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의 사이↻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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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4fmdminjung · 4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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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rter for @fmdsan​
seoul’s traffic is a bitch, but it serves as her scapegoat when minjung entrances the apartment a few minutes behind all the rest of the cast. fortunately, it comes with sympathy the way her manager relays desperation and frustration through the phone — it leaves a small break by the time she steps foot onto the set. her eyes scan the area, peeling through the staff in search of someone she knows — sooah, alice, anyone. but it leaves nobody, but her sole body lingering along and unoccupied corner till she sees someone familiar, sticking out against the rest a few centimeters away. “san. nice to see that we cross paths once more — you look different. taller even? have you grown? drank a lot of milk recently?” minjung flicks him a few queries inside a dazed headspace that houses some other thought she’s in. but it doesn’t hurt to give conversation in light of curing a few minutes before she steps into the guise of a proper idol. “having any fun waiting arou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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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mon2sang · 4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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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34539049 ) 박은정 <구> 이곳은 미세먼지가 나쁨인 초여름의 빌라. 너와 나의 거리는 일정하게 움직인다. 누군가 다가서면 누군가는 멀어지듯이, 너는 구를 그린다. 구는 찢어진 볼처럼 붉다. 붉은 구는 꼭 붉지만은 않아서 검고 푸른빛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속에는 마주 앉은 우리가 있다. 그곳을 제2의 행성이라고 하자. 대기로만 이루어진 행성, 사람들의 눈빛으로만 이루어진 행성이라 하자. 이곳에서는 따분한 연습 없이 상상한 것들을 그릴 수 있다. 구는 0이 되고 공간이 되고 유희가 되고 슬픔이 된다. 거울이 되었다가 묘비명이 되었다가 밑동이 되었다가 낯선 비밀로 돌변하기도 한다. 너는 구를 본다. 시시때때로 실눈을 뜨고 하품을 하는, 너는 왼손잡이다. 아직 궁금한 것이 많은 나이이다. 그리고 이것은 구이지만 구가 아니다. 이것은 우리지만 우리를 빙자한 구이다. 처마 미텡 비둘기들이 날갯짓을 하는 동안, 낡은 선풍기가 거실에서 돌아가는 동안, 너는 손발을 늘여 그림자를 채워 넣는다. 작은 네 손이 연필을 쥐고 빛을 지우면 검고 심약한 구는 잃어버린 어제처럼 굴러간다. 구르는 구는 시시각각 달라지고, 달라지는 빛 속에서 우리는 어지럽다. 당장이라도 저 끝으로 사라질 것처럼 무모하다. 끝없이 가속페달을 밟는 기분으로, 사막이 출몰하고 태풍이 몰아치는 이 행성을 질주한다. 망쳐질 것들은 이미 망쳐진 세계, 출구를 찾을 수 없어 서로를 껴안고 숨죽일 수밖에 없는, 이곳은 이름 모를 행성이고 우리는 뿌연 대기 안에서 저녁밥을 먹을 것이다. 집 잃은 고양이를 품에 안고 잠들 때까지, 어디부터 그려야 할지 어디서부터 지워야 할지 알 수 없지만, 여기 가장 둥근 빛 하나가 책상 위에 있다. - 박은정 , ' 밤과 꿈의 뉘앙스 '(민음의 시 268) 중에서 박은정 <서기의 밤> 밤이었다 낮이라고 하기엔 우울했으니까 부모를 버리고 슬픔에 빠진 아이의 얼굴을 아름답다 느낀 밤이었다 어쩌면 다시는 없을 미움에 몰두하느라 자신의 나이를 잊어버린 눈빛이라 말해도 좋을 밤이었다 그날은 우연치 않게 우연으로 점철된 하루였다고 너는 말한다 그리고 나는, 너를 받아쓰는 사람이다 너는 언젠가부터 취해 있다 느슨한 혀로 알 수 없는 문장을 발음하느라 자주 흐느낀다 그러니까 어디까지 했더라 기억나지 않는 것을 생각하느라 생긴 주름을 나는 어떻게 받아써야 할지 몰라 볼펜을 돌린다 시계 방향과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리다 보면 끝과 시작이 사라질 테고 그러다 보면 스스로 멈추거나 추락할 때도 있으니까 너는 한 문장을 바라보고 있다 퍼즐 조각을 맞추듯 손 끝이 부스러지고 부서진 문장이 슬로모션으로 달아나는 것을 보면서, 기타라고 발음하자 기타, 네가 기타라고 말하면 나는 같다라고 쓰고 기타라고 쓰면 너는 기다 기어가다 기다랗다라고 말한다 그렇다 너의 혀는 길고 나의 손가락은 마디가 없다 입속의 침묵과 망각으로 만든 문장을 나열하면 나열한 문장들이 저들끼리 분란하도록, 우리를 지나친 시간이 밤의 무한으로 나아가도록 그러니까 어제는 밤이라 말해도 좋고 새벽이라 말해도 옳다 모두들 절반쯤 흔들리고 있었으니까 너는 여전히 미간을 좁히며 무엇을 잊었는지 생각한다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볼펜을 돌린다 창밖에는 편백나무 숲이 보인다 한 문장만 반복하던 날들을 사랑이라 불렀던 적이 있다. - 박은정 , ' 밤과 꿈의 뉘앙스 '(민음의 시 268) 중에서 사랑의 프락치들 앞에 시궁쥐처럼 모여 앉아 영혼의 매장량을 세어 본다 - 박은정 , ' 밤과 꿈의 뉘앙스 '(민음의 시 268) 중에서 아무 의미가 없던 것들은 죽음으로서 하나의 존재를 남긴다 - 박은정 , < 형혹수심 > 중에서 내가 죽으면 박제를 해 줘 슬픔도 기쁨도 없이 당신의 방에서 정적만 먹고 살찌도록 -박은정 , <수색> 중에서 성실하게 성장하고 과묵하게 작별할 수 있다면 겁 없이 사랑할 수 있을 텐데 - 박은정 , <목련> 중에서 그러니까 어제는 밤이라 말해도 좋고 새벽이라 말해도 옳다 모두들 절반쯤 흔들리고 있었으니까 너는 여전히 미간을 좁히며 무엇을 잊었는지 생각한다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볼펜을 돌린다 창밖에는 편백나무 숲이 보인다 한 문장만 반복하던 날들을 사랑이라 불렀던 적이 있다. - 박은정 , <서기의 밤> 중에서 <작품해설: 조재룡 '유리병에 담긴 사랑의 파이'> 밑바닥까지 하강하다가 구심력을 갖고서 겹겹의 문장이 차올라 오면, 우리는 온통 어둠의 감정을 뒤집어쓰고 하루를 살다가 마침내 하루를 지워 낸 이상한 시간 속으로 시인을 따라 입사하면서 마침내, 입을 달고야 만 "저녁보다 먼저 저문 마음"(<오후와 저녁>)이 토해내는 발화의 행렬에 동참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p152) 사랑, 제로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사랑이 '둘의 사건'이라고 했던가. 그러나 너와 나, 이 둘의 교집합은 어느 순간 속에서 급속히 휘발될 뿐, 영원에 붙들리지도, 구체적인 시간을 갖지도 못한다. 애초에 존재하지 않기라도 했다는 듯이, 미래라는 시간 위에서 재빨리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는 점에서, 나에게 사랑은 차라리 공집합과 다르지 않다고 해야 할지도 모른다. 사랑은 그러니까 너와 나의 부분을 이루지만, 너와 나라는 실체를 갖는 것이 아니며, 그렇게 너와 나의 제로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과정 속에 편입된 무엇일 뿐이다. "산 사람의 이름에 붉은 줄을 그으며", "물이 ���르고 있"는, 그러니까 피와 같은 눈물이 흘러내리는 동시에 휘발되는 순간의 사랑, 이 순간으로 시간마저 삼치고야 마는 이 사랑은, 평등도, 자비도, 연민도, 알지 못한다. 지속도, 연속도, 안정도 시간도 갖지 못하는 사랑이 "떠나지 못하는 자들과 돌아오지 않는 자들 사이"에 고여 들고, 할 수 없는 것과 이룰 수 없는 것의 틈바구니 속에서 떠돌아다닐 뿐, 자주 순간에 매달려 대롱거리고, 시곗바늘에 무거운 추를 달아 놓으며, 유보했던 순간 막 손아귀에 잡은 것이나 다름이 없던 거짓의 가면을 쓰고서 허공을 둥둥 떠다닐 뿐이다. (p156-157) 사랑, '여전히'와 '아직도'에서 실패하고 마는 사랑은, '여전히'와 '아직도' 사이에서, 거부할 수 없듯, 매번 제자리로 되돌아오는 반복과 이 반복의 관성을 토대로 전개된다. 짓고 헐고 다시 세우고 또 다시 부수는 순서와 절차는 블랙홀 속으로 숱한 시간을 삼키며 진행되는 절망의 순간들로 가득하고, 시는 바로 이 굴레 속으로 들어가 그 순간과 나날에 숨결을 불어넣는 일을 잊지 않는다. (p161) 이 사랑은 그러니까 보지 못하거나 보면 안 된다는 사실을 미리 알고 있다는 사랑, "그럴 수밖에 없는 말이 있다는 것"(<겨울의 펠리컨>)을 우리가 알고서도 진행하는 사랑, 그러나 하면 할수록, 손을 대면 댈수록 덧나는 상처처럼 "무단의 아름다움에 도사리는 광증"(<포르말린 향이 나는 빛>)을 일깨우는 불시의 사랑이다. 서로를 독점하거나, 서로에게로 넘쳐 충만한, 서로가 서로에게 끊임없이 범람하는 잉여의 불사조가 되거나, 과잉 그 자체로 거듭나는 이 사랑에는 덧셈은 없다. 사랑은 '나-너', 이 애초의 원 두 개를 완전히 지우는 것이며, 지운 다음, 전��� 기대하지 않았거나 전혀 알 수 없었던, 이상한 형태의 도형 하나를 만들어 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p166) 사랑을 기록하는 일, 그것은 "끝나지 않는 실패"의 구술이자 "울렁이는 여백"(<몸주>)을 메우는 것이며, 너의 흔적과 그 흔적에 고인 울음을 받아 적는 어두컴컴한 어둠의 일이자, 산술적으로 환원할 수 없는 "당장이라도 저 끝으로 사라질 것처럼 무모"한 순간들이 파 놓은 깊고 컴컴한 구덩이에 빠져 "불완전한 마음의 유령/불완전한 육체의 귀신"(<어두워질 때까지 거대한 돼지는 울어다>)이 내는 목소리를 받아 적는 일이다. '구'는 '나'가 만든 사랑의 세계, "0이 되고 공간이 되고 유희가 되고 슬픔"이 되는 순간들이다. (p170) 시간의 학대를 받는 포로가 되지 않으려고, 혹은 사랑의 무게를 감당하기 위해, 유리병에 사랑을 담아 밤마다 펜을 쥐는 사람, “아직 못다 한 문장이 기어이 흩어지도록", “어디서도 실패하지 않을 고독”처럼 찾아�� 마음에, 그 “낯섦 같은 것”(<악력>)에 시인은 입을 달아 준다. 시인이 들려주는 이 사랑의 변주곡에는, 사라지는 사랑, 몸짓으로 기미만을 감지하고 마는 사랑, 너도 나도 모르는 사랑, 모든 걸 잠시 잊고 맞추는 입술 위에서 살짝 피어나는 사랑, 허나 끝내 사라지거나 패배할 사랑, 일면 기울어진 사랑이 흘려보내는 아픔과 고통과 상처의 흔적들이 측정할 수 없는 과오처럼 스며들고, 연주할 수 없는 악보처럼 흐르고, 지워 낼 수 없는 폭죽처럼 작렬한다. 이 사랑의 기록은, 어질어짐에 깊이를 보태고, 멜랑콜리의 찰나를 보다 두텁게 해 그 양감의 가짓수를 늘려 가는 감각을 주조하며, 내면의 변화를 외부에 투사하는 각성과 꼼짝없이 독대하면서 속절없이 사방, 저 도처에서 무너지는 언어를 선보인다. 박은정의 시집에는 눈물과 절망이 행간마다 대롱거리고, 낯선 감각과 예리한 시선이, 사랑과 죽음이 공허한 하늘을 무지르고, 어두운 거리와 술잔에 담긴 초록색이 붉은 불꽃을 틔우며, 그림자와 빛이, 이 둘을 쥔 뜨거운 두 손, 저 악력(握力) 속에서 어우러진다. 퉁퉁 불은 발걸음은 고독과 울음의 깊은 곳에 마음을 내려놓게 재촉하고, 헝크러진 머리칼과 굴처럼 상해 가는 눈동자, 소금기를 머금은 그와 그녀의 사정이, 벌써 식은 커피처럼, 맡을 수 없는 향기로 기이하게 피어오른다. 이 이상한 열기와 증발해 버린 땀 방울 사이로 어제의 기억이 눈을 감고 잠을 청하고 내일이라는 불가능함이 눈을 밝혀 나갈 길을 탐색한다. 소리 내어 읽은 한 행 한 행이, 사랑의 저 말할 수 없는 이완과 긴장의 마디마디에서 소진되지 않는 문자를 안고서 고요히 흔들거리며 속절없이 무너진다. 펜촉이 무뎌질 때까지, 골몰하며 내려놓은 이 사랑의 무늬가 모이고 또 흩어지며, 좀처럼 가지 않았던 시의 길 하나를 낸다. 비에 젖은 축축한 바닥에, 저 컴컴한 그림자에, 그럴 수 없었다고 믿었던 물기와 어둠이 잦아들고, 이 어둠 속에서도 빛을 뿜어내는 축축한 대도시 뒷골목, 그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닌 사랑의 절망과 청원이, 서로 만나고 헤어지며 고통으로 꽃을 피워 낸 결핍을 흔들리는 시선으로 붙들어 맨다. 곤두서 있던 신경의 외침을 밤에 받아 내는 자, 그는 사랑의 파이를 기록하는 사람, 시인 박은정은 사랑의 "너를 받아쓰는 사람"(<서기 의 밤>)이다. (p172-173) - 박은정 , ' 밤과 꿈의 뉘앙스 '(민음의 시 268)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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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20797 · 4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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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할아버지를 생각하며 쓴 사실기반 단편소설인지 수필인지.
워드프레스에 올리고 여기도 올립니다.
단편 소설
1930년대 일본이 한국을 식민지배하던 그 시절. 부산의 작은 마을에서 한 남자아이가 태어났다.
역시 붓산싸나이는 태어날 때부터 다르다 세상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기라도 하는 듯 기합을 외치며 세상에 나왔다. 고개를 내민 그 곳은 화려한 궁전은 아니었고, 일제시대에 잘 나가던 가문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 시골에서 평범한 소작농의 집이었다. 이 아이는 어릴 때부터 총명했고 용감했고 정의가 있었다. 뭐든 지 곧잘 배우고 만들고 원리를 깨우치는데 능숙했던 그 아이. 몇번 쓰윽 보면 벌써 그 원리를 깨우치는 아이였다.
어릴 때에는 일제강점기, 청소년기가 되자 한국전쟁이 터졌고. 분명 삶이 좀 나아지나 싶을때 전쟁이 터져 누군가를 원망하고 싶었으리라. 하지만 그 아이는 그 원망을 동력으로 삼아 미군들과 일을하며 영어를 배운다. 팝송을 들으면서 영어를 배우고 미군들 옆에서 하나하나 주워듣는다. 한국어만큼 과학적인 언어가 없기에 그 아이는 원리를 깨우치기에 좀 힘들었을 것이다. 다만 흥이 넘치는 붓산싸나이였기에 팝송 하나는 기가막히게 불렀고, 요리도 곧잘해서 쏘주랑 먹을 수 있는 안주는 뚝딱이었고 절대 술자리에서 빼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때 그는 비틀즈를 들었고, John Lennon의 팬이 된다. 그때 팬이라는 단어가 있었을까. John Lennon의 음악을 가슴 깊숙히 좋아하게 되었다라고 쓰는게 맞겠다. 그 시절, 모두 배를 곯던 시절에 공고를 나왔고, 대학을 나왔다. 말했듯이 한번 보면 원리를 깨우치고 손재주가 좋고 뭐든 뚝딱 만들고 배포가 크던 그 아이는 집을 짓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면 시대의 흐름도 곧 잘 읽는거 같다. 역시 똑똑하고 성실한 사람은 모두의 환영을 받는거일까. 그는 옆도시의 이장의 첫째 딸과 결혼을 하게 된다.
부잣집에서 첫째 딸로 자란 그녀는 오냐오냐 키워졌다고 할 수도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엄격하게 키워지기도 했다. 이장님 딸로서 많은 부와 명예를 누렸고 곱게 자랐지만, 그녀는 야망이 컸다. 공부도 하고 싶었고 그녀 또한 산수도 빠르고 하나를 배우면 열을 아는 아이였다. 하지만 여자라는 이유로, 첫째 딸이라는 이유로 그녀는 학교에 가지 못했고, 집에서 정해준 남자와 결혼을 해야했다. 이렇게 들으면 지금 21세기에서는 숨이 막히고 혐오스럽겠지만, 그래도 집안 어른들의 안목이 틀리지 않았다. 점찍어준 남자는 총명했고 의리가 있었고 똑똑했고 정의로웠다. 나의 여자, 나의 가족을 끝까지 책임지는 남자였다. 여자도 이 남자가 싫지만은 않았고. 결혼을 해서 나가면 야망있는 남자와 잘 살거 같았다. 무엇보다도 잘생겼다. 곱고 하얀 얼굴�� 여자는 고운 한복을 입으니 세상 천사가 따로 없었고, 남자는 그 모습을 보고 더 반해버렸다.
이렇게 둘의 결혼은 원만하게 이루어졌고 부산에서 터를 잡았다. 흥 좋은 남자와 성격 좋은 여자는 잉꼬부부라고 불릴 만큼 사이가 좋았다. 첫째 딸이 음표를 읊듯이 한 곡조를 뽑는 듯한 소리와 함께 세상에 나왔고, 둘째 딸은 어찌나 동글동글 오목조목 새침하게 세상의 문을 두들기던지, 그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도 이 아이만큼은 예술을 시키리라는 생각이 들게 했다. 둘에서 멈추기엔 너무 금슬이 좋았던 이 부부는 셋째를 낳았는데 머리부터 나오는 이 아이는 어딘가 모르게 단단했고 어딘가 모르게 고집이 느껴졌고 울음부터가 짧고 강했다. 내심 아들을 원했던 이 부부는 기대를 했지만, 역시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야 한다는 것처럼, 끝까지 보고 또 여자아이임을 알았고 순간 실망을 했다. 하지만 누가 알았을까 이 아이가 미래에 복을 가져다 줄지. 남자아이 4명은 문제지만 여자 아이 4명은 키워볼만 하다 생각했는지 이 부부는 넷째에 도전했다. 배가 불러오는 정도부터 남달랐다 이녀석. 넷째 아이가 세상의 문을 두드리는 그 순간 또다른 붓산 싸나이가 이 지구에 나왔음을 알리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왔다!!!! 이렇게 이 부부는 네 아이와 함꼐 완전체의 가족구성을 이루었다. 과학적으로 제일 안전한 구조가 육면체라는데 이 가족은 6식구가 되었고 세상 제일 단단하고 안전한 가족이 되었다.
우리 가족이 되어 살다보니 이 부부의 속에 있던 야망이 슬금 슬금 올라오기 시작했다. 붓산 싸나이라고 진짜 부산에만 있어야 한다는 법이 있나! 그들은 그렇게 서울로 향하게 된다. 서울에 아는 이 하나없이 그저 용기만, 야망만을 가지고 올라왔다. 적당한 지역에 터를 잡고 거기서 사업을 시작했다. 이곳 저곳에 집을 짓고 건물을 지어주고 아파트를 지어주고. 그때 나라를 개발하기 시작했을 때라 이곳 저곳에 건물이 많이 세워졌다. 이 남자는 남편은 아버지는 이곳 저곳으로 건설을 하러 다녔다. 그 사이 아이들은 이 여자와, 아내와, 어머니와 함께 바르게 커 나가고 있다. 서로가 서로를 도우며 또 가르치며 또 배우며 같이 커가고 있는 중이었다.
바쁘게 일하던 남편은 집에 들어와 가끔 화를 내기도 했었다. 공사판 먼지 속에서 일하다 집에 왔는데 집이 더러우면 짜증이 났으리. 물론 그때의 그 아이들은 이해할 수 없었고 무서웠다. 하지만 잔소리뿐이었지 한없이 아이들을 사랑하던 아버지였다. 여행가는걸 좋아하던 아버지는 시간 날때마다 아이들과 부인을 데리고 이 산 저 산으로 여행을 다녔고 아이들은 가끔 산에서 시험공부를 해야하는 경우도 있었다.
우리 아이들 이야기를 해볼까? 첫째는 역시 음악에 관심이 많았다. 역시 첫째는 첫째인걸까 K장녀인걸까 사춘기도 빨리 왔고, 동생들이 너무 어려보였다. 내가 해야할것 하고 싶은건 다 해야했다. 하지만 그래도 K장녀니까, 동생들을 제일 많이 뒤에서 신경쓰는건 첫째였다. 둘째는 예뻤고 귀여웠다. 사람들 앞에 나가는걸 좋아했고, 사람들의 환호는 언제나 최고였다. 둘째는 감각이 남달랐고 아버지 닮아 그런가 손재주가 좋았고 그림을 그렸다. 둘째의 법칙이라고 아는가 둘째는 제일 독립적이라고 한다. 이 둘째 딸도 위 언니와 아래 동생들 사이에서 독립적으로 내 앞길을 찾아 나갔고 조율을 잘 했다. 셋째. 셋째딸은 얼굴도 안 보고 데려간다는 셋째 딸. 이 셋째도 객관적으로 이뻤다. 하지만 그렇게 고운 선남 선녀가 낳은 아이들 중에는 얼굴을 보고 데려가야 했다. 멀리서 보면 이쁠까 자주 봐야 이쁠까. 하지만 이뻤다. 셋째는 외로움을 즐기는 법을 배웠다. 언니들이 안 놀아줘서 맨날 옆에서 힐끔힐끔 놀아야했고, 언니들 학교가면 심심해서 남동생이랑 놀아야했고, 언니들이 학교에 와서 숙제를 하면 또 심심해서 언니들 숙제를 본인이 해주기도 했다. 그래서 였을까 아님 총명한 부모의 유전자 덕분일까. 아님 둘다였을까. 셋째는 공부를 곧잘했다 IQ도 높았고, 벼락치기도 잘 했고. 나중에 “이대 나온 여자”를 외치고 다닐 수 있게 된다. 셋째는 가끔 과거를 회상하며 다들 본인을 못난이라고 불렀고 안 챙겨줬다고 했다. 맨 꼬래비로 챙겨줬다고. 근데 나중에 이 남자가 소중한 사진들을 모은 앨범을 만들고 나니 셋째의 사진이 다른 자식들의 두배였다. 우리네 아버지 알게 모르게 셋째를 더 소중하다고 생각했던거다. 우리 막내. 아기다리고기다리던 막내. 막내 아들은 순했고 조용했다. 여자 셋의 기를 못 이긴걸까. 책 읽는걸 좋아했고 글 쓰는걸 좋아했다. 누나들과 나이 터울이 좀 커서 누나들의 보살핌을 받고 자랐다. 특히 셋째 누나가 공���도 가르쳐주고 도시락도 싸주고 많은 도움을 줬다. 이 셋째 누나는 고민이 된다. 막내동생이 어떤 공부를 해야 적성에도 맞고 돈도 잘 벌고 잘 살 수 있을까. 누나는 글만 써서는 입에 풀칠을 할 수 없다고 생각했고. 동생을 반강제로 건축을 공부하게 했다. 아버지께서 하시던걸 하던것도 있지만, 건축이야말로 인문과 공대의 접합점이리라. 이 모든 집안의 응축은 막내아들이다. 설계를 할때 미적 감각도 있고 오케스트라처럼 조화로움도 다 관여를 해야하고 이 모든 걸 하기위해서는 머리가 좋아야하고 마지막으로 건축에 철학을 접목시킬 수 있다. 이 가족의 완성은 막내 아들이리라. 이렇게 여섯 식구는 완전한 가족이다.
이렇게 설명을 하다보니 너무 행복하고 화목한 가족이고 흠잡을 곳이 하나 없어 보인다. 하지만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랬다. 참고로 나는 찰리 채플린이 태어나고 자란 지역에서 살았으니 이 인용구는 이상하지 않다. 이 가족에도 시련은 많았고. 제일 큰 시련은 우리 셋째 딸이 학력고사를 보기 일주일 전이리라. 그 해는 이상하게 많은 일들이 생겼다. 특히 셋째 딸에게 1월 1일에 호기롭게 독서실에서 공부를 하고 오더니 맹장이 터져 굴러다니고 수술을 받지 않나. 여름에는 버스에 크게 치여 생사를 오가고 깨어나니 학력고사 한달 전이지 않나. 그런데 하나님은, 아니 신은 아니 누군가 힘이 있는 분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으셨나보다. 학력고사 일주일 전. 이 집의 여자, 아내, 어머니를 사라지게 한다. 뿅. 셋째는 그저 부산에 내려갔다 오려나보다 했다. 하지만 시험 후 셋째의 눈 앞에 놓여진건 맛있는 밥상이 아니었고. 어느 병원의 침대에서 의식없는 본인의 어머니였다. 야망이 넘치던 남자의 사업이 부도가 나면서 영화에서나, 드라마에서나 볼 법했던 빨간 딱지들을 붙이기 시작했다. 부도도 하루 아침에 나진 않았고 서서히 진행되고 있었으리라 그 사이에 셋째의 사고 이 모든 스트레스를 곱디 고왔던 이장네 첫째딸이 견디기에는 너무 힘들었다. 뇌가 과부화가 되었는지 뇌졸중이 왔고 풍이 왔고. 그저 모든 것이 정지가 되었다. 남자는 회사를 살리랴 부인을 살리랴 아이들을 돌보랴 아주 정신이 없었으리라. 그때의 한국은 또한 독재정권이었기에. 더욱더 힘든 사회였을테다.
육면체가 제일 완벽한 도형 구조라 한거처럼 이 가족은 여섯식구다. 이정도 고난은 넘길 수 있다. 아니 넘겨야 했다. 그 당시 셋째는 이대라는 너무나 좋은 대학에 합격했지만 오지랖 넓은 꼰대분들이 여자가 무슨 대학이냐 엄마를 돌봐야지라는 말을 해댔고. 그런 말을 들은 셋째는 굽히지 않았다. 왜냐 본인의 부모님은 본인이 공부를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걸 알고 있었다. 이렇게 여섯식구는 다시 헤쳐나갔고. 사업 수완 좋던 똑똑했던 남자는 다시 사업을 조금씩 일으키기 시작했다. 그렇게 오른쪽 전체를 못 쓰는 아내를 돌보고 회사를 일으키고 아이들 교육을 시켰다. 이러한 노력이 빛을 보는건가 세 딸 모두 좋은 남자를 만나 결혼을 했고 아이들을 낳았고. 막내 아들도 좋은 여자를 만나 결혼을 하고 건장한 청년을 낳아 화목한 삶을 산다. 여담으로 이 남자에게는 유달리 애착이 가는 손녀가 있는데, 본인의 생일날 이 아이가 빼꼼하고 세상의 문을 두들겼다. 그 아이는 아주 약해보였다. 내 아이가 다 커서 언제 그런 아이를 낳고 있나. 그렇게 빼꼼 나온 아이는 건드리면 바스라질거 같았다. 뭔지 모를 유대감이 들었고 다른 애들 모르게 맨날 뒤에서 용돈을 더 주곤 했다.
건물을 지으면서, 사업을 하면서 그는 반주를 맨날 했고 담배를 끝없이 피웠다. 마당에 허연 연기자욱이 가득했다. 하지만 본인 나이 칠순이 되던 어느날. 선언을 하게된다 담배를 끊겠다고. 50년 넘게 태우던 담배를 끊겠다니. 다들 축하했지만 속으로 믿지 않았으리라. 하지만 그는 붓산 싸나이다. 끊었다. 절대 안 피운다. 심지어 이젠 길 가다가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한테 잔소리를 한다. 그는 본인의 올챙이적 시절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거나 꼰대짓을 하지 말아야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더니 팔순이 되기 전, 매일같이 마시던 소주 2병+를 끊겠다고 했다. 이건 ���짜 아무도 믿지 않았다. 그당시 나름의 관련 공부를 했던 셋째 딸의 딸은 좀 걱정이 되었지만 불가능이라 생각했기에. 하지만 그마저 해냈다. 하지만 술을 갑자기 멈추면 건강에 무리가 간다. 그 역시 심장이 잠시 멈췄더랬다. 심장에 귀여운 친구를 새기고 그는 술을 많이 줄여서 하루에 소주 1병정도 마시게 되었다.
사람은 여러 매력이 있다. 이 남자는 잘생겼고 똑똑했지만 귀엽기도 했다. 미군과 일하면서 John Lennon을 좋아하게 되었다하지 않았나. 그는 John이라는 이름을 너무 좋아했다. 어느정도 여유가 생기고 닥스훈트 강아지 한마리를 입양하는데 그가 이름을 매일 다른 걸로 부르는데도 그 강아지는 잘 따랐다. 쫑이인지 짱이인지 짱아인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붓산 싸나이가 부르는게 이름이지 뭐. 그렇게 1년이 지나고 그 강아지의 밥그릇을 보니 JOHN(쫜)이라고 적혀있었다. 그랬다 이 강아지의 이름은 쫜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강아지는 남자인가보다 이러고 넘어갔다. 이 남자네 집에 쫜이 와서 꼬리를 흔들고 새들과 노래를 부른지 5년 째, 셋째 딸의 딸은 너무 이상했다. 쫜은 남자인데 왜 앉아서 소변을 보지….? 이 딸은 견권을 무시한 채 확인을 해보기로 한다. 이런…. 너와 나 똑같애. 쫜은 여자였다. FEMALE. 이 남자의 귀여움을 보아라 여자 강아지를 데리고 와서는 본인이 제일 좋아하는 이름인 쫜으로 짓고 아무 얘기를 하지 않았다. 이 귀엽고 멋있는 꼰대는 누구인가. 담배피는 사람한테 뭐라 하는 꼰대지만 성적으로는 그 누구보다 개방적인 꼰대였다. 붓산 싸나이의 개방적이고 호탕하고 귀여움을 보여주는 건가. 순간 쫜이 말을 할 수 있었다면 뭐라했을까. 본인의 섹슈얼리티를 그 남자에게 잘 전달했을까. 이 남자의 취미는 가락시장이나 전통시장에 자전거를 타고 가서 이것저것 쇼핑을 하고 오는 것이었다. 하루는 가족이 다 모였는데 긴 총을 꺼내왔다. 모두 놀라면서 그거 장전 되는거냐 조심해라 이리저리 안절부절 못했다. 그저 그 상황이 재밌었는지 호탕하게 웃고 탕!
그랬다. 그 총은 총이 아닌 총 모양의 라이터였다. 그는 그렇게 거기 있는 남녀노소 모두를 골탕 먹였고 그날 하루 행복했다.
한국에는 무수히 많은 기념일들이 존재한다. 발렌타인 데이 화이트 데이 빼빼로 데이. 이 남자는 웃기게도 이런 데이들을 놓치지 않았다. 쪼꼬렛 몇 상자나 빼뺴로 몇상자를 준비해두고 나서 딸들을, 손녀들을 불러모은다. 점심 먹으러 온나. 그 남자의 부인은 옆에서 요즘 할매들 사이에 유행인 색의 모자를, 스카프를, 외투를 사 온나 기미 없애는 화장품을 사 온나 말을 한다. 딸들과 손녀들은 무얼 시켜먹을까 무얼 사달라고 할까 이러고 가보면 남편도 아들내미도 심지어 남친들도 잘챙기지 않는 쪼꼬렛과 빼빼로를 챙겨주신다. 무심하게 툭. 그럼 손녀딸은 사람들한테 자랑하기 바쁘다.
이 세상 남자들에게 말한다 남자라서 그런거 안한다 남자답지 못하게 이런 말은 저 멀리 보내버려라. 이 붓산싸나이는 아침 점심 저녁을 다 손수 만들면서 재봉틀도 한다. 바느질로 옷을 꿰매기를 수십년. 눈도 침침하고 손도 힘들어지니 재봉틀을 구매한다. 물론 70년 넘게 안 써본 재봉틀이다. 전화로 물어 물어 재봉틀 하는 법을 가르쳐 주는 곳에 찾아가서 아줌니 할무니들과 함께 재봉틀을 배운다. 배워온 재봉틀로 바지 주머니 꼬매는 이 남자. 역시 멋있다.
이렇게 귀엽고 멋지고 호탕하고 완벽했던 남자는 장난삼아 본인은 저승사자와 계약을 맺어서 85살에 죽을거라고 종종 말했다. 그걸 다른 사람들은 그저 웃고 넘겼지. 본인의 나이 85세를 넘기고 한국나이 89일때 그는 몸이 아팠다. 하지만 아직 보고싶은게 남아서 이 병을 고쳐야 겠다고 생각을 했다. 코비드19라는 바이러스가 창궐을 했지만 그래도 그는 더 봐야할게 있었기에 이 병원 저 병원 큰 병원 작은 병원 할거 없이 문을 두드리고 다녔다. 걷기엔 힘든데 자전거는 탈 수 있다던 그. 그 말을 듣고 모두 그가 아픈게 아니라고 생각을 했다. 하지만 유별나게 아프다는 말을 자주하고 병원을 고집했다.
그리고 결국에는 부인에게 본인의 아이들에게 빠빠이 인사를 한 뒤 병원에 누워있다. 온몸에 암이 퍼져 손을 쓸 수가 없다. 그는 작년에도 비슷한 상황이었으리라 그렇게 아픈 몸을 힘든 몸을 이끌고 병원에 다니면서 생각했던 것들은 뭘까. 그리고 이제 병원 침대에 누워서 생각하는 건 뭘까. 작년에 배가 너무 딱딱하다고 했는데도 만져보지도 않던 종합병원 의사? 차트나 CT 사진 보는둥 마는둥 5분 진료했던 의사? 웃었던 기억들? 행복했던 기억들? 후회되는 기억들? 아님 마지막으로 빠빠이하고 온 부인과 자식들? 그 남자의 생각은 그 남자만 안다.
분명한건 그 부인과 자식들은 정말 고통스러운 빠빠이였을것이다. 빠빠이 하고 나면 보통 다음에 보자가 붙는다. 하지만 이번의 빠빠이는 그 뒤에 수많은 말들이 붙을 수 있지만 다음에 봐요 아빠는 안 붙는다. 아니 못 붙는다. 다음에 볼때는 그 남자의 영정사진이 걸린 장례식장일테니까.
그 남자의 삶은 빽빽했다. 쉴틈 없이 좋았던 날들 행복했던 날들 슬펐던 날들 화 났던 날들 모든 날들이 뺵빽하게 있다. 하나의 울창한 숲같은 삶을 만들고 갔던 그 남자. 하늘 나라에서 지낼 곳은 너무 뺵뺵하지도 않은 그렇다고 황야도 아닌 적당한 나무와 풀과 꽃들이 있고 쫜이도 있고 다른 친구들도 있으면 좋겠다. 나무들 사이를 뛸수도 있고 앉아서 쉴 수도 있고 가끔은 누워서 천사도 만들 수 있으리라.
완벽한 육면체는 아직 완벽하다 한 곳이 깨진것이 아니라 안으로 더 깊숙히 스며들었기 때문이다.
게시자: hamoslife
심리학 사회학에 얼쩡 거리다가 통계학으로 눈을 띄고 지금은 유전학을 공부하고 있는 되게 ��잔하게 다양한 공부를 합니다. 취미 찾기 도전해요 hamoslife의 모든 글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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