑을 읽었습니다 오직 사랑을 시작할 때 그 누가 무어라 우리들의 사랑은 현명한 그대가
그대 제가 사랑해도 되나요 - 김태광 눈부신 햇살 속 그대 모습 왜 그리 슬퍼 보이나요 또 그 사람 생각나셨나요 온종일 창 밖의 비만 바라보는 모습 왜 그리 가엾어 보이나요 또 그 사람 걱정하시나요 드라마를 보다 까닭 없이 흐르는 눈물 왜 그리 힘겨워 보이나요 떠난 그 사람과의 사랑 추억하긴 못내 아쉬운가요 그대, 제가 사랑해도 되나요 그대, 제가 사랑해도 되나요 그대 정말 미안해요 제가 그런 그대를 사랑하게 되었어요
그대가 있음으로 - 박성준 어떤 이름으로든 그대가 있��� 행복하다 그대의 이름을 생각하면서 별과 바다와 하늘의 이름으로도 그대를 꿈꾼다 억새풀의 강함처럼 삶의 의욕도 모두 그대로 인하여 더욱 진해지고 슬픔이라 할 수 있는 눈물조차도 그대가 있어 사치라 한다 될 수만 있다면 그대 앞에선 언제나 밝은 모습으로 고개를 들고 싶다 그대의 언어들 아픔과 비난조차도 싫어하지 않고 그대가 있음으로 오는 것이라면 무엇이나 감당하며 이기는 느낌으로 기쁘게 받아야지 내 언어가 웃음으로 빛난다 아픔과 그리움이 진할수록 사랑으로 가득찬 희망 때문에 괴로움은 혼자 이기는 연습을 하고 나의 가슴을 채울 수 있는 그대가 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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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hubert - Erlkönig(마왕) #schubert #Erlkönig #슈베르트 #마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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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라고 한사코 아니라는 손사래겠지만 네 손금을 아무리 들여다봐도 생명선이 없다 절망일까 헐렁한 가슴으로 달겨드는 물너울을 나는 받을 수가 없네 너와 내가 맹세로 쌓아 둔 벽도 부실하여 비스듬히 돌아눕는 서녘으로 붉다하여 갈매기가 종일 울어대는지 상처 난 부리가 서럽기가 나와 같아라 파도는 그럴라 쳐도 도대체 네 눈금 친 해원 그 어디쯤에 나를 가둔 것이냐 물벼락 치던 갯바위로 떠밀려온 조각배가 바랜 햇살에 산후産後 바람 든 골반뼈를 쬐는지 어지간하게 나른한 다산多産의 주름을 펼친다 여기 일찍이 떠난 인기척을 칵칵 뱉어내는 갈대와 갈기 찢긴 된바람만 말가웃 좋게 서려있을까 민박집 주인 여자가 얼굴에 핀 주근깨를 털며 헤픈 웃음을 흘리는 저녁 어둠을 한 입 물어 뱉는다 그 흔한 섹스도 없이 초저녁잠을 청해보는 낯선 방 안으로 꿈 속 깊숙이 밍크고래를 좇던 겨울바다가 없다 가끔 귀에 익은 짭조름한 파도소리만 자궁 속 가득 차 밤새 부풀어 오른 그 안에 섬이 도사리고 있다
이재현 , ' 그 안에 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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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스킨헤드 소년이 빨간 마스크를 쓴 채 N서울타워 꼭대기 위에 서 있다 철탑 밑으로 케이블카가 멈춰 있다 지상에서, 불발탄을 어깨에 짊어진 사나이가 우뚝 선 철근콘크리트 구조물을 향하여 육탄돌격한다 해발 479.7m 철탑 101m 탑신 135.7m 거대한 구름기둥과 불기둥 속, 스킨헤드 소년은 탑이 움직이는 두렵고 경건한 음성을 들었다 그 탑이 대륙간탄도미사일처럼 상승하는 것인지 우르르 땅속으로 무��져 내리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 탑이 사라진 후 원숭이 두개골을 닮은 스킨헤드 소년은 지상(地上)에 고아처럼 버려졌다 2 11번가 철근 콘크리트 공사장, 그 때 인부들이 불발탄을 발견한 것은 한낮의 무더운 폭염(暴炎)속이었다 포클레인이 붉게 녹슨 그것을, 땅속에서 서서히 퍼 올렸을 때 붉게 탄 석탄 같은 광대뼈와 횡단철도 같은 쇄골을 가진 한 사나이의 어깨 위, 묵직한 해머처럼 얹혀 있던 불발탄이여 한낮의 태양 아래 붉게 녹슨 그것이, 한 사나이의 어깨 위에서 역사하고 있었다 3 보아라, 불발탄을 어깨에 짊어진 채 북(北)으로 행군하는 한 사나이가 있다 그는 스스로 재래식무기가 된 사나이다 그는 철과 화약을 먹고 회귀하는 사나이다 그는 외부의 충격에 분노하는 사나이다 그가 군사분계선(軍事分界線)을 넘어서자, 그곳엔 콘크리트의 대지가 무한궤도처럼 영원히 펼쳐져 있었고 밤하늘의 별빛은 가시철조망처럼 숭고했다비로소 빵과 우유가 그려진 정물화처럼 사나이는 노동을 멈췄고,지평선 끝에서 원시의 두개골처럼 새벽이 밝아올 때 사나이는 불발탄의 뇌관을 해머로 내리쳤다
조인호 , '스스로 재래식무기(在來式武器)가 된 사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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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들은 모두 끝이 잘려나갔다 시무룩한 죽음 가지런하게 중심에 놓여 있다 지루한 체위는 계속되었다 당신은 낮을 가둔 밤을 이야기하고 나는 밤이 숨긴 낮에 대해 말한다 캄캄한데 눈물이 나지 않아서 밥을 먹었다 식탁 아래로 자꾸만 별이 진다 발이 닿지 않는 나는 혼자 식탁에 너무 오래 앉아 있다 어떻게 하면 최대한 상투적일 수 있을까 끝은 사방에서 말없이 시들었고 여름이 오고 있었다 기다리지 않는 사람들이 식탁 조명처럼 켜지거나 꽃이 한두 번 흐지부지 피었다 식탁은 공중에 차려지고 별이 지는 방향 발이 닿지 않는 방향 내가 없는 방향으로 나는 그 외의 식탁들처럼 걸어갔다
이승희 , ' 식탁의 목적 혹은 그 외의 식탁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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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s use lies to tell the truth. Yes, I created a lie. But because you believed it, you found something true about yourself.
V for Vendet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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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은 문득문득 잘 지내고 있어요? 안부를 묻게 한다. 물음표를 붙이며 안부를 묻는 말 메아리 없는 그리움이다. 사랑은 어둠 속에서 잘 지내고 있어요. 안부를 전하게 한다. 온점을 찍으며 안부를 전하는 말 주소없는 사랑이다. 안부가 궁금한 것인지 안부를 전하고 싶은지 문득문득 잘 지내고 있어요? 묻고 싶다가 잘 지내고 있어요. 전하고 싶다.
목필균, ‘잘 지내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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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날은 하얀 별, 나쁜 날은 검은 별로 표시했다는 캔디처럼 나도 마음속에 별을 모았던 때가 있었어. 지금도 가끔은 그런 생각을 해. 좋은 사람을 만날 때, 그리고 마음 가득 기쁜 일이 생겼을 때, 내 가슴속에는 새로운 별이 하나씩 뜨곤 했지. 깊은 밤에 점 찍어둔 내 별은 아침이 되면 사라지지��� 가슴속에 가둬둔 별들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 법이거든. 하지만 그 별들도 사라지는 때가 있었어. 나는 기쁨의 별들을 탐닉하며 온전한 내 소유물로 하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기란 참 쉬운 일이 아니었지. 사람에 대한 미움이나 이별로 인해 내 별들이 하나 둘씩 희미해지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어. 슬픈 일을 잊기란 쉽지 않아. 지는 별들은 별의 무덤으로 향하고 나는 한동안 그 무덤 사이를 헤매었던 것인지도 모르지. 내 방황이 시작되면 다른 밝은 별들마저 빛을 잃고, 내 방황이 끝나면 그땐 이미 많은 별들을 잃은 후일지도 모르지
김현 ,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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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잊어야 하리라. 할 때 당신은 또 내게 오십니다. 한동안 힘들고 외로워도 더 이상 찾지 않으리라, 할 때 당신은 또 이미 저만치 오십니다. 어쩌란 말입니까, 그대여. 잊고자 할 때 그대는 내게 더 가득 쌓이는 것을. 너무 깊숙이 내 안에 있어 이제는 꺼낼 수도 없는 그대를.
이정하, ‘한 사람을 사랑했네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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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적는다 속지같이 정갈한 네모난 칸에 삐치지 않도록 또박또박 써내려간다 무슨 결의라도 한 듯이 어떤 모음과 자음의 양보도 요구하지 않겠다는 듯 문자와 호흡과 결을 넘어서서 노상 책의 방법이 그러하듯이 한 줄 끝자락에서 ‘사이’라는 명사의 눈썹이 꿈틀거린다 잠시, 꿈틀거리다가 ‘사’를 놓아두고 ‘이’를 줄바꿈한다 그렇게 다정한 안색이 돌연해지고 조사(助詞), ‘에’도 맨 앞줄로 가 선다 애인�� ‘애’와 같은 살가움으로 명사의 의자가 되더니 엇갈림에서 표표히 줄바꿈한다 늘 등만 보던 어미(語尾)의 이마에 맺힌 땀방울 다 식고 모눈종이의 다짐 위로 쌓이는 눈을 쓸어낸다 어디, 예쁜 금에 잘린 것이 당신의 머리카락인가 종유석처럼 자란 나의 우울인가
정재분 , 모눈종이에 갇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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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노트를 정리했다.
“같이 울기 위해서 너를 사랑한 건 아니지만”
/ 신달자, ‘늦은 밤에’
천둥소리가 저 멀리서 들려오고 구름이 끼고 비라도 내리지 않을까 그러면 널 붙잡을 수 있을텐데
천둥소리가 저 멀리서 들리며 비가 내리지 않더라도 당신이 붙잡아 주신다면 난 머무를 겁니다
/ 만엽집(万葉集) 中
그 사막에서 그는 너무나 외로워 때로는 뒷걸음질로 걸었다
자기 앞에 찍힌 발자국을 보려고
/ 오스탕스 블루, ‘사막’
어느 이름 모를 거리에서 예고없이 그대와 마주치고 싶다.
그대가 처음 내 안에 들어왔을 때의 그 예고 없음처럼
/ 구영주, ‘헛된 바람’
당신은 그냥 밤으로 오세요. 꿈으로 오세요. 눈길에 발자국 하나, 얼룩 하나 남기지 말고 내가 왔어요, 소리도 내지 말고.
그래야 내가 모르죠. 당신이 온 것도 모르고 어느새 가버린 것도 모르고 떠나는 사람이 없어야 남는 사람도 없죠. 행복이 없어야 슬픔도 없죠. 만남이 없어야 이별도 없죠.
첫눈이 온다는 날 기다림이 없어야 실망도 없죠. 사랑이 없어야 희망도 없죠. 잠시 왔다가 가는 밤처럼 잠시 잠겼다 깨어나는 꿈처럼 그렇게 오세요.
그렇게 가세요.
/ 황경신, ‘첫 눈이 온다구요?’
아픔에 하늘이 무너지는 때가 있었다.깨진 그 하늘이 아물 때에도가슴에 뼈가 서지 못해서푸르던 빛은장마에 황야처럼 넘쳐 흐르는흐린 강물 위에 떠갔다.나는 무너지는 둑에 혼자 서 있었다.기슭에는 채송화가 무더기로 피어서생의 감각을 흔들어 주었다.
/ 김광석, ‘생의 감각’
옥수수 잎에 빗방울이 나립니다. 오늘도 또 하루를 살았습니다. 낙엽이 지고 찬바람이 부는 때까지 우리에게 남아있는 날들은 참으로 짧습니다.
아침이면 머리맡에 흔적없이 빠진 머리칼이 쌓이듯 생명은 당신의 몸을 ���수수 빠져나갑니다. 씨앗들도 열매로 크기엔 아직 많은 날을 기다려야 하고 당신과 내가 갈아 엎어야 할 저 많은 묵정밭은 그대로 남았는데 논두렁을 덮는 망촛대와 잡풀가에 넋을 놓고 한참을 앉았다 일어섭니다.
마음놓고 큰 약 한번 써보기를 주저하며 남루한 살림의 한구석을 같이 꾸려오는동안 당신은 벌레 한마리 함부로 죽일 줄 모르고 악한 얼굴 한번 짓지 않으며 살려했습니다. 그러나 당신과 내가 함께 받아들여야 할 남은 하루하루의 하늘은 끝없이 밀려온 가득한 먹장구름입니다.
처음엔 접시꽃같은 당신을 생각하며 무너지는 담벼락을 껴안은듯 주체할 수 없는 신열로 떨려왔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에게 최선의 삶을 살아온 날처럼, 부끄럼없이 살아가야 한다는 마지막 말씀으로 받아들여야 함을 압니다. 우리가 버리지 못했던 보잘것 없는 눈높음과 영욕까지도 이제는 스스럼 없이 버리고 내 마음의 모두를 더욱 아리고 슬픈 사람에게 줄 수 있는 날들이 짧아진 것을 아파해야 합니다.
남은 날은 참으로 짧지만 남겨진 하루하루를 마지막 날인듯 살 수 있는 길은 우리가 곪고 썩은 상처의 가운데에 있는 힘을 다해 맞서는 길입니다. 보다 큰 아픔을 껴안고 죽어가는 사람들이 우리 주위엔 언제나 많은데 나 하나 육신의 절망과 질병으로 쓰러져야 하는 것이 가슴아픈 일임을 생각해야 합니다.
콩댐한 장판같이 바래어가는 노랑꽃 핀 얼굴 보며 이것이 차마 입에 떠올릴 수 있는 말은 아니지만 마지막 성한 몸뚱아리 어느 곳 있다면 그것조차 끼워넣어야 살아갈 수 있는 사람에게 뿌듯이 주고 갑시다. 기꺼이 살의 어느 부분도 떼어주고 가는 삶을 나도 살다가 가고 싶습니다. 옥수수잎을 때리는 빗소리가 굵어집니다. 이제 또 한번의 저무는 밤을 어둠속에서 지새우지만 이 어둠이 다하고 새로운 새벽이 오는 순간까지 나는 당신의 손을 잡고 당신 곁에 영원히 있습니다.
/ 도종환, ‘접시꽃 당신’
고독한 사람은 육지에 살다 바다로 다시 퇴화해가고 그 이유를 사랑한 것이 내게 슬픔이란 말이 되었다
바다 아래서 고래가 몸으로 쓴 편지가 가끔 투명한 블루로 찾아오지만 빙하기 부근 우리는 전생의 기억을 함께 잃어버려 불쑥, 근원을 알 수 없는 바다 아득한 밑바닥 같은 곳에서 소금 눈물이 펑펑 솟구친다면 당신도 고래다
보고 싶다, 는 그 말이 고래다 그립다, 는 그 말이 고래다
/ 정일근, ‘나의 고래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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