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
~퇴 의 껄끄러움
입이라는 단어에는 긍정적 에너지가 흐른다. 아니 사람들이 그렇게 만들어 놓았다. 그래서 입학, 입사는 언제나 당당하다. 처음이라는 불편함마저 그래야 마땅하다는 찬사로 덮어지는건 아닌가 싶다.
사실 우리는 시작보다 끝마침을 더 갈구하는지도 모른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서 그만두고 싶은 것들은 너무나도 많다. 그런데 그것을 실행에 옮겼을때 무리생활을 하는 인간들은 그 이탈에 차가운 눈빛을 보낸다. 그만둔다. 하고 나면 굉장히 편해지는 어쩌면 모든 일의 시작은 그만두는 것일지도 모르는데 자퇴 퇴학 퇴사 이 퇴에는 껄끄러움이 들어있다. 그 순간 죄인이고 낯뜨거워져버린다. 어쩌면 시작보다 무수히 많은 고민을 거친 후에 이루어지는 마지막 과정이 왜 찬사받지 못하고 껄끄러워지는 건지 모르겠다.
우리는 ~퇴 이후에 모든것이 끝나지 않는다. 전혀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아주 사소한 선택일 ���이다.
또 남의 ~퇴에는 같은 생각을 실행에 옮기는데에 있어 묘한 질투심과 시기가 뒤섞여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해버리며 매장을 시키는 무서운 집단문화가 섞여있다.
더이상 ~퇴가 껄끄러운 존재가 아니었으면 좋겠다. 그것은 자연스러운 것이고 어쩌면 입~보다 더 찬양해주어야 하는 선택일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0 notes
Text
2016.8.24. 11:34~
자판기 커피 때문일까 엄마가 지어준 한약 때문일까 책한권 때문일까 지금 세포가 열려있는 기분이다. 내가 느끼는 세포가 열려있는 기분이란 아침에 눈을떠 아직 활성화가 안되어있을때 음식 한 술을 뜨면서 활성화가 된 상태를 말한다. 세상이 밝아지고 몸이 정상 작동이 된다고 느껴진다.
한동안 아침에 일어났을때나 출근을 할때나 일을 할때나 퇴근을 해서나 무기력하고 비활성화 상태였던것 같다, 불만족스러운 상태다. 아마 하고싶은대로 하지 못해 억눌린 상태였던것 같다,
이제 하고싶은거 하면서 그냥 한번 살아보려고 한다. 죽을똥 노력하지도 않고 나중을 위해 참지도 말고 그냥 하고 싶은거 하련다. 그리 생각하니 내 출 입구가 열린 느낌이 든다. 사는게 뭔지 참 도통 모르겠다.
지금까지 세워온 계획을 그냥 다 접고 다시 하고싶은거 하려고 한다.
내일 대학원은 자퇴를 하고 서점은 조만간 퇴사를 하고 조만간 집을 떠나고 조만간 하고싶은것들 일을 한번 벌려보려고 한다. 돈생각 미래생각 없이 그냥 쭈욱 해보려 한다.
글을쓰는 일을 하고싶다. 나는 말을 잘 못한다. 주로 다른 사람 말을 들어주고 리엑션 해주는 편이다. 그래서 표현욕구가 억압되어 있는 모양이다. 이렇게 글을 쓸때 욕구가 풀리는 느낌이 든다. 미친듯이 좋다거나 즐겁다거나 하지 않고 편하고 좋다. 그���고 좋은 글을 쓰고 싶다. 멋진 글이 아니라 공감되는 글 마음에 드는 글을 쓰고 싶다. 그러려면 솔직하고 담백하고 친근해야 할것 같다. 글 쓰는 일이 익숙해지면 아마 가능해지지 않을까 싶다.
나는 우연히 기자가 된다는 학교동생의 말을 듣고 나도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자는 글을 쓰는 일이고 세상에 관심을 갖는 일이고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들어주고 글로 잘 쓰는 일이니 왠지 이거다 싶은 생각이 든다. 그런데 기자는 사실을 쓰는 직업이다. 나는 내 생각을 쓰는 것을 원하는데 그런데 그 밑걸음이 되어줄거 같다는 생각도 든다. 나는 훗날에 작가와 평론가를 하고 싶다,
왠지 내 생각이 현실이 되어있을 것만 같다.
그냥 쭉 간다면 말이다. 그랬으면 좋겠다.
0 notes
Text
평생 돈에 구애받지 않는 법 - 고코로야 진노스케
전혀 과학적이지 않고 알아들을수 없는 책을 읽었다. 그렇지만 속는셈치고 한번 해보고 싶은 구미가 당기는 책이다.
학생딱지를 떼고 사회에 나가니 학생때도 달고살던 돈걱정이 이제는 전신 피부에 붙어있는 듯한 느낌이다. 사소한거 하나하나까지 다 돈계산 돈걱정 좌절의 반복이다. 그래서 이 형식적인 뻔한 얘기일것 같은 책을 읽었는데 그 형식마저도 없이 뻔뻔하게 근거없이 주장하는 책을 읽었다. 근거가 없어서 더 구미가 당긴다.
책에서는 돈=공기를 강조한다. 돈은 사방에 있고 나에게도 있으니 줄어들 걱정말고 들이마시고 뱉으라고 말한다. 고로 돈을 밀어내지도 붙잡지도 말라는 평소 듣던 이야기 비스므리한 뉘앙스를 띄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 책은 좀더 막무가내이다. 돈이 없어도 쓰란다. 타인이 채워줄 거란다. 물론 부드럽게 설명되어 있지만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맞짱뜨고 싶은 발언이 이어진다. 나는 88만원 세대의 대표주자로 수입이 막쓰기는 커녕 이번달에는 아리따운 나이에 옷한짝 못사입었다. 그런데 내가 하고 싶은걸 다 하라니 억장이 무너진다. 단 책에서는 내가 부자라고 생각하는 부자놀이를 해보라고 권한다. 내가 부자라면 어제 저녁에 골랐던 컵라면을 똑같이 골랐을까? 내가 부자라면 싸다는 이유로 몸에 안좋은 컵라면을 고르진 않았을 것이다. 내가 부자라면 세일한다고 주워모았던 한번도 안입는 옷쪼가리들이 내 좁은 옷서랍에 가득 차게 만들었을까? 아마 가격 생각 안했다면 사지 않았을 것들이 참 많기는 한것 같다. 내가 부자라면 지금까지의 수많은 선택이 아마 조금은 다르지 않았을까. 같은 선택이더라도 거기에 두는 의미와 입장차는 분명 달랐을 것이다. 그래서 오늘 쏟아지는 비에 평소에는 절대 금기시하는 택시를 타고 집에 왔다. 비를 피했고 일찍 집에 들어왔고 부자놀이에 심취해보니 먹고 노는 대신에 이렇게 컴퓨터를 키고 글을 쓰고 있다. 지금 이 글은 부자놀이를 하는 자의 글이다.
사실 내게는 돈이 있다. 있는데도 없다고 느껴져 자꾸만 긁어모으지만 좀처럼 모아지지 않는 돈들이 있다. 나는 아직 가정을 이룬 엄마가 아니기에 한번 이 책 말대로 해보고 싶다. 첫째로 돈을 좋아해보려 한다. 사실 부자가 아니기에 내새울 수 있는 청렴함을 살리기 위해 나는 돈을 밝히지 않는 사람인것처럼 하고 다녔다. 그에 비례하게 돈을 아껴야했고 이제는 돈을 좋아하고 가리지 않고 돈을 벌고 돈을 써야겠다. 둘째로 부자놀이를 해보려고 한다. 내 선택들이 이제는 부자의 선택이 되었으면 좋겠다, 평생의 습관을 하루만에 바꿀리 없을것 같지만 한번 되는데까지라도 나는 가치가 있는 사람이고 돈이 있는 사람이기에 그에 맞는 선택들을 해나가보고 싶다.
과연 나는 있는 돈도 까먹어버려 밑바닥 인생이 될까? 아니면 저자의 말대로 나도 모르게 돈이 들어와 돈에 구애받지 않는 사람이 될까? 잘은 모르겠지만 내 답답함을 부자놀이로 한번 터보고 싶다. 나는 돈에 구애받지 않고 원하는 것을 사고 돈도 많이 버는 사람이 되고 싶다.
0 notes
Text
2016.8.23.12:03~
엉덩이는 배신하지 않는대서 쓰는 글이다.
나는 글쓰는 일을 하고 싶다. 왜냐하면 글을 쓸때 좋고 글을 잘 쓰는 사람이 부럽고 멋있어보이고 나도 그렇게 되고싶은 욕심이 가장 커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글쓰는 일은 취미로 하고 할만한 직장을 얻으며 생활하는게 좋겠다고 말하고 다닌다. 사실은 글쓰는 일이 좋은만큼 두렵기 때문이다.
나는 18세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진로탐색 중인것 같다. 왠만한 내 또래들 중 진로 고민을 상위 1%로 했을 거라고 내심 자부한다. 고등학교 때부터 갈아치운 꿈이 몇개인지 모르겠고 시도때도 없이 현실을 그만두고 새로운 길을 향하는 것이 처음 한두번은 설레고 내가 멋있어 보였지만 수없이 반복해오고 어느덧 이십대 중반이 넘어버린 지금은 내가 과연 한 직업의 전문인이 될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이 앞선다. 세상에서 낙오자가 될 것만 같은 기분이다, 나는 끈기도 없고 진득함도 없고 무거운 엉덩이도 없다. 그렇지만 무엇인가 계속 바꿔가며 성실하게는 지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마 성실하게 지내는 내 모습을 보며 안도하고 그냥저냥 살라는 내가 내게 주는 눈속임인 듯도 하다.
꿈이 거창한것이 아니라는 쪽으로 생각이 바뀌고 있다. 선택한 현실에 충실한 것이 그게 꿈이 아닐까 싶다. 내 욕망의 우선순위로 선택을 하고 그냥 그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내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하게 지내는 것 그리고 나를 만족시키는 나의 발전하는 모습인것 같다. 이 두가지 속에는 결국 노력과 돈이라는 존재가 있다.
노력. 진정한 노력이란 무엇일까.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는 하루하루는 정말 노력한 삶이었을까. 내가 발전하지 않는 이유는 축적시키지 못해서라고 생각한다. 한 직업의 전문인이 되려면 10년이 필요하다고 한다. 나는 한달 세달 육개월이면 하던것을 내려놓고 다른 곳에 눈을 돌리며 거창한 꿈이라고 생각하고 다시 시작하게 된다. 나는 이제 한곳에 머무르는 전문가가 되고 싶다.
돈이라는것은 정말 사랑만큼 어려운 존재인것 같다. 나는 지금 돈이 없어서 괴롭다. 그런데 내가 당장 돈으로 하지 않으면 불행한 일이 사실은 없다. 정말 해야할 것들은 지금의 돈으로도 하고 살수 있다. 그런데 더 좋은거가 하고 싶은 내 욕심이 나를 가난하게 만드는것 같다. 나는 하고싶은거 하고 살려면 얼마의 돈이 필요할까., 그리고 정말 내가 그렇게 하고 싶은건 또 대체 무엇일까.
십 오분을 쓰고나니 잠이 쏟아진다. 오늘은 첫 시작이다. 매일매일 엉덩이 붙이고 앉는거 사실 못지킬것 같다. 못지켰을때의 괴로움은 두렵다. 종종 글을 쓰려한다,. 언젠가 내 글이 좋은 글이 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0 notes
Text
2016.3.26. 영화<글로리데이>
화창한데 무척 추운 휴일이었다.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하루였다. 마침 함께 해주는 사람도 있어 더할나위 없었던것 같다. 영화도 보고 싶은 영화를 볼 수 있었다. 내가 하고 싶은걸 같이 해주고 싶어하는 친구가 있어 감사함을 느낀다. 나는 늘 제멋대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랑은 받고 있는것 같다. 이유는 알수 없지만 내 삶을 보면 믿을 수 없을 만큼 감사한 삶��것 같다.
영화는 마음에 들었다. 요즘 그와의 대화에서 사람의 이면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듣고 나누는데 영화는 무엇보다도 사람 그중에서도 어른의 모습을 까발려 주어 너무 솔찍한데 불편하진 않은 영화였던것 같다. 어른들에게 짓밟힌 청춘들이 눈물나게 안쓰러운데 그 청춘이 사실 나라는걸 나는 아직은 잘 모르겠다.
요즘 20대의 이야기가 사라졌다고 한다. 20대의 이야기를 재미있어하는 사람도 없고 같은 20대조차 20대의 이야기에 흥미롭지 않고 미래가 궁금하지 않다. 그래서 예술작품에서도 20대는 잊혀졌던것 같다. 오랜만에 20대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라고 생각한다. 그 시선이 어른도 20대도 아닌 중간자라고 생각되긴 하지만 그들이 왜 어둡고 무관심속에서 편하게 덮고 마무리짓고 싶은 존재들이 되었는지 최소한 이 영화에서는 20대의 현 상황의 원인과 결과 정도는 보여주는 20대의 이야기인것 같다.
나는 힘이 없다. 어떻게 힘을 길러야하는지 알고는 싶지만 귀찮고 힘이없다. 내가 길을 선택하고 잘 나아갈수 있을지 사실 그러지 못할것만 같다. 나는 나약한 사람이다. 그리 단단하고 강하지 못한 사람이다. 그래서 세상이 정해놓은 길로 컨테이너 밸트에서 고통스럽게 밀려져 나갈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벗어날 만큼 움직이는 힘을 길러보고 싶다. 책을 읽으면 그럴 수 있을까? 아니면 운동도 하고 정신력도 기르면 그럴 수 있을까? 강한 사람이 되고 싶다. 그렇지만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
0 notes
Text
2016.3.25. 영화<중경삼림>
어제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덕분에 몸은 무겁지만 자꾸 실없는 웃음이 나온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고백을 해보았다. 무슨 자신감과 용기였을까. 신기하게도 오래 품고 있던 마음을 내비췄을때 그 행동이 나에게 해방감을 가져다주었다. 후의 일이 어떻게 되든 그것은 더이상 나의 권한이 아니었을때 나는 편안해졌다.
사람은 결국에는 하고 싶은 일을 하고 또 하고 싶어하는데로 사는거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세상은 자기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하지만 나에게만 예외인 것일까? 나는 아주아주 무서울 정도로 하고 싶어 하던 일들이 자꾸만 이루어지고 생각했던 일들에 몸담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또 믿을 수 없게 이루어져버린다. 그래서 겁이 난다. 내가 하는 생각들이 현실로 다가왔을때 나에게는 책임이 따르게 되고 그 책임의 무게가 얼마나 무겁고 내게 버거운 것인지 나는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영화가 좋아졌을때 영화를 좋아하는 그 사람을 좋아하게 되었다. 그건 동경이었을까 아니면 동정이었을까. 같이 나눌수 있을 것 같은 그리고 내 작은 분신을 만난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어떤 영화를 떠올리며 어떤 사람을 그리워하는것이 일상에서 종종 이루어지곤 했다.
맨 처음으로 이 영화를 봤을때 대사가 무슨 얘기를 하는지 어느 정도 어감은 알아듣지만 사실은 별로 크게 와닿는 영화는 아니었다. 그런데 마지막 장면과 함께 엔딩 크레딧컷에서 흘러나오는 주인공 왕비의 '몽중인'이라는 노래를 들었을때 그 분위기와 내 안의 감정의 반응은 이 영화가 평생 가슴에 남는 영화가 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후부터 내 삶에서 느끼게 되는 아픈 부분의 느낌이 이 영화로 떠오르게 되었다. 그냥 내 마음의 일부로 자리잡게 되었던 영화인것 같다.
그 영화를 어제 그 사람과의 통화 이후 도저히 사람이기에 잠을 이루지 못하며 새벽에 나만 깨어 홀로 영화를 보게 되었을땐 사실 영화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냥 감정이 없어진 옛사랑의 사진을 바라보는듯 그냥 영화를 보게 되었다. 어째서였을까 이미 영화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은 다 느꼈기 때문일까 아니면 이제는 나의 취향이 바뀌어 버려 이 영화와의 만남에서 내가 반응하는 것이 사라진 것일까? 솔직한 심정으로는 안타까웠다. 나는 내가 감성적인 사람이기를 강하게 희망한다. 그래서 마음의 변화가 큰 것을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사실은 내가 그러기를 간절히 희망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아무런 변화없이 영화를 보고 나서는 그냥 주인공들의 얼굴만 떠오르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나는 나 자신을 아주 조금밖에는 알지 못하는것 같다. 매일 들여다보고 글로 나를 느껴보려고 노력하는데도 알면 알수록 별로일 때도 많고 또 알지 못한 면들을 발견할 때가 많다. 나는 나를 알아야만 한다. 그래야 나를 통해 그사람과의 관계도 지켜나갈 수 있을것 같기 때문이다.
지금 바라는 것은 조금씩 알아가고 싶다.
0 notes
Text
2016.3.22 책<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검정) >
이 책은 장기간 베스트셀러에서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는 인기도서이다. 학교를 졸업하기 전 출판편집론 수업시간에 제목이 좋은 책을 선정하는 시간을 가진 적 이 있었다. 단연 이 책이 거론되었고 솔직 담백하며 적나라한 제목이 이보다 더 좋은 제목은 없는 듯 했었다. 그러나 학교에서는 이 책을 낮게 ��가했었다. 문예창작학과라는 단체였기 때문일까 우리는 얕은 지식이라는 면에서 깊이 없이 쉽게 거론되고 끝나버리는 책이라고 단정짓는듯 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아무도 신간인 이 책을 읽은 사람은 없었다. 우리는 다소 가난한 학생들이었고 책 구매에서 만큼은 돈을 아꼈으며 대부분 읽는 책은 도서관에서 빌려보는 조금 시간이 지난 책들이었다. 서점에서 일하며 좋은 점으로는 새로운 흐름을 읽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아마 도서관과의 차이일 것이다. 서점에서 일하지 않았더라면 팟케스트가 뭔지 베스트셀러가 무엇인지 또 왜 읽혀지고 있는지 이것들이 사실은 내 삶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을 모르고 살뻔했다. 그래서 하루하루 힘겹게 살며 고통의 이유또한 들춰볼 생각을 못했을 듯 하다.
책에서는 역사, 경제, 정치, 사회, 윤리 의 이야기를 굉장히 명료하고 긴밀하게 설명하고 있다. 저자 소개글을 읽어보니 다방면의 책을 겁나 많이 읽었다고 하니 이 작가는 국민들이 지켜주고 후원해주어야 하는 빛과 소금이라고 생각한다. 나름 대학까지 나왔고 신문도 보고 책도 읽지만 사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눈에 잘 들어오지도 않고 알려고 하니 귀찮아 그냥 먹고 사는 일이나 한답시고 재미난 미디어나 주구장창 보고 있는 내가 이 시대 대표 젊은이의 모습은 아닐까 싶다.
얕은 지식이기에 쉽게 읽혀 감사했고 더 감사한 것은 이 책에서 얕은 지식으로 풀어준 이분법이 뉴스에서 떠들어 대는 소리가 무엇인지 그동안 학교에서 배웠던 철학이 어떻고 사회가 어떻고 했던 것들이 이제야 굵직굵직하게 잡혀 나가게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그동안 내 눈앞에 펼쳐졌던 세상이 어떤 것이었는지 이제야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뉴스에서 매일같이 나오던 정치인들이 어떤 사람들이 왜 저렇게 행동을 하는 것인지 왜 나는 88만원 세대에 나는 해당되지 않는다고 자부하며 살았는데 그 누구보다 88만원 세대의 대표자로서 자리매김하게 되었는지 이제 내가 어떤 위치에 있는지 나의 자리가 보인다.
이 책이 베스트셀러인 것이 너무나 다행스럽다. 나같이 뭣도 모르고 살아가던 사람들이 세상이 어떠한지 이제 시야가 생겼을테니 같이 우리의 살 방향을 제대로 알고 살아갈 수 있을것만 같아 다행이다. 그리고 가능하면 내 주변 사람들에게도 내 얕은 지식을 전파할 수 있는 작은 빛과 소금이 되어보고 싶다. 우리가 왜 그토록 고통스러운지 이제 알았으니 우리는 다수이니 세상을 바꿀수 있을 거라는 헛된 욕망을 실현 가능한 욕망으로 흩뿌려 보고 싶다.
0 notes
Text
2016.3.21. 책<버티는 삶에 관하여>, 영화<록키>
나는 서점에서 일한다. 덕분에 신간 책들을 대출해 볼 수 있다. 굉장히 매력적인 특혜이고 꽤나 득을 보고 있다. 평소 책을 힘겹게 읽어내는 편이었는데 신간 베스트셀러 책들은 술술 잘도 읽힌다. 아마 대부분 자기개발서 혹은 에세이여서 그럴 것이다. 사실 이러한 책들은 좋은 생각이 적혀는 있지만 마음속에서 몇일 가지는 않는다. 힘겹게 읽어낸 고전 소설은 몇해가 지나도 그때 그 대목과 분위기가 가슴속에 남아있는 것을 보면 고전의 힘은 대단하다고 여겨진다. 서점에 출근을 하면 내 분야도 아닌 아래층 소설 비문학 분야의 베스트셀러를 확인하곤 한다. 최소한의 유행은 알아야 한다는 생각에였다. 그렇지만 요즘은 베스트 셀러의 책들을 내가 읽었다는 자부심에 매일같이 목록을 보고 또 보며 흐뭇해하고 있다. 아마 큰 작심삼일이 없다면 당분간은 꾸준히 책읽는 재미에 빠져 있을 듯 하다.
사람을 사귀어서 좋은 점으로는 내가 접하지 못한 좋은 정보를 피부에 와닿게 접할수 있다는 것이다. 대부분 지인이 추천해준 것들은 한번 보면 정말 재미있고 좋은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남의 말을 드럽게도 안듣는 우리는 남들이 좋다고 하면 좋으면 얼마나 좋겠냐며 속으로 상대방을 무시하고 겉으로는 한번 볼게 라며 흘려듣는것이 대부분이다. 자신만의 색깔을 유지하는것도 중요하지만 남들이 좋다고 하면 다 이유가 있고 한번 보고 좋으면 나도 같이 즐길수 있으니 남들말을 조금은 듣는 시늉을 하는 자세가 필요한것 같다.
굉장히 다른 얘기로 새나가며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허지웅이라는 사람이 좋다라는 말을 하고 싶다. 그 계기는 연예인 좋아하는 친구가 마녀사냥이라는 프로그램 초장기에 내게 추천을 해 주었고 밥먹고 할일없을때 우연히 보았다가 굉장히 나와 코드가 잘 맞다는 생각이 들며 허지웅이라는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우선 그의 외모가 좋다. 마른 체형에 깔끔하게 옷을 입은것이 마음에 든다. 그리고 그가 말하는 태도가 좋다. 잘난척하지 않고 좋은 사람인척 하지 않아서 참 좋다. 그렇지만 사람에게 귀 기울여주고 좋은 생각을 가지고 이야기 하는 것이 느껴져 좋다. 그래서 <버티는 삶에 관하여>라는 책이 출간되었을때 몇번이나 망설이며 책을 살까 고민했지만 당시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학교에 들어갔을때라 왠지모를 지출에 대한 두려움에 사치라며 먹고싶은거 다 먹고 입고 싶은거 다 사 입으면서도 책만은 사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서점에 들어와서 베스트셀러를 독파해나가다 문득 내가 가장 읽고 싶은 책 1순위인 이 책이 생각났다. 그 순간에도 구매 고민이 들었고 우선 빌려보기로 마음먹고 들고 온 책을 퇴근 후 침대에 누워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처음 장을 읽으며 느꼈다. 너무 와닿은다. 심하게 와닿는다. 베스트셀러 혜민 스님 책보다 마음에 비수같이 꽃힌다. 다음날 이 책을 구매했고 쌧노�� 표지의 예쁜 책을 신나서 발을 흔들어대며 읽어나갔다. 허지웅이라는 사람은 굉장히 솔직하고 매력있는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 느꼈다. 자신의 이야기를 그토록 세상에 대고 글을 쓸 수 있는 용기는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그가 솔직해지자 읽는 나도 마음을 터놓고 읽어나갈 수 있었고 나의 내면과 가까워진 글을 읽을 수 있었던것 같다. 그리고 그의 삶의 이야기가, 그의 삶에 대한 태도가 그냥 참 좋았다. 그리고 그의 고시원 에피소드 글을 읽을 때는 낮이어서 다행이었지 입만 웃는 것이 아니라 큰소리로 학학 거리며 웃어대고 여운이 가시질 않아 한참을 곱씹어 웃었다. 그리고 그는 영화 평론가 답게 그의 삶은 영화와 연결되어 있는 듯 하다. 그가 이야기 하는 영화가 참 좋았고 나도 내가 이야기 하는 영화가 좋아지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나도 영화에 대한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조금 진지하게 들었다. 책에서 그가 말했다. 자신이 글을 쓸수 있는것은 엉덩이를 붙이고 매일같이 글을 썼던 시간들 때문이라고 그래서 나도 작심삼일을 번복해가며 글쓰는 시간들을 모아보아야겠다. 시간은 배신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제 드디어 전설적인 영화<록키>를 처음 보게 되었다. 문예창작학과를 다니며 글쓰기에 대한 열망을 가졌을 때 <스토리텔링의 비밀>에서 록키에 대한 극찬을 보며 대체 어떤 영화일까 라는 생각까지 들고 멈추었던 영화이다. 그리고 영화 관련 책이나 글에서는 빠짐없이 등장했던 영화이고 <버티는 삶에 관하여>에서 여러 장을 걸쳐 이야기된 이 영화를 그래 이젠 진짜 봐야겠다는 생각으로 고화질로 다운받아 감상하게 되었다. 이야기는 정말 단순하고도 이미 책에서 내용을 소개했던 그대로 진행되었다. 대사까지도 이미 책에서 읽었던 터라 명장면을 스포일러 당한것에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는데 미리 알고 보는 장면에서도 경이로움을 느낄 수 있으니 고전은 큰 무게를 가진 작품임을 또한번 느낄 수 있었다. 주인공 록키가 사랑하는 여자 품에 안겨 시합전날 말한다. 15라운드를 버텨내면 그 순간이 생에서 무언가를 처음으로 이루어 본 일이 될거라는 그리고 마침내 시합에서 15라운드를 버텨내고 패한 주인공을 보며 조금의 안타까운 마음도 들지 않고 영화를 받아 들일 수 있었던 것은 사실 우리의 삶도 버티는 삶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기고 지는 것은 사실 우리 삶에서도 중요하지 않다. 어떻게 해서든 어떠한 이유로든 우리는 버텨내는 삶을 살고있고 살아야만 하고 또 살아갈 것이다. 록키를 본 사람들이 그랬듯이 나의 가슴속에도 록키는 영웅으로 자리잡고 세상을 살며 받아칠 힘도 남아있지 않을때 두 다리로 버텨내며 내 안의 영웅을 불러낼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0 notes
Text
2016.3.20. 영화<귀향>
완연한 봄날씨였던 어제 아침에는 일찍 눈이 떠졌다. 알람을 맞춰놓지 않아도 아침 7시 30분이 되면 꿈이 깨고 정신이 든다. 엄마의 퇴근시간이 어느세 몸이 적응한 모양이다. 요즘 나는 서점일을 시작하고 사람들과 있는게 조금 힘이 들기 시작했다. 이제는 가족들과 함께 있는것도 괴로움이 되어 대충 아침을 때우고 가족들과 부딪히지 않기 위해 일찍 집 밖을 나섰다. 엊그제부터 무언가를 하고 싶기는 한데 무엇을 하면 좋을지 몰라 영화를 보기로 생각해놓았다. 맘편하게 만화영화를 보고 휴무를 즐기려는 생각이었는데 개봉후부터 마음에 걸리는 이<귀향>이라는 영화가 눈에 밟혔다.
어느 순간부터 괴롭고 안타까운 일들을 피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비단 나뿐만이 아니라며 핑계를 대고 나를 정당화 시키고자 했지만 나는 분명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고 있었다. 그 사건이 잘못되었고 고통받은 사람이 있다는 것을 세상이 떠들어주어 잘 알고 있으면서도 내가 해결할 수 없고 그 일에 나서서 움직임을 보일 용기가 없었고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귀찮고 번거로웠다. 그들의 고통에 비하면 나의 고통은 행복한 비명임을 상기하면서도 다음날이면 또다시 내 작은 고통에만 신경이 몰두되어 하루하루가 벅찬 세상에 가지고 싶은거 다 가진 내가 또 투덜대고 있는 것은 이제 너무나 반복되어 미리 예견되어지곤 한다. 그렇지만 마음이 무거워질까봐 보지 않았던 영화를 요즘들어 가장 마음이 무거운 어제 이 영화를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게 있어서 영화는 취미 이상으로 내 삶을 만들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는듯 하다. 어느 순간부터 즐거움을 위해 영화를 보지는 않았기 때문에 나름 결연한 목소리로 귀향 영화표를 끊었다.
시민들의 후원으로 만들어진 영화라고 들었기에 사실 어느정도 감안하고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배우도 연출도 기대하지 않았고 고통받는 자들은 외면하지 않고 그들을 도우려고 용기낸 사람들이 영화를 통해 목소리 내어 알려준다는 것에 의미를 두었던 것 같다. 그렇지만 처음보는 배우들도 연출도 나름 좋았던 한국영화였다. 무당역할의 소녀역을 맡은 최리라는 소녀 배우가 인상깊었다. 얼굴에서 느껴지는 감성이 억지스럽지 않고 몰입되었던것 같다. 한국식 연출도 공감과 설움을 자극식키기에 좋았던것 같다. 접신하는 장면은 어쩌면 없었으면 좋았을것 같기도 하다. 사실만으로 덤덤하게 끌어갔다고 해도 충분히 강한 메세지와 여운을 주었을것 같은데 그 감정을 상기시키는 것이 비 사실적이기에 조금 몰입에 억지스러움이 있었다고 느껴졌다. 그렇지만 마지막 장면은 압권이었다. 이 영화의 상징은 나비였던것 같다. 집으로 돌아가는 이야기를 완성시키는 장면에 수많은 나비들이 위안부 피해자들의 한을 이해시키는데 너무 적절하고 가슴 벅찼던것 같다. 그래서 나비로 돌아가며 끝냈다면 정말 좋았을 것 같은데 마지막 주인공 소녀가 돌아가서 밥을 먹는 장면은 개인적으로 정말 별로였던것 같다. 감정의 흐름은 끊겼고 필요없는 장면이라고 생각되어져 안타까운 마음이다.
귀향이라는 영화의 주변 반응은 세가지였던것 같다. 이 영화는 꼭 봐야한다라는 사람, 이런 영화는 마음이 ���무 아파서 못보겠다는 사람, 이 영화에 대해 아무말 없는 사람.
나 사는것도 힘든데 타인의 고통에 대한 이야기를 벅차하는 사람에 대해 생각해본다. 그것이 나이기 때문이다. 타인의 고통의 외면하는것은 나쁘다. 그리고 어릴적 도덕시간에 어렴풋이 성선설을 통해 배웠던 것이 생각난다. 사람은 타인의 고통을 발견하면 자신도 모르게 그를 도운다는 이야기. 그것이 어쩌면 사람이 본능일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는 수많은 억압들을 통해서 우리의 행동으로 그들을 도울수 없음을 학습당해 왔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불편한 마음이 드는건 아닐까. 본능은 돕고 싶은데 도움을 준다해도 바뀌지 않을것을 알기에 그리고 나는 나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숨기고 있는 사람이라는 본능도 공존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그래서 내가 취해야 할 행동은 용기내 세상을 바꾸는 사람이 될 수는 없더라도 그들의 행동을 외면하지 않고 바라보고 내 후짐에 그들을 가십거리 삼아 넘겨버리지 말고 그들을 지지해 주어야겠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이제 나는 불편한 영화를 보려고 한다. 그리고 알고살아야겠다. 가능하다면 작은 도움으로 이어져 나갔으면 좋겠다.
1 note
·
View note