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mgik
from-dew · 2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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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지가 쌓인 일기장을 서랍에서 꺼냈다. 겉 면을 툭툭털어 첫 페이지를 폈다. 오밀조밀하게 쓴 글씨에서 새록새록 그 날의 감정이 스며들었다. 페이지를 넘기며 미래의 나에게 쓴 글자들이 살아서 내게 박혔다. 정신이 아득해지고 나는 서글퍼졌다. 서글퍼진 순간에도 생각했다. 감정이 남아있어서 다행이다, 고. 흩어질것 같은 감정들을 간신히 한 줌 손에 쥐고 페이지를 닫았다. 애써 스며든 감정은 이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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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dew · 3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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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해야할 일 벌어야 할 돈 말고 뭔가 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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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dew · 3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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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딜 가나 다 똑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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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dew · 3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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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사랑하는데 나만 사랑 안 하는 이 시기, 이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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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dew · 3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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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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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dew · 3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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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을 잃은 단어들은 손 끝에서 부서지고 입술을 맴도는 말들은 허공에서 바스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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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dew · 3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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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올려다보는 동그란 눈동자에 내가 비친다. 너가 나를 들여다보면 나도 너를 들여다 봐야 하는데 너의 마음은 잘 읽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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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dew · 3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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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지는건 정말 어렵다. 늘 알고있으면서, 후회할 것 또한 알면서 나는 왜 삶에 책임을 질 만할 일들을 자꾸 벌리는걸까. 사람, 사랑. 너무 어려운 이야기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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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dew · 4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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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계약 기간이 끝났다. 다시 백수가 됐다. 막상 내일 당장 할 일이 없으니 손톱만 물어 뜯게 된다. 실업 급여 신���해야지, 학원을 다녀야지, 건강하게 살아야지, 사랑 해야지... 이것 저것 해야 할 것들은 많고 넘치지만 나는 자신이 없다. 사람들은 ㄴㅐ가 간절함이 없다고 한다. 간절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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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dew · 4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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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늘 밉다. 가끔씩은 그저 그런 정도로 좋다. 그러다가 미워진다. 애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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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dew · 4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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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내 생일이었다. 원래 생일을 챙긴다거나 축하 받는 일은 그다지 달갑지 않곤 했다. 축하 받고 싶었던 한 명에게는 생일 축하해하는 말 한마디 들었으니 됐다 싶었다. 집에 와보니 차디찬 집에 나 홀로 뿐이었다. 밥통을 열어 쉰내가 나는 밥을 푸고 시어터진 신 김치와 밥을 먹었다. 엄마와 아빠는 부재중이었다. 동생은 용돈을 벌겠다고 몇 푼 안되는 알바를 하러 갔다. 사실 늘 가족들의 생일이면 엄마가 미역국을 끓여주곤 했다. 나이를 먹고 엄마가 끓여주는 미역국을 기대한건 아니지만(사실 맞다) 마음이 서글펐다. 가족들을 위해 보일러를 켜고 일찍 잠이 들었다. 꿈에 그 애가 나와서 내게 키스했다. 눈물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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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dew · 4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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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던 시절, 하루치 밥 값으로 꽃을 사서 친구들에게 나눠주고 싸구려 와인을 마시던 내가 너무너무 그립다. 낭만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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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dew · 4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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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 끝에 스치는 겨울 바람이 매섭다.
아침마다 오토바이를 타고 출근을 한다. 장갑을 끼고 아침의 한옥마을을 달리면 손과 코는 시리지만 기분만은 너무나도 상쾌하다. 왜 6년동안 나는 이 길을 혐오했을까. 저번에 정말 좋아하는 언니와 술을 먹으며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했었다. 언니가 말하길 우리는 혐오의 시대에 사는듯하다고 이야기 했었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고 두런두런 이야기 했었는데.
서울에서의 삶을 마치고 고향에 내려온지 근 1년이 다 되어간다. 글을 쓰고, 책을 읽고, 여유를 갖을 시간은 충분하지만 삶의 분위기가 녹록치 않다. 편하다보니 나태해지고 배가 부르다보니 멍청해진다. 한 편으로는 다행이라고 나를 위로한다. 적어도 내가 바보가 되어간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스스로 인정하니까.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 캠핑. 차도 없는 주제에 이것저것 많이 샀다. 엄마는 주말마다 캠핑 가는 내게 뭐가 그리 좋아서 매 주마다 가냐고 묻는다. 나는 대답한다. 내 집이 없어서 내 집 마련하러 간다, 고. 내 집이 없는게 이토록 나에게 쥐약일줄은 정말 몰랐다.. (사실 알았지만 어찌 할 방도가 없었기도..)
언니가 결혼 한다. 애가 생겼다. 너무 스트레스다. 엄마가 고통받고 슬퍼하는게 나는 너무도 슬프다. 하지만 더욱 슬픈건 엄마에게 모진 말을 내 뱉는 내 모습이 너무나도 패륜이라 슬프다. 답은 하나다. 어서 집에서 나가야지.
곧 있으면 내 생일이다. 이번 생일에는 완벽하게 혼자 있을 예정이다. 호텔을 예약했다. 욕조에서 따뜻한 물에 흐물흐물 눅진하게 녹아야지. 맛있는거 먹으면서 아주아주 슬픈 영화를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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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dew · 4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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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떠나 온 서울 집 근처의 할인마트에는
내 이름으로 된 몇 천원의 포인트들이
주인 잃은채 먼지만 쌓여 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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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dew · 5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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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까닭 없이 눈물이 나오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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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dew · 5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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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게 다짐하는 순간마저도 어느 한 켠에 남아서 차마 버리지 못할것들.
조악하고 얼기설기 눌어붙은 마음을 부정할 힘으로라도 겨우 살아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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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dew · 5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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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트럭을 처음 본건 심야영화를 보고 집으로 걸어오는 길이었다. 날씨도 춥지 않았고 방금 본 영화에 대해 생각하며 걷고 싶어서 용산에 있는 영화관에서 집까지 걸어가던 참이었다. 강바람이 조금 세게 불어오긴 했지만 견딜만 했다. 이어폰을 귀에 꽃고 제일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흐르는 강물을 보다, 다리 난간에 적힌 자살 방지 문구들을 읽다가 보니 어느새 다리 중반이었다. 당시는 노들섬이 개장하기 전이여서 밤 늦게 한강대교 위에 사람의 왕래가 많지 않았고 다리 중반의 도로가 넓어지는 갓길에는 화물차들이 몇 대 주차되어 있곤 했다. 그날은 택시들이 비상등을 켜고 줄을 서 있었다. 싸움이라도 난 건가. 무슨일인가 싶어 귀에서 이어폰을 뺐다. 발전기가 털털털 돌아가는 소리가 들려오고, 희미한 뽕짝 가락이 흘러 나오고 있었다. 누군가가 난동을 부린다거나 고성이 오가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조심조심 경계를 늦추지 않고 걸어갔다.
택시와 택시 사이에 파란색 트럭이 있었다. 파란색 포터 트럭에는 우동, 어묵이라고 써 있는 노오란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택시 아저씨들은 요기를 할 겸, 공사장 근처에서 노상방뇨(종종 자주 목격함..)를 할 겸 택시를 멈춰 세운 것이었다. 호기심 가득한 얼굴으로 우동 트럭 근처에서 서성댔다. 뜨끈한 김이 올라오는 모습과 육수 냄새를 맡으니 배가 고파졌다. 아저씨가 국자로 국물을 퍼 담으며 가까이 와서 주문을 하라고 했다. 머뭇머뭇 다가가서 우동 하나를 주문했다. 아저씨는 털털하게 웃으시며 심야 영화 보고 오는 길이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했다. 기생충을 보고 집에 가는 길이라고 했다. 아저씨는 국자에 면을 풀어 넣으며 자신은 아직 영화를 보지 못했다고 했다. 나는 재미있었다고 사장님도 꼭 보시라고 했다. 아저씨는 알겠다고 하며 다 익은 면을 그릇에 담고 끓고 있던 육수를 붓고, 고춧가루를 한 스푼 올려 내게 내밀었다. 우동은 생각보다 맛있었다. 쌀쌀해지던 날씨 덕분이였는지, 트럭에서 흘러나오는 구수한 뽕짝 때문이었던건지는 몰라도 너무너무 맛있어서 그릇까지 먹을 기세로 마지막 국물 한방울까지 먹어 치웠다. 그 후로도 나는 종종 한강대교를 지날때마다 우동을 사먹곤 했다. 하지만 노들섬이 개장된 이후 아저씨는 사라졌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버스를 타고 지나갈때마다 아저씨가 있던 자리를 쳐다보곤 했지만 그 자리는 이미 버스 정류장으로 바뀐 후였다.
아저씨는 어디로 갔을까? 늦은 밤 배가 고프면 부러 그곳까지 걸어가 먹던 우동이 먹고 싶다. 국자를 쥐던 손에는 손가락이 없으셨는데 아직도 국자를 잡고 계실까? 어느 날엔 우동을 먹다가 택시 아저씨들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대기업에서 택시 서비스를 시작해 자살하신 아저씨에 대한 이야기였다. 아저씨들은 숙연하고 진지하게 노래를 부르셨다. 썩 노래를 잘 부르시는 편은 아니었다. 아저씨는 짧은 노래를 끝마치고서는 우동 사장님에게 그 친구가 좋아했던 노래라고 말했다. 국물이 썼다. 후에는 내가 우동을 다 먹을 동안 택시 기사 아저씨는 대기업의 횡포와 정부의 태도에 관해 비판적인 연설을 하셨다. 뉴스에서도 잘 다뤄지지 않는 이야기, 삶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 남은 자들에 대한 이야기, 소외된 사람은 아니지만 소외된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는 그 곳이 좋았다. 우동 트럭 아저씨는 구수한 뽕짝을 들으며 어디로 떠나신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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