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튜디오크로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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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디오 크로아상 단상
지나가다가 스튜디오 크로아상이라는 곳을 발견했는데, 여러분께서 굳이 그걸 보실 필요는 없기 때문에 링크는 붙이지 않기로 한다. 그냥 유료 콘텐츠 만들어서 판매하는 프로덕션 크루다. 근데 “포트폴리오”(무료공개 작품을 말하는 거겠지?)에 올라온 글 중 ‘Fuck you, startup’이라는 글이 좀 떴는가 보더라. 그래서 알게 됐고... 다른 글도 읽어보고 하다가... 어휴... 싶어서 블로그를 켠다.
일단 하나만 인용하고 시작하자. “개, 돼지들의 민주주의”라는 귀엽고 맹랑한 제목을 달고 있는 글의 제 1장 일부.
사실 난 기초소득 수급자를 위한 <한 마음 전형>으로 이 곳에 입학했고, 그 덕에 실제로 연세대학교에 입학할 수 있는 성적이 아님에도 들어올 수 있었다. 하지만 난 그 누구에게도 이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았다. 말하자면 난 <진정한 연세인>으로 학내 구성원들에게 인정받고 싶었다.
ㅎㅎㅎㅎ ㅎ ㅎㅎㅎㅎㅎ ㅎㅎㅎ 하여간 왜 사람들은 얼마 못 가서 속내를 다 까주고 마는 걸까.
20대 때 20대를 위한 잡지 트탐라를 하던 시절, 시니어급 에디터이자 부편집장으로서 정말 공들여서 피하려고 했던 것이 하나 있다. 뭐냐 하면 덮어놓고 시니컬해지는 버릇이었다. 그건 의식적으로 배격하고 의도적으로 방지해야만 하는 어떤 것이었고, 그래서 다른 에디터들의 기획이나 내 글, 심지어 애드버토리얼 하나를 쓰고 있을 때조차도 내심 정말 신경 썼던 것이었다.
명확히 하고 넘어가자면, 이명박근혜 시절을 20대로 보낸 우리는 세상을 냉소할 자격이 있었고, 그러지 않는(“노오력하는”) 것이 이상한 일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힘차게 “소확행”과 “안될거야 아마”의 냉소를 보내었다. 트탐라도 그걸 안 하지는 않았다. 어쩌면 그건 그런 시절을 지나올 수 있었던 저력 아닌 저력 ― “없는 게 메리트라네” ― 이었던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므로.
하지만 그런 식으로 어쩔 수 없이 시대가 깔아 주는 센티멘트와 무관하게, 아주 아주 무관하게, ���제든지 맘만 먹으면 포즈로서 취할 수 있는 냉소주의가 있고, 그건 대충 이런 것들로 요약된다. 19~26세. 직업은 인서울 대학생. 젝스키스가 ‘학원별곡’에서 노래한 바로 그 의식 그대로를 갖고 일단은 기성세대가 인정할 만한 성취 ― 합격 ―를 했는데, 그 꿈의 캠퍼스에 내가 생각했던 파라다이스가 펼쳐져 있지 않아서 혼자 무진장 꽁해있는 상태.
(개빻은 소리를 하자면, 나는 이걸 신촌 2학기 증후군이라고 부르고 싶다. 그냥 짐작이지만 신촌 주변 대학교의 모든 1학년 2학기 학부생들은 죄다 이 증상을 호소하며 “그들의 귀를 가위로 자르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히는 포즈를 취하고 있으리라고 믿는다. 아니라면 다행이다. 안 웃겼다면 진심으로 사과한다.)
기본적으로 이것은 증후군이다. 왜 버릇이나 장애, 질병이 아닌가? 미세먼지 같이 사회가 조장하는 좀더 큰 원인에 의해 사람마다 다르게 발하는 증상들이기 때문이다. 이 사회는 어떤 사회인가? “넌 이런 거 신경 쓰지 말고 공부 열심히 해”라는 말을 들려주고, 대한민국 인구의 5분의 1이 1개 도시에 몰려 살면서도 부동산이 미쳐날뛰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며, 어떡하면 그 도시에 들어가 신분 상승을 할까에만 거의 온 구성원의 눈이 벌개져 있는, 병 걸릴 것 같은 세상이다.
사실 이 사회가 대학 입시에 대하여 학생들에게 심어 주는 기대는 그냥 좋은 학벌 좋은 직장 정도가 아니다. 본질적으로, 대학 입시란 거의 유일하게 제도적으로 보장받는 ‘탈출’ 경로의 하나다. 물론 여기서의 탈출이란 민족적 대탈출이 아니라 개개인의 각자 도생 및 일신 영달로서의 탈출이고. 이 여정이 제안하는 잔혹한 게임 규칙에 학생들이 순순히 따르는 이유는 오직 그 때문이다. “대학 가서 미팅할래, 공장 가서 미싱할래?”
그러니 (연세대쯤 되는) 대학이란 곳에 드디어 (한마음 전형인지 뭔지 쪽팔린 경로를 타긴 했지만 아무튼) 진입을 했는데, 요컨대 드디어 탈출을 했는데, 이제부터 보고 싶은 것만 보고 평가받고 싶을 때만 평가받으며 나 살고 싶은 대로 살려고 보니 내 주변에는 아직도 나와 처지가 비슷한, 또는 나보다 더 머저리 같은, 아니 머저리인 게 확실한데 더 돈 많고 학점 높고 쉽게 사랑받는 인간들만 가득하다. 뭐야? 왜 난 이런 곳에 있어?? 여기 이런 곳 아니랬는데 왜 이런 머저리들만 꽉 찬 거야???
모르겠지??? ㅋㅋ 응 이제 군대 가 봐 ^^ 너빼고 다 고졸~ ㅅㄱ링 ㅋㅋ
하긴 비웃을 일은 아니다. 한국 사회는 한국 사회를 보여준 적이 없으니까. 얼마나 많은 이들이 서울 밖에서 고졸로 살아가는지, 얼마나 많은 이들이 사운드클라우드를 (안) 쓰는지, 얼마나 많은 이들이 월 100만원 이하로 살다가 노년에 고독사 또는 자살을 하는지, 직종별 성별 임금 격차가 얼마나 되는지 1년에 몇 건의 성범죄가 일어나고 그 중 가해자의 관계와 성별이 뭐가 압도적으로 높은지.
그걸 본 적 없(고 볼 기회도 찾아보지 않)는 (주로 한남유충인) 이들이 1평짜리 자기 자리에 코 박고 12년간 공부만 하다가 광장(라틴어로 ‘campus’)에 내던져져 버리면, 그러고도 자신이 아직도 남들과 달리 특출하고 대단하며 자격 있는 존재라고 믿는다면... 그땐 최인훈 소설 ‘광장’의 주인공처럼 방황하며 아무 여자나 껴안고 술과 담배와 지구상의 모든 고뇌로 세월을 허송하지 않기가 더 힘들 것이다. ㅎㅎ ㅋㅋ
요약하자면, 한국 사회는 개인적 탈출이 답이 될 수 없는 대단히 뒤틀린 곳이고, 이걸 모르는 건 인텔리로서는 사실 부끄러운 일인데, 그 사회는 뒤틀린 사회답게 대학 입학이라는 대단히 이상한 게임의 보상으로 탈출을 거짓 약속하고 있으므로, 십몇 년 평생을 이 거짓말에 빤히 속아 열심히 달려 온 이들은 대학이 ‘탈출’이 아니라는 상황 판단을 하자마자 혼자 온갖 충격에 빠지는 것이다. 사실 이것은 구조적으로도 필연적인데, 그들 중 충분히 게으른 이들이 이 모순을 냉소로 도피해 버리면, 그게 스튜디오 크로아상의 저 (누가 봐도 한남충인) 필자가 되고 만다. 그걸 믿었음? 째트킥!!
그 냉소는 바로 그런 점에서 냉소의 대상이다. 물론 모든 것을 신경 끄고 ‘뒤주책상’에 들어가 공부만 하라던 부모님께 효도를 했을 뿐인 친구들에게는 퍽 미안한 말이지만, 아무튼 그 환멸은 옆에서 보면 너무도 귀엽고 안쓰러운 몸짓에 다름이 아니다. 세상의 부조리를 까봤다느니 나름 좌파였다느니 민주주의는 개돼지들이 유린하고 있다느니... 얼씨구! 민주주의가 뭔데! 개돼지에게도 공정한 세상 만들어 주자고 피 뿌리고 목숨 바쳐서 얻은 게 니가 비웃는 그 민주주의다 이 무식아! 어디서 걸음마도 못떼어 개돼지만 못하게 기어다니던 것이 분수도 모르고 공부 못한 티를 내나?
우리가 “386″이라고 필사적으로 손가락질하는 그들도 젊었던 한때는 최소한 이 부분은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모를 수가 없지 그분들의 대학생 시절은 얼마든지 의식적으로 살아도 되는 시절이었는걸. 그래서 대학 사회는 노학연대를, ‘농활’을 기획했고 끊임없이 서로에게 상기시켜 왔다. 우리는 사회의 일부이고 이 사회는 생각보다 실망스럽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또한 우리는 사회에서 지식자본상 상위 계급이므로 그 책임을 다하지 않으면 안 된다, 같은 것들.
어쩌면 나도 트탐라 시절에 그런 걸 비슷하게 의식하고 행동에 옮기려 했던 것 같기도 하다. 심지어 마침 한국의 언중은 이런 ‘쿨병’ 걸린 애들을 때려줄 “쿨몽둥이”라는 기찬 아이템까지 소개해 주었으므로, 그걸 쓸 수 있을 때 써야 한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던 것이다. 실패한 기획이지만 “당신의 죽창” 기획이 그 꽃이었다. 맨날 죽창이 답이라고 낄낄거리는가 본데 정말 죽창을 주면 들고 같이 찌르러는 갈 수 있어? 난 갈 건데? 사실은 그걸 물어보고 싶었다. 독자들에게, 신촌 2학기 증후군을 앓고 있는 애들에게, 디스라이크와 아마도 스튜디오 크로아상에게.
그러거나 말거나 이 정도 최소한의 자기반성과 자기 방 청소도 하지 않으려는 소위 평범한 대학생이라는 중2병 환자들은, 어찌된 영문인지 박근혜가 탄핵된 오늘날 이때까지도 몇 년 묵은 과잠처럼 푹 늘어진 자세로, 수강신청 정정기간 안내문처럼 환멸과 조소에 찌든 어투를 구사하여, 읽으나마나한 김생원 한양 환멸기를 늘어놓고 있는 꼴을 본다. 그리고 심지어 스튜디오 크로아상인지 크레이지인지 하는 이친구들은 그 짓에 후원금을 받는단다. 야! 참 돈 벌기 쉽구나! 뭐라고? 뻑 유 스타트업? 오케이 사딸라 땡큐 유 스타트업 브로!
불쌍한 일이다. 문재인 정권 들어서는 대학가 분위기, 나름 지적으로 상위권에 있다는 젊은 사람들의 생각도 노무현 때처럼 좀더 유연해질 줄 알았는데 더 강박적으로 자기몰입만 심해져 가고 사회 주체로서의 의식이 없는 원초적 원자적 데카당트만 더 화려하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가? 박근혜 시절이 그렇게 참악했던 것일까, 아니면 한국 사회는 돌이킬 수 없이 침수를 당한 것일까?
아 그러네. 하긴 세월호가 수장당하는 것을 지켜보던 그때에도 중학교 입시와 수능 공부를 해야 했던 사람들이 사회에 나오고 있는데 이제 그들이 무엇을 갚아줄지 생각해 보면 자명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난 그게 무섭다. 세상 속편하게 자기 집 주소로 사업자 등록해 놓고 타자기 두드���서 돈 벌려고 하는 20대 친구들의 스타트업 뻑큐 어쩌고 하는 몇 마디는 무섭지 않고, 이런 그림자들을 내 앞에 드리우고 있는 내 등 뒤의 그게 뭔지, 그걸 목도하기가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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