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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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일 전 얼마 사용하지도 않았는데 배터리 다 되었다고 광분했었다. 최소한 반 년은 사용할 수 있어야지 2주도 안 되서 배터리가 다 소모되는게 말이되는가. 샤오미 충전식 디스펜서를 구입했다. 그리고 몇 일 후 다시 작동하기 시작한 배터리형 디스펜서. 일시적 오작동이었나보다. 사람이 이리 가벼운가. https://www.instagram.com/p/CgklGEphStf/?igshid=NGJjMDIxMW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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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29일 오전 12:35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잊지 말아요.
오늘의 풀린 날씨처럼 따뜻했지만 한편으론 오늘 늦은 오후에 흐린 하늘처럼 속상한 하루다. 오래 전 읽었던 책들을 다시 읽어야겠다. 읽은지 오래 되었단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 1학년때 배웠던 동양고대미술사의 내용이 기억 안나는건 뭐 그렇다치자. 정말 싫었으니까. 근데 4년전 읽었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썩 탐탁치 않았지만 어쨌든 좋은 작품으로 인정했던 그 책의 어떤 부분이, 왜 싫었냐는 질문에 쉽사리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어디서 주워 들은 ‘좋은 데는 이유가 없지만 싫은 데는 이유가 있다’는 말을 비틀어 싫은 데는 이유가 없지만 좋은 데는 이유가 있다는 구린 농담을 뱉으며 질문을 떠넘겼다. 세부적인 내용을 기억해내려 시간을 벌고자 했다. 근데.. 니체의 영원 회귀 사상과의 연관성, 궁극적으로 작가가 말하고자 했던 단 한번 뿐인 삶과, 단 하나 뿐인 존재, 영원성과 일회성, 무거움과 가벼움에 대한 질문들을 담았던 것 정도로까지는 기억하겠는데, 여주인공이 키우던 강아지의 관한 마지막 장은 말할 것도 없고, 중반부 이후 내용 자체가 도무지 기억이 나�� 않았다. 이런 대화를 나눌 수 있고, 또 이런 질문을 던지는 사람을 너무 오랜만에 만나서였을까. 그러니까, 시간을 거슬러 가 보자. 와닿지 않아서 혹은 작가가 말하고자 했던 바를 이해하지 못했어서, 헤매며 읽어서 기억을 못하는 걸까. 정반대로, 읽던 중 너무 와닿아서 너무 공감되어서 특정 인물에 내가 너무 겹쳐 보이고 혹은 특정 누군가가 너무 겹쳐 보여 읽는 것을 자주 멈춰서였던 걸까. 역겨워서? 혹은 치부를 들킨 것 같아서? 그게 내가 이 작품을 좋은 작품으로는 인정하지만 별로 좋아하지 않는 작품이라고 말하는 치졸한 심리 기제였나? 제목처럼 참을 수가 없었던 걸까. 아님, 군복무 중 만성적으로 느끼던 불안한 무료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당시 일상을 버텨가는 나 자신 스스로 대한 의무감에, 잘 잡히지 않던 서사를 급하게 억지로 따라가며 마지막 장까지 읽고선 책장을 덮지는 않았나? 지적 허영심과 텅빈 허세감을 충족시키고자 '나 이것도 읽었어'라고 말하기 위해, 머리가 아닌 눈으로만 읽었던 책이진 않은가? 강아지의 이름은 둘째치고, ‘토마시’의 이름도 기억해내지 못한 자괴감과 창피함에, 흔들리는 공항철도 안에서 줄거리를 검색하고 나서야 부유하던 기억의 파편들이 어느 정도 퍼즐 조각 맞춰지 듯 결합되었다. 책뿐만이 아니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요즘따라 결말이 기억이 안나는 영화들이 너무 많다. 작년 이 시점 쯤에,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사실, 방금 제목도 다시 검색해 보았다. 조제, 호랑이와 물고기들로 기억하고 있었다.)의 결말을 기억하냐는 질문을 받았던 그 때 그 이후로, 지난 1년 동안 모호한 시어들로 가득한 시들만 너무 많이 읽은 걸까. 서사를 따라갈 필요가 없는, 그 안에서라면 정처없이 헤매도 될 것만 같던 희뿌연 안개 속 같은 시들 안에 내 자신을 숨기는데 너무 익숙해져 버린걸까. 내겐 정말 큰 고민이다. 단순 암기식의 단답형, 서술형 시험을 치루는 과목의 학점과 논술형 시험을 치루는 과목의 학점이 극명한 차이를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인가. 왜 망각하는가. 기억할 수 없어 망각하는가. 기억하기 싫어 망각하는가. 망각에 담긴 내 의지의 무게는 가벼운가, 무거운가. 고심 끝에 작은 결심을 했다. 올 겨울방학 끝까지 당분간 새 책 읽기를 중단할 것이다. 소설과 달리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곱씹고 또 곱씹으며 읽는 시집도 당분간은 금지다. 자신있게 저 이 작가 좋아해요라고 말할 수 있는 작가들의 책부터 다시 읽어야겠다. 무라카미 하루키, 프란츠 카프카, 다자이 오사무, 헤르만 헤세, 프랑수아즈 사강, 알베르 카뮈, 밀란 쿤데라 정도까진. ..안그래도 어제부터, 내용이 가물가물해서 다시 읽기 시작한 우스운 사랑들로 스타트를 끊은 셈이다. 모든 등장인물들의 이름 하나하나, 사건 하나하나까진 아니더라도, 적어도 논리정연하게, 나의 감상을 듣는 이가 왜곡해서 듣지 않게끔 딱 부러지게 말하여 전달할 수 있을 정도는 되어야 한다. 세상에 틀린 것은 없다며 그저 다른 것뿐이라며 어제도, 오늘도 말했던 나지만 이건 다른게 아니라 틀린 것이다. 감상법의 다름이라고, 스스로에게 변명하지 말자. 부끄럽다. 공부는 수박 겉핥기 식으로 하지 말아야 한다던, 얕고 어설픈 공부는 오히려 안한 것보다 더 위험하다 말했던 내 자신이 부끄럽다. 틀린 건 없다는 내 말이 틀렸다. 틀린 것은 바로 잡아야 한다. 해야 할 시험공부는 하지 않고 이런 글을 남김으로써 어쩌면, 적어도 내 자신 스스로 문제점을 인지하고는 있지 않냐며 위안을 삼고자 하는, 한편으론 자존심 때문에 내 자신 스스로에게마저 지지 않으려 하는 것만 같아 우습긴 하다만.. 그렇게 우스워하는 내 자신마저 너무 우습지만... 우스워하는 내 자신마저 너무 우스워하는 그 자신마저 너무 우습지만.. 부끄럽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에 이렇게 남기는 데에는 단 하나의 이유가 있다. ‘잊지 않기 위함’이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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