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하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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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vlovlun119 · 2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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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없는 아이들 / 명준(배우 아그리파) 백혜진(클레오파트라) / 현준(필로) /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 / 메스칼(멕시코 술) 애벌레 / 사슴 용서 / 연출 / 엄마없는 아이 혜은이 /
다만 한 사람을 기억하네 / 나 조희진(인디 가수) / 도쿄 요쓰야 / 마크 로스코의 빛 / 가와무라기념미술관 / k컬쳐 진흥회 회장 후쿠다 준 의원 / 지바현 사쿠라시 / 시그램 벽화 / 로테르담 4월 / 진보초 하이랜드(바 하루키?) / 아카이도리의 시로이 하카 하얀 무덤 /
와 진짜 신들렸네 대박 소름
사랑의 단상 2014 / 지훈 / 1 네스프레소 한정판 캡슐 커피 소사 ; 오나리오(은빛 캡슐 8번째) / 리나 / 잘라야트라? 크레알토? 캡슐 이름? / 2 2011년 봄의 맛 봄의 이백 / 리하쿠 사케 이백 / 3 심야의 잔치국수와 고양이 구출작전 / 사랑은 빠진 상태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 / 4 소소하나 따뜻한 빛은 저물고 마음만 길게 / 방콕 끄라비 아오낭 라일레이 / 마음은 언제나 늦되기 때문에 유죄 / 5 핀란드행 여객기처럼 북쪽으로 더 북쪽으로 / 12월 야근의 나라 / 권대리 / 6 앨리스의 다락방에서 들리는 먼 북소리 / 카페 앨리스 / 카페주인 / alice’s attic 영화 자기 안의 두려움 때문에 우리는 세상을 제대로 못본다 / 빛 / 7 누군가에게 해피뉴이어라고 말하고 싶은 밤 / valiente 스페인어 용감한 용기있는 멋진 희한한 / 영화에서는 이따가 밤에 내 방으로 오라는 뜻 / 안나 오토 / 두려움의 반대말은 사랑 / 리나 / 8 단 한 사람이 없어서 사람의 삶은 외롭다 / 3000 300 30 3 1 / 9 나를 사랑했던 너에게 그리고 더이상 나를 사랑하지 않는 당신에게 / 편지 / 10 거기에 사랑이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기를 / 세월호 혜원 지민 /
다시 2100년의 바르바라(가톨릭 성녀)에게 / 할아버지 바르바라 토마토 원산 / 고립과 고독 / 이승훈 정약용 이벽 정약현(큰형) / 황사영 / 리마두(마테오리치) 교우론 / 정하상(정약용 조카 정약종 아들) / 김대건 최양업 최방제 / 바르바라(조선 소녀 ; 할아버지 막내 여동생 세례명) / 1949 5월 루페르트 신부 / 정치보위부 부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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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okenspaceprince · 4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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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민예관(日本民藝館)과 리하쿠(李白)
도쿄의 일본민속예술회관은 일본 민예운동의 총생지인 야나기 무네요시가 지은 박물관으로 리하쿠는 수집가 미야하라 시게유키가 40년 넘게 운영하는 찻집으로 모두 조선의 아름다움을 알리는데 열심이다.
 야나기 무네요시라는 이름을 알게 된 것은 대학 1학년 때였다. 그가 '야나기 무네요시'가 아닌 일본인이라고 생각한 것은 조금 더 시간이 흐른 뒤에야 비로소 그가 일본인 '야나기 무네요시'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야나기 무네요시(1889~1961)는 일본 민예 운동의 창시자로, 종교 철학자, 미술 평론가, 미학자로, 여전히 일본과 한국의 미학과 역사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가 만든 '민예'와 '민화'를 마치 한국 토박이인 것처럼 쓰고 있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 말이다.
 생동감 넘치는 삶의 민속 예술 속에서 진정한 아름다움을 찾으려 했던 그의 사상과 철학은 당시 수많은 사람들을 매료시켰다. 그리고 야나기를 숭배하는 많은 신도들이 그를 따라 각 지방에 민속 미술관을 만들어 민속 예술을 수집하고 저장했으며, 특히 조선의 뛰어난 민속 예술을 숭배하였다. 현재 도내에는 일본민속예술협회 회원인 총 29개의 민·공예관이 있다. 이들 지역마다 1년에 한 번씩 민속 예술 경연대회를 개최하고 있으며, 그 중심은 도쿄의 「일본 민속 예술 센터」이다. 아마도 일본에서 다양한 '상업화'가 발달한 것도 일상생활에서 '문예'와 '문예'를 중시하는 야나기 무네요시의 영향 때문일 것이다.
 아사카와 노리다카, 아사카와 다쿠미 형제를 알게 된 후 조선의 민속에 빠졌다고 한다. 1914년 아사카와 노리다카로부터 백자를 받아 조선 민속 예술의 아름다움에 눈을 떴고, 1916년 불국사, 석굴암, 해인사 등을 처음 방문하여 본격적으로 조선과 인연을 맺기 시작하였다. 이후 1922년 첫 저서 『조선과 그 예술』을 출간하였고, 서문에서 스스로 밝힌 대로 『조선 문제에 대한 고백』과 『예술에 대한 사랑』이 집필의 계기가 되었다. 그것은 모두 글귀의 보석이다. 읽어줘.
 특힐 때마다 그는"Kaijo"에서 9월 1922년 광화문은 일본 식민지를 제거에 반대 적"조선 왕조의 건설을 위해,"을 읽는다.정부 나의 마음에 닿는다. 한국인보다는 일본인이 쓴 작품이라 더욱 놀랍고 당혹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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