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illh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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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턴 친구가 그만둔댄다. 본인도 이곳이 너무 좋고, 더 길게 일하고싶지만 여긴 계속 계약직이어야하고 새로 가는 곳은 정규직 전환의 기회가 있는 곳이라 떠나야 한다고. 죄인처럼 구구절절 설명하는데도 머릿속엔 ‘또 언제 새친구 뽑고 가르치지’ 라는 생각 뿐. 최대한으로 다닐 수 있는 기간을 물어보고 볼일 다 끝났다는 듯 자리를 나왔다.
여유가 없다. 곧 있을 나의 부재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 완벽히 세팅해야 한다는 강박이 늘 나를 피곤하게 한다. 조금 흐트러져도 다 굴러가는 일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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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에 맞게 사는 사람’인 것 같다는 말을 들었다. 그런 노잼인생 진짜진짜 싫어하는데!!! 소리를 꽥 질러 되받아쳤다.
나이에 맞게 가는 길? 누군가 그런 말을 하면 개소리 하지말라 했던 난데.. 여전히 사람은 다 다르고 인생정답 같은 건 없다 생각하고, 또 구불구불 길로 가는 사람들을 볼 때 막 더 매력적으로 보이기도 한데..
막상 동료의 말마따나 난 그때 해야 가장 크게 와닿는 행동들을 하는 삶을 선택해왔던 거다. 십대 땐 그나마 가장 잘 굴러가던 머리로 공부를 선택했고 이십대 땐 도파민 터지는 음주가무를, 삼십대땐 드디어 약간은 알게된 취향을 찾아 내 곁에 두고싶은 사람을, 물건을, 그리고 일을 선택하고 또 포기하는 그런..
(요즘은) 흔히들 하는 투자나 사업같은건 당연히 안해봤고 울고불고 하는 불같은 연애도 못해본. 딱 중간 정도로만 공부하고, 놀고, 일하는 그런 삶
물론 자잘한 도전도 실패도 있었지만 그런 선택들 안에서 아주 양극으로 치우치는 일은 내 인생에 없었던 것. 일상적이고 튀지않고 누군가에겐 정석적으로 보여질 수도 있는 그런 삶을 살아온 게 다 내 선택이고 기호였단 것을,.
그게 나라고 이젠 인정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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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어떤 이유로 띠 궁합에 대해 챗지피티에 물어본 적이 있다. 명리나 점복같은거엔 딱히 관심 없었는데 보다보니 너무 재밌음..
내 사주 중 흥미로웠던 부분
물(水) 위에 금(金)이 있는 구조야. 물이 금을 닦아내고 빛나게 하는
壬申 연주 덕분에 눈치와 말재주, 실리적인 성향
월간이 을사라서 부드럽고 유연한 창의성. 예술, 디자인, 언어에 능할 수 있어
일간이 무토(土), 즉 “큰 산”이라 자존심이 강하고 묵직한면
겉으론 유쾌해도 속은 잘 안 드러내는 경향
몰입할 땐 확 몰입하지만, 감정이 식으면 빠르게 정리하는 경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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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력
내가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우리 할머니는 나보다 키도크고 허리도 굽지 않았으며 패션 센스도 좋았다. 요가와 수영을 좋아했고, 유럽여행도 일이년에 한번은 꼭 갔다. 오죽하면 나이 90이 넘도록 갑상선 수술 한 번이 유일한 병치레였을 정도
내가 부부라는 관계를 정확히 인식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을 때-아마도 초1쯤이지 않았을까-이미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따로 살고 있었는데, 할아버지 장례식장에서 밤낮으로 서러운 울음을 토해내는 할머니를 보면서 이것이 이혼이 아니었다고 확신했다. 그 시절 각자의 취향에 맞는 환경을 찾아 떠나는 것이 행복이라는 것을 알 정도로 우리 할머니는 (사상적으로도) 멋진 여자였다.
이런 할머니도 최근 몇년 새 점점 약해지기 시작했는데, 그 과정도 할머니 다웠다. 병명은 공황장애와 우울증, 몸이 아픈것보다 정신이 아픈 것이 훨씬 무섭고 지독하다는 것을 할머니를 보며 알게 됐다. 증상이 나타난 첫 해에 나는 ‘할머니는 아픈것도 트렌디하네’ 란 우스갯소리가 나왔다.
결국 할머니는 요양병원으로, 할머니집은 헐값으로 팔려나갔다. 남아있는 자식 중 가장 착하고 돈도 많은 둘째이모가 서울대구를 오가며 거진 1년을 보살폈고, 지금은 약해진 당신모습이 싫다고 누구도 면회오는 것을 거부하고 있다고.
사법공부로 골방에 들어간 아빠 때문에 가장노릇을 해야했던 엄마는 나와 언닐 줄곧 할머니집에 맡겨뒀고 그래서 나에게 할머니는 제2의 엄마나 다름이 없었다. 나이가 들면서 나 살기 바쁘기도 했고, 어렸을 때처럼 각별한 사이로 할머니를 대하는 것이 어쩐지 낯부끄러워져 소원해졌지만 맘속으론 늘 애틋한 대상이었다.
그래서 할머니가 아프고 난 후 더 할머니를 마주하기 무서웠다. 만나러 가는건 고사하고 전화 한 통도 하기 싫었다. 난 회피는 극혐하는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할머니가 아프다는 사실 자체를 완전히 지우려는 사람처럼 생각이 나려고 할때마다 다른 생각으로 그것을 덮었다.
2025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중 <사력> 이란 시를 우연히 읽고 난 후부터 출퇴근길에 반복적으로 찾아 다시 읽었다. 멀어지는 길, 그리고 살아보려 애쓰는 힘. 여전히 난 둘 중 어떤 것도 마주할 용기가 없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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