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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y6y5y · 2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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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4aewy4te · 2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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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tv7004 · 2 day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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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파이팅730] ● [특종] '차기는 노무현'하라고 김정일이 김대중에게.../2024.12.30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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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fktkfkd · 19 day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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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재화 대표 폭로..2003년에 부정 개표기 제작 납품 'sky데일리' 특종 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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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tstwtarchive · 2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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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minder: bottom to top is chronological order
130926 [Text] 안녕하세요 오늘 엠카에서 아미들 덕에 우럭ㅠㅠ이 된 김우럭인데요 아 멀리서도 아미들밖에 안보이던데요??! 하하 그래서 추천하는 제가 요즘 듣는 태하 - 내 걸음이 멈추는 곳에 [Trans] Hello, I cried because of the ARMYs today at Mcountdown ㅠㅠ that’s why I’m Kim Cries-Alot today. Ah I can only see ARMYs from afar??! haha so I'll recommend a song I'm listening to these days. Tae Ha - Wherever I Go Translated by Iraide of BTS_Trans.
130926 [Text] 안녕하세요 슈간데요 특종입니다 특종!! 저희 공식카페 회원수가 20000명을 돌파했슙니다 짝짝짝! 이소식을 전해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럼 20000 [Trans] Hello I’m Suga. This is a scoop, a scoop!! Our official fancafe has exceeded 20000 members Clap Clap Clap! I wanted to tell you the news, then 20000 Translated by Iraide of BTS_Trans.
130926 [Text] 진입니다 오늘 와주신 아미여러분 너무 감사드려요!! ㅎㅎ 오늘도 조심히 들어가셔요!! [Trans] It's Jin, Thank you so much to the ARMYs who came today!! hehe Get home safely today too!!
130926 [Text] 안녕하세요 지민입니다~~ 오늘 와주신 아미들 너무 감사합니다~잘 보셨나용? 들어가는 길도 조심히! 늦지않게 귀가하세요~ [Trans] Hello, I'm Jimin~~ Thank you so much to ARMYs who came today. Did you enjoy it? Be careful going home! Don't be late
130926 [Text] 오늘 학교도 가고 엠카 첫 생방송두 하고~ 아미들도 만나고 기분완전좋아씸>:D 여러분 내일 뮤뱅에서도 봐요~ 따뜻하게 입고오세요~ [Trans] I went to school and did the live for M Countdown today and~ I met ARMYs so i'm very happy>:D See you at Music Bank tomorrow everyone~ Dress warmly~
130926 [Text] 오늘 엠카와주신 아미분들 짱짱 사랑해홉 @-@ 응원 짱짱!! 조심히들어가세여~~ [Trans] ARMYs who came to M Countdown today, you're the best I love youhope@-@ Your cheers were the best!! Get home safe~~ note: unsure if hobi was trying to create a pun here or was just being cute by combinding 사랑해 and 제이홉
ARMY NOTES - "Wherever I Go" by Tae Ha -BTS on M Countdown 13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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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tkra35824 · 2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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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종.
한동훈이
그 짓을 했어?
가족까지,
이병준TV
폭로...
대통령
부부 혐오
글 도배
(๑ ऀืົཽ₍₍ළ₎₎ ऀืົཽ)✧毒舌
국힘
개시판
수사착수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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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upendoussublimebarbarian · 9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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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종] 김정은 울고 불고 난리..."제발 도와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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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lguties10 · 11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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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보! KBS 방금 특종, 이재명의 심각한 실수 폭로! 돈봉투 받은 민주당 의원 20명 전부 다 체포! 한동훈가 해냈다! 점점 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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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ssygoopfriendbear · 11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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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 운명에 순응하리.
영웅도 때가 되면 죽는다. 인위적인 죽음은 통하지 않으며 서서히 묻어가는 죽음만이 아름답고도 고귀한 현실을 꾸며낼 것이다. 하늘은 드높고 간간이 선한 바람만이 불고 있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을 보고 있자니 마치 속된 마음과 몸가짐을 정화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허구적 상상에 동반한 생각임에도 불구하고 부디 하늘에 제 잘못을 빌어 용서하고픈 마음이 드는 것이 착각은 아닌 듯하다. 물론 그럴 일은 없다. 행동을 취하기 전 먼저 생각부터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귀에 딱지가 가라앉을 정도로 들어 지금에서야 그 생각이라는 것을 해보려 한다. 비록 손에 쥔 지팡이가 오래돼 가시가 손톱 틈에 박혀도 생각하고 있다면 그것은 이미 곯아 살을 더욱 파고들겠지. 생각은 짧고 굵게. 눈을 깜박이더라도 거짓말이 새어 나가지 않을 정도로 자연스럽게. 입은 언제나 굳게 닫은 모양새로 이렇게 부른다. 영원한 마법사란 없다.
페티그루는 학창 시절 매우 소심하여 이름 잘날 일이 전혀 없었다. 이름보다 별명으로, 본인보다 그의 친구들로 유추할 수 있었던 만큼 그는 학교에서 크게 눈에 띄는 학생과는 달랐다. 말수가 없었다면 괜찮았으나 속내를 감추는 듯한 모습에 몇몇은 그를 떠보며 의심을 쉽게 거두기 어려웠다. 순진해서 숨김없이 드러낼 것 같은 얼굴과 비밀을 숨기기 급급한 부자연스러운 행동은 그의 주변 관계를 무너뜨렸고 나름 친구라고 ���았던 이들마저 그를 떠난 지 오래였다. 한때 그는 여자일 적이 있었다. 선천적인 문제로 태어날 적부터 호그와트를 졸업하기까지 절반은 여자로, 나머지는 남자로 지내왔기에 그와 친분이 있던 소수의 마법사만이 그를 구분하는 데 큰 지장이 없었다. 남자일 적 못난 얼굴이 여자가 돼서도 똑같아 그는 웜테일이라는 작은 쥐일 적에 못난이로 더 자주 불리었다. 모난 얼굴에 무엇 하나 뛰어난 능력조차 없는 마법사. 그런 그에게도 가장 아끼고 존경해 오던 이는 수없이 많다. 당장에 그의 마루더즈 무리는 말할 것도 없었고 훌륭한 마법사로 만들기 위해 열과 성을 다했던 미네르바 교수마저 존경하는 인물 축에 속해 있었다. 그럼에도 그가 존경하던 이들 중 사랑을 놓고 말하자면 딱 한 명만을 추려낼 수 있다. 존경과 사랑은 다르다. 존경은 사랑으로 꾸며내어 꾀할 수 있지만 사랑은 존경과는 상반된 의미이다. 존경을 빌려 쓴 사랑은 사탕발림과 같다. 곤경에 처했을 때 존경을 방패로 삼아 상황을 무마시킬 수 있지만 달리 말하자면 사랑을 포기하는 것과도 마찬가지다.
결론적으로, 페티그루는 레굴루스 블랙을 존경 내지 사랑했었다. 접점이라고 희미했던 그가 내면으로만 존재했던 상상 속 친구를 만들 듯, 존경을 앞세워 그를 지지하고 응원하던 방청객의 태도로 일관해 왔다. 그도 그럴 것이 블랙은 탄탄한 배경지식과 무엇보다 우수한 혈통으로 적격일 만큼 그는 페티그루와 같은 죽음을 먹는 자의 소속이다. 우월주의 사상을 중요하게 의식하는 만큼 친형인 시리우스 블랙을 가차 없이 몰아세우고 협박하며 그가 자신과 같은 소속으로 인정받을 수 있게 갖은 환심을 끌려고 했다. 이 또한 쓸모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물론, 가문을 외면한 시리우스 블랙에게 잘못을 뒤집어씌울 수는 없다. 시리우스 블랙을 이단으로 칭하면 레굴루스 블랙은 희생양이다. 그도 마음만 먹으면 형제와 같은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그러나 블랙은 그러지 못했다. 그는 형제처럼 용기가 없었으며, 있더라도 이후 맞이할 미래를 생각해 두지 않았으니까. 블랙가에 순종하기로 한 블랙은 마치 도축장에 끌려갈 개처럼 어린 시절을 보내왔다. 감정 없는 껍데기에 불과한 블랙을 페티그루는 존경하고 사랑했으며 때로는 동정하기도 했다.
페티그루는 블랙에게 제 본모습을 보여주었다. 여자일 적 교과서에서 나올 법한 방식으로 한없이 다정하게 대하면서도 사랑에 목말라하는 이처럼 굴었다. 남자일 적은 치고박고 싸우는 여느 소년이었지만 사랑보다 우정을 중시한다. 둘은 성향도 비��하여 대화할 때 평소 수다를 많이 떠는 사람을 페티그루로 설정한다면 청자는 언제나 블랙이다. 거대 포장된 얘기가 마음에 들어서 보다 불필요한 답을 내리지 않기 위함이다. 이는 페티그루 또한,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O.W.L 시험 당일 둘은 한 가지 약속을 세웠다. 시험이 끝날 때까지 만남을 자제하는 것이다. 블랙은 반드시라는 조건을 내세웠고 페티그루는 군소리 없이 약속을 이행했다. 피터보다 두 살은 더 어렸던 블랙이었지만 기숙사 내 학년별 성적이 최상위권에 속해 있었기에 합의 하에 결과 그는 다른 동기들 보다 가장 먼저 O.W.L. 시험을 볼 수 있었다. 간혹 시험이 대수라고 볼 수 있겠지만 그 누구보다 블랙은 성적에 꽤 집착이 심했다. 등급 중 O(outstanding)가 아니면 무의미했고 그에 따른 몸에 무리를 동반하여 건강을 심히 걱정하지 않은 태도를 보이곤 했다. 비록 이보다 상위 개념의 시험이 아니라는 것을 감안하면 나름 편안해 보이는 모습이다. 페티그루는 그보다 성적이 형편없기에 다른 건 몰라도 그토록 힘든 기색을 내 비췄던 마법약 시험만큼은 A를 맞아야 한다. 맥고나걸 교수가 주체한 낙제를 위한 마법약 수업 만큼은 무조건 회피하는 게 상책이기 때문이다.
시험이 끝나고 블랙은 자신을 구석으로 몰아친 값을 호되게 받는 중이다. 독감에 걸렸음에도 수업을 들으려다가 결국 쓰러져 병동에 입원하는 것만큼 특종 기사집은 없었다. 페티그루는 병문안을 찾은 사람들이 드나들지 않은 시간을 고려해 한밤중 조명 불에 의지하여 책을 읽고 있는 블랙을 찾았다. 그의 눈 밑은 다크서클이 짙었지만 잠은 오지 않았고 침대 옆 의자에 짧은 대화를 나누던 페티그루는 분위기에 취해 처음으로 그와 몸을 섞었다. 그 당시의 페티그루는 여자였기에 피임을 중요시하게 여겼지만 첫경험 치고 나쁘지 않았다. 블랙 또한 마찬가지였겠지만 다 떠나서 블랙은 페티그루를 안은 와중에도 예의는 지키고자 했다. 헛수고이긴 해도 장식에 큰 의의를 둔 셈이다. 5학년을 마무리 짓던 11월, 페티그루는 호그스미드에서 블랙을 다시 만났다. 그는 퍼디풋 찻집을 지나고 있던 참이었고 가까이 다가갔을 때는 이미 가게 주인에게 붙잡힌 상태였다. 부인은 페티그루 부인과 일면식이 있었으며 오죽하면 페티그루 가문의 모든 것은 전부 꿰고 있어 그녀의 애완 토���처럼 덜렁 들려진 그는 꽉 안기다 못해 쥐여 짜질 정도로 맥을 못 추는 모습이다. 마다해도 어른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며 결국 예쁜 포장지로 싸여진 찻잎을 받은 페티그루는 꾸벅 인사를 마치고 발 빠르게 그의 뒤꽁무니를 쫓았다. 블랙이 들른 곳은 깃펜 가게였다. 최근 사용하던 깃펜이 부러져 새 깃펜을 장만하고자 들른 모양이다. 그의 몸에는 부엉이 깃털이 박혀 있다. 깃 색이 다른 것이 먼저 우체국을 들렀나 보다. 그의 몸에는 우체국에 쓰이는 양피지의 특정 냄새가 은은하게 나고 있다. 시큼하면서도 먼지 쌓인 냄새는 저가 받은 찻잎에 비할 바는 못 되지만 그렇다고 고약한 축에 속하진 않는다.
6학년 이후, 블랙의 행방이 묘연하다. 언제나 흐트러짐 없는 자세를 유지하던 사람이 돌연 치부를 들킨 사람처럼 행동이 급하고 가령 무언가를 깨달은 사람처럼 입을 쉴 새 없이 중얼거리기 바빴다. 마치 어릴 적 자신을 투영하는 기분으로 말이다. 일이 많을 때면 머리털조차 보이지 않았으나, 여유가 있을 때면 항상 팔에 그려진 표식을 아프게 쥐는 모습이다. 어쩌다가 한 번은 페티그루의 어깨에 얼굴을 기댄 그가 그동안 노력한 것들이 허사가 된 기분이라며 차마 고개를 들지 못했다. 페티그루는 그가 오랜 학업에 찌들어 살았던 것이라며 위로를 전했지만 실상은 다르다는 것을 이미 예측한 사이였다. 블랙은 죽음을 먹는 자 소속이었지만 그건 그가 원하던 결괏값은 아니었다. 흑심을 품었다면 그는 친형처럼 자유를 갈망하고 있었고 발을 들여서는 안 될 곳을 찾은 과거의 자신을 원망하며 살았다. 자신이 모시는 주인의 예상치 못한 비밀을 들추고 드는 감정은 후회보다 좌절에 이르렀다. 그의 심정으로 보건대, 블랙은 결단코 이곳과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6학년을 지나는 10월, 페티그루는 차분한 마음으로 그를 찾았다. 그에게는 더 이상 말괄량이 소녀일 적 모습은 온데간데없었고 성숙한 여인의 모습으로 서 있었다. 사람을 대하는 표정이며 자세, 인사까지 모두 비밀을 알기 전 레굴루스 블랙과 똑 닮아 있었다. 그럼에도 이제는 그때의 블랙을 되찾을 수 없지만 말이다. 상태가 영 온전치 못한 정신의 블랙을 불러 세웠다. 흐릿한 시야로 담기는 페티그루에 안심하듯 그의 품에 안기는 레굴루스다. 간신히 그를 떼어내고 호텔 방 다 쓰러져 가는 침대에 누운 페티그루가 팔 벌려 그를 환영한다. 앞서 얘기하지만 블랙은 언제나 사랑에 목말라한다. 그는 가문의 사랑을 독차지한 인물이었으나 사랑에 종류가 있듯 가족애보다 진정한 사랑을 느끼고자 했다. 이성과 꽃 피우는 영원한 사랑을.
이것이 마지막이라는 것은 둘은 이미 깨닫고 있었다. 갈림길 앞에서 둘은 오랜 인연을 끝마치고 마무리를 짓고 있다. 페티그루의 몸 위로 올라가 그녀의 입술을 훔치는 도중에도 눈을 마주하며 애달프게 그의 이름을 부르짖으며 탐하는 모습이 못내 안타까운 마음만 들게 한다. 떠나기 직전 페티그루는 표식이 그려진 그의 팔을 들어 올려 본다. 그의 표식은 긴 줄로 나란히 흉터가 져 있었고 눈살을 찌푸리며 메마른 손으로 훑어보다가 짧게 입을 맞추며 방을 나섰다. 페티그루는 주인에 대한 충성심이 매우 강했다. 그의 연인보다 더더욱, 오래 머물렀으며 제 숨이 꺼지는 와중에도 주인을 걱정하는 태도를 보였다. 친우를 희생시키고 누명을 뒤집어씌우며 연인까지 외면한 페티그루는 더는 갈 곳이 없었지만 그럼에도 잘못을 뉘우칠 생각은 없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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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sic121sun · 11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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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종] 이선균·김남희의 '불륜''섹스''마약' 녹취 파일 전격 공개... 영화 기생충 연상... MBC와 신동엽까지 등장하는 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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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tv7004 · 5 day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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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방금 긴급성명-탄핵준비 기일에 전격참석!SBS 특종-윤 사수 재판관,딱 1명 나왔다-'6인체재 안된다'!미정부 공식 입장문-한덕수 탄핵 반대-이재명 경고!헌재,충격입장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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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lab · 1 year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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長岡克行, ルーマン/社会の理論の革命 (51)
勁草書房, 2006
제15장 근대사회의 구조와 그 귀결들
3. 기능적으로 분화한 사회
- 루만은 근대 사회라는 전체의 분석에서, 전통적인 전체/부분 도식이 아니라, 시스템 이론의 시스템 분화라는 사고 방식을 적용. 그 결과 각 기능 시스템 (부분 시스템)은 사회 속에서 각각의 이항적 코드에 의거해 분화, 자립화 하는 오토포이에틱한 자율적 시스템으로서 다뤄짐. 사회의 기능적 분화에 기초해, 루만은 근대 사회를 구조적으로는 기능적으로 분화한 사회로 규정. 기능적 분화라는 규정은 근대 사회 연구에서, 어떠한 새로운 시야를 여는 것이 가능한 것일까? 일본에서는 시스템론의 사고는 일반적으로 이전부터 이미 알려져 있는 것을 다른 언어로 표현해 고치는 것에 불과하다고 평가. 또한 루만의 사회 이론은 시스템 이론이라는 이유로 테크노크라트의 이론이라고 오랜 기간에 걸쳐 받아들임. 시스템 이론에 기반한 루만 사회 이론은 분화론에 기반해 근대 사회를 어떻게 그리려 하는 것일까? 이 절에서는 루만에 의한 근대 사회 설명 방식의 주요선을 정리.
- 사회라는 시스템의 내부적 분화에서 시작해, 이 사회 이론에서는 무엇보다 우선, 사회와 각 기능 시스템은 서로 대치 가능한 배타적인 사태가 아님. 예를 들면 경제라는 기능 시스템이 있다면, “’경제와 사회’라는 방식으로 경제적 국면과 사회적 국면의 대치”는 이뤄지지 않음. (1988, S. 8/ⅵ 페이지) 그러한 대치는, 예를 들면 여성을 인간과 대치하는 것. 하물며 경제적/사회적/문화적이라는 구별은 있을 수 없음. 루만은 ‘사회적’이라는 개념에 대해 별도의 규정을 할당. 또한 “모든 경제적 행위는 사회적 행위이고, 그래서 모든 경제는 늘 또한 사회의 수행이다.”(위와 같음) 그래서 이것은 다른 기능 시스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각 기능 시스템을 개별로 다룬 루만의 사회 이론 3부의 각 표제도, 예를 들어 경제 시스템이라면 『경제와 사회』가 아니라 『사회의 경제』인 것이고, 마찬가지로 『사회의 과학』, 『사회의 법』, 『사회의 예술』 등등이 돼야만 하는 것.
- 사회와 기능 시스템을 외재적으로 대치시킬 이유가 없다는 것은, 이 외에도 기능적 분화에 관한 기능 규정에서 이미 고려. 즉 “기능은, 그것이 사회에 있는 어떤 특수한 시스템/환경-관계의 분화, 자립화에 이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능 시스템 속에서만 충족되는 것으로, 그 기능 시스템의 환경에서 충족되는 것은 아니다. (1997, S. 746) 그래서 각 기능 시스템은 사회에서 그 기능을 독점하고, 그 점에서 권한이 없는 환경에 마주하는 것. 실제, 어떤 기능 시스템의 형성도, 사회라는 전체 시스템의 통일을 부분 시스템과 사회내 환경의 차이로 떼어 ���. 루만의 사회 이론 제3부에서 『사회의 경제』, 『사회의 과학』 등등 사회의 기능 시스템이 개별적으로 하나씩 연구돼야만 하는 이유기도 하지만, 어떤 기능 시스템의 형성도, 사회를 부분 시스템과 그 환경으로 떼어 내는 것을 통해, 전체 시스템의 통일과 각각 하나의 새로운 표현을 가져옴. 어떤 기능 시스템도, 그 환경과 함께 사회를 재구성. 그 때 어떤 기능 시스템도, 각각 그 사회내 환경과의 관계라는 형식에서, 사회 속에서 사회에 정위. 사회는 하나임과 동시에 다수라는 패러독시는 이렇게 전개.
- 다양한 것의 통일이라는 패러독시는 여기에서 완전하게 제거될 이유는 없음. 그렇다면 사회 속에서 사회로의 정위는 기능 시스템마다 다른 퍼스펙티브에서 이뤄지는 것이고, 게다가 그것들의 조정, 그것들의 매개는, 각각의 기능 시스템에 의해 개별적으로 담당. 그 때문에 사회의 하나와 다수의 패러독시는 기능 시스템 자신의 통일과 차이라는 패러독시. 이 패러독시는 실제적 문제로서, 각 기능 시스템에 의해 사회내 환경이라 할 지라도 환경은 불투명하고, 착란적이라는 것에서 나타남. (1986, S. 204f.; 1990, S. 635)
- 기능적 분화라는 구조는 이를 통해 근대 사회 내부의 복합성을 높이고, 복잡한 것으로 만듬. 사회의 기능 시스템으로의 분화는 사회의 부분 시스템인 모든 기능 시스템에 대해 삼중의 관계화 가능성을 만듦. (1) 각 부분 시스템은 전체 시스템인 사회에 속하고, 사회를 수행하지만, 그 전체 시스템인 사회와의 관계, (2) 사회 내적인 환경과의 관계, 특히 다른 기능 시스템들과의 관계, (3) 자기 자신과의 관계. 루만은 (1)의 관계를 기능, (2)의 관계를 급부(給付, Leistung), (3)의 관계를 반성이라 부름. (그림 17) 근대 사회에 대한 루만의 분석과 서술은 각 기능 시스템이 관여하는 세 가지 관계를 주축으로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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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세 가지 관계는 모든 기능 시스템에서 관찰 가능한 관계. 그렇지만 세 가지 관계의 내용은 기능 시스템마다 특종, 독자적. 그래서 이는 각 기능 시스템을 대상으로 하는 사회 이론 제 3부 각 ���에서 주제적으로 상세하게 다뤄 짐. 이들 세 가지 관계 중 기능과 기능 시스템의 반성 문제에 대해서는 앞 절 기능 시스템의 자기 관찰 속에서 다뤄 짐. 급부는, 기능적 분화 자체로의 통합 문제로 이어짐. 여기서는 급부 문제를 특별하게 다루고 싶지만, 우선 기능과 급부와 반성을 구별하는 것의 의의에 대해 간단하게 서술.
- 루만이 기능과 급부와 반성의 구별을 중요시하는 것은, 이 구별을 하지 않을 때에는 사회의 파악에 있어 어느 정도의 의미론적 혼란이 생겨나기 때문. (1997, S. 758f.) 정치 시스템의 기능은 “집합적으로 구속을 하는 의사 결정을 위한 능력을 용의하는 것”이고, 국가라 불리는 것은 정치 시스템이 정치 시스템의 단순화와 초점화를 베풀며 시행하는 하나의 자기 기술. 루만은 이 구별에 의해 종래부터 계속 주어진 국가 의미론의 축소를, 다른 한 편으로 사회 의미론의 확대를 노림. 루만의 사회 이론에서는 국가와 사회라는 역사적 테마는 이 구별을 사용해 재구성. (1987j, S. 73) 여기서 기능과 반성(=자기 기술)이 잘못해 바뀔 때, 어쨌든 “국가 의식의 비대라는 사태” (1997, S. 758). 유사한 건 경제 시스템의 급부와 기능을 구별하지 않을 때에도 생겨남. 경제가, 인간이든, 다른 기능 시스템들이든, 욕구들을 채우기 위해 환경에 재화를 공급하는 것은, 경제의 급부. 경제의 기능은 이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희소성이라는 조건에서 미래의 보급을 확보하는 것” (1997, S. 758), 그래서 “미래의 안정적 보급을 각각 현재적인 분배와 결합하는 것” (1988, S. 64). 이 양자를 구별하지 못할 때 경제에 고유의 시간 관계와 근대 사회에 독자적인 화폐 경제의 의미가 이해될 수 없는 것. 과학의 영역에서는 새로운 인식의 획득이라는 기능에 대한 기대와 환경에 대한 과학의 급부의 기대를 관계 맺는 것에 있어, 보통 기초 연구와 응용 연구의 구별(나아가 이론 과학과 응용 과학의 구별)이 사용. 그러나 루만은 응용 연구(angewandte Forschung)라 부르지 않고, 응용에 관련한 연구 (anwendungsbezogene Forschung)라 부름. 왜냐하면 응용 연구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과학 시스템 내부의 연구에 다름아니고, 과학 시스템의 경계 외부에서 수행되는 과학의 결과들의 응용에서는 결코 아니기 때문. 그러니까 과학 시스템의 기능과 급부와의 차이를 기초 연구와 응용 연구라는 구별과 혼동해서는 안 되고, 더구나 전자의 차이를 후자의 구별에서 일반적으로 상정되는 것처럼 위계적 관계로 다루게 되지는 않는 것. (1990, S. 640; 1997, S. 758)
- 그래서 기능 시스템이 수행하는 기능과 급부와의 구별에 유의해, 급부의 영역으로 눈을 옮기면, 기능 시스템은 복잡하게 얽힌 투입/산출-관계의 망 속에서 나타남. 기능 시스템의 자율성의 거울상이지만, 어떤 기능 시스템도, 다른 기능 시스템이 각각 그것들의 기능과 급부를 조응하는 수준에서 수행 된다는 것에 의존. 예를 들면 경제 시스템은 법적인 다툼이 법 시스템에 의해 재가되는 것, 재가 결과의 실현을 정치 시스템이 원칙적으로 보증한다는 것, 과학 시스템이 새로운 지식을 제공한다는 것, 교육 시스템이 인재를 육성한다는 것, 등등에 의존. 다른 모든 기능 시스템도 같음.
- 그래서 우리가 여기서 급부의 이러한 의존 관계만을 꺼내는 경우, 기능 시스템들이 커뮤니케이션에 의해 서로 어떻게 결합되어지는 것인가라는 것을 투입/산출-모델의 형식으로 기술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만일 어떤 기능 시스템이 그 급부를 저하하고, 급부를 제공할 수 없게 된다고 하면, 무엇이 일어나는가, 나아가서는 어떠한 속도라 차차 무엇이 일어나는가를 시나리오 형식으로 분석하는 것이 가능.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교환 모델과 접합할 수 있는 그러한 투입/산출-모델에 의존하는 것만으로, 의존 관계의 측면을 다루는 것만으로 끝나고, 서로 의존하고 있는 각 기능 시스템의 자기 동태를 간과해 버리는 것. (1990, S. 636f.) 그러니까 루만은, 투입/산출-기술을 기능 시스템의 조작적으로 닫힌 자기 언급적 오토포이에시스의 기술과 적합할 수 있도록 변경한 위에, 급부 관계를 다루려 함.
- 그렇게 하려 할 때, 급부에 관해 서로 의존하는 각 기능 시스템의 다른 기능 시스템에 대한 관찰 능력을 문제시해야만 함. 각 기능 시스템은 급부의 투입 측도 산출 측도 다른 기능 시스템을 관찰해야만 하지만, 그 때 기능 시스템은 서로 상대를 이해하고 관찰할 수 있다고 상정할 이유는 없음. 가설로 기능 시스템이 다른 기능 시스템들의 내부를 이해하고 관찰하려고 시도한다 해도, 그를 위해서는 꽤나 많은 시간이 필요. 그렇다면, 각 기능 시스템은 다른 시스템으로의 급부 의존 상황과 다른 시스템에 대한 급부 수준에 대해서는, 언제나 각각의 내부에서 자기 자신에 있어 관찰 가능한 것을 관찰하는 것과 함께, 다름 아니라 조작적으로 닫힌 오토포이에틱 시스템으로 ‘자극 (Irritationen)’이라는 형식을 통해 그로부터 그에 대해 헤아려야만 함. “예를 들면 경제의 일원이 되려고 하는 졸업자들의 교육 수준에 있어서. 법정 외의 합의와 절충 수속 쪽이 유의미하다고 생각되는 것 같은 재판 수속의 기간 그 자체와 판결의 예측 불가능성에 있어서. 들어가는 납세액의 수준의 변동에 있어서. 과학 진흥 조성의 정치적인 적당주의 내지는 연구 기간과 조정되어질 조성의 시간 한정에 있어서. 가족과 제약 산업에 의해 조건 지워진 인구 변동들에 있어서, 다른 말로 하자면, 어떤 경우에서도 언제나 지표로 이용할 수 있는 사실에 있어서, 즉 언제라도 원인으로 작동하고, 혹은 (이것은 그렇지 않아도 조직의 수준에 있어서만 가능할 수밖에 없는 것이지만) 교섭하려 하는 것에서는 언제나 늦어질 사실에 있어서” (1997, S. 759)
- 근대 사회는 그 분화 형식 때문에 중심도 정점도 없는 사회. 그에 더해 근대 사회의 기능 시스템 사이 급부 관계는, 지금 여기서 보는 것처럼 매우 불투명할 뿐만 아니라, 예를 들면 교환 원리 같은 원리로 환원하는 것도 불가능. 기능적으로 분화한 근대 사회는 급부 관계를 매개로 사회적 통합을 기도할 수 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매개 메커니즘은 오토포이에틱한 각 ���능 시스템 자신이 각기 수행하는 내부적 관찰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것. 여기서 다음과 같은 결론. “근대 사회는 이런 관계들에 있어, 자신의 통일을 예로 들어 조화와 정의의 이데라는 형식을 통해 통용되는 것을 명백히 단념하고 있다. 통합이라는 것은 이러한 사정에서, 동시적으로 가능한 것의 여러 제한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다.” (1997, S. 759f.)
- 루만은 오토포이에틱한 사회 시스템 이론의 사고 방식을 기능적 분화라는 사고 방식과 결합. 루만은 그것을 근대 사회 이론의 출��점에 두고, 요약해서 다음과 같이 말함. “용장성의 방기, 즉 다기능성의 방기를 통해, 현저한 복합성의 획득이 실현된다. 물론 이것은 많은 후속 문제를 수반하지만. 이 기술은 고전적 사회학에서 분업 이론이 점하고 있던 이론 장소를 점한다.” (1997, S. 761)
- 이 출발점 외에, 루만의 근대 사회 연구에 있어서 오토포이에틱한 사회 시스템 이론과 기능적 분화라는 사고 방식의 결합에 수반된 또 하나의 출발점이 이용. 구조적 커플링과 자극 상태(Irritation)라는 개념. 이는 직접적으로는 각 기능 시스템의 시스템/환경-관계 분석에 적용되는데, 이 분석이 왜 근대 사회 이론에서 중요하냐 면, “사회는 그 기능 시스템들의 합계로 자기를 재생산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불가능하”(1993, S. 494)기 때문.
- 지금 구조적 커플링과 자극 상태 개념에 대해 생각하자면, 사회 시스템은 오토포이에틱 시스템이기에 그 조작적 닫힘 때문에, 환경 측에서 조작을 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고,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조작에 의해 환경과 직접적으로 접촉하는 것은 불가능. 이는 오토포이에틱한 사회 시스템인 각 기능 시스템에서도 같아, 기능 시스템도 또한 환경에 대해 언급하는 것 밖에 사용되지 않음. 구조적 커플링이라는 개념은 여기서의 시스템/환경-관계를 다루는 것. 이 개념은 또한 오토포이에시스 그 자체가 아니라, 시스템의 구조 선택에만 관계. 그래서 사회 시스템의 경우, 구조적 커플링은 커뮤니케이션을 속행하는 가능성에 관계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커뮤니케이션의 테마에 관계하고 있다고 하는 것이 가능.
- 구조적 커플링은 시스템이 오토포이에시스를 수행하면서 사용가능한 구조의 영역을 제한. 그 때 구조적 커플링은 시스템이 조작을 자기 구조에 의해서만 결정하는 시스템이라는 것을 전제. 그래서 시스템에서 일어나는 것을 환경과 환경 구조에서 특정화 하는 것은 배제. 그러나 시스템이 오토포이에시스를 속행하기 위해서는, 구조적 커플링이라는 형식을 통해 자기 구조의 제한으로 주어지는 환경 조건을 만족시켜야만 함. 이는 사회 시스템인 각 기능 시스템에서는 다음을 의미. 기능 시스템도 또한 자기 결정에 의해 조작하지만, 그 구조에 있어 환경에 적응해야만 하고, 그래서 환경인 다른 기능 시스템과의 구조적 커플링을 통해 부여되는 커뮤니케이션 테마를 무시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고, 또한 환경이 허용하는 범위 내의 방향에서 발전하는 것이 가능. 또한 그 자체는 자율적으로 자기 결정적인 각 기능 시스템이 상호 시스템/환경-관계를 통해 서로 제한적으로 작용하는 양식을 시사.
- 그래서 이 구조적 커플링에 있는 시스템 내측을 지시하는 것이, 자극 상태(시스템 이론에 있는 또다른 이름은 착란, 혹은 공진, 혹은 섭동)라는 개념. 오토포이에틱 시스템은 부정적 자극(Reizung), 혹은 유형화할 수 없는 자극(Reizung)에 반응. 그러나 이 시스템은 피자극 가능성에 있어서도 자율적. 자극 상태는 미리 특정화 되지 않는 사건이, 시스템 자신이 가진 기대(시스템의 구조) 내지는 시스템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가능성들과 비교되는 것을 통해 생겨남. 시스템의 환경에 자극 상태가 있다 거나, 환경에서 시스템으로 자극 상태의 이체가 있는 것도 아님. 자극 상태는 시스템 자신의 구성물이고, (환경 작용을 계기로 하는) 자기자극 상태. 그렇기 때문에 기능 시스템도 또한, 자극 상태의 원인을 자기 자신 속에서 보고 학습하는 것이 가능하고, 혹은 자극 상태를 환경에 귀책시켜 우연으로 다루고, 그 원천을 환경 속에서 찾아 이용 혹은 차단을 노리는 것도 가능. 그래서 기능 시스템은 자기 언급과 외부 언급의 퍼스펙티브를 교체하고, 자극 상태로의 몇 가지 반응을 결합 가능, 예를 들면 환경 원인의 동정과 동시에 학습을 하는 것이 가능.
- 그런데 오토포이에틱한 사회 시스템의 이론과 기능적 분화라는 사고 방식 결합에서 수반되는 이러한 두 가지 출발점, 즉 용장성 방기와 복합성 획득, 또한 기능 시스템의 구조적 커플링과 자율적 자극 상태는, 근대 사회 해명에 어떻게 적용되는 것이고, 그 결과로 기능적으로 분화한 근대 사회는 어떻게 특징짓는 것일까?
(1) 자율성 이유의 과소한 공진과 과대한 공진
- 오토포이에틱한 기능 시스템은 사회내 환경의 사건이나 사회 외부 환경의 사건에 대해 반응하려 해도, 피자극 가능성에서 자율적. 기능 시스템은 각각의 구조, 즉 코드와 프로그램에 따라 환경 사건을 식별하고 해석. 각 기능 시스템의 커뮤니케이션에서 다뤄지는 테마는 미리 코드에 의해 한정되고, 프로그램에 의거하여 기능 시스템 안의 커뮤니케이션이 선택. 그래서 사회는 모든 커뮤니케이션으로 이뤄지지만, 어떤 기능 시스템에 속하는 커뮤니케이션과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커뮤니케이션의 차이가 발생. 양자의 커뮤니케이션 중, 사회적으로 영향이 커다란 커뮤니케이션은 전자. 기능 시스템에 속하지 않는 후자의 커뮤니케이션이 사회 속에서 어떠한 가능성을 가지는 지는, 그 때문에 기능으로의 사회의 분화에 연결해 연구돼야만 하고(1986, S. 75), 여기서는 제외.
- 기능 시스템의 피자극 가능성과 자극 상태에서 지적해야만 하는 것은, 그러한 시스템의 자율성에서 나오는 귀결. 기능 시스템은 환경 사건에 대해 과소하게, 혹은 반대로 과잉해서 반응. 한 편으로 기능 시스템은 특히 사회 외 환경 사건에 대해 둔감. 예를 들면 수은병 문제의 경과에서 잘 알고 있는 것처럼, 기능 시스템들은 사회 외부 환경의 변화에 극히 둔감할 뿐만 아니라, 변화에 둔중하게 밖에 반응. 각 기능 시스템은 또한 부작용적으로 야기하는 환경 문제에는, 참으로 그것을 야기하는 것이 해당 시스템이라는 구조적 이유에서, 더욱 더 둔중하게 반응. 예를 들면 경제 시스템의 공해 문제에 대한 대응, 약품의 부작용이나 항생물질의 사용이 야기하고 있는 세균의 변이 가능성 문제에 대한 의료 시스템의 반응.
- 다른 한 편 2001년 9.11 사건에서 전형적으로 보여지듯, 기능 시스템은 때로는 사회적 사건에 대해 급속할 뿐만 아니라, 극단적으로 과잉 반응. 소용돌이의 당사자에게는 보이지 않고, 제3자로 본다면, 또한 당사자가 사후적으로 본다면, 이러한 기능 시스템은 자율적이라는 이유로, 그 구조에서 그 결과로 과소하게, 혹은 과잉해서 반응. 기능 시스템의 이 문제를 루만은 『에콜로지의 커뮤니케이션』(1986)의 제17장에서 ‘과소한 공진과 과대한 공진’이라 부름. 각 기능 시스템에서 일어나는 이 공진문제는 다음 항(2)에서 서술하는 메커니즘을 경유하여 사회 전체에 작용.
(2) 용장성의 방기와 조정의 방기
   - 근대 이전 사회의 부분 시스템이 복수의 사회적 기능을 담당하는 것이 가능한 것에 비해, 근대 사회의 각 기능 시스템은 각각 단일 기능 만을 충족. 이것이 용장성의 방기. 그 결과 어떤 기능 시스템의 급부 능력과 급부 수준의 변동이 바로 다른 기능 시스템에 영향. 그래서 각 기능 시스템은 서로 자극(Reizung)에 민감할 수 밖에 없고, 각 기능 시스템의 자극 상태 수위는 상승. 루만은 이에 더해, 앞 항 (1)의 과대한 공진에 기반해, 어떤 시스템의 약간의 변동이 “다른 시스템들에 있어 불균형한 커다란 자극 상태를 야기한다” (1997, S. 762)는 것을 강조. 이러한 자극 상태 상관 관계의 전체 사회적 상승은, 기능 시스템의 자립성과 상호적 의존성의 동시적 상승의 반영. 그 귀결로 기능 시스템 상호에 있어 불투명성이 높아지고, 각 기능 시스템의 변화가 시스템 상호 관계 속에서 어떠한 작용을 수반하는가를 예측하는 것은 어려움. 여기서 근대 사회에 대한 일반적 테제가 야기. 즉 기능적 분화라는 “이 분화 형식으로의 이행은 사회의 자극 가능성을 상승시키고, 환경의 변화들에 재빠르게 반응하는 사회의 능력을 증대하지만, 그러나 동시에 자극 상태 조정의 광범위한 방기를 들고 올라가지 않으면 안 된다”(1997, S. 789)라는 테제.
(3) 복합성의 상승
- 사회의 기능적 분화는 사회 각각의 특수적 기능에 따라 사회를 기능 시스템과 사회내 환경으로 떼어 냄. 사회는 사회 속의 새로운 시스템/환경-구별들의 분화, 자립화를 경유해 내향적으로 확대. 사회는 각 기능 시스템의 오토포이에시스 수행에 의해, 한 편으로는 화폐화(금전화), 법화, 과학화, 정치화 등등 다중화를 수행. 다른 한 편으로 내향의 확대를 통해, 각 기능 시스템 커뮤니케이션의 오토포이에시스에 기여하는 것 내부에서, 보다 다량의, 또한 보다 많은 종류의 커뮤니케이션이 가능. 또한 이전 사회보다 더욱 많은 테마가 다뤄 짐.  
- 기능적 분화에서는 이렇게 개개 기능 시스템의 조작이 증대할 뿐만이 아니라, 관찰과 선택의 영역이 증대. 이 결과 사회 전체의 복합성도 상승. 기능적 분화의 진전과 함께 근대사회에서는 이렇게 구조적 이유로 복합성이 상승하지만, 그에 응해 의미론 면에서 복합성이 상승. (1977, S. 764~767)
- 사물적 차원에서는 커뮤니케이션 테마가 증가할 뿐만이 아니라 테마, 텍스트, 발언을 분해하는 초점심도가 상승.
- 시간 차원에서는 과거와 미래의 차이에 대한 허용도가 상승. 이제 보다 많은 것이 변경 가능하고, 다양한 사건의 진행이 가속. 그 결과 기능 시스템 사이의 사건들의 동기화가 어렵고, 관계하는 시스템에 의해 점점 많은 사건이 우연, 사고, 계기, 나아가 경우에 따라 찬스로 드러나게 되는 것. 구조들(예를 들면 자본투자, 정당의 성격적 특색, 결혼, 과학의 개념용어)에는 의사결정이 돌아가고, 그것들은 의사결정에 의한 선택의 결과라 보여지는 것. 계속해 계획화 가능하다 생각되는 미래 지평은 현재 편으로 끌어 당겨짐. 그러나 미래는 불확실하기 때문에 미래는 의사결정에 있어 리스크로 경험. 과거는 일반적 표준이 되지 않는 것으로 바로 이행하고, 특별한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것, 역사적으로 관심을 끌어내는 것으로 변화. 그 외, 사람은 여기서는 또한, 유행과 스타일, 시대적 분위기, 세대의 차이 등, 공간적으로 구별되기 보다도 언제나 시간적으로 나뉘어 변이하는 것, 변이하는 것에 의해 매혹성을 가진 것으로 자신의 선택을 맞춤.
- 끝으로 사회적 차원에서 획득되는 복합성은, 조작으로서는 사회로부터 인간을 배제하는 것에 의거하고, 개인 혹은 주체라는 견장을 가지고 지나가는 것으로 획득되는 복합성. 이미 서술한 것처럼, 기능 시스템의로의 분화를 수행하는 사회는, 개인들을 사회의 어딘가의 기능 시스템(부분 시스템)에 사회적에 배치해 거기에 붙잡아 두는 것은 불가능. 각 기능 시스템이 모든 개인들의 포섭을 겨냥한다고 해도, 그 포섭은 각 시스템 자신의 조작(커뮤니케이션)에만 관계. 개인들에 있어서 찬스라는 관점에서 사회에 관한 평가 붙이기는 긍정적인 평가(주체)와 부정적인 평가(homme-copie 카피-인간, 스탕달, 대중인 등) 사이를 요동. 서로 역방향에 있는 것처럼 ‘자기 실현’과 ‘합의에 의거한 요해(Verständingung)’라는 절실한 요구가, 동시에 이상화. 이 결과로서, 사회적 차원의 일종의 탈-자연화가 관찰, 그것은 사회가 사회를 커뮤니케이션 시스템으로서 파악하는 것에서 유용하게 되는 것. 사회는 더욱 더 많은 기대와 더욱 더 많은 환멸을 커뮤니케이션으로 옮기고, 또한 그러한 커뮤니케이션을 목표로 하는 상징적 표현, 자기를 환상화하는 표현을, 특히 정치 시스템에 있어 생산. 만일 ���회가 개개인의 의식에서 진행하는 것에 대해 무관심하지 않다면, 사회는 그 대규모한 불일치에 견디는 것이 불가능.
- 루만은 중요한 기능적 분화의 하나의 귀결로, 관찰이 제2계의 관찰로 광범위하게 교체되어 가는 것을 거론. 루만은 사회 이론은 제2계의 관찰 수준에서 기술해야 한다고 하는 입장이지만, 이미 전체 기능 시스템이 그 조작을 제2계의 수준에서 관찰하고 있는 것을 지적. 
(4) 기능적 분화에서의 계층 분화  
- 기능적 분화에서 절대 오해해서 안되는 것은 근대사회의 제1차적 분화 형식인 기능적 분화는 환절적 분화나 성층적 분화를 소멸시킬 이유가 없다는 것. 반대로, 예를 들면 조직 시스템이라는 기초 위에 환절화의 찬스나, 예를 들면 공업국과 발전도상국 사이의 불평등을 참으로 확대시키는 찬스는, 사회의 복합성과 함께 증대. 기능적 분화에서 출발하는 루만은, 세계 사회에 있는 소위 글로벌라이제이션과 로컬리제이션이라는 문제 분석에서도, 환절적 분화, 중심과 주변으로의 분화, 성층적 분화라는 세 가지 분화 형식을 분석 틀로 ��용. (1997, S. 806ff.)
- 기능적 분화가 사회의 계층적 구조를 제거하지 않는 것에 대해 특히 강조해야만 함. 기능적으로 분화한 사회에서는, 의연하게 거대한 빈부의 차가 있고, 의연하게 이 차이가 사람들의 생활 형식에, 또한 사회적인 찬스로의 접근에 작용. 경제 시스템이나 교육 시스템은 언제나 그것들이 복합성을 높이는 합리적으로 기능한다면 할수록, 사회 내부의 계층화를 강화. 그렇기 때문에 생활 양식이나 사회적인 찬스로의 접근에의 차이는, 성층적으로 분화한 사회와 마찬가지로 가시적인 사회 질서가 아니라, 이 차이가 이뤄진다면 질서 그 자체가 가능하지 않을 질서는 아님. 그렇기 때문에 이 성층화는 정당화 능력을 잃어버리는 것이고, 18세기 이래 만인의 평등이라는 공준을 들이밀고, 그로부터 불평등을 측정. 의미론적으로 이 전환은 신분이라는 계층 개념으로부터 사회적 계급이라는 계층 개념으로 이행에 의해 표현. 근년에는 또한, 사회층에 의한 개인적 행동의 지정이 풀어지는 것이 가능한 것에서, 사회학자들은 성층화 보다도 사회적 불평등에 대해 말하는 것이 많아지는 것. 이것은 가족 영역이나 청소년 문화나 세대간 관계의 변화와 관련하고 있는 것이지만, 출신에 따라 상정되는 직업 선택의 표준 유형이 무너지는 것을 비추고 있음.
- 사회학에서는 근대의 성층적 구조도 또한 이것 대로 일정 기능을 부과한다는 것을 증명하려 시도. 그러나 루만은, 그러한 관점은 조직이라는 시스템에서 중요한 것에 불과하고, 사회의 이론으로서는 언제나 다음 문제에 관심을 부여해야만 함. 즉 “사회의 분화 형식이 성층 구조에 의지하지 않는 경우에도, 의연하게 모습은 변하지 않고 생활의 찬스의 극단적인 차이가 재생산되는 것은, 어째서 그러한 것일까?” (1997, S. 774)
- “그것은 자명하게, 개개의 기능 시스템, 특히 경제 시스템과 교육 시스템의 합리적 작동의 부산물이다. 이러한 시스템은 (노동 능력, 신용력, 입각지의 우위, 재능, 자기 규율 등등) 최소의 차이를, 이러한 차이를 일탈증식의 의미에서 강화하기 위해 이용하고, 이렇게 해서 대강 달성된 격차 해소까지도 다시 사회적인 차이화들로 교체된다. 이 효과가 어떠한 사회적 기능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경우에도” (위와 같음)
- 그러나 생활의 찬스가 소득에 결정적으로 좌우된다는 것��� 고려한다면, 이 답만으로는 불충분. 이 답은 순수 급여소득자에 대해서는 적합. 이 답은 또한, 유산 상속이 완전하게 폐지되는 경우에 ‘대강’ 적합. ‘대강’이라고 말해야만 하는 것은, 일탈증식을 개시하는 차이 속에서 ‘신용력’이 들어가는 것을 본다면 판명. 그 반대측에는 인물에 관계하는 신용만은 아니라, 이자, 배당, 기타의 캐피탈 게임이 예정. (1997, S. 167을 참조) 루만은 사회의 경제의 기능을 “희소성이라는 조건에서 장래 대비를 확보하는 것”, 그래서 “미래의 안정적인 대비를 각각 현재적 분배와 결합하는 것”에서 구함. “경제에 특유한 시간 관계와 근대사회의 가장 기지에 풍부한 작품, 즉 화폐 경제”에 주목하는 것도, 이 이유. 논문 「정치와 경제」에서, “사람이 근대사회를 그 경제의 형식으로 기술하려고 하는 한에서는 ‘자본주의’ 사회나 ‘포스트 인터스트리얼’ 사회에서가 아니라, 금융사회(Finanzgesellschaft)가 적확한 표현일 것이다”. (1995j, S. 575; 또한 관련한 것에 대해서는 논문 「자본주의와 유토피아」 1994e도 참조) 금융사회에서 이자는 계산이자(관념상의 이자)로만 존재해 기능하고 있는 것이 아님. 그 때문에 생활 찬스 전반에 관여하는 사회 계층론에서, 오늘날 소유만으로 출발하는 경제적 계급론이 불충분한 것과 마찬가지로 일탈증식론만으로는 불충분.
(5) 기능 시스템 사이의 구조적 커플링
- 루만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근대사회는 기능적으로 분화한 사회, 중심도 정점도 없는 사회. 더해서 여기서 분화, 자립화 하는 각 기능 시스템은, 각각 조작적으로 닫힌 오토포이에틱한 자율적 시스템. 그렇다면, 하나의 의문. 각 기능 시스템이 각기 자율적 전개를 이루면 근대사회는 늦건 빠르건 내부 분열을 야기하고, 이미 자기분해하고 있는 것처럼 생각. 이 의문은 루만의 기능적 분화론에 대해 많은 사람이 제출한 의문. 예를 들면 하버마스는 근대 사회는 중심도 정점도 없는 사회라는 루만의 규정을 이미 자신의 이론에서 받아들이지만, 하버마스는 시스템 이론에서 “분석적 수준에 있는 기본 개념들의 선택을 통해 미리 결정될 수 없는 중요한 문제”의 하나로, 1990년에 다음과 같이 이야기.
“예를 들면 ‘중점도 정점도 없는’(루만) 근대 사회들은, 원심적인 힘들에 대항해, 참으로 어떤 특수 코드로 경화하지 않고, 전체 사회적 문제 상황들의 압력에 대해 반응을 가능하게 하는 것처럼, 그러한 하나의 전체 사회적 커뮤니케이션 연관을 형성할 수 있는 것일까? 공진 능력을 갖춘 그러한 정치적 공공성의 토대가 이뤄진다면, 설사 아무리 매개되고 있든지, 사회의 민주주의적인 자기조직화의 약속은 공허한 것에 머물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 루만은 근대사회를 기능적으로 분화한 사회로 파악하고, 그 위에 각각 자율적인 각 기능 시스템의 연구를 선행한다고 하지만, 근대사회를 자율적 기능 시스템들의 하나의 집합으로 기술하는 것만으로는 근대사회에 대한 일면적인 이해로 돌아갈 수밖에 없음. 그러나 그는 그렇다고 계획화와 조종의 필요를 말하거나, 통합을 위해 윤리를 요청하는 식으로 돌아가지 않음. 그는 사회주의 체제가 이상에 반해 붕괴했다는 역사적 사례 뿐만 아니라 현재 기능적 분화에 수반되는 귀결 문제들로부터 판단해서, “시민사회의 커뮤니케이션 잠세력”에 커다란 기대를 기울이지만, 희망이 거기 밖에 없다고 해도 조금 회의적. 그의 생각에 의하면, ���획화나 조종이나 윤리라는 기본적인 사고 방식을 유사한 보다 실천적 구상을 가지고 보완하는 것도 곤란. 왜냐하면 우리는 행위의 안내 형식을 결정하는데 필요한 지식조차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 게다가 그것은 기능 시스템의 내부에서, 매번 각각 그러한 영역에 대해서 이뤄지는 것에 불과. (1997, S. 776~778)
- 루만은 이렇게 이야기한 후에, “물론 이것은 실천적인 것에서 금욕을 요구하는 것이 되는 건 아니다.” (1997, S. 778). 그렇다면 루만의 사회 연구는 어떻게 하려는 것일까?
- 그것은 많은 사람들을 실망시키고, 계획화나 윤리라는 제안을 했던 사람들의 반감을 산 것. 왜냐하면 그의 사회 연구는 이러한 시도를 관찰자의 측으로 돌리기 때문. “물론 이것이 실천적인 것에서 금욕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누군가가 사회에 새로운 차이들을 도입함으로써 계획화와 윤리를 독자로 요구하는 경우에는, 무엇이 일어나는지를 인식하거나, 이러한 시도에 대해 관찰자의 관찰자라는 포지션에 머무른다는 것에는 의미가 있다.” (위와 같음) 이 관찰자의 관찰 문제는 『사회의 사회』의 마지막 제5장에서 다룸. 루만의 사회 이론은, 다른 사회를 위한 처방전이나, 보다 좋은 사회의 설계도나, 보다 좋은 사회의 구상과 그를 향한 직접적 접근 경로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님. 그것은 우리는 도대체 어떠한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나 라는 이론적 연구에 불과. 무엇보다 기능적 분화에서 바뀔 수 있는 사회의 제 1차적 구조(사회의 분화 형식)는, 루만에게는 현재 예측할 수 없는 것.
- 원심적인 힘에 의한 내부 분열의 가능성, 기능적 분화에서 통합이라는 문제에 대해, 루만은 기능 시스템의 오토포이에시스와 구조적 커플링을 구별하여 구명. 뒤르켐과 파슨즈 이래, 사회의 분화 이론에는 분화한 부분의 통합이 문제가 되고, 통합의 형식이 탐구. 루만은 “이 형식을 오토포이에시스와 구조적 커플링의 구별에 의해서 대신한다.” (1997, S. 778)
- 오토포이에틱한 사회 시스템과 사회의 환경과의 환경 관계를 설명하면서, 『에콜로지컬 코뮤니케이션』(1986)에서 이미 구조적 커플링 개념을 사용했지만, 이 개념이 사회내 환경과의 시스템/환경-관계, 그것도 기능 시스템 상호의 시스템/환경-관계에 본격적으로 적용되는 것은, 루만의 만년이고, 「사회의 이론」 시리즈의 작품에서는 『사회의 법』(1993, 제10장 ‘구조적 커플링’)부터. 그 이후 다른 기능 시스템에 대해 보충논문을 썼고, 또한 유고본 『사회의 정치』(2000)의 제10장에서 구조적 커플링이 논해짐. 그러나 기능 시스템의 수는 많고, 그래서 기능 시스템 사이의 관계 수도 많음. 왜냐하면 관계에서 구조적 커플링의 중요성은 여러가지가 있음. 『사회의 사회』에서는 기능 시스템 사이의 구조적 커플링이라는 사고법의 소개라는 취지로, 여섯 가지의 기능 시스템 관계가 간결하게 요약. 그로부터 최초의 세가지(1997, S. 781~784)를 베끼자면, 정치와 경제, 법과 정치, 법과 경제, 이것들의 구조적 커플링.
(5a) 정치와 경제
- 정치와 경제의 구조적 커플링은 조세에 의해 달성. 화폐 사용은 모두 경제 지불로 수행되고, 정치 시스템에 의한 화폐 사용도 마찬가지. 그렇지만 정치는 이 사용에 조건을 붙이는 것이 가능. 그래서 국가 예산의 사용은 정치적 문제, 많은 화폐를 사용할 때 (혹은 적은 화폐 밖에 사용하지 않을 때), 그것은 정치를 자극. 그러나 이 사용도 경제 시스템의 시장 법칙 하에 있기에, 화폐 순환 중 국가 부분 비율이 상승하는 것은 경제 시스템의 구조적 발전에 현저한 영향. 국가는 반드시 세수만으로 참아야 할 이유는 없음. 18세기 이래, 국가 채무는 은행화폐와 함께, 화폐량을 증대하는 도구의 하나, 국가가 발권 은행을 통제하��� 있는 경우에는 특히 그러함. 그러니까 정치 시스템과 발권 은행과의 관계에도 구조적 커플링. 발권 은행(중앙 은행)이 한 편으로는 독립적으로, 그래서 예를 들면 이자율과 할인율에 있어 화폐 시장에서 공채 가격에 작용하는 것이 가능하고, 그러나 다른 한편 일정의 정치적 배려도 하는 것이 가능한 경우에 적합.
- 20세기에는 새로운 커플링이 추가. 각 국가 정치 시스템이 민주화되고, 정치적 성공(선거에서의 승리)은 경기 동향에 좌우, 경기 동향은 세계 경제 시스템의 장기적 구조 변화 속에 있고, 정치적 성공의 조건을 지역적 정치 시스템에 의해 컨트롤할 여지는 좁음. 로컬 생산의 수출 의존이나 신용 의존을 국가적 결정에 의해 제어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기껏해야 완화나 수정을 목표. 리버럴한 경제 정책인가 사회주의적 경제 정책이라는 고전적 구별은, 정책이 외부에서 결정되어 버리는 사태의 반응적 조치일 뿐일 때, 중요성을 잃음. 19세기부터 지속된 정당 도식은 이에 따라 무너지지만, 그것이 무엇에 의해 어떻게 교체할 수 있는 지는 알 수 없음. 그렇지만 유권자를 일상적 경험과 관계 맺는 것이 가능한 선택지를 유권자에게 제공할 수 있는지 여부가 정치적 스펙타클 중 ‘래디컬’이라 정의 될 수 있는 선택지 밖에 없다면, 유권자가 선거 민주주의와 일체화 할 수 있는 태세를 재생하는 데 필요한 중요한 기초가 결여되는 것. 그러니까 정치 시스템은 집합적으로 구속적인 의사 결정에 있어 접근 가능한 테마 영역 속에서 자신을 새롭게 편성 교체해야 하지만, 지금 그것이 어떻게 일어날 지는 불확실.
(5b) 법과 정치
- 법과 정치의 구조적 커플링은 헌법을 통해 규제. 헌법은 한 편으로, 정치 시스템을 법에 연결. 그 결과, (이것이 기능하는 경우에는!) 위법적으로 행위하는 것은 정치적으로는 실패로 전화. 다른 한 편 헌법은, 정치적 착상을 끌어 들이는 입법이라는 수단을 통해 법 시스템에 개혁 변화를 투입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개혁 그 자체는 이것 대로 다시 정치에 성공 혹은 실패로 돌아 감. 이처럼 법의 실정법화와 정치의 민주화는 밀접하게 관련. 나아가 법적, 재정적으로 가능한 것을 고려한 정치에 의한 행정적 지도에도 연결. 한 편이 다른 편을 조건. 법은 행정에서 구체화를 진행하는 사이의 유동 공간을 열고, 이 공간은 정치적으로는 민주적인 의사 형성을 가능. 그러나 법 시스템과 정치 시스템은 각각 조작의 별개의 재귀적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그래서 양 시스템의 조작은 분리. 어떤 법률의 정치적인 의의는 그 법률의 타당함과는 전혀 별개의 것.
- 법과 정치의 구조적 커플링은 단지 정치에 ‘사법국가적으로’ 영향을 주는 것만은 아님. 구조적 커플링은 헌법이 정치의 복지국가적 경향들을 법률적으로 컨트롤하기 위해 이용되는 경우에는 헌법 그 자체를 변형. 목적을 지향하는 국가 활동은, 사법 판단에 견딜 수 있는 준칙에 따라야만 함. 기본권은 특히 독일 헌법(기본법)에서 관찰할 수 있는 것처럼, 국가활동의 일반적 가치 프로그램으로 일반화 되고, 역으로 본다면, 공공행정에는 사법 판례를 일반원칙으로서 강제 실천에 채용하는 것.
(5c) 법과 경제             
- 법과 경제의 관계에서, 구조적 커플링은 소유권과 계약을 통해 달성. 이것은 권리와 의��(채무)에 대해 가장 중요한 토대를 수반하고, 18세기 변혁기 중에는 법과 사회의 기초 그 자체와 합동이라 생각되었던 것. 경제 시스템에서, 그것들은 소유/비소유라는 시스템 특유의 코드와, 시스템 특유의 조작(즉 거래 문맥에 있는 지불)의 전제. 법 시스템 밑과 경제 시스템 밑에서는, 그것의 사용 문맥이, 개개의 요소(지불의 의미와 계약의 불이행로부터 생겨나는 권리의 타당성)의 재귀적 동정의 조건이 완전히 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구조적 커플링은 두 개 시스템의 고도의 상호적 자극을 가능. 소유권 내지 계약의 자유와 조건 부여가, 같은 생활 공동체에는 속하지 않는 미지의 파트너가 들어오는 것을 통해 경제의 거대한 확장을 처음으로 가능하게 하고, 법 제도의 경제적인 요구로부터 소유권과 계약이라는 법 개념의 발전을 설명하는 것이 가능. 이 발전은, 로마법을 기초로 해서, 소유권을 자유처분의 권리라 정의하는 방향으로, 또한 계약 체결자들의 단순한 합의에 기반한 계약이 모두 제소 가능하다는 방향으로, 나아갔던 것. 이 구조적 커플링은 이러한 두 가지 시스템이 공통의 요소를 사용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참으로 그것 때문에, 이러한 시스템의 구조 발전의 방향, 즉 ‘구조적 드리프트’의 방향을 규정. 그 결과 경제에 의한 법의 자극의 증대이고, 그것은 경제 성장에 같이 하는 사법 소송의 증가로 나타남.
- 근대사회의 기능 시스템들은 자립적으로서, 자율적. 여기서 각 기능 시스템의 오토포이에틱한 동태라는 측면에만 주목할 때, 근대 사회의 일면적인 상만을 얻음. 각 기능 시스템은 자립적으로 자율적인 이유 자체, 모든 기능 시스템은 서로에게 다른 기능 시스템의 급부에 의존. 그 때문에 기능 시스템은 상호 시스템/환경-관계에서 구조적으로 커플링하는 데 있어, 구조 형성과 구조 발전의 방향을 서로 조건 지음. 루만은 근대사회의 기능적 분화 분석에 이어 기능 시스템 사이의 관계에 눈을 돌리고, 구조적 커플링이라는 개념을 사용해 근대 사회의 구조적인 전용을 그림.
4. 기능적 분화의 사회적인 귀결들
- 기능적 분화와 기능 시스템의 조작적 자율성은 많은 중대한 후속 문제. (1997, S. 801-805) 계층 형성, 생활 찬스의 현저한 격차, 사회적 불평등 등등. 세계 경제 시스템은 달성한 풍요로움의 공평한 분배라는 문제에 무력. 다른 기능 시스템도 유사한 후속 문제. 학교와 대학 교육에 집중하는 교육 시스템은 교육 기간을 연장. 생산적으로 활동하고 결혼할 수 있는 청년들이, 직업 스타트를 유리하게 하기 위해, 고등 교육 기관에서 더 교육. 정치 시스템은 정당을 경유해 사람을 정치에 인입 하지만, 그 사람들은 여기서 활동의 순수 필요성으로, 예산에서 뒷감당할 수 없는 불가능한 약속을 가지고 국민을 기쁘게 해야만 함. 친밀한 관계(키워드는 사랑에 기반한 결혼)에 향한 기대는 높이 치켜 올려지고, 또한 친밀 관계에 들어가는 동기가 필요하기 때문에, 그 결과로 그에 기반한 결혼에 정신적 치료가 필요, 이혼율의 상승, 같은 과정의 반복. 이러한 예는, 사회의 기능 시스템들이 각각의 분화, 자립화, 전문화, 높은 급부로의 지향이라는 후속 문제 형태로 각각 기능 시스템 자신, 그래서 사회를 괴롭히고 있음.
- 이외에, 루만은 기능적 분화의 사회적 후속문제로서 네 가지의 영역을 거론. 첫째 사회라는 시스템의 환경 관계, 환경 문제에 권한을 가진 중심 심급의 결여라는 문제. 둘째, 기능 시스템에서 사람들의 배제라는 문제. 셋째, 사회에 있는 개인의 위치 문제. 넷째, 사회가 수��가 상승하는 자극 상태에 또 한 번 반응할 때 생겨나는 문제.
(1) 환경 문제
- 루만의 『에콜로지의 커뮤니케이션 – 근대사회는 에콜로지컬한 위기에 대응할 수 있을까?』(1986)의 의의는, 에콜로지 문제를 사회(과)학의 중요 문제로 끌어올렸다는 것만이 아니라, 에콜로지 문제를 기능적 분화라는 근대사회의 기본 구조에 관한 문제로 제기하고 있다는 것. 리스크와 불안, 사회운동과 사회에 대한 항의, 도덕(화)과 환경 윤리 등에 대해, 상식과 통설이 비판적으로 음미 되지만, 논의는 전략적으로 특히 시니컬, 때로는 극히 도발적. 그럼에도 사회비판적 입장에서 에콜로지 연구와 사회운동론의 기본 문헌으로 보여질 수 있던 것은, 환경 문제가 종래 사회 이론에는 없던 시야에서 근대사회의 구조와 연결되어 분석되기 때문.
- 『사회의 사회』를 인용하면, 기능적으로 분화한 사회의 환경 문제는 다음과 같이 정리.
“환경의 과잉 착취에 의한 사실적 귀결은, 지금 아직 일정 한계 내에 머무르고 있다. 그러나 이대로 계속되지 않을 것을 상상하는 데에 많은 상상력이 필요하지 않다.” (1997, S. 805)
“환경이 낳고, 사회가 정보로 전환하는 시그널은, 개개 기능 시스템에서 받아들여져 가공되는 것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다른 가능성은 없기 때문이다. 항의 운동을 생각하는 것이 가능할 것 같지…만, 그러나 사회의 부분 시스템만이 낭패를 느낀다고 하는 것, 그래서 부분 시스템만이 자신의 구조와 자신의 기억을 가지고 자신의 조작적 가능성 틀 안에서 반응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에 대해서는, 그것은 무엇도 바꿀 수 없다. 사회 자신은 행위 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다. 사회는 사회 속에서 또 한 번 등장 하지 않고, 기능적 분화가 관철하는 경우, 사회는 사회 속에서 대표 되지도 않는다. 사회 속에 ‘좋은 사회’가 있지는 않다. 찬동의 정식화는 물론 가능하고, 또한 문제 의식의 유지에서 역할 하기 때문에 유용하다고 해도, 환경 문제를 ‘윤리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안이한 환상이다.” (1997, S. 802)
- 기능적으로 분화한 사회는 조종의 중심이 없고, 환경 문제를 다루기 위한 중심 기관도 없음. 그것이 환경문제가 커뮤니케이션 테마가 되지 않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음. 환경 부하가 문제 될 때, 이 문제에 전면적으로 권한이 있는 자는 없음. 여기서 윤리가 있지만, 윤리가 어떤 근거 짓기를 수행한다면, 개인으로서의 의사 결정자로 향함. 그러나 동시적으로 결정하는 많은 사람들이 (시간의 격리를 고려한다면 더욱 많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우선은 사회적 조정이 어떻게 성립하는지가 문제. 게다가 윤리가 환경 때문에 평소 익숙한 소비 수준의 단념을 요구할 때, 이 목표가 개인의 동기부여를 통해 어떻게 달성될 수 있는지도 보이지 않음. (1997, S. 798)
- 자극 상태의 정보로의 가공, 변환도 각각의 기능 시스템으로 수행. 결과에 대해 사회 운동은 항의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사회운동도 또한 사회의 부분 시스템에 불구하고, 기능 시스템들의 기능을 스스로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에만 존재하는 것의 가능한 부분 시스템.
- 환경에 관한 정보는 이렇게 기능 시스템에 있어 보족적 항의 운동에서 생겨나지만, 그러한 정보는, 이러한 시스템의 오토포이에시스와 각각의 시스템 특수적인 기억에 묶여 있음. 그 때문에 여러 정보 처리의 결합이 되지만, 통합된 것은 각 부분 시스템의 오토포이에시스 자체에서 가능한 자유도의 상호적 한정이라는 것으로만 있을 수 있음. 이니셔티브를 취할 수 있는 것은, 또 쥐고 있는 것은 에콜로지 운동�� 활동들이고, 또한 이 활동을 백업할 수 있는 것은 매스미디어. 그러나 문제의 정식화와 문제의 해결 사이에는 의연하게 구조적인 거리. 어떤 기능 시스템도 자신의 행동 방식에 반응하는 것이 가능. 예를 들면 정치는 레토리칼에, 경제는 가격 인상에 의해서, 과학은 어떤 추가적인 지식에 의해 매 번 더욱 더 많은 알지 못함을 끌어 올리는 연구 프로젝트에 의해.
(2) 배제 문제  
- 루만의 시스템 이론은 첫째, 환경 문제를 기능적으로 분화한 근대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로 다룸. 둘째 기능적 분화라는 사회 구조가 야기하는 배제 문제를 중요시. 배제 문제를 『사회의 법』 최종장 최종절(1993, S. 582ff/734~738페이지)에서 제기한 이래 반복해서 다룸. 세번째 근대 사회에 있는 개인의 위치 문제도, 이 두번째 문제의 문맥 속에서 간단하게 지적.
- 루만은 근대사회의 배제 문제를, 사회학의 기존 개념 틀을 다시 짠 위에 다룸. 관계된 사회학의 이론 문맥에 대해 간단하게 다루자면, 록우드는 “규범적 기능주의”에 서있던 파슨즈의 사회 시스템 이론에 대해 처음부터 극히 비판적이었지만, 그는 파슨즈의 사회 시스템 이론에 대한 비판, 그 중 사회 변동론에 관한 비판의 함의를 검토한 논문에서, 사회적 통합과 시스템 통합이라는 구별을 도입. 그에 의하면 사회적 통합에서는 “사회 시스템의 행위자들(actors) 사이의 질서 있는 관계, 혹은 컨플릭트에 충족한 관계”가 문제인 것에 대해, 시스템 통합에서는 “사회 시스템 부분들(parts) 사이의 질서 있는 관계, 혹은 컨플릭트에 충족한 관계”가 문제. 이 구별을 이어 받은 사회 시스템 이론에 비판적인 사회학자들은, 예를 들면 『후기 자본주의에 있어서 정당성 문제』 이후의 하버마스가 그랬던 것처럼, 사회적 통합이라는 문제에 중점적으로 맞붙는 것.
- 루만은 록우드의 시스템 통합은 분화한 시스템의 내적 관련이라는 문제이고, 사회적 통합은 심적 시스템(개인들)과 사회 시스템과의 관계 문제로 재해석. 전자의 분화한 시스템들의 내적 관련에 대해서는 이미 다루었던 대로이고, 그 통합은 파슨즈, 나아가 록우드의 그것과는 다른 내용. 후자의 사회적 통합 문제에 대해서, 루만은 그것을 사회 차원에 있는 포섭(Inklusion)/배제(Exklusion)라는 구별 문제로 치환하고, 사회적 통합 문제로 다룰 수 있는 문제를 사회가 수행하고 있는 포섭/배제라는 보다 심각한 구별 문제로 확장. 덧붙여 포섭이라는 개념은 이미 파슨즈가 개인들을 사회 시스템의 멤버로 받아들인다는 의미로 사용했지만, 루만은 파슨즈의 포섭은 반대 개념인 배제를 간과한 포섭에 불과하다는 것을 특히 강조. (1995a, S. 237-242; 1997, S. 618-621)
- 루만은 포섭을 이-측면-형식으로서의 형식으로 다루고, 그 내측에 있는 포섭은 사람이 인물로서 사회적으로 고려될 찬스. 반대 측이 배제. 사람이 사회적으로 배제된다는 것은, 무엇보다 그 사람이 일정 커뮤니케이션에서 배제된다는 것이고, 커뮤니케이션 파트너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것.
- 이-측면-형식으로, 배제가 가능한 경우에만 포섭이 있음. 사회적 응집성은 통합되지 않은 사람 혹은 집단이 있어야 처음으로 눈에 보여지는 것. 포섭의 조건이 사회적 질서로 특정화 되는 것에 따라, 그 역에 있는 배제된 사람도 또한 지정. 포섭/배제라는 형식은, 역사, 문화적 문맥 속에서 다양하게 제도화.
- 근대 사회에는 여러 포섭/배제의 제도화가 존재. 여기서 다루는 것은 사회의 제1차적 분화라 구조에 관계하는 포섭/배제. 조직은 포섭/배제라는 구별에 의해 처음 가능하게 되는 사회 시스템이지만, 조직 수준의 문제도 여기서는 제외다. 사회의 어떠한 분화 형식에서도 포섭의 규제는 각 부분 시스템에 위탁되고, 기능적 분화에서는, 개인들은 역시 특정 부분 시스템에 배치되지 않고서는 어떤 기능 시스템의 커뮤니케이션에도 참가하는 것이 불가능. 사회의 편에서 말하자면, 사회는 개인에 더해지는 사회적 신분을 부여하지 않고, 사람이 무엇으로 ‘있다’는 것을 출신이나 신분 자격에 근거로 정의하는 것은 아님. 근대사회의 포섭은 언제나 기능 자체에 고도로 분화(차이화)된 커뮤니케이션 찬스에 의존.
- 여기서 원칙적으로는 각자는 다음과 같이 있어야 할 것이라 전제. 각자는 법적 능력을 갖고, 경제 시스템에 참가하고, 통화 소득을 얻는 것이 가능. 각자는 대부분 정치 선거를 통해 정치에 참가하는 것이 가능. 대부분 초등 교육을 종료. 최소한의 사회적 급부, 질병 간호, 규칙에 따른 매장 등등의 청구권을 가짐. 허, 인가에 의존하지 않고 결혼할 수 있고, 종교적 신앙의 자유를 가짐. 이러한 포섭에 참가할 찬스를 이용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 책임은 그 개인. 근대사회는 이러한 방식으로, 우선은 어느 쪽이라 해도 포섭이라는 형식의 다른 쪽에 있는 배제를 사회 구조적 현상으로 인식하는 것을 회피. 여기서는 배제 아닌 포섭, 인간은 모두 사회에 포섭된다는 사고 방식이 전제.
- 루만은 그러한 배제 없는 포섭이라는 사고 방식의 문제점을 다음과 같이 지적. 배제 없는 포섭이라는 사고 방식을 취한다면, 예를 들면 종과 류에 따라서 이뤄지는 오랜 구분의 논리(예를 들면 그리스인과 바르바로이) 같은 전체주의 논리(eine totalitäre Logik)가 필요하게 됨. “전체주의 논리는, 그것에 반대하는 것의 제거를 요구한다. 이제는 처음으로 모든 인간이 인간이 돼야만 하는 것이고, 인권을 부여 받고, 개개 찬스를 제공받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한 전체주의적 논리는 결과로서는 시간의 논리가 되는 것처럼 생각된다. 사람은 생활 조건의 차이를 무시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지만, 이것은 문제로서는 시간에 관계 맺게 된다. 한 편에서는 사람은 변증법적인 발전을, 경우에 의해서는 혁명적인 조력에 의한 그것을 기대한다. 다른 한편으로 사람은 양적으로 증가하면 분배도 개선될 수 있다고 가정해서 성장을 목표로 한다. 혹은 방치 되는 사람들이 지연을 되돌리는 것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 ‘개발 원조’나 ‘사회적 원조’의 노력을 강화한다. 전체주의적인 포섭 논리의 내부에는, 개개의 배제는 ‘잔여’ 문제로서 ��면화되지만, 잔여문제라는 것은 전체주의적 논리를 의문시하지 않는 것 같은 카테고리화인 것이다.” (1997, S. 626)
- 루만은 포섭의 새로운 질서가 개인들의 자기 이해의 극적 변화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에 주목. (1985 특히 S. 423ff.; 1989, S. 149-258; 1997, S. 626f) 구세계에서 포섭은 사회적 포지션에 의해 구체화되고, 기대들이 적지 않게 이루어질 가능성이 포지션의 규범적 기준에 의해 주어짐. 구세계는 어떻게 해도 사람은, 실존 그 자체가 가상에 기초를 두고 있다는 상황을 고려에 넣을 필요가 없음. 오늘날에는 이와는 대조적으로, 사람은 자신이 누구인가를 설명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 사람은 타자가 누구인지를 이해하는가에 대해 그 타자가 알고 있을 지를 고려해야만 하고, 타자가 자신을 얼마나 올바르게 평가하는지를 탐색하기 위해 테스트 시그널을 보내야만 함. 이러한 상황이 더욱 전형적. 이로부터 많은 것의 ‘그 때문에’라는 사태가 생겨남. 그 때문에 사람은 ‘교양’, 혹은 자신이 갖추고 있는 능력을 보이는 시그널을 필요. 그 때문에 ‘동일성’이 문제가 되고, ‘자기 실현’이 문제. 그 때문에 문자는 ���체적-심적 실존과 ‘사회적 동일성’을 구별. 그 때문에 사람은 자신이 누구인가를 본래 아는 것이 가능하지 않고, 자신의 기도가 승인 받을 지를 찾아내야만 함. 그 때문에 사람은 신변에서, 자신의 성향과 약점을 알 것이고, 받아 들여진 친밀성과 사회적 관계를 탐구하고, 중요시. 이에 조응해 개인에 관한 의미론은 변화.
- 그런데 사회는 포섭으로 사회적 제한의 해체를 구하는 ‘동일성’, ‘해방’, ‘자기실현’과 같은 커뮤니케이션 테마를 제공해야만 하지만, 사회가 개인에 위임된 이 빈 곳을 개인이 어떻게 이용하고, 개인이 공공적으로 선언되는 요구들을 충족시키는 자기 자신의 유의미한 관계를 어떻게 발견하는 것이 가능한 것인가를, 사회는 미결정으로 놔 둠. 사회는 다행스럽게 미결정으로 해 둔다고 말해야만 함. (1997, S. 805) 그렇기 때문에 그 결과, 오늘날에는 사회에 있는 개인의 지위라는 문제, 다른 말로 하자면 개인의 개(체)성이라는 문제가, 새로운 모습을 가지고 개인에 압력. 루만은 이 문제를 환경 문제와 배제의 문제에 이어 근대 사회의 제3의 구조적 귀결 문제로서 다룸. 여기서는 지적만 하고, 다시 배제 없는 포섭, 인간 사회로의 포섭이라는 사고 방식으로 돌아 감.
- 포섭의 의미론은 근대 사회의 공시적 기억. 그러나 이 포섭의 의미론은, 포섭의 조건들을 주제화 하지만, 배제에 대해서는 기껏 경고적 예로 보이는데 불과하고, 배제를 사회적 현실의 부분으로 거기에 부합하는 면밀함을 가지고 기술하지 않음. 배제/포섭이라는 구별이 사회학 이론에서는 오늘날에도 언제나 무시되고 있는 것에 나타난다고 루만은 보았음.
- 근대의 포섭의 의미론은 18세기 인권이라는 공준에 의해 도입되었지만, 그 선봉은 사회의 이전 분화 형식에 향해져 있었고, 그에 있어 동시에 모든 기능 시스템의 포섭 조건이 하나로 묶였었고, 그 때 인권에 의해 차이에 중립적인 ‘인간적’ 원리가 주장되었던 것.
- 이 ‘인간적’ 원리에 기반한 인권에 대해 이미 마르크스는 『자본론』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음. “노동력의 매매가 그 한계 속에서 행해지는 유통 또는 상품 교환의 측면은, 실제 천부의 인권의 진짜 에덴이었다. 여기서 지배하고 있는 것은 단지 자유, 평등, 소유, 그래서 벤담이다.” 마르크스를 닮아 루만은 이 문장을 비밀리에 염두에 두고, 그것을 경제만이 아니라 다른 기능 시스템에도 적용해 다음과 같이 씀. “자유와 평등이라는 것은 지금, 모든 제한과 모든 불평등이 개개의 기능 시스템의 코드와 프로그램에 의해 확정되고, 이에 대한 전체 사회적 지령은 없기 때문에, 자유와 평등이라는 것은 게다가 또한, 누구라 할지라도 타자에 대해 타자의 행위가 최종적으로 무엇에 의해 결과를 얻는 것인가라는 것을 앞에 두고서 말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음을 이유로 한다.” (1997, S. 628) 여기서도 포섭 형식의 다른 편에 있는 배제가 명시적으로 지시되지 않은 채로 지니고 다닌다고.
- 인권이라는 이데올로기에 따른다면, 근대 문제는 이 권리가 아직까지 실현되지 않는다는 것, 특히 아직까지 지구상의 어디에서도 충분하게 실현되지 않았다는 것. (1997, S. 628f.) 확실히 이것은 우선 해야 할 결정적 중요 문제. 루만에 의하면 주의를 요하는 것은, 모든 인간의 사회로의 완전한 포섭이라는 요청을 이상화 해버릴 때, 중대한 문제들이 존재해서는 안되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질 위험이 생겨난다는 것. (1997, S. 630) 그렇기 때문에 사회라는 시스템의 기능적 분화와 함께, 포섭과 배제 관계의 규제는 사회의 부분 시스템인 각 기능 시스템에 위탁되고, 이 점에서 기능 시스템을 감시하는 것 같은 중심 기관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 정치는 그러한 기능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겠지만, 실제로 그러한 기능을 충분하게 부여하지 않음. 개개의 사람에게 화폐가 쓸모 있는가 또한 얼마 만큼인가는 경제 시스템에서 결정. 사람이 어떠한 권리 요구를 어떠한 성공의 예상의 것으로 주장할 것인가라는 것은 법 시스템의 일. 개인의 기능 시스템으로의 참가는 이러한 조건에서 가능하기 때문에, 완전한 포섭 상태라는 환상에 몸을 맡기는 것은 불가능 실제, 문제가 되는 것은 단지 다소라는 문제, 기대와 현실의 불가피한 괴리라는 문제로 정리될 수 없음.
- 루만의 배제론에 따르면 더욱 무시될 수 없는 것은 기능 시스템의 주변에서 배제 효과의 연쇄적인 누적이 수행된다는 사태. 기능적 분화에서 배제는 이 수준에 있는 ‘사회의 부정적인 통합’으로 이어짐. “그렇다면 어떤 기능 시스템으로부터의 사실적인 배제- 노동이 없고, 화폐수입이 없고, 신분증명서가 없고, 안정적인 친밀 관계가 없고, 계약이나 사법적인 권리 보호에 접근할 수 없고, 선거 캠페인이나 카니발을 구별할 가능성을 갖지 않고, 독서가 가능하지 않고, 의료나 영양의 부족-는 다른 시스템들에서 달성가능한 것을 제한하기 때문이다.” (1997, S. 630) 게다가 이러한 연쇄 메커니즘에 의해 기능 시스템에서 배제된 사람들은 많은 경우 분리된 곳에 거주하는 것을 부득이하게 되고, 그에 의해 포섭되는 사람들로부터 멀어져 ‘감춰짐’.
- 루만 시스템 이론은 근대사회가 구조에 의해 수반하는 이러한 사태를 폭로하기 위해 포섭/배제라는 구별을 도입. 단지 이 구별의 적용에서, 예를 들면 논문 「포섭과 배제」(1995a, S. 263f.)에서처럼, 주의해 두어야 할 것.
“어떤 경우나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또한 적합하지만, 사회를 단 하나의 구별에 기반해 기술하려는 시도는, 대조의 비현실적인 과장으로 이어진다. 포섭과 배제의 차이는 경험적으로는, 모든 인물을 한 쪽 또는 다른 쪽으로 분배할 수 있을 정도로 명료하게 주어지지는 않는다. 경계 케이스들이 존재하고, 예를 들면 벌이가 충분하지 않은 임시 노동, 어떻게 해도 화폐 이전을 따라가는 임시 노동이 있다. 그래서 법 시스템으로의 접근이 완전하게는 배제될 이유는 없지만, 그러나 곤란하게 되는 것, 약간의 사례 타입에 한정되는 케이스들이 있다. (브라질의 대도시 빈민가) 파벨라에서도, 전염병이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가능한한에서 신생아에게 예방 접종이 수행된다.”
“그러나 이미 이는, 조응하는 개념적 장비가 사용될 때만 다뤄질 수 있는 경험적 연구의 세부 항목 문제다. 여기서 시도하려는 일반적 개관에서 특히 중요한 것은 사회적 분화 이론을 조응하는 개념 틀을 통해 풍부하게 하는 것이고, 사회는 성층적 혹은 기능적 분화라는 지배적 유형론의 퍼스펙티브에서 충분히 기술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방기하는 것이다. 포섭이라는 형식과 이 형식에서 부여되는 배제는 사회에 있는 시스템 형성의 형식과 밀접하게 관련하고 있지만, 그러나 추가적으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 그런데 루만의 견해에 의하면 “사회학자들은, 전형적으로는 기능시스템의 참가에서 인구 대부분, 아니 압도적인 부분의 배제라는 이 문제를, 계급 지배의 문제 혹은 사회적 계층 형성의 문제로 정의하는 경향이 있다. 사회학자들은 거기서, 여전히 그들 자신 선입견에서 나오는 통상의 추론 방향 속에 계속 머물러 있다. 그러나 그것이 또한, 인권의 의미론 경우에도 참으로 같은 것처럼, 문제를 과소 평가하고, 결국 끝나지 않는, 명찰 없는 호소라는 결과가 되었다. 과거의 ‘성층적 사회에 있는’ 층 형성은 고유의 포섭과 배제의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다. …… 오늘날에는 배제 문제는 이미 순수하게 양적으로 별도의 무게를 가지고 있다. 배제 문제는 다른 구조를 가지고 있다. 배제 문제는 일탈 증식이라는 기능특수적 형식, 포지티브 피드백에 기인하고 있고, 또한 기능 시스템들의 다중적 상호 의존성이 배제 효과를 강하게 한다는 것에 기인한다. 그런 한에서 배제 문제는 사회라는 시스템의 기능적 분화의 직접적인 귀결이다.” (1997, S. 631)
- 통합은 통합되는 것에 있어서는 선택의 자유도 한정이라고 이해할 때, 배제는 포섭보다도 더욱 강하게 통합 작용. 루만의 사회 진단에 의하면, 오늘날의 “사회는-성층화 체제와는 참으로 반대로-상층에 있는 것보다도, 하층에 있어서 보다 강하게 통합된다. 사회의 질서는 그런데 그 반대에 비통합으로, 즉 기능 시스템들의 떼어내짐(Entkopplung)에 기반하고 있다.” (1997, S. 631f.) 그래서 이는 또한, 층의 형성이 근대사회의 제1차적 구조에 대해 설명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러나 그것이 개인 생활의 명운을 좌우하고 있는 이유.
- 루만의 포섭/배제론에서 도출되는 결론. “근대사회는 사실 고도로 통합되었지만, 그러나 그것은 배제 영역에 있어서 만이고, 부저적-통합으로서 만이며, 특히 컨센서스 없이 그렇다.” (1996, S. 229)
- 이렇게 루만은 사회학자의 통상의 통합이론을 전도. 루만은 ‘20세기 지식인의 토의’에서 공감을 가진 사고 방식, 즉 “사회로의 포섭은, 어떤 이성적인 사람에게도 이성적이라 보여지는 것을 선택하는 공공성의 논의에 의해 달성돼야 한다는 사고 방식”에 대해 의문. “이 제안의 매혹은, 그 사람들이 공공성을 개인으로 이뤄져 있다는 것에서 출발해야지만 늘 설명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만일 또한, 배제는 참으로 고려에 넣지 않는다는 것에 의해 설명될 수 있는 것이다.” (1995, S. 247)
- 사회학의 주류에서는 주변부에 있지만, 사회적 배제라는 문제와 다양한 종류의 배제가 여러 어프로치로 열심히 연구. 그러한 연구는 정도 차는 있지만 대개의 경우, 미셸 푸코의 차별과 배제 이론의 영향을 받았고, 포스트 구조주의 배제 연구라는 개괄적 이름. 이러한 연구는 특히 집단 내지는 집합체의 동일성 형성이 길항 관계로 항쟁적 언설과 실천들에 의해 수행되는 것, 그 때 이 형성 과정은 배제의 영역과 배제된 사람의 창출과 불가피 하게 결합한다는 것에 주목. 그래서 이 연구에서는 또한 이 과정에서 작용하는 힘과 사회적, 문화적인 헤게모니 투쟁의 분석이 중점에 놓이고, 그러한 분석은 넓은 의미에서 정치적인 것의 분석으로 이해. 이러한 배제 연구와 비교한다면, 루만의 포섭/배제론에는 후술한 것처럼 동일성 그 자체 문제에서 수행되는 것, 동일성 형성 과정의 주제적 분석은 수행되지 않음. 또한 배제 문제를 정치적 분석으로 수렴하는 경향은 보이지 않음. 오히려 포섭/배제 문제를 기능 시스템들로 사회가 분화하는 근대사회의 기초 구조와 결합되어 해명하는 것이, 시스템 이론적인 루만 사회 이론의 특징.
- 그 만이 아니라 루만의 배제론은 세계 사회는 세계 인구의 대부분을 기능 시스템에 포섭할 수 없다는 사실, 기능 분화가 생겨나기 때문이라도 결과적으로는 그것과 양립할 수 없는 포섭/배제의 차이의 첨예화라는 사태에 주목. 나아가 루만은 입수할 수 있는 넘칠 정도의 자료를 통해, 지구상의 많은 지역에서 포섭/배제의 차이는 기능 시스템의 ‘메타 코드’로 작용하고, 그것이 지금도 참으로 모든 기능 시스템의 코드를 자기에 종속시키고, ���능 시스템의 ‘코드를 신하화(mediatisieren)’한다는 테제를 제출. (1993, S. 583/735페이지; 1997, S. 632)
- 법 시스템을 예로 든다면, 포섭/배제의 차이가 메타 코드의 지위를 점할 때에는, 법과 불법이라는 코드 구별이 각각 활동할 것인가 아닌가, 또한 이 구별이 법 시스템에 내재적 프로그램에 따라 다뤄질 것인가 아닌가라는 것은 무엇보다 첫째로, 그것에 선행하는 포섭/배제라는 필터에 의존. 이 결과로 배제된 사람에게는, 법과 불법 문제는 배제에 의해 짊어지고 있는 것에 비하면, 조그만 의미밖에 가지지 않는 것. 그들은 적법, 혹은 비적법으로 다뤄지고, 그것에 대응해, 그들은 상황과 찬스 차제로 적법, 혹은 비적법으로 행동. 그에 더해서 중요한 것은 포섭/배제라는 메타 코드에 의해 기능 시스템의 코드의 신하화가 수행되는 경우, 포섭되어져 있는 사람에게도 역시 같은 것이 적합하다는 것. 즉 군대는 말할 것도 없이, 정치가도 관료도 경찰관도 법에 준거해 행동할 것인가 아닌가를 자신의 재량에 따라 결정. 그에 의해 법 질서의 하부가 무너짐. 이 무너짐은 정말 또한 법의 오토포이에시스 전체의 폐기는 아님. 그렇기 때문에 적법한 행동/비적법한 행동 선택이 배제된 사람 측���서 만이 아니라, 포섭된 사람 측에서도 선호와 재량에 맡겨진다고 한다면, 기대의 불확실성은 현저하게 높아짐. 법의 사회적 기능에서 결정적 기대의 확실성은 사라짐. 이렇게 포섭/배제라는 구별이 지배하는 경우, 법의 코드화와 프로그램화의 차이는, 다른 선호들의 우선에 의해 기능하지 못하게 되거나 약화. (1993, S. 583f./735페이지; 1997, S. 632)
- 정치 시스템도 경제 시스템도 동일하게 적합. 그렇지만 기능적 분화에서, 사회는 포섭의 영역 보다도 배제 영역에서 더욱 강하게 통합.
- 루만의 견해에서는 사회에 대한 오늘날에도 지배적인 선입견, 즉 “사회는 인간의 컨센서스에 의해, 즉 그들의 의견 일치와 설정 목적의 상보성에 의해, 구성되어져 있는 것은 아니라 해도 적지 않게 통합되어진다”고 하는 선입견은, 사회 이론의 신구축을 저해하는 인식론적 장해. 그 뿐만 아니라, 윤리적, 규범적 사회 표상은 참으로 거기서 사용되고 있는 구별에 의해, 거기로부터 배제된 사람들을 묶음. 규범적 사회 개념은 때때로 배제라는 사실과 배제된 사람을 직시하지 않음. 때문에 루만의 사회학 이론에서는 윤리학적, 규범적 사회 개념은 파기돼야만 함.
- 루만은 이미 『사회학적 계몽 제1권』(1970)에서, 아리스토텔레스와 그를 계승한 사람들의 윤리학적 사회 이론에 대해 지적. “사회 이론은 실천 철학으로 파악되고, 실천 철학의 기대는 배신하는 사람들-즉 야만인(Barbaren), 이교도, 범죄자, 광신자, 미개인, 무교양인-의 도덕적 책임을 추궁하는 카테고리들과 절차를 전제로 하고 있다.” (1970, S. 139)
- 또한 『사회 시스템』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 “사람은 그렇기 때문에 사회 시스템 구성의 근본 문제가 정말로 해를 가져오는 것 혹은 적응의 용의가 없는 것을 제외하는 것(Eliminierung)에 있는 것인가 아닌가, 숙려해보지 않으면 안 된다. 혹은 강하게 정식화를 한다면, 사회적 질서를 보이코트하는 것을 보이코트하는 것으로 파악하는 것에서 충분한 것일까? 그렇지 않고, 사회적 질서는 도대체 어떻게 해서 가능한 충분히 있는 그러한 것인지를 무엇보다도 우선해 알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닐까?” (1984, S. 165/179페이지)
- 셋째로 루만은 사회분석에 오토포이에시스론을 최초로 도입했던 소책자 『복지국가에 있는 정치이론』(1981)에서 “포섭이 실현되는 데 대해, 사회적 생활에 참가하지 않고, 혹은 ���변적으로 밖에 참가하지 않는 집단들은 사라져 간다.”(S. 25)라 쓰고는, 각주에서 다음과 같이 보충. “그러니까 또한, 개발 정책에 있어 이러한 주변성의 의식적 유지, 사회적 급부의 참가에서 주민 집단들의 통째로의 제외(Auschließung)를, 배제(Exklusion)라 부르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이에 관련해 나올 수 있는 문제는, 유럽에 있는 근대적 생활 조건들의 진화는 점차적인 포섭으로 특징 짓는 것이 가능한 것인가 아닌가, 다른 지역들의 계획적인 개발과 계획적인 개발 촉진은, 이것과는 반대로 잠정적 배제들을 필요로 하는 것인가 라는 질문이다. 다른 한 편으로 유럽의 역사도 또한, 배제들과 전혀 무관계한 것은 아니다.”
- 넷째로 기능 시스템을 최초로 다룬 『사회의 경제』(1988, S. 268/268페이지)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 “지불이라는 것이 가능하지 않은 사람이 있다. 그래서 모든 기능 시스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여기에도 또한 포섭은 동시에 배제라는 것이 적합하다”
- 근대 사회의 배제 문제는 루만의 시스템 이론에서 1990년대에 당돌하게 나타나는 것이 아님. 기능 시스템의 연구의 진전과, 포섭/배제라는 이-측면-형식의 시점의 확립, 나아가 근대 사회의 하층에서의 ‘부정적 통합’의 발견, 이러한 결과로 점차 배제론이 이론적으로 정식화. 그 때 오랜 시간 걸쳐 수집했던 배제의 경험적 사실이 일제히 동시에 제시. 여기서는 상세하게 다루지는 않을 것. 오히려 여기서는 배제에 관련한 두 가지 이론적 문제, 즉 사회는 커뮤니케이션으로 이뤄졌다는 그의 규정과의 관련, 내지 기능 시스템의 커뮤니케이션으로 가능하게 되는 신체 관련 사항과의 공생적 메커니즘의 파괴를 간단하게 다룰 것.
- 루만은 외부적 방문자라는 입장에서 브라질 대도시의 체험과 관찰을 돌아보는 형태로, 배제 영역에서 인간은 역시 인물이 아니라, 언제나 신체로 다뤄진다고 말함. 즉 배제 영역에서, 사람은 다른 경우 보다 더욱 크게 자신의 신체를 느끼고, 다른 경우 이상으로 신체로 살아가고 있다고. 배제 영역에서, 우리가 인물로 다루어지는 것은 모두 후퇴하고, 그래서 또한, 태도에 영향을 주는 것을 통해 사회적 효과를 얻는다는 어떠한 시도도 후퇴. 여기서는 의식의 주의와 커뮤니케이션에 관련한 중점은 인물로부터 신체로 옮겨 짐. 인물로부터 신체로의 이행은, 사회는 모든 커뮤니케이션으로 이뤄지고, 모든 사회성을 포괄한다는 테제에 저촉해 그렇게 보임.
- 루만의 해석(1995a, S. 262f.)에 의하면, 이 이행이 사회성이 소실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님. 사회성이 다른 형태를 받아들이는 것. 커뮤니케이션에서는 정보와 전달의 구별이 중요하지만, 이 이행에서는 구별의 가지치기가 이뤄지고, 구별은 정보로의 관심으로 극단적으로 감축. 지각 특히 속도가 중요. 의미 제안의 수용 혹은 거부에 관한 언어의 예스/노의 코드는 후방으로 물러나고, 그것을 대신해, 지각의 훈련에 의해 실현되는 것 같은 사건에의 대응 템포가 중요성을 가짐. 단지 이은 물론 배제 영역에서는 순수 생명이, 접근 불가능한 다른 가치에 비해 높게 평가된다는 것은 아님. 언제나 배제 영역에 있는 사람들 자신의 리스크 준비라는 점에서, 또한 타자의 생명의 존중이라는 점에서도, 역으로 있을 지도 모름. 그렇다고 하더라도 타자가, 그래서 사람 그 자체가, 인물보다도 신체로 중요하게 되어버릴 때, 신체와 생명에서의 위험은 보다 크게 될 것.
- 커뮤니케이션에 관한 중점이 인물에서 신체로 이행한다는 것은, 루만의 커뮤니케이션 미디어 이론에 따르면, 심볼에 의해 일반화되어 있는 커뮤니케이션 미디어와 이 각 미디어에 나뉘어 있는 신체 관련 사항과의 공생적 관계가 사라져 버린 것. 이 장에서 루만의 사회 이론을 구성하고 있는 세 가지 개별 이론(커뮤니케이션 미디어 이론, 사회 진화 이론, 사회 분화 이론) 중, 사회 분화의 이론의 일부분(기능적 분화)밖에 다루지 않지만, 여기서 말하는 공생적 관계를 이해하는 것에 필요한 한 커뮤니케이션 미디어에 대해 다루자면, 어떤 커뮤니케이션 미디어도, 예를 들면 언어 기호와 같은 일련의 일반화된 심볼만으로 이뤄지는 것은 아님. 커뮤니케이션 참가자는, 모두 신체적 생체적 존재이고, 그로부터 조건과 제약들의 지배하에 있음. 신체성이라는 조건은 모든 참가자에 공통하는 조건. 커뮤니케이션에서는 이 신체성이 고려돼야만 하지만, 그 필요성을 루만은 공생(Symbiosis), 이것을 표현하는 수단을 공생적 심볼이라 불렀음. 또한 일반화된 심볼의 수준과 공생의 수준 관계를 규제하고 있는 것을 공생적 메커니즘. 공생적 심볼은 커뮤니케이션이 신체성에 의해 자극(irritieren)되는 방식, 그래서 구조적 커플링의 효과가 커뮤니케이션 시스템에서 처리, 가공되는 방식을 질서화. 모든 커뮤니케이션 미디어는 공생적 메커니즘을 성장. 각자의 조건들에서, 그러한 코드의 자립화, 일반화, 특정화의 정도에 따라 성장.
- 한 편으로, 모든 커뮤니케이션 미디어에 공통적인 공생적인 기초. 예를 들면 생체가 정보 처리에 관련해 가지고 있는 능력의 조건과 제약. 예를 들면 특별하게 심볼에 의해 일반화된 커뮤니케이션 미디어에서는, 그러한 개개에 대해서만 특별하게 관계하는 특별의 공생적 메커니즘이 있음. 이러한 심볼에 의해 일반화된 커뮤니케이션 미디어가 발달하는 것은, 언어의 코드는 긍정과 부정의 양방에서 같게 열리기 때문에, 언어라는 미디어만으로는 커뮤니케이션에 있는 의미 제안의 상대에 의한 수용 혹은 거부를 조금도 조종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기 때문. 의미 제안이 수용되는 것 같은 동기 부여를 특별하게 조건 부여하기 위해서는, 언어를 보축하는 추가적 장치로서, 권력, 화폐, 진리, 사랑이라는 심볼에 의해 일반화된 커뮤니케이션 미디어가 형성되었다는 것. 근대 사회에 있는 기능 시스템의 형성과 발전은 이러한 미디어에 지탱.
- 진리 (과학 시스템)의 경우 공생적 심볼은 신체적으로 가능한 지각과 관련. 사랑 (가족이라는 기능 시스템)의 경우에는, 성이 특별한 관련. 화폐 코드(경제 시스템)는 욕구 충족에 수반되어 지불이 되어진다는 것과 관련, 권력(정치 시스템)은 물리적 폭력에 대해 특수한 관계. 루만은, 신체성에 관한 사항은 공생적 메카니즘에서 과학, 가족, 경제, 정치의 각 기능 시스템에 할당되고, 각각의 커뮤니케이션 미디어의 조건화 속에 맞춰져 있다고 본 것. (1973b; 1975a, S. 61-65; 1997, S. 378-382)
- 그렇지만 주의와 커뮤니케이션의 중점이 인물에서 신체로 이행해 버리는 배제 영역에서는, 심볼에 의해 일반화되어 있는 커뮤니케이션 미디어와 각각으로 할당된 신체적 사항과의 결합을 잃어버림. 심볼과 커뮤니케이션 미디어의 코드로의 소급을 통해 사회적으로 어떻게 훈치되는 물리적 폭력, 섹슈얼리티, 충동적 제1차적 욕구의 충족이 다시 해방되어 드러남. 그에 의해 많은 전제에 기반한 사회적 기대는 무너져 버리고, ‘문명화를 베푸는’ 커뮤니케이션은 어려워짐. 여기서 단기적 시간적 지평, 상황의 직접성, 신체 관찰이 중요성을 늘리고, 시간적 지속을 예정한 호수적 관계의 기대는 성립이 어려움. 루만의 기능적 분화론과 포섭/배제론에 의하면, 이것이 기능적으로 분화한 사회가 수반하는 배제의 첫번째 부차적 효과.
- 루만의 기능적 분화론에 의하면, 기능적으로 분화한 사회의 근본적 한계, 즉 각 기능 시스템은 관할 기능에 관해 배타적인 사회 보편적 요구의 구조적 귀결이, 참으로 배제 영역에 집중적으로 노정. 특히 곤혹스러운 것은, 이 문제를 개개의 기능 시스템 내부에서 해결한다는 것은 기대 불가능. 한쪽에 가능한 배제라는 배경을 빼놓고 포섭을 생각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고, 다른 한편으로 배제의 상호적 강화라는 ���제는 개별 기능 시스템으로 돌아가지 않기 때문. 그 때문에 언제나 사회적 원조의 수준, 개발 원조의 수준에서, 기능 시스템의 배제 결과에 관계된 어떤 새로운 제2차적 기능 시스템이 형성된다고 생각될 수 있음. 어떤 항의 운동이 오토포이에틱한 부분 시스템으로 형성될 수 있는 것처럼 (1997, S. 864f.) 그러나 원조의 노력에서 다른 자원의 의존은, 경제적이나 정치적, 또한 종교적으로 보아도, 매우 큼. 원조에 관계해 이미 사회적 하위 시스템이 형성되는가, 그것도 존재하는 것은 상호 행위와 조직 수준에서 개별적으로 광범위하게 수행되고 있는 노력인가, 이것도 지금 판별을 내릴 수 없음. 문제가 되어 밝히고자 하는 것은 이미 전통적 의미의 자선과 빈민 구제가 아님. 그것이 아니라 언제나 구조적 변화를 겨냥한 노력. (1997, S. 633f.)
- 루만은 이 노력 중 생성중인 하나의 기능 시스템이 관찰될 수도 있다고 생각.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기능 시스템이 배제에서 생겨난 문제를 어느 정도까지 해결할 수 있는가는 예측될 수 없음. 또한 루만의 관점에서는, 기능적 분화 뒤에 올 수 있는 사회 분화 형식, 기능적 분화를 대신할 수 있는 실효적인 사회 분화 형식은 알 수 없음. 지 그러나 다른 한편 포섭과 배제가 21세기의 주도 차이일 수 있을 것이라 예측. (1996, S. 228)
“사회적 분화 형식의 진화적인 있는 그러함의 위험함은, 그 중에서도 특히 그 형식이 포섭과 배제의 차이를 다루는 양식, 또 대부분 통합되지 않는 다른 포섭의 안정화를 위해 그 형식 자신의 형식들을 이용하는 양식에서 나타난다. 잊지 말아야 하는 건, 그 때 거기서 중요한 것은, 배제 영역에서 포섭 영역으로의 피드백을 피할 것인가, 어떻게 피할 것인지이고, 또한 피드백을 배제 영역에서 통상의 진화 추세로, 즉 기능 시스템들의 구조적 드리프트로 교체하는 것이 가능한 것인가, 어떻게 교체될 것인가 라는 것이다.” (1997, S. 634)
- 루만의 사회 진단에 의하면, 기능 시스템들은 배제 이외의 문제에도 역시 기능 시스템들이 직접적 혹은 간접적으로 생겨난 결과에 대해 대처해야만 하고, 대처 행위를 본다면 ‘배제 영역에서 포섭 영역으로의 피드백’을 우려해야만 하는 것.  
(3) 사회의 자기 자극               
- 앞 절 (2) 용장성의 방기와 조절의 방기에서 다룬 것처럼, 사회의 기능적 분화에서 사회의 자극 가능성이 높지만, 자극 상태들의 조정을 담당하는 중심적 심급은 존재하지 않음. 사회는 자극 상태가 조정되지 않는 것에 또 한 번 자극되어 반응. (1997, S. 789) 사회라는 시스템의 환경에서 사회로 자극하는 것은, 최근 수 십년 사이 급격하게 증가할 수 있고, 그것은 참으로 사회 자신의 스크린에 자극 상태로 나타남. 이는 대부분 다음의 세 가지와 관련. (1997, S. 795-801)
(1) 기술 내지 과잉 인구에 의해 야기되는 에콜로지 문제들.
(2) 인구 증가 그 자체와 컨트롤 불가능한 인구 이동.
(3) 사람들의 기대들이 점차 개인화되고, 점차 ‘아��적(我意的, eigensinnig)’이 되고, 그것이 행복과 자기 실현으로 향해지는 것.
- 이는 모두 기능적 분화로의 이행에 의해 야기되는 근대의 사회적 진화의 직접적, 혹은 간접적 결과. 기능 시스템이 각기 자기 동태적으로 활동하는 데서 사회의 자극 상태 수위는 상승함에도 불구하고, 그 사이의 조정은 가능하지 않고, 기능 시스템의 상호 자극은 사회 그 자체의 자기 자극 상태로 누적. 이에 의해 사회라는 시스템과 그 환경 관계의 부전은 점점 눈에 띄고, 그러한 부전은 커뮤니케이션 문제로 점점 가시화. 그렇지만 해결책은 주어지지 않는 것. 기능적 분화는 그 작용들에 의해 환경에 강하게 개입하지만, 결과들을 취급하는 심급을 갖지 않음. 기능적 분화라는 사회 구조에서 유효한 제거 대��을 실행할 수 있는 것도 역시 개개의 기능 시스템.
- 그러나 기능 시스템에서 보이는 것은, 문제 해결의 직접적인 노력이 아니라, 수반된 상태의 수동적 반응, 구조들의 새로운 형성을 포함한 진화적 변화. 그러나 루만의 유고에 의하면, 이 후생적 진화 형태 속에는 ‘불의에 놀랄 만한 것’이 포함. “동일성 형성에 기여하고, 게다가 그 때문에 그것을 능가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을 것 같은 견고한 구별과 경계의 새로운 생성”(1997, S. 796). 그것은 화해와 융화가 국가적으로 달성되었다고 생각되는 지역에 에스닉한 구별이 재생하는 것에서 드러남. 마찬가지로, 보통 ‘세속화’로 다루어지는 근대 사회에 종교적 원리주의가 부활하고 있는 것. 이 두 가지 경우에 생겨나는 것은, 동일성 확신의 입각점을 하려는 도서화(島嶼化), 격리화, 소수파에 의한 포섭/배제-관계의 형성이고, 그 때 기능 시스템이나 기능 시스템의 조직을 요구하지 않음. 이슬람의 원리주의도 아메리카의 원리주의도, 지지자들이 자신을 동일시하는 전통으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하고, 거기서 사회적으로 중요한 것도, 전통의 서바이벌이 아니라, 언제나 대립을 구하는 반대파 집단의 새로운 형성.
- 이러한 구별의 추구에서 인종 구별이나 ‘젠더 트러블’이 역할 하지만,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은 외국인 증오의 상승. 외부자로의 증오는 인구 이동에서 영양을 받는 것이지만, 인구 이동은 그 자체 기능 시스템의 퍼포먼스 수준의 커다란 지역적 격차의 부차적 결과, 그것도 컨트롤 될 수 없는 부차적 결과.
- 그렇지만 이러한 모든 경우, “동일성이 문제가 되고 있기 때문에, 폭력도 또한 문제가 되고 있다. 그러한 자신 영역의 견고한 경계들은, 기능 시스템의 경계와는 전혀 합치하지 않는다. 그 경계들은 커뮤니케이션에서 강세를 넣어 표현되고, 게다가 바로 발동될 수도 있는 폭력 태세는, …… 실존적 앙가쥬망을 표시할 수 있는 아마도 가장 강력한 표현 수단이다. 자명하지만,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심리적인 사실들이 아니다. 개개인이 그 경우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는, 미지인 체이다. 폭력도 또한, 거추장스럽게 폭력은 공포를 가르치기 때문에, 제1급의 커뮤니케이션적 사건이다.” (1997, S. 797)
- 마지막으로, 위의 모든 경우에서 비-피자극 가능성(Unirritierbarkeit)을 과시하는 것이 중요. 비-피자극 가능성은 커뮤니케이션의 모든 다른 수준을 위한 해결책, 즉 윤리적인 원리나 단념 불가능한 가치들에 고집하는 이유의 해결책. 그러나 분명히 비-피자극 가능성이라는 전제에서는, 마찬가지 윤리적인 원리나 단념 불가능한 가치라는 호명으로 수행되는 아카데미의 논의는 이어지지 않음. 혹은 점점 통속적인 방식으로 이어져버리는 것.
- 윤리학에 대해 사회학의 입장에서 루만이 던진 의문, 가치에 관한 커뮤니케이션에 대해 루만이 수행하는 분석에는, 어느 쪽이건 루만의 견해에 의하면, “윤리학을 가지고는 확고한 토대가 획득되지 않기 때문에, 사람은 조정할 수 없는 지속적 자극 상태로부터 빙글빙글 돌아 ‘가치들’의 수준에서 받아들여지는 것으로 시도한다” (1997, S. 789) 이러한 가치에 관련해 진행하는 커뮤니케이션도 또한 증대. 그렇기 때문에 “가치들은, 가치 사이의 컨플릭트라는 케이스를 위한 규칙을 포함하지 않는다.”(1997, S. 799, 1997, S. 408f.) 안 좋은 건, 비-피자극 가능성이라는 전제에서의 절대적인 가치는 그에 대항하는 것을 반영한 가치이기 때문에, 그러한 가치의 지지자에 있어서는 양보의 여지가 거의 존재하지 않음. 파나티즘이나 펀더멘탈리��에서는 특히 현저함.
- 기능적으로 분화한 사회는, 자극 상태들이 조정되지 않는다는 것에 다시 한 번 자극되어 반응하는 사회. 그���서 “가치 컨플릭트도 또한 다시 자극 상태로, 그래서 자극 상태는 의사 결정 부담으로 전환된다. 동일성 규정에 이용되는 구별의 견고함, 윤리학의 원리 선언, 가치의 강인한 전가(Unterstellung), 이에 대해 기능 시스템은 다시 자극되어 반응하는 것이다.”(1997, S. 800f.)
- 사회는 이러한 문제에 어떻게 대처할까? 특히 기능 시스템은 실제로 어떻게 반응할까? 여기서 문제는 “불합동의 퍼스펙티브에서 사행(斜行)적인 테마화”라는 문제. 하지만 루만은 마지막 저작 『사회의 사회』에서 문제를 제기할 뿐, 구체적인 개별 수행 분석을 계속할 수 없었음. 이 부분은 다음과 같이 결론.
“사람이 그렇지 않아도 자극 상태에 과대한 부담을 짊어지고 있는 기능 시스템의 편에 서서, 모습도 변하지 않는 여기서 유일의 희망을 보는 경우에만, 사람은 자극 상태를 기대 구조로 변환하려는 기능 시스템들의 시도를, 각기 그것의 환경 문제에 대한 해결의 전망이 있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는 것이다. 오늘날 어느 정도의 낙관주의도 거기서 요구되는 것이다. 어떻게 해도 확실하게 떠오를 수 있는 것은, 기능들에 정위한 이 사회 분화 형식의 진화적인 있는 그렇게 됨을 지체 없이 정상화하는 가능성의 한계들이다.” (1997, S. 801)
- 『사회의 사회』가 출판된 것은 1997년. 그로부터 10년도 경과하지 않은 오늘날, 이 결론은 더욱 비관적인 방향으로 수정돼야만 함. 루만의 테제를 정리한다면, 사회와 기능 시스템은 자극 상태에 따라 ‘냉정’하게 ‘이성적’으로 반응할 수 없고, 2001년 9월 11일 사건 이후 현저한 것처럼, 자신의 비-자극 가능성을 과시하려는 위압과 협박의 커뮤니케이션의 응수가 에스컬레이트. 매스 커뮤니케이션은 그것을 증폭하고, 사회의 자극 상태를 불안의 커뮤니케이션 방향으로 이끄는 것. 이러한 사실에서 루만이 우려했던 ‘배제 영역에서 포섭 영역으로의 피드백’의 가능성이 결코 낮아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추측.
- 이번 장에서는 사회는 커뮤니케이션으로부터 이뤄진다는 규정으로부터 출발한 루만의 사회 이론 중, 기능적 분화에 초점을 맞춰 루만의 근대 사회론을 보았음. 하지만 루만의 사회 이론에서 각기 책 한 권에 해당하는 각 기능 시스템에 대해서는 거의 논급할 수 없었고, 기능적으로 분화한 사회 분석에 관해서도 그 기본 라인만을 다룸. 그렇지만 사회를 사회 시스템으로 다루는 루만의 시스템 이론은, 시스템 이론을 표방하고 있는 많은 용례와 달리, 이미 알려져 있는 것과 다른 표현으로 말을 수정하는 류가 아니라는 것을 보였음. 다른 한 편 그에 비한다면 기능적 분화의 귀결 문제에는 불균형한 정도로 많은 부분을 할애. 루만이 기능적 분화의 분석 귀결로 도출한 사회적 귀결은, 루만의 이론에 관해 이제까지 일본에서 넓게 유통되었던 선입견, 즉 루만의 사회 이론은 시스템 이론으로서 사회 테크놀로지이고, 테크노크라트의 이론, 사회와 조직을 디자인, 계획, 관리하기 위한 이론이고, 또한 현상 긍정적이고, 나아가 현존 지배 질서의 변호론이라는 선입견을 고칠 수 있는 좋은 재료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
- 서론에서 다뤘지만, 루만은 하버마스와의 1971년 논쟁서에서, 시스템 이론이 현상 긍정적으로 지배에 순응적이라는 비판에 대해, “나의 시도는, 세계의 시스템의 관계로부터 그래서 그것에 있어 변호와 비판의 무차별점으로부터 스타트한다”(1971, S. 402/480페이지)고 쓰고, 각주로 다음과 같이 보충. “나는 스타트한다고 말하고 있다. 만일 이 무차별점에 계속 머무는 경우에만, 반론은 다음과 같이 될 것이다. – 참으로 그것에 의해 현재의 위력으로 장비되어 있는 사회적 사실들이 우대된다” 근대사회가 구조적으로 수반한 사회적 귀결은, 변호와 비판의 무차별점으로부터 스타트한 루만의 시스템 이론의 연구 결과.
- 사실 근대사회가 구조적으로 수반하는 사회적 귀결 문제는, 루만의 사회 이론에서 위의 기능적 분화 이외에도 많은 경우에서 다뤄 짐. 여기서 한 가지 예를 거론하자면, 기술과 테크놀로지를 다루는 경우. (1997, S. 517~536) 그렇지만 여기서 자원 문제나 통상 의미의 테크놀로지 리스크 문제가 다뤄지는 것만은 아님. 루만은 리스크론의 초기부터 “리스크의 지각과 평가에 있어 간주관성의 기준은 역할을 하지 않는다”(1987k, S. 64) 왜냐하면 우리 다수는 자신의 의사 결정에서 리스크를 받아들일 용의가 있지만, 타인의 의사 결정에 의해 야기되는 리스크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기 때문. 미세 혹은 거대 테크놀로지의 개발, 적용, 운용, 관리에 엮인 건 조직이지만, 조직의 의사 결정에 대해서도 동일한 것은 마찬가지. 리스크 평가에서, 사람도 조직도 ‘더블 스탠다드’ (1987k, S. 65) 기술이나 테크놀로지 문제를 둘러싸고, 의사 결정자와 결정에서 배제된 사람 사이에는 늘 대립이 있을 것. 기술과 테크놀로지 문제를 둘러싼 연대가 성립. 그렇지만, 오늘날 기술과 테크놀로지의 개발 경쟁, 대규모 이노베이션 경쟁이 세계적 규모에서 사회적으로 제도화. 근대 사회는 미래의 미지를 의사 결정을 통해 리스크 평가로 변환하는 사회지만, 이미 리스크 평가에 이러한 어려운 사회적 대립 문제가 담겨 있는 것.
- 그 때문에 루만은 기술과 테크놀로지, 그리고 의사 결정과 리스크 문제를 오늘날 사회의 중대한 문제의 하나로 다루고, 『에콜로지의 커뮤니케이션』(1986), 『리스크의 사회학』(1991), 『항의』(1996b)를 시작으로 많은 논문에서, 시스템이론적 사회학의 모든 분석 도구를 동원해, 다양한 환경 문제, 항의 운동, 환경 윤리학의 의문, 매스 미디어 문제 등과 관계해 연구.
- 루만이 사회적인 것과 사회를 추상적, 일반적 수준에서 연구하기 위해서만, 시스템 이론적 사회학 이론을 구축하려 했던 것은 아님. 그렇기 때문에 사회학에 의한 구체적인 문제 분석과 기술은, 그에게는 보통, 매스 미디어와 사회학적인 문필가에 의한 분석과 기술과 달라야만 하고, 이론적, 개념적 분석과 기술이 돼야만 함. 그것이 사회학의 책임. 그것은 또한 사회가 사회학에 기대하고 있는 것. 사회의 기술은 매스 미디어에 의해 시시각각 대량으로 제공. 매스 미디어에 의한 기술의 양과 속도에는 전혀 이르지 못해도, 사회학도 또한 이론에서 사회의 기술에 참가해야만 함. (1987b; 1992p)
- 그렇지만 루만에게는, 사회학에는 사회적인 것에 대해 긴요한, 사회에 대해서도 정확한 개념이 보이지 않음. 또한 “우리는 도대체 어떠한 사회에 살고 있는 것일까”를 이해하기 어려워졌고, 사회학은 이 사회에 적합한 사회 이론을 가지지 못함. 그런 한에서, 사회학이 사회 이론 구축에 쏟는 노력은, 얼마 안 되는 것에 불과. 그러니까 그는 사회 이론 구축에 매진. 그는 커뮤니케이션 미디어 이론, 사회 진화 이론, 사회 분화 이론이라는 세 가지 개별 이론으로 구성하려 했고, 사회 분화 이론을 통해 근대 사회를 구조적으로는 기능적으로 분화한 사회라 다루었던 것.
- 기능적으로 분화한 사회에 대해 이 책에서 이 이상 상세하게 들어설 수 없었지만, 기능적으로 분화한 사회라는 규정을 배경에 둔다면, 오늘날 여러 사람에 의해 시도되는 사회의 규정-즉 탈공업화 사회, 후기 자본주의 사회, 시민사회, 관리사회, 포스트모던 사회, 정보화 사회, 리스크 사회, 글로벌화 사회 등등-에 대해 루만의 사회 이론이 어떠한 위치를 부여했는가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까지 예상. 루만은 그것들을 사회가 수행하는 사회 기술로 이해하고, 『사회의 사회』의 ‘제5장 여러 자기 기술’을 시작으로 많은 곳에서 논함. 제7장 제4절에서 서술한 것처럼, 루만 자신에 의한 사회 기술, 그래서 기능 분화론도 또한, 마찬가지로 사회에 의한 하나의 자기 기술로 다룸. 다음 제16장에서는, 사회의 자기 관찰, 자기 기술을 둘러싼 일반적 문제와 연관하여, 사회를 외부로부터 관찰할 수 없는 것과, 사회의 내부에서의 관찰이 포함한 문제들을 다룰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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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tkra35824 · 4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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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문재인 소환후 구속처리!
중앙 특종-문재인,
9일전격소환
통보!
이재명,
문재인 수사
특별대응기구 특명-
위원장에 7인회
3선 김영진 임명-
진짜 의도는?
이재명 헬기-
권익위 징계통보!
毒舌🗣🔊
문을
강경하게
처리하지 못하면
이 나라가 시끄럽고
혼란이 와서 무질서하고
국민 불안하고 생활하기
힘들다.
수사를 속전속결 처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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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upendoussublimebarbarian · 10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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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종] 건강보험공단 기금 분식회계와 공문서 위조로 26조4천억 빠져나가 [공익제보자 윤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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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lguties10 · 11 month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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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 KBS 방금 특종! 이재명과 배현진 '습격범'의 충격적 만남 영상이 유출됐다! 배현진는 이재명 관련 중요한 증거물 들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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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tsvtarchive · 2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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