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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해온 시간이 길어질 수록 그 탁월함에 감탄케 하는 사람이 있다.
아내는 이따금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기민함과 추진력을 보여 나를 놀래킨다.
지금까지 패턴을 보면 본인이 흥미를 느끼거나, 주도적으로 결정한 분야에만 해당되는 것 같긴 하다.
좋게 한 단어로 표현하면 '책임감'이 훌륭하다 할 수 있겠다.
나는 감격에 취해 상황을 온전히 받아들이느라 정신없는 와중에도, 아내는 어느새 필요한 절차들을 착착 진행하고 있더라.
시간이 넘치는 나는 오늘처럼 몸으로 떼울 수라도 있어 다행이다.
처음 가본 동작구 보건소는 크진 않아도 쾌적하고 친절했다.
엽산제, 어매너티, 임산부 뱃지 등을 받으니 더욱 실감나고 뿌듯하다.
nuchal translucency, 기형아 검사, 16주 이후 철분제 공급.
머리 한 구석의 뉴런들에 박혀있던 지식들이 직원의 친절한 안내 덕에 다시금 되살아난다.
앞으로 헤쳐나갈 단계들을 새삼 인지하게 된다.
대비하지 않고 온전히 맞닥뜨리는 것이 진정성 있는 경험으로 삶을 채워나가는 법이라고 믿어온 '즉흥주의자'인 나의 모습이 유독 철없게 느껴지는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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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토록 바래왔던 소식.
감격스러움도 있지만 순수한 행복이 크다.
태명에 대한 고민이 바로 뒤따른다.
역시 인생은 행복과 고뇌의 반복이다.
결국 똑똑한 아내가 '호두' 라는 귀여운 아이디어를 냈다.
왜 이런 걸 정해야 하나 싶기도 했지만, 막상 하고 나니 이해가 간다.
무언가를 지칭하기 위해 이름을 붙이는 행위가 가진 힘.
나의, 아니 우리의 세계 속에 이 생명이 존재한다는 인식이 공고해진다.
또한 나는 정말로 축복 받았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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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현대사회의 문제
개인에게 주어지는 정보 입력의 기회, 빈도와 양이 너무 많다.
반면 정보 출력을 생산해낼 물리적 틈은 없어지고 있다.
반사적으로 나오는 출력이 아닌 본인만의 진정한 출력 말이다.
덕분에 편리하게 얻을 수 있는 감각적 쾌락을 추구하는 본능이 뇌를 지배하고, 반대 급부로 지적 사유의 영역은 줄어든다.
디지털 치매라는 말이 우스갯 소리가 아니며, 거의 팬데믹을 이루는 수준인데 이는 의도적으로 방조된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디지털 세상을 통한 개인의 자유로운 참여는 허황된 꿈이 되어간다.
장막 뒤에서 데이터의 흐름을 쥐고 있는 실력자들에 의해 대다수의 일반 시민들이 가축 마냥 조종 당하는 무대가 되어버린지 오래다.
저들이 원하는대로, 예상가능한 범주에서 반응하도록 우리는 디지털 미디어를 통해 자발적으로 통제 당하고 있는 셈이다.
그간 수많은 기술과 제도의 발전이 있었지만, 인류가 지배와 피지배라는 본질적 구조에서 벗어나는 것은 영원히 불가능 해보인다.
타인을 지배하려는 인간의 본성은 결코 사라지는 것이 아니므로, 무슨 환경이 펼쳐지더라도 시간이 흐르면 인간은 기어코 그 방법을 찾아 내고야 마는 것이다.
초창기와 달리 작금의 디지털 미디어는 아예 대놓고 오염되어버린 수준이라고 나는 규정한다.
그러므로 우선은 나 스스로부터 이에 노출되는 양을 절대적으로 줄여나가며 최대한 경계하는 입장을 지닐 것이다.
내가 지적으로 가장 활발하고 정신적으로 자유로웠던 때는 UC Berkeley에 교환 학생 신분으로 방문하였을 때 기숙사에 인터넷 서비스가 들어오지 않았던 사흘이었다.
자기 자식에게는 인터넷 사용을 엄격히 제한한다던 빌게이츠의 사례도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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